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6)

20

전문 엔지니어가 브라우니를 대동한 채 로브를 휘날리며 황급히 도착한 것은 고작 몇 분 뒤였지만, 시스 황제는 그 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포티스는 우선 황제의 침실로 옮겨졌다. 자신이 없는 동안 제1궁에서 다친 채로 쓰러졌기에 다른 궁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사실 디 오르에서 제1궁보다는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니즈를 불러와.”

지시를 기다리는 브라우니에게 시스 황제가 명령하고, 전문 엔지니어는 포티스의 몸을 살펴보았다. 포티스의 상태를 알기 위해 겉옷을 들치자, 황제의 아이를 가진 게 틀림없는 디아망 마크가 드러났다. 시스 황제가 초조히 피 묻은 손을 움켜쥐고 있는데, 전문 엔지니어가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황제 폐하, 이분은 폐하의 아이를 받아들였습니다.”

“……. 뭐?”

한순간 당황한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포티스의 겉옷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 아이 때문에 포티스가 위험한 건가?”

“아직은 모릅니다, 다만 이리 피를 흘리셨으니 아이를 잃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자 시스 황제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같은 건 상관없어, 포티스를 살리도록 해.”

전문 엔지니어는 당연히 뮤보다 뮤의 아이가 중요하다는 가치를 알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혈을 멈추기 위해 포티스의 입에 물약을 흘려 넣었다.

니즈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회랑이 소란스럽나 싶더니, 막 달려온 게 틀림없는 니즈의 모습이 드러났다.

“포티스가 다쳐?”

시스 황제는 차갑게 니즈를 응시하면서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동안 니즈는 예도 갖추지 않고 포티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 네가 데리고 갔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봐.”

“무슨 소리야, 나랑 같이 올 때까지만 해도 완전 쌩쌩했어.”

“그럼 갑자기 제1궁이 암살자 천국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니즈는 오히려 눈을 깜박이면서 신중하게 되물었다.

“뭐 생각나는 건 없어? 내가 포포스를 얼마나 소중히 대했는데. 마물에게서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게 샤토드네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거라고.”

아무 일도 없다고 단언하려던 시스 황제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생각에 잠겼다. 요즘 황궁에는 술렁이는 움직임이 있다. 물론 그들이 별다른 일을 벌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포티스가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아무래도 수상했다.

‘설마 벨저가….’

하지만 그가 이렇게 대놓고 포티스에게 위해를 가할 것인가? 자신이 아닌 그를 향할 이유라도 있는가? 이 두 가지 생각에서 잠시 방황하고 있을 때, 포티스가 끄응, 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척였다. 엔지니어의 처방 덕분에 피는 멈춘 상태였는데도, 얼굴이 창백했다.

“후우….”

포티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눈을 깜박이자, 시스 황제는 즉시 포티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을 당장 찾을 필요는 없었다. 눈앞에 포티스가 있었다. 포티스는 멍하니 시스 황제를 올려다보고는, 곧 깜짝 놀라 손을 빼내려고 하다가 부들부들 떨었다.

“싫…. 싫어요…!”

“…포티스?”

“그런 건, 하지 않을 거야….”

“포티스.”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팔을 살며시 붙잡자, 포티스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만두세요, 그만….”

“포포스가 왜 이러는 거야?”

니즈가 엔지니어를 향해 묻자 엔지니어는 신중히 말을 골랐다. 그리고 시스 황제에게 다가갔다.

“황제 폐하, 잠시 제가 포티스님을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니즈와 시스 황제는 침실 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둘의 시선은 저절로 포티스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지만,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포티스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영문도 모른 채 떨고 있어서 전문 엔지니어는 신중하게 포티스에게 말을 건넸다.

“저는 전문 엔지니어 롤이라고 합니다.”

“엔…. 엔지니어가, 어째서…?”

그 말에 오히려 전문 엔지니어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여기는 황궁이니, 제가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 황궁이라구요?”

이런 대화가 오가고 나서야 엔지니어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지했다. 몇 차례 더 질문을 해본 결과, 포티스는 자신이 뮤가 된 순간부터 이후의 일들을 전부 쭈욱 잊은 상태였다. 온갖 험한 일을 다 겪었으니 어쩌면 잊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아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충격받는 모습을 보는 건 안쓰러운 일이었다.

“제…. 제가…. 황제 폐하의 아이를요?”

전문 엔지니어는 침착하게 포티스의 배를 들추어서 디아망 마크가 바뀐 것도 알려주었다.

“이 모양은 틀림없이 황제 폐하의 아이를 받아들인 증거입니다.”

“제…. 제가 그렇게 문란하게….”

당황한 포티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깜박였다.

“사실입니다, 당신은 제1궁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

하지만 포티스가 어쩔 줄 몰라 했기에, 엔지니어는 일단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포티스에게 마음이 진정되도록 이터너티의 차를 타서 건네준 다음 기다리고 있는 둘을 향해 다가왔다.

“포티스님은 기습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으셨습니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엔지니어가 찬찬히 대답했다.

“이제부터 시간을 들여 원인을 찾아봐야지요. 독이나 약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럼 제1궁에서 뭘 당하긴 했단 말이군.”

한숨 섞인 니즈의 말에 엔지니어가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내가 잘못이야….”

니즈가 후회하며 포티스가 숨어 있는 이불을 응시했다가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시스 황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니즈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제1궁에서, 황제의 뮤에게 일어난 일이니, 자신의 책임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안정을 취하면서, 차도가 있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상태에 따라 몇 가지 약을 더 처방하지요.”

엔지니어의 말에 시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니즈와 엔지니어 모두를 물러가게 했다.

니즈는 문득 자신은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려다가, 포티스가 숨어 있는 이불이 부들부들 떨리는 점을 보아 그의 곁에 남는 건 불안함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포포스….’

그래서 그저 나가기 전에 그가 얼굴을 내밀지 않을까, 하고 착잡한 기분으로 한 번 더 돌아보았지만, 포티스는 여전히 이불에 꽁꽁 숨은 상태였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돌아보았다. 기껏 다시 손에 넣었는데, 지금까지의 기억을 잃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남에 의해서.’

포티스가 저렇게 된 원인이 자신이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시스 황제는 범인이 누구인지는 제쳐두고, 그런 감정에 휩싸여서 침대로 다가갔다. 포티스는 여전히 이불 속에 있었고, 걸터앉아 이불을 움켜쥐자 떨림이 전해졌다.

“…포티스.”

“…….”

걷어낸 이불 사이로 포티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시스 황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포티스는 빛을 반사하는 은발에 약간 차가운 인상인 시스 황제가 두려웠는데, 어째서 처음 보는 상대가 이렇게까지 무서운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만 시스 황제를 어렴풋이 보았을 때도 도망치고 싶었고, 지금 역시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다는 점만을 상기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서워…. 어째서….’

그것이 마술사가 건 마법 언어의 반동이라는 걸, 포티스는 물론 시스 황제도 알 리가 없었다. 물론 마술사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마술사는 매수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데다 당장은 눈앞의 포티스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어쩔 수 없었다.

포티스가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물고는 고개를 떨구는 걸 보면서 시스 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사랑스러웠고,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시스 황제가 손을 뻗어 뺨을 살짝 건드리자, 포티스의 몸이 크게 흠칫 떨렸다.

‘무서워…. 그치만, 꼼짝하지 못하겠어….’

마치 마물에게 잡아먹히는 작은 짐승이 된 기분으로 포티스는 몸을 움츠리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무방비한 모습을 보자 시스 황제는 묘한 양가감정을 느껴 한순간 손을 거둘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계속 이 감촉을 떠올려 왔던 것이다.

“…포티스.”

상대가 황제인 건 이제 포티스도 알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알고 있던 예절 같은 건 잊어버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황제 폐하….”

겨우 작게 대답하자, 그 직후 포티스는 상대의 품에 와락 안겨있었다. 부드러운 보석 꽃향기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아….”

포티스의 호흡이 거칠어지는데도, 시스 황제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포티스에게서 풍기는 연한 미드향, 찰랑이는 어두운 빛깔의 머리카락에 안는 감촉마저 푹신했다. 시스 황제는 한참이나 그렇게 포티스를 안고 있었다. 포티스는 기절할 것만 같은 두려움과 함께 자신에게 친밀감을 보이는 시스 황제가 낯설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내가 정말로…. 뮤가 되어서 황제 폐하와 그걸…. 한 걸까?’

전문 엔지니어가 쓸데없이 포티스를 속일 리 없었지만, 여전히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잘 알 수 없는 부분마저 있어서 포티스는 뭐가 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제…. 제가, 뮤가 되었어요…?”

그가 처음으로 물어본 게 그러한 사실이라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시스 황제는 잠시 사이를 두고 대답해주었다.

“…그래.”

포티스도 뮤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지는 않았다. 대역죄를 저지르면 황제에 의해 뮤가 되고 만다. 하지만 어째서 포레스트 영지를 다스리던 자신이 뮤가 된 것일까? 포티스는 모든 일이 진짜처럼 와닿지는 않았다. 자신의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어쩐지 배가 약간 불러있는 데다 묵직한 느낌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아….”

거기다 그에게 드는 강한 반감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몸이 닿고 있는데도, 빨리 떨어지지 않으면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포티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꼼지락거렸다. 이 불쾌함을 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포티스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는데, 곧 포옹을 풀 거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허리를 받쳐주면서 뒤로 서서히 눕혔다.

“……!”

당황한 포티스가 울먹이는 얼굴로 시스 황제를 올려다보았지만, 그다음 이어진 것은 키스였다.

‘아….’

놀랄 만큼 뜨겁고 부드러운 혀가 입안에 닿았는데, 포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으면서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트렸다. 몸이 저절로 흥분하는 게 느껴졌다.

‘어째서….’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덮치듯이 누르고선 천천히 그의 몸을 훑으며 매만졌다. 얇은 옷 아래로 그의 몸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졌다. 아이를 받아들인 배가 이전과 달리 좀 통통하게 나와 있는 게 귀엽게 여겨졌다.

“후우….”

포티스가 뜨거운 숨을 내뱉는 동안, 시스 황제는 그의 다리를 벌려 잡았다. 하혈을 하는 통에 아랫도리는 벗겨두고 이불만 덮어두었었다. 대번에 말라가는 피에 젖어 있는 입구가 드러났다.

“하아….”

포티스는 혼란스러웠다.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은데, 뱃속이 저릿하고 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을 느끼는 순간에 아랫도리에서 체액이 왈칵 쏟아져 엉덩이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진한 미드향이 풍겼다.

‘포티스가 내 아이를 가졌으니까.’

자신에게 발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새삼 즐겁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그가 누구에게 안겨 흐트러지더라도 즐거웠는데, 그때 남쪽의 바다에서 만난 이후로는….

그의 그런 모습을 독점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시스 황제는 공을 들여 디아망 마크가 있는 배를 손바닥으로 쓸어 애무하고 살짝 누르듯이 매만졌다.

“아, 아…!”

디아망 마크가 있는 배는 원래도 민감했지만, 아이가 들어있는 지금은 예전의 배 이상으로 예민해졌다. 포티스가 다리를 움츠리며 체액을 울컥울컥 쏟아냈다. 손도 대지 않은 유두가 딱딱하게 세워져 옷 아래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스 황제는 침착하게 포티스의 상의 단추를 풀어 가슴과 목덜미를 드러나게 했다. 뺨은 물론 목덜미까지 이미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하아, 하아….”

이렇게 갑작스럽게 강한 쾌감에 지배받는 일은, 포티스가 기억을 잃기 전에 시스 황제와 관계했을 때는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포티스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깜박였는데, 오히려 몸이 점점 뜨거워지기만 했다.

“읏…. 아….”

머릿속까지 마비된 것 같은 포티스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자, 시스 황제 역시 자신의 아이를 받아들인 파트너에 대한 강한 끌림을 느꼈다. 실론들은 대게 이 과정에서 크게 놀라고 만다. 지금까지 느껴왔던 파즈와 뮤에 대한 욕구가 마치 장난처럼 여겨지는 탓이었다. 시스 황제는 일반적인 실론들처럼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심 자신에게 이러한 감정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정도는 되었다.

포티스를 자신만의 것으로 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몸을 섞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목덜미를 깨물고는 빨아들였다.

“으응….”

포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면서 몸을 떨었지만, 점점 쾌감의 흥분보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그, 그만….”

그래서 조그맣게 말하면서 고개를 흔들고 말았는데, 시스 황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면서 깨물던 목덜미를 붉게 만든 뒤 조금 위치를 옮겨 다시 깨물기를 반복했다. 순식간에 목덜미가 울혈로 물들고, 포티스는 허리가 당겨지도록 긴장하면서 그의 몸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전혀 꼼짝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닿은 피부가 녹아들 듯이 뜨거워지는 탓에 오히려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만두라고?”

포티스는 시스 황제가 드디어 말을 들어주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태인데도.”

그의 손이 포티스의 다리 사이에 닿았다. 포티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면서 허리를 비틀었다. 시스 황제의 손끝은 축축하게 젖어 벌어져 있는 입구를 지그시 눌렀다가 살며시 파고 들어왔는데, 안이 늘어나며 억지로 들어오는 게 놀랍도록 기분이 좋았다.

“아….”

내벽에서 찔걱찔걱이는 소리가 들리도록 휘적이자 포티스의 뺨이 수치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은근하게 찔러 들어오는 손가락의 감각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며 다리가 벌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처음 보는 상대가 자신의 몸을 이토록 잘 알고 있고, 무턱대고 끌리고 기분 좋은 게 무서워서 포티스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으으….”

“…울지 마.”

“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괜찮아.”

사실 정말 시스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가 자신을 보고 바들바들 떨 때는 조금 놀랐지만, 그가 포티스이고,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포티스에게는 그저 혼란스러워서 벗어나고 싶은 상황이었다. 자신이 그의 아이를 받아들인 것은 물론 뮤가 되었다는 것도 이제 막 알았을 뿐이었다.

“…나,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아이가 걱정돼?”

피가 쏟아진 것조차 알지 못한 포티스로서는 어리둥절한 말이었지만, 행위를 멈출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포티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시스 황제는 다시금 포티스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부드럽고 은은한 미드향, 거기에 포티스의 체향이 섞여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로 좋은 향이 풍겼다.

“…난 네가 중요하고, 지금 널 원해.”

그의 손이 포티스의 통통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포티스는 퍼져가는 쾌감과 약간의 절망을 느끼면서 그의 손을 약하게 붙잡았지만, 그를 멈출 수 없었다.

“그, 그래도….”

“…그럼 넣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면서 튜니카 아래로 이미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를 포티스의 허벅지에 밀어붙이고 천천히 문질렀다.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자신에게 넣길 바라는지 알 수 있어서 포티스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어째서…. 나를 이렇게….’

포티스가 의아하게 여기는데도, 시스 황제는 그저 포티스가 앞에 있는 기쁨을 즐겼다. 그는 울혈이 늘어선 포티스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가슴께로 내려갔다. 손끝으로 톡톡 유두를 건드린 다음 이로 살짝 깨물자, 유두 끝이 말랑하게 눌렸다. 천천히 깨물면서 가슴을 움켜쥐면, 달콤한 우유가 조금씩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아이를 받아들인 뮤와 파즈들은 아이의 아버지와 가까이 있는 어느 시점부터 우유를 만들게 된다. 이것은 아이가 아닌 아이의 아버지를 위한 것으로, 매일 입으로 빨아 빼내 주어야 했다. 맛도 좋았지만 상대에게 충분한 쾌감을 선사하기에, 이 행위를 거르는 실론은 없었다.

우유가 혀에 닿자, 시스 황제는 유두를 혀로 감싸 쭉쭉 빨아들였다. 포티스의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앗, 아…! 으응….”

다시금 체액이 다리 사이에서 울컥 쏟아지고, 포티스는 가슴을 내밀 듯이 몸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목덜미와 이마가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시스 황제가 가슴에서 입을 떼어내고 타액이 묻어 반짝이는 유두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계속 빨리던 탓에 우유 몇 방울이 저절로 흘러나와 가슴께로 떨어졌다.

“윽, 하아….”

그의 손이 닿는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더 만져줬으면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시스 황제가 다시 가슴께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쭙, 소리를 내면서 목덜미에 남긴 울혈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데, 그가 부드럽게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양쪽 가슴에서 우유가 흘러내리면서 피부를 적셨다.

“아…!”

시스 황제가 흐르는 우유를 쭉 핥아 올리더니 유두를 물고 빨았다. 이가 닿는 감촉은 약간 아팠지만, 이내 쾌감에 묻혀 사라졌다.

“하아, 으윽….”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자 그를 진정 시키려는 듯 시스 황제의 손이 포티스의 허리에 닿았다. 포티스는 눈물을 떨어트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구와 내벽이 성기를 받아들인 것처럼 수축하길 반복했다. 스스로도 모를 수 없을 만큼 몸이 행위를 원했다.

‘아…. 기분, 좋아….’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역시 알 수 없는 공포가 덮쳐와서 포티스는 시스 황제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그가 제발 멈추어주었으면 했다.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에야 몸을 떼어냈다. 포티스는 울먹이며 아래로는 대량의 체액을 쏟아낸 채로 다리를 움츠리고 있었다. 가슴은 숨 가쁘게 오르내렸고, 분홍빛 유두가 바싹 세워진 상태였다.

포티스의 붉은 뺨에 손을 대고, 귓불을 매만져주었더니 여전히 겁을 먹은 태도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 네가 돌아오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으려고 했는데.”

자신이 어디론가 떠나기라도 했다는 말 같아서 포티스는 조용히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젠 대답은 중요하지 않아졌어, 포티스.”

“…….”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 포티스가 자신의 손을 앞으로 모아서 쥐고 있는데 시스 황제가 찬찬히 몸을 일으켰다. 포티스는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포티스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내가 대체, 황제 폐하와….’

혼란스러워서 이불을 안고 있는데, 시스 황제가 포티스를 응시했다. 그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충만한 것 같았다.

“…옆에 있을 테니까, 좀 더 자.”

‘괜찮은데….’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불편했지만, 그보다 알몸에 이불을 덮은 기분이 더 이상해서 포티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어….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말해봐.”

“아버지와 미츠는…. 어디 있어요? 황궁에 있나요?”

“그들은 북쪽의 설원에 있어.”

“아…. 살아있긴 한 거군요. 엄청 멀리 있긴 해도….”

포티스의 안도하는 목소리를 듣자, 시스 황제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자신에게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처음부터 그냥 말해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그리고 또…. 저는 어째서…. 뮤가 되었어요?”

“네 동생이 대역죄를 저질렀거든.”

이젠 그것도 무척이나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 시스 황제는 아우라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처음부터 그에게 자신은 좋아하는 상대가 있다고 바로 말해두었다. 아우라에게 괜한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다른 실론과 쉽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의 동생과.

“…….”

놀란 포티스가 이불 속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를 내며 아무 말 없이 굳어있자, 시스 황제가 말을 이었다.

“나의 파즈와 바람이 났지.”

“미츠가…. 그럴 리 없어요….”

“하지만 사실이야.”

“아….”

상황을 즉시 받아들이지 못한 포티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자 시스 황제가 얇은 이불 위로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 움직임이 어쩐지 안타까웠기에 포티스는 꼼짝할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안길 뿐이었다.

“…널 좋아해.”

“……. 저는….”

그러나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얼굴의 윤곽이 드러나는 부근을 가만히 매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넌 그대로 내 옆에 있어 주면 돼.”

이것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일까? 포티스는 자신이 겪어온 나날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쩐지 숨이 막힐 정도로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자신을 원하는 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시스 황제는 내내 자리를 비우지 않고, 포티스의 곁에 머물렀다. 포티스는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지만, 그가 해주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삼 일쯤 붙어 지내고 나자, 시스 황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포티스의 곁을 떠나야만 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브라우니에게 포티스의 시중을 들어주고,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자신과 동행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들도 포티스가 있는 침실 부근을 경호하도록 해두었다.

그리고 그가 파나와 세아를 데려가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나이츠 오브 디아망은 뛰어난 실력과 재능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있었고, 사실 그중에 최고는 니즈였다. 그런데 제1궁에서 알 수 없는 기습이 일어난 뒤에 니즈를 포티스의 곁에 두고 가겠다고 하는 건, 포티스에 대한 시스 황제의 마음을 바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니즈 역시 순순히 수긍하고 포티스가 머무는 침실을 지키겠다고 했다.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까지 대동했는데, 벌건 대낮에 황제를 처리하려고 할 리 없어.”

그것이 니즈의 의견이었고, 파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사실 황제 폐하께 볼일이 있는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언제든 제1궁에 침입할 수 있었으면서, 포티스가 돌아온 날에 그를 습격한 건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마술사일지도 몰라.”

파나는 니즈의 말에 뒷받침이 될만한 근거를 말하고 싶었는데, 황궁에서 시스 황제 이외에 마술사를 움직일 수 있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 라는 의문에는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 걱정하지 마. 어쨌든 내가 남아서 포티스를 지킬게.”

포티스는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삼 일 내내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어린아이 달래듯이 입맞춤을 하고 안아주었다. 시스 황제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강한데도 언뜻언뜻 무척이나 좋은 기분이 되곤 해서, 포티스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막연히 그 좋았던 감각을 되짚는 것처럼 떠올리고 있는데, 입구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가 곧 들어올 거라고 짐작하고 포티스는 몸을 반쯤 일으켰는데, 아무런 낌새가 없어서 도로 천천히 침대에 드러눕고 말았다. 몸이 나른하고 잠이 계속 오는 데다 식욕도 떨어진 탓에, 포티스는 오늘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피곤하고 졸려….’

그렇게 잠이 들려고 한순간, 밖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포스.”

‘날 부르는 걸까…?’

이 넓은 침실에는 자신과 커다란 나무밖에 없었다. 포티스는 쭈뼛대다가 작게 네, 하고 대답했다.

“몸은 좀 어때?”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은 편안한 말투여서 포티스는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괜찮아요, 아픈 곳도 없고….”

“으음~ 그래. 포포스는 날 잊었지?”

그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해서 포티스는 흠칫 놀랐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포티스에게 지금 남아있는 기억이라고는 포레스트 영지에서의 단조로운 생활과 대연회에 의무적으로 참가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죄송해요.”

“아니야. 나만 잊어버린 것도 아닌데, 뭐.”

그리고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니즈 하트, 포포스와 긴 여행을 함께 했어.”

“…여행이요? 제가 황궁을 떠났었구나…. 뮤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들었는데요.”

“여행은 원래 몰래 하는 거야.”

그러면서 함께 마물을 피해 동쪽의 숲에서 남쪽의 바다, 북쪽의 설원까지 나아간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어서 포티스는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여 들었다. 마물 고기를 먹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깜짝 놀라 작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럼 제가 가족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네요.”

“그래, 무사히 잘 있는 걸 보고 왔지.”

포티스는 자신이 시스 황제의 말을 너무나 쉽게 믿어버린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니즈가 동행해주었다면 아마 가족들은 정말로 북쪽의 설원에 있을 것이다.

“…같이 가주셔서 감사해요.”

“그런 인사를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 내가 네게 약속을 했었거든.”

“네?”

하지만 니즈는 대답을 해주는 대신 소리를 내 웃더니 비밀, 하고 말을 끝내버렸다.

“안심하고 잠들어도 좋아, 내가 있으니까.”

“…니즈님은 정말 강한 분인가 봐요.”

사실 니즈는 마술사를 상대로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었으니, 그의 강함은 확실히 남달랐다.

“뭐, 그렇긴 하지? 잘 자.”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어버리는 듯한 말이었지만, 포티스는 어쩐지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니즈는 여전히 바깥에 있었고, 포티스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저희는 친구예요?”

“……. 그럴걸?”

약간의 침묵이 신경 쓰였지만,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포티스는 니즈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랬구나…. 멋진 분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면, 뮤가 된 것도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럴려나.”

“저…. 연애에 관심이 없어서, 뮤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긴 해도, 정확히 뭘 하는 건지는 모르는데 혹시 아시면 알려주실래요?”

“내가?”

니즈 자신도 그렇게까지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포티스가 궁금해한다면 알려주고 싶어서 머리를 짜냈다. 오전의 따뜻한 미풍이 입구의 커튼을 뒤흔들었다. 바람에서는 희미하게 장미 향이 풍겼다.

“뮤는…. 글쎄, 뭐라고 하면 좋을까. 파즈와 비슷하지만, 실론들이 공유하는 형태야.”

“공유….”

포티스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가, 무언가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제가, 실론이 원하면 누구하고나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건가요?”

“아, 맞아….”

그렇게 뮤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하고 나자, 이번에는 놀라서 침울해진 포티스에게 이미 사면을 받았다는 것을 언급해서 기운이 나게 만들어야 했다.

“제가 황제 폐하의 아이를 가져서….”

“그래, 그거야. 어쨌든 아이를 가지면 사면을 받을 수 있대.”

“그렇구나…. 한 가지만 더, 저는…. 황제 폐하와 사이가 좋은가요?”

“뭐? 그런 것까진 말 안 할래.”

갑자기 니즈가 고개를 휙 돌리는 것처럼 태도를 바꾸자 포티스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상대가 어떤 유형의 실론인지 약간은 파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머뭇이면서도 다른 말로 화제를 바꿀 수 있었다.

“저…. 배가 조금 고픈데요.”

“응, 브라우니를 불러.”

포티스가 망설이면서 브라우니, 브라우니. 하고 작게 말해보자 어디선가 브라우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부르셨어요, 포티스님.”

“먹을 걸 가져다줬으면 해.”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포레스트 영지에서 좋아했던 요리를 먹고 싶었지만, 어쩐지 떠올린 순간 속이 울렁거려 포티스는 손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

“윽….”

브라우니가 포티스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입덧이 있으시군요, 새콤한 음식은 어떠실까요.”

새콤하다, 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쩐지 입안에 침이 고이고 배가 꼬르륵거리는 것 같았다.

“…좋아, 맛있을 것 같아. 먹고 싶어.”

“먹기 힘든 건요?”

포티스는 찬찬히 여러 가지 요리를 떠올려보았다. 큼직한 고기구이를 떠올리자 속이 안 좋아졌다.

“고기…. 고기는 전혀 안 될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산벨 열매는 어떠세요?”

밝은 노란색에 첫맛은 시고, 끝은 단맛이 나는 동그란 열매였다. 포티스는 입을 막았던 손을 치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우니는 포티스가 먹고 싶은 요리를 대강 파악한 것 같았다.

“바스트라를 곁들인 산벨 열매 구이, 우유 죽, 신선한 신 과일로 준비하겠습니다.”

“으응, 고마워.”

브라우니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져서 포티스는 입구에 시선을 주었다. 얼핏 주홍빛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 같았다.

“…니즈님.”

“왜?”

“안에 들어와 계시면 안 될까요?”

“내 임무는 너랑 노는 게 아니라, 널 지키는 건데 말이야.”

“그…. 그럼, 식사만이라도 같이.”

“알았어.”

약간 망설이던 니즈가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제1궁에서 지내는 포티스는 평탄하게 하루를 보내는 듯했다.

한편, 시스 황제가 파나와 세아를 거느리고 본궁으로 들어서자 황족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볍게 분위기가 술렁였다. 포티스가 돌아온 소식은 나이츠 오브 디아망 외에는 알 수 없도록 해두었지만, 황제가 제1궁에서 며칠씩 나오지 않자 차츰 소문이 퍼져나갔다. 제1궁에는 브라우니밖에 없는데, 어디서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알기 어려울 따름이었다.

시스 황제가 황족이나 귀족이 보낸 요청들을 확인하고 있는데, 한가지 눈길을 끄는 서신이 있었다. 서신을 묶은 리본은 분홍색이었고, 읽기 위해 리본을 풀어내자 깔끔한 글씨가 나타났다. 그 편지는 시스 황제 폐하, 라는 첫머리로 시작된다.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연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연회가 열리지 않는지 오래라 꽃과 같은 파즈와 실론들이 아름다운 여름날을 저택에서만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스 황제는 그제서야 그날 이후로 대연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히 중지를 시킨 일도 없는데, 포티스가 대역죄로 잡혀 나간 일이 워낙 큰 사건이었기에 알아서 자중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대연회라….’

시스 황제는 잠시 생각 끝에, 대연회 겸 황궁 파티를 개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포티스는 아이를 받아들였으니 대연회의 참가 자격이 되지 않지만, 황궁 파티라면 참석할 수 있었고 어쩌면 무언가 기억을 떠올릴지도 몰랐다. 시스 황제가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파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파나는 바로 시스 황제의 의중을 알아채 가까이 다가왔다.

“황궁 파티를 열려고 해.”

그렇게만 말해도 파나의 의견을 묻는다는 건 충분히 전달되었다. 파나는 장밋빛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무의식적으로 쓸어 넘기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포티스님이 위험할 겁니다.”

“나이츠 오브 디아망은 이름뿐인가 보군.”

시스 황제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기에, 파나는 가까스로 발끈하고 싶은 걸 억누를 수 있었다. 니즈와 달리 파나는 이런 부분을 자극하면 재미있었다.

“…어쨌든 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진심인가.”

여전히 약간은 웃는 기색으로 말했기에 시스 황제 앞에서 쉽게 긴장하곤 하는 파나는 황제의 속을 파악하지 못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그는 약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스 황제가 자신을 놀렸다는 걸 알았다. 그걸 인식하자마자 파나는 얼굴을 굳혔다.

“물론입니다, 많은 인파 사이에 섞여서 포티스님을 노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황제 폐하를 노리거나.”

“나는 너희가 지켜주는 것 아니었나, 포티스 역시.”

니즈라면 이쯤에서 신경질을 내면서 파티든 뭐든 열어, 잡아서 죽여버릴게. 라고 말했겠지만 파나는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당황할 뿐이었다.

“당연히 지킵니다. 하지만….”

“너는 의외로 고지식하군. 유인하자는 말이었어.”

“아….”

파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어서 순간적으로 얼굴이 환해졌다. 내심 포티스를 미끼로 유인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시스 황제가 그런 방법을 쓸 리는 없다고 생각해 멀리 폐기 한지 오래였다.

“나와 떨어져 있는 사이에 포티스가 다치는 것보다는 내 앞에서 다쳤으면 좋겠어. 물론 범인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하고.”

이 말은 즉, 대연회 겸 황궁 파티를 열 테니 거기서 포티스를 기습한 작자를 잡으라는 의미였다. 대화가 사건 위주로 흘러가면 눈에 띄게 활기가 넘치는 파나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타난다면 저희가 반드시 잡겠습니다.”

“이 황궁 파티에 나오지 않을 리가 없어. 포티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모이는 인원도 제법 될 테니까.”

“그렇지요, 저라도…. 아 제가 범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만, 제가 만약 그런다면 반드시 선택할 자리입니다.”

“그래, 네 생각도 그렇군.”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기습한 자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뮤로 만들어 생명을 연명하게 할 예정도 없었고, 무척 고통스럽고 힘들게, 그리고 자신은 전혀 손대지 않은 채 힘만을 행사하여 죽여버릴 셈이었다. 포티스를 건드린 본보기는 확실히 보여주어야 했다.

그가 황제의 위치에 오른 이상, 결코 당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갚아주겠어.’

벨저든, 다른 누구라도 잡히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연회 겸 황궁 파티의 날짜가 다음 주로 결정되었다. 젊은 실론과 파즈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도 기뻐할 것이 틀림없었고, 시스 황제 역시 완전한 승리를 거두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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