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근 -- >
드디어 손님이 나를 지명했다. 보통 헤어디자이너들을 예약손님을 받는데 나는 오늘부로 출근을 한 터라 예약이 되어 있을리 없었다.
손님이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방으로 먼저 들어간 나는 방안을 쭈욱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사진이 걸린 사진을 봤는데...'헐'이거 뭐야?
예전 잡지에 났던 그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셔츠 단추가 다 풀어 헤쳐져 있고 바지의 버클도 열려 있고 팬티의 위의 부분까지 드러나 있는... 심지어 손가락이 팬티의 위에 있어 마치 금방이라도 벗어 재낄 듯 보이는 그 사진이 말이다.
언제 바꾼 걸까? 분명 지난주에 왔을 땐 이 사진이 아니었는데.. 그럼 오늘?
설마 이걸 출근 선물로 준 것은 아닐테고... 그렇게 잠시 사진을 보고 있는 사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17 쪽231얼른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당겨 열었다.
나를 선택해준 손님의 얼굴은 내 기억에 없었다.
"이쪽으로 오셔서 앉으시겠습니까?"
"군 생활이 별로 힘들지 않았나봐."
"네?"
"얼굴이 더 좋아졌어."
'당연히'더 좋아질 수밖에... 매일 누구 집에서 호의호식하면서 마음껏 섹스도 즐기고 있으니 혼자 옥탑방에서 지내던 때와는 다르게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본 적 있으세요?"
"어머 왜 이래? 나 기억 안 나?"
'네'라고 대답을 하면 뺨을 맞을 것 같은 분위기 였다.
"더 예뻐지셔서 못 알아봤습니다."
라는 말은 시간을 벌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그래? 안 그래도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대답을 하는 손님을 보다가 누군가가 떠올랐다. '설마'아니겠지?
그럴 리가?
그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아무리 봐도 혼자 오버하는 기색이 예전에 나를 강간했던 진상손님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은.... 뭐야? 그새 따 뜯어 고친 거야?
"어떻게 해 드릴까요?"
"사실 제대했다는 말 듣고 나 바로 달려온 건데. 군대 갔다 오면 그것도 좀 튼튼해진다고 하더라고."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듣고 왔는지 모르지만 우선은 보게해 줄 생각도 없을뿐더러 박아줄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 그만 꿈 깨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동안 쌓인 내공 덕에 얼굴에 영업용 미소를 띠고는 의자로 손님을 데리고 갈 수 있었다.
"환타지아 안에선 삽입 불가입니다. 아시잖아요?"
"알지. 그럼 오늘 저녁에 만날래?"
선선히 안다고 말하는 뽐새가 더 수상했다. 거기다 만날래라니... 미친...
"제가 요즘 좀 바빠서요."
"그래?"
손님의 머리를 만지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혹시 나한테 견습생 중 추천해줄 만한 사람 있어?"
나는 바로 5번방을 추천해 주었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그 방은 바로 영대의 방이었다.
그 뒤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타일링을 끝냈고 만족스러워 하면서 손님은 방을 나갔다. 진상을 부릴거라는 생각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탓인지 손님이 나가고 나자 소파에 털썩 누워 버렸다.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고 있으려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얼른 몸을 일으켜 소파에서 일어섰다. 문이 열리면서 넘버투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시간 좀 내."
시간 있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시간을 내라니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여는데 넘버투가 손을 들어 입을 막더니 말을 이었다.
"지난번 내 부탁 들어준다고 했었잖아."
"알았어요. 시간 낼게요."
넘버투는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는 뒤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손님 너 출장예약하고 가던데."
'아씨'진짜 뭐야? 군대 제대하고 오자마자 첫 손님이 저런 진상 손님이라니.. 완전 짜증나는 얼굴로 넘버투를 보고 있자 넘버투가 잘해보라는 말을 던지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차마 백진아와 통화를 할 수는 없어서 오늘 늦는다는 내용의 문자를 백진아에게 보내고는 다시 소파에 누워 버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손님이 내 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손을 열심히 움직여야만 했다. 당연히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손님에게 페니스를 물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전은 그렇게 페니스를 세 번정도 빨리고 나니 지나가버렸고 점심은 비가 오는 관계로 환타지아 근처의 칼국수집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폰에서 진동이 느껴져 주머니에서 꺼내서 확인을 하니 오후에 촬영을 나가서 밤늦게 오거나 어쩌면 내일 돌아올 것 같다는 백진아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칼국수집을 가니 역시나 넘버투가 좋아라하면서 주문을 했고 환타지아 무리들도 별말 없이 칼국수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나도 간만의 칼국수라서인지 후루룩거리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니 먹으려고 했다. 내 건너편의 테이블에서 커플 한쌍이 서로에게 칼국수를 먹여주고 있던 모습을 보지만 않았었다면 분명 맛있게 칼국수를 먹어치웠을 것이다. 그런데 내 건너편의 테이블에 앉은 커플은 딱 붙어 앉아 칼국수를 먹여주면서 서로를 주무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모습을 보니 식도로 넘어가던 칼국수가 그만 목에 턱하니 걸려버렸다.
아무리 봐도 재수 없는 광경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젓가락을 놓고는 물컵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왜 그만 먹냐?"
내 맞은편에 앉은 넘버투는 평소의 절반을 겨우 비운 내 그릇을 보더니 물었다. 나는 눈짓으로 넘버투의 뒤를 가리켰고 넘버투는 뒤돌아 그 모습을 보고 나더니 칼국수를 집어 내 입가로 가져왔다.
"부러우면 말하지 그랬냐?"
'아 진짜'내가 부러워서 이런 거 아니거든. 하지만 넘버투가 연신 입 앞에서 칼국수를 흔들어 대는 통에 칼국수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타지아로 돌아와 버렸다. 바로 내 방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넘버투의 엽기적인 사고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얼마 뒤 방으로 들어온 넘버투가 나를 보더니 머리가 아프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오늘 돼지껍데기 먹으러 가자."
"알겠습니다."
"너 그리고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구는 거야? 군대에서 그렇게 가르쳤어?"
군대가 학교도 아니고 가르치긴 뭘 가르치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무직원이 넘버투에게 손님이 왔다면 밖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이만 가볼게."
어떻게 군대를 갔다와도 넘버투 하나 이길 수 없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난 곧 방으로 들어오는 손님의 스타일링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내 방에 손님이 몇 번 들락날락 거리고 나자 퇴근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손님이 진한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왔던 탓에 페니스에 층층이 생긴 립스틱을 지우기 위해 소파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물티슈를 손에 쥐고는 페니스를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는 넘버투와 그 외 다수의 인원이 우루루 방안으로 들어왔다.
"뭐하냐? 만담 중이었냐?"
놀란 내가 페니스를 얼른 바지 안으로 넣으려다가 그만 털 몇 가닥이 지퍼에 끼이고 말았다.
"아악"
넘버투 뒤로 보이던 효식이가 내 쪽으로 쪼로록 뛰어와 방방 뛰면서 어떻게 해를 연발했고 넘버투는 그냥 나두라면서 효식이를 옆쪽으로 밀어버렸다. 나는 과감하게 지퍼에 낀 털을 빼내길 포기하고 힘차게 지퍼를 올려버렸다. 지퍼에 걸린 털이 뽑혀져서 걸려 있었지만 나는 곳 앞섶은 툭툭 털면서 소파에서 일어섰다.
"만담한 거 아닙니다."
"그럼 뭐? 손장난 했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러십니까?"
"아 됐고 그만 나가자."
들어올 때처럼 우루루 밖으로 나가는 무리를 보며 저 인간들과 같이 술을 마시게 될 내 처지가 안쓰러웠지만 나는 방을 한번 둘러보고 바닥에 떨어진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원장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고 나는 원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 밖으로 나왔다.
건달 마냥 넘버투와 그 무리들이 바지 앞주머니에 손을 넣고 환타지아 앞에서 건들거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일이 나왔다. 가자."
앞장서서 가는 무리의 뒤를 따라 걸어가다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생각났다. 술을 마시면 대리를 불러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돼지껍데기집 앞이었다.
넘버투가 돼지껍데기를 주문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현성이 형은 돼지갈비를 주문해도 돼냐고 넘버투에게 물었고 넘버투는 그런 현성이 형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나중에 네 돈 내고 사먹어."
"아 진짜 그냥 좀 시켜 먹게 해줘요."
넘버투의 째림에 풀이 죽은 현성이 형이 곧 한쪽 구석으로 찌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꼭 나만 넘버투에게 당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헤어디자이너들도 그렇지만 심지어는 원장까지 구박을 하는 넘버투였으니까. 대단한 내공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인 듯 싶었다.
"넌 어떻게 휴가를 와도 환타지아에 한번 들리지 않았냐?"
'그야'당연히 환타지아에 와서 노는 것보다는 백진아랑 노는 게 더 재미있었으니까 그런 거지.
"바빴으니까 그렇죠."
"그래? 그런데 백진아랑은 잘만 돌아다니더니만."
'헉'알고 있었나? 어떻게?
"너 지난번에 백진아하고 같이 있는 거 봤거든. 온다고 해 놓고 비상 걸려서 휴가 못 나온다고 했던 그 때 말이야."
'그때라면?'
휴가 나온 동안 한번도 환타지아를 방문하지 않자 넘버투의 협박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었고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휴가를 나가서는 휴가 못 나간다고 뻥쳤었던 그때를 말하는 건가?
"너 백진아하고 무슨 사이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휴가만 나오면 백진아하고 같이 보냈냐?"
어떻게 그걸 알았지?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놀라서 얼빠진 모습으로 넘버투를 보고 있자 넘버투가 씩 웃으면서 내 쪽으로 그 새 만들 폭탄주를 밀어주었다.
"올해 국수 먹을 수 있는 거냐?"
"네?"
"국수 말이야, 국수."
국수라는 말을 알아들었지만 도대체 왜 넘버투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그 국수가 내가 생각하는 그 국수가 맞는 건가?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결혼이라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상황이라 나는 더 당황해 버렸다.
"아니요. 앞으로 5년 이내는 저 때문에 국수 드실 일은 없으실 겁니다."
"진짜?"
"네"
넘버투는 나를 보면서 껄껄껄 웃더니 잔을 들어 올렸고 나도 엉겁결에 폭탄주 잔을 들어 올려 부딪치고는 완샷했다. 잔을 내려놓고 나자 금방 내 잔은 다시 폭탄주로 채워졌다.
간만에 마시는 넘버투표 폭탄주는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었고 점점 술을 마시는 속도가 빨라졌다. 한동안 술이라고는 입에 대지 않았던 탓에 내성이 약해진 것인지 다섯잔 정도 마시고 나니 취기가 돌았다.
몸에서 열이 나고 머리가 띵해졌던 것이다.
"뭐야? 벌써 그만 마실 거야?"
"취한 것 같아서 그만 마실게요."
잔을 채우려는 넘버투의 손길을 막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빙그레 웃은 넘버투는 내 손을 밀어내고 기필코 잔을 채워 주었다.
"뭐가 걱정이야? 너 주정 다 아는데 취해도 알아서 잘 데려다 줄게."
'어딜?'
데려다주겠다는 말이야? 설마 백진아 집으로? 그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채워진 잔을 애써 무시하면서 잘 익은 돼지껍데기를 먹기 시작했다. 쫄깃쫄깃하게 잘 익은 돼지껍데기 하나를 집어 입에 넣다가 그 뜨거움에 혀가 데일뻔하자 나도 모르게 앞에 있던 폭탄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나자 이렇게 된 거 그냥 실컷 마시자는 생각이 들어서 넘버투가 채워주는 잔을 거부하지 않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난 죽도록 후회해야만 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애독자C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비밀이야~님, 성미카엘님, smone님, 멍충대마왕님, 장료님, 앙큼한총각님, 이비앙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이 바로 만우절.... 이지만 딱히 이벤트는 준비 못했네요.. ㅠㅠ대신 전 오늘도 열필합니다.
오늘도 즐감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