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9)

* * *

그 후로 얼마간, 범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점심때가 다가오면 가슴이 쿵쿵 뛰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범진은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말았던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다행이겠지만. 선재는 점심시간만 되면 확인하듯 창문을 열어보곤 했다. 그때마다 사람도 자동차도 없는 좁은 골목만 덩그러니 나 있을 뿐이었다. 길 끝을 쳐다봐도 사람 한 명 걸어오는 경우가 없었다.

선재는 요 며칠,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계속해서 기도를 해오고 있었다.

범진이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 빌었던 게 통하는 걸지도 몰랐다.

다른 건 그럭저럭 참겠지만 아이에게도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무의미한 기도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될 수 있으면 그가 점심을 걸렀으면 했고, 집을 찾지 않길 바랐다. 그렇게 우연적으로 하루 통하는가 싶던 기도가 일주일 정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선재는 틈만 나면 눈을 감고 오늘도 안 오게 해주십시오, 하고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적응은커녕, 지금은 주변이 어떤지도 제대로 모른다.

동네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또 범진 같은 깡패를 안 만나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것도 알파인 깡패를. 사람들이 얼마 살지 않는다면 특수 성별 자체도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데, 기껏 제대로 본 사람이 범진 한 명뿐이고, 그 한 명이 알파라는 게 합당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선재가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잘 노는 준희를 쳐다봤다.

점심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좀 더 놀다 아마 잠이 들 듯했다.

아이가 아, 우아, 하는 소리를 내며 선재를 쳐다봤다. 작은 손에 들린 장난감은 폐업 직전인 그 마트에서 산 것이었다.

선재는 시계를 확인한 뒤 준희 곁으로 갔다.

아이는 선재를 쳐다보며 몇 번 웃어주더니, 천천히 내려오는 눈꺼풀에 고개를 까딱거렸다.

“한숨 자고 놀자.”

에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자장가 음을 읊어준 선재가 아이의 작은 가슴팍을 손으로 살살 쓸어주었다.

손에 들려 있던 장난감이 이불 위로 소리 없이 떨어졌다.

선재도 준희의 옆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눈두덩이 점점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범진이 매일같이 찾아오고 있었다면 이렇게 졸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

얼굴을 얼마간 안 봤다고 마음이 이렇게 풀어질 줄이야.

선재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채로 같이 잠이 들었다.

아.

얕고 짧은 꿈이 지나갔다.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꿈이었다. 깨고 보니, 꿈은 아닌 것 같았다.

현실과 꿈을 헷갈려하며 깨어난 선재가 문 쪽을 바라봤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단열재는 좋은 걸 썼던 모양이지만 방음은 엉망이었다. 범진이 건물 밖에서 행패를 부렸을 때도 바로 옆에서 소리를 듣는 듯했는데, 지금도 여러 명이 계단을 밟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있었다. 선재는 문을 쳐다보며 그래도 사람이 살긴 했나 보다고 안심했다.

건물에 사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한 탓에 반가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쿵쿵.

잠시 아이를 바라보던 선재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쿵쿵. 하는 소리가 나자 선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옆집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도 있었다.

범진이 문밖에서 발로 문을 차면 늘 이런 소리가 들렸는데.

선재는 방문을 열고 나가, 현관문을 지켜보았다. 또 쿵쿵, 하고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문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앞으로 다가간 선재는 현관문 밖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다.

범진은 아닌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문밖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났다. 범진 외의 인기척을 느끼고 좋아한 게 몇 초 전이었다. 선재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검침원이나 옆집 사람이라기엔 비웃음 소리가 너무도 컸다. 거기다 여러 명이었다.

“….”

선재도 그때부턴 누구냐 묻지 않았다.

다음 소리는 거실 창밖에서 들렸다. 자동차 엔진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재는 차 소리 한 번 못 듣다가, 커다랗게 울리는 소음에 거실창 쪽으로 걸음을 옮겨 아래쪽을 쳐다봤다.

반쯤 열려 있던 창문에 몸을 붙였을 때, 낯선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는 위쪽을 보며 연기를 뿜다가 선재와 눈을 마주쳤다. 후, 연기를 날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범진도 아니고, 기억 속에선 누구도 출력해내지 못했다. 선재는 창문을 닫고 현관문 쪽으로 돌아가,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을 했다. 도어락도 그렇고, 문고리의 잠금쇠도 단단히 잠겨 있는 채였다.

“으이.”

말도 아닌 듯한 희한한 음성이 선재의 귓가를 때렸다. 일부러 위협하기 위해 내는 소리 같이도 들렸다.

대답을 하려던 선재의 입을 가로막은 건 또다시 들린 문밖에서의 음성이었다.

“민선재 씨 댁입니까.”

“…네. 맞는데요.”

갑자기 툭 떨어진 질문에, 선재도 뜸을 들이긴 했지만 급히 대답했다. 뭐지? 아직 주소도 옮기지 않았다. 처음엔 이곳에서 오래 살 마음이 있었지만, 갈수록 확신하지 못하게 돼서 전입신고를 계속 뒤로 미루던 참이었다. 대체 이름이랑 집은 어떻게 알고…. 혹시 범진과 관련된 사람들일까. 긴장으로 굳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맞으면 우리 좀 봐야겠는데?”

“…누구신지 말씀부터 해주시죠.”

문 앞엔 한 사람만 서 있는 게 아니었다. 씨발, 뭐라냐, 하는 소리와 낄낄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가는 게 들렸다. 빌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를 포함하면 최소한 넷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안 열면 불리할 건데…? 집 문제입니다.”

주로 말하는 남자는 사투리도 표준어도 아닌 말을 구사했다. 생각해보면 범진도 말투가 비슷했다. 어디서 살았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따위가 전혀 유추되지 않는 특유의 억양. 멋대로 악센트를 넣고, 기꺼우면 부드럽게 말을 했다.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주셔야 문을 열죠.”

“우리는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은데.”

기분 나쁘게 웃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일부러 더 크게 웃는 것 같았다. 선재는 범진만큼 수상한 사람들이 등장해 머리가 슬슬 아파 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로 한숨을 쉬었다.

툭툭, 문과 정면으로 선 남자는 약한 발길질까지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뻥 차버리겠다는 듯이. 선재는 제발 큰소리는 나지 않길 원했다. 문을 연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체인을 건 탓에, 문은 일부만 열렸다. 한 뼘 정도 열린 문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역시나 초면이었다. 남자는 문이 그만큼 열리자마자 하아, 하고 입김을 냈다.

“이야, 정 없으시네.”

“말씀하세요.”

“우리가 왜 이러고 얘기를 합니까. 여기 들어온 건 그쪽인데.”

아까부터 이 남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넙데데한 얼굴에 이목구비는 날카로운 편이었다. 얼굴 곳곳에 작은 상처와 흉터가 나 있는 게 범진을 떠올리게 했다. 남색 셔츠 차림이었는데, 얼핏 보인 팔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건장하다는 느낌보단 뚱뚱하단 느낌이 먼저 들었다. 나이는 또래 같았다.

“제 집에서 무슨,”

“이게 어떻게 그쪽 집이세요. 백성우 알지?”

선재가 문고리를 잡은 채로 멈칫했다. 남자는 그사이에 문밖에서 문을 세게 잡아당겼다. 체인이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알긴 아는데, 이렇게 하진 마시죠.”

미간을 좁힌 선재가 끊기기 일보 직전인 체인을 내려다봤다.

“생긴 거에 비해서는 깡이 있으시네.”

남색 셔츠가 말을 꺼내자, 문 뒤에 서 있던 남자들이 줄지어 웃었다. 웃음만 들어도 대화를 하려고 온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선재가 문을 닫으려 힘을 줬다.

“어허.”

남자는 체인을 끊어버릴 듯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선재도 힘을 줬지만, 뚱뚱한 남자의 완력을 이겨내기는 무리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체인이 곧 끊길 듯 아슬아슬했다.

“백성우 알면 문 여십쇼. 후회한다.”

“….”

선재는 남자를 쳐다봤다. 겉보기에 무섭다는 감상은 있지만 그래도 백성우의 이름이 나온 이상, 들어야 할 말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이 틀려먹긴 했지만 원래 그런 사람들인 것 같았고, 이 집에 오면서 불안했던 이유를 남자가 하는 말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한참 가만히 있던 선재가, 그럼 잠깐만 문을 닫게 해달라고 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열어주게? 하고 묻는 말에 선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말했다.

선재는 문을 닫은 뒤, 식탁 의자에 걸려 있던 카디건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남자들은 총 셋이었다. 아까, 건물 밖에서 자신을 쳐다봤던 남자가 제일 어린 듯했다.

“용건이 뭡니까?”

선재는 부러 딱딱하게 말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

“그쪽이 뭘 말할 처지는 아냐.”

남색 셔츠가 비실비실 웃었다. 인상을 찌푸린 선재가 작게 기침했다. 아마, 앞에 있는 남자 셋 중 하나가 알파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범진만큼 독한 향기는 나지 않았지만 맡기 좋은 냄새도 아니었다.

“우리가 백성우랑 거래를 했어요.”

“….”

뚱뚱한 남색 셔츠를 쳐다보던 선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질렸다.

“여기가 백성우네 집안 명의로 된 건물인데.”

“….”

“우리는 여기 포함해서 이 골목에 있는 건물들 다 빈집 만들어 놔야 돼.”

“….”

“…근데 우리 민선재 씨가 이 건물에 들어왔네?”

“….”

백성우, 이후로는 전혀 모르는 말들이었다. 뭘 어쩌라는 건지도 몰랐다.

“근데 다른 새끼들처럼 내쫓진 않을 거예요. 왜냐,”

가만히 있던 선재도 그땐 입을 열었다.

“저는 백성우…가 여기 주소 알려줘서 온 거고,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집 비울게요.”

“으음.”

“알겠으니까 오늘은 가주세요.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선재가 최대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말 안 끝났는데.”

“….”

“우리 선재 씨, 백성우 얼마나 알아? 알면 개새끼인 것도 알겠네.”

“….”

“그 새끼가 우리한테 선을 자주 넘었었어. 이 건물 가지고.”

“….”

“그 새끼 목을 따든지… 그 새끼 애미 목을 따든지 하려고 했지. 우리는.”

더는 태연한 반응을 못 하던 선재가 눈만 움직여 남색 셔츠를 쳐다봤다. 어떤 기분인지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집에 있는 준희가 떠오르자 눈앞마저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목을 딴다니. 당최 현실감이 있는 말인가. 날씨가 많이 풀려 완연한 봄 날씨 같았지만, 복도는 서늘한 편이었다. 선재는 그 공기 때문에도 얼굴이 더 굳어가는 걸 느꼈다.

“근데 백성우가 갑자기 뇌물 겸 보상 겸… 선물을 준다고 했거든?”

“….”

“그 선물이 민선재 씨인 거 어떻게 생각해.”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선재는, 이런 일과 당연히 무관한 삶을 살았다. 죽은 남자가 했던 말이 왜 계속 떠오르는지 몰랐다. 근본도 없는 집. 이렇게 안 하면 널 지킬 수 없다고 했던 남자. 선재는 갑자기, 남자가 왜 죽었는지를 떠올렸다. 혹시 사고가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당장은 그런 생각을 깊이 할 새가 없었고.

“서른둘이라고 들었는데 상태 괜찮네.”

다가온 남색셔츠가 커다란 얼굴을 코앞으로 들이미는 게 보였다.

“너무 좆같이 생각하진 마셔…. 왜냐면 우리랑 구른 년들 나름 다 잘 살다 뒤졌거든.”

뒤에 있던 남자들이 변태처럼 히죽였다. 지금 와서 보니 모든 게 다 잘못됐다. 이음매가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선재가 손을 뒤로 하고 계단 난간을 짚었다. 남색 셔츠 뒤쪽에 서 있던 남자들이 신이라도 난 듯 한마디씩 얹었다.

판때기 좋네요, 왼쪽에 서 있던 남자가 한 말에, 맨 끝에 서 있던 남자는 크게 웃었다. 빈 건물이라 그런지 소리가 웅웅 울리고 있었다. 선재는 무슨 말이든 하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고 싶었다.

준희 때문에라도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연 순간,

“저는 아무런 상관….”

남자들의 눈이 다른 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건물 입구 쪽이었다.

남색 셔츠가 허리가 굽을 정도로 인사하자, 나머지 두 남자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뒤를 돌아본 선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빌라 입구에 서 있는 건 범진이었다.

“뭐 하냐….”

범진은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선재를 쳐다보고, 나머지 세 사람을 차례로 한 번씩 훑었다.

“제가 답사 한번 와 봤습니다.”

범진은 말이 없었다.

“오메가 들어온 지는 꽤 됐는데, 형님도 말이 없으시고. 원래 공동 소유지 않습니까.”

공동 소유? 선재는 남색 셔츠가 하는 말에서 어떤 단서라도 잡으려 노력했다. 뒤돌아 범진을 쳐다보던 선재는 남색 셔츠가 범진을 향해 말을 했을 때부턴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제가 노리개 정도로 이곳에 왔다는 것 정도였다. 뭐든 좋은 의미로 제가 이곳에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백성우의 호의를, 아이 때문이라고 여겨버린 자신이 한심했다. 준희가 알파인지 오메가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퍽, 선재는 갑자기 들린 충격음에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두 남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가려다 말고, 또 다가가려다 말았다.

다시 퍽, 하는 소리에 선재의 고개도 뒤로 돌아갔다.

“….”

범진이 침을 팩, 뱉는 게 보였다.

그 앞엔 남색 셔츠가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을 저리 만들었을 줄은 몰랐다. 선재는 다시 앞을 쳐다봤고, 옆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엔 동상처럼 몸을 굳혔다.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선재를 지나쳐 두 남자 앞에 선 범진은 그들의 뺨도 한두 대씩 치기 시작했다.

“조오-은 거 배운다.”

범진은 실실 웃으며 남자들의 뺨을 때렸다. 장난하듯 말하지만 퍽, 하고 들린 소리는 굉음에 가까웠다. 분명 손바닥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소리는 주먹질 못지않았다. 근처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선재가 조금씩 옆으로 피해 계단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 좋드냐? 씹창이 니는.”

범진은 사람 이름을 아예 씹창이라고 불렀다.

씹창이라고 불린 남자는 와중에도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닌 이름이 뭐냐고, 다른 남자에게 물은 범진은 그때까지도 남자들의 뺨을 번갈아서 계속해서 쳤다. 결국, 침과 피가 그들의 입에서 줄줄 흘렀다. 선재는 거기까지만 보고 아예 고개를 돌렸다. 집에 들어갈까,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았다.

“저 돼지 새끼 저거 아직도 못 일어나네.”

손을 한 번 올렸다가 뒤를 돈 범진이 남색 셔츠를 쳐다봤다.

“어? 못 일어난다고.”

화살은 다시 남자들에게로 돌아갔다. 손으로 퍽, 내리치자 남자들의 몸이 휘청댔다. 누구든 자세를 잡기가 무섭게 매서운 손이 가격됐다. 퍽, 퍽, 때리며 범진이 입을 열었다.

“너거 오야지한테 확인도 안 하고 냅다 들이대냐.”

“아… 아윽….”

“대답은 새꺄.”

범진이 퍽, 뺨을 다시 치자 한 남자가 고꾸라졌다. 옆에서 그걸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핏물을 튀기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외쳤다.

“이 새끼 막 눕네. 이거.”

셔츠에 피가 튀는데도 범진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흘끔거리며 보고 있던 선재가 몸을 아예 벽면에 붙였다. 눈앞이 역해 구토라도 나올 성싶었다. 범진이 누워있던 남자를 향해 발길질이라도 하는 것 같자, 최대한 상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도 신물이 올라오는 느낌에, 선재의 눈이 있는 힘껏 감겼다.

범진이 그런 선재의 등을 한 번 쳐다보고 킁, 하는 소리를 냈다. 한참을 밟고 괴롭히다가 한 발짝 물러섰다.

안 가냐, 하고 돼지 새끼 데리고 가란 말도 잊지 않았다.

선재의 뒤로 뭐가 쓱쓱 쓸리는 소리들로 가득 찼다. 남자 둘이 지나간 복도엔 핏자국만 남게 되었다. 구두 밑창으로 그걸 몇 번 비비던 범진은 셔츠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인상을 쓴 채로 연기를 빨아들였다.

“형님.”

벽만 쳐다보고 있던 선재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뭐라고 그라던데요.”

“….”

“에이, 씹. 귀에 문제 있어요.”

범진의 눈은 다른 곳에 닿아 있었다. 뜻 없이 내지르는 걸 아는데도, 선재는 몸이 떨렸다.

“…어, 저.”

무작정 입을 연 선재가 범진 주변에 떨어지고 번진 핏자국들을 보고 침을 삼켰다.

“뭔 말을 하다가 마냐.”

“그냥….”

“그냥?”

“내가 잘못해서… 여기… 오해가 있었고….”

선재는 말을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다. 단어가 머릿속에서 아무렇게나 표류하는데, 그걸 되는 대로 잡아 엉성하게 잇게만 되었다. 후, 하고 연기를 입구 쪽으로 날린 범진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병신년이.”

빨간 호를 그리고 있던 담배 한 개비가 돌계단 쪽으로 날아갔다.

“앞장서십셔.”

범진이 턱짓을 하며 선재의 팔을 앞으로 끌었다. 선재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다리가 후들거려 중심을 잘 잡을 수 없었다. 난간을 잡고 천천히 오르는데, 범진도 그걸 따라서 오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침만 삼키던 선재가 난간 위에 올리고 있던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해야만 떨림이 멈췄다.

한 걸음 걸어 올라가면, 뒤쪽에서도 터벅,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2층엔 금방 다다랐다. 도어락 앞에 선 선재가 비밀번호를 감출 생각도 않고 눌렀다. 범진의 눈이 번호판에 닿은 걸 알면서도 그랬다. 좀 있다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숨기면서 눌러 범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진 않았다.

선재는 집으로 들어가 카디건도 벗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점심때는 아니지만, 범진과는 밥 먹은 기억밖에 없었다.

“밥 차리게요.”

“어, 밥, 네가.”

말은 여전히 모래알이 입에서 툭툭 튀는 것처럼 어색하게 나왔다.

그것도 잠시. 범진이 느릿하게 걸어오는 것 같자 하던 말도 멈추게 되었다.

남색 셔츠가 살 때문에 옷이 터질 것 같았다면, 범진은 근육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셔츠 자락에 선이 생겼다. 무표정하게 걸어오는 범진을 스치듯 쳐다본 선재가 싱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릇을 꺼내고, 다짜고짜 숟가락도 그 위에 얹었다.

“형님 부탁 좀 해도 됩니까.”

선재가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이거 좀 빨아줬으면 하는데.”

“….”

범진이 만지고 있는 건 이미 불룩해진 바지 지퍼 부근이었다. 분명 부탁이라고 했는데, 범진은 부탁의 의미도 모르는지 벨트부터 풀고 있었다.

“할 거면 무릎 꿇으세요.”

턱으로 앞을 가리킨 범진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선재가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게 자리를 내줬다.

선재는 뒤를 짚고 있던 손으로 아까처럼 주먹을 쥐었다.

눈으론 범진과 굳게 닫힌 방문을 번갈아서 훑었다.

곧 드로어즈 밖으로 나온 성기는 시퍼런 핏줄에 휘감긴 채 발기해 있었다. 입술 끝을 문 선재가 범진과 눈을 마주치고 뒤쪽에 있던 손을 내렸다.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과, 무섭다는 감상이 동시에 들고 있었다. 성기는 알파의 성기답게 아래쪽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기도 했다. 언뜻 눈으로 그쪽을 바라본 선재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뚜렷한 의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보다 좋은 차악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범진은 무릎을 꿇고 손을 제 무릎 위에 올린 선재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일부러 자지를 꺼덕대며 움직이자, 선재의 미간도 같이 움찔거렸다.

입꼬리 한쪽을 씩 올린 범진이 선재의 턱을 잡고 위로 들었다.

“벌리야 넣지.”

“….”

선재는 범진의 말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와중에도 발기 중인 성기가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입술과 코를 툭툭 치는 성기에, 선재가 결국 천천히 입을 벌렸다. 부드러운 입술이 귀두 끝에서부터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범진이 입맛을 다시며 선재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뭐.”

범진의 성기 끝을 문 채로, 선재가 눈을 들었다.

“사탕 빱니까.”

얼굴 한쪽이 일그러진 범진이 선재의 눈에도 들어왔다. 범진은 그러면서도 선재가 위쪽을 쳐다보는 게 좋은지, 머리에 있던 손에 자꾸 힘을 줬다. 고개가 반쯤 꺾인 채 범진의 성기를 입 안에 넣던 선재가 범진의 무릎에 제 손을 갖다 댔다. 앞으로 하체를 내민 범진 때문에 성기가 목구멍을 쳤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점막에선 따가움이 느껴졌다.

범진은 섹스라도 하듯 자지로 선재의 목구멍을 찔렀다. 찔리면 놀란 듯 뒤로 몸을 빼려는 선재를 잡고 다시 찌르며 재밌어했다. 또래 오메가와는 해본 적 있지만 30대인 남자 오메가에게 좆을 물려보긴 처음이었다. 입도 작고 입 안도 좁아서 그런지 성기가 반 정도만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범진이 혀로 아랫입술을 쓸며 선재의 얼굴을 위로 조금 들었다. 목구멍에 자극이 가해진 탓에, 선재의 눈에선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형님이 제대로 안 하니까 내가 움직인다 아닙니까.”

“우읍.”

선재가 뭐라고 했다.

“뭐?”

범진은 좆을 빼줄 생각도 않고 또 뭐라 그랬냐고 물었다. 선재가 우읍, 하는 소리를 내면 아예 좆대가리를 안쪽으로 더 밀어 넣었다. 그럴 때마다 눈을 꽉 감은 선재의 눈가가 희게 질렸다. 범진은 그 눈을 손으로 억지로 벌려 열었다. 위를 쳐다보게 만들었다.

“눈은 씨팔, 왜 감는데.”

선재의 눈이 벌게진 채 범진을 향했다.

“제대로 빠세요, 제대로.”

그 말에, 선재는 넘어가지도 않는 침을 삼켰다. 조금씩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론 범진을 사정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처음 입 안에 넣었을 때가 최대치로 발기한 거라 생각했는데, 범진의 성기는 입 안에서 더 부풀고 있었다. 턱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선재는 범진이 목구멍을 찔렀던 것처럼 얼굴을 느릿하게 흔들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싸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고함을 지르는 얼굴 근육을 내버려 두고, 일단은 입을 작게 조여 얼굴을 앞뒤로 흔들었다. 범진이 찔렀던 지점까지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할 줄 알면서 씨발.”

한쪽 눈썹을 올린 범진이 아래쪽을 빤히 내다봤다. 제대로 할 줄은 모르지만 볼이 쏙 들어갈 정도로 빨아대는 얼굴이 봐줄 만은 했다. 입맛을 다신 범진이 선재의 얼굴을 관찰하듯 유심히 쳐다봤다.

선재는 터질 것처럼 부푼 범진의 성기를 물고 어설픈 고갯짓을 반복했다.

그걸 내려다보던 범진이 씨발, 씨발, 하고 골이 난 듯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성기를 물고 있던 선재의 입에서 침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둔기처럼 커다란 성기였다. 그걸 물고 있자니 입술을 뻐끔댈 때마다 잇새로 침이 흘렀던 것이다. 입 안 살도 씹힌 것처럼 얼얼하게 아프고, 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범진이 잘하네, 하고 희롱 섞인 칭찬을 할 때마다 주먹이 쥐어졌다.

공포심도 있었지만, 어느덧 고개를 든 굴욕감에 모든 감정이 삼켜지고 있었다.

선재는 뺨을 만지고 머리를 만지고, 심지어는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시늉을 하는 범진 때문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표정이 바뀔 때마다 성기에 닿는 느낌이 달라 범진이 만족하는 걸 알면서도 얼굴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한 5분 그러고 있자, 범진이 갈증을 느낀 듯 두 손으로 선재의 머리를 쥐었다.

“형님, 이거 보세요.”

선재가 눈물이 흐르는 눈을 들어 범진을 쳐다봤다.

뺨에 닿은 엄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거길 누르자 얼굴 전체가 아팠다.

“움직여보세요. 옳지.”

범진은 선재가 아무것도 하지도 않는데 옳지, 했다. 선재는 범진이 하는 대로 머리만 앞뒤로 계속해서 흔들었다. 뺨을 누르는 범진의 엄지손가락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 같았다.

시야에 흐리게 보이는 범진의 성기는 여전히 검붉고, 기세 좋게 부풀어 있었다.

입 안에 다 차지도 않는 성기는 거친 가죽으로 둘린 것 같았다. 쓸릴 때마다 입술에 통증이 일었다.

“야, 형님 니 맛있네.”

범진이 성기를 물린 채, 선재의 얼굴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워낙 흉포하게 발기한 성기라 그 정도 들었다고 해서 입에서 빠져나갈 리는 없었다. 선재는 눈을 들고 범진을 쳐다봤다. 어느새 핏대가 조금 선 듯한 범진의 얼굴과 목 부근을 스치듯 지나쳤다.

“씨바꺼, 니, 씹.”

저급한 욕설이 범진의 입에서 나왔다.

선재는 목 끝에 차는 프리컴에도 고통스러웠다. 눈물은 아까부터 계속 흘렀고, 인중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게 콧물도 흐르는 것 같았다.

“가만있으세요.”

범진은 그렇게 말하며 선재의 입에 물렸던 성기를 밖으로 빼냈다.

퉁겨져나온 나온 성기가 위쪽으로 대가리를 한없이 치켜들고 있었다.

범진이 그걸 잡더니 온갖 구멍에서 물이 나오는 선재의 얼굴을 쳐다보며 성기를 흔들기 시작했다.

탁, 탁, 하는 소리가 일정하게 나는 동안 선재는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했다.

범진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눈물은커녕 콧물도 닦지 못하고 범진이 마무리하듯 자위하는 걸 쳐다봐야 했다.

범진은 무식하게 성기를 흔들어대다 선재의 얼굴을 향해 귀두 끝을 내밀었다. 희고 진득한 정액이 선재의 얼굴 위로 사정없이 튀었다.

눈물과 콧물, 땀으로 뒤범벅된 얼굴에 범진의 걸쭉한 정액까지 섞여들었다. 범진은 그걸 감상이라도 하듯 선재의 턱을 들고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눈 근처로 쏘아진 정액 일부가 눈물에 섞여 턱 끝으로 떨어졌다.

* * *

범진은 드로어즈도 입지 않은 채로 여전히 발기한 성기로 주방을 활보했다. 좁아터진 공간이라 눈을 다른 데로 돌리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닦아낸 선재가 아이 몫으로 끓여 놓았던 미역국을 데웠다. 그런 짓을 하고, 범진은 밥부터 먹자는 소리를 했다. 이사 올 때부터 있던 전자제품들은 대체로 기능이 좋지 않았다. 금세 신맛이 나기 시작한 김치를 꺼낸 선재가 벌게진 얼굴을 푹 숙이고만 있었다.

“형님 돈은 좀 썼습니까.”

뒤늦게 옷을 입기 시작한 범진은 여전히 반쯤 발기한 상태였다. 젖은 얼굴을 든 선재가 식탁 옆에 있던 작은 상자를 옆으로 치웠다. 범진이 준 돈은 항상 거기에 두고 급할 때만 사용하고 있었다. 밑에 깔려 부채처럼 펼쳐진 오만원권을 본 범진이 인상을 썼다.

“어이, 이거 쓰라고요.”

“…….”

대꾸는 없이, 선재는 범진을 쳐다봤다. 눈앞이 아직도 안개가 낀 것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범진이 씨발, 뭐. 하고 괜한 시비를 걸었다. 눈을 내린 선재가 미역국을 국그릇에 옮겨 담고 즉석밥도 하나 데웠다. 혹시나 몰라서, 범진의 몫으로 구비해둔 것이었다.

돈은 아직 제 계좌에도 얼마간 생활할 정도는 남아있었다. 미래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당장은 먹고 살기가 가능했다. 상황이 안정되면 일도 곧 할 생각이긴 했다. 범진은 식사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바지에 있던 지갑을 또 꺼냈다. 이번엔 쓰라며 돈을 내미는데, 그때와 비슷한 금액인 것 같았다.

그날보다 적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몇십만 원은 되어 보였다. 선재는 그 돈을 식탁 끝에 두며 범진의 눈치를 봤다.

“형님.”

범진은 자꾸 형님, 형님, 했다.

역한 와중에도 밥을 입에 넣었던 선재가 그 모습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범진이 얼굴을 만지고 누른 탓에, 선재의 얼굴 곳곳이 붓고 빨개져 있었다.

“야, 부어도 볼만 합니다.”

범진은 진심으로 감탄하듯 얘기했다. 이야, 하는 감탄사를 몇 번이나 덧붙였다. 선재는 손을 올려 뺨을 쓰다듬듯 만졌다. 느껴지는 열감이 아까보다 더 심해져 있었다. 눈도 점점 부어올라, 몰골이 말이 아닐 듯했다.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범진에게 별꼴을 다 보였다. 처음에 여덟 살이나 어린 자식한테 무슨 치욕인가 싶었는데, 그건 지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재는 그러면서도 범진의 눈치를 봤다. 범진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좀 이상한 일을 하는 건 맞아 보였다. 집을 찾아온 수상한 남자들에게서 형님, 형님, 소리를 잘도 들었고, 또 익숙한 듯이 굴었다. 나이가 훨씬 어린 것 같았는데도 말이다. 통화를 할 때도 누군가에게 굽히기보다는 늘 명령을 하거나 쌍욕을 하는 입장이었다. 선재는 범진이 보여준 모습들로만 서서히 범진의 전체를 그려내 가고 있었다.

하지 말라거나, 제 상태를 따져 묻기엔 범진이 너무 무서웠다.

“형님.”

밥을 한술 뜨는가 싶던 범진은 또 저를 불렀다.

“응.”

“손 좀 줘보세요.”

커다란 손이 얼굴 바로 아래까지 뻗어 있었다. 선재는 어쩔 수 없이 쥐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에 놓고, 오른손을 커다란 손 위로 내밀었다.

“뭔 씨팔, 멍도 이래 듭니까.”

범진이 선재의 손끝을 잡고 말했다. 선재도 그 손등 상처를 같이 바라봤다. 아까, 범진의 성기를 빨다가 엉덩이가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긴 멍이었다. 푸드덕거리다 식탁 다리에 뼈를 부딪친 흔적이었다.

“손도 씹, 뭐 이래 생겼냐.”

처음에 멍을 얘기하나 싶던 범진은 선재의 손 곳곳을 쳐다보며 감탄했다.

힘이 어찌나 센지 손가락만 잡아당기는데도 팔 한쪽이 통째로 끌려갔다.

“놔.”

아직도 남은 자존심이 있는 것일까? 선재는 딱딱하게 말하는 자신에게서 우스움을 느꼈다.

“형님 좋다고 목매는 새끼들 많았겠다. 그죠.”

손을 놓을 줄 모르는 범진은 엉뚱한 소리만 골라서 했다.

“나도 그렇게 될까 봐 겁나네.”

선재는 한바탕 웃어젖히는 범진의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무표정한 것보다는 분위기가 나았다. 싫고 불쾌한 건 나중 문제였다. 위협을 받을 바에야 이런 말을 듣고 마는 게 차라리 괜찮았다. 선재가 입에 있던 밥알을 오물거리며 씹기 시작했다.

10년 같은 한 시간이 갔다. 남자 셋이 집 앞으로 찾아온 시각으로부터, 겨우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안 갈 수가 있나. 선재는 거실에 있는 작은 시계를 훔쳐보며 범진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힘이 다 빠져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았다.

“씨팔, 내가 뭔 짓 할 줄 알고.”

눈을 좀 느리게 떴다 감았다 했더니 그런 소리를 들었다.

선재는 못들은 체를 하면서도 눈을 똑바로 떴다. 범진이 진짜 무슨 짓을 할지도 몰랐다.

그런 선재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범진이 큰소리로 웃었다.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널을 뛰었다. 금방까지 살벌하게 말하다 디졌다, 하면서 웃는 범진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몰랐다. 선재의 입에서 작은 헛기침이 나왔다.

“맞다.”

이번에도 쓸데없는 소리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눈을 든 선재가 범진을 쳐다봤다.

“아까 금마들이 진짜 뭐라고 했습니까.”

1층 복도에서 바보처럼 말한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땐 범진이 사람들을 때리고 있어서, 그 불똥이 제게도 튈까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었다.

“…나를 선물로 받았다고, 그 사람들이.”

“예.”

“나는.”

지금은 말을 제대로 하고 있나? 범진이 쳐다보는 와중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니 또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말이 꼬이는 것 같다고 느낀 선재가 몇 초간 뜸을 들였다.

“똑바로 말을 해야 알지. 뭐는 씨부리고….”

“…씨부린 적 없어.”

“뭐라고?”

선재는 범진이 되묻는 말엔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 범진이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해 여태 응어리진 마음이 욱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몇 초만 돌리고 싶다 생각한 선재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몰랐다. 그런데도 입을 열어야 할 것 같긴 해서,

“내 말은.”

무슨 핑계라도 대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니 말 뭐.”

범진이 새끼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으며 대꾸했다.

“….”

“이게 벌써부터 말대꾸하네.”

범진은 그런 말을 하고 확, 씨, 하고 겁주는 듯한 추임새도 덧붙였다. 입에 약간 남아있던 밥이 엉겨 붙어 갈 만큼 시간이 가는데도 선재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게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 어이 없음을 표하기에는 범진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어? 씹. 말대꾸 벌써 합니까.”

범진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식탁에 탁, 하고 놨다.

저만하면 양반이다 느껴질 정도로, 범진이 1층에서 보였던 모습은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선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고개를 저었다. 입을 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닌 씨발 이뻐서 내가 딱 한 번만 그냥 넘어가 준다.”

형님이랬다가 니라고 했다가. 기분이 내키는 대로 호칭을 갖다 붙였다.

선재는 우선은 안 맞겠단 생각으로 한숨을 돌렸다. 범진에게 한 대 맞고 말지, 했던 이전과는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1층에서 건장한 남자들을 때리던 범진의 모습이 잊을 만하면 떠올랐다.

범진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앞에서 퉁퉁 부은 선재를 쳐다보는 것에만 시간을 썼다.

화두가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형님, 하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고, 화를 내다가도 금방 웃었다.

그렇게 낄낄거리다 화를 내는 것도 금방 했다.

선재는 정말 미친놈과 밥을 먹는 것 같아 갈수록 간담이 서늘해져 갔다. 안 맞겠다고 안심한 건 잠시였다.

또 형님, 하는 소리에 맨밥만 입에 쑤셔 넣고 있던 선재가 고개를 들었다.

“자지 좀 빨아봤습니까.”

“뭐?”

“알파들 자지 얼마나 빨아봤냐고. 꽤 하드만.”

“….”

“아니다, 처음엔 씹, 좆도 못하긴 했다.”

“….”

“내가 이래 하라니까 그때서야 좀 했다. 그쵸.”

범진은 밥상머리에서 선재의 머리통을 쥐는 듯한 시늉을 보였다. 허공에 있는 투명 머리통이 선재는 정말 제 것 같았다. 범진은 엄지손가락으로 뺨을 눌렀던 것까지 재연했다.

“이렇게 하면 입 안이 쫍아지거던요.”

“….”

“진짜 씹질 하는 느낌 나는데, 형님도 함 시켜보세요.”

괜히 거기까지 말할 걸 알고 있었다.

선재는 아, 씨팔, 맞다, 하고 운을 뗀 범진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오메가는 뒤를 쑤시줘야 싸지.”

“….”

“내 깜빡 잊었네. 미안합니다.”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태도로, 범진은 미안하단 말을 했다. 선재는 범진이 형님, 하고 부를 때만 그의 얼굴을 쳐다봤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고개를 숙였다. 범진은 말도 혼자서만 북 치고 장구 치고 했다. 혼자서 1절이 뭔가. 한 10절도 더 할 사람 같았다. 선재는 목이 막혀 물을 마셨다. 맨밥만 자꾸 넣고 있으려니 입 안이 텁텁했다.

* * *

오늘도 찾아올까, 하는 생각으로 선재는 시계를 봤다.

범진은 주로 12시나 1시 정도에 이 집을 찾는다.

집에 뭐가 없어 아무거나 차려서 줘도 일단은 먹긴 먹었다.

어제는 무와 소고기를 넣고 끓인 이상한 국을 대접했다. 소고기뭇국을 상상하고 끓였는데, 맛이 좋지 않았다. 조금 넣었다고 생각한 고기에서 잡내만 풍겼다. 선재는 그걸 입에도 대지 않았고, 범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맹물 한 사발을 들이키듯 국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곤 형님 요리 좀 배워야겠다, 했다.

선재는 아이가 먹을 싱거운 음식만 만들면 돼서 요리에 특별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저야 식욕이 워낙 없으니 맛이 없으면 그냥 안 먹고 만다.

요리는 무슨 요리. 선재는 범진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만 무시를 했다. 실제로는 맛있게 만들어보겠다는 말만 얼버무리듯 했다.

한숨을 쉬며 방 안의 평온한 공기를 느끼던 선재가, 아직 잠에 빠진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혼자라면 이런 생각도 안 들 텐데.

지켜야 하는 아이가 있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곤 했다.

선재는 흐려지는 초점에도 아이에게 보내고 있던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몇 분이나 갔을까. 눈가를 찌푸리던 선재가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며칠째 반복되는 증상이다. 선재는 변기 뚜껑을 열어놓고도 뭔가를 게워내지 못했다. 세면기 앞에서 침을 뱉고, 거울을 쳐다봤다. 갑자기 쏠린 느낌을 받은 얼굴만 벌게져 있었다.

처음엔 체했나 싶었지만, 먹은 것도 딱히 없고, 공복에도 구역감이 들곤 했다.

선재는 입을 닦고 화장실 밖으로 나와, 휴대폰부터 찾았다. 간밤에 찾아둔 병원에 예약하기로 한 걸 잊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예약을 할 생각이었는데, 증상이 나타나서야 생각이 났다. 키패드로 번호를 누른 선재가 저편에서 들려온 음성에 입을 열었다.

“네, 진료 예약 좀 하려고요.”

서울에선 큰 병원을 다녀 간단 진료에도 일정이 1주, 2주 뒤에나 잡히곤 했는데 직원은 당장 오늘 오셔도 괜찮다는 말을 전해왔다. 예약 안내 페이지가 따로 있어서 버릇처럼 전화를 건 거였는데, 왠지 무안해지고 말았다. 선재는 감사하다는 말을 직원에게 건넨 뒤 전화를 끊었다.

아직 오전이긴 하지만 병원을 갔다가 점심때까지 집으로 돌아오는 건 무리 같았다. 점심엔 범진이 올 테니. 선재는 그것부터가 걱정이 됐다.

쥐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켠 선재가 통화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목록엔 범진의 번호만 가득했다. 범진이 억지로 건넨 번호를 ‘범진’이라고 그 자리에서 저장해두었었다. 선재는 ‘범진’만 가득 찬 목록을 쳐다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범진은 신호음이 가기가 무섭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했습니까, 하고 당연한 소리를 했다.

“어… 저기, 오늘은 집에 와도 나 없을 거야. 어, 병원 가거든.”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전화를 건 건 아니지만, 나쁘고 험한 말을 들으려고 전화를 건 것도 아니었다.

선재는 갑자기 씨발년이, 하고 시작된 욕설에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 그런 개구라를 치냐는 호통을 들었다.

“아니, 나 정말 아파서 가는 건데. **, **병원.”

기다렸다는 듯 말이 쏟아져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방어 기제다. 범진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일 때마다 급한 불 끄기 식으로 변명하듯 말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굳이 자극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내 씨…. 하고 가라앉은 기색을 느낀 선재가 속으로 안심을 했다.

[거, 씨팔… 존나 귀찮게 구네요, 형님.]

반응을 보면 저를 태워달란 말로 오해라도 한 것일까. 잠깐 생각에 잠겼던 선재가 택시 예약을 잡았단 말부터 서둘러 했다. 범진은 너머에서 쯧, 하는 소리를 내더니 얼마간 말이 없었다. 주변이 시끄러운 듯했고, 이따금 전혀 모르는 사람 소리도 들렸다.

“나는 네가 점심때 집에 올까 봐.”

[뭐, 그때까지 못 옵니까.]

“…어. 멀기도 하고.”

[이게 씹, 사람 쳐, 놀리나….]

놀렸을 리가.

이마가 차게 식으면서도 뜨거운 게, 금세 식은땀이 고였다.

어제는 왜 아무 말도 안 했냐는 범진에겐 아픈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댔다. 틀린 건 아니지만 선재는 그 말도 얼굴이 벌게져서 했다. 무슨 말을 하면 급하게 하게 되어, 범진이 속마음을 자꾸 읽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어지지만 쉽지 않았다. 생각이 날 때마다 급하게 뱉게 되었고, 괜히 범진의 의심을 샀다.

* * *

“일반 남성분이신가요?”

접수대 앞으로 다가온 선재를 쳐다보던 직원의 시선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했다.

선재는 오메가치고는 키가 큰 편이었다. 170cm를 조금 넘긴 했지만, 몸집 자체가 작게 태어나는 경우가 많아 평균 남자 키에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거나 얼굴이나 일반 남성은 아닐 듯했지만 그래도 직원은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아이를 바닥에 내려준 선재가 직원을 쳐다보며 아침에 전화 드렸는데, 하고 입을 뗐다.

선재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접수원이 건넨 서면을 받아들었다. 가까운 유리 테이블로 가 설문과 신상 정보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발을 디딘 준희는 유리 테이블의 기둥이 신기한지 그 옆에 코를 딱 붙이고 서 있었다. 유리면은 준희의 머리보다 훨씬 높이 있었다. 투명한 유리 아래로 준희의 머리를 바라보던 선재가 웃으며 서류 작성을 끝냈다.

특수 성별, 특히 오메가 진료는 접수부터가 까다로운 편이었다. 거기다 첫 내원이기까지 하니 과정은 더 복잡했다. 처음 받은 서류 외에도 작성할 게 있어, 1층에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올라가셔도 된다는 직원의 말을 생각보다 너무 늦게 들었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다. 예약이 필요 없다고 해서 접수도 간소화해서 받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전에 다녔던 큰 병원과 절차는 비슷했다. 선재는 2층으로 올라가 아이부터 대기석에 먼저 앉혀 주었다. 시간이 좀 지나,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담 겸 진료실엔 젊은 남자 의사가 앉아있었다.

“저희 병원 처음이시네요.”

“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속이 안 좋아서요. 공복에도 헛구역질 같은 게 나고.”

“얼마나 되셨죠?”

“한 나흘… 정도 됐습니다. 저번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고요.”

의사는 차트와 선재를 번갈아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지만 집에만 계십니까? 따로 직장이 있다거나.”

“지금은 집에 있습니다.”

“단순 과반응 같기는 한데, 혹시 배우자분이랑은 관계가 어떠실까요.”

“…지금은 아이랑만 지내서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작성된 설문과 신상 정보가 의사만 볼 수 있는 모니터에 떠 있었다.

“정밀한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배우자분 이외의 알파 페로몬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아.”

당장 떠오르는 게 범진이긴 했지만 의아한 점도 있었다. 서울에선 이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만났을 텐데도 멀쩡하기만 했다. 잠깐 일했던 식당으로 틈만 나면 찾아오던 알파 학생들도 많지 않았나.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그러지는 않는데요….”

“아,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본래 거부반응이란 게 성접촉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환자분께서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할 듯싶네요.”

“….”

“다른 검사도 받아보시고… 결과 나오려면 이틀은 필요하니까, 일주일 내에만 다시 내원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

급히 몸을 일으킨 선재가 고개를 연신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일찍이 그 말을 하고 진료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진료실이 이리도 넓었나. 준희는 혼자 앉아 간호사가 건넨 막대사탕을 쪽쪽 빨고 있었다. 의연하게 반응했지만, 얼굴이나 목이 달아올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성접촉 자체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범진 같은 인간과 지저분한 짓을 한 게 들통난 것 같아 수치감이 엄청났다. 아이가 앉은 소파로 가는 길이 구만리였다.

* * *

진료 상담실로는 금방 들어갔는데, 검사는 바로바로 받을 수가 없었다. 밀려 있는 인원이 꽤나 되었다. 선재는 가운을 입은 채로 30분 넘게 기다렸다. 옆에 앉아있던 준희도 낮잠 때가 가까워져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도 특별히 칭얼거리지 않아, 그건 다행이었다. 겨우 이름이 불린 선재가 다양한 검사를 끝마치고 탈의실로 향했다.

가운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버릇처럼 화면을 켜보았는데 액정에선 반응이 없었다. 검사 전에 휴대폰을 맡기거나 앞에 두고 들어갈 때가 있었는데 누가 전원 스위치를 눌렀던 모양이었다. 선재는 급히 휴대폰을 켜고 화면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만 열 통이 넘게 들어와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범진은 전화를 받았다.

“…아니, 검사한다고… 내가 끈 건 아닌데.”

범진은 세상에 욕밖에 없는 것처럼 말을 했다. 씨발년부터 시작해서 입에 안 담는 욕이 없었다.

“뭐?”

욕설 중간중간 들려오는 소리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도착했다고 말하며 어디에 있는지 당장 말하라고 했다.

“니 구라친 거면 내가 니 애새끼랑.”

누가 탈의실 밖에서 말을 했다. 전화상으로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선재는 혹시 몰라 가운을 입은 채로 밖을 향해 고개를 내밀어보았다. 복도 끝에서 씩씩대며 큰소리로 욕질을 하는 범진의 모습이 보였다.

“나 앞에 있어.”

휴대폰을 든 채 말을 이은 선재가, 곧 앞을 바라보는 범진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범진은 선재를 발견하자마자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뛰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화가 난 곰 같았다.

“검사받느라고 맡겨뒀었는데, 누가 휴대폰을 꺼서….”

“정신 나갔네.”

바로 앞까지 단숨에 선 범진은 정신 나갔지? 하고 또 되물었다. 선재는 탈의실에 있을 아이가 걱정되었다. 병원이라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언제까지 혼자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범진은 그런 속내와는 무관하게 선재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대고만 있었다. 열로 끓었던 눈이 음심으로도 번들대고 있었다. 의식이 된 선재가 목을 손으로 쓸었다. 순간 범진이 눈을 꿈틀거리며 선재를 못마땅하게 내려다보았다.

바로 옆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는 화장실이 남녀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주변을 쓱 둘러본 범진이 그 화장실로 선재를 끌고 갔다. 칸 하나를 세게 열어젖힌 범진은 거기에 선재를 밀어 넣고 벨트부터 풀었다.

타일 벽에 어깨를 부딪친 선재는 손으로 팔 부근만 매만졌다. 옷을 벗고, 드로어즈를 주물럭거리는 손을 보면서도 마땅한 반응을 찾기가 힘들었다. 여기서 뭘 한단 말인가.

“꿇어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한 목소리였다. 선재는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그런 말을 하는 범진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좁은 화장실 칸 안에서 어떻게든 공간을 찾아 무릎을 꿇었다. 범진은 바지 지퍼만 내려 그 안에서 이제 막 발기하기 시작하는 성기를 꺼냈다. 가만히 앉아 위쪽을 쳐다보는 선재의 머리를 앞으로 끌어당겨 좆을 물게 만들었다. 선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잠시, 탈의실에 아이를 오래 둬선 안 된단 생각으로 범진의 성기를 입 안에 물었다. 머리를 흔들며 그의 사정을 도왔다.

* * *

“기다리세요.”

병원 앞에서 서늘한 바람을 맞고 있던 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범진은 옆에서 담배를 하나 태우고 주차장으로 갔다. 아이 때문에 얼마나 정신없이 그의 성기를 빨았는지 모른다. 선재는 두 눈이 잔뜩 젖은 채로 범진이 멀어지는 걸 가만 쳐다보기만 했다.

곧 나무가 잔뜩 심어진 구역 뒤쪽의 주차장에서 검정색 레인지로버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옆유리는 까맣게 선팅되어 안쪽을 잘 볼 수 없게 만들어놨지만, 앞에서 보면 범진과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운전석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계단을 타고 내려간 선재가 차 바로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범진이 확실히 맞았다.

뒷좌석에 먼저 준희를 실었고, 저도 뒤이어 그 옆에 앉았다. 차고가 높아 아이가 타기엔 부담이 있었다. 선재가 차에 타자마자 아이를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병원에서 뭐라고 하던데요.”

이제야 그런 걸 묻는 범진의 눈이 룸미러를 통해 보이고 있었다.

“별거 아니야.”

“내가 별거냐고 물었습니까.”

주차장을 막 벗어나는 길목인데도 속도가 틈만 나면 높아졌다.

“…위염. 며칠 약 먹으면 된다고 했어.”

범진에게 페로몬 과반응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도 그의 성기를 빨았으면서 괜한 자존심은 왜 내세우게 되나 몰랐다. 선재는 준희를 감싸 안은 채로 점점 멀어지는 병원 건물을 쳐다봤다.

“저기.”

범진이 룸미러를 통해 눈썹을 세웠다.

“약국 좀 들러주면 안 될까.”

“또 뭔 짓 할라고. 약국 없는 데가 어딨다고요, 형님아.”

범진이 틈을 주지 않아 1층에서 약국을 들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선재는 이미 출발한 범진에게 약 얘기를 해보았지만, 말이 안 통할 것 같아 더는 부탁하지 않았다. 집 근처엔 그럴듯한 약국이 없다. 일반 약국에선 취급도 하지 않는 약이 처방 약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선재는 다시 내원할 때 약을 타가야겠단 생각을 하며 준희를 한쪽 팔로 깊이 껴안기만 했다.

거리를 지나치며 본 건물들은 다 먼지에 휩싸여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형님.

분명 도로 위였는데.

어이.

범진이 비몽사몽 하는 선재의 뺨을 손으로 가볍게 쳤다.

“응….”

몸이 물에 젖은 솜 같았다. 선재는 열린 뒷좌석 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검사할 때 맞았던 주사 때문인가 보았다.

“…여기가 어딘데…?”

“좀 쉬다 갈라고. 내리세요.”

범진이 옆으로 턱짓하며 가리킨 건물은 입구만 환했다. 창문도 까맣고, 벽면의 색도 어둑한 편이었다. 일부러 돌을 깎은 듯 음영을 살려 고급스러운 느낌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선재는 건물 앞에 서서 범진만 쳐다보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에게도 시선을 빼앗겼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저. 너 일 있으면 나는 그냥 차에서 기다릴게.”

“형님 씨발…. 생각 자꾸 할랍니까.”

잠깐 웃은 범진이 스스럼없이 욕설 섞인 말을 내뱉었다. 뒷좌석으로 스윽 머리를 밀어 넣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표정을 구겼다.

무릎에 고이 누워있던 준희의 몸이 붕 떴다. 범진이 아이를 순식간에 들고 좌석 밖으로 꺼낸 탓이었다.

“뭐, 뭐!”

더듬거리며 말한 선재가 팔만 범진 쪽으로 뻗었다.

품에 아이를 안은 채로, 범진은 앞에 있던 건물로 향했다. 뒤이어 차에서 내린 선재가 차 문을 닫을 생각도 못 하고 범진을 따라갔다.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뒷모습을 향해 뛰어가듯 따라붙자, 범진이 이제야 왔냔 표정으로 슬쩍 뒤를 쳐다보았다.

“이리 줘.”

“내가 뭐 어떻게 합니까.”

“줘. 따라갈 테니까,”

통로는 넓지 않았다. 선재는 범진이 지날 때마다 좁은 통로 옆쪽으로 늘어선 사내들이 인사하는 걸 어색하게 지켜봤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인사 소리 때문에, 범진이 짜증 난 듯 귀청이 터지겠다고 말했다. 지나가다 아예 어떤 남자의 뺨을 한 대 치기도 했다. 선재는 혹시 준희가 무서워할까 와중에도 범진의 셔츠 옷깃을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아이와 눈을 계속 마주쳤다.

노래 반주 소리가 저편에서 들리고 있었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재는 범진이 멈출 때까지 그를 따라붙기만 했다. 몇 번이나 아이를 달라고 했지만, 범진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제 갈 길만 갔다.

부드러운 가죽에 덮인 문도 있고, 윤기가 흐르는 털로 장식된 문도 있었다. 고급 대리석 바닥과 어울리는 장식들이 벽면엔 가득했다. 인공적이지만 맡기 나쁘지 않은 향기도 나고 있었다.

큰 소리로 인사하던 사내들이 다 사라질 즈음, 선재는 앞에 멈춰선 범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범진은 준희를 한쪽 팔로 불안하게 안은 채 어느 큰 문 하나를 열어젖혔다.

들어선 룸 안은 은은한 빛으로만 밝았다.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 몇 개는 꺼져 있었고, 벽면을 크게 두른 가죽 소파는 척 봐도 값이 꽤 나갈 것처럼 보였다. 범진이 소파 안쪽에 아이를 앉히고 몸을 끝 쪽에 걸쳤다. 준희에게 가려던 선재가, 범진이 끝 쪽에 앉자 반대편으로 돌아 아이 쪽으로 가려고 했다.

“어딜.”

소파 사이엔 큼지막한 테이블이 하나 있어 범진이 비켜주지 않으면 그 길을 지날 수가 없었다.

선재가 의아한 눈으로 범진을 내려다봤다.

“뭘 씨발, 봅니까?”

범진이 대놓고 시선을 맞추려 하자 선재의 눈이 미세하게 어긋났다.

“아기 무서워하잖아.”

“좆나 좋아하는구만.”

아이는 정말 소파의 단단한 가죽이 신기한지 작은 손으로 여기저기를 만지고 있었다.

“여 앉아 보십셔.”

“….”

보란 듯, 범진이 다리를 넓게 벌렸다. 상체를 뒤로하고, 등을 등받이에 완전히 기댄 채 눈은 선재에게 가 있었다.

설마 다리 사이에 앉으라는 건가.

가만히 범진만 내려다보던 선재가 한 뼘도 돼 보이지 않는 범진의 다리 사이의 공간을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순간 범진이 팔을 잡아당겨 더는 쳐다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갑자기 힘이 전달돼 선재의 몸이 기우뚱 범진 쪽으로 기울었다.

“어이, 귀먹었어요.”

“….”

“앉아 보라고.”

비슷한 말을 계속하려니 짜증이 치미는 것 같았다. 다리 사이에 앉고 싶진 않지만,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망설이던 선재가 몸을 테이블 안으로 천천히 넣었다. 반대쪽 벽을 보는 자세고, 엉덩이가 범진의 시야에 훤히 잡힐 듯한 각도기도 했다. 앉기는 싫었지만, 순간적으로 그런 자세가 더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대충 머뭇대다 무게중심을 뒤로한 선재가, 곧 닿아오는 범진의 숨결에 불쾌감을 느꼈다.

선재의 왼쪽 귀에 얼굴을 바짝 붙인 범진은 이제야 만족한다는 듯 웃음소리를 냈다.

“말 좀 잘 들으세요.”

“….”

“내가 씨발, 하란 대로만 하면 이래 잘해주는데.”

그러면서 귓바퀴를 핥았다. 화들짝 놀란 선재가 얼굴을 옆으로 뺐다.

“그라면 뭐 어쩔 건데.”

웃고 있는 범진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범진에게 완전히 붙잡힌 채여서 몸은커녕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도 어려웠다.

“잘합시다….”

범진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뜨리며 했다.

그러면서 장난하듯 선재의 귀를 혀끝으로 찔러댔다. 선재가 움찔하면 귓구멍에도 그 혀를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 마. 그만해.”

“뭐를 하지 말란 말인데요….”

허리에 범진의 손이 감겨왔다. 후드티 안으로 들어온 큰 손이 맨살을 만졌다.

“저 아 저거 이 배로 낳았습니까.”

“….”

배에 닿은 생경한 느낌에, 선재는 두 손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아까부터 범진의 팔을 내리려고 해봤지만 무소용이었다. 장난질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씹, 내 한 손에 다 감기는데. 배통도 작아가지고.”

“….”

“…어이.”

범진은 일부러 선재의 귀 바로 앞에서 숨을 쉬었다.

“…왜.”

“낸테는 언제 줄 건데요.”

“….”

“그라지 말고 함 주라니까.”

근래 들어 자주 하는 말이기도 했다.

선재는 밥을 먹다가도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하는 범진을 늘 무시해왔었다. 눈을 다른 데로 돌리면 혼자 실실 웃다 말았다.

“내가 돈도 씹, 꼬박꼬박 주는데 구녁 한 번 못 열어줍니까.”

“…돈 안 쓴다고 내가.”

“어이, 씨발련아… 누가 그딴 소리 하냐.”

갑자기 들린 욕엔 말문이 막혔다. 다소 부드럽게 감겨오던 손이 언제 주먹으로 변할지 몰랐다.

입을 꾹 닫은 채, 선재는 앞만 쳐다보았다. 귀를 날름 핥는 혀엔 코끝이 떨려왔다. 욕을 먹어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범진이 무서운 게 더 컸다. 괜한 소란을 피울 자신도 없고.

아오, 운을 뗀 범진은 선재의 얼굴과 목덜미에 코를 무식하게 비벼댔다. 냄새가 좋은지 씨발, 뭐냐, 하며 선재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재는 말없이 범진의 눈만 쳐다봤다. 번들대는 눈 밑이 찝찝했지만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너무 세게 비벼오면 손을 올려 제지해보기도 했다.

“그만, 아파.”

“뭐, 씨. 냄새만 맡는데.”

“…밀잖아, 네가 지금….”

“다른 새끼 냄새도 나서 좆같긴 한데.”

아프다고 해도, 범진은 딴소리를 했다.

“그냥저냥 형님 암내 때문에 맡아줄 만은 합니다.”

칭찬을 조롱같이 하고, 조롱을 칭찬같이 했다. 선재가 들은 건 거의 후자였다.

“내 함 쳐다보세요.”

“….”

“보라고.”

범진이 억지로 얼굴을 돌리는 게 아니면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쳐다보란 말에 선재가 고개를 왼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손을 올린 범진이 선재의 아래턱을 힘주어 잡았다.

“니 진짜 서른둘 맞냐.”

“….”

“내 좆같다고 나이 속인 거면 뒤진다.”

“…속인 적 없어.”

“그래?”

범진은 그럼 형님 맞지, 하고 선재의 목덜미에 다시 코를 갖다 댔다. 범진은 떨을 빨 때도 이보단 건성으로 했다. 코가 잔뜩 눌린 채로, 범진은 냄새를 들이마셨다. 입김도 세지만 콧김도 장난이 아니었다. 선재는 후욱, 후욱, 하는 숨소리가 귓가에 닿을 때마다 한쪽 눈을 찡그렸다. 징그러워 소름이 돋았다.

“아까 형님 내 거 언제 빨아줬지.”

“…몰라.”

“한 네 시간 지났나.”

벌써 그렇게 됐나. 범진과 병원에서 마주쳤을 때부턴 시간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이 건물에 도착해서도, 바로 깼던 게 아닌 모양이었다.

“젊은 새끼 자지맛 어떻습니까.”

“….”

말을 제때 안 한다고, 범진은 늘 성화지만 어디 대답해줄 만한 말을 해주기라도 하나. 목에서 맴도는 말도 없었다. 선재가 침묵을 지켰다.

“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살짝 골이 난 것만 아니면 무표정해 보이는 선재의 얼굴을 범진이 바로 앞에서 계속 쳐다보았다. 어떻냐고, 하며 하체를 비빌 땐 선재가 몸을 앞으로 뺐다. 범진의 다리 사이에 앉아있느라 원래부터도 미끄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배에 닿은 범진의 손에도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범진의 완력에 몸이 뒤로 당겨지자, 선재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버텼다. 꼬리뼈 부근에 닿은 성기가 주변을 뭉근하게 비벼댔다. 두 손을 테이블 위에 넓게 대고 있던 선재가 주먹을 쥐었다. 몸을 뻣뻣하게 만들고 계속해서 힘을 주었다.

“뭐, 주먹으로 내 팰라고요.”

“….”

“한 대 치봐라.”

“….”

“어이.”

“….”

“얼굴은 누가 돌리라고 했습니까.”

어느새 앞쪽을 쳐다보고 있던 선재가, 다시 범진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틀었다.

“형님 돈도 한 푼도 없든데.”

“….”

“그래서 저 아 어떻게 키울라고요.”

“일하기로 했어.”

“그 동네 어디서 일하게.”

일터는커녕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없는 동네의 사정을, 범진은 잘 아는 듯 굴었다. 하지 말지? 했다.

“밥 주고 대주고 하면 내가 알아서 돈은 주지 않겠습니까.”

됐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했다간 아까처럼 욕을 할 것 같았다.

입을 다문 채로 범진을 쳐다보고 있던 선재가 조금씩 흔들렸다. 범진이 제 얼굴을 쳐다보며, 성기를 점점 더 밀치듯 붙여왔기 때문이었다.

어? 하며 범진은 눈썹을 한껏 위로 들었다.

그때 똑똑, 누가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 선재가 옆을 봤다. 더는 배를 압박하듯 누르지 않아 일어서는 게 가능했다. 선재의 팔꿈치만 잡은 채 씨팔, 하고 고개 숙였던 범진은 잡고 있던 선재의 팔을 놔주며 다시 씨팔, 했다.

문이 열리고 드러난 사람은 선재의 기억에도 남은 사람이었다.

하얀 셔츠를 입은 채여서 헷갈리긴 했지만, 남색 셔츠와 체형이 똑같았다. 뭐라고 특정할 수 없는 얼굴도 지금 보니 생각이 났다.

“돼지 새끼가 씹, 이딴 타이밍에 나타나고 지랄이냐.”

범진은 기분이 나쁘단 이유로, 벌떡 일어나 남자의 뺨을 사정없이 한 대 후려쳤다.

선재는 아이가 누워있던 쪽을 쳐다봤다. 다행히 거리가 있어 소리가 앞에서 듣는 것처럼은 크게 안 들렸나 보았다. 아이는 소파에 관심을 보이던 것도 잠시, 종일 바깥에만 있어 여기서도 금방 잠이 들었다.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은데, 갑자기 들어온 남자 때문에 시간은 더 지체될 듯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단 표정으로, 범진은 이마를 큰 손으로 쓸어올렸다.

두 손을 뒤로 한 채 휘청거렸던 남자는 입술을 문 채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선재가 남자와 범진을 동시에 훑었다. 눈치가 보였다.

“형님 이리 와보세요.”

“…어?”

얼떨떨하게 대답한 선재가 범진을 쳐다봤다.

“와보라고요.”

“….”

반대편 소파 구석으로 가 앉으려고 했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반쯤 앉아있던 몸이, 범진의 말에 다시 엉거주춤 섰다. 이리 와보라는 범진과 거리를 붙이자 남자의 얼굴도 더 자세히 보였다. 남색 셔츠를 입고 있던 남자가 했던 말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임마 이거 한 대 때리보세요.”

“….”

“사과는 받아야지.”

“무슨 사과. 아니, 괜, 괜찮.”

이미 한쪽 뺨이 시뻘게져 핏기가 비치는 남자를 어디서 어떻게 때린단 말인가. 선재는 살면서 누구에게 손찌검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당황한 마음이 들어 자꾸 말을 더듬자, 범진이 으아, 하고 괴성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그 소리는 아이에게 들릴 만했다. 아니나 다를까. 잠에서 깨 칭얼거리는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숨이 차고 눈앞이 핑핑 돌았다. 선재는 범진이 이리 와보라 손짓하는 동작에 기계처럼 앞으로 걸어갔다.

말 좀 잘 들읍시다.

그런 소리를 하는 범진 앞에서 손을 올려 남자의 뺨을 쳤다.

그기 때린 겁니까.

범진은 제가 어설프게 때리면 두 배 세 배의 힘으로 남자를 가격했다. 범진이 이렇게, 할 때마다 손이 남자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처음엔 손바닥을 펼쳐서 때렸는데, 그렇게 해도 선재가 제대로 때릴 줄 모르자 주먹을 쥐고 남자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피를 봤던가. 선재는 범진이 팔 올리고, 하는 말에 팔을 올렸다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처음 보인 것은 범진의 무릎이었다.

머리가 띵해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나 생각이 난 게 있다면 준희. 선재는 누운 채로 고개만 들고 아이가 어딨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그러는 사이 범진과 눈이 마주쳤다.

“뭘 했다고 기절까지 하고.”

준희는 벽 앞에 서서 뭐가 신기한지 손을 뻗어보고 있었다. 부분부분이 조각된 것처럼 튀어나와 있었는데 아마 그걸 만지려고 하나 보았다.

선재가 다시 눈을 돌려 범진을 쳐다보았다.

“두 번 했다가는 형님이 먼저 골로 가겠다. 그쵸.”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범진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차라리 비웃거나 한번 웃어버리는 게 천만 배는 낫다. 선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이마를 짚었다. 제법 길어진 머리카락이 뺨의 일부를 감싸기에, 손으로 머리부터 마구 뒤로 넘겼다. 범진이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했다.

“가죠, 이제.”

“…어….”

밖은 완전히 캄캄해져 있었다. 선재는 준희를 안고 룸을 나서며,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분위기에 고개를 숙였다. 들어올 때만큼은 아니지만 어디서 문을 불쑥불쑥 열고 나온 남자들이 저마다 다른 인사를 했다. 선재가 준희의 한쪽 귀를 막아주었다.

손님인 듯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고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거리가 꽤 있는데도 술 냄새는 은근하게 느껴졌다. 이른 저녁일 땐 어렴풋한 반주 소리만 났는데, 캄캄한 밤이 되자 사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겨우 그 건물을 벗어난 선재가 뒤를 돌아 주변을 살폈다. 바깥으로 나오니 또 조용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범진은 별말이 없었다. 주변 지리를 전혀 모르는 선재만 긴장을 해 창밖 어둠에서 뭐라도 읽으려고 노력을 했을 뿐이다. 집에 가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범진이 또 이상한 데를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바깥을 보게 되었다. 출발했을 때가 9시였는데, 40분이 넘게 지나도 익숙한 길이 나오지 않았다.

눈에 익은 골목 안으로 들어온 건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빌라 앞에 차가 멈춘 건 금방이었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에, 선재는 긴장으로 꽉 막혀있던 근육을 그제야 이완시켰다. 목이 뻐근하니 아팠다.

눈은 골목을 빠져나갈 차에만 닿아 있었다. 이제 좀 쉬겠다 싶었는데, 범진이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왜 그런 눈을 하고 섰는데요.”

“…너 가는 거 봐주려고.”

“가는 거 봐서 뭐 하게.”

빠르게 주차를 끝낸 범진이 먼저 빌라로 들어서자, 선재는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지를 잠시 생각했다. 준희가 벌써 깊은 잠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아이에게 뭘 많이 먹여 다행이지 그게 아니라면… 선재는 제 배고픔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계단을 두 개씩 오르는 범진의 뒷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다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준희를 챙기느라, 범진이 뭘 하는지는 애써 무시할 수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옷을 벗기는 와중에도 아이는 꾸벅꾸벅 졸았다. 그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선재가, 다음번엔 꼭 어디 맡기기라도 하고 병원에 가야겠단 생각을 막연히 품었다. 잠옷으로 갈아입힌 준희를 곱게 뉘어준 선재가, 거실 쪽에서 보이는 듯한 빛을 가만 쳐다보았다.

“후우….”

선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난 뒤에야 방을 나섰다. 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고, 주방으로 곧장 직행했다.

범진은 언제 옷을 벗었는지 드로어즈만 걸친 채로 거실에 드러누워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붙은 큼지막한 근육에도 시선이 자연히 빼앗겼다. 셔츠 자락 너머로 언뜻 보았던 문신은 상체에 집중돼 있었다. 어깨와 가슴, 쇄골까지 빠듯하게 채워진 검은 그림들이 현란했다. 선재는 할 일이 있는 척 주방으로 갔다가 식탁 위에 올려뒀던 생수나 하나 까 마셨다. 할 짓은 없지만 있는 것처럼은 보여야 했다.

“형님.”

“어.”

“개짓거리 고만하고 일로 와보세요.”

행동이 빤히 보인다는 생각 때문에, 선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무슨 생각을 해도, 범진은 다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를 아무리 비우고 싶어도 범진 앞에선 그게 불가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이렇게나 복잡해지고 마는 것이다.

누워있던 범진이 몸을 일으켰다. 바닥을 손으로 굴리며 선재가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범진이 짚은 곳에 정확히 안착한 건 아니지만, 그 근처 어디쯤 앉은 선재가 길게 뻗은 범진의 다리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뭐 보는데요.”

선재는 눈을 계속 옆으로 하다, 결국 고장 난 TV 쪽까지 고개가 돌아간 걸 깨달았다.

“뭐 보냐고.”

“…그냥, TV.”

“고장 난 거 뭣 하러. 장난해요.”

갑자기 낮은 음으로 말하면 본능적으로 주눅이 든다. 선재는 범진이 무서운 사람이라서도 있지만, 그가 알파라 느껴지는 페로몬과 체향에도 몸이 반응하고 있는 걸 느꼈다. 의사의 말대로, 범진과 성접촉을 했기 때문에 이런 반응도 있는 것 같았다. 선재의 이마에 땀방울이 촘촘히 맺혔다.

“씹질도 안 했는데 뭔 땀을 이래 흘리고.”

범진이 가까이 다가와 손을 올렸다. 손을 들어, 때리려는 줄 알았는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워낙 덩치가 크니 약간만 움직여도 거리가 좁아지곤 한다. 훅 끼치는 범진의 체향에, 선재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다.

“형님 우리 공정하게 가지요.”

“…뭐.”

“나는 요것만 입었는데.”

범진이 드로어즈에 큰 손을 갖다 대며 튀어나온 것을 주물럭댔다.

“형님은 너무 싸맸다 아닙니까.”

선재는 고개 숙여 제 후드티 끝자락을 쳐다보았다. 준희를 돌보느라 옷을 갈아입을 정신이 없긴 했지만, 범진과 똑같이 벗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

“벗기 싫어요?”

눈을 든 범진의 초점이 선재에게 맞춰져 있었다.

고개를 든 선재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맺혔던 땀은 손에도 닦일 정도였다. 원래는 땀이 거의 안 나는 편인데, 하도 긴장을 해 이런 반응도 있나 보았다.

“벗기 싫다 해도 뭐라 안 합니다.”

“….”

“벗기 싫어요?”

“…벗기 싫어.”

범진은 선재의 대답을 듣고 오케, 알았다, 했다. 그리곤 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리 와보세요.”

가까운 거리인데도 이리 와 보라 했다.

“맨입으로 안 벗을라 한 건 아니죠.”

“….”

“와보세요.”

“와있잖아.”

코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데 뭘 더 어떻게 하란 건지 몰랐다. 선재가 눈을 들어 범진의 얼굴을 살폈다.

“더 오라고. 말이 씨팔, 조끄치 들리요.”

범진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피곤하다는 듯 목을 양쪽으로 꺾으며 입을 열었다.

한쪽 무릎은 꿇고, 한쪽 무릎은 세운 채였던 선재는 바닥에 몸을 질질 끌 듯이 앞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가까웠던 범진과 10cm도 안 되게 붙었다.

다가온 선재를 한쪽 팔로 감아 안은 범진은 선재의 무릎과 엉덩이를 잡고 몸을 돌렸다. 범진과 등을 져 앉게 돼 좋기도 했지만, 뒤에서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선재가 뒤로 빠지는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범진이 단숨에 후드티 안에 손을 넣어 뒤로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아, 잠깐.”

범진은 아까완 달리 손을 위쪽으로 보냈다. 다리로 선재를 단단히 붙잡은 채 못 움직이게 하고, 손을 세워 판판한 젖꼭지로 가져갔다. 이상한 곳에 손이 닿은 걸 느낀 선재가 표정을 찌푸리고 범진을 쳐다봤다. 영락없이 뒤에서 안긴 모양새라, 뒤쪽으로 고개를 들고 범진을 쳐다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웬만하면 좋아하던데.”

“…안 좋아. 그만해.”

범진은 서서히 튀어나와 딱딱해지기 시작한 선재의 젖꼭지를 집요하게 잡고 비틀었다.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 흔들림이 있을 정도로 젖꼭지를 세웠다.

범진이 고개를 숙여, 아랫입술을 깨문 선재를 쳐다봤다.

“좋습니까.”

“안 좋아. 그만 좀 해.”

“얼굴 개빨간데.”

“그건 화가, 화가 나니까.”

선재는 되지도 않는 말을 중얼거리며 범진의 손을 빼려 안간힘을 썼다. 후드티 안에 손을 넣어 범진의 팔목을 잡아보기도 하고, 몸부림을 쳐보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진은 손에 침까지 묻히고 선재의 젖꼭지를 살살 달랬다.

쩍, 쩍, 하는 소리가 가슴에서 나자 선재는 저도 모르게 발끝을 오므렸다.

“애 아부지가 많이 안 만져줬나 보네.”

“…그만….”

“씹, 뭐가 그래 생각할 게 많은데. 좋으면 좋다고 해라.”

톡 튀어나온 젖꼭지를 앞으로 잡아당긴 범진이 선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고개 들어봐라.”

범진의 말엔 더운 숨이 잔뜩 섞여 있었다. 일부러 후, 내뱉어지는 듯한 숨에 선재의 인상이 써졌다. 이건 아니라 생각이 든 선재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후드티를 손으로 쳤다. 제발 그만하라고 말했다.

“얼굴 들어보라고.”

눈 끝이 벌게진 선재가 위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범진은 선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한쪽 손을 후드티에서 빼내, 슬쩍 들린 턱을 세게 쥐었다. 그 턱을 위로 더 들어 올리자 각도가 얼추 맞았다. 범진이 선재의 입에 입을 맞추고 억지로 혀를 집어넣었다. 한 손으론 선재의 젖꼭지를 괴롭히고, 한 손으론 선재가 얼굴을 뺄 수 없도록 턱을 단단히 쥔 채였다. 범진은 선재의 입 안에 혀뿌리까지 집어넣을 기세로 키스했다. 침이 흐르는데도 무시했다.

마디 불거진 손이 툭툭, 젖꼭지에 닿을 때마다 선재는 몸을 떨었다. 목에 핏대를 세웠고, 그 상태로 고함을 질렀다. 우웁, 우우, 하고 막힌 소리가 범진의 입을 부풀게 만들었다. 범진은 입에 바람이 들어오는 와중에도 선재의 입 안에 길고 굵은 혀를 막무가내로 집어넣었다. 뒤로 빠지는 선재의 혀를 힘으로 휘감아 잡아당겼다.

한계에 다다랐는지, 두 다리를 파닥거린 선재가 범진의 얼굴을 손으로 밀었다. 이마에 가져간 손에 힘을 가득 싣는데도 범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범진과 억지로 입을 맞춰오긴 했지만, 이렇게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는 당해본 적이 없었다. 종내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범진의 체향에 코로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범진의 입은 뒤늦게 떨어졌다. 그리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선재의 얼굴을 감상하듯 쳐다봤다.

“힘드냐.”

선재는 범진의 얼굴을 거의 누워서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하도 몸부림을 쳐 엉덩이가 저 앞까지 나가 있었다. 상체를 일으킨 선재가, 땀으로 범벅된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힘드니까 그만, 그만해.”

오르락내리락하는 선재의 어깨를 뒤에서 쳐다보던 범진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딴 거 하고 싶은가 보네.”

대꾸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선재는 숨을 골랐다.

“어? 딴 거 하고 싶죠.”

그러나 언제까지 범진의 말을 무시해도 될지는 몰랐다.

선재가 뒤돌아서 범진을 쳐다봤다.

“…나 너무 피곤하다고.”

“어쭈.”

못마땅한 듯 말하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범진은 선재의 벌게진 얼굴을 쳐다보며 드로어즈가 힘겹게 가리고 있던 성기에 손을 가져갔다. 그 큰 것을 밖으로 낸 건 금방이었다. 잔뜩 발기한 성기가 선재의 눈에도 들어왔다. 검붉은 색으로 살벌하게 솟아오른 것이 몇 번을 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빨고 싶음 빨아보세요.”

“….”

선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범진의 성기를 무는 것 외에, 이 밤을 그냥 지나칠 방법은 없는 듯했다.

거칠게 애무 당한 젖꼭지가 땡땡하게 부어올라 아팠다. 기분이 이상한 건 순간적인 느낌에 가까웠다. 범진은 기분 좋으라고 거길 만진 게 아니라, 저를 괴롭히려고 젖꼭지를 쥐고 흔든 것이다. 키스도 마찬가지였다. 선재는 눈물과 땀을 한쪽 팔로 닦아내었다. 범진에겐 제 힘들어하는 모습이 즐거움일 듯했다. 이런 꼴을 더더욱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손으로 목도 벅벅 닦아낸 선재가 범진 쪽으로 느리게 자세를 틀었다. 애써 찾지 않아도 위로 솟은 범진의 성기는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범진은 무슨 생각인지 말도 없고, 손으로 뭘 하지도 않았다. 그저 선재가 뭘 하는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 눈길을 스치듯 보낸 선재가, 씹고 있던 아랫입술을 놓았다.

처음에 어, 하는 정도로 벌어졌던 입이 범진의 성기와 가까워지면서는 아, 하고 벌어졌다. 선재가 입 안 살을 그대로 내보이며 범진의 성기 끝을 입에 담았다.

상스럽게 발기한 알파의 자지. 저 깨끗하고 천사 같은 얼굴로 물고 있는 게 겨우 그따위의 것이어서, 범진은 거칠게 움직이지 않고도 쉽게 흥분했다. 어설프게 물고 머리를 흔드는데 그마저도 괜찮은 느낌이었다.

선재는 어쨌든 빨리 사정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범진의 것을 물었을 땐 늘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입에서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느낌이라, 목구멍에 상처가 날 것도 같았다. 결국, 침을 흘리며 얼굴을 뒤로 뺀 선재가 못 하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뭘 어찌라고. 다시 안 무냐.”

침으로 번들거리는 성기가 범진의 배 쪽으로 조금 휘어 있었다. 여태까지 장난하듯 분위기를 이끈 범진이, 못 하겠다고 빼는 선재에겐 사나운 얼굴을 해 보였다.

“아파… 입.”

“…이게 씹.”

“….”

한 대 맞을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었다. 키스를 할 때부터 입 안이 아팠고, 펠라라면 아까 병원에서도 했었다. 선재도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형님.”

가슴도 아프고, 목구멍도 아프고, 턱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느릿하게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선재가 어, 하는 대답만 했다. 고개 숙인 채 범진과 눈을 맞추지 않았다.

“니 그럼 양말 벗어봐.”

또 뭘 하고 싶어 저런 말을 하나 몰랐다. 선재는 집에 도착해 씻지도 못한 발에 범진이 무슨 짓을 할까, 양말엔 손도 대지 못했다.

가만히 있자, 범진이 다가와서 선재의 양말을 벗겼다. 범진은 드러난 허연 발을 가만 쳐다보다 혀로 발가락 사이를 핥았다.

“뭐, 뭐 하는데.”

“발도 맛있냐. 씨팔.”

범진은 선재의 발가락 사이에 혀를 넣고, 발등을 빨고, 발바닥의 둥근 부위를 이로 잘근잘근 씹었다. 차라리 제가 성기를 빠는 게 낫겠다 싶게, 범진은 발 곳곳을 핥고 빨고 물었다. 뒤로 나동그라진 선재가 일어나지도 못하고 발 두 짝을 범진에게 계속해서 빨렸다.

“그…만 좀 해.”

“발씹 함 해볼래요.”

남의 의견을 듣겠다는 투지만, 결국 범진은 제 뜻대로만 모든 일을 했다.

선재는 두 발이 범진의 성기에 가 닿은 것도 뒤늦게 알았다. 다리가 높게 쳐들어 졌다 무릎만 접힌 상태였는데, 곧 발끝에 물컹거리는 게 닿았다. 축축하게 젖어 있기도 하고 발바닥의 부드러운 부분에 닿을 땐 딱딱하게도 느껴졌다. 제대로 밟아봐라, 하는 범진의 말 때문에 뭐가 닿았는지를 깨달았다. 그래도 입으로 하는 것보단 아프거나 하지 않아서, 선재는 범진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다리 벌리고.”

모여있던 무릎이 범진의 손에 가차 없이 벌어졌다. 다리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벌어지자, 성기를 어색하게 감싼 두 발이 선재의 눈에도 확실히 들어왔다. 밟으라는 범진의 재촉에, 선재는 발바닥 두 면으로 성기 기둥을 어색하게 비벼보기 시작했다. 범진은 선재가 다리를 모을까, 이미 손으로 무릎을 꽉 잡은 상태였다. 그냥 움직이기도 힘든데 무릎까지 잡혀 선재는 성기에 대고 미숙한 발짓밖엔 할 수가 없었다.

발 사이에서 성기가 미끄러지고, 엇나가고, 귀두에 닿은 발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기도 했다.

범진은 어째 그런 실수를 할 때마다 더 흥분을 했다. 중심을 못 잡고 성기를 발로 차듯 밀어내면, 범진이 짐승처럼 눈을 세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더 밟아봐라, 말했다.

선재는 제 성기가 비벼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얼굴을 붉혔다. 입술을 꾹 물고 범진의 성기를 발로 비볐다. 성기에 묻었던 침은 물론, 흰 발이 닿을 때마다 프리컴을 흘리는 성기여서 선재의 발도 물에 적신 것처럼 젖었다. 흉포하게 발기한 성기에 고개가 돌아가기도 했지만, 발로 사정을 시키려니 다른 곳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선재는 다시 범진의 성기를 쳐다보며 발로 이곳저곳을 만졌다. 귀두와 두꺼운 기둥, 불룩불룩하게 튀어나온 부위에도 발이 닿았다.

발바닥 감각이 무딜 때가 되어서야, 범진은 정액을 분출했다. 흰 액이 위로 쏘아져 선재의 종아리와 발등에도 마구 튀었다. 범진이 무릎까지 바지를 올린 탓에 옷이 더러워지진 않았지만, 맨살에 그런 게 닿는 것도 싫었다. 선재는 얼굴을 찌푸리며 범진의 정액을 발과 종아리로 받았다. 범진은 씩 웃는 얼굴로 다가와, 잔뜩 싸지른 정액을 선재의 발가락과 발등, 발바닥에 고루 발랐다. 바르는 내내 끈적한 소리가 났다.

“이상한 짓 그만해….”

“뒤질라면 계속 말해라, 씨팔.”

범진은 그렇게 말하며 선재의 발바닥을 손으로 짝,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저급한 욕설을 계속 뱉지만, 얼굴은 실실 웃는 채였다. 선재가 그 얼굴을 바라보다 끈적해진 발을 이끌고 화장실로 갔다. 클렌저로 아무리 닦아도 막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선재는 30분이 넘게 화장실에 있었고, 결국 덜 씻은 느낌이 나는 채로 바깥으로 나왔다.

거실에선 범진이 발가벗고 잠을 자고 있었다.

황당한 기분을 감추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눈을 감은 채 바닥을 친 범진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안 오냐? 하고 짜증 섞인 투로 물은 범진은 선재가 제 옆에 누울 때까지 다시 잠들지 않았다. 선재는 옷을 대충 갈아입고 범진 옆에서 눈을 감았다. 범진이 좁은 거실 한복판에서 자리를 다 차지하고 누웠다면, 선재는 부엌과 몸을 가까이 한 채 잠을 청했다. 평소 같았으면 쉽게 잠들지 못했을 텐데, 피곤한 일의 연속이어서 눕자마자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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