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휴가 -- >
백진아는 돌아가기 전 나에게 다음 촬영에 같이 가자고 했다.
물론 그냥 같이 가는 것이 아니고 헤어디자이너로써 스타일링을 책임지기 위해 같이 가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2주 정도 해외로 촬영을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던 차에 내가 방학이라 잘 되었다면서 괜찮다면 같이 가자고 요청했다. 바로 수락하고 싶었지만 환타지아에 매인 몸이니 먼저 원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2주 정도는 상관없을 것 같다는 대답을 듣기까지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아니'결국 이렇게 보내줄 거면서 왜 그리 뜸을 들인 거야?
그냥 듣고 나서 잘 갔다와라고 하면 되지... 한참을 뜸을 들이다 대답을 하는 원장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대신 이미 예약 당겨서 끝내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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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설마'2주치 예약을 당겨서 끝내놓으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 설마가 맞았다. 나는 그날부터 2주치 예약을 당기거나 늦춰서 정리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 전부 예약을 늦추려고는 하지 않고 당겨서 스타일링을 한다고 하는 바람에 진땀을 빼야만 했고 그런 후 그럭저럭 소화 안 되는 몇몇 예약을 넘버투에게 넘기고서는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말이 2주간의 출장이지 해외로 떠나는 휴가나 다름 없었다.
거기다 백진아와 함께라니 이런 일 저런 일도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해외여행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 같았지만 별달리 준비할 것은 없었다.
괌으로 간다는 말에 옷을 꺼내어 짐을 싸고는 여권을 확인해보았다. 지난번 일본에 다녀올 때 10년 짜리 여권을 발급 받아 두었기에 그걸로 해결이 되었고 비행기를 포함하여 모든 교통편과 숙박은 촬영팀에서 해결을 해 준다니 옷하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여비만 준비하면 끝이었다.
백진아와는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백진아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해서 같이 가게 되었지만 그런 표현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정중한 매니저의 말을 전해 들었다.
'하긴'괜히 잘 못하다가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큰일이니까.
하지만 좀 아쉽기는 했다. 백진아와 이런 일 저런 일 나름 계획이랍시고 세워보았었는데... 결국 대놓고 그런 일은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괌으로 떠나게 되어 너무나 좋았다.
공항에 새벽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팬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아는 것인지 공항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백진아의 팬들을 지나쳐 공항 안으로 들어가 촬영팀과 합류했다.
"오셨네요."
"네 백진아씨는 아직인가요?"
"아닙니다. 이미 도착해 안 쪽 라운지에서 커피 마시고 있습니다."
내 옆으로 다가와 인사를 하는 매니저를 보며 묻자 이미 도착해서 안 쪽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했다. 그럼 저 밖의 팬들은 뭐지? 내 표정을 보고 안 것인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진아 팬인데 진아가 타는 비행기 시간을 몰라서 그냥 기다리고 있는 것 같네요."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백진아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갈 팬들을 생각하니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촬영감독이라는 사람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나와는 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총 책임자라고 하니까. 나를 한참 위 아래로 쳐다보던 감독은 신인이냐고 물어왔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내가
'네?'
라고 반문하자 옆에 서 있던 매니저가 백진아의 전속 헤어디자이너로 온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나는 명함을 꺼내 촬영감독에게 건네 주었다.
"네 그렇군요. 그럼 같이 잘해봅시다."
내 등을 두드리고 촬영감독은 사람들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촬영 스케줄에 대한 사전 회의를 갖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니 나는 라운지 안쪽에 있다는 백진아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테이블 앞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 있는 백진아가 보였다. 반가워 손을 올려 인사를 하려다가 백진아 옆에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뭐야?'
쟤네들... 백진아 옆에 앉아 다정하게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남자는 참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쟤는'일명 국민 남동생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녀석백진아에게 누나라면서 애교 있게 말을 건네고 있는 녀석을 보자 순간 못 볼 것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아씨 저 왔어요."
그리고 나는 백진아와 몸을 섞은 이후 한번도 한적이 없던 존댓말로 백진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 왔어요."
어색한지 백진아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대답을 했고 곧 내게 손짓해서 자신의 옆에 앉도록 했다. 나는 냉큼 백진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커피 마실래요?"
"네"
백진아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커피가 나오자 시럽을 넣어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마셔요."
나는 백진아가 내미는 잔을 들고는 시원하게 쭈욱 마셨다. 안 그래도 갈증이 났었는데 달콤한 아메리카노가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런 나를 보던 녀석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진혁이라고 합니다."
"최영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진혁이 내민 손을 힘주어 잡고 흔들면서 내 소개를 했다. 그리고 손을 놓으려고 했더니 이진혁이 손에 더욱 힘을 주더니 입을 열었다.
"진아누나와 CF를 찍게 되어서 기대가 큽니다. 저 해외 촬영은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긴장 되네요."
'뭐시라'내가 물어봤냐?
"네 그러시군요. 저도 이렇게 해외 촬영팀에 합류한 것은 처음이긴 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것 같은데 말 편히 하시죠."
그래 국민 남동생의 나이가 20살이라고 했던 것 같긴 하다. 그렇다면 분명 나보다 어릴테니 말을 놓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어차피 2주간 계속 봐야하는데 편하게 지내면 좋지."
알고 보면 밖에 있던 팬들 이진혁 팬인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유난히 여자애들이 많은 것 같더라니.
나는 손에 힘을 주어 잡으려는 이진혁의 손을 왼손으로 밀어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백진아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번엔 다행히 평소와 같은 반말이 나왔다.
"그 모자랑 선글라스 좀 바꿔라. 매번 그것만 하고 다니니까 팬들한테 들키는 거잖아."
"안 들켰거든요."
"밖에 팬이 쫙 깔렸던데 뭘."
내 말에 차마 자기 팬이 아니라는 말은 할 수 없었던 건지 백진아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백진아의 선글라스를 벗겨내었다.
"왜 민낯이야?"
"비행기 안에서 잘건데 귀찮게 화장은 왜 하겠어요."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공인이."
내 말에 샐쭉한 표정이 된 백진아가 내 손에 있던 선글라스를 뺏어 쓰고는 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친근한 우리 둘을 번갈아 보고 있던 이진혁이 입을 열었다.
"두 분 무슨 사이세요?"
"헤어디자이너와 손님 사이."
내가 얼른 대답을 하고는 백진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백진아가 보였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덕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헤어디자이너세요?"
"환타이아에서 근무해."
"와 전문가시구나. 저 오늘 헤어스타일 괜찮나요?"
'뭐'별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웃어주었을 뿐이다.
내 웃음에 쑥스러워진 것인지 이진혁은 자신의 머리를 한번 만지더니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홀짝였다. 백진아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두 남자 중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은 상태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그런 백진아 쪽으로 돌아앉아 커피를 마셨다. 얼마 뒤 괌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분은 3번 게이트로 오라는 방송이 나오자 백진아와 이진혁의 매니저가 와서 가야할 시간이라면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케리어 하나와 간단히 매는 가방을 가져왔던 터라 내 가장을 들고는 그들을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비행기로 올라타는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가방을 검사하고 네모난 검색대를 지나고 여권을 확인하고 그리고 비행기로 오르기 위해 설치된 복도를 걸어서 들어가자 다시 한번 티켓을 확인받고는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휴'절로 한숨이 나왔다.
딱히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환타지아와 학교에서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많은 환경에서 오랜기간 생활하다보니 남자가 바글거리는 촬영팀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30명 쯤 되는 인원 중 여자라고는 겨우 셋이었다.
그 중 하나가 백진아였다. 그러니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거기다 촬영팀 중에 내 쪽으로 가까이 와서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뭔가를 하는 건지 엄청 바빴다.
그나마 한가한 사람은 백진아와 이진혁, 그리고 나 뿐이었다.
"주세요."
눈을 접으며 곱게 웃던 스튜어디스가 알겠다면서 곧이어 메뉴판을 가져왔다. 딱 둘뿐인 메뉴였지만 나는 비빔밥을 선택했다. 이제 곧 괌에 가면 2주간 먹기 싫어도 스테이크나 서양요리를 원 없이 먹게 될텐데 여기서부터 칼질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친절한 말투와 웃을 때마다 예쁘게 휘어지는 눈을 가진 스튜어디스는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우선은 배가 고프니까 비빔밥부터 먹고 보자 싶은 내가 얼른 밥을 비벼서 입에 넣기 시작했다.
비빔밥을 모조리 다 먹어치우고 나서 고개를 드니 내 옆에서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자리를 바꾼 것인지 백진아와 이진혁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 둘의 매니저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국민 남동생이 아니라 국민 작업남인가?
사이좋게 밥을 먹고 있는 둘을 보다가 멀리 있던 스튜어디스를 손짓해 불렀다.
"이것 좀 치워주세요."
"후식 준비해 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시원한 물 한잔만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튜어디스가 가져온 얼음물을 마시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구름 사이를 뚫고 날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뭉개 구름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몇장 찍고 나서 얼짱 각도로 얼굴도 찍고 나서 폰을 집어넣고는 책을 꺼냈다. 책이라고 해봐야 비행기에 비치되어 있는 잡지이긴 했지만 말이다.
겨우 그런 잡지였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니 잡지이기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은 건지 모르지만 암튼... 백진아와 이진혁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도대체'뭔 이야기를 하는 건지 서로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이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저러다가 스캔들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러는 거야?
비행기라는 공간 안은 어쨌든 둘만의 개인적인 공간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억지로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떠야만 했다.
바로 괌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부산하게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당연히 캐리어를 꺼내고 가방을 꺼내 메고는 복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아까 식사를 가져다주었던 스튜어디스가 보이길래 살짝 윙크를 하고는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와아'날씨가 진짜 끝내준다.
아니 끝내주게 덥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헉헉 거리는 일행은 다행히 준비되어 있던 차에 바로 오를 수 있었다.
나는 백진아와 이진혁과는 떨어져 스타일리스트와 메이컵아티스트 들과 같이 한 차에 올라탔다. 그 둘이 그나마 일행 중 있는 여자 셋 중의 두 명이었다.
여자 둘과 같이 차에 올라타자 그 중 메이컵아티스트가 나를 아는 체를 했다. 아마도 이번 촬영을 위해 섭외된 인원 인 듯 했다.
"혹시 최영일씨 아니세요?"
"맞습니다."
"반가워요. 전 윤가인이라고 해요."
나름 유명한 그녀에게 내가 아는 체를 했고 그 이후 차안의 우리 셋은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관심사가 비슷하다보니까 대화가 잘 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그 둘은 이미 촬영컨셉이라던가 의상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해 둔 모양이었다. 스타일리스트가 이번 촬영 중 두 스타의 토플리스 컷이 있을거라는 말을 했고 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헤어스타일이라면서 설정해둔 스타일이 있냐고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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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 안했으면 완전 민망할 뻔 했네요...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