소설리스트

환타지아-158화 (158/236)

< -- 2학년 2학기 -- >

그렇게 한 달은 금방 흘러갔고 드디어 그 신입 삼인방과 첫 회식을 하는 날이 되었다.

물론 그 녀석들의 첫 월급날이기도 했다. 나는 첫 월급날 겨우 오만원짜리 한 장을 받았었는데 신입 세명의 봉투는 꽤 두둑한 것이 샘이 날 지경이었지만 나는 선배로서의 본을 보이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하면서 세 명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수고했어."

1번방 효식이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나한테 덥석 안겼다. 본래 남자끼리의 터치를 좋아하는 나는 아니지만 효식이를 밀어내는 대신에 등을 두드려 주었다.

매출이 크게 상승한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신입인 세 명의 강력한 요청 때문인지 이번 회식장소는 돼지껍데기집이 아니라 한우고기집으로 결정되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상하기도 하는 묘한 기분을 맛보면서 나는 환타지아 무리를 따라 예약해 둔 한우소고기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5번방 뺀질이 태경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17 쪽170

"왜?"

"첫 월급 때 얼마 받았어?"

"기억이 잘 안 나."

라고 대답하는 내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물론 그다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전에 태경이가 받아든 월급봉투를 직접 본 나는 차마 5만원을 받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원선생님 말로는 오.... 읍 으으으"

말을 하고 있는 태경이의 입을 막아서 무리의 뒤쪽으로 끌고 갔다.

"야 그건 그 때 일이 있었어."

"그래?"

"설명하기 곤란하니까 괜히 떠들고 다니지 마라."

나름 눈에 힘을 주고 말을 했지만 먹혀들어가는 것 같지 않았다. '아씨'넘버투 두고보자 내가 기필코 이 원수는 갚아줄테니...

"뭐 그렇다니까 믿어줄게."

"뭘 믿어줘 사정이 있었다니까."

마치 못 믿겠다는 투로 말하는 태경이 녀석을 어떻게 요리하면 될까 생각하던 나의 눈에 꼬붕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주에 접대 약속이 있다며 시간 빼놓으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으흠 그렇다면.... 태경이를 대신 내보내면 되겠네. 아직 여친이 없다고 했으니 뭐 딱히 걸릴 것도 없다.

뺀질거리는 폼새로 봐서 동정일리로 만무하고... 그렇게 결심한 나는 회식자리에서 태경이 입막음을 하기 위해 태경이 옆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사실 나와 태경이랑 효식이 이렇게 셋은 죽이 잘 맞아 같이 잘 붙어 다니는 편이라서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무슨 얘기해요?"

"별거 아니야."

가까이 다가온 효식이가 궁금한 얼굴을 질문을 했고 나는 태경이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원선생님이 우리 셋이 같이 월급 받고 나올 때 그 말씀 하셔서 효식이도 알고 있거든."

'진짜'확 뒤집을 수도 없고.

나는 걸음을 늦춰서 환타지아 무리들과 떨어져서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효식이와 태경이가 그냥 둘리 없었다.

"뭘 그런 거 갖고 그래요 형 별거도 아닌데 첫 월급 오만원 받았으면 어때요? 지금은 많이 받으시잖아요. 이번달 월급 얼마 받으셨어요."

"비밀이야."

효식이와 태경이가 꼴에 비밀식이나 갖고 있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한우소고집으로 들어가니 환타지아 인원이 많은 관계로 이층 전체가 예약이 되어 있었다.

환타지아에서 처음으로 한우고기집으로 회식을 오게 된 나는 도대체 오늘 회식비는 얼마 정도가 나올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왕 온 거 배터지게 먹어 보자라고 결심했다. 넘버투가 신나게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슨 물 만난 고기마냥 컵을 일렬로 쭉 세워두고는 소맥 폭탄주를 만들고 있는 모습은 나름 볼만 했다. 장관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몇 무리들은 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만들어진 폭탄주를 원장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막내인 효식이에게 이르기까지 쭉 돌리고 나서 원장이 일어나서 건배 제의를 했다.

"환타지아의 미래를 위하여 건배"

"첫잔은 무조건 완샷이다."

뒤이어 넘버투가 소리를 질렀지만 넘버투가 말하기 전에 이미 다들 잔을 비워내고 있었다. 환타지아 무리치고 첫잔이 완샷인걸 모르는 인간은 없었으니까. 심지어는 신입인 셋도 완샷을 했다. 그리고 삼삼오오로 나뉘어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신입 셋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리들에게 술잔을 돌리느라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혼자 원 없이 한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꽃등심까지는 아니지만 생갈비를 구워 먹다보니 그 맛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한 테이블당 나온 오인분인 갈비를 다 구워먹고 나서 고기를 한 접시 더 주문하고 새로 굽기 시작하는데 술잔을 다 돌린 건지 효식이가 비실 대면서 우리 테이블로 걸어왔다.

"형 나 어지러워요."

적어도 20잔 이상은 마셨을 것이 분명한 효식이를 보다가 내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어주었다.

"야 이거나 먹어."

"역시 형밖에 없어요. 와 진짜 맛있다."

고기를 한점 먹어본 효식이가 젓가락을 들고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난 오인분을 해치운 후라서 느긋한 마음으로 효식이가 먹는 것을 보고 있었고 잠시 후 태경이가 영대와 함께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러자 고기를 서로 먹기 위한 난투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야 뭐 실컷 먹은 후라서 좀 뜸했지만 나머지 셋은 고기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 덤비다가 보니 설익은 고기까지 집어 먹고 있었다.

"야 아직 안 익었어."

"소고기는 안 익혀 먹어도 돼요."

'뭐라고?'

누구한테 그런 근거 없는 말을 들은 거야? 그거도 부위에 따라 다른 거지.

세 명은 덜 익은 고기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고 나는 슬쩍 엉덩이를 옆 테이블에 걸치고 앉아 옆 테이블의 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한우를 먹어서인지 평소보다 술을 적게 마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쉽게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아니면 단지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 모르지만 폭탄주 10잔 이상을 마셨는데도 별다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술자리가 처음인 신입 세 명은 저희들끼리 논다고 정신이 없었다. 나이는 각각이지만 같은 동기로서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동기가 하나도 없는데.... 신입인 세 명이 조금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 적금 넣기로 했어요."

"나도 그런데."

효식이와 태경이의 말에 영대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신입 셋은 나와는 다르게 환타지아에 대한 기본 지식이 탄탄했고 환타지아에 들어오기 전에 아는 사람들에게 홍보까지 했었다는 대화를 주고받았고 심지어는 월급으로 받을 돈을 어떻게 쓸건지 계획까지 세우고 들어왔다는 대화까지 오고가자 나는 먹던 고기조차 떨어트리고는 신입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순진한 건지 아니면 멍청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신입들이 세상물정에 빠삭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와는 달리 기본 계획까지 세워놓은 그 세 명이 부러웠다. 나도 그런 계획을 세우면 지금부터라도 좀 달라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딱히 빠질 건 없다.

전국대회에서 대상도 수상했고 미용사자격증도 가지고 있고 꽤 힘 있는 단골들도 있고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스스로가 대견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은 이번 대회에 나가요?"

"무슨 대회?"

"일본에서 대회 여는데 몰라요?"

"모르긴 알지."

'그래'모른다. 그저 학교 공부와 환타지아 근무만으로도 바빠서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관심이 없어서 몰랐기에 그런 핑계를 대려니 스스로가 궁색하게 느껴져서 그냥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 모르기도 몰랐지만 관심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이민정이 일본에 가서 대회에 나가 대상을 수상 했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제 진짜 대회 따위는 나가고 싶지 않은데... 신입 셋은 나갈 생각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대해 침이 튀도록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래서'뭐? 셋이 다 출전하고 싶다고 해도 환타지아에 근무하고 있는 이상 다 같이 나가기는 힘들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넘버투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우리 환타지아에서도 대표로 한명 내보낼까 생각 중이었는데 나가고 싶은 사람 있어?"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넘버투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효식이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술먹다가 손을 드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옆에 태경이까지 손을 들자 입가에 걸렸던 웃음이 쑥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대까지 손을 들었다.

'뭐야?'

얘네들은 대회참가 못해 죽은 조상이라도 있는 거야?

"너희 셋 다는 출전하기 힘들고 환타지아 대표 한명만 출전이 가능하니까 다들 의논해서 결정해. 고기 모자라면 더 시키고 많이 먹어라."

넘버투가 세 명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신입 셋의 피 터지는 대결이 시작되었다. 술이 눈앞에 있으니 아마도 술 먹기로 결정을 하자는 결론을 내린 듯이 보였다.

옆에 있던 나에게 심판을 봐 달라며 소주를 병째 들고 나발을 불기 시작하는 세 명을 보면서 환타지아 무리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러대며 각자 마음에 드는 신입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20번방 형이 언제나와 같이 내기 돈을 거두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내기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나는 누구에게 돈을 걸까 고심하면서 옆에 있던 시호형에게 조언을 구했다. 시호형은 태경이가 알고 보면 숨을 실력자라고 하면서 다른 미용실에서 근무했던 경력도 있는 녀석이라고 알려주었고 그 말을 듣던 떡대 하나가 효식이가 작년 고등부 미용대회에서 대상을 탔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가만히 있던 꼬붕이 영대녀석하고 같이 별나라에 근무를 했었다고 말했다.

'뭐야?'

과묵한 척 소리 없이 있더니 알고 보니 별나라 출신이었던 거야?

소리 없는 모습과는 달리 별나라 근무경력이라니... 약간 부럽기까지 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가장 정감이 가는 효식이한테 거금 오만원을 걸었다. 그런데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술을 마시던 셋은 한꺼번에 곯아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내기 돈을 건 사람들이 서로 자신이 돈을 건 신입이 가장 나중에 쓰러졌다고 했지만 그 순간을 폰으로 찍지 않아서 카메라 판정도 불가능한 터라서 결국 내기 돈을 다시 돈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돌려주었고 쓰러진 세 명을 보던 넘버투가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네. 영일아 일본 가라."

'아아악'뭐야? 왜 그 불똥이 나한테 튀는 건데... 나는 이제 그만 조용히 살고 싶다고 이렇게 살면서 알콩달콩 돈 모아서 미용실 하나 여는게 내 꿈인데... 왜 일본까지 가서 대회에 출전해야 하냐고?

진심으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기대에 찬 60명의 눈빛이 일제히 내 쪽을 향하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내가 미친 거야. 국제대회 나갈 때도 그렇고 심지어 얼마 전에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할 때 넘버투에게 엄청난 갈굼을 당해 놓고는 그냥 대회도 아니고 일본대회씩이나 참석하려고 하다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일본말 못한다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 일본말 전혀 못하는데요."

"걱정 마 내가 일본말 잘해."

옆에 있던 꼬붕이 대뜸 말을 했다. '그래서'뭐 어쩌라고? 그래 너 일본말 잘해서 잘났다. 그런데 뭐?

"잘 됐네. 영일이 구선생이랑 같이 일본 다녀오면 되겠네. 그 대회가 내년 1월에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네. 시간은 충분하겠는데."

그렇게 원하지도 않았던 일본대회 출전이 결정되자 나는 미친 듯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늘 먹고 죽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머리까지 열이 뻗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차를 가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나는 당연하다는 듯 세모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곯아떨어진 신입 세 명은 떡대들에 의해 집으로 돌려보내졌고 볼일이 있다며 무리들 중 2/3이 돌아간 후라 세모클럽으로 들어갔을 때 남은 인원은 겨우 20명 남짓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넘버투도 꼬붕도 포함되어 있었다. 넘버투는 양주와 맥주로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한우소고기집에서 술을 많이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열심히 마시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술이 술을 마시는 지경까지 간 무리들 중 제정신이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가운데서도 꼬붕에게 다음 주에 있을 접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태경이 어떠세요. 태경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접대 때 내보내면 어떨까요?"

"좋지."

'하긴'누구라도 자신을 대신해서 접대만 하면 된다는 생각인지 꼬붕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술이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건가? 아무튼 내가 원하던 대답을 들은 나는 취기가 오르는 시작하자 세모클럽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옥탑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삼일이 지나 꼬붕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태경과 함께 접대할 손님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난 분명 나 대신 태경이를 보내자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꼬붕은 내가 태경이와 같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태경이도 나와 같이 나간다는 말에 별 생각 없이 꼬붕을 따라 나온 것 같았다.

"저는 그만 가보면 안 될까요?"

"네가 같이 데려 오자며 그리고 태경이는 영일이 네가 온다고 하니까 같이 온 거잖아."

"형 어디 가려고요."

그러고 보니 태경이한테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도 아직 말하지 못했는데... 이러다가 큰 일 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잠시 후 기다리고 있던 약속장소로 네모그룹의 대표이사라는 이회장이 도착했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태경은 너무도 능숙하게 이회장에게 접대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회장은 왼쪽 옆엔 태경을 오른쪽 옆엔 나를 끼고 호텔의 룸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이회장의 팔에 붙들려 호텔 룸으로 들어갔고 그날 밤 평생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이 원한은 내가 꼭 갚아 주겠다라는 결심을 하며 하루하루 칼을 갈면서 보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밀이야~님, 현오님, 윤하내꼬야님, 닉네메메멤님, 멍충대마왕님, 챠베스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똥색사탕님, GODTOP님 감사드립니다.

꼬붕한테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영일입니다.

그덕에 당분간 다른 인물들의 등장이 뜸하긴 하네요.... 오늘도 즐감하세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