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181화 (181/236)

< -- 새로운 시작... -- >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넘버투가 연락을 한 것이다.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 하는데 휴가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면서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물론 나한테만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내게 전화를 했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겐 나오라는 넘버투의 말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이 없었다.

"알았어요. 바로 나갈게요. 어디로 갈까요?"

넘버투는 아무래도 여러 명을 불러낼 작정을 한듯 돼지껍데기집으로 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해도 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시간부터 술을 마시자고 술집으로 오라고 하는 넘버투의 행태에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혹시나 명함을 나눠줘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명함통을 주머니에 넣고는 옥탑방을 나섰다. 일부러 시간을 끈 덕분인지 내가 도착했을 때는 환타지아 무리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왔어? 제일 가까이 사는 네가 어떻게 젤 늦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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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늦은 건 아니잖아요."

"이제 올 사람도 없어."

"이렇게 나와 계셔도 되요?"

"오늘부터 장모님 와 계셔. 오히려 불편해 하시는 눈치길래 일찍 나왔다. 근데 내가 이런 것까지 너한테 보고해야 하냐?"

"아니예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시는 거 아니세요?"

"그런거야?"

"네 그럼요."

'어휴'어떻게 된 게 나만 보면 사사건건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인지 효식이도 태경이도 심지어 영대까지 있는데도 왜 나한테만 이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도 침울한 분위기를 하고 있는 영대는 말없이 술잔을 홀짝이고 있었고 효식이와 태경이는 재미있는 대화를 하고 있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넘버쓰리와 현성이형과 시호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왜 이렇게만 불렀어요?"

"다들 어제 와서 한잔씩 하고 갔어.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제 안 왔던 사람들이고."

"저한텐 연락 안 하셨잖아요?"

"너 일찍 퇴근했다고 하던데."

'하긴'어제 내가 진수성찬을 먹느라 좀 바쁘긴 했지.

그 덕에 체하기도 하고... 다들 들어오면서 눈인사를 나눈 상태였지만 그래도 제일 늦게 온 나는 모두에게 술을 한잔씩 돌렸다.

"축한한다. 영일아 내가 보기엔 네가 환타지아 사상 가장 빨리 견습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올라간 것 같아."

현성이 형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게 다 내 덕이다. 영일이만큼 내가 끼고 가르친 애가 없었거든."

옆에서 넘버투가 한마디 거들었고 그 바람에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야? 넌 그렇게 생각 안한다는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 힘들었던 과정이 생각나서 그래요."

"하긴 내가 봐도 도망 안 가는 네가 용타고 생각했으니까."

'그걸'아는 사람이 그래?

진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그땐 차라리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넘버투에게 잔을 내밀었다.

"잔 받으세요."

"야 난 폭탄주 마실거야."

"그래도 제 잔 한번은 받으셔야죠."

"그럼 폭탄주로 줘."

나는 넘버투만큼이나 능숙한 솜씨고 폭탄주를 말아 넘버투에게 내밀었다.

"너 제법이다."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넘버투가 보기에도 그랬던지 한마디 했다.

"그럼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쭉' 폭탄주를 들이킨 넘버투가 다시 잔을 내 쪽으로 돌려주었다.

"받아라."

"저도 맛있게 말아주세요."

넘버투가 만든 폭탄주가 내 손으로 넘어왔고 나도 시원스레 잔을 비워냈다. 넘버투는 내 입에 오이를 하나 물려주었다. '아씨'이왕 줄거면 돼지껍데기를 줄 것이지.

오이를 깨물어 씹으면서 지글지글 잘 익은 돼지껍데기를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들어 집어 먹었다. 쫄깃하고 탱글거리는 것이 씹는 맛이 그만이었다.

"참 너 조금 있으면 학교 시험이라면서."

"네"

"열심히 해라. 성적도 잘 받아야지."

"알고 있어요."

그보다 이제는 헤어디자이너라서 자리를 비우기가 많이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인기 있거나 베테랑의 경우에는 일주일 중에 선택한 몇일만 예약 손님을 받고 나머지 날짜는 쉬는데 이제 막 헤어디자이너로 올라간 나는 손님에게 홍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학교를 가느라 쉬는 날이 생기니까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을까봐 걱정이었다.

돼지껍데기를 열심히 씹으면서 넘버투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사실 잔소리라기보다는 초보 헤어디자이너인 내게 중요한 말이었지만 이런 술자리에서까지 잔소리를 들어야하냐는 생각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있었다.

"내말 잘 알았지?"

"네 노력할게요."

"그냥 노력해서는 안 돼. 네가 잘 못하면 너뿐 아니라 환타지아의 평판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 알아서 잘 해."

"열심히 할게요."

그래도 못 미더운지 넘버투는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폭탄주를 한잔 마시고는 돼지껍데기를 씹었다.

"원선생님 저희 돼지갈비 시켜 먹으면 안 될까요?"

"그러던지."

넘버투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현성이 형이 넘버투에게 말을 하자 평소답지 않게 선선히 승낙을 했고 현성이 형은 얼씨구나 하면서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서도 돼지갈비를 주문했고 결국 돼지껍데기는 한쪽으로 밀려나 버렸다. 돼지갈비를 주문해서 구워먹고도 된장찌개와 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실컷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는데 넘버투가 계산을 하면서 뭐라고 투덜투덜 대었다.

"왜 그러세요?"

"야 7명이 와서 어떻게 고기를 32인분이나 먹을 수 있냐?"

'헉'모인 인원 중에 떡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최근에 회식을 잘 안 해서 그런건가?

"잘 먹으면 좋은거죠."

"다음엔 네가 사라."

나는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제가 살 일이 뭐가 있다고 이러세요."

"그래서 못 사겠다고 너 내가 알기로 통장이 7개나 된다던데."

'헉'그건 어떻게 알았지?

사실 환타지아에 다니면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부분은 금전적인 부분이다. 등록금 정도는 이미 예전에 다 해결했고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타면서 부상으로 나온 돈도 좀 됐고 거기

"갑자기 이러시면 제가 돈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뭐야? 너 돈도 안 가져온 거야?"

"당연하죠. 원선생님께서 사준다고 나오라고 하셨잖아요."

"뭐야? 아무리 그래도 비상금은 들고 다녀야지. 아니면 외상이라도 해."

'도대체'어디서 나한테 외상을 해준다는 거야?

차라리 방금 나온 돼지껍데기집 같으면 단골이라서 해줄지 모르지만 술집을 잘 가지도 않는데 외상이라니?

그렇게 해서 나는 할 수 없이 무리들을 이끌고 세모클럽으로 가야했다. 사실 세모클럽에 가면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지만 벼룩도 낯짝이 있고 서생원도 양심이 있는 거지. 매번 어떻게 공짜로 술을 마시냐? 하지만 또 공짜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오셨습니까?"

"네"

입구를 들어가는데 떡대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니까 미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당연한 듯 나를 보고 룸으로 안내를 하는 떡대를 따라 세모클럽 안으로 들어갔고 넘버투와 나머지 일행은 내 뒤를 따라왔다.

"여기 오려면 영일이하고 와야겠네. 그래야 이런 칙사 대접을 받지 안 그래?"

현성이 형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렇게 말을 했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뒤쪽에서 따라오는 일행들도 긍정의 몸짓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룸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나자 바로 안주와 술이 들어왔다.

"아직 주문 안 했는데요."

"저희 이사님께서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사님 일본에 가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며칠 전에 돌아오셨습니다."

지난번에 한국 들어오면 연락을 준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벌써 몇 일전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연락도 없이?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오늘 명함을 들고 왔던가? 이왕 온 김에 명함이라도 주고 가야하나? 라는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온지 몇일 되지 않았으면 엄청 바쁠텐데 나를 보러 올 틈이 어디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불러주십시오."

직원은 말을 끝내고 룸밖으로 나갔고 넘버투와 나머지 일행은 이미 술병을 따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 있었다. '참'손도 빨라.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할까봐 저렇게 초스피드로 마시는 건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앞에 놓인 폭탄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나가서 춤추자."

역시나 현성이 형이다. 이미 춤출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거려 술잔은 반도 채 비우지 않고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했다.

"잠시만요. 우선 한잔 마시고 가요."

태경이가 그런 현성이 형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 술잔을 들고 마시고 있었고 옆의 효식이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형도 나가요."

내가 나가기 싫다라고 대답을 하려는 찰나 넘버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넘버투는 왕년에 댄스를 췄던 것으로 유명한 헤어디자이너이다.

"나도 가자. 오랜만에 몸 좀 풀어야겠다."

다들 놀란 눈치였지만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연장자이면서 대빵격인 넘버투가 일어나자 룸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 같이 룸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 홀로 올라갔다.

7명이 홀로 나가자 일제히 시선들이 몰렸다. 키도 크고 몸매도 좋고 생긴 것도 빠지지 않는 남자들 7명이 한꺼번에 홀에 올라간데다가 춤 솜씨도 수준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이 하나 둘 우리의 주위로 붙었고 어느 순간 7명은 뿔뿔히 흩어져서 여자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술을 많이 마셨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삐끼 마냥 여자손님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면서 환타지아에 오라고 여자들의 엉덩이를 토닥여 대고 있었다.

'아'미치겠다. 이놈의 술버릇은 차라리 한 가지만 하지 어떻게 매번 업그레이드를 하는 건지. 얼마나 많은 명함을 뿌려대었던지 명함통에 든 명함은 이미 반 이상이 사라지고 없었다.

왜 이걸 들고 나와 가지고.... 진짜 내일 이거 들고 환타지아에 누가 오면 어떻게 하지?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꼭봅시다잉님, 챠베스님, 애독자C님, 블로우스트님, 사랑은언제나오는법님, 멍충대마왕님 감사드립니다.

두구두구두구 둥 드디어 시험날 입니다.

잘치라고 기도해 주세요... 시험 치고 나면 우선 실컷 자고, 실컷 먹고(항상 실컷 먹는 편이지만), 실컷 글을 써볼 생각입니다. 다른 스케줄이 더이상 생기질 않길 빌지만 이러다 언제 또 자격증병 도질지 모릅니다.

ㅠㅠ드디어 200회네요... 정말 감회가 새롭긴 합니다. 이러다 300회까지 가는건 아닌지 염려스럽지만 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300회든 뭐든 반드시 완결까지 갑니다. 그러니 끝까지 봐주세요.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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