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174화 (174/236)

< -- 새로운 시작... -- >

도시락을 사다보니 다섯 개나 사고 말았다.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차마 편의점에서 혼자 먹을 수는 없어서 컵라면을 몇 개 더 사고 나서 갑갑한 마음을 달래려고 시원한 아이스바를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흐음'뭐야? 이거방엔 아무도 없었다. 침대에는 누워있었던 자국이 남아 있는데 유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도 부엌에도 거실에도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하고 나서 제정신이 든 상태로 내 얼굴을 마주하는 건 좀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사온 도시락 중 두 개와 컵라면 하나를 꺼내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18 쪽193도시락을 데우고 물을 끓이고 나서 막 도시락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젓가락을 든 채로 현관으로 나가보니 유진이가 두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옥탑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빠 뭐 먹고 있었어요?"

"응 도시락."

"그러면 안 돼요. 내가 맛있는 거 해 주려고 장 봐왔는데."

유진이가 집을 비운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이유와 달랐던 모양이었다. 단지 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 장을 보러 나갔던 모양이었다.

"아직 안 먹었어. 해줘."

배는 고팠지만 기다려 줄수 있다는 태도로 유진이를 바라보자 유진이가 부엌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장봐온 물건을 정리하면서 나에게 도시락을 먹고 있으라고 했다. 잠시 후 앞치마까지 챙겨 입은 유진이가 뭔가를 만든다며 부엌을 샅샅이 뒤져 냄비와 후라이팬을 찾아내서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도시락과 컵라면을 천천히 먹으면서 유진이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이는 한참이 지난 후 내 앞에 쇠고기탕수육과 팔보채, 양장피, 고추잡채를 내 놓았다.

"와 대단하다."

"얼마 전 중식 조리사 자격증 땄어요. 먹어봐요. 보기만큼 맛도 있어요."

정말 이었다. 보기만큼이 아니라 보기보다 더 맛있었다. 중국집에서 주문해 먹는 것보다는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면서 입에 감기는 맛이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내 앞에 고량주 한병을 내 놓았다. 앞치마를 벗고 내 맞은편에 앉아서 내 잔을 먼저 채워주고는 자신의 잔에도 고량주를 채웠다.

"우리 건배해요. 나와 오빠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나는 유진의 술잔에 내 술잔을 부딪치고는 완샷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 간호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요리사로 꿈을 바꿨었어요. 그런데 또 다시 요리사가 되고 싶지 않아졌어요."

이유를 알것만 같았다. 아마도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꼬붕 때문이었겠지. 그런데 꼬붕이 저렇게 상처를 주고 떠나갔으니 요리사가 되기 싫겠지. 아니 꼬붕이 생각나는 어떤 행동도 하기 싫겠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고마워요."

'아니'이러면 내가 미안해지는데 어쨌든 꼬붕이랑 사귀게 된 데이는 내가 일조한 것이 분명하니까. 차라리 그때 소개를 시켜주지 않았어야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잔을 들어 올린 유진이를 보다가 내 잔을 들어올렸다. 어느 사이엔가 채워져 있던 잔은 부딪치자 술이 출렁거렸다.

"이번에는 유진이의 꿈을 위하여 건배할까?"

"좋아요."

"꿈을 위하여."

그렇게 두 번째 잔을 그리고 또 다시 세 번째 잔을 결국에는 고량주 한병이 다 비어버렸고 유진이는 두 번째 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도대체'몇병이나 사온 거야?

설마 마시고 죽자.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비장한 표정으로 잔을 비워내고 있는 유진이를 보다가 나는 너털웃음을 짓고 말았다.

"왜요? 기분 좋은 일 있어요?"

"응"

"무슨 기분 좋은 일인데요. 나도 알려줘요."

"유진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게 무슨 기분 좋은 일이예요."

입을 삐죽이며 대답을 하면서도 싫지 않은지 살짝 웃는 유진이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 옥탑방에 와서 웃은 웃음 중 방금 전에 웃었던 모습이 제대로 된 유일한 웃음이었다.

"맛있다 얼른 먹어."

맛있다는 말에 다시 미소 지은 유진이는 젓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진이 만들어 놓은 중국음식의 대부분을 해치우고 나서 유진은 돌아갔다. 나는 하루 종일 먹지 않다가 한꺼번에 음식을 잔뜩 먹어서인지 소화불량에 시달리다가 참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지갑을 들고 약을 사러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서 바로 입에 털어놓고 나서 옥탑방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폰이 울리는 소리에 폰을 받으려고 했더니 허무하게 문자 알림음이었다.

역시 아직 적응이 안 되는 폰이었다. 이참에 새로 폰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문자를 열어 확인해 보았다.

[쌍둥이 남매 탄생 축하해 줘]'쌍둥이 남매'그러니까 넘버투가 아빠가 되었단 말인가?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싶기는 했다. 생각해 보니 작년에 결혼을 하고 지금이... 암튼 아이가 태어났구나.

얼른 답문을 보냈다.

주위에서 아기 아빠가 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냥

'축하드립니다.'

라는 문장만 달랑 보내지만 선물이라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당연히 준비해야할 것이다. 안 주면 날 잡아먹으려고 들 텐데. 생활이 편하려면 미리 갖다 바치는 것이 낫겠지.

옥탑방에 올라가서 방과 부엌을 정리하고 나서 욕실에 들어가서 씻었다.

아직도 소화가 덜 된 건지 속이 울렁거리고 있어서 침대에 누울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TV를 켰다. 영화를 하나 보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어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소화가 좀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찌링'문자 도착음이다.

[오빠 고마웠어요.]유진이가 보낸 문자를 보면서 미소 짓던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정말 내가 기쁨조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을 말자라고 다짐하면서 잠속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씻고 옷을 입고 요기를 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제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도시락을 꺼내 하나 데워 먹고는 환타지아로 출근했다. 분위기가 평소랑 좀 다른 것을 보니 아무래도 넘버투의 2세들 때문인 듯 했다.

몇몇은 아예 폰에 사진까지 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효식아 나도 좀 보여줘."

"아 형 왔어요."

효식이가 폰을 내밀었다. 넘버투가 어색한 표정으로 쌍둥이를 한손에 하나씩 안고 있었다.

좀 있다가 떨어트릴 것만 같은 불안한 포즈였다. 그리고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표정이 영... 하지만 쌍둥이는 작았다. 귀엽다기엔 뭔가... 아무튼 작았다.

효식이에게 폰을 돌려주고는 잠시 후 아침구호를 외치기 위해 줄을 섰다. 원장이 싱글벙글하면서 아침구호를 외치도록 했고 모두들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원선생이 쌍둥이 남매를 얻었다고 합니다. 아직은 아기가 어려서 보러갈 수 없지만 시간이 나면 개인적으로 한번씩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하긴 아기가 태어난 산부인과에 칠 팔십명의 인원이 방문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아기들의 실물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건 뭐 다음에 확인해도 되는 거니까.

내가 방으로 가기 위해 올라가려고 하자 원장이 나를 붙잡았다.

"영일군 현재 구선생이 갑작스러운 일로 퇴사를 하고 원선생은 아이들 때문에 일주일간 휴가를 냈어 헤어디자이너가 부족해요. 가능하다면 여기 일을 도와줬으면 하는데."

'뭐?'

또 카운터를 보라고?

하지만 내게 선택권이 있을리 만무하다.

"카운터를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스타일링을 맡아줘요."

'Really?'

정말?

진정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물론 내가 미용사자격증도 있고 여러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고 헤어디자이너로서의 입지도 다져왔다고 치지만 환타지아에서는 그 정도 스펙은 기본이라면서?

놀라서 내가 원장을 쳐다보고 있자 원장은 내 손을 끌고 가서는 꼬붕의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있으면 손님 올거니까 준비하고 있어요."

대답 대신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이 밖으로 나가고 나서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곧 온 몸을 차고 흐르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펄쩍 거리며 뛰고 있었다.

'뭐야?'

그러니까 나 지금 원장한테 인정받은 거야? 헤어디자이너로서.... 이거 참 나름 감격스러운 일인데.

나는 어수선한 꼬붕의 방안을 둘러보다가 서둘러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꼬붕의 방안을 치우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원장도 꼬붕이 외국으로 나간 것을 안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꼬붕의 방을 정리할려고 할 리 없을 테고 나를 이 방안으로 밀어넣었을 리도 없겠지.

정말 원장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놀랍게도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손님이었다. 내 단골까지는 아니지만 종종 환타지아에 왔던 손님 중 한명이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뭐해요?"

"스타일링 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마사지는 안 해요?"

"오늘은 안 하는데요."

왠지 서운한 표정을 지은 손님을 의자에 앉혔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간단하게 손질만 해줘요. 끝도 약간만 잘라주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머리를 다듬으러 온 것이란 말이지. 특별한 행사를 갈 것이 아니라면 머리에 영양상태를 신경 써서 온 손님인 것이었다. 예상대로 머릿결이 약간 푸석푸석한 상태였다.

"영양제를 발라 드리겠습니다."

"많이 안 좋아요?"

"많이 까지는 아니고 약간 미리 예방하는 것이 더 좋으니까 제 때에 오셨어요."

"그렇게 해 줘요."

칭찬의 말 때문인지 한결 얼굴이 풀어진 손님의 머리를 말리고는 영양제를 발라주었다. 보통은 손님이 먼저 헤어디자이너의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시술 후 머리를 감기 위해 견습생의 방으로 갔다가 휴게실에서 잠시 쉰 후 다시 헤어디자이너의 방으로 온다.

헤어디자이너의 방이 다 찬 경우에는 먼저 견습생의 방으로 갔다가 헤어디자이너의 방으로 오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스타일링만 받거나 마사지만 받는 손님들도 있기에 바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지금 온 이 손님의 경우에는 견습생도 지명한 모양이었다.

내가 영양제를 바르고 난 후 머리를 감길 시간이 되자 떡대가 들어와 손님을 안내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손님이 나가고 나서 소파에 가서 앉았다.

시술이라고는 겨우 영양제를 바른 것 뿐이었지만 헤어디자이너로써의 첫 시술이라서인지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시간 쯤 지나서 시술을 받았던 손님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볼에 붉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고 기분도 들떠 보였다. '역시'바로 저게 견습생의 힘이군.

나도 저렇게 만들 수 있는데 아니 난 저것보다 더 흐느적거리게 만들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손님을 의자에 앉혔다. 그런데 이 손님 흥분을 참을 수 없었는지 자신의 머리를 만져주는 나를 더듬기 시작했다.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뭘 보통 다 이렇게 하는데."

'그래' 그렇지 헤어디자이너들도 삽입 외에는 모두 허용하니까 거기다가 예전에 원장의 페니스를 문 상태에서 스타일링을 받고 있던 손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일해요."

'그러니까'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고?

이제는 페니스를 꺼내서 주물러 대면서 저런 말을 하니.... 언제 바지 지퍼를 내린 것인지 바지 안에 손을 넣고는 아직은 말랑한 페니스를 만지다가 페니스를 밖으로 꺼내더니 감탄을 하며 쳐다보다가 세우기 위해 손을 위 아래로 움직여 대기 시작했다.

'뭐야?'

박아주지도 못하는데 왜 세워? 아놔 진짜... 이건 꼭 내가 못 먹는 밥상에 숟가락 놓는 기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손님의 스타일링을 하고 있던 원장이 떠오르자 갑자기 무럭무럭 존경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쉬운 일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허리가 굽혀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블로우스트님, 이비앙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비밀이야~님, 장료님, Estel님, 멍충대마왕님, 챠베스님, 현오님, 아르너미스님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내용이 급 진전 되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포지션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도 나오고 그렇게 될 것 같네요. 더이상 영일이는 찌질이가 아니랍니다.

그럼 오늘도 즐감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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