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1화 (13/29)

외전


집 안은 따뜻했지만, 겨울은 매서웠다. 4월이 되어도 추웠고, 그 탓에 선재는 봄이 와서 꽃구경에 한창인 사람들이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도 발목 전체를 덮는 등산용 양말을 신어야 했다. 배가 많이 나와 양말을 제 손으로 신을 순 없었다. 준희를 가졌을 땐 안 그랬는데, 이번엔 부종도 심하고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손발이 퉁퉁 부어 아침마다 한참을 주물러야 피가 통하는 느낌이 나곤 했다.

“아파….”

“어쭈.”

“아프다고….”

조용히 중얼거린 선재가 범진의 손에서 발을 빼냈다. 어찌나 세게 주무르는지 발바닥이 없어질 것 같았다. 해도 안 뜬 새벽부터 발을 주물러주는 건 고맙지만, 그 마음에 의심이 갈 정도로 아픔이 느껴졌다. 누운 채로 발을 다른 곳으로 뻗었더니,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몰랐다. 결국, 범진의 허벅지 위에 다리를 올린 선재가 마사지는 그만하란 말을 조용히 읊조리듯 했다.

아이가 깰지도 몰라서였다. 따로 잠을 잘 때도 있지만, 최근엔 셋이서 같이 잠을 잘 때가 많았다. 원래는 높은 호텔 침대 같은 것을 썼었지만 낮고 널찍한 저상형 침대로 바꾼 지가 꽤 되었다. 밤늦게까지 그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잠도 언제 들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발과 손이 아프다 싶어 눈을 뜨면, 범진이 지금처럼 저 큰 손으로 손과 발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야, 하고 범진이 선재의 다리를 제 어깨에 걸었다.

“내일 낚시 가자.”

다리가 위로 들려 올라간 채, 선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 말하고 발을 좀 더 높이 들어보았다.

범진의 어깨에 다리를 걸고 있으면 뻐근한 느낌이 덜 하다.

어둑한 방인데도 발목이 얼마나 통통한지는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발 하나는 맨발이지만 다른 한 발엔 등산용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처음엔 수면 양말을 신었지만, 자꾸 벗겨지고, 압박도 되지 않는 것 같아 범진이 사 온 등산용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첫인상이 촌스럽긴 했지만, 기능 면에선 최고였다. 선재는 이제 등산용 양말 없이는 잠도 못 잤다.

맨발 하나를 잡은 범진이 제 코에 발끝을 가져다 대고 킁킁거렸다.

“뭐 하는데…?”

“닌 씨, 발에서도 꽃냄새 나냐.”

“좀… 그만해.”

발가락부터 발바닥까지 범진의 코가 닿아 간지러웠다. 선재는 다리를 빼려고 했지만, 발목이 범진의 손에 잡혀 그럴 수도 없었다. 양말이 신긴 발만 뒤로 빼내며, 선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뺨에 발바닥을 대고 으, 씨,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던 범진은 입까지 댈 기세였다.

“발이라도 좆그치 생겨야지, 씨.”

범진은 뭐가 생각난 듯 혼자 웃었다. 그리곤 발바닥이 얼굴이라도 되는 듯 강하게 뽀뽀를 하고, 선재의 양다리를 들어 다시 어깨에 걸쳤다. 누워서 그 모습을 쳐다보던 선재는, 이제 아무런 말도 안 했다. 범진이 하는 행동을 보고 한숨을 쉬거나 웃거나 했다. 또 저러고 있단 생각이 들면, 들으라는 식으로 긴 숨을 내뱉곤 했다.

“안 가?”

“존나 매정하네.”

“…네가 빨리 가야 한다고 했으니까.”

오늘 새벽부터 볼일이 있다는 말은 범진이 했었다. 사무소 출근이라면 늦은 낮에 해도 문제가 없지만, 다른 지역으로 갈 일이 있으면 새벽부터 분주해지곤 했다. 혹시 몰라 선재도 알람을 맞춰 두었었다. 7시에 맞춘 알람이 제때 울렸을 때, 그 소리를 들은 건 범진이었다. 선재는 요즘 잠귀가 어두워져 범진의 마사지가 아니면 제대로 깨어나지도 못했다. 열두 시간 자는 건 보통이었다.

“빨리 가기 싫은데.”

“…그럼 가지 말든가….”

읊조리듯 말한 선재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어둑한 공간이고, 말소리를 제외하면 범진의 점퍼가 침대 가드에 쓸리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여전히 선재의 다리를 어깨에 건 채로, 범진은 씨바, 니랑 놀까? 했다.

욕, 욕, 하고 선재는 옆에 커다란 몸을 구기며 눕는 범진의 입을 때렸다.

범진은 선재에게 맞는 게 좋은지 입술을 더욱 앞으로 내밀기만 했다. 결국, 옆에 몸을 구기며 누운 범진이 한쪽 팔로 얼굴을 받치고 선재를 내려다보았다.

“손 보자.”

선재가 침대 위에 있던 오른손을 들자, 범진이 손가락부터 잡고 상태를 살폈다.

얼마나 부었는지 그 헐렁했던 반지가 딱 맞았다.

처음엔 잘 끼지도 않더니 요즘은 집에만 있는데도 금반지를 빼지 않는다. 입꼬리를 올린 범진이 선재의 부은 손가락을 하나씩 쥐었다.

“집에서 반지 왜 끼고 있는데.”

“…빼기 귀찮으니까….”

“처음부터 왜 낏냐고.”

선재의 대답이 몸서리쳐지게 좋은지, 범진은 선재의 목에 그대로 이마를 들이댔다.

비비듯 고개까지 이리저리 돌리자 선재가 다른 손을 들어 범진의 머리를 밀어냈다.

구석에 내몰린 채로 뭘 하는 짓인가 몰랐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선재가 아이가 어디에 누웠는지를 찾았다. 방만큼 넓은 침대여서, 아이는 잠들기 직전까지 데굴데굴 구르곤 한다. 몸부림이 별로 없는 아기였는데, 침대가 넓어지니 새벽에도 발밑으로 가 잠을 자거나 한구석에서 쿠션을 안고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오늘은 대각선 방향 구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곰돌이가 그려진 베이지색 내복을 쳐다본 선재가 다시 범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침대 가운데를 비워놓고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웃음이 피식 났다.

“니 웃냐.”

“…웃기니까.”

“뭐가.”

범진이 선재의 손에서 반지를 빼내고, 손바닥부터 주무르기 시작했다. 구겨지는 손을 쳐다본 선재가 그냥,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커다란 손에 잡힌 제 손이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세게 하면 아프다고 말을 해도….”

“니, 씨… 아까부터 자꾸 야한 말 할 거냐.”

“야한 말 한 적 없, 아.”

손가락 네 개가 한꺼번에 잡히자 마디에서도 알싸한 통증이 밀려왔다. 다 하고 나면 시원한데, 할 땐 참 아프다. 조금만 덜 세게 하면 자면서도 마사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적도 없는 야한 말을 했다고는 왜 말하나 몰랐다.

“숨만 쉬어도 꼴리는데 아프다고 앵앵거리면 내 자지가 안 터지고 배기겠냐…?”

이런 소리를 듣는 것에도 충분한 적응이 됐다.

선재는 범진의 눈을 쳐다보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범진의 바지 지퍼가 앞으로 불룩하게 나와 보기에도 민망했다. 다시 눈을 올린 선재가 범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커튼이 푸른색으로 물들었지만, 방 안은 여전히 어둑했다. 밝은색이 아니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선재는 범진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바지 터지겠다….”

“니 얼굴 10초 이상 보면 선다, 원래.”

“…손이랑 발은 아파서….”

아침에도 해줄 것처럼 굴자, 범진의 눈이 빛났다. 손을 주무르던 범진이 움직임을 멈추고 혀로 윗입술을 쓸었다. 손이랑 발 아니라도 할 수 있다, 말하고 선재의 다리로 곧장 손을 뻗었다.

8개월 차에 접어든 배가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고개를 내린 선재가 범진이 바지를 벗기는 것에도 순순히 응했다. 범진이 손으로 선재의 엉덩이를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안 늦어?”

“걍 늦을라고.”

어느 틈에 지퍼를 열고 성기를 꺼내놓은 범진이 그걸 꺼떡대며 선재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한쪽 발에만 양말이 신긴 선재의 두 발이 위로 높게 들렸다. 전반적으로 살이 없는데, 엉덩이는 통통하게 올라있는 편이었다. 임신으로 체중이 증가한 뒤로는 특히 엉덩이 주변으로 살이 많이 붙었다. 범진의 한 손에 잡힌 두 발목이 높게도 올라가 있었다. 위를 한 번 쳐다본 선재가 고개를 내리고 범진이 하는 걸 쳐다보았다.

사타구니 쓸리는 느낌이 나더니, 딱 붙었던 허벅지 사이로 범진의 성기가 빼꼼 드러났다. 내려다보는 범진의 시선에 눈을 맞춘 선재가 파고들어 오는 성기에 다리를 더 안쪽으로 모았다. 씨, 하고 욕을 할 듯 미간을 찌푸린 범진이 뒤로 빠졌다 다시 들어왔다. 성기가 또 허벅지 사이로 빼꼼 드러났다. 배에 무리가 안 갈 정도로만 힘을 줘 다리를 모은 선재가 티셔츠도 위쪽으로 들어 올렸다. 범진은 제 솟은 배에도 쉽게 흥분하곤 했다. 역시나 탁한 눈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범진이, 허벅지 사이로 더욱 힘있게 성기를 밀어 넣었다.

밤이고, 섹스까지 할 생각이었으면 제 성기도 마구 비벼댈 텐데. 선재는 원래 찔러오던 자리보다 살짝 위쪽에서 보이는 범진의 성기에 이 정도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괴롭게 침을 흘리는 저 거대한 성기를 어떻게든 죽여놔야 할 것 같았다. 집에 있으면 거의 대부분을 발기하고 있지만, 어딜 급히 나가야 하는 상황에선 섹스든 유사 행위든 도움을 주곤 했다. 잔뜩 불러온 배에 쿡, 쿡, 범진의 성기가 찍히고 있었다. 펑퍼짐한 티셔츠여서 산처럼 부른 배 위쪽으로 걷는 게 가능했다. 선재는 범진을 쳐다보며 둥그런 배를 끌어안았다. 저번에 이렇게 보았더니 엄청 흥분을 했었다.

“니, 씹, 내 꼴리라고 그래 쳐다보냐.”

성기를 허벅지살에 비비던 범진이 대번에 뜻을 파악했다.

무슨 생각을 못 하겠다고 생각하며, 선재는 다리만 꼭 모아 주었다. 지긋이 힘을 주면 범진의 성기가 팔딱팔딱 뛰면서 살점을 자극하는 게 느껴진다. 배를 안은 채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선재가 범진의 얼굴을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았다.

무리한 행위도 좋지 않고, 큰 진동이 일게 해서도 안 된다. 개별 매트리스라지만 혹시 아이가 소리에 깰 수도 있고. 같이 잠을 잘 땐 이런 것들을 특히나 조심하는 편이었다. 조용조용히 욕을 짓씹는 범진도 그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선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범진이 이따금 눈을 더 내리고, 위로 솟은 배에도 눈길을 보냈다. 부드러운 듯, 그러나 짐승 같은 눈빛에 선재도 입술이 말랐다. 아랫입술을 슬쩍 물어본 선재가 깊은 허벅지 사이를 드나드는 범진의 성기에 발끝을 조금씩 오므렸다. 다리를 한껏 모으고 있어 성기에도 자극이 조금 있고, 구멍도 조금씩 열렸다 닫히고 있었다.

“니 내가, 이것만 해주고 가면 뒤가 근질근질하지.”

이런 행위 중에도 장난을 걸곤 했다. 목에 선 핏대가 서서히 붉어진 빛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저런데도 웃는다고 생각하며, 선재는 미소 띤 짐승에게 목에 맺힌 말소리를 흘려보냈다.

“…안 해줄 거 아니잖아.”

“뭐?”

“…밤까지만 기다리면 되니까….”

“…그래?”

확인하듯 묻자, 선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을 쳐다보던 범진이 진짜 구멍에 삽입하듯 허리를 앞쪽으로 밀었다. 불러온 배 아래쪽이 연속해서 쿡, 쿡 찔리고 있었다. 숨을 들이쉰 선재가 서서히 그 숨을 내뱉었다. 반복된 은근한 자극으로, 선재의 구멍에도 반들거리는 윤기가 돌았다.

말없이 몸을 붙여오는 범진의 행위에, 선재가 입 안에 자꾸 고이는 침을 뒤로 삼켰다. 범진의 성기 끝만 봐도 침이 고이고 목 끝에서 감각이 느껴지는 듯했다. 레몬이나 신 음식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반응이 되듯이, 제겐 범진의 성기가 그러했다. 처음엔 끔찍하기만 한 살덩이였는데 지금은 자동으로 침이 고여도 그 변화가 싫게 느껴지지 않았다. 싫지 않다 뿐일까? 아! 선재는, 갑자기 배 위로 튀는 정액에 몸을 움츠리며 놀랐다.

아쉬운 듯 뒤로 빠지던 성기가 한 번 더 앞을 치고 들어왔다. 허벅지 살결에 정액을 묻힌 범진이 배 위로도 튄 끈적한 정액을 응시하며, 마지막으로 살을 쑤시며 들어갔던 성기를 느릿느릿하게 뒤로 뺐다.

발을 놓자 선재는 다리를 양옆으로 탁, 벌렸다.

여태 범진이 잡아주고 있어 스트레칭처럼 수월하다 느꼈나 보았다.

티셔츠를 입긴 했지만 배 위로 말려 올라가, 입었다고 보긴 무리가 있었다. 거의 벗은 몸으로, 선재는 범진이 뭘 하는지 쳐다보았다.

옆에서 티슈를 뽑아낸 범진은 선재의 허벅지에 묻은 정액부터 손수 닦아주었다.

“밤에만 해주면 되겠냐?”

“…거기는 안….”

구멍에도 범진의 손이 닿자, 선재가 몸을 움찔 떨었다. 직접적인 자극도 없는데 물이 꽤 나온 것 같았다. 배 때문에 한 번에 일어날 수가 없다. 선재는 누운 채로 머리가 아픈 듯이 팔을 이마에 붙였다. 범진은 주름을 반듯하게 펼칠 기세로 꼼꼼하게 주변을 닦았다. 티슈가 정액보다 제 애액 때문에 흥건하게 젖은 것 같았다. 팔을 떼며 아래를 쳐다본 선재가 어느새 옆으로 온 범진 쪽으로 시선을 고쳐 던졌다.

“언제 가는데…?”

“닦아는 주고 가자. 뭘 보낼라고 애를 쓰냐.”

그 뜻이 아닌데.

배에 튄 정액이 닦이는 걸 바라보던 선재가 다시 고개를 들어 범진을 쳐다봤다.

이번엔 손으로 범진의 셔츠 소매도 꽉 쥐었다.

“…늦어도 되면… 손으로 좀….”

“뭐를.”

“….”

그 말까진 나오지 않았다. 서울로 갈 범진은 오늘, 최소한 저녁이 되기까진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15분 거리의 사무소를 향할 때와는 기분 자체가 달랐다. 안정기일 땐 범진과 틈만 나면 섹스를 했지만, 한 2주 전부터 배가 당기고 아파 그럴 수 없었다. 다시 섹스하기 시작한 건 엊그제부터였다. 혹시나 몰라 어제는 하지 않았고, 오늘도 별다른 생각이 든 건 아니었는데. 범진이 냄새를 묻히며 하는 유사 행위에 저도 모르게 몸이 달았나 보았다. 선재는, 이런 부탁을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 얼굴을 많이 붉혔다.

몸이 이러니 손가락 삽입도 직접 할 수가 없었다.

샤워도 범진이 시켜주는데 자위라고 할 수 있을까.

선재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범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씹, 아까 말하지. 손으로 쑤시면서 하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는데.”

범진이 지저분하게 말하는 게 지금은 싫지 않았다.

다리 사이로 돌아간 범진을 긴장된 듯이 쳐다본 선재가 엉덩이를 꽉 잡아 오는 범진의 손길엔 고개를 위로 들었다. 턱 끝이 파르르 떨리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니 내만 보면 구멍 풀지.”

범진이 부러 그런 말을 하며 손가락 하나를 세워 주름을 훑었다.

다시 고개를 숙인 선재가 범진과 눈을 마주치며 가벼운 턱짓을 했다.

“내 같은 새끼한테 그래도 되냐.”

그 틈에 범진의 손가락 하나가 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인상을 쓴 선재가 한쪽 팔을 범진에게 뻗었다. 배 때문에 옆으로 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선재는 사실 이런 행위를 하며 손잡는 걸 좋아했다. 요즘은 범진에게 펠라를 해주면서도 손만은 꼭 잡곤 했다. 아까도 손을 뻗고 싶었는데 다리에 힘을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민 손을 잡은 범진이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중지와 약지가 들어간 구멍이 타원형으로 벌어지며 물을 조금씩 흘렸다.

“니도 함 더 빨아줘야 된다.”

“응….”

사정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범진의 성기는 앞으로만 뻗어 있었다. 선재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자 계속 발기하고 있던 성기가 그 각을 더욱 높이 들었다. 범진은 제 손에서 제일 얇은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잡고 있던 손을, 선재가 더 세게 쥐었다.

앞쪽 돌기부터 뒤쪽에 있는 내벽의 모양까지 범진이 모르는 데라곤 없었다.

“으… 으응….”

“니 젤 좋아하는 데 눌러줄 테니까.”

“….”

선재가 범진의 손을 꽉 잡은 채로 아래를 내다봤다.

“배 아프면 말해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배, 하는 말에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도 같았다. 선재는, 준희를 가졌을 땐 이런 부탁을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욕구도 들지 않았고 배 속 아이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토록 싫어했던 남자에게 이런 짓이나 부탁하는 게 저였다. 범진이 저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선재는 가늠해볼 수도 없었다. 구멍을 파고드는 손가락이 내벽 어디든 가닿고 있었다. 범진의 손을 세게 쥔 선재가 무릎도 크게 열었다. 사타구니가 바짝 설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 있는 걸 보고 있는 사람이 범진인 게 좋았다. 그게 좋은 것 같았다.

몇 번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범진이 제일 예민한 점막을 정확히 건드린 탓에 선재는 맑은 액을 성기 앞으로 금세 모았다. 물처럼 몇 방울이 떨어지자 그제야 손에서 힘을 놓았다. 침대 위로 떨어진 손에 떨림이 지속되었고, 아랫배도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선재는 자연스럽게 두 손을 배로 가져가 심호흡을 했다.

구멍에서 손을 빼낸 범진이 선재의 엉덩이를 톡톡 때렸다.

“밤에 좆나게 쑤시준다. 이걸로.”

선재는 제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보는 범진을 향해 느리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끔찍할 정도로 싫었던 말이 이제는 좋았다.

마음과 욕구를 그렇게 표현하는 범진이, 선재는 이해가 갔다.

덩달아 쑤셔달라는 말은 못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렇게 해달라는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범진에 비하면 표현도 아닌 말이지만, 제겐 커다란 변화였다.

범진의 도움을 받아 한 번에 일어난 선재는 화장실로 가 다리와 구멍 주변을 대충이나마 씻었다. 엉덩이를 내밀고 있으면 범진이 뒤로 와 골과 사타구니에 물을 적셔 주었다. 향기가 나는 로션을 발라주고 하얀 팬티까지 입혀 주었다.

누가 이렇게까지 해줄까?

처음엔 많이 민망했지만 갈수록 고맙다는 마음만 들었다.

선재는 속옷만 입은 채로 범진의 성기를 화장실에서 한 번 더 빨아주고 밖으로 나왔다.

사정시키기까진 역시 시간이 걸려서, 선재가 입으로 좀 물고 있다가 범진이 선재를 앉혀놓고 자위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입 안으로 쏘아진 정액은 삼키고, 얼굴에 묻은 정액은 따뜻한 물로 헹궈냈다.

밖은 이미 밝아 있었다.

통나무 향을 맡으며 거실로 나온 선재가 범진을 향해 염려하며 물었다.

“진짜 늦어도 돼?”

“내가 대장인데 지들이 안 괜찮으면 뭐 어쩌라고.”

선재는 범진의 손을 잡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커튼 때문에 아직 저녁이나 깊은 새벽 같았다.

거북이처럼 자고 있던 아이의 자세도 똑같았다.

문을 열어 빛이 들어오던 주변이, 다시 어두워졌다. 범진이 문을 닫자 아까처럼 잔잔한 어둠이 깔린 방 안으로 돌아왔다. 선재는 범진이 누워봐라, 해서 원래 누웠던 자리에 누웠다. 젖었던 시트 대신 납작한 패드 이불이 깔린 채였다.

“한숨 자고, 깨나면 전화해라.”

“응.”

동그랗게 말려 있던 등산용 양말을 펼치며 범진은 선재의 발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한쪽 다리를 아까처럼 어깨에 걸치고, 범진은 선재에게 두꺼운 양말을 천천히 신겨 주었다. 와중에도 냄새를 맡고 뽀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좀 더러운 것 같긴 하지만, 선재도 아까처럼 그만하란 말은 하지 않았다. 범진이 발바닥에 뽀뽀를 하면 작은 심장들이 사방에서 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이 춤을 추고, 물고기가 되어 마음속에서 유영을 하는 것 같았다.

* * *

1층에 대부분의 방이 있고, 2층은 다락방처럼 생긴 공간이다.

셋이서 자주 잠을 자게 된 후로는 2층에서 섹스를 하고 내려올 때가 많았다. 처음엔 이불만 깔려 있었지만, 패드나 토퍼가 깔리고, 최근엔 커다란 매트리스를 아예 놓게 되었다. 낑낑거리며 매트리스를 들고 올라가던 배달 기사들이 범진의 도움을 받았다. 범진은 힘도 없는데 무슨 가구 배달을 하느냐고 윽박을 지르면서도 그들을 도와주었다. 씨팔, 씨팔, 하는 소리가 일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었다.

범진은 열이 받은 와중에도 거실로 나온 선재에게 진한 뽀뽀를 해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잔뜩 혼이 난 기사들은 하나같이 범진과 연배가 비슷해 보였다.

풀이 죽어 내려오는 그들에게 주스라도 떠줄까, 싶었던 선재는 범진 때문에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한 시간 후였나. 니 그 새끼한테 왜 잘해주려 했냐고 묻는 범진의 말에, 선재는 어이가 없었다. 수고했다고 주스를 떠주려는 것에도 범진은 날을 세웠다. 시장이나 마트를 가게 되면 어찌나 주변 사람들을 노려보고 겁을 주는지, 같이 가기도 꺼려졌다. 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임신한 남자라면 당연히 오메가라고 생각할 사람들의 반응이 범진은 짜증스러웠던 모양이다. 알파도 아닌 남자들이 선재의 배나 얼굴을 쳐다보거나, 의도가 불순한 내기를 거는 경우가 허다했다. 범진은 일을 크게 만드는 데엔 도사였다. 그럴 때마다 다가가서 시비를 걸고, 나이가 더 많아 보여도 손부터 올리고 보았다. 그 탓에, 선재는 근처의 규모가 작은 재래시장에만 들렀다. 거기에 가면 범진도 저도 아이도 다 행복했다.

오늘도 그 시장에 들렀다.

“아부지… 주니 닥 주세요….”

“닥치라 하는 줄 알았네.”

준희를 안고 있던 범진이 선재를 향해 씩 웃었다. 니도 그래 들었지. 하고 묻고, 선재는 그런 말 좀 아기 앞에서 하지 말라고 범진의 팔을 쳤다.

“우리 애기 닭 먹고 싶냐?”

“녜에….”

말만 재래시장이지 규모도 작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싼 데가 많았다. 그걸 감수하고도 이곳에 오는 이유는 범진이 누군가와 싸울 요소가 적기 때문이었다. 선재는 불같은 성질의 범진이 언제 폭주를 할지 늘 조마조마했다.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대하고 쳐다보는 것이, 선재는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준희를 임신했을 때도 받았던 눈초리였다. 그때 누가 저를 생각해주었나. 누구 한 명이라도. 선재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때 생각에, 선재는 고개를 들어 범진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한쪽 팔로는 준희를 안고 있고, 한쪽 손은 제 손과 엉켜 있었다. 선재의 눈빛을 느꼈는지, 범진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닭강정 그거 저기 있는 거야.”

선재가 이미 지나친 구역을 가리켰다.

“난 또 씨, 잘생겼다고 봐 주는 줄 알았네.”

그 말은 가볍게 넘긴 선재가 범진의 손을 이끌어 방향을 틀었다.

다른 생각은 몰라도 혼자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던 걸 범진에게 들키긴 싫었다.

선재는 앞서서 걸으며 범진의 손을 당겨 잡았다. 성질 급한 범진은 금방 저를 앞서서 걷곤 한다. 웬일로 끌어주는 대로 천천히 걸어오는 범진이 낯설어, 선재는 자꾸 뒤를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니가 끄니까 맛이 색다르네, 했다.

아이를 안고 그런 말을 하는 범진이 웃기게 느껴졌다.

선재는 범진을 보면서는 웃지 않고, 고개를 앞쪽으로 돌린 후에야 몰래 조금 웃었다.

날이 전반적으로 맑긴 한데,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다. 밤이나 아침엔 한겨울 같은 추위가 느껴지곤 한다. 낮에만 반짝 따뜻해지는 4월의 날씨를 이렇게 낯설게 느껴본 적이 있었나. 선재는 망 안으로 떨어지는 햇빛에 그런 생각을 해봤다.

천막에 장식을 매달고 있는 아주머니가 선재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 주 안 봤는데 배가 더 나왔어.”

너스레 떨 듯 입을 연 아주머니가 주걱으로 철판을 탁탁 두드렸다. 네, 저도 놀라요, 하고 대답한 선재가 달달한 닭강정과 매운 닭강정을 나눠서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린 여자는 주문이 익숙한 듯 능숙하게 닭강정을 퍼 종이상자에 나누어 담았다. 아이가 당장 먹을 수 있게 종이컵 사이즈로도 하나 주문한 선재가 곧장 그걸 받아 아이에게 닭강정 한 점을 입에 넣어 주었다. 암, 하고 받아먹은 아이의 입에 소스가 조금 묻었다.

“준희 하나 더 줘?”

“내 입에도 한 개 넣어봐라.”

범진과 눈을 마주친 선재가 종이컵에서 제일 크고 못생긴 닭강정을 한 조각 찍어서 범진의 입가로 가져갔다. 한입에 닭 조각을 삼킨 범진이 선재의 얼굴을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장소나 때를 가리지 않고 범진이 이렇게 웃는 걸 이제는 안다. 선재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포장된 닭강정을 받아들었다. 계산을 하고 다시 범진의 손을 잡았다.

“니는 그만 이쁠 필요가 있다.”

누가 들을까 봐 민망한 소리를, 범진은 잘도 했다.

밖에서 저런 얘기를 꺼내면 부끄러움이 밀려들곤 했다. 목소리도 어찌나 큰지 시장에 얼마 없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다 들었을 것 같았다. 자, 왜 안 되냐면, 하고 턱도 없는 소리를 하는 범진을 향해 선재가 손을 뻗었다. 입 막는 시늉을 하자 범진이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선재가 그냥 빨리 가자고 재촉부터 했다.

“그만해, 진짜….”

“니가 그만 이쁘면 그만할라고.”

“네 눈에나 그렇지….”

중얼거림을 들은 범진이 고개를 돌렸다.

“어이, 니 이쁜 거 빼면 아무것도 없다.”

“….”

선재는 고개를 들고 범진을 쳐다봤다. 그 말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다는 범진의 말이 귀에 남았다.

반찬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배송되어 오고, 과일이나 채소도 범진이 매번 상자째로 들고 오곤 한다.

시장에서 사는 건 간식거리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이 시장에 오면 꼭 방문하는 빵집이 있다.

매대에 잔뜩 진열된 빵을 지나치지 못한 선재가 눈에 보이는 빵 여러 개를 바구니에 담아 직원에게 건넸다. 직접 팔기보단 주로 배송을 하는 곳이었다. 계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자, 선재는 아까부터 마음에 걸렸던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

“나 진짜 아무것도 없어?”

“뭐.”

“아무것도 없냐고.”

한쪽 눈썹을 들고 선재를 내려다본 범진이 뭐라고? 하며 되물었다.

“네가 나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 그냥 그 말 생각나서.”

“이쁜 거 빼면 아무것도 없지.”

“…그래?”

왠지 욕하는 것처럼 들렸다.

제 눈에 이쁘지 않으면 저를 버릴 건가? 범진을 처음 봤을 때가 재작년이니, 햇수로 3년이 지나고 있었다. 지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 범진이 아직 관심을 보이는 것에도 납득이 갔다. 한 5년만 가도 준희와 둘이서 살게 될 수도 있겠네. 배 속 아이는 범진이 키우면 되니까…. 마음과 몸을 이렇게 만들어놨으면서, 범진은 얼굴이 못나 보인다는 이유로 헤어짐을 고할 수도 있겠구나.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선재가 직원이 건네는 빵 봉투를 받아들었다. 닭강정에다 빵까지 샀으니 차로 돌아가도 될 듯했다.

조수석에 몸을 실은 지 5분이나 지났을까.

선재는 빵 봉투를 안은 채로 잠이 들었다.

배가 나와 그마저도 곧 떨어질 듯했다. 운전을 하다가 옆을 본 범진이 빵 봉투를 뒷좌석으로 던지듯 두었다. 순식간에 처박힌 빵 봉투에, 옆에 있던 아이가 잠을 깼다. 준희는 카시트에 앉아 팔을 뻗으며 빵… 하고 조용히 웅얼거렸다.

“애기 빵 먹을라고?”

“녜에….”

범진이 룸미러를 조절해 뒤쪽을 쳐다봤다.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텐데도 앞으로 팔을 뻗은 아이가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했다.

“닭도 먹고 빵도 먹고 니 돼지 되겠다.”

“으응…. 주니 대지 안 댈래요.”

“왜 싫은데.”

준희는 요즘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들었다. 모르는 단어를 들어도 말투로 맥락을 파악할 줄 알았다. 눈을 깜박거리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대지면 압빠랑 아부지랑… 못 살아요. 시러요.”

“아부지가 설마 니를 마굿간에다 집어넣겠냐.”

“마국간… 에.”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저렇게 웃고 만다. 범진이 뒤쪽을 쳐다보다 덩달아 픽, 바람 새듯 따라서 웃었다.

“야, 최준희. 아부지 봐봐라.”

아이 자리에선 범진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와 어깨만 조금 보일 뿐이다. 앞 좌석에 시선을 고정한 준희가 네에, 하고 팔다리를 움직였다.

“알파 놈들은 다 쓰레기다. 알겠냐.”

“….”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준희가 입만 헤, 벌리고 앞을 쳐다봤다.

“닌 아부지랑 평생 살아야 돼.”

그 말엔 끄덕끄덕, 준희가 고개를 움직였다. 기분이 좋은 듯 말도 덧붙였다.

“녜에, 주니 아부지라앙.”

낚시터에 도착할 때까지 선재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범진이 준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곁에 있던 선재가 질색하며 애한테 왜 그런 이상한 말을 하느냐 한마디씩은 해왔지만, 오늘은 갑자기 깊은 잠에 빠져들어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깨어난 건 20분 정도가 더 지나서였다.

눈을 뜬 선재는 주변부터 두리번거렸다.

차 안이 조용했고,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뒤를 쳐다보니 카시트에 있어야 할 아이도 없었다. 빵 봉투를 안고 있었는데 떨어트렸나, 싶어 아래를 쳐다봐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문부터 연 선재가 갑자기 훅 끼치는 찬바람에 대충 걸치고 있던 점퍼를 제대로 입었다.

주차장의 규모는 꽤 큰 편이었다. 띄엄띄엄 주차된 차들 옆으로 커다란 캠핑카도 몇 대 자리해 있었다. 선재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남편, 이라고 심플하게 저장된 이름은 제가 고쳐서 저장한 것이다.

괜히 코를 훌쩍이며 남편이라는 글자를 쳐다본 선재가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주변 경관이 근사했다.

아직도 날이 어둑해지면 시린 추위가 엄습해오곤 한다. 집 주변에 있던 나무들을 떠올린 선재가 이곳의 나무는 어떻게 이렇게 푸른가 생각했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앞으로 가보자 바위들 아래로 나 있는 물가도 있었다. 범진이 여름엔 계곡에 가자고 말했는데. 그래도 이곳이 그런 계곡 같지는 않았다. 위쪽이나 아래쪽으로 가면 물살도 세고 그럴는지. 선재는 여름 계곡을 생각하다 자연스럽게 부푼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땐 이 아이도 태어나 있겠지. 8월이면 태어난 지 2개월이 좀 안 되었겠다. 2개월이면 정말 작고 여린데. 그런 아기를 데리고 계곡을 정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계곡도 아닌 곳에서 오지도 않은 여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재는 몸을 돌리고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공기도 좋고 눈도 즐거워 이대로 조금 걷기로 했다. 텐트가 있는 쪽으로 걷다 보면 범진과 아이를 마주치지 않을까? 날이 많이 풀려, 사람들은 캠핑을 즐기러 이곳으로 모인 것 같았다. ‘낚시 / 캠핑’이라고 쓰인 건물도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훑어본 선재가 멀리서 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들도 쳐다보았다. 작은 낚시 의자 위에서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게 콧잔등에 내려앉고 있었다.

애기 니 진짜 돼지 될라 그러냐.

애기, 에서 고개를 돌린 선재가 솜사탕 트럭 앞에 선 범진을 쳐다보았다.

“우응….”

범진의 품에 안긴 채로 얼굴을 든 준희가 우응… 하고 돼지는 싫다는 듯이 반응했다.

“먹고 싶냐?”

“녜에….”

“아저씨요. 이거 일단 하나 줘보세요.”

쌀쌀한 초봄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다. 솜사탕에 아이스크림을 넣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범진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하늘색과 분홍색, 노란색 솜사탕이 납작하게 눌리자 아이가 우, 우아, 하고 신기한 듯 박수를 쳤다. 작고 힘도 없는 손이어서 여전히 소리는 나지 않았다. 솜사탕 위엔 아이스크림과 시리얼, 분쇄 쿠키, 톡톡 터지는 작은 사탕 같은 것들이 연이어 올라갔다. 뭐 저딴 게 다 있나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던 범진이 품에 안긴 준희에게 눈길을 줬다.

“니 이빨도 다 빠지겠다.”

“주니에…?”

“그래, 니 이빨.”

“으, 으응….”

싫다고 말을 끌자, 범진이 고개를 숙여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이는 빠지기 싫으냐? 묻고, 아부지한테 뽀뽀해주면 안 빠진다, 하고 거짓말을 쳤다. 그 말에 준희가 곧바로 일어나듯 상체를 들어 범진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주니 이빨, 하고 잘 있나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은 두 손으로 입 안의 치아를 더듬는 아이의 모습에, 범진이 니 누 닮아서 이래 이쁘냐, 하고 머리를 비볐다. 등을 단단히 받친 채여서 아이도 마음껏 뒤로 넘어갔다.

….

범진도 처음에는, 어쩌면, 좋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 처음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선재는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해주는 범진이 고마웠다. 이쁜 거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도, 저 정도로 아이에게 잘해준다면 서운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멈춰 있던 선재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얀 길 위엔 작은 쓰레기도 하나 없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본 범진은, 선재를 보자마자 어디서 튀어나왔냐고 했다.

“뭐가.”

코를 훌쩍인 선재가 범진의 옆으로 가 섰다. 종이에 말린 솜사탕이 칼로 쓱쓱 썰리고 있었다.

야, 하고 선재의 뺨에 손을 올린 범진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두 덩이로 갈라진 솜사탕 아이스크림을 든 상인이 눈 둘 데를 찾았다. 다 만들어졌는데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손을 뻗고 있는 건 작은 아이뿐이었다. 그 손엔 이 큰 걸 쥐여 줄 수 없는데. 상인은 덩치 큰 남자가 “진짜로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았다.” 하고 손을 내리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최대한 웃는 낯을 하고 덩치 큰 남자에게 솜사탕 아이스크림을 내밀어 주었다.

한 손으로 두 덩어리를 잡으려다 어중간하다 느꼈는지, 범진이 품에 있던 아이를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다.

“준희 이리 와. 좀 걷자.”

그 틈에 손을 내민 선재가 준희의 손을 잡았다.

“이게 뭔데…?”

“모른다.”

범진의 양손에 쥐어져 있던 솜사탕 아이스크림을 선재가 하나 가져갔다.

“준희 이거 먹을 수 있어? 너무 크다.”

“아, 주니가.”

준희는 잡고 있던 선재의 손에서 제 작은 손을 빼내 두 손을 앞으로 바짝 내밀었다. 아이의 눈을 쳐다본 선재가 솜사탕 아래를 감싸고 있는 종이 면을 아이의 손에 제대로 쥐여 주었다. 떨어트릴 정도로 무거운 건 아니니까 어떻게든 잡고 먹어보라 건넸다. 맨 위에 있던 종이를 벗겨내자 예쁜 색깔의 솜사탕이 드러났다.

“이야… 이딴 걸 먹으라고 판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범진이 니 안 먹으면 버린다, 하고 솜사탕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

한입이 크게 베어 물려 있었다. 안에 단 것들뿐이니 먹자마자 입에 물렸을 것 같았다. 손을 내민 선재가 범진에게서 솜사탕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맛을 조금 보았다. 달긴 한데 나쁘지 않았다.

“…괜찮은데….”

입덧할 시기가 지났을 때도, 선재는 달달한 음식을 자주 찾곤 했다. 도넛을 시작으로 초콜릿, 약과, 호떡, 젤리, 케이크…. 집이 산골에 있어 편의점도 근방엔 없었다. 범진에게 뭐 사 와달라 말하기가 미안해 처음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몸에도 나쁜 것들이 아닌가. 그렇게 참던 선재가 터진 건 2층 다락에서였다. 섹스가 끝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으로 누워 있는데, 범진이 곁으로 와 오늘은 여기서 자자고 말을 했었다. 아기 깨면… 하고 훌쩍거리는 제 머리를 얼마나 쓰다듬어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범진이 분위기에 맞지도 않게 강생이 새끼. 강생이 새끼. 하는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었다. 괜히 강아지가 된 듯한 기분은 들지만, 강아지만큼 어렸던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남지 않아 슬퍼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울다가 먹고 싶은 게 생각이 나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단 말을 했었다. 집엔 그 후로 각종 디저트류가 가득 쌓이게 되었다.

“그래서 니 준다 아니냐.”

선재는 한입을 더 베어 물며 범진을 쳐다봤다.

“아니면 바로 버맀지. 쓰읍.”

그러곤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 범진이 남의 텐트를 퍽퍽 쳤다.

아, 하고 다가가려던 선재가 그 텐트가 범진이 예약해둔 텐트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칠 건 뭔가. 텐트 간 거리도 꽤 되고, 낚시를 하던 사람도 그로부턴 멀리 앉아 있었다. 조용하고 괜찮겠다고 생각한 선재가 고개를 내려 아이가 솜사탕 아이스크림을 잘 먹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먹기 힘들어?”

“녜에…. 주니 안 먹을께요….”

묻자마자 아이는 손에 들렸던 걸 바로 앞으로 내밀었다. 선재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하나 구해, 거기에 아이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넣었다. 색소 때문에 아이의 윗입술과 혀가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힘들게 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먹고 싶은 거 먹어서 좋았지?”

“녜에….”

“차에 닭강정 있으니까 그거 좀 있다 먹자.”

“녜에…!”

“빵도 있어.”

“녜!”

한 손엔 비닐봉지, 한 손엔 솜사탕 아이스크림이 들린 채였다. 선재는 손이 없어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손에서 손가락 하나만 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네! 하면서는 두 팔을 위로 번쩍 들었던 준희가 선재의 손가락 하나를 야무지게 잡았다.

범진은 낚시 의자를 세우고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면 선재는 범진과 종종 낚시터로 향하곤 했다.

낚시 경험이 없는 선재에게 범진은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사실 별로 알려주는 건 없었다. 이게 떡붕어고, 이게 배스다, 했다. 그러면 선재는 그 고기를 그물로 받아 물에 빠트리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너무 작은 것 같으면 그물을 앞쪽으로 풀어 그 고기를 놔주었다. 처음에 몇 번 그랬었지만, 낚시를 끝낸 범진이 그 고기들을 다 놔주는 걸 보았다. 먹는 거 아니야? 물었다가 선재는 범진의 가벼운 꿀밤을 맞았다. 민물고기 잘못 먹으면 큰일 난다, 하는 말을 들었다.

커다란 나무가 드리워진 자리에, 차는 늘 주차되어 있곤 했다.

허름한 낚시터를 찾는 이유라곤 오직 그것뿐이었다.

낚시가 끝나면, 둘은 차에서 섹스를 했다.

넓고 높은 차내라 자세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 하고 처음에 놀란 얼굴을 했던 선재도 차츰 그 행위를 자연스럽게 여겼다. 낚시터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았던 낚시꾼 남자는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게 보였고, 차도는 멀리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금세 잊혔다. 선재는 상체를 들고 있다가 범진이 내려오라고 하면 서서히 앉기만 했다. 그러면 구멍을 비집고 범진의 성기가 들어왔고, 말라 있던 내벽에서도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선재는 누가 볼까 봐 무서우면서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범진의 성기를 넣은 채 몸을 앞뒤로 조금씩 움직였다. 옷을 입어도 부푼 배가 가려지지 않았다. 범진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게, 그 눈빛이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범진이 흥분을 해서 엉덩이를 짝, 짝, 하고 가볍게 치면, 그에 맞추어 몸을 떨었다. 서서히 오른 제 성기에서 물이 줄줄 흘러도 범진은 더럽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아깝다고 했고, 손으로 너저분하게 만지며 이쁜 거, 하는 말을 꼭 했다.

“힘드냐?”

“아니.”

“얼굴이 시뻘건데.”

“더워서…. 옷 벗어야겠다.”

두 볼이 발갛게 익은 선재가 입고 있던 점퍼를 벗었다. 괜히 낚시터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범진은 바로 앞에서 추울 건데, 하고 말을 늘이며 선재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점퍼를 벗었던 선재가 벗자마자 느껴진 추위에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이리 와라. 가서 낚시하게.”

“…응.”

텐트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다시 옷을 입은 선재를 향해 범진은 손을 뻗고, 선재는 그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작은 의자 위로 머리만 빼꼼 드러난 아이의 귀여운 뒷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선재는 중간에 앉았고, 범진은 맨 끝 의자에 앉았다.

초반에만 그물 담당이었지 이젠 예사롭지 않은 찌의 움직임을 보고 낚싯대를 올리는 것쯤은 보통으로 한다.

아이는 뭘 안다고 골똘한 표정으로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준희 뭐 봐?”

“주니 꼬기….”

“아부지가 잡아준다고 했어?”

“녜에.”

낚싯대 세 개가 정확히 세 사람 앞에 놓여 있었다.

고소한 떡밥 냄새도 솔솔 풍겼다.

선재는 옆에서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는 범진에게도 시선을 던졌다.

못생기진 않았지만 잘생긴 것도 아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선재가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광 연두색과 주황색이 섞인 찌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물결에 흔들리는 정도로는 낚싯대를 들면 안 되고, 어느 부분까지 갑자기 쑥 빠지게 되면 그때 낚싯대를 들면 된다. 아이의 낚싯대와 제 낚싯대를 번갈아서 쳐다보던 선재가 코를 훌쩍였다.

그렇게 추운 것 같진 않은데 아까부터 계속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춥냐.”

“아니.”

대답한 선재가 다시 찌에 정신을 집중했다.

맨 위에 있던 형광 연두색이 쑥 하고 사라졌다.

어, 하고 느리게 일어난 선재가 낚싯대를 위로 들어 올렸다. 걸려든 물고기는 작은 붕어였다. 힘이 센 아기붕어였는지 찌가 순식간에 사라졌었다. 선재에게 손맛만 느끼게 해주고, 낚싯바늘에서 물고기를 빼거나 떡밥을 끼우는 일은 범진이 했다. 이거 애기 니 거다, 하고 준희를 향해 작은 붕어를 흔들었다. 준희는 제 물고기라고 신이 난 듯 두 팔을 위로 번쩍 들었다. 셋 다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아이는 옷매무새를 잘 여밀 줄 모르니 옷이 자꾸 올라갔다. 만세를 하면서는 턱이 파묻혀 손을 내려도 엉성한 모습 그대로였다. 어깨만 커진 아이를 바라보던 선재가 점퍼를 내려주었다. 준희 고기 잡아서 좋겠다, 하자 아이는 네에, 하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재밌긴 한데, 자꾸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게 힘들었다.

선재는 다섯 마리의 붕어를 잡은 뒤론 의자에서 앉아 범진만 쳐다봤다.

찌가 움직이면 내 거, 하고 범진의 팔을 잡았고, 아이 앞 낚싯대가 움직여도 범진아, 하고 옆에 있는 팔을 만졌다.

범진은 씩씩거리면서도 계속 왔다 갔다 했다.

그물에도 고기가 가득했다. 그러게 왜 굳이 낚싯대를 세 개나 던져놔서…. 선재는 제 것은 접으라고 범진을 향해 말할 참이었다. 옆으로 와 앉은 범진에게 손부터 뻗었다.

“또 잡혔냐.”

범진이 벌떡 일어나자 손도 그의 허벅지에 닿게 되었다. 고개를 든 선재가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고, 내 거는 하지 마.”

왜, 하고 털썩 앉은 범진 때문에 의자가 조금 흔들렸다.

“두 개만 해도 충분하잖아. 고기 엄청 많은 것 같은데.”

“…야.”

빤히 쳐다보던 범진이 대뜸 야, 하고 불렀다. 마주 보고 있는데도 뒤돌아선 사람을 부르듯 한다. 왜, 하고 대답한 선재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 많이 좋아하냐?”

갑자기 그런 소리였다. 처음에만 마지못해 좋아해, 좋아한다, 하고 기계처럼 말했지만, 요즘은 선재도 그 말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생뚱맞은 말에 가만히 얼굴을 쳐다보던 선재가 코만 한 번 훌쩍였다.

“모르겠는데….”

“뭐?”

흥분한 범진이 언성을 높였다.

장난을 쳐도 이렇게 화내듯 반응하니 어쩔 수 없다. 선재가 금방 말을 고치며 범진을 의자에 앉혔다.

“좋아해, 좋아하니까 같이 살지.”

“진짜로.”

“그래, 좋아해.”

“니 마음 바꾸면 알지. 내가 니….”

“이상한 말 할 거면 하지 마.”

“이게 요새는 겁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해가지고.”

실실 웃은 범진이 선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민물고기 냄새가 나는 손인데도 선재는 가만히 있었다.

“니 이래 보니까 조혼나게 이쁘다.”

“….”

“바로 빨고 박고 싶다.”

가까이 다가온 범진이 그런 말을 속삭였다.

선재는 코만 훌쩍거리며 범진을 쳐다봤다.

“…너는 조혼나게 못생겼어….”

“뭐?”

선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범진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용히 한 말이지만 범진의 귀엔 또렷이 들렸다.

“…나는 너 못생겨도 같이 사는데….”

선재는 제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다.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꾹 닫았다.

“뭐.”

“…뭐.”

범진의 말을 또 따라서 해본 선재가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시장에서 들었던 말이 잊을 만하면 생각이 났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왜 그런 말이 자꾸 떠오르나 몰랐다. 솜사탕 트럭 앞에서 그런 말쯤은 쉽게 넘길 수 있다는 듯 굴지 않았나. 선재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제게 당황이 되었다. 얼굴을 만지려다 앞에서 멈칫한 범진을 향해 끝내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범진은 잠시 어디로 가는가 싶더니 간이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뒤로 빙 돌아 이쪽으로 오는 범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선재는 옆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물가로 시선을 던졌다. 의자를 지나친 범진이 제 앞으로 와 서는 게 보였다. 고개를 든 선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니 코 나온다.”

범진은 말이 끝나자마자 선재의 코 밑을 손으로 만졌다. 진짜 콧물이 나왔던지 뭐가 슥 닦이는 느낌이 났다. 하지 말라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는데, 범진은 안에 있는 콧물까지 빼주려 콧방울도 한번 세게 쥐었다 놓았다. 벤치에서 앉아 있을 때처럼 얼굴이 벌게진 선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쪽팔렸다.

범진은 대수롭지 않단 얼굴이었다.

선재는 콧물을 닦인 것보단 이상한 표정을 지은 게 부끄러웠다.

얼굴이 뒤로 밀릴 정도의 힘 때문에 평정을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샤워도 범진이 시켜주고, 섹스 뒤처리도 범진의 몫이었다. 콧물이 뭐 대수일까?

그런데 콧물을 닦이며 못생긴 얼굴을 보이는 건 싫었다. 못생기면 취급도 안 해줄 범진에게 그런 얼굴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선재는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눈을 위로 들었다.

범진이 옆에 털썩 앉으며 또 의자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야….”

“…마음대로 그렇게 하지 말지….”

부름에 그렇게 반응한 선재가 고개를 범진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니 별로 안 이쁘다.”

“….”

“니 조혼나게 못생겼다. 니 콧물 흘리는 거 동네 칠푸이 같다. 아냐?”

“….”

입꼬리가 위로 잔뜩 올라간 범진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했다. 옆을 슥 쳐다본 선재가 그 얼굴에 더욱 인상을 썼다. 뭐가 저렇게 즐거워서.

“근데 내 기분이 씨, 뒤질라게 좋네.”

“…그만 웃어.”

왠지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선재는 자꾸 샐샐거리기만 하는 범진이 얄미웠다.

손으로 팔을 밀어내도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옆으로 밀리기만 한다.

미간을 팍 찌푸리고 그만하라 말한 선재가 갑자기 불쑥 가까워진 범진의 얼굴엔 말문이 막혀버렸다.

“조끄치 생긴 것들끼리 끼리끼리 만나고, 좋네.”

“….”

“…씨….”

코앞에 선재의 얼굴을 둔 범진이 씨, 하고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이쁜 거를 이쁘다고 하지…. 이거를….”

“…누가 뭐래.”

“…내 말 이상해도 그러려니 해라.”

손을 올린 범진은 아까처럼 멈칫하지 않았다. 씻고 왔다고 선재의 코를 풀어주고, 뺨도 툭툭 튕기며 만졌다.

“내 돌대가리라서 그렇게뿐이 표현을 못 한다.”

“….”

“…알겠냐.”

“…알았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선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침부터 준희를 어린이집 봉고에 태워준 선재가 선생님께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멀리 위치한 어린이집을 매일 다니게 할 순 없었다. 아무리 아이가 좋아한다고 해도 3일 이상 보내기는 어딘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범진에게 걱정이 된다고 매번 가서 보고 오라 말을 할 수도 없고. 결국 일주일에 이틀. 선재는 월요일과 수요일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곤 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가 준희 외에도 둘이나 있어 같이 차를 태워 보낼 수 있었다. 사정이 있어 할머니 집에 맡겨진 아이와 요양차 이곳으로 온 젊은 부부의 아이, 준희. 이렇게 셋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녔다.

맨 처음엔 범진이 태워줬지만, 준희는 친구들과 같이 차 타는 걸 좋아했다.

어쩔 수 없이 봉고에 아이를 태워 보낸 선재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준희가 배 속에 있을 땐 이렇게 배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그것도 벌써 4년 전인가? 시간이 너무 금방 가버린 것 같았다. 서울에서도 임신한 남자 오메가에겐 더럽고 저급한 눈빛이 들러붙곤 했다. 어쨌든 같은 남자끼리 붙어먹고 임신까지 했다는 시선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오메가 남성이 알파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 경우 임신될 확률이 매우 낮은 편이었다. 자주 있는 케이스는 아니었다. 선재는 꽤 오래 정체성 확립을 하지 못했었다. 제 몸을 싫어하기도 했고, 일반 고등학교를 나와 그들을 접촉해볼 기회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에 진학하게 된 교육 기관은 오메가만 입학이 가능한 직업 학교 같은 곳이었다. 학위 취득이 가능하긴 했지만 주된 커리큘럼이 자격증과 관련이 되어, 학업을 이루고자 하는 오메가가 선망할 만한 학교는 아니었다. 선재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무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에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돈이 많은 오메가 학생들이 가는 좋은 학교도 있다고 들었지만, 그런 건 다 별나라 이야기였다.

합격 소식을 듣고, 나름의 준비를 해 학교에 갔지만,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예상보다 더,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선재는 6개월을 통으로 날렸고, 1학년 2학기부턴 혼자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앞엔 알파들이 득시글했다.

좋은 학교에 다니는 오메가보다 그들 말로 ‘후진’ 곳을 다니는 오메가가 더 꼴린다고 난리였다. 선재는 다른 학생들이 학교를 다 빠져나간 뒤에야 교문을 나서곤 했다.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남학생들은 제게 모욕을 주기에만 급급했는데 갑자기 좋다고 달려드는 또래 알파 들을 보자 그건 그거대로 거부감이 느껴졌었다. 선재는 학교 앞에 있는 그들만 생각하면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서 1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겁이 그렇게 많은데도 그러라면 그렇게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파 남성보다는 알파 여성이 좋은 걸까?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선재는 학교 앞에 있는 사람들이 싫어 더운 날에도 모자만은 꼭 쓰고 다녔다.

최대한 시간을 끌다 밖으로 나오기 일쑤였고, 운동장에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으며 시간을 보낼 때도 많았다.

저녁 강의가 없는 학교라, 4시만 되어도 주변이 휑했다.

4시에 맞춰 주변 정리를 시작하면 농구대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대부분이 다른 학교 학생들이었다. 아무래도 특수 성별 학생들이 다니는 교육 기관이다 보니 출입이 일반 대학에 비해 엄격한 편이었다. 그래도 운동장은 예약만 해두면 어느 학교 학생들이나 사용할 수 있다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그들을 쳐다본 선재가 막 시작되려는 경기를 뒤로 하고 교정을 걸어 내려갔다. 어깨가 툭툭, 건드려진 건 5분도 안 돼 일어난 일이었다.

키가 190cm는 될 듯한 남자 앞에서 선재는 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알파 남성과 그렇게 가까이 서본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치듯이, 도망을 가며 몸이 붙은 적은 있어도 대놓고 말을 거는 알파와는 거의 처음인 접촉이었다. 선재는 번호를 줄 수 있냐고 묻는 남자에게 눈만 끔벅거리다 제 번호를 써서 주었다. 어쩐지 교수님과 독대를 해도 그보단 자연스러운 감정이 느껴질 것 같았다. 선재는 남자가 의식적으로 페로몬을 뿜어대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가방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번호를 써주었다.

내려오는 내내, 페로몬 반응과 긴장감으로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리곤 선재는 깨달았다.

확실히 알파, 그중에서도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하지만 좋은 기억은 되지 못했다.

남자는 선재를 어떻게만 해볼 생각으로 연락처를 구했고, 술에 취해 선재를 불러 모든 일을 망쳤다. 아무것도 몰랐던 선재는 억지로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다른 알파와 첫 관계까지 맺었다. 고작 스물. 술을 많이 마셔 제대로 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게 선재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때 마음을 많이 다친 선재는 창우를 만나기 전까지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창우는 나쁜 사람이, 그런 알파가 아니었다. 따스하게 말할 줄 알았고, 제 상처를 어른스럽게 감싸줄 줄도 알았다. 능변가였던 창우에게, 선재는 당연히 마음을 주게 되었다. 선재는 창우가 한 모든 말을 믿었다. 나쁘게 말하는 사람보단 거짓말을 따스하게라도 해주는 사람이 선재는 좋았다. 그래서 창우를 좋아했고, 그가 거짓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면 그것으로 되었다 여겼다.

“니 어디 갔다 왔냐.”

“준희 어린이집 차 와서.”

“애기 그것도 은근히 고집 있다.”

“친구들이랑 차 타는 거 좋아하니까.”

범진은 거실로 방금 나온 듯, 빛 때문에 얼굴을 마구 찌푸리고 있었다. 아침이면 발과 손이 붓는 선재도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커다란 담요가 펼쳐져 있던 소파에 털썩 앉은 범진이 눈을 감았다.

“안에 들어가서 자.”

“니는.”

“…난 다 잤는데.”

“더 자자.”

커다란 몸짓으로 소파에서 일어난 범진이 현관 근처에 서 있던 선재에게 눈길을 보냈다. 손을 올려 몇 번 흔들자, 선재가 먼저 방 쪽으로 걸어갔다. 느리게 걸어가던 선재를 붙잡은 범진이 이거 왜 이래 무뚝뚝하냐고, 선재의 어깨에 팔을 걸어 예뻐 죽겠다고 뽀뽀했다.

“어? 씹, 니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냐.”

“…아, 좀….”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선재의 뺨엔 빨간 도장 자국 같은 것이 남았다. 좋다고 뽀뽀하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선재는 범진의 팔을 손으로 잡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대충 닫혀 있던 방문은 범진이 발로 차자 빠르게 열렸다. 커튼을 걷지 않은 공간은 아침이 되어도 그다지 밝지 않다. 커다란 침대에 먼저 드러누운 범진이 손을 뻗으며 선재를 쳐다봤다.

“….”

뽀뽀 때문에 불그스름하게 오른 뺨을 만지던 선재가 침대 위에 무릎부터 댔다. 기어가듯 범진에게 다가가자, 범진이 팔을 더 열고 싱글벙글한 얼굴을 했다. 표정은 굳어 있지만, 선재도 이러는 게 싫지 않았다. 기듯이 다가가다가 팔을 뻗어 범진의 몸을 안으며 옆으로 누웠다. 그리곤 등을 품으로 당기는 범진의 손길을 느꼈다. 배가 많이 나와 엉덩이를 뒤로 뺀 선재가 범진의 허리로 손을 가져갔다.

선재의 얼굴을 최대한 제 턱 쪽으로 붙인 범진이, 하얗고 소담한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 뗐다.

“니 진짜로 내 말고 믿는 구석이라도 있냐.”

“…뭐가….”

“좋으면, 걍 좋다고 해야지.”

한껏 입꼬리를 올린 범진이 그 말을 하고는 또 선재의 얼굴로 입술을 가져갔다. 어? 하고 고개 숙이며 선재의 코에 입을 맞췄다.

눈을 감았다 뜬 선재가 위쪽을 계속해서 올려다봤다. 밖은 낮인데, 날이 밝아왔는데, 어두운 방에서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범진은 또 입을 맞춰왔다. 이번엔 입술이었다.

한쪽 팔에 감긴 머리가 범진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였다. 턱에 범진의 손이 닿은 채여서, 범진이 고개를 숙이며 턱을 위로 잡아당길 때마다 얼굴도 위쪽으로 같이 들렸다. 범진은 빤히 쳐다보다가 웃고, 웃다가 뽀뽀하고, 그러다가 저 말고 믿는 구석이 있냐는 똑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했다. 또 꾹, 닿은 입술에 눈을 감았다 뜬 선재가 없어, 하고 중얼거렸다.

“뭐가 없는데.”

눈이 흥미롭다는 듯 변했다. 짧고 흐리게 대답한 선재를 향해, 범진은 고개를 푹 숙이며 선재의 입술을 제 입술로 들어 올렸다. 혀로 입 안의 부드럽고 축축한 살을 쓸었다.

범진은 그러면서 선재의 손을 제 바지춤 안으로 넣었다. 원래부터 반쯤 일어나 있던 게 지금은 드로어즈 안에서 고통스럽게 구겨져 있었다. 선재의 손으로 기둥을 잡게 한 범진이 입술을 떼고, 고요히 흔들리는 눈을 대놓고 들여다보았다.

“나는 꿈도 니 나오는 꿈밖에 안 꾼다.”

“….”

뽀뽀와 갖은 스킨십 때문에, 선재는 부끄러움으로도 얼굴이 붉었다. ‘그냥… 싫지 않다.’ 정도였던 감정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모르겠다. 범진이 좋아지다 보니 이렇게 저급한 행위에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제 반질반질한 손으로 범진의 성기를 천천히 만져주기 시작한 선재가 날카롭게 닿는 눈에 같이 눈을 맞췄다.

손으로 성기를 잡아당기듯 만져주면, 성기에선 침이 게걸스레 흘렀다. 아침부터 들어가고 싶고, 싸고 싶어서 난리를 쳤다. 눈을 위로 들고 있던 선재가 다가오는 얼굴에 눈을 감았다. 입 안을 파고든 혀 아래서 제 혀도 마음껏 움직였다. 쭉, 빨려서 혀가 나가면, 선재도 범진의 입 안에서 헤엄을 쳤다. 손은 범진의 성기를 비벼주고 있는 채였다. 부른 배에 범진의 성기 끝이 닿으면, 선재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서, 믿을 게 범진밖에 없어서, 감정이 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근사하게, 혹은 아름답게 말해주지 않지만.

선재는 그런 범진이 이미 너무 좋았다.

말 한마디 곱게 할 줄 모르는 범진의 목소리가, 이런 천박한 행위가,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상처 위에 고운 눈을 내리게 만들었다.

결국, 눈물을 보이자, 범진은 그래 좋냐? 하고 놀리듯 물었다. 선재는 그런 범진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면서 그의 성기를 만지고, 성기를 만지다 또 울었다.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마다 범진의 입술이 닿았다. 니는 눈물도 맛있다고, 한 방울도 남김없이 혀로 핥아서 먹는 범진이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재는 대놓고 입맛을 다시는 범진을 쳐다보며 입을 벌려 혀를 내밀어주었다. 목을 들고, 또 그렇게 입을 맞췄다.

둘은 동시에 최면에 걸린 듯 잠이 들었다. 한 번 분출된 정액이 선재의 손에 가득 묻었다. 좀만 이러고 있자던 범진은, 선재를 안은 채로 제가 먼저 잠들었다. 그 품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체향을 맡은 선재도 빠르게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깨어난 건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먼저 눈을 뜬 선재가 범진의 팔을 흔들어 깨웠다.

“11시 넘었는데….”

이게 누구냔 얼굴로 눈을 뜬 범진은 손으로 선재의 얼굴을, 특히 눈을 이리 찢고 저리 찢으며 장난을 했다.

“눈티가 밤티가 됐는데.”

“아….”

“빨아주랴.”

“….”

“계란 없을 때 이러면 된다.”

잠에서 깨자마자, 범진은 부은 눈에 입부터 들이댔다. 넓적한 혀를 눈꺼풀에 댔다가, 감겼던 선재의 눈이 강제로 뜨일 정도로 위로 핥아 올렸다.

“누가 이렇게 하는데…?”

“내가.”

“….”

“내가 하면 그기 법이다.”

눈꺼풀과 눈동자에 닿는 범진의 혀에, 선재는 인상을 쓰면서도 웃었다. 얼굴이 뒤로 젖혀지면서도 그만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씨팔, 맛있는 거.”

“…짤 것 같은데….”

“니 살이랑 해서 먹으면 딱 간이 맞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선재는 몸을 일으키려고 범진의 팔을 잡았다.

“나 일어날래….”

눈을 빨던 범진이 그 말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옆으로 누워 있던 선재의 양팔을 손으로 쥐어 위쪽으로 일으켜주었다. 으, 하고 배를 안고 일어난 선재가 엉망이 된 머리부터 손으로 쓸었다. 이곳에 와서 한 번도 이발을 안 한 탓에, 머리칼이 귀를 덮을 정도였다. 귀 뒤로 머리를 넘겨준 범진이 으따, 씨바꺼, 살벌하게 예쁘네, 했다. 으따, 하는 소리는 처음 들어봐서 선재가 그 소리를 따라서 했다. 으따, 하자 범진이 질색을 했다.

“니랑은 안 어울린다.”

“너도 별로 안 어울려.”

표준어도, 정확히 어디 사투리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한 감이 있는 말씨. 선재는 옷장으로 가 양말을 한 켤레를 가져오는 범진의 모습을 눈으로 훑었다.

“어울리고 자시고 간에 발이나 줘봐라.”

선재는 엉거주춤 앉은 채로 한 발을 범진에게 내밀었다.

발은 맨발이었다. 새벽에 답답한 느낌이 들어 양말 두 짝을 모두 벗었기 때문이었다. 선재는 자동적으로 범진부터 찾았다. 잠든 범진을 깨워, 양말을 벗겨달라고 부탁했었다. 이게 씹, 시도 때도 없이… 하고 몸을 일으킨 범진은 안 해줄 것처럼 굴면서도 선재의 양말을 벗겨 주고, 발 마사지까지 해주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선재는 그게 생각이 나 앞에서 새 양말을 신겨 주는 범진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무슨 말이 좋을까.

생각하는 사이, 한 발에 신긴 파란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범진이 사 온 등산용 양말 중 제일 촌스러운 것이었다. 밝은 파란색인데 형광기가 도는 천이 굵직한 회색 실과 섞여 있었다.

“이 색은 사지 말지.”

“왜. 누구한테 잘 보일라고.”

“….”

고개를 든 선재가 아래로 숙이고 있는 범진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일부러 촌스러운 것만 골라서 사 온 건가?

“니 쪼금이라도 못나게 보이라고 조까튼 것만 골라서 샀다.”

속으로 한 혼잣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범진이 그런 소리를 했다.

“….”

“근데, 씹.”

“….”

“좆나 실패했다 아니냐.”

고개를 든 범진이 앞만 가만히 쳐다보던 선재의 뺨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보란 듯 아깝다는 표정을 짓는 범진을 향해, 선재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져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비슷한 소리를 하는데 레퍼토리가 매번 달랐다. 흠, 하고 작게 기침한 선재가 범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손에 범진의 정액이 약간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다 닦이지 못한 그 정액을 선재는 화장실로 가 씻어 내었다.

거울 속엔 제가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이젠 조금 사랑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손과 얼굴을 씻었다.

밖으로 나오자 가야지, 하고 셔츠에 팔을 넣고 있는 범진이 보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면 범진과 같이 집을 나서곤 했다.

주로 낚시터나 식당이었지만, 요즘엔 범진의 사무소도 찾고 있었다. 원래는 알파 직원이 둘이나 된다는 이유로 구경을 시켜주지 않다가, 그들을 포함한 모든 직원을 다 자른 후에야 선재를 사무소에 슬슬 데려가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은 모두 오메가였다. 선재는 사무소 안에 따로 마련된 소장실에서 잠을 자거나 음식을 시켜 먹거나 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오늘도 사무실 방향이었다.

범진이 손을 내밀자 선재가 그 손을 잡았다.

“오늘은 뭐 시키줄까.”

사무소에서 시킬 수 있는 메뉴는 한정되어 있었다. 집에서보단 시켜 먹을 게 많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먹었던 것처럼 다양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먹었던 걸 떠올려본 선재가 오리 불고기? 하고 범진을 쳐다보았다. 사무소 근처에 위치한 오리집에서 오리 불고기나 오리탕 배달을 해주곤 했다.

“다른 거는.”

“다른 거….”

“아, 저 씨발새끼.”

중앙선 침범을 한 게 누군데 갑자기 욕을 했다. 선재는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운전에 집중하란 말을 했다. 지대가 높아 길도 위험하게 꼬여있는 데가 많았다. 그런 데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재의 얼굴을 쳐다보려 하니, 가끔은 이렇게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마주 오던 차량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선재를 쳐다보느라 가다가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 뒤에야 사무소에 도착했다.

매번 이러는 건 아니지만 꼭 이럴 때가 있다.

선재는 조수석에 앉아, 햇빛에 표정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보닛을 빙 둘러서 오는 범진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조수석 문을 연 범진은 선재가 차에서 제대로 내릴 수 있도록 몸을 거의 들어주었다.

요통도 심하지만, 무릎과 발목 상태가 제일 안 좋았다. 범진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린 선재가 문은 제가 닫았다. 범진의 손을 잡고 사무소 안으로 들어서는데 안면이 익은 직원들이 보였다. 인사 건네는 직원들을 향해, 선재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해주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그들을 지나쳐 따로 마련된 룸 안으로 들어갔다.

선재가 앉는 자리는 안마의자 위였다.

원래 데스크와 테이블, 소파만 있던 곳이었는데 범진이 구석에 안마의자 하나를 들였다.

집에도 이것과 똑같이 생긴 안마의자가 있었다.

익숙하게 작동시킨 선재가 파묻히듯 안마의자 위에 앉았다. 범진이 그 모습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밖으로 나가 일을 봤다.

꿈도 안 꾸고 짧은 잠을 잤던 선재는 야,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앉은 범진이 제 손을 쥐고 밥 먹어야지, 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자 테이블엔 오리 불고기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용기에 담겨 배달돼 오지만 식당에서 먹는 것 못지않았다. 지난주보다 더 푸짐해진 것 같다, 하고 혼잣말로 감상한 선재가 소파 한가운데 앉았다. 앉으면 푹푹 꺼지는 부드러운 소파였는데, 선재는 그게 좀 불편했다.

양념 된 오리 불고기에서 김이 나고 있었다. 선재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뜯어 고기덮밥처럼 밥을 만들어서 먹었다. 매콤달콤하고 고기도 부드러웠다.

“니 허리 아프지.”

먼저 밥을 먹은 건지 옆에서 저를 쳐다보기만 하던 범진이 대뜸 허리를 감싸 안았다.

“참을 만한데….”

어물쩍 대답한 선재가 범진을 쳐다보다 눈을 돌렸다. 불편하다고 하면 소파까지 다 갈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았다. 안마의자만 해도 무슨 유난인지…. 편하긴 하지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생각 속에서 밥을 거의 다 비웠다. 선재는 앉은 채로 빈 용기를 쌓아 올렸다. 수저도 봉투에 따로 담고, 물티슈로 유리 테이블을 닦았다.

“니가 그래 놓으면 쟤들 더 싫어한다. 그만해라.”

허리를 안고 있던 범진이 선재의 손목을 탈탈, 털었다.

물티슈가 유리 테이블 한복판에 던지듯 놓였다. 양념 덜 닦았는데. 부푼 배로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었더니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다. 뒤로 좀 누워봐라, 하는 범진의 말을 듣고, 선재가 뒤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범진이 몸을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어깨를 당겨 안은 범진의 손길에 선재의 상체가 오므라지며 범진 쪽을 향해 돌았다.

“맛있드냐?”

“…응.”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 코가 닿을 듯했다.

“니 최범수 태어나면 임신 또 해라.”

“…왜.”

“왜기는. 이러고 사는 게 좋으니까 그러지. 씨바….”

범진은 그러면서 새 물티슈를 뽑아 선재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애새끼를 배더니 지가 애새끼가 돼버리고, 했다.

민망해진 선재가 손을 올렸지만, 범진이 그 손을 치웠다.

“아님 배 꺼지고도 낸테 양말 신겨달라고 하든가.”

범진은 양말을 신겨 주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짜증을 내며 새벽에 깨도 발 마사지까지 해주곤 하니까. 쓸데없이 뽀뽀를 하고 얼굴에 발바닥을 비비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범진은 선재의 입을 다 닦아주고 나서야 직원을 불렀다.

똑똑,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온 직원 둘은 나이대나 얼굴이 비슷하게 보였다. 귀엽고, 키가 작았다. 쌍둥이인가? 하고 바라본 선재가 앞으로 다가와 용기를 치우는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뗐다. 계속 쳐다보면 실례일 것 같아서였다.

“야, 김영원이.”

영원이란 직원은 눈 밑에 점이 하나 있었다.

네, 하고 웃는데 입 옆에 들어가는 보조개도 이뻤다.

“느그 싸모님 이쁘지?”

“네!”

선재는 이러는 범진이 너무 부끄러웠다. 직원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것도 좀 그런데…. 고개를 든 선재가 민망한 듯 눈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입만 벙긋거리며 그들의 눈치를 봤다.

옆에 있는 직원의 낯빛은 별로 안 좋았다. 선재는 혹시 그에게도 말을 시킬까 조마조마했다. 범진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만하라고,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빠르게 앞을 치우던 영원과 달리, 같이 들어온 직원은 행동이 느리고 굼떴다.

가만 쳐다보던 범진이 테이블을 발로 가볍게 쳤다.

“임마, 아직도 그러고 있냐.”

선재는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고개를 든 직원 때문에 제가 더 당황했다. 옆에 있던 영원이 뻘쭘한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웃었다. 입 옆에 쏙 들어가는 보조개에 더는 눈이 가지 않았다. 선재는 아… 하고 범진을 쳐다봤다.

사실 범진이 심한 말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그만하란 말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정리는 2분도 안 돼 끝이 났다. 결국, 눈물까지 똑똑 떨어트린 직원은 음식물이 든 용기를 들고 밖으로 먼저 나가버렸다. 범진은 지갑에서 5만 원권을 두 장 꺼내서 영원에게 내밀었다. 쟤한텐 니가 줘라, 했다.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인 영원이 깊이 팬 보조개를 드러내며 선재와 범진을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영원이 문 앞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자, 소장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렇게 하지 마.”

“뭐를.”

“이런 일 시키고 하니까… 울잖아.”

“뭐 그거 때문에 울라고.”

직원 한 명이 울면서 나갔는데 범진은 아무 상관도 않는단 얼굴이었다. 상처받은 그의 얼굴이 선재는 계속해서 떠올랐다. 많이 어려 보이던데, 그래서 적응을 잘하지 못하나…?

옆에서 울린 휴대폰을 확인한 범진이 선재에게 쪼코 사다 줄까, 했다.

그냥 갔다 와, 하고 대답한 선재가 몸을 일으켜 데스크 쪽으로 걸어갔다. 제일 구석에 제 칫솔과 작은 치약이 있다. 범진은 잠깐 나갔다 올 모양이었다. 왔냐, 하고 전화를 받은 범진이 벽을 쿵쿵 쳤다. 선재에게 나갔다 오겠다고 신호를 줬다. 치약을 칫솔에 짠 선재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바깥쪽으로 휘휘 저었다.

문 열리는 소리와 문 닫히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났다.

선재는 이를 닦으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천천히 걷는 건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

데스크가 있는 벽에서부터 안마의자가 있는 벽까지 오가던 선재가 입에 하얀 거품을 가득 물고 소장실을 나섰다.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화장실 문을 열자, 입을 닦고 있는 영원이 보였다.

잠깐 기다릴까 했지만, 영원은 인사를 한 뒤 거울만 쳐다보고 있었다.

더는 입에 물고 있기가 벅찬 거품이었다. 안으로 들어선 선재가 세면기에 상체를 숙이고 거품을 뱉었다.

방긋 웃으며 저를 쳐다보고, 그게 아니면 거울을 쳐다보는 영원은 해맑은 심성을 가진 듯했다. 다른 직원들이 제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방 안에만 있으려던 선재였다. 화장실에서 직원을 마주치긴 처음이라, 그와 눈이 맞을 때마다 선재도 덩달아 눈으로 웃으며 응답해주었다.

“아까 많이 놀라셨죠.”

입을 헹군 선재가 거울 속에서 영원을 쳐다보았다.

“언제요?”

“민우 형이요. 갑자기 울어서. 옆에서 제가 다 민망한 거예요!”

약간은 철딱서니 없는 말투로, 영원은 말을 이었다.

“사실 형이 소장님 좋다고, 고백하고 그랬거든요. 결혼하신 줄 모르고. 고백한 게 딱 어제였는데!”

마땅히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선재는 혼자 안타까워하고 혼자 재밌어하며 말을 잇는 영원의 얼굴만 멍하게 쳐다보았다.

“소장님 어엄청 멋있으시잖아요.”

“….”

그런가? 선재는 안 해도 될 소리까지 하며 말을 잇는 영원이 귀엽게 보였다.

“다른 사무소 일하다가 소장님만 보고 여기로 왔다고 했거든요!”

말에 꼭 느낌표가 붙는 것 같았다. 선재는 방글거리며 민우라는 직원에 대해 여러 정보를 늘어놓는 영원을 향해 계속해서 웃어만 주었다. 아, 하고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했다. 가까이서 보니 스무 살도 안 된 것 같았다.

“근데 영원 씨 몇 살이에요?”

“저 스무 살이요! 올해 스무 살 됐어요!”

“범… 소장님이 잘해줘요? 스무 살이면 아무것도 모를 건데.”

“네, 소장님 어엄청 멋있으시잖아요.”

그게 잘해주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재가 거울로 영원을 쳐다보다 어색하게 웃었다. 엄청 멋있단 말을 반복해서 하는 영원이 여전히 귀여웠다. 선재는 말이 다 끝난 것 같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화장실을 나섰다. 무심코 쳐다본 직원들은 영원을 포함해 다섯이었다. 그중 맨 안쪽에 있던 테이블로 시선을 던진 선재가 민우라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민망해 금방 고개를 숙이고 소장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진은 팸플릿 하나를 들고 등장했다.

안마의자에 앉아 있던 선재가 고개를 들고 범진을 쳐다보았다.

계약서로 보이는 종이를 빼내고 팸플릿의 한 면을 펼친 범진이 그걸 선재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집 좋아 뵈냐.”

불룩한 배 때문에 자세를 조금 일으킨 선재가 검은 울타리와 데크 시설이 돋보이는 빌라 사진을 눈에 담았다. 바로 옆에 붙은 평면도는 총 세 개였다. 정식 팸플릿은 아닌지 종이를 붙이고, 펜으로 체크해둔 흔적이 있었다. 선재는 평면도를 쭉 훑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니 거서 살래.”

“…여기가 어딘데.”

“여 근처에. 여름부터 짓는 거.”

이 근방에서 지낸 건 겨울부터였지만, 그리고 여전히 쌀쌀한 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선재는 이곳에서 여름과 다음 겨울까지 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계속 살기에는… 모르겠다. 섣부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살더라도 준희가 학교에 입학할 즈음엔 지역을 옮겨야 하지 않을까. 선재는 범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준희 학교 때문에, 하고 작게 말했다.

“그땐 당연히 옮기야지.”

팸플릿을 뺏어 든 범진이 바닥에 털썩 앉았다. 옆에 소파를 두고 왜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는지. 저리 가서 앉아, 말한 선재가 눈썹을 들고 저를 쳐다보는 범진에게 눈을 맞췄다.

“소화는 다 시킸냐.”

“응.”

“밖에 좀 걷자.”

원래는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데, 웬일로 밖에 나가 걷자고 말하고 있었다. 공기가 좋긴 한데…. 선재는 화장실에서 들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나 밖으로 나가기는 꺼렸다. 민우의 눈치가 보였다.

“어? 완전 봄 날씨 아니냐.”

“…나는 춥던데….”

“춥다고?”

거짓말을 하고, 범진의 되물음에 고개까지 끄덕였다. 산책은 이따가 집에 가서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도 준희와 함께 이른 저녁 즈음에 식당에 들르지 않을까. 사무실에 오면 늘 그랬으니까. 선재는 굳이 지금 바깥 공기를 쐬고 싶지 않았다. 마무리하듯 너는 열 많으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뭐라냐. 한 개도 안 추운데.”

“….”

포근한 날씨긴 했다. 지난주만 해도 뜨끈뜨끈한 전기 히터가 제 옆에 딱 붙어 있었는데, 오늘은 켠 적도 없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범진이 벌떡 일어나 선재를 위에서 쳐다봤다. 그걸 따라 고개를 든 선재도 범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

….

잘생긴 건 모르겠지만 몸이 좋아 멋있게 보일 수는 있겠다.

큼지막한 근육이 보기 좋게 붙은 몸이라, 무슨 옷을 입어도 태가 났다. 타고난 골격도 넓고 커서, 아예 말랐어도 볼품없는 몸이 아니었을 거다. 손도 크고 발도 참 크다. 제 발이 탱탱 부어도 범진의 신발엔 발이 들어갔다. 급하게 마당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범진의 구겨진 구두에 발을 넣고 다녀오곤 했는데. 그 구두에 딱 맞게 들어갈 범진의 핏줄 울룩불룩한 발이 떠올랐다. 넓게 벌어진 가슴팍으로 눈을 내린 선재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몰랐다.

“내가, 니.”

“….”

선재의 턱을 위쪽으로 잡아 든 범진이 순식간에 사나운 얼굴을 했다.

“고개만 딴 데로 돌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냐.”

아직도 다른 곳을 쳐다보면 이런 반응을 보인다.

반강제로 들려 있던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자, 범진의 손에서도 힘이 풀려나갔다. 양 볼을 중심으로 열이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선재는 안마의자를 끄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적당히 시원한 공간을 걸어 다니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했는데, 소장실이 아까보다 넓게 느껴졌다.

선재는 끝에서 끝까지 걷고, 또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범진의 데스크 위엔 종이 몇 장 외엔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배를 안고 돌아오면 안마의자에 앉아 저를 위아래로 쳐다보는 범진이 있었다.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몸을 뒤로 뻗은 범진은 다가오고, 또 멀어지는 선재를 향해 휘파람을 불어가며 치근덕거리는 알파 1역을 했다.

“어이, 니 몇 살인데.”

급기야 몸을 일으켜 선재에게 다가간 범진이 그런 말을 건넸다.

옆을 쳐다본 선재가 어이없다는 듯 웃고 앞을 향해 걸었다.

“니 몇 살이냐고.”

“뭐 하는데….”

어찌나 옆에서 따라붙는지 선재의 몸이 벽에 거의 붙을 지경이었다.

“이 동네 사냐.”

“….”

팔로 앞까지 막자, 선재는 더는 앞으로 갈 수도 없었다.

진짜 처음 만나는 것처럼 얼굴이 태연했다. 그 얼굴을 쳐다본 선재가 또 허탈한 듯한 웃음을 입 밖으로 냈다.

“웃냐.”

“…왜 처음 보면서 시비 걸어.”

부자연스러운 대사에 얼굴에 작은 불이 떨어진 것 같았다. 홧홧하고 따가웠다. 어깨가 잡힌 채 뒤로 슬슬 밀리고 있는데, 곧 등에 닿은 시원한 느낌에 몸이 벽에 붙은 걸 알았다. 눈을 든 선재가 입꼬리 끝을 씰룩거리는 범진의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왜. 처음 보면 이러면 안 됩니까.”

갑자기 높임말로 바뀌자 선재도 입을 움직였다.

“…처음….”

그래도 이런 놀이는 익숙하지 않다. 범진이 던지는 말을 능숙하게 받아줄 깜냥이 제겐 없었다. 말을 받아주려다가도 말문이 턱 막혔다. 범진은 이따금 인상을 쓰거나, 고개를 젖히고 눈을 부릅뜨는 등 일부러 위협하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

“처음 봐도 함만 대주세요. 내가 씨발, 육봉은 디졌거든요.”

질 낮은 장난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선재는 그러면서 다가오는 범진의 얼굴엔 눈을 감았다. 뺨에 닿은 혀가 눈까지 힘있게 닿고 있었다. 한쪽 눈이 젖은 채로 눈을 뜬 선재가 앞에서 쩝, 하는 소리를 내는 범진을 겨우 쳐다보았다.

“쫌만 빨리 봤으면 내가 임신을 시켰을 건데. 졸라게 억울하네….”

그런 말은 오른쪽 귀 바로 앞에서 들렸다. 선재는 귓바퀴가 혀로 쓸리는 느낌에 발끝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거의 동시에 감긴 눈이 파르르 떨렸고, 범진이 얼굴 앞으로 와 키스하면서 세상이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굵직한 혀가 입술을 벌리자, 선재가 입을 열어 그 혀를 받았다.

키스를 하면, 입 안의 어느 부위도 범진의 것처럼 느껴진다.

목젖과 입천장, 혀, 잇몸과 치아까지. 범진의 혀가 스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선재는 가만히 고개만 들고 혀를 섞다가 두 팔을 올려 범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키 차이가 있는 데다 배까지 불러있어 힘껏 안기는 힘들었다. 선재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한 채로 범진과 입을 맞췄다. 추읍, 하는 소리가 공간에서 잊을 만하면 퍼졌다. 처음엔 그런 소리가 추접스럽다고 느꼈는데, 이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춥, 하고 떨어져 나간 입술을 파들거리는 눈으로 쳐다본 선재가 시선을 조금 더 위쪽으로 들었다.

제 얼굴에서 느껴지던 열과는 차원이 다른 열기가 범진의 눈 안에 있었다.

타올랐고, 육욕으로 번들거렸다.

“씹… 니 첨 보는 새끼한테 다 이래 대주냐….”

“…안… 대줬….”

숨을 몰아쉬던 와중에 그런 말을 하려니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범진이 몸을 까딱거릴 때마다 까칠까칠한 턱이 선재의 이마에 닿고 있었다. 그만큼 가까웠고, 틈이 생기면 범진이 그 틈을 좁혔다. 말을 끝내지 못한 선재가 범진의 눈만 쳐다봤다. 불구덩이에 담갔다 뺀 듯한 저 눈이, 저를 향해서만 뻗어 있었다.

“낸테는 대줘야지….”

속삭이듯 전달된 말에, 선재가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위쪽으로 들려 있던 고개가 끄덕끄덕, 위아래로 움직였다. 범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선재를 내려다봤다.

“니 씨발… 졸라게 쉽네.”

“…이제 그만해.”

선재는 투정 부리듯 범진의 몸을 끌어당겨 안았다. 얼굴에 닿는 범진의 딱딱한 몸이 괜히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곧 뒤로 빠진 몸에, 선재가 고개를 들고 범진을 다시 쳐다보았다. 범진이 선재의 팔을 잡고 이끈 곳은 소파 위였다. 말없이 따라간 선재가 퍽, 소리가 나도록 소파에 몸을 던진 범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내 바지 지퍼에 손을 댄 범진은 검정색 드로어즈 안에서 성기를 툭 하고 꺼냈다. 위로 고개를 쳐든 성기가 이미 범진의 배에 붙을 듯 발기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선재가 아랫입술을 치아로 물었다 금방 입을 뗐다. 다짜고짜 이곳의 문이 열리진 않을 터다. 훤했던 창 앞에도 블라인드가 내려와 있었다. 한쪽 팔을 뻗으며 턱짓한 범진이 일단 와봐라, 했다.

긴장으로 몸이 굳어가는데, 그 몸이 범진에게로 향하긴 했다.

선재는 다리를 크게 벌리고 성기를 내놓은 범진 앞에서 미욱하게나마 팔을 뻗고, 다리를 올렸다. 무릎을 접은 채로 범진의 위에 올라가자 범진이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선재가 굳이 상체를 들거나 힘을 주지 않아도 바지와 팬티가 엉덩이를 보일 만큼은 내려갔다. 드러난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웃는 범진이 고개를 위로 들었다.

“대줄라고 왔냐.”

“…그만하라니까….”

“진짜 그만해야 되냐.”

“….”

제 그만하란 말이 입버릇 같은 말이긴 했다. 선재는 범진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고, 또 같이 흥미를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웬만해선 호기심을 갖지 않는 성격이지만 요즘은 범진 때문에 그럴 때가 늘었다. 빤히 아래를 내려다보던 선재가 뭐… 하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 얼굴을 쳐다본 범진이 선재의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무슨 장난을 걸면, 그게 뭘까 싶어 어정쩡하게라도 받아주곤 했다. 엉덩이 한쪽을 옆으로 슬쩍 잡아당기자 앞으로 쏠린 선재의 손이 범진의 가슴에 닿았다. 잔뜩 불러온 배가 제 배에 닿는 느낌을, 범진은 좋아했다. 선재의 손까지 몸에 닿자, 뒤로 넘어갈 듯 발기해 있던 성기에서 침이 흘렀다.

다리 위에 선재를 앉혀놓은 채로, 범진은 한동안 엉덩이만 주물럭거렸다. 그러면서 구멍을 벌렸다가 닫고, 닫은 구멍을 다시 열어 놓으니 선재에게도 자극이 전달됐다. 동그랗게 입을 벌린 구멍에서 점성 있는 체액이 주욱 늘어져 떨어졌다. 아랫입술을 문 선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앞쪽으로, 옳지.”

무릎을 짚으며 다가가자, 범진이 옳지, 하고 엉덩이를 때렸다.

그 진동에 또 엉덩이 사이에서 투명하고 진득한 액이 슥 흘렀다.

벌어져 있던 엉덩이가 모이자, 선재는 앞으로 가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애액과 살이 부대껴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다가가자, 범진의 성기가 제 성기를 쓸고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회음부를 지그시 누르며 지나가는 억센 성기에, 선재가 몸을 떨었다. 보통은 삽입까지 해야 제 성기는 고개를 드는데, 벌써 발기가 된 듯했다. 배가 너무 불러있어 제 눈으론 확인할 수 없었다.

눈을 아래로 한 범진이 손을 뻗으며 선재의 성기를 살살 쓸었다.

“씨바, 빨딱거려도 이쁘냐.”

“….”

“어이, 형님.”

오랜만에 듣는 형님 소리에 선재가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범진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새끼한테 이래 대줘도 됩니까?”

이젠 처음 보는 상황에 형님까지 옵션으로 얹었나 보다. 구멍에서 애액이 죽 늘어져 떨어지는 걸 느낀 선재가 인상을 썼다.

“….”

“배는 이래 불러와서.”

“아….”

범진의 성기가 삽입된 건 순식간이었다. 귀두로 회음부와 구멍을 비비던 범진이 안으로 패인 구멍 안으로 기둥까지 빠르게 잡아넣었다. 완전히 닫혀 있던 내벽이, 성기가 들어가면서 양쪽으로 벌어지며 길을 열었다. 선재가 상체를 세우고 입술을 힘주어 다물었다. 갑자기 들어찬 이물감에 쾌감과 불편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아… 아….”

범진이 엉덩이를 앞으로 잡아당기자, 선재도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조금만 움직였는데도 대충 걷어 놓았던 후드티가 아래로 내려가 엉덩이를 가렸다. 거대한 성기가 박힌 엉덩이는, 뒤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선재는 범진의 얼굴을 쳐다보며 배에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였다.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고, 허벅다리를 조금씩 모았다. 그때마다 안에 들어찬 범진의 성기가 깊은 내벽과 아기가 있는 위치를 툭툭 건드렸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들리고 있었다. 건물 밖에서 사람들이 대화라도 나누는지, 말소리도 들려왔다. 범진의 배에 닿아 있던 한 손을 뗀 선재가 팔을 옆쪽으로 뻗었다.

“…손….”

“잡아줄까요.”

“….”

선재는 잠시 멈춘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깍지가 끼워지고 나서야 엉덩이를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충 넘기고 있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귀를 반쯤 덮고 있었다. 한 손을 올려 그 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 범진이 이야, 하며 선재의 엉덩이를 때렸다.

“형님 어딨다가 이제야 나타나서 대줍니까…. 씹….”

“으으… 아… 아으,”

“어? 씨발, 내가 니를, 첨부터 다 땄어야 됐는데.”

범진은 섹스하다 흥분하면 성질까지 못 참는 경우가 많았다. 깍지낀 한 손은 두고, 다른 한 손으로 엉덩이를 또 짝짝 때렸다. 벌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범진의 성기가 구멍에 완전히 박힌 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살점 미끌리는 소리가 주변에 퍼졌다. 밖에서 대화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더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와 성기가 들락날락하는 소리만 이 공간에 남았다.

“그, 그래도. 아.”

“….”

진심으로 열이 받은 듯, 선재를 올려다보는 눈이 매서웠다. 갈증이 난 듯 한쪽 엉덩이를 잡아당기는 힘도 서서히 강해지고 있었다. 그 힘을 받고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선재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입을 벌렸는지 저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은, 네, 네 아기 가졌, 으니까, 으, 으읏.”

“어쭈… 씨팔.”

범진도 덩달아 벌게진 얼굴을 하고 선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얼굴이라 성감이 오르면 유독 더 티가 나곤 했다. 눈썹이 요동을 쳤다. 거기까지 들은 범진이 퍽, 소리가 나도록 선재의 엉덩이를 위로 들었다 놨다. 과하게 흥분해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한두 번씩은 그런 행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니 씨발, 하고 입을 연 범진이 깍지가 껴 있던 손을 잠시 빼내고 두 손으로 엉덩이를 받치고 흔들었다. 본격적으로 퍽, 퍽, 성기 박히는 소리가 강하게 들리자 선재가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함께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 오, 오줌, 나, 나….”

“걍 싸라.”

범진의 말에 안심이 된 건 아닌데, 싸라고 말하면 그냥 싸게 되었다. 선재는 범진의 커다란 성기 때문에 자주 소변을 참을 수가 없어졌다. 임신한 후론 더 했다. 그게 내벽을 벌리고 들어오면 온갖 장기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박아도 되는 구멍을 가졌는데도 그랬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찔끔찔끔 노란 물을 내던 선재가 아랫입술을 꽉 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엔 정액이 분출되려 했다. 찰박이며 구멍을 뚫어대는 범진의 성기엔 늘 속수무책이었다. 퍽, 퍽, 하고 다리와 다리가 맞닿고 배가 들썩였다. 선재는 아랫배를 한쪽 팔로 받친 채로 범진의 팔을 더듬었다.

“소온… 흐윽… 자꾸 놔… 왜….”

씨이팔, 하고 욕을 늘이며 뱉은 범진이 선재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깍지를 끼고 다시 성기를 박기 시작하자, 선재의 성기에서 묽은 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줌보다 점성이 있고, 애액보다는 흰빛을 띠는 액이 소변과 유사하게 흘러내렸다. 범진이 허리를 쓸 때마다 선재의 성기도 위아래로 흔들렸다. 원래라면 힘없이 떨어지고 말 정액이, 범진의 움직임 때문에 사방으로 튀어댔다.

“아, 아흐….”

배는, 하고 짧게 물은 범진이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범진은 한 손으로 선재의 오른쪽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위를 느긋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열기에 가득한 얼굴과 눈이었지만 움직임엔 여유가 있었다.

“괜…찮아.”

목을 축 늘어뜨리고 범진의 얼굴을 내려다본 선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리를 뭉근하게 쓰기 시작한 범진이 깊은 곳까지 쭉 삽입을 했다 성기를 빼냈다. 다리가 벌어진 채여서 갓 성기가 빠진 구멍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구멍에서 투명한 애액과 범진의 체액이 뒤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범진은 선재의 허리를 안정적으로 받치고 자세를 옆쪽으로 틀었다. 곧 푹신한 소파에 등이 닿은 선재가 손으로 근처를 짚었다. 앉을 땐 소파가 불편했는데 누워 있기엔 편안했다. 가죽 소파라 조금 차가운 느낌이 있는 것 빼곤 괜찮았다.

“니 좋고 편한 대로 자세 잡아봐라.”

삽입의 여파가 쉽게 사그라드는 건 아니었다. 선재는 계속해서 붉어진 얼굴로 으, 하고 몸을 옆쪽으로 해 천천히 일어났다. 범진이 발 한 짝을 소파에 올린 채로 성기를 만지고 있는 게 보였다. 탁, 탁, 하는 소리가 일정하게 나고 있었다. 흉측하게 발기해 있는 성기를 스치듯 쳐다본 선재가 숨을 고르며 두 손으로 소파를 짚었다. 엉덩이를 범진 쪽으로 향하게 하고,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선재는 섹스하느라 벗겨진 슬리퍼도 그제야 눈치챘다. 잠들었을 때 범진이 갈아 신겨 놓았던 게 소파 바로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범진이 이러고 있는 저를 보면 변태 같은 생각을 할 게 분명한데도 이런 자세를 하고 싶었다. 선재는 쿵쿵 뛰는 심장을 무시하고 후드를 앞쪽으로 걷어, 튀어나온 배가 소파 면에 가까스로 닿지 않도록 만들었다.

뒤에서 엉덩이를 쳐다보고 있던 범진이 씩 웃으며 선재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댔다. 살을 벌리자 좀 전까지 들어가 있던 구멍이 쉽게 벌어지는 게 보였다. 성기를 앞으로 내민 범진이 갈라진 틈을 쓸다가 안쪽으로 쑥 박히는 성기를 기둥까지 순식간에 밀어 넣었다.

“개 자세로, 자주 하면 진짜 개 된다.”

“무슨 소리야… 으… 으흣.”

“내는 개가 맞는데….”

“…흐으, 흐읏, 흑.”

뒤에서 성기가 푹푹, 박혀들 때마다 선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범진이 하는 말 절반이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엉덩이를 잡힌 채 구멍을 내주고 있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집이 아니고, 또 이런 자세로 대낮에 섹스하고 있다는 게 더욱 그런 느낌을 배가시키는 듯했다. 선재는 몇 번 쑤셔지지도 않았는데 다시 정액을 흘렸다. 비워진 방광에선 더는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찰싹찰싹, 하고 성기가 쉼 없이 구멍을 드나들었다.

“후으.”

“…으, 흣… 으… 흑.”

애액으로 흥건한 성기가 선재의 내벽을 착착, 두드리고 있었다. 엉덩이에 범진의 장골이 닿을 때마다 들리는 소리도 꽤 컸다. 선재가 손을 뒤쪽으로 뻗기도 했지만 오래 그러고 있을 힘은 없었다. 넋이 나갈 것 같았다. 평소엔 몸이 많이 불편한데, 범진과 섹스할 때면 편하고 기분도 좋아졌다. 무거운 배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속된 말로 쌀 것 같은, 그런 느낌만 남게 되었다. 엉덩이를 위로 쳐든 선재가 입을 벌린 채 앞으로 밀렸다. 범진이 넘겨주었던 머리카락이 다시 앞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퍽, 퍽, 할 때마다 입 안에 고였던 침이 너울거리다, 마지막엔 얇은 실처럼 늘어져 떨어졌다.

“니 씹, 개시키랑, 이래, 후우, 쎅쓰해도 되냐.”

“…으…흐으, 흣!”

“드런 개시키랑….”

“…나, 내가… 나도… 흐, 으으, 나도… 개… 가, 강아지… 할… 흑.”

범진이 느리게 박기 시작하며 선재에게 또렷이 물었다.

“니도 개새끼 할 거냐….”

“응, 으으… 개….”

중얼거리듯 나온 소리에, 범진이 눈썹을 올린 채 다시 안쪽까지 삽입했다. 개면 개답게 박고 박히야지, 하고 허리를 밀었다. 퍽, 하고 안쪽까지 박힌 성기에 선재가 허리를 떨었다. 주먹을 꼭 쥐고 단정하게 엎드린 모양샌데, 어떤 움직임에도 반응을 했다. 골반을 잡은 범진이 허리를 잘게 쳤다. 엉덩이가 접시에 갓 담긴 연두부처럼 흔들렸다. 게다가 따뜻하고. 범진은 선재의 엉덩이를 주무르듯 짝, 치고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얕게 치던 허리의 속도를 높여 깊은 곳을 찔러주기 시작하자, 물크러진 내벽에서 다시금 찌걱, 하고 애액을 내보냈다.

“아, 아흐, 흐윽.”

“왜, 좀 살살 하까….”

밖으로 쑥 빼냈다 깊은 곳을 정확히 찌른 범진이 움직임을 느슨하게 가져갔다.

“…으… 흐, 읏….”

“배 아프냐.”

“배… 아….”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손으로 부른 배를 만진 선재가 다시 두 손을 소파에 대고 고개를 저었다.

“할 만하냐.”

“으…응… 계속….”

옆을 슬쩍 본 선재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좀만 보자.”

깊이 퍽, 삽입을 하고 상체를 숙인 범진은 선재의 얼굴을 무리 가지 않을 정도로만 돌렸다. 땀 맺힌 이마와 젖은 눈, 통통하게 오른 인중과 이어지는 입술을 차례로 쳐다봤다. 귀를 입에 넣은 채로 허리를 쓰자, 선재가 무겁다는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전달되는 무게가 거의 없는데도 이런 자세는 힘겨운 모양이었다. 선재의 입가를 닦아준 범진이 한번에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손… 잡아….”

“니 그럼 제대로 누워봐라.”

성기를 푹 빼며 엉덩이를 톡톡 두드린 범진이 뒤로 뻗친 팔을 잡으며 선재가 자세 잡는 걸 도와주었다.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과 얼굴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정확히 공존했다. 등을 대고 눕자마자, 선재는 어린애라도 된 듯 두 팔을 범진에게 뻗었다. 활짝 벌어진 다리 한 짝이 범진의 허벅지 위에 놓였다. 삽입은 차치하고, 범진은 일단 상체를 수그려 선재의 등을 끌어안아 주었다. 빠듯하게 닿는 배를 최대한 조심해서 안았다.

“…사람… 안… 오지…”

“어. 안 온다.”

어깨를 든 범진이 선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입가를 대충 닦아줬는데, 침 흘린 흔적이 아직도 역력했다. 손을 올려 눈과 코, 입술을 매만져준 범진이 젖은 입꼬리 끝을 양손으로 당기며 제 입을 갖다 댔다. 선재의 머리를 반쯤 든 채로 입을 맞추고 혀를 넣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얼굴을 떼며 말했다.

“얼굴 보자.”

입술이 닿자마자 감겨 있었던 선재의 두 눈이 천천히 뜨였다.

볕에 적당히 그을린 얼굴이 선재의 눈앞에 있었다.

비어 있던 손은 범진의 손가락으로 메꿔지고 있었다. 손깍지 낀 손을 선재도 다잡으며, 그토록 싫어했던 사람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쳐다보기만 해도 툭툭 튕겨대며 발기하는 범진의 성기를 안다. 가졌는데도 가지고 싶어 안달 내는 이 남자를, 알파를, 이제는 안다.

선재는 입 안에 고이는 침을 느릿하게 뒤로 삼켰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지 않았는데도 심장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범진의 가슴이 아닌 제 가슴 속에서.

낯설고 이상한 것이 가슴에 붙어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쁜 거, 하고 맨날 하는 소리를 또 하며 다리 사이로 내려간 범진이 성기를 잡고 선재의 다리 사이를 비볐다.

구멍으로 쑥 들어온 성기에 다리가 떨렸다. 한쪽 다리가 위쪽으로 접히듯 벌어진 상태였다. 활짝 열린 가랑이 사이를 쳐다보는 범진이 선재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성기가 처음부터 내벽을 연속해서 쓸었다. 선재는 혹시 범진이 손을 놓을까 봐 쥔 손에 힘을 더 꽉 주었다. 그리곤 남은 손으로 후드티를 위쪽으로 들어 올려 배를 보였다. 집에서 하던 게 습관처럼 굳어진 탓이었다.

선재는 이제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았다.

범진 앞에서 한껏 다리를 열고, 부른 배도 망설임 없이 내보였다.

성기가 박혀 들 때마다 느껴지는 감각을 얼굴로 드러냈고, 소리가 나오면 소리 나와… 하는 말도 했다. 허리를 쓰며 선재의 사타구니와 엉덩이를 벌겋게 만든 범진이 성기를 담가놓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밖에다 쌀까.”

선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제 배만 만졌다. 이내 고개까지 젓는 선재를 쳐다보고, 범진은 씹, 하고 두 팔을 선재의 귀에 붙였다. 엉덩이가 위쪽으로 들리자 배에도 압박감이 조금 들었다. 그래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어서, 선재는 아랫입술을 문 채로 범진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 얼굴에 더 흥분한 범진이 허리를 제대로 썼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듯 몇 번을 박았다.

“아, 으읍, 흑.”

위쪽으로 접혀 있던 선재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사타구니가 경련하듯 흔들렸고, 성기에서도 물이 질질 샜다. 내벽을 퍽퍽 치는 범진의 성기엔 쉼이 없었다.

고개를 힘껏 저은 선재가 범진의 팔을 아래쪽으로 끌었다.

“흐으, 흐….”

“아프냐…?”

아래쪽으로 내려간 범진이 선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리를 천천히 쓰며 선재의 엉덩이 양쪽을 크게 벌렸다.

선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안았다.

이렇게 배가 많이 나온 채로 섹스한 적도 없었고, 짐승 같은 자세만 골라서 교미하듯 섹스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얼굴의 물기를 닦아낸 선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몸에 다리를 넓게 벌렸다. 꾹, 꾹, 내벽을 누르듯 삽입되는 느낌에 눈이 절로 감겼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지독한 쾌감이 온몸을 치고 들어왔다.

“아, 아흐… 흐, 읍, 으으…흑!”

성기를 푹 담근 채 허리를 휘휘 돌린 범진이, 그런 소리는 들린다, 했다.

실 웃으며 상체를 굽힌 범진이 손가락 두 개를 선재의 입에 물려주었다.

이렇게 하면 소리가 하나도 안 나긴 한다.

손가락을 빠느라 볼이 금방 움푹 패는 선재를 쳐다보며, 범진이 허리를 큰 폭으로 움직였다. 엉덩이를 들어주자 바로 밑에 고여있던 애액이 질펀하게 달라붙었다. 다른 손으로 엉덩이 사이에 묻은 애액을 결합부 근처에서 비비적댄 범진이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쭉쭉 빠는 선재의 모습에도 눈길을 던졌다. 씨이팔, 씹, 하고 욕하기 시작한 범진은 물려 있던 손가락을 빼내고 선재의 손부터 잡았다.

“으, 윽, 읍.”

최대한 고개를 뒤로 한 선재가 온몸을 비틀었다.

끈적한 소리를 내며 성기가 구멍을 드나들고 있었다.

“으, 으읍.”

한 손은 범진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론 제 입을 막았다. 바짝 오른 성기가 추삽질에 대롱대롱 흔들리다 마지막 물을 뿜었다. 역시 소변처럼 한 번 주룩 흘러내린 정액이 선재의 배 아랫부분을 적셨다.

범진이 깊은 내벽에 닿을 때마다 또 뭐가 나오려는 것 같았지만 그뿐이었다.

더는 나올 것도 없었다.

그 몸을 더 벌리고 들어간 범진이 마지못해 사정하며 정액을 사방으로 쏘았다. 깊은 내벽 주름들이 범진의 정액을 맞고 움찔거렸다. 쑥, 단번에 빼낸 성기를 따라 나온 건 차마 빠져나오지 못한 애액이었다. 몇 초 지나 범진의 정액이 샜고, 애액과 뒤섞인 형태로도 선재의 구멍 밖으로 삐져나왔다.

여전히 흉포한 성기를 가릴 생각도 않고, 범진은 테이블에 놓인 물티슈부터 뽑아 들었다. 빨갛게 오른 엉덩이에 찬 느낌이 닿자 선재가 그제야 다리를 오므렸다.

“여서도 할 만하지.”

“….”

가볍게 웃는 얼굴이 배 위로 보이고 있었다.

범진은 선재의 엉덩이를 들고, 꼬리뼈까지 닿은 애액과 정액을 정성 들여 닦아주었다.

그러자 피부로 느껴지는 찝찝함이 훨씬 덜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닦였을까. 범진의 얼굴이 갑자기 허공에서 보이고 있었다. 누워서 숨을 고르던 선재의 눈도 위쪽으로 따라붙었다.

“다음에 또 태어나면 덜 이뻐라, 덜.”

“….”

“그래야 내 같은 새끼도 안 만나지.”

바라보기만 하던 범진이 선재의 뺨을 손가락으로 툭, 치며 실실 웃었다.

“…너 같은….”

웃던 얼굴이 삽시간에 경직되었다. 원래라면 아무런 말도 안 했을 선재의 입이 열렸다.

“….”

“…새…끼… 또 만날 건데….”

그러고 입을 꾹 닫은 선재가 위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물기가 위쪽으로 차오르다 이내 옆으로 주르륵 흘러 떨어졌다. 범진이 손을 들어 한쪽 눈을 옆으로 찢듯이 닦아 주었다.

“니 내 자지 터지게 할라고 작정했지.”

“….”

“가만있어도 터지는데.”

말처럼 금세 위로 올라붙은 성기가 선재의 눈에 들어왔다.

더 울 것 같던 선재가 손으로 직접 눈물을 닦아내며 픽, 웃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안하게, 혹은 혼자 슬프게 만들어 주지 않는 범진이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눈앞의 범진이 그리웠다. 퍽 잘생겨 보이는 얼굴을 올려다본 선재가 눈이 젖은 채로 웃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게 사랑이라면, 범진은 제게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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