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6)

18

포티스는 졸린 눈으로 비틀비틀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샤토드네쥬의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더니 급격히 졸음이 쏟아졌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버지가 언급했던 ‘그 일’에 대한 것도 깜박 잊고 말았다.

브라우니가 급하게 난방 설비를 도와준 방은 니즈와 포티스가 함께 사용하기로 되어있었다.

“너무 졸려요….”

포티스가 작게 중얼거리면서 침대에 눕고 보니, 옆에 있는 침대에는 이미 니즈가 깊은 잠에 빠져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배지에 준비된 침구들이라고는 해도 침낭을 깔고 흙바닥에서 잘 때에 비하면 충분히 푹신푹신해서 포티스는 이불에 푹 파묻히는 감촉을 즐겼다.

식사 시간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머리가 점점 묵직해져서 파랗고 하얀 젤리가 들어있는 음료가 무척 맛있었다는 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어….’

포티스는 눈을 감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면서, 저번에 꿨던 꿈을 이어서 꾸게 되었다. 저번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주위를 둘러보자 멀지 않은 곳에서 시스 황제의 뒷모습이 보였다. 포티스는 꿈이나 현실이라는 자각도 없이 살며시 웃고서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가 돌아보면서 포티스의 머리카락에 손을 얹어놓았다.

“보고 싶었어요.”

“…이건 꿈이지.”

“꿈이에요?”

포티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되묻자 시스 황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포티스가 손을 뻗어 그의 은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자 그가 포티스의 손을 잡고 손등에 키스했다.

“그래, 꿈.”

“꿈이어도 저는… 아니, 꿈이니까 오히려 좋을지도요.”

어쩐지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황제 폐하가 저만을 봐주시잖아요.”

말해놓고도 대담하다고 생각해 포티스가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는데, 시스 황제는 그저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난 항상 너만 보고 있어.”

그러면서 포티스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엄지로 입술을 건드려 벌리게 하더니 혀를 넣으며 키스했다. 포티스는 몸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꿈인데도 그의 목소리나 감촉이 지나치게 생생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 얹었다.

‘아… 저번처럼, 하게 되는구나….’

현실에서 그와 얽힌 힘든 일들은 어쩐지 전혀 떠오르지 않으면서도, 그와 먼젓번에 섹스를 했었다는 사실만은 떠올라서 포티스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혀가 몇 번이나 뒤얽히고, 서로의 타액이 섞이면서 연거푸 작게 젖은 소리가 들렸다. 키스만으로도 어깨가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려 입술이 떨어졌을 때 포티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의 가슴에 기대야만 했다.

“하아, 후우….”

하지만 곧 그가 자신의 턱 끝을 들어 올려 다시금 입을 맞추어왔으므로 포티스는 눈을 감고 기쁘게 응했다.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단둘이서 할 것이라고는 어쩌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눕히고는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포티스의 전신에서는 은은한 미드 향이 풍겼고, 목을 깨물자 고개를 젖히면서 가볍게 신음했다.

“앗….”

아픈 것인지 기분 좋은 것인지 정확히 분간할 수 없는 신음이었다. 실제로도 포티스는 아픔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닿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다리를 벌려 잡던 시스 황제는 포티스가 울면서 손등으로 눈가를 가리자, 마음이 쓰였는지 가만히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죄… 죄송해요, 그냥, 눈물이… 갑자기 나와서….”

“괜찮아.”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눈가에 입술을 대고 눈물을 빨아들였다. 포티스는 가슴 속에 넘치는 행복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그가 삽입하기 편안하도록 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쉽게 다리가 벌려지면서 몸 안쪽으로 뜨거운 성기가 밀려 들어왔다.

“읏….”

두세 번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몸에 단숨에 열기가 감돌았고, 쾌감이 팟팟 튀어 올랐다. 포티스는 허리를 비틀면서 신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다가 기분 좋아하는 곳을 성기가 스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을 벌리고 타액을 떨어트렸다.

“하앗…!”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허리를 움켜쥐면서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고, 그때마다 포티스는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몸 안 깊이 퍼지는 쾌감에 손을 움츠렸다.

“윽….”

포티스는 울먹이면서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허리를 감쌌다. 연결부는 이미 흥건해진 상태로 부드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기분, 좋아….’

그렇게 느낀 순간 뜨거운 정액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포티스가 발끝을 움츠리며 정액으로 인한 쾌감에 몸부림쳤다.

“읏…! 아….”

안타까운 신음이 흘러나오는 입에 시스 황제의 입술이 다시금 겹쳐졌다. 포티스는 혼미해진 상태로 그의 체온을 느끼면서 헐떡였다.

그렇게 몇 차례 몸을 겹칠수록 현실에 있는 포티스의 몸도 반응해서 저절로 끙끙거리는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고, 다리 사이도 점점 젖어 들었다.

“으응….”

아침이 될 때까지 포티스가 꿈에서 시스 황제와 섹스를 한 건 거의 아홉 번이나 되었다. 꿈이니까, 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거의 매일 같이 비슷한 장소에서 그와 섹스를 나누는 꿈을 꾸다 보니 포티스는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내가 이렇게 밝혔었나….’

포티스가 이불을 들치고 일어난 채로 조심스럽게 축축한 바지를 살피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니즈님?”

포티스가 침대에서 내려가 다가가면 니즈는 새빨간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당황한 포티스가 그의 이마에 손을 얹으면 마치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세상에, 괜찮으세요, 니즈님?”

“으응….”

하지만 그것은 의식적으로 알아듣고 하는 대답 같지가 않았다. 포티스는 당황하면서 짐가방을 뒤졌지만, 고열이 있을 때 먹어야 하는 약은 들어있지 않았다. 몇 종류 포티스가 용도를 알지 못하는 약이 있었지만, 니즈에게 묻기도 어려웠고, 함부로 먹일 수도 없었다.

‘어쩌지….’

포티스는 누구의 도움이든 받고 싶어서 서둘러 방을 빠져나와 높다란 천장이 있는 복도를 달려갔다. 응접실에는 미츠와 아우라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포티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형, 피곤하지 않아? 더 자도 되는데….”

“그게, 같이 오신 분이 아파서… 니즈님이 열이 펄펄 끓어.”

그러자 둘은 즉시 의자에서 일어나 포티스와 함께 니즈를 살펴보러 갔다.

“브라우니!”

그러자 어디선가 간소한 복장을 한 브라우니가 나타나 셋의 곁에 섰다.

“부르셨어요, 주인님.”

“이분을 살펴봐 줘.”

엔지니어가 없는 이상, 병의 판단을 브라우니에게 맡겨야 하는 점이 아쉬웠지만, 오랫동안 실론과 파즈를 돌보면서 살아온 브라우니는 나름대로 지식이 해박했다. 브라우니는 니즈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감기입니다.”

“아….”

포티스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원에서 그렇게 눈발을 맞으며 날 듯이 누비고 다녔으니 감기가 걸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약이 필요할 것 같은데.”

미츠가 브라우니를 바라보자 브라우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어요, 유리 백합이 있다면 열을 내리는 게 훨씬 수월했을 텐데요.”

“응? 혹시 이 근방에 자생하는 거라면, 내가 가져올 수 있어.”

“하지만 형, 여긴 낮에도 마물이 나와.”

“그… 그건 알아, 하지만 어떻게든….”

아우라가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손을 입가에 대고 포티스를 긍정해주었다.

“가까운 곳에 유리 백합의 군락지가 있을 거예요, 제가 지도에서 보았으니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러나 미츠는 포티스를 혼자 보내는 게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아우라가 살며시 미츠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바로 성 주변에 있어요, 성 옆에는 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아시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가야죠.”

니즈는 이곳까지 오는 여정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준 상대였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빨리 낫게 해주고 싶었다.

아우라가 포티스에게 지도를 건네며 대강의 위치를 표시해주었다. 어차피 샤토드네쥬에서 나갈 수 있는 이들은 없었으므로, 무용지물이라 생각하여 도서관에서 대강 읽고 치워두어서 정확한 지도는 아니라고 아우라는 말했지만, 포티스는 샤토드네쥬의 주변을 조금 둘러봐도 될 것 같으니 괜찮다고 거듭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형, 조심해!”

포티스가 샤토드네쥬에 구비된 털모자와 코트를 입은 채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샤토드네쥬의 성문에서 포티스를 배웅했다.

포티스는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시기 전에 돌아오고 싶었다. 이제 샤토드네쥬에 머문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자신이 위험하게도 혼자 밖에 나갔다고 하면 아무리 니즈를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깜짝 놀라실 게 틀림없었다.

포티스는 부지런히 주위를 살피며 지도를 펼쳐 들었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불어 옷가지며 종이가 펄럭였고, 포티스의 뺨이 차갑고 붉어졌다. 눈보라 덕분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샤토드네쥬에서 나온 입구를 기점으로 포티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유리 백합은 언덕에서 잘 자란다고….’

따뜻한 발열석이 포티스의 몸에 열기를 주고 있었다. 포티스는 주위를 살피면서 비탈져 있는 길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고, 기뻐하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빽빽한 나무에 둘러싸인 샤토드네쥬의 성이 내려다보였다.

지도에는 유리 백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그려져 있었는데, 보석꽃과 비슷한 그 꽃은 분명 표면이 가느다랗고 반짝일 것이었다. 그러나 해조차도 가려진 날씨에 포티스는 부지런히 앞이나 옆을 살펴봤지만, 유리 백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침착하게… 분명 이 부근에 있을 테니까.’

포티스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눈더미를 헤집어 보는 데에 집중한 사이, 언덕 끝에서 어두운 형체가 아른거렸다. 그것은 2m가 넘는 크기의 반인반수인 이예티로 코를 씰룩이면서 부드러운 미드향이 어디에서 풍기는지 찾고 있었다.

“냄새가 나….”

뮤의 체향은 마물에게는 암컷과 같게 느껴졌다. 그들은 상대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다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특히 이예티처럼 반인반수인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이예티는 눈보라 속에서도 포티스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바람 소리 탓에 아무것도 듣지 못한 포티스는 이예티가 거의 코앞에 왔을 때가 되어서야 알아차렸다.

“……!”

파랗게 질려 깜짝 놀란 포티스가 벌떡 일어나면서 곧장 등을 보이며 달려가려 했지만, 이예티가 그대로 도약하여 포티스를 찍어눌렀다.

“윽…!”

묵직한 무게에 팔 어딘가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포티스는 아픔을 꽉 참으면서 이예티의 몸 아래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는데, 포티스의 털옷은 이예티의 거친 손길에 의해 금방 아랫도리가 찢겨나가고 엉덩이가 드러났다. 이예티는 포티스를 발톱이 비죽비죽한 발로 내리누르고 포티스의 다리 사이의 냄새를 맡았다. 분명 아이를 밴 암컷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예티의 몸속에서 욕정이 솟구쳤다. 따뜻한 내벽을 기대하며, 이예티는 부숭부숭하고 거친 털 사이로 벌겋게 발기된 성기를 포티스의 몸에 찔러넣었다.

“하…앗…!”

아픔만이 느껴졌다. 포티스는 처음 보는 이 마물에게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힘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는 데다 잡아 먹힐까 봐 너무 두려웠다.

‘아…. 아이도 있는데….’

하지만 곧 이예티가 자신의 몸에 찔러 넣은 게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아닌 성기라는 사실을, 몸의 흔들림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에, 또 이런….’

포티스는 무력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배를 보호하려고 몸을 비틀었다. 이예티의 무게는 육중했고, 그에게 눌려있자니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안쪽이 후벼 파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이어졌다. 표면에 돌기가 돋아나 있는 이예티의 울퉁불퉁한 성기는, 내벽에 상처를 내는 동시에 돌기에서 분출되는 기분이 좋아지는 체액으로 암컷을 흥분하게 만든다. 포티스는 엄밀히 이종이지만, 이예티의 체액은 엔지니어가 다루는 재료 중의 하나로 포티스와 같은 뮤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아파….’

이예티의 주의를 끌까 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아픔을 참던 포티스는, 몸 안으로 퍼지는 이상한 감각에 몸을 흠칫 떨었다. 이예티의 체액이 내벽의 상처를 타고 들어간 탓이었다.

“윽….”

포티스가 참으면서 작게 끙끙거리자, 이예티는 암컷이 흥분했다고 생각하고 허리를 더욱 거칠게 흔들었다. 커다란 이예티에게 덮쳐진 포티스의 하반신이 멋대로 들썩였다. 마치 성기가 내벽을 긁고 드나드는 것 같았다. 실제로 포티스의 좁은 내벽이 성기에 걸려 안쪽의 살이 딸려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했다. 하지만 이제 포티스는 아픔 따윈 아무래도 좋게 느껴졌다. 체액과 성기가 주는 강제적인 쾌감으로 인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눈밭에 누워있었지만, 추위도 느끼지 않을뿐더러 뜨거운 땀을 방울방울 흘렸다.

“하아, 아아… 윽, 아아….”

어느새 입에서 달콤하게 들뜬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안을 후비는 것 같은 감각도, 이예티의 짐승 냄새가 풍기는 털도, 포티스는 기분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워서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아, 싫… 싫어….”

포티스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흥분한 이예티가 낮게 울부짖으면서 성기를 규칙적으로 박아넣었다. 커다란 성기가 안으로 꽂히듯 들어올 때마다 점점 더 이예티를 원하게 되어, 포티스의 긴장되었던 허리와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하앗, 아… 윽…!”

포티스는 끙끙거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려 했지만, 눈앞에는 이예티의 거대한 가슴팍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마물의 싸늘한 눈과 마주치자, 가만히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물은 포티스가 체념을 했다는 걸 어떻게 느꼈는지, 더 마음껏 깊숙이 성기를 박아댔다.

“윽, 하….”

입김이 눈앞에서 새하얗게 흩어졌다. 포티스는 다시 눈을 뜰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볼록하게 나온 배가 무색하게도 이예티의 성기가 드나들자 배가 한층 더 부푼 것처럼 보였다. 돌기에 쓸린 내벽에서 피가 엉덩이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윽…!”

이예티의 짙은 체액으로 인해 가만히 누워있는데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이렇게 지독하고 절망적인 쾌감은 뮤가 된 이래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수치심도 솟구쳐서, 포티스는 입을 벌리고 헉헉거리면서도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트렸다.

마물의 호흡도 점점 거칠어지고, 힘껏 내벽에 성기를 쑤시는가 싶더니 뜨거운 정액을 울컥울컥 주입하듯 쏟아냈다. 이제 이다음은 꼼짝없이 마물에게 잡아 먹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예티의 성기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몸을 압박하고 있던 무게도 사라졌다.

‘설마… 설마…?’

이예티에게 죽은 척이 통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포티스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예티가 육중한 발을 옮겨 저편으로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포티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냥 가고 있어…!’

하지만 포티스는 이예티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전에는 감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얼굴이 창백해진 데다 옷도 엉망이라 무척이나 추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혹시 무리를 부르러 간 거면 어쩌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몸이 저절로 일으켜졌다. 그랬다간 이번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눈밭에서 몸을 털며 일으키자, 새하얀 눈에 자신이 흘린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아직까지 별다른 통증은 느끼지 못했지만, 아이가 무사할지 걱정이 되었다.

‘유리 백합을 찾아야 하는데….’

포티스는 망설였다. 피부가 드러난 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포티스는 조금만 더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예티 무리가 찾아올지도 모르니 오래 머물 순 없었다.

한참 동안 눈 속을 헤집던 포티스는, 결국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몸이 너무나 싸늘해지고 있었고, 자신이 여기서 쓰러지거나 더 다칠 경우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포티스는 절뚝이며 눈 위에 피를 점점이 뿌리고 천천히 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다행히 발열석이 아직 따뜻하고, 아래쪽으로 샤토드네쥬가 보여서 크게 길을 헤맬 염려는 없었다.

샤토드네쥬의 입구에서 포티스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미츠는 포티스가 엉망이 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부축하러 달려 나왔다. 그가 털옷을 벗어 포티스에게 덮어주었다.

“형,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그… 그게, 그냥 조금 사정이 있어서….”

차마 마물이 뮤의 몸을 탐낸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포티스는 미츠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내가 다쳤다는 건 아버지께는 비밀로 해줘.”

“하지만….”

“부탁이야, 미츠야.”

미츠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포티스를 부축해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실내는 밖보다는 따뜻했고, 미츠는 포티스를 바로 응접실로 안내했다.

“안돼, 아버지가 오시면….”

“지금은 도서관에 계실 시간이야. 여기서는 쭈욱 그렇게 시간을 보내시거든….”

타오르는 발열석을 곁에 두고 소파에 앉고 나서야 겨우 몸이 얼어붙은 나무처럼 뻣뻣하다는 걸 깨달았다. 미츠가 포티스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동상에 걸렸을지도 몰라.”

“괜, 괜찮을 거야….”

“그보다 다리 안쪽의 상처가 심한데.”

보이지 않으려고 해도 피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포티스는 깜짝 놀라면서 털옷을 끌어당겼다.

“브라우니를 불러주면, 도움을 받을게.”

그런데 아우라가 응접실로 들어오다가 깜짝 놀라 둘을 바라보았다.

“다치셨네요.”

“형이 마물을 만난 것 같아.”

당황한 아우라의 모습에, 비록 그가 자신을 속이긴 했지만, 뼛속까지 나쁜 파즈는 아닐 것이라고, 포티스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미츠야, 아우라님과 브라우니의 도움을 받을게. 그러면 걱정이 덜 되지?”

미츠가 겨우 안도하는 미소를 보이며 포티스를 끌어안자, 포티스 역시 그를 꼬옥 안아주었다.

“난 나가 있을게, 필요하면 불러.”

그가 브라우니, 하고 말을 걸자 어디선가 브라우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미츠는 셋만 남겨놓고 응접실의 문을 닫았다.

“부르셨어요, 아우라님.”

이곳의 주인이자 황족인 아우라에게 브라우니가 먼저 말을 거는 것은 당연했다. 아우라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포티스님을 돌봐주세요.”

“하지만 이분은….”

브라우니는 멈칫거리다가 곧 발열석 근처에 놓여있던 병에서 미지근한 물을 작은 은제 대야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천을 적셔서 포티스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 주려 했다.

“괜찮아, 브라우니. 내가 닦으면 돼.”

포티스가 브라우니에게서 바르는 약과 젖은 천을 건네받았다. 그 사이 아우라는 재빠르게 나가버리려고 했는데, 포티스가 아우라를 붙잡았다.

“아우라님, 저어…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요.”

“…어떤 대화 말인가요?”

아우라의 목소리는 미츠나 아버지가 있을 때와는 달리 차갑고 차분했다. 아무리 포티스라도 단번에 아우라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포티스는 이미 느낀 사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알려주신 위치에 갔더니… 유리 백합은 없었어요. 대신, 이걸 드릴게요.”

포티스가 절뚝이며 일어나 건네준 것은 유리 방울꽃이었다. 설원 지역에서는 이 꽃을 아우라, 라고 부른다. 아우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 꽃의 향을 맡았다. 투명하고 부드러운 꽃잎 사이로 연한 색의 꽃술이 들어있었다. 아우라의 얼굴이 풀린 것을 보자 포티스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부러 저를… 마물이 있는 지역으로 보내신 거죠?”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러면서도 시선을 획 피하는 어색한 동작 탓에 포티스는 그랬구나, 하고 씁쓸하게 자신의 생각을 확인했다.

“제가 죽었으면 미츠나 아버지가 많이 속상해했을 거예요….”

“당신은 죽지 않잖아요.”

포티스가 되묻기 전에 아우라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마물은 아이를 가진 뮤를 죽이지 않아요.”

“아….”

몰랐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아이를 받아들였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에 포티스는 놀라서 털옷 위로 배에 손을 얹었다.

“저, 어떻게 아셨어요…?”

“배가 나왔으니, 당연히 알지요.”

설마 타인이 알아볼 정도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포티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우라 꽃은 꽃말이 좋아요.”

아우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존심이 높은 황족에게는 이 정도만 말해도 충분할 것이다. 유리 방울꽃의 꽃말은 용서하다, 라는 뜻이다. 포티스는 샤토드네쥬로 돌아오는 길에 그 꽃을 우연히 발견했다. 아무것도 없이 돌아오기가 아쉬웠고, 같은 유리 종이니 혹시 열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될까 싶은 것도 있었지만, 꽃을 보자마자 아우라가 생각났던 것이다.

아우라는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꽃을 손에 쥔 채 천천히 말했다.

“그렇죠, 고마워요.”

순간 둘 사이의 분위기가 부드럽게 바뀌었다. 포티스가 살며시 미소를 보이자, 아우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당신을 일부러 마물이 있는 지역으로 보낸 게 맞아요. 하지만 그걸 용서한다고 하니, 저도 당신을 용서해드리죠.”

포티스는 영문을 몰랐지만, 용서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순수하게 기뻐했다. 아우라는 황제의 곁에 있었던 포티스를 약간이나마 질투했던 것이다. 여전히 그런 느낌이 남아있지만, 아우라 역시 본래 상대를 지나치게 미워하지는 못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분을 바꾸기 위해 포티스의 손을 붙잡아 소파에 앉도록 이끌었다.

“브라우니, 포티스님께 상처의 약을 발라드려.”

“앗, 아니에요, 제가 하면 되니까….”

포티스는 손을 내저어 사양했다. 대신 다른 걸 묻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혹시, 아우라님은 아이를 받아들이면 그… 어떤 변화를 겪는지 아는 게 있으세요?”

이렇게 묻고 나니 자신이 너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파즈의 기본 소양이니까요. 포티스님은…. 원래는 실론이셨다지요.”

그치만 실론이라도 뮤에 대해 상세히 아는 경우가 많았다. 포티스는 너무나 연애에 무감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에…. 제가 너무 아무것도 몰라서…. 가르쳐주시면 좋겠어요.”

아우라는 차분히 생각했다. 포티스는 쉽게 미워하기 힘든 타입이다. 지금도 이렇게 몸이 엉망이 되어 돌아와서도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었다.

‘특이한 분이야.’

그래서 속으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황제가 눈여겨 볼만한 매력이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좋아요. 우선…. 아이의 아버지는 아시나요?”

크게 기대하지 않고 물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포티스의 얼굴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그…. 그건 몰라요.”

포티스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기에, 아우라는 잠자코 기다렸다.

“저는…. 황제 폐하가 미츠와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시스 황제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지만, 포티스는 그런 점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멀리 있지만 살아있고…. 그렇다면 저, 다시 한번 황제 폐하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어떻게 해도 마음이 통하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포티스는 시스 황제가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실론의 아이를 받아들인 상태로는….”

“아이를 받아들인 건 신성해요, 황제 폐하라 하여도, 다른 이의 아이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할 수는 없어요.”

아우라가 단호하게 말하자, 포티스가 머뭇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쩌시려고요.”

포티스는 찬찬히 정리해두었던 생각을 풀었다.

“그 가문에, 아이를…. 드리고 싶어요.”

사실 뮤였던 이와 아이를 한 번에 거두는 것보다는, 아이만을 거두고 싶어 하는 게 많은 귀족 가문의 심리였다. 그러나 대부분 세간의 눈 덕분에, 혹은 절차 탓에 아이를 받아들인 뮤까지 책임져 데려갔다. 그런데 지금 포티스는, 자신은 아이의 아버지 가문을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야…. 상대 가문에선 환영할 거예요. 싫을 리가 없지요.”

아우라는 잠시 사이를 두더니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아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우선,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꿈에 상대가 자주 등장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대부분 완벽히 같은 내용의 꿈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아우라는 포티스가 잠시 혼자 고민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포티스는 최근에 꾼 꿈이 뭐가 있더라, 하고 되짚어보다가 문득 시스 황제가 나오는 생생하고 은밀한 꿈을 떠올렸다.

‘설…. 설마….’

자신이 섹스를 했던 실론들이 몇 명이나 되는데, 시스 황제가 아이의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큰 요행을 바라는 일이었다.

“…다른 것도 있나요?”

“뮤는 모두 배에 디아망 마크가 있지요, 아이의 아버지가 황제 폐하이거나 황족일 때는 모양이 바뀝니다. 일반적인 귀족 실론의 경우는 변화가 없지요.”

그러자 포티스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포티스의 배에 있는 보랏빛 마크의 모양은 확실히 변했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받아들인 뮤는 다른 실론에게 닿아도 발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하고는 서로 끌리게 되지요.”

“배, 배에 디아망 마크가, 어떻게 달라져요?”

흥분한 포티스의 모습에 아우라가 테이블로 다가가 깃펜을 잉크에 적셔서 바뀌는 디아망 마크를 그려보았다. 황족의 아이를 가졌을 때의 모양은 마름모 안에 작은 동그라미가 있는 모양으로 단순했다. 이것은 아우라도 예전에 실제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인 황제의 아이를 가졌을 경우에 생기는 모양은 아우라도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아우라가 섬세한 선으로 그린 디아망 마크를 보고 포티스는 심장이 멈출 뻔했다.

‘나…. 황제 폐하의 아이를 가졌어.’

그렇다면 남쪽의 바다에서 시스 황제와 피부가 닿았을 때 느꼈던 게 정말이었단 말인가? 요즘 들어 매일 같이 그의 꿈을 꾸는 것도?

포티스의 기쁜 것 같은 울먹이는 얼굴을 보고는 아우라는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나 황제의 정액은 다른 실론들의 정액보다 우세한 것이다.

“자, 그렇게 울먹이지 마세요…. 잘 되었잖아요?”

“그치만….”

얼굴이 빨갛게 된 포티스를 아우라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황궁으로 돌아가실 거죠?”

“그럴…. 거에요, 황제 폐하를 만나서….”

아우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말했다.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 저희에게 브라우니를 더 보내주십사, 부탁해주실 수 있으실지요.”

“브라우니를요?”

“네에, 지금 있는 브라우니로는 이 넓은 샤토드네쥬를 결코 단장할 수 없을 거예요. 저희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 고작이죠.”

포티스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드리겠어요….”

“약속이에요.”

“그럴게요.”

그렇게 포티스가 샤토드네쥬에서 기쁨에 젖어 있을 때, 황궁에서는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우라의 아버지인 제12 가문의 벨저 디 오르는 야심이 많은 사람으로, 자신의 자식인 파즈가 평범한 공작가의 차남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아우라의 생사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고, 죽었으면 차라리 잘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운 황족들을 궁에 초대해 알음알음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였다.

“요즘 황제가 몰두하는 것은 정사가 아닙니다.”

이미 얼마 전에 황제가 많은 병력과 나이츠 오브 디아망을 데리고 황궁을 떠났다는 사실은 황족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뒤였다. 모두가 수군거리고, 황제의 뮤가 도망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돌았다.

“바로 한낱 뮤지요.”

“세상에….”

시스 황제와 아우라를 결합시킨 벨저가 직접 그 말을 내뱉자, 황족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벨저는 언변에 능통한 자였으므로, 자신이 지금까지 묻어두었던 말, 실은 면밀하게 검토되고 계획된 채로 내보이는 그것들은 듣는 이의 마음을 현혹하고, 뒤흔들었다.

“황제는 제 자식인 아우라 역시 내치고 말았습니다, 아우라는 흠잡을 곳 없는 훌륭한 파즈지요. 그런 파즈를 죽이고도, 뮤의 튜니카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다니.”

시스 황제는 벨저의 움직임을 이미 알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단지 며칠째 이어지는 꿈 탓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포티스가 나오는 농밀하고 생생한 꿈을 계속해서 꾸다 보니 잠에서 깨면 문득 그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오늘도 그는 씁쓸하게 깨어나 피곤한 상태로 잠시 꿈을 상기해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침실 바깥쪽에서 브라우니와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

시스 황제가 은발을 쓸어넘기고, 그들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브라우니가 말했다.

“주인님, 파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

그 대답만으로 충분했는지, 파나가 문 대신 걸려 있는 커튼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예를 갖추었다.

“황제 폐하….”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역시 많은 병력을 이끌고 포티스를 되찾으러 갔던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시스 황제는 신중한 성격이었기에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황족들 사이에 불유쾌한 소문이 떠돌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시스 황제는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고 생각해 받아들였지만, 어느 황족 무리에서 생각보다 불만이 크게 터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파트너인 파즈를 죽였다는 말을 감내하실 것입니까.”

“…….”

파나는 그가 아우라를 데려온다면 상황을 상당히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고, 시스 황제도 모르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그들을 데려와서 어쩌자는 건지.”

“편의를 봐주시라는 게 아닙니다, 황제 폐하.”

“…생각해보지.”

그만 떠나주었으면 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시스 황제가 피곤해하자, 파나는 즉시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부디, 고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시스 황제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으므로, 파나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방에서 빠져나갔다. 브라우니가 그를 배웅해주기 위해 짧고 빠른 걸음으로 따라왔다.

시스 황제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금 아까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를 되찾고 싶다 못해 머리 어느 부분이 이상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면 그처럼 음란한 꿈을 계속해서 꾸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시스 황제는 훌륭한 실론이고, 파즈나 뮤에게 아이를 받아들이게 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도 이미 충분히 인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자신이 포티스에게 아이를 받아들이게 했을 거라는 가정은 해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포티스를 생각하고 있자니, 몸에 약하게 열이 돌면서 따뜻해지는 것도 이상했다. 어쩌면 욕구를 너무 참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우.”

그가 브라우니를 부르기 위해 종이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쨍그랑, 하고 맑은소리가 울렸다. 미드주라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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