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로운 시작... -- >
꿈속에서 환타지아 무리들이 나와 나를 몰매를 때리는 꿈을 꾸었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지 히히덕 거리면서 나를 마구 때리는 그들을 피해 도망을 다녔지만 결국에는 잡혀서 두들겨 맞았고 그래서인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심지어 속도 부글부글 거리면서 안 좋았다.'아씨'뭐야? 진짜 탈 난건가?
낑낑거리면서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볼일을 보고 나서 옷을 입고는 약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서랍을 뒤져봤지만 하필이면 약이라고는 한 알도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이라서 근처 약국은 문을 연 곳이 없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타고 시가지 쪽으로 천천히 나오니 중간에 문을 연 약국이 보여서 약국으로 들어가 온 몸이 아프고 속도 안 좋다고 약 좀 지어달라고 하니 심하게 체한 경우에는 몸이 아플 수도 있다고 하면서 하루분의 약을 지어주었고 먹고도 차도가 없으면 병원으로 가보라는 약사의 말을 들으며 약국에서 나왔다.
/18 쪽199다시 택시를 타고 옥탑방으로 돌아와 약을 한 봉지 입안에 털어 넣고 물 한 컵을 마시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버렸다. '끙끙' 거리면서 앓고 누워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일어나기 싫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없는 듯 가만히 있으려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아는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열었다.
"왔어?"
"아프다면서 괜찮아요?"
"아파 그래서 약 먹고 누워 있었어."
'누가'아프다고 알려준 걸까?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약국에 가서 약 사 먹고 누워 자고 있었는데... 혹시나 다시 돌아갈까봐 나는 얼른 옥탑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현관문을 닫고 잠궈버렸다.
"왜요?"
"추워서."
내 말에 멀뚱히 나를 보다가 죽이라도 끓이겠다면서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 백진아를 보면서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프던 속마저 멀쩡해진 느낌이었다.
"들어가서 누워 있어요."
내가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자 백진아가 나를 부엌 밖으로 밀어내었다.
"보고 싶어서 그러지."
곱게 눈을 흘기던 백진아는 '그러게 좀 잘 하지' 라는 말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못 들은 채 하고 식탁에 의자를 꺼내 앉았다.
"여기 앉아 있을게."
"편한대로 해요. 약은 먹었어요."
"응"
"집에 있는 약 먹은 거예요?"
"아니 약국에 갔다 왔어. 심하게 체한 거라네."
내 말에 백진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이내 죽을 끓이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집에 있다가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곧 바로 달려 나온 모양이었다.
입고 있는 옷이 평소 밖에 나갈 때 입는 옷이 아니라 그냥 실내복이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달려 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귀여운 느낌이 들었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백진아 뒤로 다가갔다.
"나 걱정 많이 했어?"
"윤경이가 전화 했는데 영일씨 아픈데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잖아요. 어제는 멀쩡하더니 아프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러니 걱정했다는 말이네. 걱정해 놓고는 아닌 척 시치미 떼기는 나는 살짝 백진아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백진아가 손바닥을 내 손등을 '찰싹' 때렸지만 나는 손을 조금 더 아래로 미끄러트렸을 뿐 손을 떼지는 않았다.
"뭐예요?"
"너무 예뻐 보여서."
"......."
백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살짝 고개를 돌리는 것을 봐서 예쁘다는 말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 줄거 있었는데 잘 됐다."
나는 명함이 생각나서 방으로 들어가 명함을 한 장 꺼내 들고 다시 부엌으로 나왔다. 뒤로 명함을 숨기고 백진아에게 다가가자 백진아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얼른 내 놓으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뭘 것 같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맞춰봐. 이걸 가장 먼저 주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너거든 그래서 아직 아무 안 줬어."
"뭔데 그래요?"
"자 받아."
내가 명함을 백진아의 손바닥 위에 얹어 놓자 백진아가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헤어디자이너 된 거예요?"
"응"
"와 대단하다."
감탄사를 내뱉던 백진아는 내 쪽으로 손을 뻗더니 내 목덜미에 두 손을 감고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다고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왠지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백진아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꼭 안아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내 코에 이상한 냄새가 맡아졌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어머 어떻게 죽 타나봐."
후다닥 내게서 떨어져 나간 백진아는 끓이고 있던 죽에 불을 끄고는 울상을 지었고 나는 웃으면서 그냥 나가서 먹자고 괜찮다고 백진아를 달래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가까운 죽집으로 들어갔다.
백진아는 언젠가 썼던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상태였다. 오히려 시선을 더 모으는 듯 한 차림새였지만 적어도 저렇게 하고 있으면 백진아인지 모를테니 상관없다면서 죽집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수근거리는 손님들 때문에 죽을 먹지 못하고 포장해서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백진아와 사이좋게 죽을 나누어 먹고는 다시 약을 먹었다.
"아직 많이 아파요?"
"아니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내 말에 백진아가 미소를 짓더니 침대로 들어가 누우라고 했지만 나는 누우면 오히려 더 소화가 안 될 것 같다고 하면서 백진아와 같이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요즘 많이 바쁘지?"
"조금요."
어쩐지 환타지아에도 자주 안 온다고 했지.
조금이 아니고 사실 많이 바쁜 모양이지만...
"내가 스타일링 해줄테니 시간 나면 환타지아로 와."
"알았어요. 시간 나면 올게요."
사실 백진아 정도 되는 연예인이면 메이크업 뿐만 아니라 스타일링을 해주는 전속 헤어디자이너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미용실에 방문을 해서 한번씩 머리 손질을 받기는 하지만 시간이 나지 않을 때는 그것마저도 전속 헤어디자이너의 손으로 해결을 하는 모양이었다. 요즘 백진아는 잘 나가는 연예인 중 대표적인 한명이다.
지난 번에 찍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나서 최근에는 그와 관련된 CF와 영화 홍보건으로 바빴다. 거기다가 영화를 일본과 외 몇 개국으로 수출까지 할 모양이라서 좀 있으면 홍보 차 외국까지 날아다녀야 할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보는 것도 오랜만이고 아마 오늘이 지나면 더 자주 보기 힘들어지겠지.
내가 우려했던 야한신은 베드신이 아니라 춤추는 신이라서 오히려 더 신선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준 모양이었다.
최근에 여러 클럽이나 나이트에서도 이런 종류의 이벤트를 하는 것으로 봐도 한참동안이나 백진아의 인기가 이어질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지윤경이나 이유진은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놀라운 것은 지윤경이 결혼과 이혼을 겪었음에도 별다른 인기의 변화가 없었고 이유진은 특유의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가수이고 거기다 꼬붕과의 연애 사실이 보도된 적이 없기에 별다른 타격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유명해 지는 방법은 누구 연예인이 자주 찾는다더라는 말이 돌아야 하는데 너무 바쁜 백진아라서 찾아와 스타일링을 받기만 한다면 홍보 효과는 좋겠지만 시간이 안 날 것 같고.. 그럼 지윤경에게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소화 좀 됐죠? 누워서 쉬어요."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소화가 안 되는 건데 누워 쉴 필요까지 없어."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차마 한동안 못 올테니 좀 더 있다 가라고 하지도 못했다. 바빠서 얼굴이 반쪽이 되 버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나보다는 백진아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돌아가라면서 등을 밀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서 가. 연락해."
"알았어요. 나오지 말아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백진아를 보내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데굴데굴 거리다가 폰을 꺼내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언제'온 거지?
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해 보았다. [진아언니랑 화해했어요? 내가 영일씨 아프다고 가보라고 했는데. 또 그냥 보내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안 아파도 아픈 척 하면서 붙잡고 달래줘요. 요즘 바빠서 기분도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이런 일로 삐지면 정말 못 볼지도 몰라요.]뭐야?
그러니까 내가 아프다는 걸 알고 보낸 것이 아니라 거짓말로 그랬던 거였어?
그런데 나는 정말 아팠는데... 이럴 땐 뭐라고 해야지?
이심전심... 그건 아닌 것 같고... 동병상련 그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전화위복?
나는 답장을 보냈다.
[나 진짜 아팠어.]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진짜로 아파요?]
"응 심하게 체해서 약 지어 먹었어."
지윤경은 내 말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심하게 웃기 시작했다. 남은 아프다는데 뭐가 좋다고 깔깔깔 거리면서 웃는 건지. 미운 생각에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
"왜 웃는 거야?"
[진짜로 체했네. 그러게 소화도 못 시킬거면서 왜 막 먹어요.]
"그럼 주긴 왜 줬는데."
[그래도 분수껏 알아서 먹어야지.]
"다음부터는 안 그러면 되잖아. 그런데 정말 왜 욕실에서 셋이 같이 있었던 거야?"
[사실 우리들 어릴 때부터 같이 목욕탕 같은데 가본 적이 없거든요. 찜질방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그런 기분 한번 느껴보려고 그랬던 건데. 서로 등도 밀어주고 침목도 다지고 그러자는 의미였었는데 완전 망쳤지 뭐예요.]'으음'이거 듣고 보니 좀 미안하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요즘 많이 바빠?"
[뭐 그럭저럭 진아언니랑 유진이보단 한가해요.]
"그럼 환타지아에 와서 스타일링 받아."
[안 그래도 한번 가려고 했는데. 조만간 시간되면 갈게요. 당연히 견습지명할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니 견습 지명 말고 헤어디자이너 지명해줘."
[네?]
"헤어디자이너 지명해 달라고"
[헤어디자이너 됐어요? 와 언제부터요?]
"좀 됐어."
[어젠 아무말도 없더니.]
"어제 그런 말할 정신이 있었겠어?"
[하긴 그럼 다음 주에 시간 봐서 한번 갈게요.]
"그래 연락하고 와."
[알았어요. 그럼 이만 끊어요.]지윤경과 전화를 끊고 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각해보니 오전에 약 사러 나갔을 때와 죽 사러 나갔을 때 말고는 내내 이렇게 집안에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았다.
주말이라 집 청소도 좀 해야 할 거 같고 밀린 빨래도 있는데 싶어서 일어나서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먼지 좀 쓸어내고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옷을 세탁기에 돌려서 널었다.
다 하고 나니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고 역시 오전에 죽만 먹어서인지 허기가 져서 부엌으로 가서 아까 사온 죽을 하나 꺼내서 전자렌지에 넣고 데워서 먹었다. 심하게 체했다고 하더니 이것도 마음에 병이었던지 지금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 하나 남은 약은 먹지 않기고 했다.
'아'그러고 보니 얼마 안 있으면 중간고사다.
이놈의 시험은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으니... 대회 나가서 대상 타오면 시험 안 치는 특혜는 없나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곧 고개를 흔들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데 문자가 들어온 알림음이 울렸고 나는 곧 폰을 꺼내 확인을 했다. 백진아가 집에 잘 도착했다고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오늘 푹 쉬고 잘자라는 답문을 보내고 다시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블로우스트님, 꼭봅시다잉님, 비밀이야~님, 멍충대마왕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안돼임마님, 챠베스님 감사드립니다.
영일이가 참 눈치가.... 그건 저랑 좀 닮았어요.
직접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몰라요.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