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26)

21

구운 산벨 열매는 익으면서 신맛과 단맛이 섞여 오묘한 맛으로 변했다. 원래는 그렇게 좋아하던 과일이 아닌 데다 날이 더운데도 포티스는 열심히 따끈한 열매의 껍질을 벗겨 부지런히 먹어두었다.

니즈는 포티스 앞에 앉아있긴 했지만, 무언가 곰곰이 고려하는 모양새로 생각에 잠겨서 이따금 눈앞에 있는 포티스를 확인하듯 살펴볼 뿐이었다.

한참을 허겁지겁 먹던 포티스가 문득 니즈의 시선을 알아채고 부끄러워서 뺨을 물들였다.

“이게…. 너무 맛있어서요.”

“뭐? 아, 많이 먹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

니즈는 말할까, 말까 하는 태도로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툭 털어버리듯이 입을 열었다.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널 덮쳤을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너에게 대답을 해달라고 한 건 아니야.”

니즈가 어이없어하자, 포티스는 쑥스러워져서 먹던 산벨 열매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저도 알고 싶으니까….”

“기억이 사라져서 불편하지?”

“네에. 영문을 모르는데, 받아들여야 하는 일뿐이고요….”

포티스의 손이 저절로 자신의 배로 향했다. 아이 역시 배 속에 있다고는 하지만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뭐, 나중에 찾게 되겠지. 전문 엔지니어가 열심히 궁리하고 있는 모양이거든.”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이요?”

“응, 약을 사용한다나.”

“그럼 좋을 텐데….”

적어도 지금보다 조금 갈피가 잡힐지도 모른다. 포티스는 여전히 시스 황제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같이 있으면, 무섭고…. 두려워….’

원래는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보아도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고 말았다.

“제가 기억을 잃던 날엔 무얼 했을까요?”

“내가 널 제1궁으로 데리고 왔어. 그리고 입구에서 헤어졌는데….”

시스 황제가 포티스를 발견한 것도 회랑이었다. 포티스는 손을 입가에 대고 고민했다.

“역시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억지로 짜낼 필요는 없어.”

니즈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은 것 같으니까, 다시 경호를 하러 갈게.”

“아….”

포티스도 같이 일어나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인걸.”

니즈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입구로 나가버리자, 포티스는 다시 침실에서 혼자가 되었다. 포티스는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잠들고 말았다.

니즈는 커튼 너머로 침실 안을 힐끔 보고는 포티스가 편히 자리를 잡는 걸 보자 다시 바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니즈의 감각은 침실과 인근 주변을 전부 탐색하고 있었는데, 신경 쓰일만한 건 없어 보였다.

‘내가 매일 경호를 해줄 수 있으면 좋은데 말이야.’

하지만 자신은 포티스의 기사가 아닌 황제의 기사였다. 오늘은 시스 황제가 니즈가 아닌 파나와 세아를 데리고 갔지만, 시스 황제의 안위도 뒤로 미룰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 잠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냄새를 맡고 있자니, 회랑 끝에서 시스 황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곁에는 파나와 세아가 있었다.

니즈는 그를 알아보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날카롭게 주위를 감시했다. 마침내 시스 황제가 가까이 다가오자 니즈가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포티스는?”

“조금 전에 잠들었어.”

넷의 그림자가 회랑 바닥에 투명하게 일렁이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시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별다른 말 없이 곧장 침실로 들어갔고, 셋은 그 자리에 남았다. 황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

니즈는 시스 황제가 더는 자신들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황궁은 어땠어?”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가급적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서는 파나에게 묻는 것 외에 별다른 수가 없었다.

“딱히 없었습니다.”

그때 조용히 있던 세아가 입을 열었다. 파나는 사건의 흐름을 잘 파악하지만, 분위기를 읽는 건 종종 서툴 때가 있었다.

“황제 폐하가 나타나니 약간 술렁이는 분위기였어.”

“그렇단 말이지….”

그야 며칠씩이나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디 오르에서 시스 황제의 뮤인 포티스는 많은 화젯거리가 되고 있었다.

셋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시스 황제는 잠든 포티스의 곁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그의 어두운 빛깔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주며 확인하듯이 얼굴을 살펴보고는 손을 쥐어보았다.

엔지니어는 포티스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약물 요법을 사용하고자 했고, 시스 황제도 그들이 개발하도록 허락해주었지만, 사실 그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충격으로 잊게 되었다면, 언젠가는 다시 자연적으로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안전한 장소로 그를 옮겨야 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케이지드에슈만큼이나 안성맞춤인 장소는 없었다. 케이지드에슈라면 포티스가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생긴다 해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곳의 출입은 오직 황제와 그가 데리고 들어간 상대만 머물 수 있었다. 물론 브라우니는 예외였다.

시스 황제가 잠든 포티스의 몸을 살며시 안아 들었다. 배 속에 아이를 받아들여 잠이 많아진 포티스는 그렇게 해도 쉽게 깨어나지 않고, 오히려 시스 황제의 따뜻한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자고 있어도 돼.”

나직하게 말해주자, 포티스는 잠에 취해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으응, 하고 작게 대답했다. 고개를 숙여 포티스의 뺨에 입맞춤하면서, 시스 황제는 그를 데리고 침실을 나섰다.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나하나 알릴 필요는 없었지만, 포티스의 안전이 관련된 일이었기에 시스 황제는 그들에게 포티스를 케이지드에슈로 옮긴다고 말해두었다.

“그곳이라면, 확실히 안전할 겁니다.”

파나가 다소 안심되는 얼굴로 시스 황제의 결정을 긍정했다.

“그럼, 케이지드에슈의 입구까지 동행하게 해줘.”

니즈의 말에 시스 황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데다, 제1궁에 핀 향긋한 장미 냄새와 규칙적인 부드러운 흔들림 덕분에 포티스는 더욱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포티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투명하게 가공된 디아망 바깥으로 여름의 하늘이 돋보이는 케이지드에슈의 청량한 허공이었다.

“아…. 여기는….”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묘하게도 풍경이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느꼈다. 포티스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자신을 누군가 단단히 끌어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제 폐하….”

잠이 들어버린 걸까? 평소에 볼 수 있었던 차가운 연보랏빛의 눈동자는 조용히 감겨 있고, 은발이 햇빛에 반사되어 무척이나 반짝였다. 포티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떨면서 조용히 그의 팔을 자신의 몸에서 떼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자 시스 황제가 가늘게 눈을 뜨면서 다시금 포티스를 자신 쪽으로 휙 끌어안아 버렸다.

“아…!”

“…일어났어?”

“네, 네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포티스의 몸을 더듬으면서 매만졌다. 포티스는 어느새 튜니카를 입고 있었고 얇은 옷감 위로 시스 황제의 서늘한 손의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응….”

몸이 알 수 없이 흥분한다고 느낀 순간, 아래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고, 진한 미드 향이 풍겼다. 자신의 파트너, 아이의 아버지에게 반응한 몸이 발정해버린 것이었다.

“…….”

그러자 곧장 시스 황제의 손이 튜니카 밑으로 들어가더니 일부러 체액이 질척이는 소리가 나도록 입구를 매만졌다. 얕은 입구를 드나들며 찔걱찔걱 소리가 크게 들리자 포티스의 뺨과 귀는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앗…. 싫, 싫어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면서 도망가고 싶어졌다. 시스 황제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포티스의 말은 개의치 않고 튜니카를 확 걷어 올렸다.

투명한 흰 피부와 가느다란 몸이 드러나는 와중에, 배만이 아이를 받아들여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

“그렇게 내가 싫어?”

그렇게 묻고는 곧바로 포티스의 몸에 자신의 몸을 겹치면서 귓불을 깨물었다. 붉은 자국이 남도록 잘근잘근 물리고, 그의 호흡이 자신의 귓가에 닿자 포티스가 목을 움츠리면서 입을 벌렸다.

“읏….”

정말로 그가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시스 황제의 곁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뭘까, 모르겠어….’

하지만 이내 생각은 끊어졌다. 그가 자신의 다리를 벌려 잡으면서 다리 사이로 몸을 넣었다. 포티스는 저번처럼 매만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멈, 멈춰주세요….”

“그럴 순 없어.”

시스 황제가 달래듯이 말하고는 자신의 정장 튜니카를 들쳐 이미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를 꺼냈다. 커다랗고 붉게 달아오른 성기를 보자 포티스는 저런 게 몸 안에 들어올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아, 안돼….”

성기가 입구에 걸쳐지더니 꾸욱 눌러 내벽을 넓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전부 다 들어왔나 싶어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 잠시 입구가 풀어진 틈을 타 다시금 성기가 쑤욱 밀려 들어왔다. 놀라운 쾌감에 포티스는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아, 아…!”

성기가 절반쯤 삽입되었지만, 포티스는 몸을 긴장시키며 성기를 조여 물었다. 순식간에 온몸에 땀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포티스만큼 강한 쾌감은 아니지만, 시스 황제도 거의 참을 수 없는 수준의 끌림과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포티스를 안고, 마음껏 독점하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포티스….”

“황제 폐하….”

이렇게 끌려서는 안 되는데, 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포티스는 그가 입술을 겹쳐오자 입을 열어 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혀가 뒤섞이고 마치 둘이 하나가 된 것처럼 감미로운 기분이 뱃속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포티스는 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흥분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기분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뒤얽히던 혀가 떨어지고,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후우….”

곧이어 체액이 미끈미끈하게 나와 있는 내벽을 쓸면서 성기가 뿌리까지 안으로 침범해왔다. 저릿한 감각에 포티스의 허리가 저절로 튕겨졌다.

“괜찮아.”

시스 황제의 손이 배에 닿아 디아망 마크를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연결부에서 체액이 연거푸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포티스가 짜릿한 쾌감에 몸을 떨며 눈을 감자, 시스 황제는 희미하게 뺨을 붉히면서 그의 안으로 거듭해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앗, 으응…! 윽…!”

짧고 빠르게 안을 쑤실 때마다 신음이 멈추지 않고 터져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가 부끄러워 신음을 참아보려고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하아, 하아….”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포티스는 정신없이 시스 황제의 등을 감싸고 매달렸다. 그의 몸에도 열기가 감돌았고, 땀에 젖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하는 섹스였음에도 시스 황제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포티스의 안을 헤집었다. 그가 기분 좋아하는 곳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원한다면 새로운 곳을 개발할 수도 있었다.

둘은 뜨거운 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성기를 삽입하면 할수록 행위에 지치기는커녕 더욱더 깊은 쾌감이 둘 모두에게 피어올랐고, 들뜬 한숨과 신음이 케이지드에슈를 채웠다.

“앗, 아…. 황제, 폐하…. 으응, 읏….”

어느덧 눈물이 툭툭 흘러내리고, 시스 황제의 허리가 거칠게 움직였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체액에 성기를 문지르면서, 거듭해서 절정에 달할 듯 말 듯 한 기분이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 포티스는 샐 수 없을 만큼 많이 가버려서 이미 혼미한 상태였다. 입가에는 타액이 주르륵 떨어지고 있었다.

“황제, 폐하…. 아아….”

“…포티스.”

“네, 네에….”

이 순간에는 둘 외에 다른 무엇도 끼어들 수 없었다. 포티스는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스 황제를 올려보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강한 애정과 욕구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시스 황제가 성기를 빼내 입구에 귀두를 걸치자 포티스는 안달하면서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시스 황제는 미소를 띠고 응시했다. 체액으로 범벅된 힘줄이 돋은 붉은 성기는 살짝 벌어진 입구로 마저 들어가고 싶은 듯했다.

“흘리지 말고, 제대로 받아둬.”

그러면서 단숨에 성기를 뿌리 끝까지 박아 넣은 탓에 연결부가 맞닿으면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흐윽…!”

포티스는 시트를 움켜쥐면서 숨을 헐떡였다. 그렇게 강하게 서너 번 들어온 다음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한쪽 발목을 어깨에 걸치면서 닿지 않았던 깊은 곳에 성기를 맞댄 채로 넉넉히 사정했다.

“……!”

포티스는 입을 벌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긴 절정이 뱃속이 저릿해지도록 온몸을 관통하듯이 지나가고 나서도 깊은 여운이 찾아와 포티스는 울먹였다.

“으윽, 아…. 황제, 폐하…. 으읏….”

“그래, 괜찮아.”

포티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구멍을 옴찔대며 수축시키는 바람에 시스 황제 역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성기를 천천히 빼내야 했다. 하지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도중에 꽉 조여들어서,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마저 꺼냈다.

성기가 사라지자 어찌나 몸 안이 허전한지, 포티스는 애원하듯이 시스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포티스의 마음을 손에 잡힐 듯이 알고 있으면서도 시스 황제는 웃으면서 행위를 멈추고 그를 안았다. 포티스는 발갛게 물든 뺨을 하고 겨우 더듬어서 그를 마주 안았다.

“…여긴 어디예요? 황궁인가요?”

“황궁에 속하긴 하지. 그 위에 있으니.”

“그럼, 정말로 허공에….”

포티스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신기해하자, 시스 황제는 오히려 포티스의 그런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시스 황제와 포티스가 케이지드에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벨저는 제12궁에서 상당히 분노에 차 있었다. 황궁에 있는 마술사는 모두 황제의 아래에 있다. 그런 마술사 하나를 열심히 설득한 것은 좋은데, 고집이 너무 세서 도무지 벨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바로 방금 전까지도 그는 마술사와 다시 한번 대화를 하고자 했지만, 그는 이미 벨저에게서 대가로 받았던 자유 시민 12명을 원하는 대로 처리해버린 상태였기에, 더는 벨저와 거래를 원하지 않았다.

홧김에 황제에게 저 마술사가 벌인 짓거리라고 말해버릴까,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마술사는 아무런 신의 없이 곧장 벨저의 사주를 받았다고 고할 것이었다.

‘정말이지 골치가 다 아프군.’

여러 마술사에게 거래를 하지 않겠냐고 외치면서 다닐 수도 없어서, 긴밀하게 최면에 능한 자 중 평소부터 언행이 다소 위험했던 그를 고른 것이었는데. 마술사가 쉽게 제안을 받아들이고 포티스를 맞이하러 간 것까지만 벨저에게 운이 따라주었던 것 같았다.

마술사는 마법 언어를 사용해 최면을 걸긴 했으나 어째서인지 잘되지 않았다고 했고, 거래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만약 잘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받을 건 다 받아놓고서, 마술사란 족속은 이래서야!’

포티스에게 최면을 걸어 시스 황제를 독살하는 일이 실패한 된다면, 당연히 마술사의 소행이라는 것도 밝혀질 것이고, 어쩌면 저 미친 마술사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벨저와 거래했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체 왜 제대로 되지 않은 건지.’

벨저는 들고 있던 술잔을 내던지듯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심지어 대연회 겸 황궁 파티가 다음 주에 열린다고 발표되어서 새로운 마술사를 물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애초에 이전에 구했던 마술사도 원하는 대가가 우연히 벨저로서 구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시스 황제는 벌건 대낮에 포티스를 직접 케이지드에슈로 옮겨버리기까지 했다. 시스 황제는 완전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그것이 벨저를 더욱 자극했다.

그가 그렇게 나온다면, 반드시 포티스는 물론 시스 황제의 목숨도 완벽하게 빼앗아주고 말리라.

하지만 그러려면, 저 바보 같은 마술사의 어설픈 최면 마법 말고도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게 틀림없었다. 벨저는 심각하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늘어놓으면서 괜찮아 보이는 방법들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폐기해보았다.

‘역시 그것뿐인가.’

벨저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으나, 황제를 완전히 무너트리려면 안팎으로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신중히, 시스 황제를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이라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그래, 신중하게….’

의자에 앉은 벨저의 뒷모습에 강한 오후의 석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벨저가 다시금 술잔으로 손을 옮기자, 안에 들어있던 둥근 얼음이 잘그락 움직였다.

벨저의 이런 수상한 움직임도 모른 채, 주홍빛 석양이 하늘에 번질 때까지 시스 황제와 포티스는 거듭해서 몸을 섞었다. 아무리 강도를 높여도 쾌감이 늘면 늘었지, 결코 둔감해지지는 않아서 포티스는 녹초가 되어서야 겨우 더는 할 힘이 없다고 시스 황제에게 울먹이며 부탁하듯 말해야 했다.

“그렇다면야….”

겨우 그가 몸을 놓아주자, 성기가 빠져나가는 순간에도 자잘한 쾌감이 들어 포티스는 괴로운 나머지 허리를 비틀었다. 섹스 말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지나고 나자, 불안이 포티스를 천천히 덮쳐왔다. 그래서 포티스가 이게 대체 무슨 걱정일까, 하면서 누워있는데 뺨에 시스 황제의 입술이 닿았다.

“목욕할래?”

“힘이 없어서 못 일어나겠어요.”

“너는 가만히 있어도 돼.”

두 사람의 몸은 물론, 침대가 있는 이 공간 역시 온통 진한 체액 냄새를 풍겼다.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계단으로 내려가 아래층으로 향했다. 포티스는 멍하니 천장에서 떨어지는 보랏빛 조명을 올려다보았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향기로운 보석꽃이 심어진 아름다운 공간에 이미 몸을 담글 수 있는 둥근 욕조가 마련되어있었다. 시스 황제는 땀에 젖은 포티스의 튜니카를 벗기고, 자신 역시 완전히 알몸이 되더니 함께 물에 들어갔다.

“후우….”

전신으로 퍼지는 미지근한 물의 촉감이 기분 좋았다. 물에는 이터너티의 노란 꽃이 떠다니고 있었다. 포티스가 한숨을 내쉬면서 뒤에 있는 시스에게 약간 기대자, 그는 포티스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팔로 단단히 안아주었다.

‘정말 내게 너무 잘 해주시는데…. 어째서 자꾸만 도망치고 싶을까.’

욕조에 들어온 김에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에게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감각만이 떠오를 뿐, 기억나는 건 없었다. 뭔가 희미한 실마리 같은 것이 머릿속을 스쳐 가서 포티스는 그것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몸에 열이 오르기만 했다.

포티스의 뺨이 새빨갛게 된 것을 보고, 시스 황제가 가만히 뺨을 매만졌다.

“…몸이 안 좋아?”

“아, 아니에요…. 뭔가 생각 좀 하느라요, 죄송해요.”

그러자 시스 황제의 손이 포티스의 눈가를 덮어버렸다. 디아망 반지의 서늘한 감촉이 피부에 닿는 게 느껴졌다. 포티스의 손에도 그것과 한 쌍인 것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포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물속에서 확인하듯이 손을 쥐어보았다.

“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저….”

시스 황제에 대해 무섭고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라고 포티스는 판단했다. 그래서 정리한 생각을 시스 황제에게 말해두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제가, 황제 폐하를 꼭 지켜드릴게요.”

“나를?”

시스 황제가 의아해하는 것 같은 기색을 보이자 포티스는 부끄러워졌다. 말을 하고 났더니 속이 조금은 개운해졌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역시 별다른 힘이 없는 상대일 뿐일지도 모른다.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아.”

포티스는 주저하면서도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실은 자꾸 무섭고, 도망치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드는데.”

“그랬어?”

시스 황제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포티스의 몸을 안았다. 물론 뒤에서 끌어안긴 채인 포티스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네에…. 계속해서, 너무 무섭고…. 멀어져야만 할 것 같았어요.”

“……. 나와 떨어지고 싶어?”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시스 황제는 지금 이 순간에서야 자신이 포티스에게 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분명 포티스는 몇 번이나 싫다고 말했었다.

포티스는 한순간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가까스로 두려움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들까, 생각해보면요. 황제 폐하는 이렇게 다정하고, 상냥하신데…. 역시 폐하를 잃을까 봐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드리고 싶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그 말을 듣고 있던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안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 그건 내가 할 말이지.”

“그런가요?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그렇지 않아. 난 네가…. 개발한 품종을 좋아해.”

“아….”

설마, 이 케이지드에슈에 피어 있는 보석꽃을 포티스가 만들었다는 걸 시스 황제는 알고 있는 걸까? 포티스가 놀라서 올려다보면, 그는 알고 있는 게 확실한 듯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너와 아이는 내가 지켜줄게.”

포티스가 뺨을 붉힌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으면서 끌어안았다. 욕조의 물이 살짝 출렁였고, 그 바람에 이터너티의 꽃이 휩쓸려 욕조 밖으로 떨어졌다.

“…정말요?”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놓치지 않고.”

포티스는 마음이 벅차올라서 자신을 안은 그의 팔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그가 그렇게 말해주는 게 무척이나 기뻤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다시금 시스 황제의 곁에 있을 때면 느끼곤 하는 어떤 불안한 신호가 머릿속에서 깜박이는 것 같았지만, 포티스는 애써 무시했다.

‘내가 반드시 황제 폐하를 지켜줄 거야.’

목욕을 마친 후에, 둘은 브라우니가 준비해둔 편안한 튜니카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시스 황제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니 포티스의 입맛에 맞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산벨 열매를 그렇게 먹었음에도 포티스는 아직 산벨 열매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우유 죽과 신선한 산벨 열매를 보자마자 기뻐하면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모든 음식은 갓 만든 것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맛있겠다….”

그 모습을 보고 시스 황제는 그를 케이지드에슈에서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그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포티스는 이제 자신의 아이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

“그럼…. 잘 먹겠습니다.”

포티스의 식욕을 떨어트릴지도 모르기에 테이블에는 고기 요리 같은 건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시스 황제의 몫으로도 같은 산벨 열매와 우유 죽, 산벨 열매 샐러드가 전부였다. 하지만 시스 황제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포티스가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산벨 열매를 열심히 입으로 가져가는 포티스를 보면서, 만약 포티스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자신을 어떻게 대했을지 생각해보았다. 가족들이 살아있는 걸 알게 되고, 그는 화를 냈을까, 아니면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황궁으로 돌아온 것은 어떤 심경의 변화에서였을까.

만약 그가 기억을 되찾으면 시스 황제는 모든 일을 사과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무엇이든 전부 남김없이, 포티스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사과하고, 그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포티스는 구운 산벨 열매를 세 개쯤 먹고 나서야, 시스 황제가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다는 걸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제 폐하도…. 같이 드시는 건 어때요?”

“그래, 먹을게.”

그는 우유 죽을 몇 스푼 떠서 먹었지만, 포티스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분이어서 식욕도 잊고 말았다.

“…널 사랑해, 포티스.”

문득 참을 수 없어져서, 그렇게 조용히 말했더니 포티스가 깜짝 놀란 얼굴로 산벨 열매를 든 채 굳어져 있었다. 그 반응이 재밌기도, 씁쓸하기도 해서 시스 황제는 미소를 띤 채 그를 응시했다.

“…이상한가?”

“아, 아니요…. 그냥 놀라서….”

포티스는 뺨을 붉히다 못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머뭇이다가 산벨 열매를 접시에 내려놓고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저…. 저도 기억은 안 나지만, 황제 폐하가….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다고?”

시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포티스는 허둥지둥 서둘러 덧붙였다.

“좋, 좋아해요…!”

“그래.”

시스 황제는 그날 종일 포티스와 함께 있었다. 식사를 끝내자, 케이지드에슈의 환경에 대해 잠시 대화를 주고받던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키스를 나누게 되었고, 곧 섹스를 하게 되었다.

둘을 보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시원한 바닥에서 거리낌 없이 서로의 옷을 벗겼다.

이미 젖어 들어있는 포티스의 내벽으로 두꺼운 성기가 꾸욱 밀려 들어왔다. 포티스는 스스로 허벅지를 잡아 벌리며 성기가 밀려나지 않도록 심호흡을 해 안을 느슨하게 풀었다. 내벽은 쉴 틈 없이 분비되는 체액으로 미끄럽고 부드럽게 부풀어 있었다.

“하앗, 읏….”

불끈거리는 성기의 힘줄이 내벽을 스치자 너무 기분이 좋아 포티스의 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포티스는 이미 넣어진 것만으로 깊은 쾌감을 느끼며 벌어진 입으로 타액을 툭툭 흘렸다. 시스가 디아망 마크가 있는 배를 누르며 단숨에 성기를 끝까지 삽입했다.

“……!”

그러자 연결부 틈으로 체액이 울컥, 하고 쏟아지면서 포티스는 기절할 것 같은 강한 흥분을 느꼈다.

“앗, 좋아….”

“여길 만지는 거 좋아하지.”

부드러운 태도로 시스가 포티스의 배를 살살 매만졌다. 내부에서 성기와 내벽이 짓눌리면서 포티스는 다리를 움츠리고 체액을 줄줄 내보냈다.

“아앗, 저어…. 좋아, 좋아요….”

시스 황제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는 포티스를 내려보면서 그의 엉덩이를 움켜잡아 들어 올리고 허리를 움직였다. 내벽 안쪽이 빠듯하게 늘어나면서 기분 좋은 느낌이 폭죽처럼 팟팟 터졌다.

“하앗, 앗…. 읏…!”

쾌감을 느끼다 못한 포티스가 뒤로 물러나며 몸을 빼려 하자,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허리를 껴안고 단단하게 붙잡아 고정시킨 다음 아래에서 힘껏 쑤셔 박았다. 푹, 퍽 하는 젖은 소리와 함께 입구의 살이 내벽으로 쭉 딸려 들어갔다가 성기가 나올 때 분홍빛 살이 딸려 나왔다.

“으응, 하앙, 좋, 아…. 황제, 폐하….”

포티스의 눈이 기절할 것처럼 흐릿해지고 시스 황제의 움직임에 맞춰 격렬하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포티스가 발끝을 움츠리며 절정에 달하는 동시에 쪼르륵 오줌을 흘렸다. 그리고 혀는 내밀어진 채로 숨을 헥헥 몰아쉬었다.

시스 황제 역시 밀려드는 사정감에 허리를 숙였고, 포티스의 혀끝을 물어 입 안으로 넣어주며 키스했다. 포티스가 다리로 시스 황제의 허리를 감으며 허리를 휙 위로 치켜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허리가 포티스의 쾌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포티스는 이제 눈을 감은 채로, 정액이 안에 흩뿌려지길 기대했다. 곧이어 기대감 이상의 쾌감이 높은 파도처럼 포티스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뜨거운 정액이 배와 내장 구석구석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앗, 앙…. 황제 폐하….”

포티스가 팔을 꼼지락거리자 시스가 가만히 손을 깍지 껴 맞잡아주었다. 포티스는 울면서 딸꾹질을 했다. 내벽이 성기를 단단하게 조여 빨면서 탐욕스럽게 정액을 삼키고 있었다.

“황제 폐하….”

포티스가 다른 한 손을 디아망 마크가 있는 배 위에 얹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스가 몸을 떼어냈다. 그가 빠져나가자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고, 내벽이 수축하며 다리 사이에서 쭈붑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포티스가 눈을 깜박였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할 수는 없었다. 포티스의 귀까지 새빨갛게 되고 나서야 성기가 빠져나간 것을 인정한 내벽이 수축을 멈추고 안에 들어온 정액을 흡수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핑 돌면서 현기증이 일어 포티스는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야만 했다.

시스가 포티스의 곁에 앉아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었다. 포티스는 그 손을 잡아도 될지 고민을 해보고는 이내 주저하면서 손을 뻗었다. 시스 황제의 손은 뜨거운 포티스의 몸과는 달리 시원했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 있으면 좋겠어….’

포티스가 눈을 감으며 기분 좋은 감각을 즐기고 있는데, 시스 황제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말을 꺼냈다.

“다음 주에 있는 황궁 파티에, 너도 참석해줬으면 해.”

“황궁 파티요…?”

시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뒤로 투명한 디아망이 가공된 외벽이 햇살에 금빛 띠를 만들며 반짝였다.

“대연회도 함께 여니까, 젊은 실론과 파즈들이 올 거야.”

‘대연회….’

어째서 그 단어의 울림이 그렇게 불길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포티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무서워요.”

“무엇이?”

“……. 대연회를 미루시면 안 될까요?”

시스 황제는 포티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의아해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이번 황궁 파티가 포티스를 이렇게 만든 암살자를 잡으려는 계획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챈 걸까? 분명 어떤 소동이 일어나긴 할 것이다.

“이미 결정된 일이야.”

“그럼, 제가 가지 않는 건….”

하지만 시스 황제가 황궁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포티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겨우 용기를 냈다.

“저, 저와…. 황궁 파티가 있는 날에 여기서 보내는 건요? 둘이서만….”

황궁 파티의 주최는 다름 아닌 황제이다. 그가 뭐라고 대답할지는 알 것 같았지만, 포티스로서는 묻는 것 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시스 황제는 잠시 사이를 두고 답했다.

“그럴 순 없어.”

“…….”

포티스가 낙담해서 고개를 떨구었다.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어깨를 감싸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황궁 파티가 열릴 때까지, 매일 함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제가 걱정하는 건…. 황제 폐하예요….”

포티스의 자신 없는 목소리에 시스 황제가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시스 황제는 여신 디 오르가 황제에 자리에 오르도록 직접 선택한 자였다. 대역죄인을 뮤로 만들 수 있는 권능도, 어찌 보면 디 오르에서는 황제가 갖는 당연한 힘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실은 여신 디 오르의 권능을 일부 받은 것에 불과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포티스 같은 귀족 실론이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둘은 동시에 아무 일도 없지는 않을 거라고 느꼈다. 분명 황궁 파티에서는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포티스는 심장이 조여지는 것만 같아서 시스 황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포티스는 손을 모아 여신 디 오르에게 기도했다.

‘제발 평범하고, 즐거운 파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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