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175화 (175/236)

< -- 새로운 시작... -- >

"허업"

"아압"

"크읍"

어쨌든 밖으로 나오는 신음소리를 막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대신 비명소리도 아니고 신음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런 상태로도 손님의 스타일링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겨우 찰랑이는 머리스타일을 완성한 내가 손님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다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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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점심시간인데 안 나오고 뭐해요?"

효식이가 문을 반쯤 열고 얼굴만 문 안으로 들이밀고 말했다.

"벌써?"

"벌써라뇨 형 기다리느라 10분이나 지났는데."

"그래 나갈게."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제 헤어디자이너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태경이가 옆에서 건들거리면서 말을 걸었다. 이 자식은 누가 안 잡아가나? 확 쥐어박고 싶었지만 여기는 직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저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는 환타지아 무리를 쫓아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회종류를 먹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물론 식사가 되는 거니까 회초밥이라던가 회덮밥, 아니면 회정식 정도겠지만... 이제 일본에서의 트라우마도 극복했겠다. 맛있게 회를 즐길 준비를 하고는 무리의 뒤를 따라 횟집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오늘의 메뉴는 회덮밥이다. 거기다가 서비스로 매운탕까지 제공한다고 하니 절로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맛있게 회덮밥을 비벼서 입으로 막 가져가려고 하는 찰나.

눈치 없는 태경이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

"이제 구선생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긴 못 돌아오는 거지. 구선생 아버지가 대신 사표까지 제출하셨어."

넘버투의 대답을 들은 나는 눈이 커다래졌다. 물론 꼬붕이 억지로 끌려가서 결혼을 하고 외국까지 나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사표까지 냈다니 그럼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꼬붕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거기다가 저렇게 도움이 안 되는 아들이라면 그냥 외국에서 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도움만 안 된다 뿐이겠는가 말썽을 피우기도 하니까.

지난번 별나라 미용실 사건에도 연관이 있었고 환타지아 내에서도 삽입불가에 항거해서 속을 썩인 전적이 있었으니. 거기다가 여자들과의 사고도 있었을 테고.... 우와 이건 여태까지 참고 있었던 것이 더 대단한 거잖아.

유진이도 마음 정리한 것 같은데 아예 안 돌아오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맛있게 회덮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환타지아로 돌아오는데 문자가 들어왔다.

[주말에 시간 좀 내줘요.]백진아였다. 당연히 그러마하고 답문을 보내고 다시 꼬붕의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이상한 것은 그 이후로 손님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왜 원장은 굳이 날 이방으로 밀어 넣었을까? 알고 보면 방 정리를 하라고 그런 것일까? 그렇겠지 비싼 밥까지 먹여놓고는 설마 폰으로 게임하라고 이 방에 밀어 넣은 건 아닐 테니까. 하는 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뭔지 알 수 없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꺼내어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넣어서 옆으로 치우고 나머지는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다시 정리해 두었다.

"영일군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이미 반쯤은 들어와 놓고는 허락을 구한다는 듯 말하는 원장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방 어때요?"

"좋은데요."

느낀 점을 말하라면 좋지. 당연히 그리고 아마도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방까지 딸려 있을 터였다.

"이방 당분간 영일군이 맡아주면 좋겠는데."

"네?"

"당분간만 이방 맡아주면 좋겠다고."

"제가요?"

"적임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영일군 생각은 아닌가요?"

'아직'아직 뭐?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없는 거야? 아니잖아 계속 노려왔던 기회 아니야.

"정말 제가 이 방을 맡아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런 말을 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어차피 당분간이니까"

"줬다가 뺐으면 안 됩니다. 전 한번 삼킨 건 절대 안 뱉어 내는 성격이거든요."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실력을 키우면 되잖아요. 대신 지금처럼 이 방이 비어 있지 않도록 노력해 줘요."

"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나는 그렇게 헤어디자이너로 승격하게 되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헤어디자이너로 승격하게 되어 얼떨떨했지만 원해왔던 일이라서 인지 행복감이 솟아나고 있었다.

주말에 백진아와 만나면 진짜 파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방안을 둘러보았다. 얼마 뒤 들은 소식으로 나의 행복감은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알고 보니 원장은 나 말고 나보다 먼저 환타지아에서 근무하고 있던 견습생들을 다 한번씩 찔러 본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는 원장이 나에게만 그런 제안을 한 걸로 생각하고 괜히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기다가 승급심사가 생략된 채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환타지아 무리들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또 대회 출전이었다.

진짜 그놈의 대회 그 쯤 나갔으면 이젠 그만 나가도 되련만 기회만 되면 '툭'하고 튀어나오는 통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리고 벼르고 있는 넘버투를 생각하니 대회 출전은 더욱 싫었다. 차라리 그냥 원장에게 실력을 입증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원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진짜 어쩌라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하면.... 그래서 내가 꼬붕의 방을 사용하는 일은 잠시 보류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헤어디자이너로 승격하는 것이 보류되었다는 것이 맞겠지.

결국 원장은 헤어디자이너를 새로 영입해 올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있는 직원(콕 집어서 말하자면 결국 나이지만)을 헤어디자이너로 올리느냐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헤어디자이너를 영입해 오는 것은 그것대로의 문제점이 있었다.

환타지아의 서비스에 대해서 잘 모르는 헤어디자이너가 환타지아로 올 경우 손님 관리가 잘 안 되는 문제점이 생길 수도 있고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손님이 생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내가 헤어디자이너로 승격하기로 결정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학생인 관계로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서 헤어디자이너가 올 때까지 한정적으로 꼬붕방을 맡고 있기로 했다.

'아니'어차피 헤어디자이너로 승격시켜줄거면서... 왜 사람을 오라가라해서 헷갈리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한편으로 섭섭했다. 내 실력이 아직은 아니라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실력이랄 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남들이 나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꼬붕의 방에 남아 있던 물건들의 대부분은 정리 되었고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바꿔서 넣어졌다. 미용실마다 사용하는 약품들이 다른데 환타지아 같은 경우는 헤어디자이너마다 사용하는 약품이 달랐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서 약품 구매에 대해서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귀찮다고 하면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기도 했다.

나는 당연히 환타지아에서 공급해 주는 기본 품목으로 방을 채웠다. 꼬붕은 자신이 원하는 약품을 따로 구매해서 사용했었기에 그 약품들을 다 치워버려야만 했다.

사실 나도 더 좋은 약품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약품을 사용해 본적이 없으니 어떤 제품이 어떻게 좋은 것인지 알지 못했고 원장의 추천을 받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환타지아 공급 약품을 준비해 둔 것이었다. 놀랍게도 내가 헤어디자이너로서 꼬붕의 방에서 첫날 한 일은 견습생의 방에서 첫날 한 일과 같았다.

한마디로 손님이 없어서 빈둥대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견습생일 때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기만 하면 자신이 단골이 되어주겠노라고 다짐 비슷한 말을 했던 손님들이 막상 내가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난 후에는 지명은 커녕 내 안부를 묻는 사람조차 없었다.

손님들은 견습생으로서의 내 실력은 믿었지만 아직은 헤어디자이너로서의 내 실력은 미심쩍어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견습생일 때의 단골손님들도 다들 다른 헤어디자이너를 찾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보니 꼬붕이 손님 접대를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미용실이 한 두 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미용실마다 보유하고 있는 헤어디자이너 숫자도 많은데다가 실력 있다고 소문난 헤어디자이너도 많은 요즘은 이제 겨우 견습생 딱지를 떼고 헤어디자이너로 승격해서 올라간 초보를 찾을 손님은 없었던 것이었다.

대회를 나가서 대상을 탔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출전 시의 스타일링은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점수를 많이 받았던 것이었다. 물론 실력도 평가 항목에 들어가지만 가장 큰 점수를 받았던 부분이 창의성이었던 만큼 어쩌면 손님들이 꺼려 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손님접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딱히 뭔가 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끝에 나는 원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손님이 적어서 걱정이라고요?"

적은 정도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아예 없어서 문제인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미안해서 홍보를 하고 싶다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보았다.

"홍보를 하고 싶다?"

"네 아니면 제 실력을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연예인이나 모델의 스타일링을 해주면 금방 유명해 질 수 있긴 한데..."

"연예인요?"

'맞아'왜 그 생각을 못했지.

백진아랑 지윤경, 이유진, 거기다가 예전에 야광 개나리가 모델이었고 그 친구들도 있잖아.

우선은 무료로 해준다고 하면 되겠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혹시 또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어차피 주말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따로 약속을 정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손님이 없어서 거의 카운터에 나와 있는 실정이었다.

원장이 꼬붕이랑 넘버투가 빠지는 바람에 바쁘다고 했었는데 대부분 카운터가 비어있었던 것이다. 대신 원장과 넘버쓰리 이하 헤어디자이너들은 휴가를 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이 바빴다. 그래서 비게 된 카운터는 거의 내가 지키고 있었고 나는 카운터에서 손님을 안내하면서 나도 헤어디자이너라는 것을 충분히 어필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게 스타일링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일 나하고 같이 원선생님 쌍둥이 보러 갈래?"

"전 오늘 효식이하고 태경이랑 영대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형은 시호형이랑 다녀오세요."

"야 너 걔네들보다 나하고 더 친하잖아."

'뭔 소리야?'

너랑 같이 가면 내가 막내라서 심부름 내가 해야할 거잖아. 효식이랑 태경이랑 가면 걔네들이 알아서 할텐데 당연히 걔네들이랑 같이 가야지 내가 미쳤다고 헤어디자이너랑 같이 가냐? 그렇게 나와 태경이와 영대와 효식이는 아기 옷과 양말과 과일바구니를 사들도 넘버투가 말한 여성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쌍둥이인터라 수술을 받아서 출산을 했었기에 입원기간이 일주일이나 되어서 이제 막 산후조리원으로 옮기려고 하던 참이라고 했다.

아직도 붓기가 빠지지 않은 넘버투의 마누라를 보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손님과 견습생으로 만난 일이 엊그제 같은데 넘버투와 결혼에 쌍둥이를 출산까지 하게 되고 말이다.

산모는 오히려 좋아 보이는데 넘버투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원선생님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

산모 눈치를 보면서 대답하는 폼을 보니 아무래도 병실에서는 말하기 곤란해 보였다. 아기를 보기 위해 넘버투와 같이 신생아실로 가는데 넘버투가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말도 마라. 애들이 밤낮이 바꿨는지 매일 밤마다 울면서 엄마를 찾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아기 하고 병실에 같이 안 있잖아요."

"같이 안 있는데 모유를 먹이느라 얘가 깨서 울면 애 엄마가 젖 먹이러 가거든."

'뭐야?'

그럼 젖 주는 산모는? 산모가 더 피곤한 거 아닌가? 잠도 못 자는데다가 젖까지 먹여야 하니까.

"아기 젖은 엄마가 먹이는 거잖아요."

"쌍둥이라서 나도 같이 가서 애를 안아주거든."

지난번 전화로 소식을 전할 때는 좋아 죽겠다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더니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싫으세요?"

"아니 좋아. 울 쌍둥이들이 젤 예뻐 저기 봐."

어느새 도착한 신생아실 앞에서 남녀 쌍둥이를 보면서 넘버투는 좋아죽겠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꼭봅시다잉님, 이비앙님, 안돼임마님, 비밀이야~님, 멍충대마왕님, GRanD_MaSTer님, 블로우스트님, 현오님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감기가 떨어지려는 합니다. 오늘 교육수료하고 기분에 술 한잔 했어요. 그러나 담주에 시험을 쳐야한다는... ㅠㅠ 한번에 합격해야하는데.. 그래서 다음주는 바쁩니다.

삼월이 되면 좀 한가해질 것 같습니다. 다행이도. 이제 담주만 지나면....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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