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223화 (223/236)

< -- 약혼식 -- >

도대체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설마 수진이 때문에.... 내가 덮친 것도 아닌데... 설마 나한테 수진이를 떠넘기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원장님 부르셨습니까?"

"거기 앉아요."

"이미 다른 헤어디자이너들한테도 다 설명을 하고 얘기를 해 본 일이지만 영일군에게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불렀어요."

무슨 일인데 분위기를 잡는 거야?

다른 헤어디자이너들에게까지 얘기를 한 것이라면 수진이 얘기는 아닌게 분명한데... 휴 살았다. /18 쪽244

"편하게 말씀하세요."

"영일군 개인적으로 바쁜 시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러니까'그만 뜸 들이고 말을 하라고.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야?

"제 아내가 세라장인 것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요?"

'에엑'당연히 알고 있지. 날 새대가리로 아는 거야 뭐야?

"네 알고 있습니다."

"영일군이 군대 입대할 무렵 제 아내가 운영해 오던 달나라의 지방에 분점을 내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냈었어요. 그런데 그 분점이 생각보다 영업실적이 저조해서 한참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엔 문을 닫게 되었네요."

"그런 일이 있으셨어요?"

"영일군은 군에 있느라 전혀 소식을 몰랐겠지만 그일 때문에 돈의 융통에 문제가 생겨서 이번에 환타지아를 내놓을까 생각 중이에요."

"네?"

내가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원장이 지금 뭐라고 한 것야?

"혹시나 영일군이 환타지아를 인수할 생각 있나요?"

환타지아를 인수하다니.

내가?

하고 싶긴 하지만....

"인수라니요 그럼 얼마 정도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두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영일군이 인수를 하겠다고 하면 조금은 생각해줄 수 있어요."

두 장이라면.

도대체 얼마라는 말이야?

그보다 너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원장방을 나왔다. 내가 벌어놓은 돈이 있다고 해도 이런 빌딩을 인수할 수 있을만큼은 아니고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좋은 기회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가 환타지아의 원장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핑크빛 미래가 촤르륵 펼쳐질 것만 같았다. 내 방으로 온 나는 손님을 받으면서도 오전 내내 고민을 했다.

내가 하겠다고 덤벼서 될 일인지 그게 아니면 그냥 포기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을 하느라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만난 현성이 형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서 환타지아의 지금 상황에 대한 소식을 물어보았다.

정말 나만 모르고 있었던 소식이었던지 어렵지 않게 현성이 형의 입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달나라의 서울 분점은 하나같이 잘 되었지만 지방에 낸 분점은 생각했던 이하의 매출과 심지어는 미용실이 들어선 곳의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영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것은 달나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큰 타격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 원장은 수진이와의 일로 환타지아의 존속에 대해 한참이나 고민을 해오고 있었던 터라서 상황만 된다면 환타지아를 넘버투에게 넘기기를 원했지만 극구 거절하면서 거부하는 넘버투를 포기하고 결국에는 현재 환타지아에서 일하고 있는 헤어디자이너 중 원한다면 환타지아를 넘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정도의 빌딩을 인수할 만큼의 여력을 가진 헤어디자이너가 없었던 것이고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저택 하나 정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돈만 가지고는 택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수진이가 한국에 들어온 것도 이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수진이는 환타지아를 자신이 물려받길 원했지만 문제는 환타지아에 여자 원장이 있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이었다. 직원조차 여자를 쓰지 않는데 원장이 여자라는 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경우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우선 원장에게는 생각해 보겠다고 해 놓은 참이었다.

내가 군에 가 있는 동안 부모님께서 로또라도 맞았을 수도 있으니까.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한이 있더라도 환타지아를 인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오후엔 손님이 밀어닥쳐 너무 바빠서 부모님께 연락을 할 만한 시간이 없었고 퇴근시간이 되자 백진아가 퇴근하는 즉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 말이 떠올랐기에 우선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따끈한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던 백진아는 내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실로 밀어넣었다. 욕실에서 씻고 부엌으로 나갔더니 저녁 뿐 아니라 술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웬 술이야?"

"축하할 일이 있어요."

"축하?"

"나 이번에 새로 영화 찍어요. 약혼식 하고 나서 시작할 것 같아요."

"그래 잘 됐네."

우선 저녁을 먹은 후 백진아가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 들고 생각해 보니 술을 마시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할 것 같았다. 정신이 온전할 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서 백진아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후 침실로 들어왔다. 백진아는 나를 따라 침실로 들어왔다.

"나 전화할거야."

"내가 들으면 안 돼요?"

'아놔'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설마 기다리라고 해 놓고는 수진이한테 전화할거라고 생각한 건가?

"안 되긴, 돼 거기 앉아서 잘 들어."

통화 버튼을 누르고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예요."

[잘 지내고 있지.]

"그럼요."

[진아도 잘 지내고 있냐? 이제 좀 있으면 약혼식이지. 혹시 시간 나면 그 전에 한번 내려와.]

"약혼식 전에는 바빠서 좀 힘들 것 같긴 하지만 진아한테 한번 물어보고 괜찮으면 가도록 할게요."

[밥 잘 먹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알았지?]

"네 어머니 그보다 좀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뭔데 말해봐.]말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무리 부모 자식 지간이라지만 역시 돈 얘기란 하기 힘이 든 것이다.

"집에 돈 좀 있어요?"

[좀 있지. 집 사려고? 얼마나 필요한데.]

"집이라기 보다는 어쨌든 건물을 사려고 하는데 한 이백억 정도."

[... 이백만원?]

"아니요 이백억요."

내 말에 수화기 넘어로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소리로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이억정도는 있다라고 대답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다가 알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 옆에 가만히 앉아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백진아가 내 쪽을 보면서 물었다.

"어떤 건물을 사려는 거예요? 사실 집은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집을 사려는 게 아니라. 암튼 그런게 있어. 돈이 없으면 못 사는 거지 뭐."

"그러니까 뭘 사려고 하는 거예요?"

"환타지아."

"네?"

"환타지아 말이야. 이번에 원장님께서 내놓으시겠다고 하시더라고."

백진아는 내 말을 듣고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런 백진아를 일으켜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에서 간단히 술을 한잔씩만 마시고는 나는 거실로 나갔다. 오늘은 정말 술을 마실만한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백진아도 마찬가진지 더 이상 마시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실로 나가 TV를 켜고는 최근에 새로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왜 요즘 드라마는 하나 같이 막장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가끔씩 드라마 얘기를 하는 손님들도 있기에 한번 보자라는 생각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드라마 재미있어요?"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눈을 감고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몸은 굉장히 피곤하고 눈도 뻑뻑하니 아픈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신은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왜 이렇게 잠이 안 오지?

술을 딱 한잔만 마셔서 그런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일어나서 술을 마시는 건... 아무래도 몸이 안 따라줄 것만 같다. '휴'잠이 안 오면 그냥 눈 감고 쉬자.

잠시 후 백진아가 밖으로 나갔다.

당분간 페니스가 아파서 섹스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해 두었더니 백진아도 조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는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백진아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해서 나는 가장 먼저 원장의 방을 찾아갔다. 아무리 해도 내 형편상 환타지아를 인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을 하자 원장은 섭섭해 하는 듯이 보였지만 어쩔 수 없다며 다른 인수자를 찾아야겠다고 했다.

사실 환타지아를 인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 원장이 환타지아를 내놓았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지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이 바뀌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힘없이 원장 방에서 나왔다. 뭐 원장이 바뀐다고 해도 당장은 무슨 일이 생길 것도 아니고 정 안 되면 달나라로 옮기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침구호를 외치고 내 방으로 들어가면서 환타지아 무리들의 눈치를 보니 다들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는 원장조차도 별다른 고민이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소파에 앉았다. 왠지 힘이 빠지는 하루였다. 하지만 조금 후 들어온 손님 때문에 난 곧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하러 왔다고 의자에 앉아 놓고는 어느새 내 바지앞섶을 더듬는 손님의 손길을 피하느라 곤욕을 치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안 된다고 하니 비싸게 군다며 도대체 어떻길래 이렇게 비싸게 구는 거냐고 따지는 통에 머리끝까지 열을 받았다.

어떻게 하루를 보낸 것인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서 퇴근을 할 무렵 원장이 방을 나오면서 기쁜 듯이 웃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니'저 인간은 지금 환타지아가 넘어가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오나?

사실 환타지아에 애정이 있는 것으로 따지면 나보다 원장이 더할텐데 어떻게 지금의 상황에서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언제 원장을 이해해 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한번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다가 실수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실컷 까이기나 했지.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지금부터라도 진짜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여태껏 제테크 같은 것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는데 그 제테크라는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막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려는데 백진아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시내에 나와있다고 하면서 같이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하길래 그러자라고 대답한 후 차를 두고 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가서 백진아가 알려준 음식점으로 들어가자 백진아와 함께 지윤경이 같이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엄청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죠?"

백진아에게 소식을 들어서 알텐데도 굳이 나에게 묻는 지윤경에게 잘 지냈다며 대답을 해주었다. 뷔페 형식의 샐러드 바가 있는 레스토랑이어서 지윤경이 음식을 가지러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끌고는 샐러드바 쪽으로 걸어갔다.

"진아 언니가 잘 해줘요?"

"당연하지."

잘 안해준다고 해도 잘해준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물어보는 심보는 뭘까?

요즘도 바빠서 정신이 없다는 얘기를 하더니 지윤경은 뒤를 슬쩍 돌아보다가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설마?'

백진아가 수진이하고 있었던 일을 지윤경에게 말한 걸까?

그럴리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코멘트 달아주신 애독자C님, 이비앙님, 앞에서찌른다님, 비츄형연참해주세요님, 장료님 감사드립니다.

오늘 간만에 술을 한잔 하고 취중 연재합니다.... 혹 오타나 문맥이 이상한 곳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럼 즐감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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