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로운 시작... -- >
쌍둥이들은 자고 있었다. 어찌나 달게 잘 자고 있는지 넘버투가 야단법석을 떠는 통에 아기들이 깰까봐 걱정이 되었다.
"좀 조용히 하세요."
"왜 우리 쌍둥이 보고 가야지."
"지금도 충분히 잘 보고 있거든요. 아기들 자는데 깰지도 모르니까 그만 좀 떠들어요."
넘버투는 쌍둥이 눈동자가 샛별 같다느니 눈을 뜨고 웃는 걸 봐야한다면서 창문을 두들겨 대고 시끄럽게 굴다가 결국 신생아실에서 나온 나이 많은 간호사에게 한 소리 듣고는 조용해 졌다. 다행히 쌍둥이들은 그런 와중에도 잠을 잘 자고 있었다.
한참을 꼬물거리면서 자는 쌍둥이 구경을 했다. 사실은 그 옆에 깨어 있는 아기들 구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귀엽게 입을 오물거리면서 눈을 말똥거리며 넘버투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아기들을 구경하다가 결국 쌍둥이가 깨어나지 않자 /18 쪽195김 샜다는 표정으로 나와 일행들을 끌고 휴게실로 장소를 옮기는 넘버투 때문에 원치 않던 음료수를 하나씩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아야만 했다. 우리가 아기들을 구경하는 와중에도 효식이와 태경이는 연신 사진을 찍어대었었다.
자기 아기도 아니면서 어찌나 열심히 찍던지 누가 봤으면 아기 아빠라고 착각할 만큼 열심이었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보면서 서로의 사진이 더 예쁘게 찍힌 것 같다면서 비교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넘버투는 아기를 안고 찍은 사진에 마누라가 젖먹이는 모습을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침을 튀기며 자랑하고 있었다.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것만 같았다.
신생아실 앞에서의 자랑은 자랑이 아닐 정도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일이 묘사하면서 표현을 하는데 딱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아이를 가지게 되면 다 넘버투처럼 변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질려 버렸다.
답답하다는 핑계를 대고는 층간에 있던 실외 정원에 나와서 바람을 쐬려고 하는데 담배 피는 인간들이 어찌나 많은지 잠깐 나갔다가 다시 휴게실로 들어갔다.
"너희들 저녁 먹었냐?"
"아뇨 아직이요. 병원 들렀다가 가서 저녁 먹으려구요."
일부러 저녁을 안 먹고 병원에 간 것이었다. 저녁과 함께 술 한잔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낌새를 눈치 챈 것인지 넘버투가 자신도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겠다고
"저녁 아직 안 드셨어요? 병원에서는 일찍 저녁 먹잖아요."
"그게 사실 산모밥이랑 같이 먹다보니 매일 미역국만 나오는 바람에 질려서 밥을 못 먹겠더라고 그래서 아직 안 먹었거든. 너희들 온 김에 같이 먹으러 가지 뭐."
아직 저녁도 안 먹었다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없어 나와 무리들은 쌍둥이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넘버투와 같이 병원 밖으로 나왔다. 사실 처음 계획은 돼지껍데기집에 가는 것이었는데 넘버투가 같이 나오는 바람에 병원 근처의 유명한 보쌈집으로 가게 되었다.
"영일이 너 헤어디자이너로 승격한다며?"
"어떻게 아셨어요?"
"원장님께서 전화 하셨더라. 너 승격시켜도 되냐고? 내가 실력은 충분하다고 말씀 드렸지."
'뭐야?'
설마 나를 그렇게 믿어주는 거야? 감동 받아서 눈을 빛내고 있는데 넘버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가르쳤는데 실력이 안 되겠어. 안 그러냐?"
그럼 그렇지.
실력 인정은 개뿔. 자기 실력 맹신이겠지.
내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려버리자 넘버투가 내 쪽을 보면서 말을 걸었다.
"영일이 네 생각을 어떠냐? 내가 확실히 잘 가르치지? 그런데 왜 난 대학에서 강의하러 오라고 하지 않을까? 매번 원장님은 바쁘다고 해서 강의 요청 들어와서 골치가 아픈데 말이야."
'참 나'스스로의 주제를 생각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격이 다르잖아 인격이... 아무리 그래도 원장은 대외적인 입지도 그렇고 하는 말투나 성격도 그렇고 자신보다 100배 이상 낫다는 걸 진짜 모르는 걸까?
옆에서 유들유들한 인상으로 태경이 넘버투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저 자식은 완전 박쥐과네 전에 꼬붕 있을 때는 꼬붕한테 완전 붙어서 기생하더니 꼬붕 나가고 나니까 이번엔 넘버투한테 붙어서... '에잇'그러던지 말던지 신경 쓰지 말자.
넘버투가 주문한 보쌈정식이 나왔고 나는 열심히 고기를 먹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야 넌 말 좀 하고 먹어라. 누가 뺏어 먹냐?"
"먹는데 무슨 말을 해요?"
보쌈이 나온 이후로는 전부 한마디 말도 안하고 먹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넘버투는 괜시리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아마도 좀전에 실력 운운하던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지 않은데 대한 보복인 모양이었다.
"넌 말 좀 하면서 먹어."
그래놓고는 자신은 먹는데 다시 집중했다. 나 혼자서 뭐라고 하라고.....
"아 보쌈 맛있네."
넘버투 이하 세 명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열심히 고기를 먹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를 다 먹어버리고 쌈과 풀 종류만 남았다. 그제야 한숨 돌리고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유명한 집이라더니 맛있네요."
효식이의 말에 맞은편에 있던 태경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희 동네도 이 보쌈집 있는데 맛있어서 자주 가거든요. 역시 체인점이라서 여기도 맛있네요."
그렇게 맛있다는 칭찬 일색으로 이어진 저녁식사는 곧 끝이 났다. 반주를 술을 먹기엔 분위기가 영 이상했던 탓인지 열심히 밥 만 먹고 넘버투를 병원까지 배웅에 해주는 나와 효식, 태경이와 영대는 돌아설 수 있었다.
"어쩔래? 지금이라도 한잔 하러 갈까?"
내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무리들을 이끌고 나는 샹그리아로 갔다. 우선은 병원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간 김에 삼만원을 갚아버리자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었다.
"형 여기 유명한 덴데 어떻게 알아요?"
"그냥 우연히."
"여기 굉장히 고급바인데..."
마치 너 같은 촌놈이 이런 곳도 알고 있었냐는 듯한 태경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지만 나는 태연히 대답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나 여기 몇 번이나 와 봤는데."
'물론'삼만원 갚으러... 술은 한번도 안 마셔봤지만 어쨌든 왔던 건 왔던 거니까.
사실 돈을 빌릴 때와 갚으려고 왔을 때는 손님이 있는 가게 안쪽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었다. 가게 입구와 부엌과 가까운 곳만 왔다갔다 했을 뿐 그래서 전체적인 인테리어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 오늘 들어가서 보니 태경이의 말대로 진짜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그런데 이 술집의 사장은 별로 고급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가게 안의 테이블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었다.
의자는 검은색의 소파로 되어 있어서 앉아 있으니 무척이나 편안하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각 테이블 위에는 작은 종이 올려져 있어서 흔들어 직원을 부르도록 되어 있었고 천정에서 내려온 커튼이 각 테이블 사이에 드리워져 있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종을 울리자 잠시 후 달려 온 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주문을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과 내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 종업원이 언젠가 사장이 김군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던 바로 그 종업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삼만ㅇ.... 으읍"
나도 모르게 종업원의 입을 틀어막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종업원을 끌고는 가게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무리들을 돌아보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마디 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게 안 구석으로 가서 우리가 앉은 테이블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종업원의 입을 틀어 막았던 손을 치웠다.
"아씨 뭐예요?"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번 그 삼만원 맞는데 그냥 모르는 척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일행들에게 그날 일을 말하기 좀 그래서요."
잠시 후 이해한다는 듯 김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걱정마라는 듯 내 등을 두드렸다.
"그보다 사장님 계신데 만나 보지 않으셔도 돼요?"
'뭐?'
사장이 지금 있다고?
가게도 한두개가 아니라면서 바쁘지도 않나 어떻게 된게 매번 가게에 있는 거야?
"저 왔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고 다들 나와 종업원의 관계를 궁금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나는 곧 비싼 술을 주문하는 것으로 그들의 관심을 돌려놓을 수 있었다.
"형 진짜 이거 마셔도 돼요?"
"되지 이럴 때 아니면 너희가 언제 이런 술을 마셔보겠냐? 마셔 괜찮아."
삼만원 대신 미끼가 되어야만 하는 술이 미안했지만 나는 의연하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술이 도착했을 때는 내 포커페이스도 무너지고 말았다.
"주문하신 술 가지고 왔습니다."
김군이 아닌 여사장이 주문했던 술을 가지고 왔고 나를 보더니 반갑다는 듯이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오래간만이네. 잘 지냈어?"
"... 네 물론 잘 지냈습니다."
여태까지는 잘 지내고 있었거든.
지금부터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여사장은 술을 셋팅해 주고는 곧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형 저분 아세요? 여기 사장님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형 그거 모르세요? 여기 샹그리아 유명하잖아요. 남자 종업원만 채용하는 걸로. 그 중에 여자는 사장밖에 없다고 하던데요."
"난 몰랐는데."
"그럼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설마 여기 단골이세요?"
"뭐 딱히 그런건 아니지만 그거랑 비슷해."
단골은 아니지만 단골과 비슷한 사람은 뭘까?
나 혼자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대답을 해 놓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병을 들었다.
"안 마실래?"
"주세요."
서로 먼저 술을 마시겠다고 잔을 드는 것을 보니까 한 병에 백만원 가까이 호가하는 술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술병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형 이리 주세요. 제가 따를게요. 그러다가 쏟겠어요."
나는 마음 편하게 효식이에게 술병을 넘겼다. 겨우 그 삼만원에 대한 비밀을 만들려고 백만원씩이나 하는 술을 사다니 나도 미쳤지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효식이가 내 손에 들려준 술잔을 내밀어 술을 받았다.
"나 이거 처음 마셔봐요."
태경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시라고 손짓을 해 주었다.
"잘 마실게요."
차라리 세모클럽으로 갔었다면 삼만원 걱정도 없이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을 텐데... 휴어쩔 수 없이 본전이라도 뽑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첫잔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비싼 술이라서인지 향도 진하고 도수에 비해 목넘김도 부드러웠다.
아니면 비싼 술이라서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마시기에는 상당히 맛이 좋았다.
"와 역시 돈 값을 하네요. 술이 맛있어요."
저녁식사에 이어 또 맛있다는 감탄사의 향연이 이어지고 나서 두 번째 잔이 돌기 시작하자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술을 맛보고 있었다. 역시 비싼 술이라서... 라는 말로 시작된 칭찬을 쭉 늘어놓은 일행은 나를 보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형 덕에 이런 술도 마셔보고 고마워요 형."
"다음에도 사줄거죠?"
'미쳤냐?'
내가 이 술을 또 사 먹게.
하지만 나는 그저 미소만 띠운 채 일행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술이 비싸서인지 안주는 그냥 무료로 제공되었다.
사실 주문 자체도 술만 주문을 받아갔었는데 안주로는 과일안주가 같이 나왔었다. 나는 그 사실이 궁금했지만 단골인 것처럼 굴었으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 말고도 그 사실이 궁금했던지 영대가 묻자 효식이가 대답을 해주었다.
"여기는 술이 대부분 고가라서 안주는 무료로 제공해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쩐지 분명 메뉴판에 안주는 없더니 안주가 나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렇게 술을 마시자 점점 취기가 올라서인지 다들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까 쌍둥이 너무 귀엽죠. 나도 얼른 장가가서 그런 아기 갖고 싶어요."
'보통'저런 말은 여자들이 많이 하지 않나?
효식이가 볼을 붉힌 채 그런 말을 하자 태경이가 '우우우' 거리면서 효식이의 등을 쳤다.
"아야 형 왜 때려요?"
"여자는 있냐?"
"당연하죠."
효식이의 그 말을 시작으로 해서 일행들은 자신의 여자관계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안돼임마님, 블로우스트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멍충대마왕님, 앞에서찌른다님, 해동풍님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인공 대신 몰매 맞을 조연이 바뀝니다. 연참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3월 지나고 나서 한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오늘도 즐감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