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들이 마차를 타고 제34궁으로 사라지고 난 이후에 포티스를 찾으러 브라우니들과 함께 미로 정원을 탐색하던 라케티카는 허탕을 치고 다시 황족 실론들이 모여 대기하고 있는 정원으로 돌아왔다. 라케티카는 당황했지만, 포티스가 <토끼 사냥> 이후에 있을 <토끼 만찬>을 견뎌낼 만큼 몸이 튼튼하다고 여기지는 않았고, 자신이 도와주지 못하는 일이 이렇게라도 풀렸으니 속으로 안심했다. 그는 포티스가 크게 다치거나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을 테니, 아마도 어느 황족 실론 분의 은혜를 입어 돌아간 걸로 판단됩니다.”
라케티카가 이렇게 설명하자, 몇몇 황족 실론들은 자신이 먼저 포티스를 데려가지 않은 걸 안타까워했다. 정액을 머금은 포티스로 <토끼 만찬>을 벌일 생각을 했는데 일정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황제가 직접 내려주신 뮤를 혼자서 독차지하다니 욕심이 과하군.”
“즐거운 <토끼 만찬>이 되었을 텐데, 대체 누가 데려간 거지?”
“한 번쯤 더 안에 싸뒀으면 좋았으련만.”
황족 실론들이 저마다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건 오래 가지 않았는데, 발정기의 뮤 안에 모두가 골고루 정액을 내보냈으니 조만간 어느 가문에서건 아이가 생길 것이었다. 모두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분 좋게 티타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그러는 동안 포티스는 미카엘의 품에 안겨 제34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포티스가 잠든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뮤이기 때문인지 둘은 포티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황제의 뮤를 이렇게 데려가도 괜찮을까?”
언제나 미카를 지지해주는 운드였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상대가 황제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상관없어, 뭐라고 하면 내가 잔소리를 들으면 되지.”
미카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화를 일축시켜버렸다. 사실 잔소리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니었지만, 황족이 고작 뮤를 탈취했다고 해서 큰 벌을 받는 일은 없었기에 운드 역시 그렇구나, 하고 대답했다.
“너, 이름이 뭐였지?”
미카엘이 포티스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포티스는 마지못해 조그맣게 대답했다.
“포티스예요….”
“그래, 포티스. 내 궁에서 즐겁게 보내자.”
그러면서 만약 황제가 찾지 않는다면, 그대로 계속 지내도 돼, 라고 덧붙이며 포티스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말을 듣고 포티스는 두려운 건지, 아니면 평온한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혀를 내밀어 키스를 받아들였다.
‘정말로…. 내가 다른 실론의 아이를 받아들인 걸까…?’
제34궁의 정원은 진한 노란색의 켈라베어 꽃으로 가득 꾸며져 있었다. 키가 큰 나무들 대신 자잘한 관목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신 갖가지 커다란 동물의 조각상, 빛나는 분수 등이 놓여있어서 궁의 주인이 얼마나 활기찬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포티스는 미카엘에게 상처 입은 동물처럼 끌어안겨 있느라 창밖의 풍경을 볼 틈 같은 건 없었지만, 마차 밖으로 내려섰을 때 켈라베어 들판이라고 해도 좋을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켈라베어 꽃의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포티스는 어린 시절 정원에 켈라베어 꽃의 씨앗을 심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그러자 불시에 가족이 떠올라서 포티스의 마음이 아파졌다. 이런 아름다운 것도 봐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여기가 내 궁이다. 보여? 난 켈라베어를 좋아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포티스는 미카엘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미카엘은 성인인데도 별달리 주위의 눈을 신경 쓸 일이 적은 황족인 덕분에 여전히 솔직하게 말을 즉시 꺼내는 버릇이 있었고, 그런 부분이 포티스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포티스는 어린아이 같은 상대에게 약했다.
“네, 향기도 좋고…. 근사하게 가꾸셨어요.”
갈라진 목소리로 포티스가 대답하자 포티스를 안고 있던 미카엘이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너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많이 아파?”
미로 정원에서 일어난 일에 미카엘 본인도 가담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포티스는 괜찮다고, 작게 감사 인사를 했다. 운드는 조용히 둘의 곁을 따르고 있었는데, 행위 이후 피곤해진 터라 미카엘에게 차를 대접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미카엘의 궁에 오지 않으려 하고 또 그가 자신을 안아서 옮겨준다는 것도 불편했을 텐데, 놀랍게도 지금 포티스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미카엘이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고, 또 더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그런 강압적인 파티에서 빼내 준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포티스의 정신은 무척이나 지쳐있었고, 받아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으니 기대고 싶었다.
미카엘이 침대가 놓여있는 커다란 방에 도착했다. 창가와 입구에 놓인 보석으로 된 발이 햇살에 반짝이며 빛나고, 미카엘이 손으로 걷어내자 잘그락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그는 포티스를 침대에 눕히고는 시종을 부르려고 끈을 잡아당기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포티스는 황족 실론을 여럿 상대해 정액투성이였다. 이런 상태의 뮤를 돌보게 했다간 뮤와 섹스를 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브라우니를 불렀다. 미카엘은 뭐든지 직접 도와주려 하는 브라우니가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포티스를 위해 그런 마음을 꾹 참았다.
“브라우니, 포티스를 돌봐줘.”
“하지만…. 뮤인걸요, 주인님. 저희는 미카엘님과 파즈님만을 돌보도록 계약되어있어요.”
아마 진한 미드 향 덕분에 뮤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자 미카엘이 시종이 따라주던 차를 마시려다 말고 버럭 화를 내면서 잔을 브라우니 쪽으로 내던졌다. 일부러 발치에 던진 덕분에 맞지는 않았지만, 브라우니는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미카엘은 포티스가 곧 아이를 받아들일 것이고, 그럼 사면으로 인해 뮤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귀찮아진 나머지 짧게 일축해버렸다.
“시끄러워!”
“주인님….”
“안 하면 계약 파기야.”
“너무 한 거 아니야?”
운드가 간식으로 나온 체리와 크림이 얹어진 푸딩을 먹으면서 태평하게 말했다. 미카엘은 귀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두 황족을 번갈아 올려다보던 브라우니는 결국 고개를 푹 늘어트린 채 물수건과 약을 가지고 포티스를 돌봐주었다. 미카엘과 운드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포티스는 브라우니의 손이 다리 사이에 닿아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다. 수치조차 없어진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던 포티스는 브라우니가 건넨 튜니카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고 그저 침대에 엎드린 채로 눈을 감았다. 미카엘과 운드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만이 자신이 어디에 있고, 또 살아있다는 걸 이따금 알게 해주었다.
푸른색의 세이론 티를 나눠마시던 운드는 문득 포티스에게도 뭔가 마시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드는 포티스의 얼굴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미카엘이 포티스에게 깊은 흥미를 보인다는 걸 눈치채고 자신도 호의가 생긴 참이었다.
“포티스, 차를 좀 마시겠어?”
“아…. 감사합니다.”
포티스는 이 황족들이 베푸는 선의를 무엇 하나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그 대가로 섹스를 원한다면 그냥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포티스가 거절한다면 그저 거칠게 당할 뿐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포티스는 피곤한 상태였다.
운드가 받쳐주는 찻잔에 입을 대면서 포티스는 오랜만에 세이론 티를 마셨다. 해초 같은 풍부한 향이 나는 차에는 비타민이 많이 포함되어있었다. 차를 전부 마시자 운드가 기뻐하면서 포티스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다른 것도 먹을래?”
별로 식욕이 없다고 말하려던 포티스는 디아망 무늬가 선명한 두 쌍의 눈동자가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는 걸 보고서는 어쩐지 기대를 무너트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둘은 반려동물을 막 데려온 어린아이들처럼 기대에 차서 포티스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럼 부드러운 걸 먹을 수 있을까요? 젤리라든지….”
그러자 미카엘이 앉아있던 테이블에서 당장 일어나 초록색 젤리 접시를 든 채 포티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스푼으로 떠서 입속에 쏘옥 넣어주었다.
꿀에 절인 허브가 잔뜩 올라가서 좋은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라스 젤리였다. 포티스는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삼켰다. 성기로 목구멍이 쑤셔진 탓에 안쪽이 쓰라렸지만, 그래도 단맛이 기분 좋았다.
“이거…. 맛있어요.”
“그럼 더 가져오라고 할게.”
포티스가 말릴 틈도 없이 미카엘이 끈을 힘껏 당겨 종이 짤랑짤랑 울렸다. 시종이 들어오자 미카엘이 밝은 목소리로 그라스 젤리를 있는 대로 다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100개든 1000개든 없으면 만들어.”
시종은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미카엘에게 익숙한지, 정중하게 요리 엔지니어에게 부탁해보겠다고 말하고는 나가기 전에 깨진 찻잔을 정리했다.
“저…. 저, 그렇게 많이는 못 먹는데….”
포티스가 당황하며 시종 쪽을 힐끗 바라보자 미카엘이 포티스의 양 뺨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포티스는 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얼굴이 되었다.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에게 영양도 간다고.”
둘이 은근히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아이를 받아들일 몸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생기지도….”
“반드시 생겨! 내 아이가 생길 거야.”
“그의 아이를 받아들이면 포티스에게도 이로울걸. 좋은 가문이니까.”
운드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서 포티스는 아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차마 말하기가 힘들어서 미적미적 그라스 젤리를 떠먹었다.
“정말로 그라스 젤리를 1000개 만들라고 할까요?”
시종이 기회를 봐서 넌지시 물었다. 아마 당장 만들기 어려워서 그러는 것 같았는데, 미카엘이 귀찮아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만들어, 남으면 네가 먹어.”
포티스는 쩔쩔매면서 얼른 말을 거들었다.
“정말로, 그 정도로 많이 먹기는 힘들어요. 저는, 2개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20개로 하자.”
“알겠습니다, 미카엘님.”
시종이 안심한 얼굴로 그가 말을 번복할까 봐 서둘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포티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포티스가 다 먹은 접시를 들고 있자, 운드가 얼른 들어서 치워주고 다시 포티스 곁으로 다가왔다. 미카엘은 포티스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고양이처럼 착 달라붙어 있었다.
“……. 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며 미카엘을 내려다보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 몸은 나아졌어? 그럼 게임이라도 할까?”
“그게 아니라….”
“그러고 보니 미카, <뮤스티 일대기> 가지고 있어?”
운드가 기대에 차서 양손을 맞잡았다. 그것은 뮤가 되어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주사위와 말, 그리고 상황이 적힌 종이로 구성되어있었다. 주사위를 던져서 해당 칸에 도달하면 상황을 확인하고 책자에 적힌 글을 읽어 말의 운명을 정하는 게임이었다. 실론과 파즈가 가상으로 뮤가 되어보는 게임이므로 실론의 정액을 몇 번 받았다든지, 황족 실론의 눈에 띄었다든지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아, 그건 없어! 난 <고양이 세 마리가 빙빙 돈다>가 재밌던데.”
“…게임이요?”
뜻밖의 대답에 시종을 불러 주사위 게임을 가져오라고 시키던 미카엘이 고개를 기울였다.
“다른 게 하고 싶었어?”
“…섹스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저를 여기로 데려오셨으니까….”
그러자 운드가 깜짝 놀라면서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미카엘의 눈이 가느다랗게 되면서 씨익 웃었다.
“밝히는구나, 포티스.”
“아니에요, 그냥, 당연히….”
“아까 잔뜩 했잖아, 정액도 넣었는데, 아이가 잘 받아들여지길 기다려야지. 무턱대고 또 박고 싸진 않는다구.”
짐승처럼 날렵하게 포티스에게 달려들었던 미카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포티스는 한숨을 내쉬며 납득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근데 아쉬우니까, 뭐든 할까?”
“난 좋아, 포티스의 몸 따뜻하고 기분 좋거든.”
운드가 어느새 포티스의 통통한 배를 어루만지면서 옆구리를 살짝 깨물었다.
“좋은 냄새도 나고.”
“아….”
황족 실론이 둘이나 가까이 달라붙어 있다 보니 어느새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 든 상태였다. 포티스가 난감해하자, 미카엘이 재미있다는 듯이 포티스의 허리를 잡아 뒤로 푹 눕혔다.
“박지는 않을 거지만, 포티스가 원한다면 재밌게 해줄게.”
“…….”
포티스는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으로 눈을 살며시 감았다. 미카엘이 포티스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갖다 대더니 입구를 지그시 눌렀다. 저릿한 쾌감이 올라와서 포티스는 저항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였다.
“앗….”
미카엘이 지근지근 누를 때마다 안쪽이 자극되면서 체액이 뿜어져 나오고, 내벽이 옴죽이며 무릎에 닿은 연결부에서 쭈붑쭈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속옷의 레이스 부분은 젖어 들었고, 디아나 줄 역시 젖은 채로 피부를 파고들었다. 어깨를 감쌌던 픽트라 천은 천사의 날개처럼 포티스의 등에 가려져 있었다.
“후우….”
“포티스는 아이를 받아들이는 게 몇 번 째야?”
운드의 물음에 포티스는 신음을 살짝 참으면서 느릿하게 대답했다.
“생긴다면, 처음….”
“그래? 아직 우유는 나오지 않겠네.”
운드가 포티스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에 눕혀놓고는 손끝으로 드러난 부드러운 유두를 건드리면서 끝을 살짝 눌러 짜보았다. 만약 두 번째로 아이를 받아들였다면 받아들인 표가 나기도 전에 우유가 흘렀지만, 포티스에게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디아나 줄에 연결된 방울에서 딸랑딸랑하는 맑은소리가 울렸다. 운드가 유두를 집고 있는 집게를 살짝 풀었다가 다시 조이면서 자극을 주었다.
“가슴 감촉 기분 좋다….”
그리고 포티스의 가슴에 천천히 얼굴을 갖다 댔다. 간질간질한 금발이 유두에 닿고, 그에게선 황족 실론이 쓰는 질 좋은 코롱의 향이 풍겼다. 포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숨이 목에 걸린 듯이 헐떡이는 소리를 냈다. 미카엘이 무릎으로 다리 사이를 문지르자 찌덕찌덕한 소리가 들리면서 몸이 천천히 흔들렸다. 포티스는 무릎을 움츠리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하아, 으으응….”
쾌감이 몸을 진득하게 붙잡았다. 포티스는 멍하니 기분 좋은 감각을 느끼면서 미카엘의 무릎에 다리 사이가 문질러지도록 허리를 살살 흔들었다. 여러 실론의 성기를 받은 덕분에 입구와 내벽이 부드럽게 풀려있어서 미카엘이 살짝 누르기만 해도 안쪽이 따끈따끈하게 녹아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좋은 냄새.”
미카엘이 코를 씰룩이면서 포티스의 체액에서 나는 향을 들이마셨다. 운드 역시 포티스의 유두를 손바닥으로 살살 매만지거나 집게를 조여 괴롭히면서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하아, 으….”
이렇게 실론에게 고분고분하게 구는 것이 시스 황제가 바라는 일이었다. 포티스는 행위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않았지만, 시스 황제를 떠올린 순간에는 약간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더욱 운드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미카엘의 무릎에 허벅지를 맞대면서 쾌감에 집중했다.
미카엘의 야회복 아래는 어느새 부풀어있었는데, 열심히 욕구를 참고 있었다. 제멋대로인 고양이 같은 미카엘이라도 아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행위에는 진지했다.
“으읏…!”
입구가 문질러지고, 안쪽이 압박되는 감각에 포티스는 눈을 감고 절정을 느꼈다. 운드의 따뜻한 손바닥에 닿은 유두도 살짝 저릿저릿했다.
“후우….”
포티스가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하고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섹스를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건 미카엘도 마찬가지였는지, 포티스에게 뺨을 맞대 부비면서 그의 허리를 스윽 훑었다.
“기분 좋았어? 더 해줄까?”
“으응….”
그리고 가볍게 키스를 나누는데 회랑 쪽에서 어떤 소음이 들렸다. 미카엘과 운드는 개의치 않고 포티스의 몸을 마저 만지작거리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왜?”
미카엘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문이 열렸다. 시종은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나이트 오브 디아망의 기사인 니즈가 태평하게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황제의 물건을 되찾으러 왔어.”
미카엘이 격분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운드는 놀란 나머지 포티스를 끌어안았다.
“발칙한! 예를 갖추어라!”
그러자 니즈가 빙긋 웃으면서 품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길다란 리본으로 매듭지어진 끝에는 디아망 무늬가 화려한 은색 메달이 달려있었다.
“황제의 대리라는 증거, 내가 모시는 건 시스 황제이지 네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도 미카엘은 지지 않았다. 그가 끈을 잡아당겨 미친 듯이 종을 울렸다.
“다들 뭐 하고 있어, 저자를 잡아!”
“미카….”
운드가 미카엘을 진정시키려고 얼른 곁으로 다가갔지만, 미카엘은 펄펄 뛰면서 운드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는 동안 니즈는 날쌔게 침대에서 포티스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시간 낭비하지 않고 포티스를 데리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비켜, 운드!”
“황제 폐하의 대리인이야, 우리가 나서서는 안 돼….”
운드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며 말려도 미카엘은 얌전해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운드의 힘이 훨씬 강한 덕분에 미카엘은 붙잡힌 고양이처럼 버둥거릴 뿐이었다.
“놔! 다들 저자를 잡아!”
얼떨결에 불려온 시종들도 니즈를 알아보고는 미카엘의 지시를 따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록 자신들이 모시는 이가 황족이긴 했으나, 황제보다 높은 것은 아니었다.
“포티스!”
미카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뒤를 따라왔다. 포티스가 멍하니 돌아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니즈에게 부탁했다.
“잠시만 얘기를 하게 해줄래요?”
“뭐? 그새 친해졌어?”
“그건 아니지만….”
그러자 니즈는 휙 몸을 돌려 미카엘에게로 돌아갔다. 미카엘은 이제 자신을 붙잡은 운드의 팔을 깨물고 있었는데, 운드는 울상을 하면서도 그를 놓지 않고 있었다.
“정말 진정해, 미카엘.”
“포티스! 돌아왔구나!”
미카엘이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포티스는 차분하게 미카엘의 손을 잡아주었다. 발길질이 미카엘을 업고 있는 니즈에게로 날아왔지만, 그런 걸 얻어맞을 니즈는 아니었다.
“저는 이제 돌아가 봐야 해요…. 오늘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운드님도요.”
포티스가 꾸벅 인사를 했다. 미카엘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납득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멍하니 고개를 떨구었다.
“그라스 젤리를 먹으러 다시 올게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미카엘이 환하게 웃으면서 포티스의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운드는 계속해서 미카엘을 안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꼭 와야 해. 포티스가 좋아하는 거 뭐든 줄게!”
“나도 기다릴게, 포티스.”
운드가 겨우 마음을 놓으며 미카엘을 안은 팔에 힘을 뺐다. 그리고 시스 황제와 거의 비슷한 연보랏빛 눈동자에 상냥함을 담아 포티스에게 인사해주었다.
“네에, 꼭 올게요….”
포티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자 니즈는 이제 됐어? 라는 표정으로 포티스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포티스에게는 이제야 겨우 <토끼 사냥>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카엘과 운드는 포티스를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아예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니즈가 포티스를 부축하며 온통 은빛으로 빛나는 마차에 올랐다. 미노타 일족의 마부가 마차를 몰았다.
“후아….”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포티스가 좌석에 편안하게 기대자 니즈가 의아하게 포티스를 응시했다. 니즈의 안광이 거의 없는 푸른 눈동자에 석양이 선명하게 비쳤다.
“포포스, 잘 지냈어?”
포티스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저 웃어버렸다.
“그냥 항상 비슷했어요.”
그의 웃는 모습에 니즈는 걱정이 되었던지 포티스의 이마를 가만히 손으로 짚어보았다.
“황제가 또 못살게 굴었지?”
“그분의 마음을…. 전 모르겠어요.”
포티스가 자신 없이 말하는 걸 들으면서 니즈는 지금 이 화제를 꺼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지금 아니면 말할 기회는 또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있지, 포티스. 너희 아버지 소식을 들었어.”
물론 풍문 같은 걸로 알아낸 건 아니었다. 니즈는 니즈 나름대로 포티스의 가족들의 행방에 대해 유배되었다, 사망했다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떠도는 걸 신기하게 생각했기에 따로 조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뒷조사를 했다면 포티스가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무덤 위치라도 알아냈어요?”
포티스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니즈 쪽이 당황하고 말았다.
“…안 죽었거든?”
“그건 무슨 말이에요?”
단번에 포티스의 눈이 동그랗게 되며 니즈의 팔에 매달렸다.
“네 동생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함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미츠예요! 어디에서요? 확실한 건가요?”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들을 운송한 건 자유 시민이었어. 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사실이겠지.”
“…….”
포티스는 황제의 말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자유 시민의 말을 더 믿고 싶었다. 니즈가 포티스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가볼래? 먼 곳이지만, 직접 확인해도 나쁘지 않을 거야.”
“그치만, 저는….”
그러나 그렇게 말해놓고서는 니즈의 권유를 거절할 마땅한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포티스는 황족 실론과 하거나 귀족 실론과 하거나 더는 원하지 않는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게 시스 황제의 의지라는 것이 특별히 더 힘든 점이었다.
어째서 시스 황제와 니즈의 말이 다른 걸까? 가족에 대한 것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포티스는 황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비록 그것이 일시적이라 해도….
“…저, 떠나고 싶어요.”
결심을 굳힌 포티스가 그렇게 말하자 니즈가 빙긋 웃었다. 그는 포티스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걸 아직은 모르고 있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
“아니, 오늘 바로 떠나.”
“네?”
당황한 포티스가 화들짝 놀라자 니즈는 짓궂은 장난을 꾸미는 것처럼 히죽 웃었다.
“난 오늘 가고 싶어, 그럴 기분이 들었거든.”
“그럴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눈을 피해야 하니 새벽 나절에나 떠나겠지만 너도 준비 해둬, 데리러 갈게.”
니즈의 말은 무척이나 믿음직스럽게 들렸다. 포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와주세요, 니즈님.”
그렇게 말한 포티스가 겨우 희미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는데 문득 니즈는 포티스에게 키스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가 기대어 있는 게 좋았고, 입술을 맞대면 더 좋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다지 자주 느끼지 않는 성적 욕구인 탓에 니즈는 단지 이상하게만 여기고 욕구를 마음속에서 바깥으로 몰아내 버렸다.
‘갑자기 왜 이러지?’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포티스의 몸에서 짤랑짤랑하는 소리가 났다. 포티스의 가슴을 유심히 살펴보던 니즈가 디아나 줄을 살짝 건드렸다. 포티스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이거 빼줄까?”
“아….”
포티스는 자신이 음란한 차림이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젖어서 엉망으로 된 레이스 속옷 위로, 똑같이 젖어 든 하반신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제, 제가 할게요.”
그런데 포티스가 아무리 애써도 유두를 집고 있는 집게를 풀 수가 없었다.
“그거 아마, 뮤 혼자서는 벗을 수 없다던가? 그런 옷 아니야?”
“그런 것도 있어요?”
허탈해진 포티스가 팔을 축 늘어트리자 니즈가 유두 집게를 건드렸다.
“아마도. 있다던데, 난 잘 모르지만.”
“앗….”
놀랍게도 니즈의 손이 닿자 유두 집게는 간단히 떼어낼 수 있었다. 디아나 줄로 연결된 고리도, 니즈가 찾아 풀어주었다. 포티스가 가만히 가슴을 만져보니 오랫동안 집게에 집혀있던 탓에 유두가 부풀고 아팠다.
“쓰라려요….”
“그럴 것 같아, 이건 고문 기구인가?”
그렇게 말하면서 니즈가 창문 밖으로 유두 집게와 방울을 휙 내던져버렸다. 그걸 보고 포티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냥, 버리니까 좋아서요. 입기 싫었거든요.”
“속옷도 버려줄까?”
그 말에 포티스가 살며시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저었다. 있으나 마나 한 속옷이었지만 적어도 조금은 가려졌으므로 입고 있는 편이 나았다.
“제가 완전히 알몸이 되어도 괜찮아요?”
“으음 조금 곤란할지도…. 뭔가 냄새도 많이 나는데.”
니즈가 코를 씰룩였다. 미드 같은 체액 향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도 웃겨서 포티스는 설명을 해주었다. 니즈는 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 같았다.
“제가 발정기라서 조금…. 많이 풍기는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있구나, 힘들진 않아?”
“약간….”
니즈는 그제서야 입을 맞추고 싶었던 욕구가 자연스레 생긴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납득했다. 포티스가 발정기라면, 실론으로서 성적으로 끌리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차가 제1궁에 도착했다. 니즈는 새벽에 데리러 올 테니, 2시가 되면 정원으로 나오라고 말해두었다. 포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니즈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려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런 결심을 하고 제1궁으로 들어서자 마음이 무척 떨렸다. 포티스는 시스 황제가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조용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회랑을 따라 침실에 갔을 때, 시스 황제는 거기에 없었다. 이대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건 어려웠다. 포티스는 시스 황제를 만나고서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라우니를 불렀다.
“오셨어요, 포티스님.”
브라우니는 언제나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포티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포티스가 거의 헐벗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뮤가 입는 튜니카와 굽이 낮은 샌들을 꺼내주었다.
“아….”
포티스는 브라우니의 친절에 기분이 약간 나아지는 걸 느꼈다. 브라우니는 포티스에게 튜니카를 입혀주고 몸을 조이고 있는 레이스와 디아나 줄이 달린 속옷을 벗을 때도 매듭을 푸는 걸 도와주기까지 했다.
“휴우…. 고마워.”
“여기 발정기용 속옷도 준비해뒀어요. 그런데 상처를 돌보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브라우니가 주머니를 뒤적여 납작한 디아나 케이스에 들어있는 약을 꺼내주었다. 포티스는 그것도 받으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는 다른 실론들과 섹스를 하지 않을 거니까, 자연적으로 낫게 해두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괜찮아…. 심하지 않거든.”
사실 당할 때는 아픔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구멍과 턱이 아파왔고 입구나 내벽의 쓰라림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포티스는 애써 웃어 보였다.
‘난 오늘 떠날 거니까.’
그러자 브라우니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여서 포티스는 얼른 끈처럼 긴 발정기용 속옷을 몸에 감았다.
“브라우니….”
브라우니가 다시 약을 건네려 하자 포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망설이듯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황제 폐하가 지금 궁에 계시니?”
“그럼요, 요즘 밤에는 항상 있으세요.”
“원래는 잘 오지 않으시기도 했어?”
“그렇지요, 포티스님이 오신 뒤로는 언제나 계신답니다.”
순간 할 말을 잃은 포티스가 입을 열었다가 살며시 다물었다. 그리고는 생각을 환기하려고 머리를 가볍게 저은 다음 브라우니를 응시했다.
“황제 폐하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래? 장소를 알려 주면 내가 찾아갈게.”
“아까까지는 정원의 정자에 계셨어요, 포티스님이 혼자 가기는 어려우니 제가 동행할게요.”
정원의 크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또 저번처럼 말도 안 되는 샛길로 빠져 본궁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다. 포티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브라우니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산책로를 걸어 정자에 도착하자 포티스는 점점 저녁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오후의 햇살이 기울어지고, 마지막 남은 생명력 같은 짙은 석양이 풍경에 덧씌워졌다.
‘오늘…. 조금 덥다.’
아직 긴 여름의 하루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포티스가 대연회에서 정신을 잃고 깨어났을 때는 분명 여름의 시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성하고 다양한 품종의 장미 넝쿨을 지나 정자에 도착하자 시스 황제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포티스는 브라우니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여기까지만 와주면 돼. 고마워, 브라우니.”
브라우니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항상 그렇듯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포티스는 얌전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포티스는 자신이 떠난 이상, 남은 삶에서 그와의 접점이 없다고 느꼈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그만큼 자신을 향한 시스 황제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포티스는 확신이 없었다.
‘꼭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야….’
그렇게 보면 귀엽기도 했지만, 그가 자신에게 준 고통들은 그렇지 않았다. 포티스가 가능한 한 조용히 걸었는데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시스 황제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딱 마주쳤고, 포티스는 몸이 뜨거워진다고 생각했다.
‘발정기라서….’
포티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자신이 더 가까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받으면서 다가가면, 시스 황제가 포티스를 향해 자신의 허벅지를 툭 건드려 보였다. 거기에 앉으라는 의미 같아, 포티스는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날카로운 통증이 뱃속을 타고 흘렀다.
“윽….”
포티스가 움찔거리며 몸을 굽히자 시스 황제의 손길이 등에 닿았다. 포티스는 그가 자신을 안아주면 좋겠다고 무심코 생각하고 말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포티스의 볼록한 배를 만져보고 손을 미끄러트려 다리 사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의 무심한 손길에 반응하는 몸이 싫었다. 그래서 조그맣게나마 항의했다.
“싫…. 어요, 밖에서는….”
“보는 이가 없는데도?”
그렇게 말한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의견을 묵살하려는 것처럼 그를 정자에 확 눕히고 다리를 잡아 들었다.
“읏….”
“…….”
시스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포티스의 발정기용 속옷을 벗겨냈다. 포티스가 몸을 가늘게 떨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속옷 아래로 드러난 입구는 엉망진창이었는데, 희미하게 피가 배어 나와 체액과 함께 속옷을 적시고 있었다. 몇십 번이나 굵은 성기를 받아들인 입구는 발갛게 달아올라 한눈에 보아도 부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스 황제가 입구 끝을 살짝 누르자 구멍이 벌어지면서 맑은 체액이 툭툭 흘러내리고, 미드 향이 확 풍겼다.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네.”
시스 황제가 고개를 숙여 디아망 마크에 입맞춤을 했다. 포티스는 기운이 쭉 빠진 채로 열이 올라 저항은 무리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아무래도 좋아…. 마지막이니까 황제 폐하 마음대로….’
포티스는 자신이 정자에 오기 전까지도 그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기대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포티스가 원하는 건 항상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둘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포티스가 몸의 힘을 푸는 것을 느꼈는지,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자신의 몸에 가두듯이 끌어안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순순히 혀를 내밀면서 포티스는 천천히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바로 눈앞에 시스 황제의 얼굴이 있었다. 포티스는 눈을 깜박이면서 이렇게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스 황제의 키스는 포티스가 고개를 살짝 들 만큼 평소보다 부드러운 키스였다. 호흡도 빼앗지 않고, 포티스가 충분히 숨을 쉴 수 있도록 틈을 주었다.
“으응….”
시스 황제의 손이 포티스의 가슴에 머무르며 천천히 움켜쥐었다가 살짝 누르면서 애무했다. 손끝이 유두를 살짝 누르다가 호선을 그리며 문질렀다. 그러자 뱃속이 순간 화끈하게 달아오르면서 포티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귀여워.’
통통한 배를 지그시 눌렀다가 허벅지 사이로 들어가면 발정기의 체액으로 축축한 입구가 손끝에 닿았다. 시스 황제는 동물처럼 쉽게 흥분하고, 체액을 흘려대는 포티스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포티스가 다른 실론들과 관계를 하는 것도 모두 시스 황제의 허락하에 이루어진 행위였다.
시스 황제는 잠시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문장을 생각해내려 했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포티스가 귀엽고, 사랑스럽고, 너무나 좋다고 말해야 하는데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까? 분명 있을 테지만, 시스 황제로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어휘여서 곧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상관없겠지, 몸을 귀여워하면 되니까.’
시스 황제의 손길이 질척질척한 체액이 흘러나와있는 입구 주위를 살살 매만지고 뼈가 단단한 가운데 손가락을 스윽 밀어 넣었다.
“…아!”
포티스가 순간 허리를 휘면서 움찔거렸다. 내벽을 약간 휘적인 것만으로도 안쪽의 상처가 헤집어져서 체액에 피가 섞였다. 시스 황제는 안쪽을 지근지근 누르거나 손가락을 늘려 성기가 드나들 듯이 살짝 찔러주었다.
몸이 들뜨고 열기가 감돌았지만, 포티스의 마음은 여전히 단단히 닫힌 상태였다.
“읏….”
포티스가 뜨거운 숨을 헐떡이며 내뱉자,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포티스를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잘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언젠가 전부 알 수 있을 거야.”
‘무엇을요…?’
그러나 물어도 그가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포티스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기로 결심한 마당에 그가 이렇게 상냥하게 대하는 게 약간 마음이 아팠다. 그가 조금만 더 다정하게 군다면, 지금까지처럼 다시 포기하고 그의 의지대로 살게 될 것만 같았다.
‘안돼….’
하지만 그런다면 포티스는 자신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포티스는 아버지와 미츠에 관한 진상을 확실히 알고 싶었다.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것이 무덤이든, 혹은 정말로 살아있는 가족들이든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더는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 말고, 그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섹스를 했으면 좋겠다고, 약간은 괴로워하면서 생각했다.
“후우….”
포티스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허리를 살짝 흔들어 시스 황제의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자, 찔걱찔걱하는 젖은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을 본 시스 황제는 순간 기분 좋은 강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엉망이 되어서도 자신을 원하는 게 즐거웠다.
“유혹할 줄 알게 됐군.”
“……. 다른 실론들하고 많이 했으니까요….”
그 말에 시스 황제가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 안기면서 내 생각도 했나.”
갑자기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어진 포티스가 눈을 깜박였다.
“…조금. 하지만 보통은 정신이 없으니까, 섹스 생각밖에 하지 못해요.”
“네 주인을 잊을 정도로?”
“…매일 매일 안아주시지 않으면, 잊을지도 몰라요.”
“그래.”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엉덩이를 매만지고는 정장 튜니카를 걷어 성기를 꺼냈다. 매끈한 성기는 아직 발기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대로도 충분히 묵직한 크기였다.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내려다보며 지시했다.
“만져 봐.”
“네에.”
포티스는 손을 내밀어 그의 성기를 감싸 쥐었다. 입으로라면 기분 좋게 세울 수 있었지만, 손으로 하는 건 서툴러서 어색하게 받쳐 잡고 쓸어주었다. 고환을 주무르면서 기둥을 매만지자 따끈한 성기의 감촉이 느껴졌다. 민감한 귀두를 지나 요도를 엄지로 둥글게 문지르자 성기가 한층 커졌고, 조금 지나자 미끈미끈한 체액이 흘러나왔다.
“잘했어.”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손목을 잡아 성기에서 떼어내고 입구에 성기를 맞추어 갖다 댔다. 포티스는 압박감에 대비해 심호흡을 해 몸을 풀었는데, 성기가 바로 늘어오지 않고 체액을 문지르면서 입구를 애무하듯이 앞뒤로 움직였다. 들어올 듯 말 듯한 그 감각에 포티스의 몸이 살짝 떨렸다.
‘어째서 지금에서야…. 이렇게 다정하신 걸까.’
포티스는 안타까운 기분을 느끼면서 허리를 약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입구를 묵직하게 누르며 움직이던 성기가 미끄러지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성기는 귀두 끝만 박히고 전부 한 번에 들어가지 못해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엉덩이를 받쳐 잡고 욱여넣듯이 밀어 넣어야만 했다.
포티스는 입술을 깨물면서 신음을 참았지만, 시스 황제와 관계하면 늘 그랬듯이 얼마 가지 못했다.
“후윽….”
포티스가 한숨을 내쉬자 단단한 성기가 미끈거리는 내벽을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 포티스는 눈을 감으면서 감각을 조금이라도 무뎌지게 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생생하게 성기의 힘줄이 느껴졌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안쪽 어딘가가 이상하게 아파왔는데, 포티스는 내색하지 않고 성기를 받아들였다.
“으응, 앗….”
느릿한 신음이 후덥지근한 정원에 작게 울리고,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다. 그의 손이 아무것도 쥐지 않고 무방비하게 늘어져 있는 포티스의 손을 겹쳐 잡았다. 그리고 바싹 몰아붙이며 허리를 움직이자, 포티스는 엉덩이가 약간 들린 채로 성기가 내벽의 아프고 기분 좋은 곳을 찌르는 느낌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앗, 아…. 하아….”
포티스가 헐떡이며 시스 황제의 움직임에 맞춰 엇갈리도록 엉덩이를 흔들자 그가 포티스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으며 밀착했다. 포티스는 그의 무게에 잠시 숨이 막혔지만, 이내 그의 등에 팔을 둘렀다.
단단히 맞붙은 연결부에서 찔걱찔걱 하고 젖은 소리가 들렸다. 시스 황제는 조금 거칠게 안을 휘적였다가 다시 은근하게 포티스가 좋아하는 부근을 건드렸고 한참 기분이 좋을 때쯤 강하게 박아넣었다. 그가 거듭해서 움직일수록 쾌감이 터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상승했다.
“하윽, 아…!”
견딜 수 없어진 포티스가 몸을 들썩이자 시스 황제는 그가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힘껏 안고 깊이 박아 넣은 채로 정액을 배출했다. 포티스가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정액을 흡수하기 위해 내벽이 벌름거렸다.
“으읏…!”
시스 황제의 사정으로 인해 내벽에 정액이 닿자, 포티스는 즉시 절정에 달했다. 그는 긴 여운을 시스 황자를 꽉 안으면서 견뎌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때처럼 행복하고 이대로 있고 싶다는 감정이 넘쳐흐르지 않고, 쓸쓸하고 허망한 기분만 들었다. 분명 시스 황제와 관계를 하고 있었지만, 둘은 몸만 겹쳤을 뿐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황제 폐하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안다 해도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체념이 든 상태였다. 그와 함께 있으려면 자신을 포함해 모든 걸 포기하던지, 아니면 시스 황제가 태도를 바꾸던지 두 가지밖에 방법이 없었다.
“후우, 하아….”
포티스의 거친 호흡이 서서히 가라앉자 시스 황제는 그때까지 빼내지 않고 있던 성기를 꺼냈다. 두터운 성기에 내벽이 살짝 딸려 나갔다. 시스 황제가 손끝으로 밀려 나온 입구를 원래 자리로 돌려 넣어주었다. 시스 황제는 별로 땀을 흘리지 않았는데, 포티스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열이 점점 오르고 있었고, 행위가 끝났는데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시스 황제가 가만히 포티스의 이마를 짚었다. 포티스는 눈을 깜박이면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오늘 기분은 어때.”
“…평소와 같아요….”
“사면을 받은 후에는 뭘 하고 싶어?”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기 힘겨웠다.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다고 그렇게 되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섹스의 여운으로 깊이 생각을 하기도 어려웠다.
“……. 지금하고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면받은 뮤의 삶에 대해 알려준 이는 없었다. 그러나 시스 황제는 그 대답에 만족했는지 포티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입을 맞추었다. 피부에 닿는 입술에 포티스가 살짝 몸을 떨었다.
“돌아가서 쉬도록 하자. 무리해서는 안 되니까.”
아마도 미카엘 일행을 따라 정원을 이탈한 일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토끼 사냥> 장소에 남아있었으면 더 험한 일을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포티스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시스 황제는 황궁으로 돌아와서 브라우니에게 포티스가 몸을 치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직접 그의 몸을 씻기고 약을 발라주었다. 또 저녁 식사도 함께하고 싶어 했지만, 포티스는 계속 열이 있었으므로 바스트라를 으깨어 만든 죽과 작고 새콤한 열매가 모여있는 율라 열매로 식사를 대신하게 했다. 율라 열매는 포티스가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로 오래간만에 맛본 것이었다. 보석처럼 투명한 작은 열매 중 하나를 집어 불빛에 비춰보면서, 포티스는 시스 황제가 끼워준 디아나 반지를 살펴보았다. 반지는 처음 받았을 때처럼 차갑고, 디아망의 광채가 아름다웠다.
포티스의 심란한 마음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율라 열매를 입에 한 알 넣으면서 포티스는 그래도 삶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섹스만 하고 지낼 순 없었다. 좀 더 빨리 아버지와 미츠를 찾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지만, 곧 고개를 저어 생각을 흩트려버렸다.
‘황제 폐하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있는 때가 올까….’
둘은 서로 너무 달랐고, 알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포티스는 어떤 기적이라도 생긴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의 마음이 통하면서,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애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식사를 마친 시스 황제가 침실로 들어왔다. 겨우 해가 지고, 감청색 하늘이 내려온 참이라 주위는 아직 밝았다. 잠깐의 무더위가 스쳐 간 감미로운 순간이었다.
포티스에게 다가간 시스 황제는 그의 뺨을 가만히 매만져보았다. 포티스가 계속 자신의 곁에 있겠다고 했으므로, 그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역경을 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증표라는 것을 포티스가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시스 황제는 그날을 여전히 잊지 않았다.
“…….”
시스 황제가 포티스에게 조용하게 말을 건넸지만, 그는 쌔근새근 잠든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