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맥을 만들다. -- >
퇴근 후 회집으로 정해진 회식은 말이 내가 국제대회에서 대상을 탄 축하를 하기 위한 회식자리였지 결국엔 자기들끼리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나는 대충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보기 싫은 회 대신 땅콩을 주워 먹고 있었고 20번방 형을 위시한 몇몇이 내기로 딴 돈을 분배하고 있었다. 내가 일본에 간 사이 이루어진 내기에서 가장 큰 돈을 딴 사람은 넘버투였다.
다들 입상은 해도 대상은 아닐 것이라는 쪽과 대상이라는 두 가지의 경우로 내기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입상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없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대상을 탄 나는 죽상이었고 돈을 딴 넘버투는 입이 찢어져라 웃어대고 있었다.
생각외로 판돈이 컸던 모양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도박으로 확 고발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나는 조용히 한쪽에서 소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형 회 안 좋아해요?"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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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회는 안 먹고 소주만 마시고 있어요."
날 위한답시고 효식이가 회를 덜어 내 앞 접시에 자져다 주었다. 그나마 나를 생각해 주는 기특한 녀석에게 회가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을 하긴 미안해서 억지로 몇 점 주워 먹었다.
"잘 드시면서 저랑 한 잔 해요."
"어 그래."
잔을 들어 효식이가 따르는 술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너도 한 잔해라."
"네."
효식이 잔에 술을 부어주자 효식이나 반잔만 마시고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뭐야?'
아직 어린 자식이 벌써 몸 사리는 거야?
"돈 많이 땄어?"
"본전만 겨우 찾았어요."
'어'뭐야 너도 대상에 걸은 거야?
"혹시나 해서 둘 다에 걸었었거든요. 그래서 딱 본전을 가져가게 되었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대상에 거는 건데."
나머지 대부분이 돈을 잃은 것을 생각할 때 어쩌면 나름 머리를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러던지 말던지 나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뭐 기분 나쁜 일 있으세요?"
"아니 신경 쓰지 마."
건너편에 있던 넘버투가 나를 발견하고는 술잔을 들고는 상을 넘어서 내 앞으로 와서 앉았다.
"네 덕분에 돈 좀 벌었다."
"그럼 한턱 쏘세요."
"알았어 임마. 나중에 거하게 한턱 쏠게."
"말로만 그러지 말구요."
"알았다니까 오늘 따라 왜 이래? 너 뭐 잘 못 먹었냐?"
'그래'잘 못 먹긴 잘 못 먹었지. 그것도 엄청 나게 잘 못 먹어서 탈났다. 통역사인줄 알았더니 야쿠자라니.... 나참
"아뇨 그런거 없어요."
"그럼 인상 좀 펴라 누가 보면 네가 아니라 내가 대상 탄 줄 알겠다."
나는 넘버투를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나마 꼬붕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 가냐?'
"화장실요. 왜요 전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요?"
"아니 갔다 와. 꼭 밖으로 나갈 것 같이 일어나서 그렇지."
'나 참'밖으로 나가려고 일어나는 거랑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는 거가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야?
나는 휘적휘적 걸어서 화장실로 갔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거울을 보니 취기가 올라서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서 찬물로 세수까지 한바탕 하고 나서 화장실에서 나왔다.
화장실 밖에서 효식이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왜 나와 있냐?"
"형 데리고 들어가려고요."
"내가 애냐? 길 못 찾아 올까봐 데리러 온 거야?"
"그게 아니라 원선생님이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알아서 갈텐데 데리러 오긴 뭘 데리러와."
참 이거 별거 아닌 일로 사람 열 받게 하네. 그리고 내가 중간에 가고 싶으면 그냥 가는 거지 뭘 또 데리러 오라고 시키고 그러는 거지.
어쨌든 심부름 한 아이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것 같아서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앉아 있던 자리에서 넘버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놔'도대체 뭐냐고? 지금 장난해?
나는 일부러 넘버투를 못 본 척하면서 입구 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원장이 앉아 있는 맞은편이었다.
"영일군 대상 받은 거 축하해요. 내 술 한 잔 받지."
"네"
얼른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아 들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원장이 술잔이 넘도록 술을 부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술잔에 입을 갖다 대고는 '쭈욱' 마셔버렸다. 원장 옆에 있던 넘버쓰리도 내 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역시 두 번째 잔도 단숨에 마셨고 그 옆의 헤어디자이너에게서 한잔 그리고 또 그 옆의 사람에게서 한잔, 그렇게 쭉 돌아가면서 내 잔에 술을 채워 주었고 나는 정신없이 술잔을 비워야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술잔을 받아 마시다 보니 술이 취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술잔을 부어주는 인간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고 내 주량은 5병이니 결국에 주량을 넘어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보다 못한 넘버투가 나를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야 넌 준다고 다 받아 마시냐?"
"축하한다고 주는 건데 마셔야죠."
넘버투는 혀를 끌끌 차고는 나를 복도에 앉혀 두고 종업원을 불러 물을 가져오도록 시켰다. 잠시 후 가져온 물을 억지로 나에게 마시게 하고는 복도에 앉아서 술 좀 깨고 있으라고 하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넘버투가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타지아 무리들이 방에서 나왔다. 아마도 술자리를 끝내려는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니 넘버투가 효식이에게 나를 옥탑방으로 데려다 주라고 하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혼자 갈 수 있다며 효식이를 2차 팀에 합류하도록 했고 내 고집을 꺾지 못한 넘버투는 결국 나를 혼자 택시에 태워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2차를 가는 모양이었다. 많이 취한 나와 몇 몇 사람들만 1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택시에서 내려서오니 환타지아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와 있었다. 급하게 뒤돌아서서 택시를 다시 부르려고 했지만 이미 택시는 떠나버리고 없었다.
'와'사람을 도대체 어디에 떨궈 놓고 가는 거야? 취한 상태에서도 뭔가가 잘 못 됐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떠난 택시를 잡을 수도 없는 것이고 술도 깰겸 그냥 바람이나 쐬면서 걸어보자는 생각에 발걸음을 움직였지만 흔들리는 시야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세 걸음 정도 걷고 난 후 바닥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정신이 들어보니 나는 길바닥에서 동냥하는 자세로 누워 있었다.
당연히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갑이며 폰이며 모두 사라져 버리고 심지어는 신발까지 없이 맨발이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길바닥에서 얼어죽기 딱 알맞은 꼴을 하고 있던 나는 누워 있던 자세에게 얼굴을 들어서 슬쩍 주위를 살펴보았다. 내가 꼬꾸라졌던 그 장소에서 단 1센치도 움직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저 그 상태로 지갑과 폰과 신발까지 털렸던 모양이다. 고개를 조금 더 돌려보니 휘향찬란한 간판이 하나 보였다.
'샹그리아?'
아마도 내 술 취해 꼬인 발음을 택시기사가 잘 못 들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환타지아가 아니라 샹그리아 앞에 내려놓다니.... 우선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누워 있던 바닥에서 일어나 샹그리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술을 파는 Bar인 그곳은 새벽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내가 들어서니 직원이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내 모습을 위 아래로 살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기 혹시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마치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직원에게 얼른 부연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제가 쓰리꾼에게 당해서 지갑과 폰을 잃어버렸습니다. 빌려주시면 나중에 갚을게요."
"죄송합니다만...."
거절하려는 직원에게 다시 한번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전화 한통화만 해도 될까요?"
"... 네 그렇게 하세요."
다행히 직원은 거부하지 않고 전화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외워둔 폰번호가 있었다.
자신 만만하게 번호를 눌렀다. '잉'뭐야? 없는 번호라니?
전화를 걸자 친절한 여자가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며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저 죄송한데 그럼 혹시 돈 천이백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전화번호를 잘 못 외웠으니 제대로된 번호로 전화를 걸려면 몇 번을 더 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택시비를 빌릴 수 없으니 그럼 버스비라도 빌려보자고 말을 했지만 생각해 보니 지금은 버스도 다니지 않을만한 시간이었다.
"버스비만이라도 좀 빌려주시면 하는데... 안 될까요?"
"종오야 무슨 일이야?"
가게 안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잠시만요. 저 지금 들어가 봐야하거든요. 그리고 지금 가진 잔돈이 없어요."
"... 네"
직원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가게 안에서 사장인 듯 보이는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안 들어와."
"사장님 이 분이 지갑하고 폰을 잃어버렸다고 하셔서요."
"그래"
나를 위 아래로 쳐다보던 사장은 맨발인 내 발을 보더니 한심한 듯 이마를 짚었다.
"신발까지 벗겨 갔나보네. 이거 참."
댁보다 내가 더 기가 막히거든. 잠시 기절했다가 일어났더니 이 모양이니... 그나마 옷까지 벗겨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장이 직원에게 안에 가서 신을 가져오라고 했다. 잠시 후 직원이 삼선슬리퍼를 가지고 나왔다.
"이거라도 신어. 자 그리고 여기 이거 받고. 이름이랑 전화번호... 참 폰 잃어버렸다고 했지? 그럼 집전화번호라도 적어놓고 가."
샹그리아의 사장은 자신의 명함과 돈 삼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었고 나는 내 이름과 환타지아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꼭 돈 갚으러 오겠습니다."
"와야지 안 오면 내가 가만히 안 둘테니까 꼭 갚으러 와."
"네 감사합니다."
"이만 가 봐."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 보다 이렇게 이름만 적어주었는데 돈 삼만원을 덥썩 빌려주다니... 나는 삼선슬리퍼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와 바로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환타지아 앞에 내리고 나서 주머니를 뒤져보니 집 열쇠도 없었다.
나는 누구처럼 열쇠 없이 문을 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다.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곳이 세모클럽이었다.
새벽 두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꽤 유쾌하지 못한 선택이었고 나는 당연히 그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새벽 5시까지 영업을 하는 세모클럽으로 가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다행이 받은 돈이 삼만원이었기에 다시 택시를 타고 세모클럽으로 갈 수 있었다. 달랑 만원 한 장이었다면 삼선슬리퍼를 질질 끌고 세모클럽까지 걸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입구를 들어가려는 나를 떡대들이 놀라면서 바라보았다. 클럽에 슬리퍼 끌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 말고도 내 모습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떡대 하나가 이사님께 연락을 드리겠다며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면서 나는 입구에 서 있었다.
"방으로 모시랍니다."
곧 다시 나온 떡대가 나를 끌고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로 데리고 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는 지난번에 와 본 적 있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럼 이만 쉬십시오."
떡대는 방안에 덩그러니 나 혼자만 두고 나가버렸다.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서 샤워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와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생각해 보니 분하고 억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효식이가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할때 그냥 같이 갈걸 괜히 고집부리고 혼자 간다고 하다가 '샹그리아'에 가고 그 앞에서 주머니 다 털리고... 아악 이게 뭐야?
그렇게 혼자 발악을 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윤하내꼬야님, 이비앙님, 비밀이야~님, 멍충대마왕님, 장료님, 블로우스트님, 챠베스님, 안돼임마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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