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들〉
여름은 유독 더디게 지나갔다. 10월이 되어도 밤에만 좀 시원할 뿐,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준희 있었는데….”
“에….”
“없어졌다…!”
“에엡!”
선재가 얼굴 위로 손을 가져가 열심히 움직였다. 얼굴을 갑자기 가려 버린 아빠의 행동에, 아이는 에, 하고 가만히 쳐다보다 목이 막힌 웃음소리를 냈다. 깜짝 놀랐지만, 재미가 있으면 이런 반응을 보였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소리에, 선재도 신이 나서 계속 같은 동작을 선보였다. 얼굴을 가렸다가 또 드러냈다.
아이는 반복되는 놀이에도 연신 웃는 낯을 해 보였다.
“재밌….”
재미가 있냐고 물어야 하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방문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였다. 곧 짧은 대화가 오갔다.
선재가 준희를 눕혀 둔 채로 잠깐만, 하고 방 밖으로 나섰다. 아무렇게나 집에 들어올 사람이야 범진뿐이지만 퇴근할 시간대가 아니었다. 시계를 흘긋 쳐다보았던 선재가 곧장 보인 범진의 얼굴에 의아한 듯 고개를 젖혔다.
“왜…?”
주방은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범진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가사도우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돌려 찌개 거품을 걷어 내고 있었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남자 오메가로, 선재와 범진보다는 어리지만 10대 때부터 그쪽 일을 해 온 베테랑이었다. 이름은 한영채. 계속 상주하는 건 아니었고, 준희의 어린이집 스케줄에 맞춰 일주일에 몇 번 집에 들러 육아와 살림을 봐주고 있었다.
“뭐가.”
가까이 다가온 범진이 한쪽 팔로 선재의 허리를 안았다. 답지 않게 느긋하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누가 있다고 해서 이렇게 조용히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 선재는 속으로만 생각하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시간이….”
“사탕 빨라고 왔다.”
그 말엔 선재가 은근하게 웃었다. 최근에 계속 담배를 끊으라고 하고 있는데, 뭐라도 준비해 줘야 할 것 같아 금연에 도움 되는 캔디를 주문한 참이었다. 어제 주문 페이지를 보여 줬는데, 그 사탕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게 벌써 오겠냐고…. 어젯밤에 시켰는데.”
범진이 평소보다 점잖게 말하니 선재의 목소리도 덩달아 작아졌다. 허리가 범진의 손에 감겨 뒤로 밀리는 탓도 있었다. 선재는 범진의 팔 옆으로 보이는 도우미의 뒷모습을 자꾸 주시했다. 많이 편해진 것과 별개로, 범진이 막무가내로 스킨십을 해 오면 눈치가 보이는 게 당연했다. 오늘은 뭘 하려고 거실 한복판까지 몸을 밀어내나 몰랐다.
“내가 똘아이냐…. 그딴 거 빨겠다고 오게.”
“그럼 뭐.”
기어코 벽에 등이 붙자, 선재가 인상을 썼다.
“이 사탕 빨라고 왔지.”
장난스레 입을 벌리는데 피할 새는 없었다. 그대로 뺨을 깨물린 선재가 소리도 못 내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입이 금방 떨어지긴 했지만, 치아 모양으로 번들대는 침이 묻었다. 손등을 얼굴에 올린 선재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혼내는 시늉이었다.
“내가 사람 있을 땐.”
“뭐.”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지….”
“맞네, 내가 씨바…. 까먹었다.”
“장난하는 거 아니야. 혼나.”
선재는 아이에게나 할 법한 말을 범진에게 구사했다.
“뭘 그래 자주 혼내냐….”
입이 귀에 걸린 범진이 바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곤 어? 하며 선재의 머리통을 아예 쥐고 다시 입을 벌렸다. 이번엔 눈을 핥았다. 혀가 진득하게 닿았다 떨어진 부위를 손으로 가린 선재가 쓰읍, 하는 소리를 냈다. 진짜 그만하라는 나름의 표현이었다.
“하면 안 되냐.”
여전히 실실 웃는 얼굴로 선재를 쳐다보던 범진이 상체를 숙여 코가 맞닿을 정도로 몸을 붙였다. 잠깐 붙였다 떼는 수준이 아니었다. 선재는 산만 한 덩치로 밀어붙이는 범진을 어떻게든 떼 내려고 했다. 어깨를 밀었다.
“아, 이래 밀면 어깨 뿌사진다.”
전혀 밀리지도 않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 그런 말을 했다. 기어코 얼굴과 몸이 바짝 붙었다. 선재의 눈이 다시 범진의 뒤쪽으로 향했다. 영채가 이쪽을 흘긋거리는 것도 같고, 요리에 한창인 것도 같은데.
“혀만 좀 빨자….”
속삭이듯 말한 범진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범진은 선재의 턱부터 손으로 고정했다. 힘을 줘 입술이 반쯤 벌어지도록 만들었다. 선재는 치아를 앙다물어 혀를 숨겼다.
입맛까지 다시는 범진을 쳐다보던 선재가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괜히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범진은 담배 핑계를 대며 이거라도 먹어야 담배를 안 피울 것 같다며 엉뚱한 소리나 읊조리고 있었다. 벌려 봐라, 하고 입술을 옆으로 쭉 당기는 손짓에 선재가 범진의 팔을 쳐 냈다. 툭 떨어진 팔을 다시 올린 범진이 그마저도 좋은지 또 능글맞게 웃었다.
“니 힘 졸라 쎄네.”
“좀….”
약을 올려도 꼭 이렇게 올린다. 선재는 눈을 들어 범진을 쳐다보다가 옆을 슬쩍 봤다. 잡동사니를 모아 둔 공간이 얇은 문짝에 가려져 있었다. 처음엔 움푹 파여 있기만 한 공간이었지만 문을 달고 난 후론 창고로 쓰게 되었다. 다시 범진을 쳐다본 선재가 얼굴로 또 올라오는 범진의 손을 덥석 잡고 내렸다.
그 손을 잡은 채로 선재는 창고 문을 열었다. 금방 손이 닿는 거리였다. 먼저 들어간 선재가 좁은 공간에 범진이 큰 몸을 넣고 들어오는 것까지 불만에 찬 눈으로 쳐다봤다. 범진이 완전히 들어오자 문은 자동으로 닫혔다. 외부의 빛이 기다란 틈으로만 조금 들어오는 공간이었다. 고개를 든 선재가 다음에는…. 하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안 해 주…. 읍.”
범진의 손이 얼굴에 닿자마자 숨이 막혔다. 그대로 얼굴을 끌어 입 맞춘 범진이 작은 입구멍 안으로 혀를 거세게 집어넣었다. 끄나풀처럼 남았던 이성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듯했다. 뺨이 찌부러진 선재가 인상을 쓰면서도 입을 벌렸다. 한 번씩 깊게 들어오는 혀엔 아, 하는 수준으로 입을 열어야 했다.
늘 이런 식…. 선재는 범진이 막무가내인 걸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재혁과 준희를 영채에게 맡기고 집을 비운 날도 그랬다. 어쩐 일로 수국을 보러 가자길래 범진이 그런 데 관심이 있었나, 싶었지만 막상 가니 길에서 뽀뽀만 해 댔다. 사람들이 많은데도 상관하지 않았다. 인적이 뜸하다 싶은 곳에선 첩보 영화를 찍는 것처럼 혀까지 쑥쑥 넣어댔다. 그러면서 혼자서만 졸라 재밌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국 축제도 집에 오다가 우연히 현수막으로 본 거였다. 그게 돼지고기 축제든 불꽃 축제든 범진에겐 어떤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범진이 좋은 건 둘째치고, 밖에선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던 선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공간이었다. 발꿈치를 든 선재가 범진의 팔을 잡고 같이 혀를 섞었다. 입을 반쯤 벌렸다 놓는 움직임엔 힘이 거의 빠져 있었다. 제 혀에 비하면 크고 뜨겁기만 한 범진의 혀를 같이 옭았다.
공간이 남으면 침이 흘렀고, 숨이 차서 얼굴도 빨개졌다.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을 한 선재가 아래를 툭툭 치는 범진의 성기에도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아까부터 발기해 있긴 했지만, 몸이 닿자 그 크기를 자꾸 부풀리는 것 같았다.
“잠까….”
입을 뗀 선재의 얼굴 위로 빛이 고였다.
그 얼굴을 쳐다본 범진이 왜, 하고 번들대는 입술로 대답했다.
“자꾸 하면 너 서서 안 돼….” 선재가 범진의 아랫도리를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하….”
김새듯 웃은 범진이 그건 맞다 싶은 얼굴을 했다.
“그럼 쫌만 안자.”
“…그래.”
그래도 차를 타야 하는 거리였다. 선재는 사무소에 있어도 제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집으로 오는 범진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행동거지가 전부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유난스럽게 감정을 표현하는 범진이 싫지 않았다. 금세 벌어진 팔 안에 몸이 갇힌 선재가 범진의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어깨를 감싸 안는 뜨거운 손에 숨이 막히는 것도 같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짐승 같은 숨소리가 귓가에 꽂히고,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니만 생각하면 내가 씨발, 이래 빨딱빨딱한다….”
“…그러면… 생각, 안 하면 되지….”
숨은 차지만 입 밖으로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은 선재가 범진의 등에 두 손을 올렸다.
“니 생각 안 하면 내가 뭔 생각을 하겠냐.”
“….”
범진이 선재의 발밑을 파고들자, 선재가 범진의 발등 위에 발을 올리고 섰다. 범진은 선재가 올라간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장난을 쳤다.
“닌 내 생각 하냐.”
얼굴을 묻고 있던 선재가 고개를 들어 범진을 쳐다봤다. 어둠 속에서도 범진의 눈을 보려고 했다.
“할 땐 하는데….”
“화아…. 이 불여시 같은 게. 지 서방 피 말려 죽일라고.”
아무리 해도 밖에선 안 한다고, 그러니 너도 밖에선 내 생각 하지 말란 말을 하려 했는데, 갑자기 반응을 크게 한 범진 때문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졸지에 불여우가 된 선재가 범진을 빤히 올려다봤다.
“이래 쳐다보면 다냐.”
“아니, 한다니까. 나도…. 네 생각.”
“피 말려가 죽여 놓고 이래 쳐다보면 다냐고.”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대화의 흐름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화두에 선재는 네 생각 한다는 말을 더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하여튼 혼자 흥분하고 성내는 데는 선수다.
“그래…. 다다.”
이렇게 되면 범진처럼 말하는 수밖에 없다.
또 가만히 고개를 든 선재가 범진과 눈을 마주쳤다.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얼굴에 맺혔다가도 금세 걷히고 있었다. 어둠 속에선 불투명한 윤곽만 남게 된다. 선재는 팔을 더 깊이 뻗어, 범진을 안을 수 있는 만큼 안았다. 이렇게 가까이 붙으면 범진의 심장은 몸 밖에서 뛰는 것처럼 큰 소리를 낸다.
바위가 부서지는 것도 같고,
그 돌이 가슴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처럼도 들린다.
죽은 것처럼 말이 없던 범진이 선재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
“그래, 씨발…. 니 다 해라.”
갑자기 끌어안은 범진 때문에, 선재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품에서 계속, 범진의 말을 곱씹기만 했다.
가만히 있던 선재는 얼굴과 손을 동시에 들었다. 두 손으로 범진의 양 뺨을 쥐고, 아래로 조금 내렸다. 순순히 가까워진 범진의 얼굴, 그중에서도 입에 입술을 부딪쳤다. 두 번. 세 번. 네 번. 짧은 뽀뽀를 몇 번이나 해 준 뒤에야 선재는 입을 열었다. 범진은 표정 없이 선재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다 하라면서.”
잠깐 말이 없던 범진이 혀로 입술을 쓸며 씩 웃었다.
“하아, 더 해 줘 봐라.”
“그래, 나중에….”
선재가 그 말을 끝으로 창고 문을 냅다 열었다. 빛이 환하게 두 사람의 얼굴을 밝혔다. 까무잡잡한 범진의 얼굴도 붉어진 티가 날 지경이니 선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코와 뺨, 귀, 이마까지 엷은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흠, 헛기침을 한 선재가 먼저 주방 쪽으로 향했다.
인기척을 들은 영채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다가오는 선재에게 조리하던 국을 가리켜 보였다.
“사장님…. 이거 제가 간을 잘못한 것 같아요….”
영채는 범진과 선재를 전부 사장님으로 불렀다. 범진이 니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영채를 데려와 선재에게 면접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범진은 소파에 앉아 가만히 그 둘을 바라보기만 했다. 선재는 그때 영채에게 몇 살이냐고만 물어보았었다. 누구를 고용해 본 적이 없어 어색하게 웃기만 했었다. 그날 범진은 대놓고 마음에 드냐? 물었고, 선재는 앞에 사람이 있어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적으로 영채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도우미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 괜찮아요.”
“왜 단맛이 나지…?”
“어….”
계속 의아해하는 영채 때문에 선재가 숟가락을 들어 찌개 간을 봤다. 요리는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채 곁을 서성이다 맛을 보게 될 때는 종종 있었다. 뜨거운 감각에 인상을 찡그린 선재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달죠.”
“아뇨, 맛있어요.”
“정말요?”
“네. 너무 맛있어요.”
영채는 선재의 말이라면 확인을 거듭하는 버릇이 있었다. 워낙 유한 선재의 성정 때문에 곤란을 겪은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범진에게 타박을 받았고, 또 그때마다 관두려고 했지만 일의 난이도가 낮아 못 그만둔 게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엔 놀랐지만, 이젠 범진의 방식에도 적응이 꽤 된 상태였다. 말로만 못되게 말하는 사장님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장님. 일이라고 생각하면 두 경우 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거기다 높은 급여까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관둘 수가 없었다.
잠시 넋을 빼고 있던 영채가 작은 컵에 주스를 따르는 선재를 쳐다보았다.
한 번 쳐다보기 시작하면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얼굴이 지나치게 곱긴 하지만,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눈을 못 떼게 되는 것도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한 집에서 나고 자라지 않으셨을까. 차분한 말투와 행동은 막말을 일삼던 어느 졸부 오메가 고용주와 비교를 하게 만들었다. 선재 사장님에겐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마음만 드는데.
종이팩에 담긴 주스를 냉장고에 도로 넣은 선재가 고개를 돌려 영채를 쳐다봤다.
“준희가 요새 이것도 잘 먹어요.”
“아? 네, 맞아요. 포도!”
영채의 눈을 보며 고개를 꾸벅 숙인 선재가 주스 한 잔을 들고 주방을 벗어났다.
방금까지 범진과 대치하고 있던 거실 구석엔 잔잔한 빛만 들고 있었다.
선재는 잠깐 멈칫하다 쭉 걸었다. 곧 방문 앞에 섰고, 반쯤 닫혀 있던 문을 손으로 조심해서 밀었다.
“….”
안을 둘러본 선재가 컵을 서랍장 위에 놓았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아이가 범진의 배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캥거루 케어라고 해서, 범진 위에 재혁을 올려 둔 적이 몇 번 있었다. 체취를 자연스럽게 느끼길 바라고 했던 시도였는데, 어째 준희가 저 가슴팍 위에 올라가 잠드는 일들이 더 많았다. 걸핏하면 불쾌하다는 듯 우는 재혁보다는 곤히 안겨 잠드는 준희가 범진의 눈엔 더 예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외출복 차림 그대로인 애랑 이러라고 가르쳐 준 건 아니었는데.
침대 끄트머리에 털썩 앉은 선재가 범진에게 눈빛을 보냈다.
“왜.”
고개를 빳빳하게 든 범진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왜?”
태연하게 묻는 범진에게 선재가 되물었다.
옆을 보고 누웠던 아이라,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선재가 엄지손가락을 물고 잠든 준희의 얼굴을 확인했다. 원래는 그런 버릇이 없었는데, 공갈 젖꼭지를 문 재혁을 계속 보기도 하고, 범진이 니도 물어 봐라, 하고 준희의 입에 공갈 젖꼭지를 물려 주기도 해서 저런 버릇이 생겼다. 분명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무릎으로 천천히 기어간 선재가 아이의 입에서 작은 손을 빼 주었다. 아이는 그새 깊은 잠이 들었는지 입에서 뭐가 빠져나가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작고 연한 입술이 뻐끔뻐끔하다 이내 꾹 닫혔다.
“옷이라도 갈아입혀 주지.”
“1초 만에 잠들었다.”
“1초는 무슨….”
중얼거린 선재가, 말할 때마다 들썩들썩하는 범진의 가슴팍과 준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만있어, 그냥.”
“가만있는데.”
또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범진의 허벅지에 손을 올린 선재가 습관처럼 아랫입술을 물었다. 입 모양이 또 쓰읍, 하고 꾸중하는 모양이라 범진도 아까 같은 어이없는 미소를 얼굴에 올렸다.
“아직도 혼내고 싶냐.”
“하지 말라는데 자꾸 하니까 그렇지.”
말소리가 큰 건 아니었는데, 기척에 잠이 깬 준희가 입술부터 움직였다. 가볍게 쥐어져 있던 손이 움직였고, 선재는 아이를 조심히 안아 범진의 옆에 편안한 자세로 뉘어 주었다. 재혁과 준희, 전부 30분은 더 잘 것이다.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잠옷을 펼친 선재가 그걸 준희에게 천천히 갈아입혀 주었다. 눈을 살짝 떠 무어라 말을 하는가 싶다가도, 아이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선재의 손이 준희의 약하고 작은 가슴팍 위에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쳐다보던 범진이 몸을 홱 일으켜 선재의 팔목을 잡았다.
방문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였다. 나가서 뭐 하게. 그런 얼굴로 쳐다봐도 원하는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범진은 오늘 사무소로 다시 갈 생각이 아예 없는 걸까?
낮은 웬만하면 평온한데, 범진이 방으로 들어오면 그 분위기가 깨지곤 한다. 지금도 그랬다. 범진이 문 쪽으로 손을 뻗으며 빨리 나가자 독촉하고 있었다. 범진을 쳐다본 선재가 아이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낮잠 시간을 더는 방해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선재가 이미 문을 연 범진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손을 잡은 범진은 어디 도망이라도 가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헤실거리는 얼굴을 얼핏 본 선재가 주방 쪽에도 시선을 던졌다. 영채는 오후 4시나 5시에 퇴근을 한다. 지금은 2시를 조금 넘겼을 뿐이다. 밖으로 끌고 나가려는 범진 뒤에서 선재가 버텼다.
“어디 가는데?”
“건 모르지. 내가 니 속을 어찌 아냐.”
제가 원하는 곳으로 가 주겠다는 반응이었다. 영채가 있긴 하지만 갑작스러운 외출은 하기가 꺼려졌다. 손에 힘을 준 선재가 고개를 저었다.
“주말에, 영채 씨한테 얘기하고 가자.”
“왜.”
“지금 시간도 어중간하고, 아….”
인상을 쓴 선재가 범진의 손에서 손을 빼 어깨 부근을 만졌다.
가슴에서 느껴진 갑작스러운 통증 때문이었다. 준희를 낳았을 땐 어떤 증상도 없었지만, 재혁을 낳은 뒤론 달랐다. 판판한 가슴은 여전했으나 유두 부근이 퉁퉁 불고 벌게졌다. 멀건 액체도 젖꼭지 끝에 고였다. 영양분이 거의 없는 체액이었다. 남자 오메가의 경우 통증이 만성으로 굳어질 수도 있어 선재는 병원도 다니는 중이었다. 병원에서는 범진이나 재혁 중 한 명이라도 열성이었다면 이런 반응이 없었을 거라 일러주기도 했지만, 이미 나타난 증상에다 누구의 형질을 바꿀 수도 없는 문제였다.
약이나 주사로 통증을 달랠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참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병원을 떠올린 선재가 가만히 멈추어만 있었다. 그런 선재를 쳐다보던 범진이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선재의 얼굴이 위쪽으로 들리게 만들었다.
“왜.”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선재가 범진의 어깨 부근만 쳐다봤다. 뒤쪽에서 준희야, 하고 주방을 나서는 영채에게 선재의 시선이 닿았다. 범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선재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을 안 하니 답답한 눈치였다.
“아, 영채 씨, 아기들 지금 자서…. 괜찮아요.”
선재는 영채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 하고 뒷머리를 긁적거린 영채가 그럼 샐러드만 만들고 퇴근할까요? 물었다.
“네, 그렇게 해 주….”
“얼굴 보자.”
범진은 대답하던 선재의 얼굴을 갑자기 양손으로 쥐었다. 말도 안 끝났는데 양 뺨을 쥐고 뽀뽀를 시도했다. 옆에 있던 영채가 민망한 듯 어…. 하다 뒷걸음을 쳤다. 시야가 갑자기 좁아져 범진의 얼굴밖엔 안 보였지만, 영채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선재가 범진의 손목을 손으로 쥐었다.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장난을 치고 싶냔 말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뺨이 눌려 말이 이상하게 나와, 더는 말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범진은 선재를 빤히 쳐다보다 앞으로 튀어나온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입이 티나와서 내가 뽀뽀를 안 할 수가 없네.”
제가 얼굴을 잡아 입이 튀어나온 건데도, 말을 그렇게 했다.
또 쪽, 하고 닿을 땐 발꿈치가 많이 들리게 되었다. 선재가 진짜 그만하라고, 고갯짓을 하며 범진의 손을 풀었다. 뒤늦게 힘을 뺀 범진이 미소 띤 얼굴로 선재에게 바짝 붙었다.
“그니까 어데가 아프냐고.”
“이제 괜찮아졌어.”
“괜찮으면 입술이나 더 찍든가.”
“….”
키스 못 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범진은 잠들기 직전에도 입술을 꼭 붙이려 하는 버릇이 있었다. 키쓰하면서 자자, 이러고 자자. 이유는 다양했고, 자세는 비슷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안겨 잠든 날이면 다음 날까지 몸이 불편하곤 했다. 곳곳이 뻐근했다.
어제도 잠결에 범진의 입술 감촉을 느꼈던 게 기억이 났다. 눈썹을 꿈틀거리던 선재가 범진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사람 있으니까 나중에, 아….”
이런 타이밍에 또…. 선재가 제 몸을 끌어안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처음에 느꼈던 그대로의 통증이 가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이번엔 상체까지 반쯤 숙여, 범진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허리에 닿은 범진의 손에, 선재가 고개를 들었다.
“안 나갈라고 엄살 부리는 줄 알았드만은.”
“내가 너야…?”
“뭐? 씨.”
그래도 농을 건넬 기운은 남아 있었다. 이게, 하고 덤빌 것 같던 범진은 선재를 살살 끌어안기만 했다. 그 상태로 계단 쪽을 향해 걸었고, 불편한 표정을 한 선재의 얼굴에만 시선을 기울였다. 범진은 선재가 고개를 숙인 것도 아닌데 틈만 나면 보자고 했다.
보자.
그런 말이 또 들렸다.
나무 계단 앞에서 걸음을 멈춘 선재가 범진을 쳐다봤다.
먼저 계단을 밟기 시작한 범진은 선재의 얼굴에 혀를 댔다.
그러면서 내가 만지고 빨아 주고 다 해 준다, 했다. 처음에만 의아해했던 범진도 선재가 가슴이 아파 그러는 걸 알아챈 눈치였다. 딴엔 생각한다고 부드럽게 얼굴에 혀를 대는 거지만 그거랑 통증 완화가 무슨 상관인지는 몰랐다.
반쯤 오른 계단 위에서, 선재의 얼굴은 이미 범진의 침으로 군데군데 윤기가 돌고 있었다. 작은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선재의 뺨에 반짝이며 내려앉았다.
“벗고. 앉아 봐라.”
2층에 도착하자마자, 범진은 웃통부터 벗어젖혔다. 저번에 ‘마싸지’를 해 주겠다고 난리를 쳤을 때도 제 옷을 먼저 벗었었다. 그러곤 한다는 말이, “니 혼자 벗으면 좀 억울하지 않겠냐.”였다. 전혀 억울하지 않았지만, 선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거린 선재가 다락을 둘러보며 팔만 만지작거렸다.
“왜.”
양쪽 가슴 근육을 움직이며 다가온 범진이 선재 바로 앞에 섰다.
“…그냥 병원 가게. 주사랑 마사지,”
“아, 됐다. 딴 놈 손타게 하기 싫다.”
“…….”
범진은 혼자 딴 놈 생각을 하곤,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컵을 오래 잡고 있으면 그 컵에도 괜한 역정을 내는 범진의 질투심을 안다.
뭘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알겠는데, 범진이 손을 대면 아프기만 해서….
선재는 기술도 없이 만지기만 하는 범진을 막아 보려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았다.
아예 일을 다 보고 왔나? 다시 사무소로 갈 일은 정말 없을까. 범진은 가만 서 있던 선재의 팔을 끌었다. 두어 걸음 걷다가, 범진이 앞으로 먼저 다가가 두툼한 매트리스 옆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앉자마자 선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 앉으라고, 제 가슴을 한 대 때렸다.
“…….”
저러는 건 하도 많이 봐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선재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고개를 빼고 소매까지 정리하자 썰렁하단 느낌만 남았다.
탱탱 부은 유두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몸을 반쯤 돌린 선재가 범진의 곁으로 가 조용히 앉았다. 반쯤은 등을 보이는 자세였다. 범진이 선재의 목선을 대놓고 훑었다.
“야…. 뭐, 니 부끄럽냐.” 얼굴을 들이댄 범진이 선재의 귀를 빨며 물었다.
“뭐가…. 하나도 안 부끄러워.” 앞만 쳐다본 선재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래, 내가 니 아 낳았을 때 하장실까지 다 봐줬는데.”
무슨 소린가 했지만 짐작되는 게 있었다. 재혁을 낳았을 때, 수술을 거친 탓에 화장실을 혼자 왔다 갔다 하기가 어려웠다. 요의와 복통이 구별되지 않아 타이밍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결국 통증이라 생각해 참다가 바지에 실례를 했고, 그 뒤처리를 범진이 다 해주었다. 이후로 시하러 가자고 범진이 말하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도 그를 따라 화장실로 갔어야 했다. 옆쪽으로 고개를 돌린 선재가 턱을 든 채 웃고 있는 범진의 얼굴을 못마땅한 듯 응시했다.
“그것도 내가, 알아서, 왔다 갔다 하면 되는데.”
얼굴이 벌게진 선재가 억지 부리듯 대꾸했다.
“어, 맞다.”
짧게 대답하고, 범진은 키스했다.
선재의 아랫입술을 쭉 빨아당긴 범진이 니 말은 다 맞지, 하고 윗입술도 이어서 빨았다. 쭉쭉 밀려 나가는 입술에 힘을 줘 봐도 소용이 없었다. 전엔 냅다 가슴만 눌러 대서 아프기만 했는데 입을 맞추니 그래도 긴장이 덜했다. 괜히 열을 내고 말했나 싶었다.
질척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선재도 입을 벌려 혀를 받아 주었다. 젖은 살 두 덩이가 한 덩어리처럼 섞였다.
“읍….”
범진은 그 틈에 손을 선재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혀로 혀를 빨면서 손을 세웠다. 선재는 상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범진이 하도 만져 피부가 얇아진 젖꼭지는 약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슬쩍 쥔 손길에 선재가 인상을 찌푸렸다.
범진은 유두를 은근히 만졌다. 키스를 하며 정신을 빼놓다가 손에 힘을 주는 식이었다. 입을 잠시 떼고, 범진은 선재의 얼굴 여기저기에 혀를 댔다. 선재가 콧잔등에 뽀뽀하려는 범진을 살짝 피했다.
“아픔 말해라.”
“…….”
낮에, 그것도 사람도 있는 데서 키스를 하고, 여기까지 올라와 마사지를 받자니 내키지 않는 데가 많았다. 다락에 사람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남아 있었다.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말 같은 게 들리자 선재가 불안한 눈으로 범진을 쳐다봤다. 범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유두를 툭툭 건드려 세웠다. 금방 솟아버린 유두는 범진의 손에 잡혀 돌돌 말렸다. 이어 앞으로 쭉 잡아당기는 손짓에 선재가 불만 섞인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맞다. 내가 공부를 쫌 했그든.”
앞쪽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없는 살을 모아 꾹 누르기도 한 탓에, 젖꼭지 끝엔 금세 보얀 물이 고였다. 발가락을 오므라뜨린 선재가 범진의 팔을 잡았다.
“아….”
순간, 짧은 소리를 내뱉은 선재가 얼굴을 붉혔다.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던 흰 방울이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범진의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양이 많은 건 아니지만 짜내면 이렇게 나오곤 했다. 마디가 불거진 범진의 손등 위로 하얀 젖이 줄을 그리며 지나갔다.
“니 몸에서.”
범진이 입을 맞추며 츄읍, 소리를 냈다. 입술 끝에서 느껴진 감각에, 선재도 고개를 돌리고 입을 벌렸다. 전체적으론 판판하지만 유두 주변이 부은 것처럼 통통했다. 그 주변을 주무른 범진이 또 한 번 울컥 새는 젖에 손을 적셨다.
“나오는 거 중에 젤 진하다.”
입술을 내민 범진이 혀도 쑥 내밀었다. 턱을 살짝 들어 같이 혀를 내민 선재가 곧 입안에 꽉 차는 범진의 혀를 제 혀로 옭아 보았다. 혀도 거기만큼이나 크고 벅찼다. 침이 고이다 못해 턱 끝으로 떨어질 때가 많아 나름의 기술을 익혀야 했다. 얼굴을 위쪽으로 들며 입을 벌리는 선재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범진이 눈을 슬쩍 뜨고 눈썹을 올렸다.
“으으으!”
“어이, 그래 지르면 다 들리지….”
잠시 입술을 뗀 범진이 조용히 읊조렸다. 소리를 내게 만들었으면서 꼭 이렇게 놀렸다. 범진이 침에 젖은 입술을 얄밉게 올려붙였다. 불퉁하게 쳐다보던 선재가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젖꼭지를 너무 세게 쥐어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범진의 양손은 입이 떨어져도 계속 가슴에 닿은 상태였다.
“와 봐라. 내가 니 소리 지를 때마다 입으로 막아 볼 테니까.”
저, 가까이 있어도 와 봐라, 보고 있어도 보자, 하는 소리는 지치지도 않고 했다.
지금도 그러는 범진을 쳐다보던 선재가 얼굴만 위쪽으로 들었다. 턱이 위로 향하자 범진이 위에서 아래를 찍듯이 키스해 왔다. 순간 손에도 힘이 들어가, 선재의 양 유두 끝에 또 한 번 흰 체액이 맺혔다.
선재는 어정쩡한 자세에도 범진을 안으려 팔을 뒤쪽으로 뻗었다. 상처가 많은 몸이지만 피부 결 자체는 부드러운 편이었다. 빼곡한 문신을 지나쳐 범진의 목에 팔을 댔다가, 결국 손으로 잡은 곳이 어깨였다. 뒤에서 안긴 채여서 움직임에 제약이 많았다.
“할 만하냐…?”
살짝 떨어진 범진의 입술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조용한 저음이 닿은 선재의 귓가에 기묘한 떨림이 일었다.
눈을 맞추며 대답하려는데 근처에 있던 입술이 다시 닿았다. 범진은 자주, 말을 걸어 놓고 입으로 막아 버리는 짓을 했다.
입술이 눌려 고개를 뒤로 뺀 선재가 불편한 듯 입안에서 신음을 냈다.
“으읍. 어브.”
“못 하겠냐.”
스윽 입술을 뗀 범진이 가까이서 물었다.
“입을 자꾸 막, 읍.”
겨우 말할 기회를 줬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끝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의견을 채 전하기도 전에 입이 막힌 선재가 은근하게 발버둥을 쳤다. 범진이 강한 힘을 실은 건 아닌데 계속 무방비상태이다 보니 몸이 자꾸만 밀렸다.
제 몸이 밀리는 것과 별개로, 범진의 손은 유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손끝에 힘을 줘 말간 액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때마다 선재가 다리를 배배 꼬았다. 범진은 선재의 젖꼭지 끝을 손장난하듯 쥐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자극을 주면 몸을 가만히 두기가 힘들었다. 선재가 입술을 뒤로 빼며 범진을 쳐다봤다.
“뭐.”
“이거, 마, 마사지 아니잖아.”
또 말문을 막을까 봐, 선재는 잽싸게 말했다.
“거의 마싸진데.”
“이게….”
선재는 이건 마사지가 아니란 의미로 입을 열었지만, 범진은 저를 향해 ‘이놈이?’ 하고 도발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갑자기 소리 내 웃었고, 선재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뒤로 고개를 젖히면서까지 웃는 범진을 선재는 가만 쳐다보기만 했다.
“니 내랑 맞다이도 뜨겠다.”
“무슨 소리야.”
“어, 맞다이도 함 뜨겠다고.”
선재의 뒤통수를 잡은 범진이 이마를 붙여 오며 장난스레 말했다.
“근데, 뭐. 마싸지 아니면 뭐 어찌라고….”
“…….”
“뭐 어째 줄까요.”
“아야….”
자주 이마를 맞대 오긴 했지만, 딱 붙은 채로 비비기까지 하니 머리카락 때문에 이물감이 들었다. 두 눈을 찡그린 선재가 엄살을 부렸다.
“쓰으, 아픈 건 안 되지.”
이마를 뗀 범진이 선재의 머리카락을 정확히 오대오로 가르고 다시 돌진했다. 뽀뽀를 하려나, 싶었던 선재가 갑자기 오르는 압력에 범진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이마에 붉은 자국을 남기려는 것 같았다. 앞이 아찔해진 선재가 어떻게든 범진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 하지 마? 진짜 하지 마?”
입으로 쭈욱 빨아당기느라 말이 없던 범진이 몇십 초가 더 지나고서야 흐뭇한 얼굴로 선재를 쳐다봤다.
“했는데.”
“씨….”
“씨?”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싼 선재가 원망스럽단 눈으로 범진을 바라봤다. 정중앙에 입술이 닿았으니 앞머리로 가려도 한계가 있을 게 분명했다. 병원도 가야 하고, 선생님도 매일매일 보는데…. 영채 씨 눈은 또 어떻게 피하나? 경험상, 그 감각이면 자국도 크게 남을 것 같았다.
“입이 이래 글레가 돼서 큰일이다.”
천지 분간도 못 하고 그런 거나 배워 가지고, 했다.
범진은 제 입술이 소독약이라도 되는 듯 굴었다. 내가 깨끗하게 해 준다는 식으로 뽀뽀했지만, 누가 누구한테 입버릇이 더럽다고 하는지 몰랐다.
선재가 표정으로 어이없는 감정을 드러냈다. 범진은 끊임없이 뽀뽀를 하다가 선재의 어깨를 잡고 서서히 힘을 줬다. 몸이 기울도록 만들었다.
결국 뒤로 넘어간 선재가 범진을 빤히 쳐다봤다. 범진은 선재를 눕히고 나선 팔 걷어붙이는 시늉을 했다. 입은 옷도 없는데 그런 흉내였다. 그리곤 잡아먹을 듯 두 팔을 위로 뻗으며 상체를 겹쳐 왔다. 하는 건 겨우 뽀뽀였다. 혀를 슬쩍 내민 채여서 입술에 물렁한 감각이 닿긴 했지만, 쪽쪽거리는 게 뽀뽀에 가까웠다.
“아…. 나중에 해…. 잠깐만….”
두 손으로 얼굴을 막은 선재가 범진을 말렸다.
“이래 됐는데 비키라고.”
무릎을 바닥에 댄 채로 상체를 세운 범진은 보란 듯 하체를 내밀었다. 앞을 바라본 선재가 두둑해진 앞섶에 뭐라고 중얼중얼했다. 범진이 뭐? 하고 얼굴을 숙이면 입을 닫았다. 범진은 그것도 좋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니 그래 쫑알거리믄 내 자지 더 커진다, 했다.
심드렁한 얼굴로 올려다보던 선재가 코를 괜히 훌쩍였다. 저 또한 좀 전까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게 사실이었다. 지루하고 무심한 표정과 달리, 얼굴이나 목덜미는 붉어진 채였다. 가슴은 자극을 받아 처음보다 더 불그스름하게 불어 있었고, 젖이 나온 흔적도 역력했다. 촉촉해진 배에 손을 올린 선재가 그럼 좀 닦고, 했다.
일어나 티슈를 뽑으려던 찰나, 범진이 선재를 뒤로 다시 눕혔다. 곧 젖은 배와 가슴에 혀를 댔다. 내가 따까 준다, 하고 장난치듯 혀를 내밀어 선재를 간지럽혔다.
“아, 간지러워….”
범진의 뺨에 손을 댄 선재가 괜한 마음에 힘을 줬다. 볼을 꼬집듯 쓸자, 범진의 흉터가 일시적으로 옅어졌다.
그러든 말든 혀를 내민 범진은 드문드문 남은 젖물 핥기에만 열중했다. 두 손을 범진의 얼굴에 대 본 선재가 눈이 제대로 찢어지도록 힘을 줬다. 그 행동엔 범진이 인상을 팍 썼다.
“내 쌍판이 니 장난감이냐.”
“왜…. 장난감 하면 안 돼?”
“허?”
“너도 맨날 나한테 이러잖아.”
이렇게, 하고 선재는 범진의 양 뺨에 손을 댄 채로 보란 듯 위로 밀었다. 범진의 눈이 제대로 찢어지며 사나운 인상이 되었다. 원래도 표정이나 흉터 때문에 첫인상이 그리 좋진 못한 편이다. 가만히 있을 땐 괜찮은데…. 못나진 얼굴을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선재가 코웃음 치듯 웃었다.
“야, 앞에 보이게는 해 줘야지.”
“뭘 봐. 보지 마.”
갑자기 손목을 턱 잡은 범진의 손에, 선재가 주고 있던 힘을 모조리 풀었다.
범진은 선재의 나머지 손목까지 쥐어 바닥에 붙였다. 양손을 포박시킨 채로 선재를 내려다보았다.
“어찌 안 보냐. 이거를.”
불편한 듯 몸을 비튼 선재가 으응, 하고 입안에서 신음을 머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범진이 선재의 손목 하나를 풀어 주었다. 짙어진 눈은 계속 얼굴에 닿아 있었다. 빤히 내려다보며 손을 내린 범진은 으깨질 것처럼 제 가랑이 사이를 꽉 잡았다. 매번 저리 우악스럽게 잡아대는데 멀쩡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눈살을 찌푸린 선재가 범진의 팔을 쳤다.
“좀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왜 니 꺼 니가 만지 주고 싶냐.”
손등 위로 불거지는 힘줄을 쳐다보던 선재가 입술을 꾹 닫고 있다 그래, 하고 조용히 대답했다.
“손 떼. 내가 만져 줄게.”
“하아, 이 씨발….”
워낙 고통에 무디니, 제가 만져 주는 편이 나았다. 앞에서 자위를 할 때, 범진은 힘 조절을 안 할 때가 많았다. 어디 다칠까 조마조마한 선재의 마음을 범진은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지퍼를 내린 범진은 이미 살벌하게 발기한 자지를 퉁기듯 내밀었다. 두 손을 뻗은 선재가 범진의 다리 사이에 누운 채로 천천히 그걸 쓰다듬었다.
불쌍했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자지인데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무릎을 질질 끌어 거리를 좁힌 범진이 선재의 얼굴을 넋 놓고 쳐다봤다.
“씨팔, 더.”
처음에만 살살 쓰다듬었지, 그래도 기둥을 잡고 원래 하던 대로 마찰을 일으키고는 있었다. 범진은 뭐에 갈증이 났는지 자꾸만 앞으로 다가왔다. 쭉 뻗어 있던 팔을 반 이상 접은 선재가 어느덧 턱 끝에 통, 통 닿는 자지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이러면 손으로 못 해줘.”
하중이 쏠리는 건 아니지만 팔을 가두며 올라온 범진의 자세가 버거웠다. 씨팔, 니 졸라 이뻐서, 하고 다가온 범진이 이미 위쪽을 향해 고개를 쳐든 자지를 잡고 선재의 턱을 툭툭 치고 있었다.
“뭐 해….”
“니 이거 좀만 쑤시자.”
갑자기 입안에 검지를 쑥 넣은 범진이 자지를 꺼떡대며 자세를 잡았다. 맺혀 있던 선액도 침 흘리듯 선재의 얼굴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아어(알았어), 하고 범진의 손가락을 깨문 선재가 급하게 돌진하는 범진의 자지를 아무렇게나 물었다. 빠져나간 손가락엔 잇자국이 선연했다. 범진은 이쯤 되면 확실히 고통이란 걸 못 느꼈다. 선재의 머리를 받치고, 작은 입안에 제 자지를 조금 넣어 보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아, 이 씨팔.”
“아아바.”
하도 많이 해선지 성기에 먹힌 말소리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아들었다. 나와 보란 선재의 말을 알아들은 범진이 여기서 어떻게 나오냐, 하고 낮게 중얼댔다. 그 반응에 선재가 스스로 머리를 들어 각도를 잡았다. 침 삼키듯 목 끝을 움직이면 범진의 귀두가 팔딱거리며 뛰는 게 느껴진다. 너무 깊어도 잘되지 않는데, 이번엔 적당히 깊은 곳에 닿고 있었다.
츄읍, 하는 소리가 입안에서 들렸다. 안에서 이도 세운 선재는 빨아올리듯 성기를 물고 자극을 주었다. 가만히 잘 빨던 선재의 표정이 변한 건 범진이 주체를 못하고 목구멍을 찔렀을 때였다.
“왜, 못 하겠냐….”
입술을 뻐끔거리는 선재를 내려다본 범진이 입맛을 다시다 뒤로 몸을 뺐다. 동시에 눈물을 주르륵 흘린 선재가 입을 막고 눈을 꾹 감았다.
“해 준다고 해도 꼭….”
땀과 범진의 체액, 눈물 때문에 얼굴이 벌판에서 구른 것처럼 엉망이 되고 말았다. 웅얼거리던 선재를 쳐다본 범진이 난데없이 자지에서 쿠퍼액을 흘렸다. 바로바로 고개를 쳐드는 자지를 얼핏 본 선재가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어이가 없었다.
“하아, 니만 보면.”
“알았어.”
다음 말은 이미 들은 것 같았다. 말을 끊은 선재가 다가오는 범진을 쳐다보았다.
“자지가 니만 보면 질질 싸댄다.”
선재의 한쪽 눈을 슥 닦아 준 범진이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기어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런 말 좀….”
목이 좀 아파 눈물이 흐른 건데, 범진이 눈물을 닦아 주면 이상하게 눈물이 더 나려 한다. 저급한 말을 하면서도 범진은 선재의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씨팔, 자지라도 안 팔딱대면은 내 벌써 뒤졌다.”
좋아 죽을 것 같은 감정을 범진은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붉은 자국이 남은 이마와 머리에도 범진의 손이 닿았다. 턱 피부가 미세하게 오그라든 선재가 두 팔을 뻗어 범진의 등을 안았다. 힘을 주자 범진이 엉성하게 앞으로 다가와 살을 맞댔다.
“죽지 마.”
“푸하.”
웃긴 듯 푸, 하고 웃은 범진이지만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니까, 하는 선재의 말엔 더는 웃지 않았다.
“나 죽이고 싶으면 뒤져…. 알았지.”
“…알았다.”
어딘가 맹한 선재의 말이지만 범진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선재는 한동안 범진을 계속 안고만 있었다. 커다란 몸이 움직이면 손에 힘을 줘 가만히…. 하고 범진을 달랬다. 그러면 범진은 가만있었다. 자지를 세운 채여도 섣불리 몸을 쓰지 않았다.
몸을 먼저 밀어낸 건 선재였다. 벌떡이며 솟는 자지에 몸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가만 기다려 주는 범진과는 별개의 존재였다.
몸이 떨어지자 범진의 상태가 어떤지 눈에 들어왔다.
달아오른 자지가 피눈물을 흘릴 듯 팽창해 있었다. 눈만 마주쳤다 하면 쿠퍼액을 흘리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
“한 번만이야. 영채 씨 있는데 또 이러면 국물도 없어….”
선재는 바지를 느리게 벗었다. 한쪽 다리를 빼내곤 범진을 확인하듯 응시했다.
다가온 범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손을 뻗어 선재의 팬티를 만지던 범진이 나머지 한 손도 엉덩이로 가져갔다. 힘이 실린 건 순식간이었다. 엉덩이를 벌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선재를 위로 들어 올렸다. 범진의 손이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살을 직접 만지려고 팬티의 천을 되는대로 안쪽으로 모았다. 범진이 선재의 이마를 혀로 쓱 핥았다.
“진짜 국물도 없냐. 키쓰는 쫌 해주지.”
“아, 손, 팬티 잡아당기지 마.”
“내 니가 가만있으라 해서 가만있었는데.”
“내려, 내려줘….”
“키쓰는 쫌 해주면 안 대냐고.”
어, 이렇게, 하고 범진이 얼굴을 내밀 때마다 선재의 입술이 찌그러졌다.
일부러 힘줘서 입을 맞췄다. 무신경한 얼굴로 범진을 쳐다보고 있지만, 워낙 입술이 무식하게 닿다 보니 피부가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렸다. 결국 이마로 소심한 돌진을 한 선재가 입 대신 이마 위쪽을 범진의 턱에 부닥쳤다. 범진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어쭈…. 조팼냐.”
상스러운 말에 고개를 든 선재가 범진과 눈을 마주쳤다.
“조…패기는 뭘 조패?”
살면서 입에 담아 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특이한 억양까지 섞여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이젠 뜻도, 범진의 심술 어린 얼굴도 다 익숙해졌지만.
보란 듯 눈썹을 꿈틀거린 범진이 니가 이라는 게 조패는 거지, 하고 제 이마를 들이댔다. 선재가 손으로 범진의 어깨를 짚은 채 최대한 상체를 뺐다. 엉덩이가 붙잡힌 자세라 다리는 쓸 수가 없었다.
“야씨…. 아구지 마른다.”
몇 번 더 위협하듯 얼굴을 내밀던 범진이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이리로 와 보기나 하라 고개를 주억였다. 어디까지 하나, 싶었던 선재도 그땐 다시 범진의 상체에 제 몸을 붙였다.
엉덩이를 하도 주물럭거린 탓에, 천이 티팬티처럼 엉덩이골 사이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쥐는 범진 때문에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는 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릎을 펼친 선재가 범진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도 발짓을 했다. 힘을 빠지게 만들 심산이었다.
“가만 안 있냐.”
침을 쭉 늘이며 입술을 뗀 범진이 잽싸게 선재의 코를 깨물었다.
뭉툭한 통증이 코끝에서 느껴지자, 눈물이 금세 고였다. 가끔 힘 조절을 못 하면 얼굴 어디를 깨물든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통증이 느껴진다. 두 손으로 코를 가린 선재가 이마에도 손을 올려 보았다. 짐승도 아니고 맨날 이렇게 물고 빨았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진짜로 깨물고, 쭉쭉 빨아댔다.
“진짜…. 너도 얼굴 대. 나도 할 거니까.”
진심으로 성이 난 게 없지 않아 있지만, 범진은 그러면 좋다고 얼굴을 쑥 내밀었다. 어디 할래? 하고 초롱초롱한 눈을 만들고 저를 쳐다봤다. 그 눈을 쳐다본 선재가 어디, 하고 뺨을 들이댄 범진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
상황이 이러니 어디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얼굴에 하긴 그렇다. 저번에도 해 봤지만, 웬만큼 빨아선 자국도 생기지 않는 부위이기도 했다.
범진의 눈과 코, 귀, 목까지 훑던 선재가 엉덩이를 조금 내린 자세로 범진의 목을 끌어안았다. 너도 아파 보란 심정으로 입술을 목에 댔다. 그러곤 쪽, 쪽, 빨아 보는데 범진이 으, 하고 좋다고 오버하는 소리만 들렸다. 자지도 불뚝이며 솟아올라 엉덩이를 묵직하게 치고 있었다. 3초, 4초…. 더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곧 얼굴을 뗀 선재가 완전히 패배한 얼굴로 범진을 쳐다봤다.
“그거 해 주고 마냐.”
깨물까, 싶었지만 범진은 그러면 더 흥분한다. 허무하게 웃고 만 선재가 몸에서 힘을 완전히 뺐다. 매트리스에 눕겠다고 손을 뒤쪽으로 뻗었다.
“이제 그만해. 시간도 없으니까.”
“왜 시간이 없는데.”
“아기들 낮잠 금방 깰 거고….”
“뭐. 방금 잠들었는데.”
실은 아기들보다 사라진 집주인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할 영채가 신경 쓰였다. 단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으니, 최대한 민망한 일은 만들지 않아야 했다.
그냥 빨리, 하고 범진의 어깨를 탁, 친 선재가 몸의 중심을 최대한 뒤로 보냈다. 급기야 휙 넘어갈 뻔한 몸에 범진이 어이 씨발, 하고 놀랐다.
선재의 뒷머리에 손을 댄 채 범진은 천천히 몸을 눕혀 주었다.
“니가 애기냐. 진짜 넘어가면 어짤라고.”
범진이 말하는 애기는 언제나 준희였다. 재혁에겐 아직도 최범수, 혹은 범수 저거라고 불렀다. 재혁의 이름이 입에 익지 않은 건 선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애를 써서 아이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 선재와 달리, 범진은 나오는 대로 지껄일 때가 많았다.
재혁이 범진의 체취를 불쾌하게 여겨 울기 시작하면, 범진은 이 새끼 이거 봐라, 하고 아기가 못 알아듣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마침 생각난 선재가 재혁 얘기를 꺼냈다.
“재혁이도 많이 안아 줘.”
“뭐를. 내가 안 안아 주냐.”
범진이 선재의 팬티를 벗기며 대꾸했다.
“아니….”
선재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발기한 줄 몰랐지만, 팬티를 벗기고 보니 힘을 받은 성기가 홱 드러났다. 마사지 때부터 기분이 이상하긴 했는데. 괜히 가슴에 손을 가져간 선재가 그 근처를 벅벅 닦아내었다. 반쯤 마른 젖이 찝찝한 느낌으로 손가락에 묻었다.
선재의 엉덩이 아래에 손을 넣은 범진은 샅을 위로 들어 올렸다. 펼치고 있던 무릎을 접은 선재가 위로 들린 엉덩이에 눈가를 찡그렸다. 코앞에서 대롱거리는 성기를 보는 것도 곤욕이고, 구멍이나 살점 하나하나를 범진에게 내보이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범진은 신호도 주지 않고 얼굴을 냅다 엉덩이 사이에 박았다. 혀가 곧 구멍 근처를 쓸었고, 뾰족하게 만들어진 혀끝도 구멍 안으로 함부로 쑥쑥 들어왔다.
“아…. 안 해도…. 안 해도 괜찮…. 아으….”
하체가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리를 발랑 쳐들고 엉덩이 구멍을 빨리고 있으려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범진은 세운 혀끝으로 움찔거리는 주름을 거세게 눌렀다. 눈은 선재의 얼굴로 가 있었다. 내민 혀가 입구 바로 안쪽의 내벽에 닿자, 선재가 목에 얇은 핏대를 세웠다. 허벅지도 떨었다.
추읍, 범진은 빨아올리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말하기도 망측한 곳에 입을 맞추고, 혀를 집어넣고, 손으로는 회음부를 간지럽히며 눌렀다. 끙끙 앓던 선재가 목소리를 은근하게 키웠다.
“아, 아으, 아!”
범진이 선재의 손을 아래로 내렸다. 허벅지를 제대로 잡아 보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제 허벅지를 더듬거린 선재가 사타구니 쪽으로 두 손을 댔다. 범진이 의도한 거지만 누가 봐도 제대로 빨아 달라고 다리를 잡은 자세였다.
결국, 몸을 배배 꼬다 한 차례 사정하고 만 선재가 얼굴에 튄 제 정액을 재빨리 닦았다.
이런 광경을 좋아하는 범진이 얄밉기도 하지만, 이쯤 되면 이성보다 감각이 앞선다. 눈 아래가 발갛게 변한 선재가 범진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범진이 뒤늦게 힘을 빼고, 선재의 엉덩이를 매트리스 쪽으로 내려 주었다.
“내 씨발, 봐라. 빠지기 일보 직전이다.”
자지를 보라고, 갑자기 무릎을 대고 번쩍 일어났다. 그러면서 손으로 퍽퍽 문질렀다. 위로 올라붙은 성기는 검붉게도 보이고, 검푸르게도 보였다.
울퉁불퉁한 핏줄에 휘감긴 성기를 자위하듯 문지른 범진이 자연스레 자세를 낮췄다. 아까보다 훨씬 부드럽게 들린 엉덩이에, 선재가 다리를 양쪽으로 열었다. 그러자 혀가 닿았던 자리에 한층 뭉툭하고 뜨거운 게 닿았다.
숨을 헐떡인 선재가 단숨에 절반쯤 밀고 들어오는 범진의 성기에 발가락을 힘껏 오므라뜨렸다.
“너, 너무, 흑, 아….”
다리를 단단히 잡은 범진이 성기를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처음부터 푹, 소리가 나며 깊게 박힌 성기가 애액을 묻히며 속을 파고들었다. 찔걱거리는 소리와 살 치는 소리가 연이어 몇 번이 들렸다. 벌어진 다리가 범진에게 꽉 붙잡혀 있었다. 범진은 구멍을 만지면서 뺐다 넣길 반복했다. 성기를 붙잡은 입구 쪽 내벽이 약간 튀어나왔다가도 오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범진은 그걸 잡으러 또 퍽, 성기로 내벽을 쑤셨다.
“아, 흑! 나…. 안고…. 안, 흑, 안아….”
상체를 버둥거리던 선재가 팔을 뻗었다.
고개를 숙여 결합부를 쳐다본 범진이 선재의 손을 잡아 주었다. 고개를 저은 선재는 팔을 넓게 벌렸다. 안아 달라는 표현에, 범진이 상체를 위로 들어 푹 숙였다.
“됐냐….”
범진이 선재의 뺨에 제 뺨을 갖다 댔다. 가슴을 거의 붙인 채로 허리를 쓰자 안을 파고 들어간 성기가 더욱 크게 고동쳤다.
선재가 범진의 어깨를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범진은 입에 닿는 대로 선재의 얼굴을 빨았다. 귀가 입에 걸리자 혀를 세워 귓바퀴와 귓구멍을 차례로 간지럽혔다. 반복된 노골적 애무에, 어깨를 안고 있던 선재가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눌린 성기로 실금을 했다. 처음엔 지나치게 흥분할 때만 실례를 했는데, 요즘은 범진과 섹스할 때마다 이런 꼴을 보고 만다. 배가 젖든 말든 삽입을 이어 나가던 범진이 고개를 살짝 들고 쌌냐, 했다.
구겨진 얼굴로 범진을 올려다본 선재가 으응, 하고 작게 대답했다. 범진이 선재의 뺨을 손으로 툭, 튕기고는 자세를 바꿨다. 손은 꼭 잡은 채로 상체를 일으켰다.
선재의 다리를 제 몸 쪽으로 잡아당긴 범진이 그의 엉덩이를 아까처럼 위쪽으로 들었다. 갈 데 없이 허공으로 뻗기만 하던 다리가 범진의 어깨에 걸렸다.
잡은 손은 놓지 않은 범진이 허리를 천천히 썼다.
뭘 싸는지, 얼마나 싸는지 보려고 이런 자세를 잡았다.
찌걱대는 소리와 퍽, 맞부딪히는 소리가 순서도 없이 섞여들었다. 범진이 선재의 허벅지를 가두듯이 잡고, 자지 박는 속도를 올렸다. 이미 풀어진 구멍이라도 견디기 벅찬 자극이었다. 안쪽에서 찔끔찔끔 분비되는 애액이 좆 끝을 적시는 걸 느낀 범진이 씨팔,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야, 내 봐, 보고, 봐라.”
선재의 말처럼 시간을 신경 쓸 필요는 있었다. 한 번에 싸야겠다 생각한 범진이 선재를 불렀다.
손을 잡아야 하는 선재와 선재의 얼굴을 봐야 하는 범진의 욕망이 접점을 찾았다.
제대로 눈을 쳐다본 선재가 자극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아, 아흐, 흡, 흐윽.”
범진이 크게 숨을 몰아쉬며 자지로 내벽을 꾹꾹 눌렀다. 비집으며 새어 나온 애액을 좆에 묻힌 채 안쪽 살을 사정없이 긁었다.
“거기, 그, 그런, 아, 윽, 으…. 흐윽.”
“좋냐, 씨발.”
범진이 좋냐, 하고 앞으로 허리를 밀고, 씨발, 하고 또 허리를 밀었다. 느릿느릿 눈꺼풀을 연 선재도 벌게진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범진이 선재의 그런 반응에 인상을 팍 쓰고 상체를 앞으로 가져갔다. 검은 그림자가 선재의 얼굴 주변으로 크게 드리워졌다. 손을 선재의 얼굴 옆에 둔 범진이 어깨에 걸려 있던 두 다리를 내리고 거칠게 앞으로 향했다. 선재의 얼굴을 코앞에 두고, 다시 허벅다리를 허리에 감은 자세였다. 덕분에 또 엉덩이가 들린 선재가 배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거센 섹스에 몸에서 반응이 왔다.
“나, 또 이상하게…. 흑…. 아, 아….”
“뭐, 씨팔…. 싸라, 다 싸라.”
“나 화장실 갔다가…. 갔다가…. 아!”
요의를 강력하게 느낀 선재가 조용히 울었다. 몸을 짓누르듯 압박한 범진이 그 말을 무시하고 성기를 쉼 없이 박아 댔다. 살짝 공간이 남으면 갈증이 인다는 듯 틈 없이 몸을 밀착해 왔다. 선재는 자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사정액을 흘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수치심 때문에만 울었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고, 언제까지 좋을지가 문득 두려워져 울게 되는 것도 있었다.
상체를 세운 범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선재를 내려다봤다. 벌게진 눈이 그렁그렁하다 얇은 물줄기 하나를 눈 끝으로 주룩 흘렸다. 관자놀이와 머리카락이 차례로 젖었다. 엄지로 눈가를 닦아 준 범진이 그 눈에 입을 맞췄다.
“니 어디서 울지 마라.”
“안 울어….”
잠시 멈추긴 했지만, 귀두가 깊은 내벽에 닿고는 있었다. 눈물이 또 주룩 흘렀지만, 선재는 안 운다고 얼버무렸다.
“그냐…. 그래, 머, 이것도 젖인가 보지.”
눈물 자국을 손으로 쓴 범진이 입 끝을 올리고 웃어 보였다. 심각하게 쳐다보다가도 금방 웃는다. 그 반응이 싱겁고, 또 부끄러워, 선재는 뻗어오는 범진의 팔을 슬쩍 밀어냈다. 눈과 코에 물기가 차 조금 훌쩍거렸더니 범진이 진짜 안 우냐, 하고 놀리듯 코를 꾹 만졌다.
“아, 흐….”
그러면서 범진은 손을 선재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아프지 않은 정도로 만졌지만, 아까의 여파도 있어 젖물이 쉽게 흘러나왔다. 그걸 느낀 선재가 손으로 범진의 손목을 잡았다.
“아아, 흐으…. 이러면, 계속….”
팔을 걷어 내려는 선재의 행동을 힘으로 버틴 범진이 꾸역꾸역 젖꼭지를 만졌다.
“으….”
아프냐, 물은 범진은 젖꼭지가 더 붉어질 때까지 꼬집었다. 몸의 예민한 곳 전부를 범진이 건드렸다. 선재는 아랫배에서 울컥, 차오르는 느낌에 손을 배로 가져갔다. 범진이 속도를 조절해 주곤 있지만 그래도 뒤를 쑤시는 감각을 의연하게 견딜 순 없었다. 분명 어디가 아파서 올라왔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아, 범진아, 흐, 으,”
“니 이거 좋아하지.”
한쪽 엉덩이를 잡아당기곤 각도를 미세하게 틀었다. 내벽이 한 방향으로만 쩍, 긁히자 선재가 당황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 싫, 으, 흐으…. 그…. 냥 싸, 빨리, 흑, 싸 줘….”
꿈틀거린 감각을 느낀 선재가 당황해서 아무런 말이나 내뱉었다. 차라리 빨리 사정하는 게 나으니까. 살 치는 소리를 내며 박아 대던 범진이 빨갛게 달아오른 선재의 얼굴을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눈 제대로 뜨고, 하며 턱을 앞으로 고정했다.
제대로 함 싸 보까, 하고 거들먹거리듯 말한 범진이 선재의 엉덩이를 위로 들었다. 갈 길 잃은 선재의 손이 시트에 닿아 푸드덕댔다. 힘을 주체할 수가 없어 자주 몸을 드는 건 알지만 하필 이때. 깊은 각도에 안쪽 내벽을 제대로 찔린 선재가 허벅지를 떨며 소리를 질렀다. 간신히 입술을 닫고 있어 크게 나진 않았지만 아찔했다. 선재는 아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으읍! 읍!”
“하아, 씨팔.”
“읍, 으으!”
재혁이 태어난 후로 관계를 가지지 않은 기간은 약 두 달 정도였다. 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섹스였다. 선재도 몸 전체가 예민해져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피치를 올린 범진이 내벽을 사정없이 가르며 삽입하자 선재가 배를 허공 쪽으로 들며 투명한 물을 간헐적으로 분출했다. 한 번 찍, 분출된 투명한 물은 범진이 박을 때마다 몇 방울씩 튀듯이 새어 나왔다.
“싫다면서, 찔러 줄, 때마다, 싸냐.”
들으라고 그런 소리를 한 범진인 걸 알지만 괜히 감각이 고조되었다. 선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범진을 안으려고 했다. 버릇이었다.
범진이 선재의 동작에 상체를 아래로 구부리며 선재를 안았다. 와중에도 하체는 사납게 써, 허벅지와 장딴지 근육이 쩍쩍 갈라지며 부풀었다.
손으로 턱을 잡은 범진은 선재의 입에 제 입을 거칠게 비볐다. 뜨거운 혀까지 입술을 벌리고 들어오자, 선재가 벅찬 소리를 냈다. 범진은 선재의 혀를 문 채 자지로 내벽을 벌렸다.
얼얼한 엉덩이지만 안쪽 점막이 범진의 자지를 따라 조여들고 움직이길 반복했다. 본능적으로 꾸욱, 물어 오는 내벽의 느낌에 범진이 인상을 쓰며 입을 뗐다.
“니, 내 자지만, 이래 씹는 거다, 허, 알겠냐.”
범진은 섹스나 키스를 하다가도 혼자 성질을 부릴 때가 많았다.
선재는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자지가 연속해서 박혀 들고 있지만 잠깐 만져 줄 순 있을 듯했다.
흥분한 범진은 퍽, 퍽, 쳐대면서도 선재와 눈을 맞췄다. 선재가 편히 만질 수 있게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고정했다.
곧, 기절할 것 같은 정신에 한 개만…. 하고 중얼거린 선재가 아랫배 전체에 퍼지는 느낌에 온몸의 힘을 풀었다. 제 자지만, 그 자지 딱 하나만 물겠다고 말한 선재를 보며 범진은 사정했다. 부연 정액이 몇 초간 계속 사정됐다. 내벽을 치며 장기를 적셨다.
자지를 느릿하게 뺐다가, 넣길 반복한 범진은 본능만 남은 상태로 행동했다. 찌걱이는 소리가 은근하게 들렸다. 배 속이 간질간질, 진동하는 감각에 선재는 마지막으로 범진의 팔을 잡았다. 범진의 성기만 들어찼을 뿐, 배가 텅 비어 더는 싸댈 것도 없었다. 범진이 약간은 멍해진 선재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쩍, 쩌억, 하는 소리를 얼마간 내다가, 범진은 자지를 뒤늦게 빼냈다. 박혀 있던 자지가 빠지자, 구멍에선 희뿌연 체액이 스멀스멀 샜다. 커다란 게 단번에 빠진 탓에 구멍은 닫힐 줄도 모르고 벌름대며 체액을 흘려보냈다. 범진이 티슈로 뒤를 닦아 줬지만, 됐다 싶으면 정액이 또 울컥이며 빠져나왔다. 결국 힘이 다 빠져 중심을 못 잡는 선재를 제 몸에 얹듯 세워 놓고, 두둑, 두둑, 떨어지는 정액을 몇 분간 빼 주어야 했다.
마무리까지 끝내고, 범진은 선재를 업고 1층으로 내려왔다. 기진맥진한 선재는 아이들 옆에 누울 때까지 영채 씨…. 하고 중얼거렸다. 알겠다고 대답한 범진이 밖으로 나가 영채의 퇴근을 봐 주었다. 영채가 만든 샐러드를 범진은 건성으로 쳐다보다 그래, 했다. 곧 영채가 퇴근을 하고, 범진은 거실에 혼자 남아 시계를 쳐다봤다. 30분만 있으려고 했던 게 매번 이런 식으로 망하고 말았다. 선재가 막지 않아도 자제해야 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그게 참.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범진은 살짝 열고 나온 방문에 또 입꼬리를 씰룩였다. 잠든 선재를 좀만 더 안고 있다가, 나갈 생각이 들었다.
* * *
여름은 거대한 덩어리 같았다. 날이 가도 특유의 뜨거운 기운은 잘 사그라지지 않았다. 선재는 날짜 감각도 잊고 지금이 늦여름인가, 할 때가 많았다. 예년 같았으면 벌써 겨울옷을 꺼내 입었겠지만 뉴스에서도 이상기온에 관해 다룰 만큼 올해 기온은 널뛰는 데가 있었다. 보면 연초 겨울은 참 추웠는데. 그것과 상관이 있을까. 선재는 잠시 생각하다 말았다.
11월, 그것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요일을 확인하던 선재가 생일이 코앞인 걸 깨달았다. 예전엔 11월 20일이든 21일이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요즘은 생일 정도는 체크하고 살았다. 범진의 휴대폰 비밀번호 때문에 본의 아니게 기억한 면도 없진 않지만.
그냥. 특별하지 않아서.
한 번도 태어난 날을 기념하고 싶은 적이 없었다.
어릴 땐 파티를 해 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11월 20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았다. 아무도 생일을 축하해 주지 않아 슬펐던 때는 초등학생이었을 때가 전부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햄버거가 먹고 싶어 울었었나. 마침 갖고 싶었던 크레파스도 혼자만의 비밀로 부친지 오래였다. 생일이나 파티에 관해선 그 기억이 다였다. 하지 않은 파티만 기억에 남았다.
사람은 약할 때 포기하게 된 걸 영원히 잃는다.
선재에겐 생일이 그랬다.
이번 생일은 ‘으마으마하게’ 기념할 거라는 범진에게도 어색하게 웃고만 말았다.
작년 생일엔 범진과 떨어져 있었는데.
선재는 그때를 기억하다가 피식 웃었다.
며칠이 지나선가? 범진은 돈다발과 골드바를 들고서 방을 찾아왔었다.
생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생일을 챙겨 주겠다고 그런 걸 들고 온 범진이 웃겼다. 그 돈이랑 금으로 시설에서 뭘 할 수 있다고. 돈은 옷장 한구석에 숨겨 놓았다가, 12월에 범진에게 다시 돌려줬다. 옷에 싸서 서랍에 넣어 둔 골드바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다음에 달란 말로 범진을 달랬다. 범진은 장난하냐 인상을 쓰면서도 결국은 알겠다고 했다.
이상하게 좋았던 겨울.
짧은 감상을 끝낸 선재가 지잉, 울리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범진에게서 걸려 온 영상 전화였다.
제 생각하는 걸 어떻게 알아서 전화를 걸었을까. 선재는 잠깐 멈칫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옆쪽으로 당기자마자 범진의 얼굴이 보였다. 인상을 쓰고 앞을 쳐다보고 있다가, 화면이 전환되자 뒤로 조금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딱, 해 봐.]
예전 같았으면 뭘 제대로 딱 해 보라는지 몰랐을 거다.
선재가 범진의 말을 알아듣고 휴대폰 각도를 제대로 맞췄다.
얼굴을 보고 싶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작년엔 영상 통화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틈만 나면 계속 이런 전화를 걸어온다. 오죽하면 지난달 요금이 60만 원이 넘게 나왔을까. 어제도 밥 먹는 건 물론, 양치하는 것도 화장실 귀퉁이에 휴대폰을 세워 놓은 채로 보여 주었다. 말없이 차만 마시는 것도 범진은 좋아했다. 뜨거운 김이 풀풀 나는 차를 보면서도 뜨겁냐, 뜨거운 차냐, 하며 실없는 질문을 건넸다.
[뭐 할라 했는데.]
“영채 씨가 메시지 보내와서, 그거 읽고 있었어.”
한 시간 전에 다 읽은 메시지였다.
생일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진 않았다. 거짓말한 선재가 식탁 쪽으로 자리를 옮겨, 거치대로 휴대폰을 고정했다. 주로 이곳에서 영상 통화를 한다. 뭘 발견했는지, 고개를 삐딱하게 젖힌 선재가 얼굴을 가까이하고 물었다. 범진의 턱에 못 보던 상처가 있었다.
“턱 왜 그래?”
[몰라, 어디서 찍혔겠지.]
손으로 턱을 스윽 쓰다듬은 범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몸에 난 상처라면 모를까. 턱에 저런 상처가 났는데 어디서 다친 줄을 모를 수가 있나?
“얼굴에 상처 난 건데 어디서 다쳤는지를 왜 몰라.”
[쌍판 쫌 갈리는 게 어떻다고.]
“…….”
흐음, 숨을 크게 내쉰 선재가 뒤로 물러나 범진을 쳐다봤다. 범진은 선재가 갑자기 멀어지자, 화면 속에서도 어디 가냐, 하며 급한 기색을 보였다. 손까지 들어 이쪽으로 오라고, 작은 화면에서도 성질을 부렸다.
[안 오냐?]
“거기서도 보이잖아.”
[하씨, 이게 또 애태우네. 내 지금 집에 쳐들어간다.]
“…….”
[니 뭐, 삐쳤냐.]
삐친 건 아닌데. 표정을 굳히고 있으니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선재는 뒤로 빼고 있던 상체를 천천히 붙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얼굴에 흉터 많은데…. 상처 좀 만들지 말지….”
중얼거림을 들은 범진이 손을 들어 얼굴을 벅벅 긁었다. 쌍판, 쌍판, 했으면서 제 쌍판을 걱정해 주니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선재는 진심으로 범진을 염려했다. 어디 가서 또 싸움하고 그러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섰다.
[내가 뭐, 어디서 쌈질하고 다닐까 봐 그냐. 안 한다 그딴 거.]
“…….”
[진짜다.]
“아니면.”
[아니면 내가 개다. 내가 니 새끼다.]
“형이라고도 불러.”
[형?]
맨날 형님만 입에 담아, 범진의 발음엔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혀엉? 하고 되묻는 말에 선재가 먼저 웃었다. 태연하게 듣고 있기엔 너무 요상한 단어였다. 형이 뭐라고 범진이 하니까 이렇게 이상한지.
[웃냐, 형.]
“…제대로 말할 줄도 모르면서.”
웃으며 다가간 선재가 카메라 바로 앞에서 범진을 쳐다봤다.
[니가 형이 아니니까 그렇지. 니가 어데 형이냐. 마누라면 마누라지.]
“형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이런 말은 범진에게 안 해 본 것 같았다. 별것도 아닌데 재밌었다. 웃으며 말하는 선재가 좋은지, 범진도 웃기냐, 하며 제가 더 실실 웃었다.
[어쭈? 디지게 좋아하네?]
“넌 왜 웃어.”
여전히 웃는 얼굴로 화면을 쳐다본 선재가 손가락을 들어 전면 카메라를 가리켰다.
[니 웃으니까 따라 웃지.]
“그런 게 어딨어.”
[야.]
“왜.”
[니 뭐 갖고 싶은 거 있냐.]
“딱히…. 없는데.”
[쓰읍, 생일을 어데서 하지.]
듣지도 않을 거면 왜 묻나 몰랐다. 혼자 계획을 꾸리는 듯한 범진을 향해, 선재가 급히 입을 열었다.
“그냥, 아기들 데리고 밥이나 먹으러 가지.”
[밥은 당연히 먹는 거고.]
생일을 어떻게 지내면 좋은지, 어디서 뭘 해야 하는지, 경험이 없어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초여름이 생일인 범진에게도 마땅한 선물을 해 준 적이 없었다. 지나간 날을 떠올린 선재가 갑자기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범진이 이렇게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는 줄은 몰랐다.
“…생일 원래 챙겨?”
[당연히 챙기 줘야지.]
챙긴다, 가 아니라 챙겨 줘야지, 라서 더욱 미안해지고 말았다. 범진의 삶에도 생일이 없는 건 똑같지 않았을까. 원래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 생일이라서 챙겨 주려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함에 입술을 꼭 다물었던 선재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언제 와.”
[왜.]
“빼빼로 게임 해줄게.”
[하, 니 지금 내 웃기냐. 꼴랑 그거 해 줄 거면서 그래 심각하게 말하냐?]
전날, 범진은 과자 선물 세트를 두 세트나 들고 집에 들어왔다. 준희가 제일 좋아했고, 선재도 같이 먹긴 먹었다. 크림 크래커와 감자칩, 타르트 과자가 특히 맛있었다. 요즘은 과자 세트도 참 예쁘게 나왔다. 여행 가방처럼 생긴 종이 상자를 뜯어서 고정하자, 과자집으로 변신까지 했다.
준희가 좋아해, 과자집이 된 상자는 아직도 거실 테이블에 떡 하니 놓여 있다.
빼빼로 게임은 범진이 하자고 재촉하던 놀이였다. 갑자기 막대과자 하나를 입에 넣는 바람에 얼결에 응해 줬지만, 끝도 없이 하려고 해서 졸린다고 거짓말을 쳤었다. 최대한 짧게 남겨 보자고 도전적으로 말한 것은 잠시였다. 범진은 과자를 물자마자 우걱우걱 다 씹어먹었다. 입술이 짓뭉개지는 뽀뽀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실패했다, 존나 아깝다, 였다. 그런 식으로 빼빼로만 몇 개를 더 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냥 계속해 줄걸.
입술 닳는 것도 아니고.
[이게 진짜 아까부터 계속 웃기네.]
“뭐. 안 할 거면 말아.”
[누가 안 한다냐?]
웃긴다.
꼴랑 그런 거 해 주냐고 했으면서, 안 할 거면 말라고 하니 말을 바꿨다.
한 시간가량 더 통화를 하는 동안, 선재는 어제 먹던 크래커를 마저 먹었고, 범진은 그걸 구경했다. 입에 손가락을 넣고 싶다며 카메라를 콕콕 찌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함만 넣고 싶다, 하며 주어를 생략한 말도 틱틱 뱉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별나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이젠 범진의 그런 말도 태연하게 들었다.
한 쌍의 짐승들처럼, 선재는 범진이 입안을 보여 달라 하면 입을 헹구고 보여 줬다. 그러면 범진은 혀가 예쁘다고 난리를 쳤다. 입천장도 예쁘고, 목구멍도 예뻐서 큰일이라고 했다. 듣기 좋으라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선재는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했지만 범진은 선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머? 묻다가 선재가 말을 또 할라치면 하아, 이쁜 거, 하기만 했다.
말도 안 통할 때가 많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할 때도 너무 많은데.
전화를 끊고 싶은 건 아니었다.
범진이 손가락을 이상한 모양으로 만들어 니 구녁에 꽂고 싶다고 말하는 것만 빼면 정색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정색도 근처에 사람이 있을까 봐 나오는 반응이었다. 카메라 돌려봐. 사람 없는 거 맞아? 선재가 그렇게 물으면 없지, 하고 범진이 휴대폰으로 이쪽저쪽을 비춰주었다. 다시 범진의 얼굴로 화면이 꽉 찰 때, 범진은 매번 손가락을 이상하게 꼬고 있었다. 그게 씹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어느 날의 범진은 쓸데없이 친절하게 알려준 적이 있다. 오늘도 그러는 범진을 쳐다보다 선재가 먼저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라도 범진과 통화하면 웃게 되는 일이 많았다.
* * *
이른 저녁부터 창문엔 빛이 서렸다. 범진이 차를 끌고 집 마당까지 올라온 것이다. 보통은 이보다 더 늦게 집으로 오는데. 잠든 재혁을 두고, 준희와 소파에 앉아 있던 선재가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불이 계속 깜빡깜빡했다.
밖을 나가 보니 범진이 랜턴 불을 켰다 끄길 반복하고 있었다. 외부 조명을 켜면 되는데 왜 불을 들고 저러고 있나 몰랐다.
“씨….”
“뭐 하는데?”
가까이 다가간 선재가 범진의 등에 손을 올렸다.
“왔냐.”
집으로 온 건 본인이면서 말을 그렇게 했다. 뭐가 와, 하고 웅얼댄 선재가 범진이 일어나 안아주는 몸짓에 코를 가만히 범진의 몸에 비볐다. 살짝 시큰거릴 정도로 세게 안아 몸이 떨어지고도 얼얼한 느낌이 남았다. 코끝을 만지며 여기 불 켜면 되지, 하고 말한 선재가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원래는 투명한 등인데, 색이 부연 것이 어딘가 이상해진 모습이었다.
“딱 나가버리든데.”
덩달아 위쪽을 쳐다본 범진이 손가락을 세우고 조명등을 가리켰다.
“뭐, 바비큐하게?”
“어.”
주변을 둘러보니 못 보던 새 그릴도 하나가 있었다. 바퀴가 달린 것이 이동성은 좋을 듯했다.
여름이 가는 동안 범진은 그릴만 몇 번을 바꿨다. 이건 연기가 이쪽으로 가고, 이건 불이 안쪽으로 모여서 비효율적이라나. 그렇게 쌓이게 된 그릴만 당장 기억나는 게 네 개쯤 된다.
하루 날을 잡고 그릴들을 처리해야겠지. 스치듯 생각한 선재가 웨건형 그릴의 바퀴를 굴려보았다. 새 그릴은 생각만큼 매끄럽게 이동했다. 잔디 위인데도 풀이 감겨들지도 않고…. 주변은 그네와 작은 의자, 거의 시든 꽃나무, 차까지 번잡하게 어우러진 형태였다. 그릴 바퀴를 굴리며 하나하나 쳐다보던 선재가 그네를 보고 혼자 얼굴을 슬쩍 붉혔다. 매번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아닌데, 그래도 가끔은 생각이 났다.
새벽 2시나 3시. 갑자기 깨서 밖으로 나올 때가 있었다. 범진이 깨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재가 혼자 깨 꼼지락거리다 들키는 게 보통이었다. 범진은 귀신같이 깨어 니 왜 안 자는데, 하고 물었다. 잠깐 깬 거라고 핑계를 대며 눈을 감아봤자 범진에겐 통하지 않았다. 범진은 그때마다 나가자, 하고 다짜고짜 바람이라도 쐬자고 선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만삭이었을 때 잠을 설쳤던걸 몸이 기억해버린 탓이었다. 처음에 선재는 잠옷 바람을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범진이 괜찮다고 해서 그 생각을 내려놓았다. 차를 타고 나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저수지 주변을 빙빙 돌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으니 1시간 내로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와서도 잠이 오지 않을 때 저 그네를 이용했다. 처음엔 가만히 앉아 하늘과 아래를 내다보지만 10분, 15분이 지날수록 몸이 가까워지고 입술이 붙었다. 몸의 반동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그네 위에서 범진은 바닐라 맛이 나는 선재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자지가 발기해버리면 범진은 제 커다란 윗옷을 벗어 선재에게 입혀 주었다. 밑단이 겨우 허리를 가리는 잠옷으론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체를 내놓은 범진은 선재를 허벅지 위에 올리고, 발까지 허벅지 위에 올라오도록 만들었다. 둘 다 앞을 바라보는 자세였다. 팬티가 옆으로 젖혀지면 선재는 차에서 하듯이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누가 돌아다닐 리 없는 곳이고, 시간이었지만 두근대는 마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흔들흔들, 그네 위에선 그런 식으로 몸을 섞었다. 범진은 선재가 무섭다고 할 때마다 자지를 깊은 곳까지 쑤셔 넣어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있는데 떨어지겠냐고, 허벅지 위에 올라온 선재의 발을 세게 쥐었다.
“아.”
혼자 얼굴이 달아올랐던 선재가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기울였다.
두 손으로 야무지게 문고리를 당긴 준희가 문밖에서도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아, 아아부지이.”
그러다 데크에서 나오는 범진을 발견하곤 손을 위쪽으로 크게 들었다. 야외테이블을 들고나오던 범진은 잔디 위에 턱, 테이블을 펼치자마자 다가온 준희를 위로 번쩍 안아 들었다.
“뭐 했냐.”
“압빠랑…. 가자 먹었어요….”
“학교는.”
“했써요.”
가지도 않는 학교를 묻는 범진이나, 뭔지는 몰라도 뭔가를 ‘했다’고 말하는 준희나….
범진은 준희를 한 팔로 안은 채 숯과 훈연용 나무칩을 꺼냈다. 옆에서 선재도 도우려고 하면 요리도 못하는 게 이런 건 잘도 하겠다고 약을 올렸다.
“너보단 내가 나아. 요리도….”
“그냐? 근데 니가 요리한 거 왜 니는 안 먹는데.”
그건 그랬다.
가끔 선재가 요리라고 하는 걸 범진만 먹었다. 굽기만 하면 되는 동그랑땡이나 햄 같은 것도 다 태웠지만, 범진은 꼭 입에 넣고 소감을 말해 주곤 했다. 버리려고 싱크 한쪽에 둬도 범진은 그걸 꼭 주워 먹었다. 계란에서 철 맛이 난다, 불고기에서 마구간 냄새가 난다, 하면서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마구간이라고 감상했을 때는 옆에 있던 준희도 제가 아는 단어에 마국간! 하면서 방긋방긋 웃었다. 손재주가 없는 편은 아닌데…. 아닌가…. 없나…. 선재는 불퉁하게 있다가도 범진이 사라지면 제 손을 빤히 쳐다보고 고개를 갸웃할 때가 많았다. 제가 뭐라도 조리를 할 때마다 귀신이 붙어서 일을 망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원래 그런 쪽으로 소질이 없긴 했지만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영채의 손을 빌리면 된다지만 그래도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 사람이라도 그럭저럭 해내면 문제는 없을 터다. 허나 범진도 어설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고기는 잘 구웠지만, 그것도 매번 시키기엔 무리가 있었다. 기름이 사방팔방으로 튀는 건 예사고, 정리에 서툴러 가위에 발등이 찍힌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재는 제가 하겠다고 범진의 팔을 잡고 옆으로 나오라고 했지만 범진이 말을 듣지 않았다. 뒤에서 보면 그저 팔짱을 끼고 후라이팬 구경하는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놀이라고 착각한 준희가 범진의 다리에 팔짱을 낀 적도 있을까. 아이는 헤에, 웃으며 하부장 앞에서 범진의 다리를 잡고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그래도 야외나 식당에서 고기를 굽는 데엔 문제가 없어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만 제가 정리해 주면 괜찮았다.
“이거 함 해 볼래.”
“네에.”
품에 안긴 준희가 끄덕끄덕, 막대를 건네받고 생 숯을 휘저었다. 아직 불을 붙이지 않아 위험하진 않았다.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선재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저렇게 작은 손으로 뭘 하는 게 아직 어색하긴 한데, 그래도 숯이 굴러다니고는 있었다.
날은 언제나처럼 선선하기만 했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도 겉옷만 대충 걸치면 괜찮을 듯했다.
생각난 김에 선재는 집으로 들어가 카디건을 걸쳐 입었고, 옆에 걸어 둔 작은 양털 후드집업을 들고나왔다. 범진은 원체 열이 많아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녔다. 이 정도 날씨면 늦여름 정도로 느낄 것이다. 밖으로 나와 준희의 옷을 입혀 준 선재가 칙, 칙, 소리가 나는 그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소고기도 소고기지만, 제 손만 한 새우와 모양이 특이한 소시지에 눈길이 갔다. 커다란 양갈비도 눈에 들어왔다. 양고기를 못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범진이 구워주는 건 맛이 있었다.
첫 접시는 소고기였고, 두 번째 접시가 소시지와 해산물이었다. 범진은 마지막에 양갈비를 구웠다. 선재는 준희를 옆에 앉혀 놓고 유독 맛있어 보이는 것만 아이에게 골라 먹여주었다. 다 똑같이 맛있지만 그래도 보기에 더 좋은 게 준희의 입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딴짓을 하다가도 고기를 먹자고 하면 새처럼 입을 벌리고 선재를 쳐다봤다. 꼭꼭 씹으란 말에, ‘꼭꼭’을 따라 한 준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까지 열심히 고기를 받아먹었다.
범진은 집게로 그릴 위의 고기를 바로바로 먹었다. 양갈비도 집게로 집어 통째로 쩍쩍 씹어먹었다. 그마저도 익지 않은 것 같지만….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양갈빗대를 쳐다보던 선재가 일어나서 범진의 곁으로 갔다.
“이제 그만 구워.”
“그거 먹고 마냐. 이마이나 사 왔는데.”
“다음에 먹으면 되지. 내 생일 때도 먹자.”
표현은 안 했지만, 생일날 뭘 하고 싶냔 범진의 질문이 내내 무겁게 느껴졌었다.
오늘 이렇게 좋았으니, 생일 때도 이렇게만 하면 좋겠다 싶었다. 말하기에 부담도 없었다.
“쓰읍.”
범진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뭘 하든 얼굴에 티가 다 나는 편이다. 옆에 서 있던 선재가 손을 뻗어 상추 한 장을 가져왔다. 그 손을 그대로 내밀고 선재가 범진을 쳐다봤다.
“뭐.”
“고기 하나만 얹어 줘.”
범진이 그 말에 소고기 한 점을 불에 칙, 세게 구웠다.
고기를 올려 주자, 선재는 범진이 사 온 반찬과 소스를 고기 위에 얹었다.
“아.”
동그랗게 주머니 모양으로 쌈을 싼 선재가 그걸 범진에게 내밀었다.
쌈은 처음 받아 보는 얼굴로 선재를 쳐다본 범진이 난 니 입으로 맥이 주는 게 젤 좋은데, 했다. 그러면서 입은 귀에 걸릴 듯했다.
“…아.”
무시하곤 다시 아, 하자 범진이 입을 씻었다. 물을 푸, 컵에 뱉곤 뒤늦게 선재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손가락 끝으로 쌈 윗부분을 들고 있었는데, 범진은 쌈은 물론 선재의 손가락 마디까지 입에 덥석 넣었다.
졸지에 손가락 세 개가 먹힌 선재가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이가 뒤에 있어 소리는 크게 내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물고 위협 같지도 않은 위협을 한 선재가 다른 손을 올려 범진의 뺨을 툭툭 때렸다.
“안 빼?”
손목이 꽉 잡혀 뒤로 뺄 수가 없었다. 범진은 입안에서 혀로 한참을 날름날름하고서야 손을 풀어줬다. 마지막엔 쭉 빨아 먹기까지 했다. 뽁, 빠진 손가락을 하나씩 맛보듯 짧게 빨아당기는 것까지 한 범진이 만족한 듯 실없이 웃었다. 더럽지도 않나? 기껏 입을 씻고 제 손가락이나 빠는 범진이 어이가 없었다.
물티슈로 닦으려다 집 안으로 들어간 선재가 혼자 구시렁거리면서도 피식피식 웃었다.
겸사겸사 재혁이 잠든 방도 살폈다. 혼자 중얼거리던 것은 그때 멈췄다.
잠에서 깬 아이가 혼자서 놀고 있었다. 아이는 다리를 번쩍 들었다가 놓고, 또 번쩍 들었다가 탁,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문을 활짝 열고 다가간 선재가 아이를 안았다. 선재가 다가오자 아이는 기분이 좋은 듯 팔다리를 모아 바르르 떨었다.
아직 6개월밖에 안 된 아기지만 병원에서 발육은 10개월 수준이라고 했다. 몸을 일으켜 주고 손을 잡아주면 걷는 시늉도 했다. 준희가 돌이 돼서도 잘 못 걸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발달 속도였다.
버둥거리며 즐거운 티를 내는 아이를 안고 선재는 방을 나섰다. 빨리 먹고 들어가려 했는데, 아기가 먼저 잠에서 깨고 말았다. 품에 안긴 아기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뭔가를 표현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며 이마에 뽀뽀한 선재가 다정한 투로 말을 걸었다.
“좋아? 기분 좋아요?”
“바아바.”
품에서 들썩거리는 건 준희도 하긴 했는데, 재혁은 아기치곤 매우 묵직했다. 팔다리를 힘껏 뻗었다 접는 재혁의 몸짓을 두 팔로 받아 준 선재가 연신 웃는 아이 얼굴을 쳐다봤다.
“깼는데 혼자 그러고 있었어?”
“바으바.”
하도 어버, 바아, 암바, 같은 말을 많이 해서 입도 금방 트일 줄 알았는데, 언어 쪽으로는 일단 거기서 멈춘 상태였다.
“그랬어?”
“방!”
맥락 없이 박! 백! 하고 소리를 크게 낼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타이밍이었다. 선재는 제 말에 대답해 준 것 같아 다시 그랬어요? 하고 물었다. 이번에 재혁은 아무 반응도 없이 선재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검은 듯 고동빛을 띠는 눈이 범진의 것과 똑같았다.
아기를 안고 그릴 쪽으로 다가간 선재가 원래 앉았던 자리에 조심해서 앉았다.
그래도 아기는 아기니까, 밖에선 특히 조심하는 편이었다. 옆에서 준희가 아가 왔어? 하고 재혁의 볼에 손을 갖다 댔다.
재혁은 준희가 말을 시키면 짜증내던 것도 잊고 형아 얼굴을 빤히 쳐다보곤 한다. 호기심 때문인 것 같은데, 집중하는 아기 얼굴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은 선재가 고개를 내려 재혁의 얼굴을 관찰했다. 옆에 앉은 준희를 쳐다보느라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이 강조되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또 방! 백! 압! 하는 소리를 냈다.
오늘도 결국 추워지진 않을 건가 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갈까 준희에게도 양털 집업을 입혀놓았는데, 애꿎은 아이 볼만 발갛게 익어 있었다. 추워서 벌게지는 게 아니고, 덥고 답답해서 열이 오른 것이었다. 준희 벗을래? 말하자 준희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팔 터는 시늉을 했다. 선재가 아이의 반응에 말하지, 하고 집업을 벗겨 어깨에 덮어 주기만 했다.
재혁도 답답한지 칭얼댔다. 선재는 아기를 칭칭 두르고 있던 담요를 풀어 바람을 통하게 만들었다. 재혁은 계속 선재가 안았고, 테이블로 온 범진이 준희를 안았다. 매번 안지 않아도 되는데, 범진은 아직도 준희를 돌도 안 지난 아기처럼 대했다. 품이 넓고 좋은지, 준희는 범진의 품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니 오늘 빼빼로 빨기로 했다, 내랑. 하고 범진이 요란스럽게 말해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날 밤, 범진은 기다렸다는 듯 검은 봉투를 탈탈 털어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해 준다고 했을 때는 꼴랑 그거, 라고 했으면서 빼빼로만 종류별로 몇 개를 사 온지 몰랐다.
초코맛, 딸기맛, 아몬드맛, 쿠키맛. 외국산 막대 과자도 중간중간 털려 나왔다.
선재는 소파에 앉아 빼빼로 포장을 벗기는 범진을 가만 쳐다보았다.
다양한 맛이 있었지만, 제일 앞에 있던 딸기맛이 제물이었다.
그중 하나를 꺼내 킁킁거린 범진은 이거 니 냄새랑 비슷하다는 뜻 모를 말을 내뱉었다.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선재도 냄새를 스치듯 맡아보기는 했다. 인공 딸기향이라 별로 맡기 좋은 냄새는 아닌데. 선재는 제 몸에서 정말 그런 냄새가 나나 싶어 괜히 손목을 코에 가져다 대보기도 했다. 범진은 뒤늦게 말을 더했다. 딸기 빼빼로가 야시꾸리한 것이 딱 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헛소리를 한 거구나, 싶어 그때부턴 선재도 범진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범진은 야하다, 야해, 하다가 딸기 초코 부분을 선재 쪽으로 물려주었다. 뭐가 야하고, 뭐가 야시꾸리한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게임을 시작한 범진은 근질근질하다고, 좆나 좋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전처럼 우걱우걱 먹으며 앞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눈을 아래로 뜨고 선재가 다가오는 걸 지켜보거나, 느린 속도로 전진하기만 했다. 과자가 툭, 부러지면 다른 딸기 빼빼로를 꺼내 물었고, 초코 부분이 꼭 선재의 입에 들어갔다.
턱을 내밀어 불량하게 빼빼로를 문 범진을 무시하고, 선재는 혼자 바삭, 바삭,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다가갔다.
범진이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게임은 게임이었다.
갑자기 퍽, 다가오지 않아 게임이 최소한 진행은 되었다.
처음엔 선재가 중간에 관두었고, 두 번째 시도에선 각도를 잘못 맞춰 과자가 부서지고 말았다. 세 번째 빼빼로는 생각보다 길게 남았다. 이번이 네 번째였다. 딸기 빼빼로를 한 입씩 물며 다가간 선재가 갑자기 와그작, 하는 소리에 눈을 위로 들었다.
범진이 반 이상을 크게 베어 물어 빼빼로가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뭐야.”
퉁명스레 반응한 선재가 소파 위에 떨어진 빼빼로를 주웠다.
범진은 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열 받은 얼굴로 말했다.
“니 이거 딴 새끼랑도 해 봤지.”
“뭐?”
“어, 딱 말해 봐라. 솔직히, 어? 해 본 적 있냐 없냐.”
해 달라고 해서 해 줬더니 딴 새끼랑도 한 게 아니냐 화를 내고 있었다.
황당함을 느낀 선재가 바람 빠진 웃음을 입 밖으로 냈다. 허, 하고 웃었다.
“이런 걸 누구랑 해.”
“내가.”
안 그래도 가까이 있던 범진이 팔로 선재의 머리를 가뒀다. 헤드록을 걸듯 끌어당기곤, 머리카락을 휙 뒤로 쓸어넘겼다. 범진이 얼굴을 붙이고 입을 열었다.
“함만 용서해 줄 거니까. 솔직하게 불어라.”
“하…. 뭘 불어….”
조용히 중얼거린 선재가 솔직하게, 솔직히, 타령을 하는 범진의 험한 얼굴을 멍하게 올려다보았다. 머리가 팔에 붙잡혀 고개를 한껏 들게 되는 자세였다. 범진은 선재의 이마를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여따가 또 새기나야지, 하고 입을 벌리고 돌진했다.
기겁한 선재가 손으로 이마를 막았다.
“내가 이거, 전에도 그래 놔서, 얼마나 민망했는데.”
“민망하면 뭐.”
“뭐는 뭐야. 안 해야지. 하지 마.”
“씹, 딴 개잡놈이랑 들러붙어서 쳐, 물고 있었다고 생각만 해도 허파가 뒤집힌다.”
“아니, 한 적이 없다니까…?”
“씹팔새끼.”
“…….”
“개빡쳐가지고…. 빨기라도 해야지, 내가 이거를.”
선재가 이마를 두 손으로 가린 채 범진의 눈을 쳐다봤다.
뭐가 화가 난다고 저렇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나 몰랐다.
황당한 웃음을 지어 보인 선재가 못 이긴 척 손을 천천히 내려 주었다. 좀 민망하고, 밖에서도 신경 써서 이마를 가려야 하긴 하는데.
범진은 선재가 손을 내리자마자 보란 듯 입을 벌렸다. 삼킬 듯 돌진해온 입이 이마에 닿고, 곧 츄읍, 살점 빨리는 소리가 들렸다.
빠는 힘이 센 탓에 선재의 머리가 앞뒤로 움직였다. 범진이 뒤통수에 손을 대고 있긴 하지만 거칠게 빨 때마다 머리가 움찔움찔 흔들렸다. 쭈욱, 쭈욱, 하는 소리에 곤란한 표정으로 눈만 감았다 뜬 선재가 이제 그만해, 하고 범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만하라니까….”
붉은 자국이 아니라 검은 멍이 들 것 같았다. 범진은 이렇게 자국을 남기는 게 재밌는 모양이었다. 이마도 그렇지만 귓불을 세게 빨아 피가 몰리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땐 꼭 그 부위를 세게 얻어맞은 사람 같았다. 쭉쭉 빨리는 소리에 괜한 억울함을 느낀 선재가 팔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그러자 퍽, 소리가 났다.
범진은 한참 있다가 선재를 놔주었다. 제대로 됐나 보자, 하고 선재의 어깨를 다시 잡고 이마를 유심히 보았다. 장난치는 것 같은데, 표정을 보면 장난이 아니었다. 선재만 못마땅한 얼굴로 범진을 올려다보았다.
“나 밖에 안 나가. 네가 다 해.”
“어, 씨발. 내야 좋지.”
“…준희도 네가 배웅하고 다 해. 낮에도 준희 하원하면 네가 받아 줘.”
“씨팔, 니도 함 더 보고 좋지. 진짜 그래 한다?”
“…짜증 나서….”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린 선재가 이번엔 아예 주먹을 쥐었다. 아랫입술을 물고 범진을 쳐다보는데,
“야.”
범진이 갑자기 불렀다. 큰 손으로 이마를 턱 잡곤 이름까지 불렀다.
“민선재.”
“왜.”
“내 니랑 뭐 했지?”
“뭐가.”
빼빼로 게임 하고, 갑자기 화내고, 얼굴에 난데없이 입 댄 거?
별로 한 건 없었다.
범진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래 됐다며, 바지 안에 손을 넣었다가 자지를 꺼내 보였다. 투욱, 퉁기듯 튀어나온 자지가 흉기처럼 부풀어 있었다.
심드렁하게 범진을 쳐다보던 선재였지만 부푼 자지엔 포기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뻣뻣하게 고개를 든 자지 끝엔 방울도 맺혀 있었다.
한 몇 초 가만히 있던 선재가 천천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침까지 흘려 대는 자지가 불쌍해서 빨아는 줘야 할 것 같았다. 소파 위라, 몸을 웅크리기만 해도 입에 범진의 자지가 닿았다. 천천히 입을 벌린 선재가 귀두부터 입안에 넣었다.
“우, 웁.”
무리해서 넣으려고 해, 귀두에 목 끝을 찔렸다. 어깨를 들썩인 선재가 자지 기둥 일부만 문 채로 범진을 올려다보았다. 눈물 맺힌 눈을 쳐다보던 범진은 왜, 하고 고개를 숙였다. 자지를 물고 고개를 살짝 저은 선재가 손으로 기둥을 잡았다. 괜찮냐는 식으로 얼굴을 붙였던 범진은 눈과 코, 머리에 입만 맞추고 있었다. 유연하지도 않으면서 그럴 땐 몸이 자유자재였다.
위로 솟구치다 못해 뒤집히는 자지를, 선재는 커다란 사탕 빨듯이 입안 살로 쓸어 주었다.
목구멍도 최대한 열었다. 그러면 자지를 더 많이 물 수 있다. 처음엔 찔리기만 했지만, 스스로 구멍을 최대한 열고 넣으면 귀두가 닿아도 아프지 않았다. 목구멍이 벌름거릴 때마다 범진의 성기가 안쪽으로 파고들고, 안쪽 점막에도 빠듯하게 닿았다.
입술도 나름대로 움직이려 하는데, 갑자기 뒷목에서 느껴지는 힘에 선재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커다란 손이 상체를 밀어내듯 뒷목부터 어깨까지를 쭉 쓸어, 선재가 입안에 물고 있던 성기를 툭 뱉었다. 고개를 완전히 든 선재가 벌게진 얼굴로 범진을 쳐다보았다. 입안에 고여있던 침이 커다란 성기가 빠지며 그대로 소파로 흘러내렸다.
“애….”
왜, 물어도 범진은 말이 없었다.
펠라를 해주다 얼굴을 든 탓에 목 위로 압박감이 들었다. 입에선 침이 흐르고 얼굴은 붉었다. 눈을 좀 피하고 싶었으나, 범진이 고개를 단단히 고정해 얼굴을 돌릴 수도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선재가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손을 범진의 허벅지 위에 올리고 그의 의중을 물었다.
“애 그러냐고….”
말을 할 때마다 쿠퍼액 섞인 침이 흘렀다. 턱이 얼얼해 감각이 무뎠다. 웅얼거리듯 말하고 입술을 반사적으로 뻐끔거린 선재가 범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말이 없던 범진이 거친 숨을 밖으로 내며 입을 열었다.
“씨, 누가 그래 씹으라드냐.”
다른 날과 달리 목구멍으로 힘껏 연 것에 불만이 생긴 모양이다. 근데, 그게 왜? 의문스러운 심정에 선재가 뭘,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조용히 씨팔, 욕한 범진은 선재를 옆으로 끌어 어깨를 안았다. 순식간에 품에 갇혀 버린 선재가 고개를 들어 범진을 쳐다봤다. 범진은 좆을 내놓은 채로 어딘가 심통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엔 관자놀이 근처에 핏줄까지 솟았는데 그건 가라앉은 뒤였다.
가끔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데가 있다.
범진의 얼굴을 살핀 선재가 왜, 하고 다시 물었다.
아니다, 씨발.
읊조린 범진은 선재의 얼굴에 입술부터 들이댔다. 눈에 입을 맞추고, 뺨과 입술을 혀로 훑어 올렸다.
“뭐 땜에…. 그래….”
살짝 따가운 혀가 얼굴 여기저기에 닿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던 선재가 범진을 걱정했다. 몇 분 전까지 장난을 쳤는데 분위기가 팍 죽었다.
“내가 씹, 개, 똘아이가 됐나 보다.”
범진은 짧게 말하고 선재의 이마에도 입을 댔다. 아까 남았던 자국에 또 입술이 닿았다.
“….”
“하, 이 쌍판때기 진짜 뒤지겠네.”
또 실체도 없는 질투를 하는구나 싶어 선재가 코를 살짝 찡그렸다. 범진이 느끼는 바를 그대로 말해 속은 시원하지만 맥이 풀렸다. 범진은 코끝을 핥다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눈동자에 혀가 닿아 눈꺼풀을 찌푸리자 범진이 눈구멍 안에 혀를 넣으려 들었다. 세게 눈 감으며 고개를 뺀 선재가 한쪽 눈을 손으로 가렸다.
“그만….”
“이리 안 오냐.”
범진은 소리만 안 냈지 속으로 충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얼굴에서 그게 드러났다. 제 눈에서 침을 닦아낸 선재가 상체를 범진 쪽으로 다시 천천히 붙였다. 손은 범진의 드러난 자지로 향했다. 곧 입술이 닿았고, 손으론 기둥을 쓸어올렸다.
“씨팔….”
범진은 키스를 하는 중인데도 꼴 받아, 뒤지겠네, 하는 말만은 끝까지 했다.
틈새로 들린 소리에 선재도 말을 섞었다.
“뭐가 그렇게 꼴…. 받는데….”
범진은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키스했다. 입을 벌리고, 혀를 옭고, 입안 여기저기에 제 혀를 집요하게 대고, 찌르고, 쓸었다. 가장 여린 살에 혀가 연속적으로 닿으면 쓸리는 느낌까지 났다. 길게 이어지는 키스엔 선재도 눈을 감았다.
짙은 스킨십을 하는 와중에도 범진은 갈증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선재의 입술을 깨물었고,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혀를 넣으려 들었다. 몸을 세게 끌어안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가슴께가 턱 막히는 느낌에 선재가 몸을 밀어내면, 잠시 떨어졌다가도 다시 같은 강도로 밀어붙였다.
또 억지로 떨어진 범진은 입을 혀로 슬쩍 쓸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팔…. 니가 씨팔….”
너무 좋다고 중얼거린 범진이 선재의 팔을 막무가내로 잡아당겼다. 그리곤 몸을 완전히 끌어안아 벗어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막무가내로 잡아 올린 탓에 하체가 범진의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엉덩이 근처에 범진의 자지가 닿은 게 느껴졌다. 선재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닿는 묵직한 감각에 하체를 조금 움직여 보았다. 엉덩이로 은근하게 비벼주자 범진의 화난 눈이 번뜩이며 튀어댔다.
“너만 좋아해…? 나도 너 좋아해….”
그 말에 범진이 씨발, 씨발, 특유의 거친 발음으로 씹듯이 욕을 내뱉었다. 동시에 허리를 세게 안은 범진이 선재의 입을 제 입으로 끌어당겨 키스했다. 선재도 눈을 감고 범진을 안았다. 꾸욱, 자지가 닿으면 선재가 엉덩이를 움직여 자극을 주었다. 자세가 어정쩡하긴 했지만, 허리를 은근하게 쓰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둘 다 서로에게 매달린 모양새였다. 떨어질 것 같으면 선재가 입안에서 우으, 하는 소리를 냈고. 범진은 아슬한 자세 그대로 선재를 당겨 안았다. 몸의 어디가 맞닿는지도 나중엔 알 수 없었다. 팔이 엉키고 숨이 찼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