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선재야, 바지 벗어 봐. 한 번만 보여주라.
좆 얻다 쓰지도 못하는데 보여주긴 아까워?
발정 나면 진짜 아무한테나 다 대 주냐.
학교에 자주 나오는 애들은 아니지만, 나왔다 하면 선재에게 언어폭력을 일삼던 무리들이었다. 가만히 있던 선재에게 다가온 세 명의 무리가 한참이나 낄낄거리며 그런 말을 해 댔다. 어떤 말은 기억나지도 않았다. 선재는 한동안 바닥만 쳐다보다 교실을 뛰쳐나왔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조퇴 허락을 받았다.
학교 앞에서 105번 버스를 타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보호자들과 아무도 없을 때 접촉하기는 싫었다. 저와 같은 아이들이 여섯 명.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했고, 고등학생은 저 혼자였다. 지원금 때문에 아이들을 거둬들인 보호자들은 보호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집엔 틈만 나면 소주병이 나뒹굴었고, 도박판도 주기적으로 열렸다.
그치만 때리지는 않는다.
선재는 작은 위안거리라도 생명줄 잡듯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선 스스로 하는 위로만이 등불이 되어 준다. 그래. 때리지 않으니까 괜찮아. 그 정도는 아니니까 좋아. 좋으면 좋은 게 되니까 좋아할래.
문제가 있다면 그 위로가 학교에서만은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쾌한 시선과 편견을 갖고 저를 쳐다보는 건 괜찮다. 하지만 직접 말하며 시비를 거는 것까진 좋게 생각할 수 없었다. 선재는 얼마 전에 맞은 페로몬 주사 때문에 아직도 팔이 얼얼한 상태였다. 비싼 주사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최근에 겨우 맞았다. 무방비하게 페로몬을 노출하지 않는 데 목적이 있는 주사였다.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오메가들이야 어릴 때부터 맞을 수 있겠지만 저는 아니었다. 돈을 모아서라도 꾸역꾸역 맞은 건 그들이 말하는 ‘발정 난 개’가 되기는 싫기 때문이었다.
낯선 버스가 선재를 싣고 향한 곳은 볕이 쏟아지는 해수욕장이었다.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선재가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려고 했는데 40분이 넘게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내려서 본 바다는 길게 이어진 그림 같았다. 누가 그린 것처럼 쭉 이어져 있었고, 빛 때문에 표면이 반짝반짝했다.
천천히 걷기 시작한 선재가 틈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봤다. 바다는 가도 가도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함이 없었다.
“아…. 아파.”
또 팔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 났다. 어렸을 때 맞으면 아프지도 않다고 하던데. 통증은 근육통 비슷하다가 찌릿찌릿 울리며 겨드랑이까지 칼로 베는 느낌으로 전달되었다. 팔꿈치를 붙잡고 살살 주무르기 시작하니 조금은 나았다.
선재는 벤치를 발견하곤 그리로 가 앉았다.
버스 정류장이 저기니까.
벤치에 앉아 반대편을 쳐다보는데 웬 꼬맹이 한 명이 보였다.
제 뒤에서 걸어왔던지 거리가 꽤 가까웠다. 지나가겠거니, 생각한 선재가 정류장을 흘끔 보곤 고개를 돌렸다.
“왜 봐.”
“…어?”
“나 왜 보냐고.”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는데 꼬맹이는 대뜸 시비를 걸었다. 끽해야 허리에나 닿는 키일까? 보통 성질이 아닌 듯했다. 훨씬 큰 형한테 말하는 게 당돌했다.
“어? 너 안 봤는데.”
“씨, 봤잖아!”
갑자기 팔을 빳빳하게 세우고 소리를 질러 놀랐다. 짧은 반삭발 머리에, 옷도 어디서 주운 거적때기 같은 걸 입고 있었다. 축 늘어난 민소매 티의 목 부분을 바라본 선재가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안 봤어. 정류장 쳐다본 거야.”
“…버스 타고 왔어?”
“어? 어.”
“왜 왔는데?”
그런 걸 일일이 말해 줘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선재가 그냥, 하고 짧게 대답했다.
“씨, 대답 안 해?”
“뭐?”
꼬맹이가 꺼낸 건 문구용 칼이었다. 녹이 슬어 앞이 다 상한 칼을 앞으로 꺼내며 드륵드륵 소리를 냈다. 또래 애들을 이런 식으로 겁주나 보다. 빨리! 언성 높인 꼬맹이를 쳐다보다가 선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목대장이고 여기가 지 구역쯤 되는 모양인데, 그냥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디 가! 어디 가냐고!”
“…….”
벤치를 벗어나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꼬맹이가 또 화를 내며 달려왔다. 서서 보니 정말 허리에 겨우 닿는 키였다. 꼬맹이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곤 칼을 내밀어 사람을 위협했다. 선재가 앞에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이런 거 누구한테 배웠어.”
“뭐! 나한테 배웠다!”
아예 멈춰 서서 꼬맹이를 내려다본 선재가 그 말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좋은 거 배웠네…. 형은 가던 길 계속 가도 될까?”
“입장료 내.”
“무슨 입장료.”
“왔으면 돈을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조끄만 게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목소리가 너무 컸다. 주변을 둘러보니 등이 굽은 노인 한 명뿐이다. 다시 꼬맹이를 쳐다본 선재가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찾았다. 버스비 빼면 200원밖에 안 남는데, 그거라도 줘야겠다.
200원을 꺼내 자, 하고 내미는데 꼬맹이가 손도 펼치지 않았다.
“죽을래? 2,000원 내놔.”
“2,000원 없어.”
“씨, 거지였네.”
확 한 대 때려 버릴까. 잠깐 생각하던 선재가 그래, 나 거지야, 말하곤 몸을 돌렸다. 200원은 안 받는다니 무시하고 갈 길을 가는 게 나을 듯했다.
좀만 더 걸으면 다른 정류장도 나오겠지 싶어 선재는 걸음을 옮겼다.
“왜 가! 왜 가냐고!”
“…….”
몇 걸음 가기가 무섭게 뒤에서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줄 돈도 없는데 자꾸 따라왔다. 허름한 폐모텔 앞에 선 선재가 또 다다다 뛰어와 씩씩거리는 꼬맹이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너…. 자꾸 따라오면 니네 부모님한테 이른다.”
“일러 봐, 씨, 일러 보라고.”
꼬맹이는 순식간에 흥분했다. 어떻게 이를 건데! 니기미 씨발! 하고 손을 들어 때리려는 시늉도 했다. 욕설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평정을 찾아야 했다. 또래 애들이라면 작은 주먹이 겁났겠지만 덩치가 두 배는 차이가 나니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까무잡잡하게 익은 얼굴에 눈을 맞춘 선재가 작전을 바꿨다. 이러다간 바다 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돌아갈 수도 있다.
선재는 꼬맹이 팔을 잡고 반쯤 꿇어앉았다. 아이를 타일러 보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형이 돈도 없고, 맘대로 와서 미안하긴 한데…. 한 번만 모른 척해 주면 안 될까?”
“…….”
곱게 타이르니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빤히 제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긴 하지만, 공격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괜한 반발심 때문에 그랬던 건가. 첨부터 타이르는 쪽으로 갈걸. 이제 됐겠다 싶은 선재가 일어나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꼬맹이는 한동안 서 있었다. 몸을 돌린 선재가 다섯을 셀 때까지 꼬맹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다다 달려온 건 여섯을 셌을 때.
“야!”
갈수록 짧아지는 말은 그렇다고 쳐도, ‘야’엔 선재도 인상을 찌푸렸다. 가만히 서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데 꼬맹이가 앞으로 와 저를 올려다봤다.
“너 남친 있어?”
“뭐라고?”
“남친 있냐고. 너한테 좋은 냄새 나.”
그 말엔 선재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표정으로 무섭게 말하려고 했는데 워낙 어이없는 말이라 웃음이 절로 터졌다. 꼬맹이는 선재가 웃자 눈썹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불만에 가득 차서 왜 웃어? 물었다.
“왜 웃냐고.”
“…아. 그냥.”
하도 심각한 얼굴이라 더 웃기도 뭣했다. 선재는 고개만 젓곤 천천히 걸음을 뗐다. 옆에서 꼬맹이도 마른 다리로 척척 제 걸음에 맞춰 따라왔다. 칼은 주머니에 넣었는지 더는 보이지 않았다.
폐모텔을 다 지나, 모래사장 쪽으로 방향을 틀 때까지도 꼬맹이는 계속 따라붙었다.
“아, 남친 있냐고.”
“…아니, 없는데.”
대답을 안 해 주면 지구 끝까지 쫓아올 기세였다. 어린 게 못 하는 소리도 없고, 지치지도 않는가 보았다. 무엇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흘리듯 대답한 선재가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럼 나랑 사귀자.”
“…….”
눈을 가늘게 뜬 선재가 말없이 꼬맹이를 쳐다봤다. 교복 자락을 쥐곤 저랑 사귀잔다. 땅콩만 한 어린애를 쳐다본 선재가 마땅한 말을 골랐다. 어차피 어림도 없는 웃긴 소리니까, 그냥 그러자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 돈 많아. 이거 봐. 너 거지니까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 수 있어.”
꼬맹이가 한쪽 주머니를 탈탈 치며 말했다. 동전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
선재는 교복 셔츠를 쥔 꼬맹이 손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정말?”
그 말에 꼬맹이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사납고 포악한 앤 줄 알았는데 일단 다 믿고 보는 게 그 나이대 어린애 같긴 하다. 조금 전까지 칼 들고 위협하던 애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씰룩쌜룩 올라가는 입꼬리를 훑은 선재가 도리어 미안함을 느꼈다. 대충 둘러대듯 말한 건데. 너무 진심처럼 보여 더는 거짓말을 하기도 좀 그랬다.
“근데 꼬맹아, 형 남자야.”
“근데? 너한테 좋은 냄새 나서 좋아. 얼굴도 이뻐.”
“…….”
“나랑 결혼도 하자.”
“너 결혼이 뭔지 알아?”
“알아. 니가 내 애기 낳는 거.”
“…….”
꼬맹이가 뭘 안다고….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겼던 선재가 다시 꼬맹이를 쳐다봤다. 이렇게 어린애가 알파니, 오메가니, 하는 개념을 알 턱이 없다. 아이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지금 밖을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면 학교도 잘 나가지 않는 애인 것 같았다. 더는 대꾸하지 않은 선재가 앞을 향해 눈을 돌렸다. 반짝거리는 바다가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이는 옆에서 제 교복을 늘어뜨리며 약속부터 하자고 했다.
뭘?
결혼하기로 약속하자고.
너 형 알아? 칼 들고 찌를 땐 언제고 왜 이래.
어. 알아. 저기서 내렸잖아. 그러니까 약속해. 나랑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도장 찍어.
아이가 가리킨 건 멀어진 정류장이었다.
내가 저기서 내린 거랑 너랑 뭔 상관이야.
나한텐 상관있어! 상관있다고!
고집불통 어린애를 더는 말로 이겨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꼬맹이는 해가 눈부셔 눈을 찌푸리면서도 어떻게든 결혼 약속을 하려 했다. 바락바락 우기며 손을 들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안 해 주면 나 이거 꺼낸다, 하고 오른쪽 주머니에 칼이 있는 것으로 협박도 했다. 진짜 못된 애네. 인상을 쓴 선재가 너 그럼 이것만 하고 가, 하고 손을 들고 새끼손가락에 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도장을 찍고 복사, 사인까지 거쳤다.
약속을 받아 낸 꼬맹이는 신이 났는지 바닷물에 젖은 모래를 마구 밟고 다녔다.
보란 듯 옆 구르기도 했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속으로 생각한 선재가 꼬맹이와 바다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바다 표면에 어린 건 빛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뿌린 하얀 가루 같았다.
저렇게 새하얄 수는 없었다. 잠깐 눈을 감았던 선재가 앞을 다시 쳐다봤다.
저게 뭐지?
빛의 영역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앞에 있던 꼬마가 옆 구르기를 하다가 사라졌고,
선재는 눈을 떴다.
“아….”
꿈이었네.
조금 전에 일어난 일처럼 생생했던 꿈이었다. 놀림을 당하고, 밥 먹듯 조퇴했던 건 일상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바다로 가 본 적은 없었다. 싹수없고 제멋대로인 남자애를 만난 적도…. 선재는 잠깐 생각하다 옆에 누운 범진에게로 데굴데굴 굴러서 갔다. 허어…. 하고 짐승 소리 같은 걸 낸 범진이 잠결에도 선재를 끌어안았다.
“나 엄청…. 멀리 갔다가 왔다….”
“니 요새 몸부림…. 치드라. 그래.”
“그거 아니고…. 꿈에서.”
“꿈에서…. 뭐….”
“바다 갔거든….”
“재밌게 놀았냐….”
“논 건 아닌데….”
“그냐….”
“범진아….”
“어….”
“옆 구르기 잘해…?”
“쫌 하지….”
일일이 대꾸는 다 해 주지만 막상 나중에 물어보면 범진은 기억도 못 할 때가 많았다.
“으음…. 꿈에 나온 거 너인가 보다….”
“내야 씨…. 니한테 맨날 있지….”
“응…. 그래서 꿈에….”
작게 중얼거린 선재가 끔벅이는 눈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잠이 자꾸 쏟아졌다.
밖에선 준희가 재혀기 이리 와, 이리 앉아, 말하며 자리를 잡아주고 있는 듯했다. 둘은 주말에도 아침에 일어나 어린이 프로그램을 꼭 사수하곤 했다. 재혀기 형아가 이거 주께, 하고 뭔가를 나누어 먹는 소리도 났다. 거실 테이블에 둔 쿠키인가?
선재는 따뜻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로 눈꺼풀을 닫았다. 준희가 재혁의 어깨를 꼭 껴안고 소파에 앉은 모습이 상상이 갔다.
다리를 걸어 엉덩이를 당기는 범진의 몸짓에 선재도 팔로 허리를 감았다.
범진은 그 틈에도 무의식적으로 선재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쪽, 떨어진 입술에 선재도 입술을 내밀었다. 가슴께에 아무렇게나 입 맞췄다.
자자, 말하는 범진을 따라 선재도 자자, 말했다.
또 만나러 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