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한단호
빗소리가 잠을 깨웠다. 한단호가 굳게 닫힌 눈꺼풀을 들었다. 사위가 아직 어둑어둑하고 유리창에는 빗줄기가 사선을 죽죽 내리긋고 있었다. 하늘 아래 드리운 먹구름이 바닥에 닿을 것처럼 짙고 무겁다. 커튼 같은 구름 사이로 푸르스름한 빛이 섞여 있는 걸 보니, 새벽 나절인 듯싶었다.
눈을 끔벅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품에 푹 안긴 상대를 보자 잠기운 남은 입술이 슬그머니 올라갔다. 부스스하게 위로 솟은 머리카락이 귀엽다.
한단호는 아예 베개에 머리를 푹 파묻고서 상대를 조목조목 뜯어봤다. 초봄 날 여린 잎사귀처럼 부드러운 머리칼과 그 아래 드러난 봉긋한 이마, 짙은 눈썹 사이로 유려하게 내려오는 콧날을.
전체적인 이목구비만 따져 보면 완연한 성인인데, 뺨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해 아직 덜 여문 듯한 느낌을 줬다. 가끔 그가 방심하고 입을 헤벌리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그 볼살을 꽉 깨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젖내 나는 갓난아이의 포동포동한 볼살을 악의 없이 깨물고 싶은 심정과도 비슷했다.
욕망을 삼킨 채 이 대신 검지 옆면으로 조심스레 뺨을 쓸었다. 대번에 눈살을 찌푸리며 품을 파고든다. 혹여나 깰까 얼른 손을 떼고 등을 가만가만 쓸어내렸다. 깰 듯이 불규칙하던 숨소리가 도로 고르게 가라앉았다.
고즈넉한 새벽이었다. 빗소리도, 품을 가득 채운 따스한 체온도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이 순간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당장 잡아다 목을 쳐 버릴 거라는 흉흉한 성질머리도 고개를 들었다.
진서율에게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가랑비 같고 계곡물 같았다. 얕은 줄 알고 발을 들여놨는데 한 발자국 더 들어가니 머리꼭지까지 잠길 깊은 물이었다.
하마터면 이걸 놓칠 뻔했다. 서율이 새처럼 날아갈 뻔했다.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싸늘하게 식었다. 서율을 껴안은 팔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문자도 전화도 씹혔다. 찾아가도 무시당하고 경멸하는 눈초리까지 받았다. 동정이냐고 따져 묻는 목소리는 서릿발 같았으며 말 걸지 말라는 명령은 이제 그만 죽으라는 사형 선고로 들렸다.
그때 쿵 하고 발치까지 심장이 떨어지던 기분은, 등 한가운데 거대한 칼날이 푹 박히는 듯한 섬뜩한 기분은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평소와 같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겠지만 서율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향을 맡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 몸을 껴안고 싶어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중독자나 다름없었다. 금단 증세같이 끔찍한 불면과 두통에 하수구 바닥을 알몸으로 기는 듯 저조하고 더러운 기분이 온몸을 지배했다. 담배를 끊을 때가 오히려 쉬웠다. 서율은 끊을 수가 없었다. 영영 못 본다는 생각만 해도 누군가 제 목에 올무를 걸고 바싹 조여 대듯 숨이 막혔다.
그래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처럼 서율 곁을 빙빙 맴돌았다. 나 좀 봐 달라고, 나 좀 데려가라고, 나 좀 용서해 달라고 처량 맞게 귀를 눕히며 꼬리를 흔들었다.
무시해도 문자와 전화를 하며 카페에 찾아갔다. 새벽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으면 뭐에 홀린 사람처럼 뛰쳐나가 진서율의 집 앞 골목에 차를 대고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로등 아래서 나눈 대화를, 놀이터에서 고백받은 그 순간을 곱씹으며 긴긴 새벽을 지새웠다.
진서율의 냉랭한 눈빛이 머릿속을 헤집어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침대 위에서 끊임없이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이했다. 술을 마셔도 불면을 쫓아내기에는 모자랐다. 낮에 진서율 꽁무니라도 졸졸 따라다녀야, 그 향을 조금이라도 들이마셔야 밤에 아주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서율이 연락이 아주 안 되던 때를 기억한다. 그만큼 무서운 날이 없었다. 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사람은 때로 이성보다 오감이 팔다리를 조종할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할 거라는 기이한 생각이 터질 듯이 부풀었다.
미친 사람처럼 주변 이들을 붙잡고 물었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구겨진 옷을 아무렇게나 걸친 채로. 겁먹은 임이진이나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레 묻는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임이진의 어깨를 잡고서 윽박지르듯이 물어봤다. 진서율 어디 있느냐고. 누가 숨긴 것도 아닌데, 꼭 무언가가 제게서 진서율을 빼앗아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꼭꼭 감춰 둔 양 암담했다.
임이진의 입에서 그나마 단서다운 단서를 듣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서율이 간 곳으로 향했다. 액셀을 얼마나 밟아 댔는지, 나중에 집에 속도위반 고지서가 한 뭉텅이 날아왔다.
서율은 착했고, 그 동정심과 이해심이 하해와도 같아 저는 염치도 없이 그 마음을 꿀꺽꿀꺽 받아먹었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노라고 수천 번 다짐하면서. 서율 옆에 다른 누가 서 있는 상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살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평생 이런 광증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서율만 있으면 괜찮다. 진서율이 제 진정제고 제 목에 맨 고삐다.
품 속에 갇힌 서율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안 깨운다며 조심한다는 게 그만 숨 막히게 껴안고 있었다. 서율이 제 가슴팍에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떴다. 찌푸린 미간도, 졸음기가 가득 어린 눈도 사랑스럽다. 보송보송한 이마에 입을 맞추며 등을 도닥였다.
“더 자요. 아직 새벽이야.”
응, 하고 작게 답하는 목소리가 나른하다. 다리와 다리를 얽고, 도로 서율을 제 품에 끌어안고서 한단호도 눈을 감았다. 조금 전만 해도 파도처럼 치밀었던 격정을 노련하게 감추며 잠을 청했다. 다행히 불면은 가시고 잠이 왔다.
“내가 할게요.”
“내가 해도 돼요. 앉아 있어요.”
“내가 한다니까, 형.”
토요일 느지막한 오전이었다. 새벽부터 오던 비는 아직도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일기 예보에서 이번 주말 내내 비가 올 거라는 조금 우울한 소식을 전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갈 계획도 아니었다. 서율을 옆구리에 끼고 소파든 침대든 굴러다닐 생각만 했다. 나가서 하는 데이트가 딱히 싫은 게 아니다. 서율과 여유롭게 같이 누워 있는 시간을 만끽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할 뿐이지.
“앉아요.”
하여튼 승기는 서율이 쥐었다. 고집이 얼마나 센지, 저도 만만치 않은데 서율은 한 수 위였다. 아니다 싶을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버리는 사람임을 안다. 이 상황에 적용될 사항은 아니지만, 두 손을 들어 항복을 표하고 식탁에 앉았다.
그냥 시켜 먹어도 될 텐데, 브런치를 만들겠다면서 서율이 칼을 들었다. 같이하려고 기웃거려도 본인이 하겠다며 부득불 우기는 통에 얌전히 턱을 괴고 그 뒷모습을 구경했다. 서툴게 칼질하는 모습이, 집중하는 옆얼굴이 보기 좋았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보고만 있어도 좋구나.
연애를 안 해 본 건 아니다. 상대가 요리해 준다며 싱크대에 선 적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드는 감상이 달랐다. 그때는 그냥 편하다, 에서 그쳤다면 지금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고 기대감이 비 맞은 죽순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다 탄 계란 쪼가리를 준다 해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처럼 먹어 줄 수 있었다. 더 좋은 건 제 손으로 요리해 서율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거겠지만. 그리 상상하며 한단호는 다음 기회를 노렸다.
집중하는 뒤통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제 티셔츠를 입은 터라 품이 살짝 헐렁했다. 굽은 등 선을 타고 내려온 티셔츠가 엉덩이 위에 걸쳐졌다. 검은 브리프가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어 둥글둥글한 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턱을 괸 손가락을 들어 입을 가렸다. 목이 타들어 갔다. 무의식중에 침을 꿀꺽 삼켰다. 목울대가 목 거죽을 밀고 오르내리는 느낌이 생생했다.
브리프 아래로 쭉 뻗은 다리는 맨살이었다. 통통한 허벅지와 오금, 종아리와 발목까지 훑고 도로 엉덩이로 돌아왔다. 짝다리를 짚고 있느라 한쪽 볼기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다.
손아귀에 쥐고 주무르면 손가락 모양으로 움푹 팼다가 도로 통통해지겠지. 말랑말랑하고 탄력 있는 그 감촉을 잘 알았다. 살짝 벌려서 그 안에 제 좆을 파묻는 쾌락 또한. 그 속살이 얼마나 뜨겁게 저를 잡아먹었는지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페로몬이 새어 나갔다.
팬에 기름을 두르던 서율이 움칫하며 돌아보았다. 숨긴다고 숨기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페로몬이 온몸에서 풀풀 흘러나갔다. 갈무리하려 해도 주인의 노력을 비웃으며 상대의 등허리를 감싸 안을 듯 뻗어 나갔다.
서율이 모른 척 싱크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귓바퀴와 목덜미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고소한 기름 냄새보다는 발그레한 저 살색이 더 맛있게 다가왔다. 한입 콱 깨물고 오물오물 씹고 싶었다.
굳이 참을 필요 있나.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눈치챘는지 칼질하는 팔이 기계처럼 뚝딱뚝딱 어색해졌다. 그 등 뒤로 바짝 붙어 허리에 팔을 감았다. 머리카락과 귓바퀴 뒤, 목덜미에서 향이 물씬 풍겼다.
“앉아 있으라니까…….”
“조금만 안고 있을게요.”
커다란 덩치를 등에 매달고 요리하기는 어려운지 손길이 조금 느려졌다. 그래도 요리하는 동안엔 거북이 등껍질처럼 철썩 달라붙어만 있으려 했는데, 콧속으로 스미는 향이 아래를 달궜다. 가슴과 달리 양심 없는 자지가 헐렁한 바지를 밀며 벌떡 일어섰다.
탄탄한 엉덩이에 하체를 붙이고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댔다. 은은하게 달궈진 살갗에 입술을 내리누르고 손을 슬금슬금 상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서율이 화들짝 놀라 손목을 잡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손이 뱀처럼 복근을 타고 올라가 가슴에 닿았다. 봉긋한 가슴살을 담뿍 쥐었다.
“요리해 준다면서요. 어서 해요. 계란 다 타겠다.”
“이거 놓으면요. 아, 손 빼.”
당황하니 말이 짧아진다. 그게 좋았다. 손에 힘을 줘 불룩한 살을 주물럭거리다가 손가락에 걸리는 젖꼭지를 살짝 튕겼다. 서율이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상체를 움츠렸다. 그 탓에 아랫도리가 더욱 바짝 붙었다.
“진짜…….”
서율의 미간에 금이 갔다. 곤란해하면서도 거부하지는 않는다.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라, 한단호는 인덕션 불을 끄고 히죽거리며 아래로 손을 내려 엉덩이를 잡았다.
아까부터 움켜쥐고 싶었다. 한여름 잘 익은 백도처럼 탐스러워서, 한가득 잡고 주무르면 농익은 과즙을 줄줄 흘릴 것만 같았다. 실제로 조금만 자극해도 달큼한 냄새가 풍기는 애액을 질질 흘리니 복숭아라는 비유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혀로 입술을 축이며 팬티 가장자리에 손가락을 걸고 밀어 올렸다. 서율이 다급히 손목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물러나면 벌떡 선 자지가 불쌍하지 않은가. 피가 몰려 섰으면 당연히 정액을 빼 줘야 한다. 그게 수컷의 기본 작동 원리였다.
드러난 엉덩이를 마음껏 주물럭거리며 목 뒤에 입을 맞췄다. 제 품에 가둬 돌아보지 못하게 했더니 서율이 싱크대만 잡고 끙끙거렸다. 흘긋 보이는 아래가 성이 난 건 저나 진서율이나 같았다. 풍기는 향도 달고 야했다.
아랫도리가 갇혀 있기 답답하다고 난리였다. 바지춤을 내리고 성기를 꺼내 말랑말랑한 엉덩이에 문질렀다. 핏줄까지 선 흉흉한 자지가 뽀얗고 동그란 둔덕 위에 비벼지는 광경이 여느 포르노 못지않았다. 하아, 하고 달뜬 숨소리가 터져 나올 만큼 자극적이다.
요리고 뭐고, 음식보다 눈앞의 진서율을 먹어 치우고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야금야금. 속옷을 좀 더 옆으로 끌어당겨 둔덕 사이에 손을 댔다. 진서율이 크게 움칫하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제 무게를 진서율의 등 위에 더욱 실어 짓누르고 마른 구멍 위를 더듬었다.
“이것부터 먹을래요.”
“아니, 그건 먹는 게……. 아…… 그만.”
거부라고 보기엔 몸부림이 미약했다. 오밀조밀한 입구를 검지로 가볍게 문지르자 둔덕이 봉긋해지며 손가락 끝이 축축하게 젖었다.
어깨를 움츠린 진서율이 입술을 깨물고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착하게도 밀어내지 않는다. 정말 싫다면 정색하고 밀치면 그만일 텐데. 그런 진서율이 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진서율이 좋아서 미치려 하는 장면을 꼭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답지 않게 진서율의 발치에 앉았다. 속옷을 끌어 내리고 양손에 볼기짝을 하나씩 쥐고 사이를 벌렸다. 순식간에 벌인 일이라 진서율이 뒤늦게 반응했다.
“흣―!”
진서율이 그 자리에서 펄쩍 뛸 것처럼 뒤꿈치를 들었다. 벗어나려는 몸뚱이를 힘으로 붙들고서 혀를 꺼냈다. 척척한 혀끝으로 그 사이를 문지르자 제 머리카락을 틀어쥔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기 전에 콧대를 살갗 위에 눌러 박고 개처럼 핥았다.
“미쳤어요? 당장, 아, 하지 마. 너 미쳤…… 아, 아윽, 흐읏……!”
손에서 바로 힘이 빠져나갔다. 넘어질 듯이 서율의 상체가 휘청거렸다. 간신히 싱크대를 잡은 진서율이 등허리를 바르르 떨었다. 살갗이 축축하게 젖어 갈 때마다 허벅지 근육과 엉덩잇살이 잔뜩 오므라들었다가 풀렸다.
“하으…….”
혀로 몇 번 쓸어 주자 아래가 흐물흐물 녹으며 애액을 뱉어 냈다. 움찔거리며 젖는 구멍 안에 손가락을 넣을까 하다가, 손을 돌려 앞을 잡았다. 흠칫하고 튀어 오르는 몸을 혀로 달래며 보드라운 음낭을 손에 쥐었다. 조몰락거리다가 손끝으로 기둥을 쓸자 허리가 부들부들 요동을 쳤다.
애액이 달짝지근하다. 내키는 대로 핥고 빨고 엉덩잇살을 모아 쥐어서 잇자국까지 새겼다. 여린 허벅지 안쪽도 입술로 덮어 쪽쪽 빨아들였다. 흰 살결 위에 붉은 자국을 남기고서야 입술을 뗐다. 혓바닥으로 벌겋게 익은 살갗을 위로한 뒤 또다시 볼기를 잡아 벌렸다.
콧대가 흠뻑 젖을 만큼 빨아 댔을 때는 서율의 허리가 반쯤 굽은 채였다. 빳빳하게 선 자지 끝에 굵은 물방울이 매달렸다. 한번 뿌리 끝까지 훑어 주자 서율이 고막이 녹을 만큼 야스러운 신음을 뱉으며 걸쭉한 정액을 싱크대에 뿌렸다.
다리를 후들후들 떨다가 서율이 이윽고 무릎을 꺾었다. 그 허리를 잡고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발개진 뺨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천천히 서율을 밀었다.
엉덩이만 위로 들게끔 허리를 잡아 엎드리게 해 놓고 그 뒤에 붙었다. 아까부터 저 좀 어떻게 해 달라고 대가리를 꺼덕이는 좆을 잡고서 젖은 둔덕 사이에 문질렀다. 힘이 빠진 서율은 맥없이 읏, 하고 목 막힌 신음만 흘렸다.
“그럼 애피타이저로 형 먼저 먹을게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대가리를 무는 속살이 말랑말랑하고 뜨겁게 익었다. 따끈따끈한 파이 속 필링이 사방에서 자지를 옥죄는 것 같았다. 대가리만 넣었을 뿐인데 안에 잔뜩 싸지를 듯 등골이 오싹했다.
꽉 감기는 속살을 헤치며 기둥을 밀어 넣었다. 반을 파묻자 엎드린 몸이 움칫하며 어깨가 둥글게 말려 들어갔다. 숨소리와 내뿜는 향이 아직 달다. 핏기가 도는 등허리를 쓰다듬고는 나머지도 꾹꾹 처박았다. 이미 잔뜩 성이 나 있던 자지가 점막에 둘러싸여서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하윽, 하고 서율이 주먹을 꾹 쥐며 새된 소리를 냈다.
더 들어가고 싶지만 아직은 막혀 있다. 몸이 더 흐물흐물 풀어져야 깊숙한 안쪽 문을 열어 줬다. 속살이 참 주인의 성격과 똑 닮았다. 서율도 마음의 문을 여는 속도가 굼벵이처럼 더뎠다. 그 울타리를 넘겠다고 얼마나 야살을 떨었는지 모른다.
뜨끈한 속살에 이성이 희미해졌다. 그때부터는 정신을 놓고 푹푹 박아 댔다. 위로 자꾸만 밀려 올라가기에 서율의 손목을 뒤로 잡아당기고서 허리만 냅다 흔들었다.
들어가면 꽉 물었다가 풀고, 나가려면 붙잡으려는 듯이 속살이 달라붙었다. 짓뭉개면 짓뭉갤수록 물속을 유영하는 달팽이처럼 애액을 질금질금 흘렸다. 힘 있게 내려찍을 때마다 철벅철벅 물웅덩이를 장화로 밟는 소리가 났다.
“읏, 하으…… 읍. 흐…… 아, 거기, 거기는……. 아……!”
“어디, 여기요? 아님 여기. 정확히 말해야지.”
“아니, 아. 아윽, 아! 지금, 읏!”
도톰하게 불거진 곳을 꾹꾹 누르자 서율이 자지러졌다. 안에서 무는 힘이 흡사 물어뜯는 듯하고 흘러나오는 페로몬도 진한 수준을 넘어 혀가 아릴 정도로 달다.
이쯤 되면 이성을 잡고 있는 놈이 열반에 들 성인이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옷자락을 이로 물고 안을 들쑤셨다. 서율의 입에서는 이제 거기라는 단순한 지칭조차 나오지 않았다.
막혀 있던 문이 슬슬 대가리 끝에 걸렸다. 거기를 들입다 쑤시자 서율이 허리를 뒤틀었다. 힘으로 잡아 누르고서 볼깃살이 음모에 눌릴 만큼 깊게 처넣었다. 자지만 넣었을 뿐인데 온몸이 녹아내렸다. 서율이 악, 하고 소스라쳤다. 손바닥에 곤두선 솜털이 닿았다.
“잠깐, 잠깐만. 잠깐, 제발, 아, 제발……!”
잠깐은 무슨.
서율의 말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비좁은 그곳을 맹렬하게 꿰뚫었다. 애액이 흥건하게 터지다 못해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입구에는 흰 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볼기를 잡아 벌려 삽입부를 내려다보며 아예 온몸을 파묻을 기세로 치받았다.
속살 깊은 곳, 서율이 좀처럼 잘 열어 주지 않는 좁은 곳에 어떻게든 대가리를 욱여넣으니 황홀하게 조여 온다. 불끈거리며 부푼 성기를 달래듯 감싸 안다가도 순간순간 이를 드러내며 터트릴 것처럼 옥죄였다.
서율의 등과 날개 뼈가 푸들푸들 떨렸다. 고개가 아래로 푹 꺾이고 허벅지도 조여들었다. 사정하는 순간에 맞춰 속살도 자지를 끊어 먹을 듯이 삼켰다.
“……읏.”
더는 참을 수가 없어 허리를 쥐어뜯는 양 움켜쥐고 안쪽에 넘쳐흐르도록 싸질렀다. 잘게 허리를 털고 불알 안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안에다 부었다. 떨리는 몸이 사랑스러워서, 끝까지 열어 주고 받아 주며 거기다 정액까지 남김없이 삼키는 몸이 좋아 미칠 것 같아서 개처럼 허리를 떨며 서율의 몸 위에 무게를 실었다.
서율이 바닥에 나부죽이 엎어졌다. 그 위에 틈 없이 겹쳐 누워 덜 식은 자지를 뭉근하게 치댔다. 정액이 고인 안쪽을 물놀이하듯 찰박찰박 두드리자 밑에 깔린 서율이 어깨를 퍼뜩 떨며 발가락을 오므렸다.
힘이 잔뜩 들어간 서율의 발등을 발끝으로 쓸며 눈에 보이는 곳곳에 입을 맞췄다. 귓불을 잇새에 넣어 잘근잘근 씹고 목줄기를 따라 입을 맞춘 다음 서율의 가슴 아래 손을 넣어 갈비뼈가 팔뚝에 느껴지게끔 꽉 껴안았다.
“좋아해요.”
서율은 가쁜 숨을 고르느라 바빴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몸을 넝쿨처럼 칭칭 휘감았다.
“형이 너무 좋아.”
유치한 고백만 줄줄이 나왔다. 사랑한다는 말이 목울대에서 넘실거렸다. 그 말은 차마 뱉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말도 낯간지러운데 사랑한다는 고백은 언젠가 용기가 넘쳐 나는 날에나 간신히 할 만했다.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머저리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고양이처럼 서율의 목덜미에 머리를 비벼 대면서. 서율이 팔뚝을 툭툭 치며 숨 막힌다는 신호를 안 보냈더라면 압사시킬 때까지 그 위에 포개져 있을 뻔했다.
속살에서 자지를 빼내려니 아쉬움이 앞선다. 입맛을 다시며 서율의 옆에 누웠다. 힘이 빠져 숨만 간당간당 쉬는 서율을 바라보고, 그 입술을 훔쳤다가 깊게 키스했다.
박는 데 미쳐서 입을 맞추지도, 젖을 빨지도 못했다. 지금이라도 하려고 곧은 빗장뼈와 목울대에도 입술을 내리누른 뒤 반듯한 아래턱도 잘근 깨물었다. 혀끝으로 쓸자 턱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선이 바르르 가늘게 떨렸다.
“……나도 그래요.”
조곤조곤한 속삭임에 고개를 들었다. 서율이 손을 들어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드러난 이마에 이마를 콩 맞대고, 아직은 헐떡임이 가시지 않은 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도 좋아.”
끝이 조각배처럼 굽은 눈매, 그 안에 물기가 어룽진 눈동자, 하현달처럼 휜 입술, 모든 게 모여서 조합해 낸 미소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토기처럼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견디지 못하고 서율을 와락 끌어안았다.
진서율의 품에 안겨 한참 몸을 비비적거리다 보니 성기가 또 고개를 쳐들었다. 뜨끈한 몸 안으로 처박고 싶어 빳빳하게 서서 꺼떡거렸다.
이성은 힘이 없었다. 잔뜩 흥분한 좆에 전부를 맡겼다. 서율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다가 손을 슬그머니 아래로 뻗었다.
애피타이저도 진서율이었는데.
“형, 우리 그냥 시켜 먹어요.”
메인도 진서율이다. 못 견디게 맛있어 보이는데 이걸 어떻게 안 먹고 배겨. 서율이 당황해서 도망칠 듯 상체를 일으켰다. 밥부터 먹어야 한다며 제 가슴팍을 미는 귀여운 짓도 한다. 그 핑계를 들어줄 법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둘레가 갈색으로 타들어 간 계란보다 진서율이 훨씬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위에 올라타 서율의 팔목을 한 손에 움켜쥐고 느지막한 브런치를 즐겼다. 혀끝에 닿는 살 맛이 팬케이크 위에 탑처럼 쌓은 생크림처럼 달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