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에 가다. -- >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모델의 머리를 단발로 잘라내고 염색을 하기 위해 염색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모델은 옷 위에 비닐로 된 작업복을 입고 있었기에 특별히 다른 것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염색약을 원하는 부분에 조금씩 바르고 나서 랩으로 감았다.
전체적인 염색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곳에 염색약이 묻지 않도록 하느라 내 손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염색이 끝이 나고 머리를 한번 감겨서 염색약을 씻겨 낸 뒤 드라이기를 들어서 머리를 말렸다. 그리고 고데기로 약간의 웨이브를 주고 난 후 좀 전에 염색한 부분에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두 시간 남았습니다."
다섯 시간 중 벌써 세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내 손이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얼른 스타일링을 끝내 놓고 화장도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간중간에 심사위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진행과정을 체크하고 있었다.
채점표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심사위원들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그들을 보고 웃어주어야만 했다. 마음은 급하지만 행동은 느긋해 보이도록 하면서 마무리를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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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남았습니다."
다행히도 스타일링은 마무리 단계였다. 마지막으로 모델의 머리 위로 화장품으로 나왔던 반작이는 펄이 들어간 분홍색의 볼터치를 쏟아 부었다.
뒤쪽에 앉아 있던 김민지가 놀란 듯 작게 소리를 지를 것이 들려왔지만 나는 바로 모델의 머리 위에 뿌려진 가루를 골고루 머리에 퍼지도록 하기 위해 드라이기를 손에 들었다. 몇 명의 심사위원들이 부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라이기를 손에서 내려놓은 후 모델의 얼굴에 가볍게 색조 화장을 해주고는 모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손 볼 부분이 있는지 확인했다. 약간 비쳐 나온 머리를 손보고 나니 완성이 되었다.
"10분 남았습니다."
나는 모델이 입고 있던 비닐 작업복을 벗겨서 옆으로 치우고 모델을 일으켜 세웠다. 외워왔던 일본어를 쓸일이 전혀 없었다. 내가 한국말로 하면 뒤에 있던 김민지가 일본어로 통역을 해 주었기에 나는 편하게 스타일링을 할 수 있었다.
"시간 종료되었습니다. 다들 부스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대회에 출전자는 부스 밖으로 나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심사위원들이 모델을 살펴보기 위해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김민지는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모델이 분홍색의 옷을 입고 올 거라는 걸 아셨어요?"
사실 나도 몰랐다. 일본어조차 제대로 못하는 내가 그런 것을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어보고 있는 김민지를 돌아보면서 인상을 썼다.
"몰랐습니다."
"진짜 몰랐어요?"
"전 일본어도 잘 못하고 일본에 온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 죄송합니다. 그저 분홍색과 너무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라서 혹시 사전에 알고 계셨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입상을 하실 것 같은데요. 다른 참가자들의 스타일링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 중에서도 단연 뛰어날 것 같아 보이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김민지는 조금 전에 내 뱉었던 말이 미안한 것인지 이번에는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독창적이라느니 생각도 못했던 스타일링법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김민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시상식은 오후에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다리셔도 되겠지만 식사는 하셔야 하잖아요. 혹시 잘 모르시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가면 일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세요? 그럼 거기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김민지가 앞서 가기 시작했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가기 힘이 든 것인지 주춤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나야 키가 커서 사람들 머리위로 길이 보이지만 키가 작은 김민지가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가기엔 쉽지 않을 터였다.
나는 앞서가는 김민지의 팔을 잡았다. 놀라서 뒤돌아보는 김민지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길을 만들며 그녀를 끌고 대회장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영일아 잘했어. ..... 이 분은... 혹시 통역사?"
"네 제 통역을 해 주시던 분인데 어차피 대회장에 같이 들어가야 하니까 같이 점심 식사를 할까 해서요."
내 말에 꼬붕은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구현우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통역사 김민지입니다. 괜찮으시다면 근처에 맛있는 음식점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김민지가 앞장을 서고 나와 꼬붕은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야 저 통역사 너 마음에 든 모양인데."
"그래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보통 통역사들은 대회 중이 아니면 출전자랑 같이 안 다니거든."
나는 걸어가고 있는 김민지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작은 키이긴 하지만 호리호리한 몸매 덕에 작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날씬한 편에 속하는 미친 개나리랑 몸매가 비슷했지만 키가 작아서인지 더 가냘파 보였다.
"딱 내 타입인데."
그러고 보니 이유진도 가냘픈 스타일이었지... 가 아니고 이 인간은 보기만 하면 자기 타입이라고 하니.. 이거 참.. 확 꼰지를 수도 없고... 나는 역에 걷는 꼬붕을 째려보다가 다시 김민지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체적으로 호리한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제본 동영상 속에 넘버투가 시도했던 체위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김민지의 벗은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뒤돌아선 김민지와 시선이 마주치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여기예요. 들어가요."
김민지는 단지 목적지에 도착했기에 걸음을 멈춘 것이었다. 나와 꼬붕은 김민지가 가리키는 음식점을 바라보았다.
"라멘집이네. 너 밥 안 먹어도 돼?"
"덮밥도 있으니까 밥이 드시고 싶으시면 덮밥 종류를 시키시면 돼요."
꼬붕의 물음에 나 대신 김민지가 대답을 했고 나는 둘을 제치고 먼저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했다. 뭐라고 떠들어대며 다가온 종업원에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민지가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서 종업원의 물음에 대답을 해 주었고 우리 셋은 테이블로 안내 되었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뭘로 드실래요?"
김민지가 내 쪽으로 메뉴판을 밀어주었다. 글을 몰라도 사진으로 음식의 모습이 찍혀 있었기에 고르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저는 이거 먹을게요."
라멘을 먹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덮밥이 아닌 라멘을 손가락을 가리켜 보여주었다. 김민지의 시선은 내 얼굴에서 손가락으로 내려갔고 내가 가리키던 메뉴를 보고는 곧 꼬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같은 거."
꼬붕은 내가 가리킨 라멘을 보더니 곧 같은 것을 먹겠다고 했고 김민지는 덮밥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주문을 했다.
"제가 보기엔 최영일씨는 무난히 입상을 하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민지가 꼬붕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쪽 계통에서 일하십니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죠?"
"저도 미용 공부를 하고 있고 작년에도 이 대회에서 통역을 했었거든요."
"그럼 유학생?"
"아니요 제일교포 2세입니다."
김민지의 말에 꼬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한번 눈으로 김민지를 쓱 훑어 보았다. 그러고 있는 사이 음식이 나왔고 곧 둘의 대화를 끊어지고 음식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전 이거 다 못 먹어요. 혹시 더 들실래요? 좀 덜어 드릴게요."
김민지의 말에 나는 더 먹겠다고 말을 했고 김민지는 덮밥의 삼분의 일만 덜어서 먹기 시작했다. 하긴 몸매를 보아하니 많이 먹지 못할 것 같았다.
라멘과 같이 덮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을 주고 받았고 나도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입상을 하니 안 하니 하는 건 결국 부담스럽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대회는 끝이 났고 줄만 하면 상을 주겠지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긴장하면서 스타일링 했던 대회가 끝이 나고 나니 이젠 그냥 쉬고 싶은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 당연히 꼬붕이 계산을 했다.
김민지가 자신이 먹은 음식은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했지만 그런 김민지를 나와 함께 식당 밖으로 밀어낸 꼬붕은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돌아갔다.
"미안해서 어쩌죠?"
"이렇게 맛있는 식당을 알려주신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세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김민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혹시 몇 살이세요?"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고 배우시지 않으셨나요?"
"혹시 고등학생인 건 아니겠죠?"
"어머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김민지가 나를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네 그러니까 나이 가르쳐 주세요?"
"스물 다섯이예요."
이번에는 놀란 내가 김민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민지가 앞장 서서 걸어가기 시작하자 꼬붕과 나는 그런 김민지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분위기 좋은데. 무슨 얘기 했어?"
"나이 물어봤어요."
"나이?"
"혹시 미성년자인가 싶어서."
"뭐야? 너 통역사한테 관심 있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예쁘게 생겼잖아요."
"예쁘기 보다는 좀 어려 보이는데. 너 설마...."
"아니예요. 스물 다섯 살이래요. 나보다 네 살이나 연상인데요 뭘."
작게 속닥거리면서 대화를 하던 나와 꼬붕은 어느새 대회장에 도착했고 앞서 가던 김민지가 대회장 입구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 봐 나는 밖에서 화면으로 보고 있을게."
"네 좀 있다 봐요."
손을 흔드는 꼬붕을 뒤로 하고 김민지와 함께 대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다들 부산스럽게 오가는 것을 보아하니 정리 중인듯 보였다. 입상 대상자들은 결정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배정된 부스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옆에 있던 김민지가 팔을 붙잡았다.
"왜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부스에 가도 모델은 없어요."
하긴 부스에 아직 있을 리가 없겠지라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었다. 김민지가 그런 나를 끌고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좁은 복도 쪽에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스텝들이 쉬는 곳인 듯 했다.
"우선 좀 앉아 계세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제가 상황 좀 보고 올게요."
사실 이미 입상자들은 결정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만 수상을 위한 준비로 이렇게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는 것이겠지. 김민지는 스텝이라서 입상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여기 있을게요."
내 대답을 들은 김민지는 곧 밖으로 나갔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상기된 표정의 김민지가 달려왔다.
"영일씨 축하해요."
'역시'입상이 확실한 모양이다. 느껴지는 뿌듯함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감사합니다."
기쁜 얼굴을 감추느라 고개를 숙였더니 앞머리가 이마를 내려와 덮었다.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다가 내 앞에서 쳐다보고 있던 김민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대상이래요."
'뭐?'
뭐라고? 무슨 상? .... 대상?
대상까지 욕심내지 않았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입상을 했다고 하니 대상까지 욕심이 났던 모양이다. 이런 헛소리까지 들려오는 걸 보면...
"대상이래요. 영일씨 작품이."
김민지의 눈과 마주한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대상을 타게 되었구나. 그리고 뒤이어 내 몸은 희열에 휩싸였다.
앞에 마주하고 있던 김민지를 거칠게 낚아챈 나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전율을 느끼며 김민지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이비앙님, GODTOP님, 멍충대마왕님, 애독자C님, 폭렬용자님 감사드립니다.
내일부터 설 연휴이지만 연중 따윈 없습니다.... 굳이 예고하자면 당분간 달립니다...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