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212화 (212/236)

< -- 출근 -- >

그렇게 백진아가 가고 난 후 할 일 없이 집안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였다. 폰에 원장의 번호가 찍힌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쉰지 딱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네 최영일입니다."

[영일군 내일부터 출근하세요.]'헐'이럴 거면 왜 전화를 했대? 그냥 문자나 보내고 말지.

단 세 마디만 하고 끊어진 폰을 노려보다가 내려놓고는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사도우미는 일주일간 오지 말라고 말해 놓은 상태였고 나는 알아서 밥도 먹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했다.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니 가사도우미도 출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문자를 남기고 나서 심심해진 나는 방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17 쪽233사실 그동안은 백진아와 같이 있었기에 방을 살펴보기보다는 다른 일로 바빴었고 삼일간 집에 있으면서 방을 살펴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방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사실 삼일간 쉬기는 했지만 집에 있었다기 보다는 학교 동기들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때웠던 터였다. 우선 내가 있는 침실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성스러운 침대는 흰색의 캐노피가 드리워져 있었고 가구들이 모두 하얀색 일색이었다. 분홍색인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백진아라면 흰색보다는 정열적인 붉은색으로 침실을 꾸밀 것 같았는데 순백의 색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대 위에는 여러 가지 화장품이 놓여 있었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굉장히 고가의 화장품들이었다. 하긴 연예인이라면 얼굴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투자를 해야겠지.

침실과 바로 연결된 곳을 바로 욕실이었다.

두 군데로 구분되어 있어서 목욕을 하는 곳과 변기와 세면대가 있는 곳이 따로 구분 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옷방이 있었다. 욕실과의 사이에 있는 옷방에는 간단하게 입을 옷과 수건이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바로 옆방이 옷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마어마했다. 옷 뿐만이 아니라 가방, 신발과 액세서리까지 없는게 없었다.

커다란 서랍장을 열어보니 속옷이 잔뜩 들어있었다. 얼핏보니 깃털이 보이길래 꺼내보니 깃털이 몇 개 연결되어 있는 브래지어와 팬티였다.

이건 가리는 것보다 보여주기 위한 속옷인듯 보였다. 그런데 이 속옷을 언제 산거야?

나는 입은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백진아가 돌아오면 꼭 입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랍에 넣고는 문을 닫았다. 옷방을 나와서 부엌에 갔다.

부엌은 가사도우미가 지내는 곳이라서 잘 가지 않았었는데 들어가보니 없는게 없었다. 몇일 집에 있는 동안에도 집에서 밥을 먹지 않고 밖에서 사먹었기에 부엌을 찬찬히 둘러볼 일이 없었었다.

부엌과 바로 붙어 있는 식당은 자주 이용해 봤기에 패스하고 곧바로 부엌 뒤에 있는 다용도 실을 열어보았다. 세탁기와 빨래건조기가 있었고 잡다한 무언가가 잔뜩 놓여 있었다.

2층을 살펴보기 위해 계단으로 걸어가는데 폰이 울렸다.

"네 최영일입니다."

[저에요. 저녁 먹었어요?]'벌써'저녁 먹을 시간이 된 건가?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7시가 넘은 상태였다.

"아직 안 먹었는데"

[나는 막 저녁 먹는 중이예요.]

"바쁘지?"

[네 엄청 바빠요. 거의 잠도 못자고 촬영을 하고 있으니까 다행히 일주일보다는 빨리 끝날 것 같아요.]

"그래 보고 싶다. 빨리 와"

[나도 보고 싶어요. 피곤하지는 않아요?]피곤할 리가 없지 출근도 안하고 삼일 내내 팽팽거리고 논데다가 평소 내 체력 고갈의 원인인 백진아가 옆에 없으니 잠도 푹 자고 쉬니까...

"피곤해. 네가 없으니까 잠이 잘 안온다."

[.... 가능한 빨리 갈게요.]백진아와 통화를 끝내고 나서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지갑을 챙겨들고 집밖으로 나갔다. 혼자 밥을 먹기 싫어서 여기 저기 전화를 해 봤더니 다들 약속이 있다고 하는 바람에 나는 그냥 근처의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로 하고 터덜터덜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연신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내 뒤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주문하고 신문을 펼쳐 읽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고 음식을 보자 갑자기 허기가 느껴진 나는 후루룩 거리면서 음식을 먹어치웠다. 밥을 먹고 밥값을 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입이 심심해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바를 하나 사서 먹으면서 걸어 올라가는데 역시나 아까처럼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처럼 뒷통수가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씨'뭐야?

설마 스토커인가?

하지만 딱히 나한테 스토커짓을 할 인간도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와 커다란 TV로 뉴스를 보다가 내일 출근해야하니 일찍 자자는 생각에 간단히 씻고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아'진짜 백진아 보고 싶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풍만한 가슴하고 따뜻한 속살이 그리운 것이지만... 어쨌든 그것도 백진아의 일부분이니까.

그렇게 침대를 뒹굴면서 백진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떠올려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일찍 누웠지만 한참을 누워있었던 터라 늦잠을 잘 뻔했지만 내 옆에 따뜻한 백진아가 만져지지 않자 저절로 잠이 깨었다. 벌써 이게 사일째 이런 식으로 깨어났다지...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가서 씻고 나와서 옷을 챙겨 입고 차키를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아침은 요 아래 토스트집에서 간단히 해결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토스트집에 긴 줄이 서 있어서 그냥 아침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움직이는데 건너편에서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가 보여 김밥을 두줄 사서 운전을 하면서 하나씩 집어먹었다.

김밥을 새벽에 싸가지고 나온 것인지 생각보다 맛있었다. 환타지아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넘버투는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출근하 듯 보였다. 원장이 나를 손짓해 부르기에 얼른 원장 쪽으로 다가갔다.

"영일군 늦지 않았네요. 오늘부터 열심히 해주세요."

"네 그런데 원선생님은 오늘 안 오시나요?"

"원선생은 오늘부터 휴가이니 신경 쓸 거 없어요."

이제 봤더니 넘버투가 휴가라서 나한테 출근하라고 한 모양이다. 어쨌든 일은 해야하니까. 나는 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내 자리에 가서 섰다. 아침구호를 외치고 다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효식이가 나를 졸졸 따라왔다.

"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요."

"괜찮아. 다 지난일인데. 그리고 네 잘못도 아니잖아."

"그래도....."

"그럼 너 나한테 좀 맞을래?"

효식이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뇨 안 맞을래요. 저 때리시게요?"

"자꾸 죄송하다고 하니까 때리고 싶잖아."

효식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에 만족하며 효식이를 방에서 쫓아냈다. 효식이가 나가자마자 바로 손님이 들이닥쳤다. 넘버투가 휴가를 가서 나는 마음 편하게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손님이 오늘 따라 많았다.

"어머 이게 누구야? 지난번에 찾으니까 군대 갔다고 하더니."

"네 지난주에 제대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어?"

'아놔'벌써라니?

누구는 하루가 일년 같은 날들을 보내고 왔는데... 벌써라는 말에 '욱'하고 뭔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웃으며 손님의 스타일링에 열중했다.

"군대 갔다 왔는데도 실력은 죽지 않은 모양이네."

다행히 만족스러워하면서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을 하고 손님이 나갔고 나는 진이 빠져 소파에 앉아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역시 참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막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뭐야?'

점심시간이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환타지아 무리들이 카운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오늘 점심 뭐 먹어요?"

"모르겠는데 원장님 아직 안 나오셨어."

"원장님 같이 가신데요."

"응"

현성이 형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고 나도 그 무리들에 끼여 카운터 근처에서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넘버투 이야기가 나왔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심정이 된 내가 조심스럽게 넘버투가 휴가 간 일에 대해서 묻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가족과 함께 9박 10일로 해외여행을 갔다는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해외여행을 갔다고?"

"엄청 좋아하면서 가시던데요."

그동안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내서 해외여행을 가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원장이 휴가가 너무 길다고 쉽게 휴가를 주지 않은 덕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하고 이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의기소침해 있자 원장이 해외여행 다녀오라고 금일봉까지 주면서 휴가를 보내주었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뒷꼴이 땡기면서 머리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그러니까 결국 내가 넘버투의 해외여행에 일조를 한 거야.

물론 내 잘못이 있긴 했지만 그것을 기회로 삼는 넘버투의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것으로 더 이상 넘버투가 나를 구박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해물탕을 먹으러 갔다.

나는 밥이 나오는 음식이라면 뭐든 상관없었기에 가서 맛있게 먹고 환타지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후부터 손님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오전에도 손님이 없진 않았지만 오후에는 잠시 앉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밀어닥쳤다. 어지간하면 손님에게 페니스라도 물리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오죽하면 원장조차 쉴 새 없이 손님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겨우 퇴근시간이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축 늘어져 피곤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무리들이 퇴근시간이 되니 다시 생생해졌다.

그들 중에 나는 포함이 안 되어 있었다. 어차피 집에 가봐야 백진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사일째 쌓여 있는 욕구를 풀고 싶은데 그것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술은 사고 친 기억이 나서 마시고 싶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카운터 옆의 대기석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왜 이러고 있어?"

"너무 피곤해서요. 손님이 엄청나던데요."

"그렇지? 요즘 안 그래도 원장님이 방을 좀 더 늘려야 하는 거 아닌지 걱정하시더라."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잔 하러 갈래?"

"싫어요. 당분간은 술을 꼴도 보기 싫을 것 같아요."

"하긴 야 그럼 우선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그렇게 현성이 형과 시호형 그리고 나는 간만에 셋이서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의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원선생님 금방 화 푸셔서 다행이다."

화를 풀었는지 안 풀었는지 알게 뭐야? 나한테 연락도 안하고 나오라고 할 때까지 출근하지 말라고 한 것이 끝이었는데.

결국 화가 풀렸음에도 나한테는 아무말도 안 했다는 거잖아.

괜히 쫄아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뭐 이제 해결된 일을 가지고 더 이상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려고 간 것이었는데 결국 나는 현성이 형의 권유에 못 이겨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조절하면서 마시고 있었기에 많이 취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현성이 형은 클럽에 가자고 나를 꼬셨고 제대한 이후로 세모클럽을 한번도 가지 않았다는 생각에 우리 셋은 세모클럽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입구에서 나를 본 떡대가 반가운 척을 했다.

아직까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좀 놀란 나를 보더니 이사님은 지금 안 계시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최근 클럽을 몇 개 더 늘려서 관리하는 터라 한 곳을 계속 지키고 있지 못하지만 12시가 넘으면 들리실 거라면서 그때 소식 알리겠다고 말해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룸으로 들어갔다. 술은 기본으로 주문하고 주문한 술이 채 나오기 전에 현성이 형에게 질질 끌려서 홀로 나가야만 했다.

'진짜'형 나이 생각 좀 해라 고 한마디 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는 현성이 형 옆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의외로 클럽 물이 좋았다.

예전에도 그다지 물이 나쁘진 않았지만 오늘은 유달리 헐벗은 언니들이 많았기에 꼭 춤을 안 추더라도 눈이 즐거웠다. 현성이 형은 필 받았는지 한참 흔든다고 옆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구경만 하다가 슬쩍 홀에서 내려가려고 옆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내 앞을 막아섰다. 피해서 가려고 하니 이번에도 내 앞을 막아선 사람을 보기 위해 내가 시선을 주자 웬 헐벗은 여자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내 앞에 서 있었다.

몸매도 그런대로 봐줄만 하고 얼굴도 뭐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서 홀에서 내려가려던 마음을 접고 그 여자와 같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몸을 흔들면서 슬쩍 몸을 터치해 오는 걸로 봐서는 나 원나잇 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이거 참'저절로 굴러 들어온 복을 차버릴 수는 없지.

여자의 엉덩이로 손을 내려 더듬어 대는 대도 오히려 내 쪽으로 몸을 붙여 오고 있었다. 말이라도 걸어볼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성이 형이 내 손을 낚아채더니 덥다며 한잔하고 오자고 나를 잡아 당겼고 나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현성이 형에게 질질 끌려서 룸으로 돌아와야 했다.

"형 나 여자랑 같이 춤추고 있는 거 못 봤어요?"

형은 나를 보고 피식 웃더니 나와 같이 춤 춘 여자 원나잇할 것처럼 하고는 남자 돈지갑 들고튀는 것이 특기인 여자라면서 구해준 걸 고맙게 여기라고 말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가을을나는자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성미카엘님, 비밀이야~님, 멍충대마왕님, 이비앙님, smone님, 해동풍님, 앞에서찌른다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죠 영일이도 좀 있으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열심히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도 즐감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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