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189화 (189/236)

< -- 인터뷰를 하다. -- >

아마도 내가 불편해 하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하긴 베테랑 기자라고 하던데 자신이 인터뷰할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최혜정은 나와 좀 더 편안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근처의 커피숍으로 걸음을 옮겼다.

힐을 신은 최혜정은 내 뒤를 따라왔고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또각또각 소리를 들으며 커피숍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구석자리를 찾아서 자리를 잡았다.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던 최혜정은 내 맞은편이 아닌 옆에 앉았다. 내가 놀라 움찔거리자 최혜정이 입을 열었다.

"곧 촬영팀이 도착할 겁니다. 자리를 비워두려구요."

"통화하셨나요?"

"네 방금 전 문자가 와서 저도 연락해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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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에게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최혜정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커피숍 안으로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이 들어왔다. 남자는 가방을 하나 둘러매고 있었고 여자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최혜정은 그들을 보고 딱히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우리를 금방 알아보고는 나와 최혜정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막 먹고 오는 길입니다."

보아하니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 김밥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운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거기에 대해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며 그 둘을 앉도록 했다.

"상당히 미남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여기서 간단히 몇 장 찍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역시나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인지 맞은편에 앉은 지은숙이라는 여자는 카메라를 들이대기 전에 먼저 칭찬을 했다. 옆의 남자는 커피숍 안에서 촬영이 가능한지 주인에게 물어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잠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남자가 주인이 흔쾌히 허락했다면서 채광이 잘 드는 자리로 옮기자고 말했고 지은숙은 여기저리 둘러보다가 가장 중앙의 자리로 자리를 옮겨갔다. 나는 그 들의 뒤를 따라 갔다.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최혜정은 소소한 내 일상에 대한 질문을 했다.

딱히 인터뷰라고 생각되지 않는 내용이라 나는 편안하게 답했고 남자는 하얀 반사판을 들고 내 얼굴에 빛을 비추고 있었고 지은숙은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기서 인터뷰를 끝내는 건가요?"

궁금증을 참다 못한 내가 최혜정에게 질문을 하자 최혜정은 지금은 그냥 워밍업이라면서 편안하게 마음을 먹으라고 대답해 주었다. 얼마간 사진을 찍은 두 남녀가 환타지아로 가자고 말했고 최혜정은 두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최혜정이 했고 계산을 끝내고 나가려고 하자 커피숍의 주인이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최혜정은 장소협찬으로 이름을 올려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커피숍을 나왔다.

걸어서 환타지아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환타지아 무리들이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눈에 보일정도로 굳어진 사무직원과 떡대들의 등을 툭툭 쳐 주었고 그 중 아무렇지도 않은 넘버투를 보면서 인사를 하고는 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촬영장비를 잔뜩 들고 들어오던 촬영팀 중 남자는 넘버투의 제지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최혜정이 꼭 필요한 인원이라면서 넘버투를 설득하고 나서야 우리 네명은 내 방으로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앉으세요."

내가 소파를 가리켰고 지은숙은 카메라를 들고 방 곳곳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았다가 최혜정의 손짓에 그녀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가 내게 질문지를 건네 주었다.

"한번 보세요. 어려운 내용은 없죠?"

"네"

"대충 답안도 적어봤어요."

그랬다. 최혜정은 내가 답했을 만한 답변을 미리 적어왔다. 그리고 내게 내밀고는 다른 곳은 고쳐달라고 했다. 내가 몇 자 그적거리며 고치는 동안 카메라가 나를 찍기 시작했다.

"영일씨 여자친구 있어요?"

"네?"

갑자기 인터뷰의 질문에 없는 말을 묻는 최혜정에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여기 질문지에 없는데요."

"질문지에 있는 내용만 얘기하라는 법은 없어요.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이상형은 어떤 여성인가요?"

어떤 여성이었더라... 예전에는 이상형이라는 것이 있었다. 키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약간 통통해서 볼륨감이 있고 그렇지만 팔, 다리는 날씬하고 새하얀 피부에 허리까지 찰랑대는 웨이브 머리스타일... 이왕이면 귀엽고 애교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정도의 외모면 된다고 생각해 왔었다.

'지금은?'

딱히 이상형이랄 것이 없어졌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떤 여자라도 그 여자만의 매력이 숨겨져 있었다.

보기에는 외모가 조금 모자라 보인다거나 혹은 성격이 좀 아닌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굉장히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누가 좋고 누가 싫다 딱히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고... 굳이 따지자면 모든 여자가 매력적이라고 해야 할까?

'뭐야?'

나 이렇게 되면 이상한 건가?

뭐라고 말해야 하지?

"특별히 이상형은 없습니다. 여자들은 그 나름대로 다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럼 여자라는 것 자체만으로 이상형이라는 말인가요?"

'흐음'말이 그렇게 되나?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내 말에 최혜정과 지은숙은 픽하고 웃었고 촬영팀의 남자는 인상을 썼다.

"최영일씨는 아무래도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주의인가 보네요."

"네?"

"한마디로 바람둥이 과라는 거죠."

"어째서 말이 그렇게 되는 건지..."

"차라리 이상형이 확실한 사람은 그 외에 여자에게는 별로 관심을 안 갖는데 최영일씨는 모든 여자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니 그 매력을 찾으려고 항상 관심을 기울일 거 아니예요? 그런 게 바로 바람둥이죠. 거기다가 그 매력을 찾게 되면 반할 테고."

"그게 그렇게 해석되나요?"

"그럼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은 여성을 좋아하세요?"

"그야 당연히......"

"당연히?"

내가 말을 끝맺지 못하자 최혜정이 눈썹을 올리면서 내게 물었다.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은 여자를 좋아했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딱히 없었다. 아니 사실 있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기는 좀.... 벗기기 편한 옷.

왜냐면 항상 여자와 만나게 되면 결국엔 섹스로 끝이 나니까 이왕이면 그 중간과정이 편안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면 좋으니까. 하지만 딱히 그런것도 아니었다.

스키니진을 입고 있던 이유진도 좋았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던 백진아도 좋았고 단추가 잔뜩 다린 옷을 입고 있던 수진이도 좋았다.

"벗고 있는게 가장 좋죠."

나름 농담조로 말한다고 한 것인데... 이크... 셋다 굳어버렸다.

"아니 이건 농담인데..."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덧붙인 내 말에 억지로 웃음을 지은 최혜정이 입을 열었다.

"진담인데요 뭐."

"아닙니다. 진짜."

'진짜'뭐 완전 진담이라고?

앞에 앉은 여자는 능구렁이 스무 마리 이상이 속에 있을 것 같은 베테랑 기자인데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 아놔 진짜... 최혜정은 억지로 분위기를 쇄신해서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나도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답을 했다.

언제 어떻게 사진이 찍히고 있는지도 모를만큼 인터뷰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은숙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 옷 말고 다른 옷도 준비 되어있죠. 갈아입어 주실래요?"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장에서 상의와 바지를 꺼냈다. 지은숙은 그 중 하얀 셔츠로 갈아입도록 했다.

내가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냥 여기서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뭐 상의정도야 상관없지 싶어서 나는 옷을 벗고 있었다.

내가 옷을 벗고 나자 세 사람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나는 천천히 상의를 벗어 옆으로 던지고 하얀색 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그대로 있어요."

내가 단추를 잠그려고 하자 손을 들어 막은 지은숙이 내 옆으로 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설마'벗은 사진도 찍은 건 아니겠지?

한참을 셔터를 눌러대던 지은숙이 옷을 입어도 된다고 허락했고 나는 서둘러 단추를 잠궜다. 그리고 다시 최혜정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여기 적힌 거 말고요?"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적혀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보답하겠다는 대답이 떡하니 적혀 있었는데 최혜정은 다시 내게 물은 것이다.

"여기 적힌 건 인터뷰에 대한 답변이고 전 최영일씨의 진짜 생각이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우선은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꿈이 소박하시네요."

"그런가요?"

"그럼 두 번째는 뭔가요?"

"네?"

"우선이라고 하셨으니 그 다음도 있을 거잖아요."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알려드리죠. 개인적인 소망이라서 말입니다."

"그럼 대충 인터뷰는 끝난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혹시 저녁에 시간 되시면 저녁식사 대접하고 싶은데요."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거 저녁을 먹으면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할까요? 전 괜찮은데 은숙씨는 어때요?"

"이제 인터뷰 끝난 거죠?"

"네"

"야 그럼 말까. 징그럽다. 난 좋지만 아무래도 사진을 확인해 봐야할 것 같아서 말이야. 최영일씨 저녁 초대는 다음에 다시해 주세요. 그때는 시간 내서 가도록 할게요."

"네 편한데로 하세요."

그렇게 촬영팀은 돌아갔다. 나와 최혜정이 밖으로 나오니 모두들 퇴근하고 원장과 넘버투만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최혜정과 나, 그리고 원장은 저녁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겼고 넘버투는 쌍둥이들이 부른다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일식집으로 들어가 앉은 내 옆에 최혜정이 앉고 건너편에 원장이 앉았다.

나는 상의를 벗어 최혜정의 허벅지를 덮어주었고 그녀는 고맙다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원장님도 조만간 인터뷰 스케줄 잡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한번 시간 내 보죠."

"이번에는 사모님도 같이 인터뷰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건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마음대로 스케줄을 잡을 수 없으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 주세요."

"네 그렇도록 하겠습니다."

역시나 그냥 저녁식사가 아니었다. 어쩌면 최혜정은 이런 것을 노리고 저녁을 같이 먹겠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부터 같이 있었지만 자세도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고 화장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였다.

올림머리 스타일도 잔머리 하나 나오지 않은 상태 그대로인 것을 보니 자기 관리가 철저한 여자인 것 같았다.

"최기자님은 항상 변함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제가요?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

"당연히 칭찬입니다."

원장과 최혜정이 그렇게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나는 말없이 회를 먹기 시작했다.

"술도 한잔 하시죠?"

원장의 말에 최혜정은 선선히 승낙의 대답을 했고 나에게는 묻지도 않은 원장은 곧 술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술을 가져오자 원장은 최혜정의 잔을 채워주었고 최혜정은 원장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자작을 했다.

저녁을 먹으러 오자고 한 사람은 나인데 어떻게 된 것이 둘만 대화를 하고 술도 나눠 마시고... 왠지 나는 덤으로 딸려온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술을 한잔 두잔 마시던 최혜정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던 몸가짐도 약간을 허술한 느낌이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취기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멍충대마왕님, 애독자C님, 블로우스트님, 장료님 감사드립니다. 다음편은 달립니다.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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