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6)

22

그로부터 며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포티스는 케이지드에슈에서 시스 황제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하루하루 황궁 파티 겸 대연회가 다가온다는 사실과 시스 황제의 곁을 떠나버리고 싶다는 압박감을 제외하면 무척이나 행복한 나날이었다.

포티스는 입덧이 심해져서 좋아하던 산벨 열매도 먹지 못하게 되었고, 달콤한 후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시스 황제가 정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 포티스는 브라우니와 함께 하나 봉봉이라는 사탕을 만들고 있었다.

제2기관의 블라우가 보내온 레시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슬라임으로 연하고 투명한 분홍 꽃잎 같은 아름다운 색을 낸다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히 이상한 것이 없었다. 포티스는 처음엔 마물의 일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깜짝 놀랐지만, 완성된 하나 봉봉의 그림이 첨부된 레시피를 유심히 보고서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진한 꽃향기가 난다고….’

요리 전문 엔지니어인 블라우가 특별히 개발한 재료들을 넣으면 그렇게 된다고 쓰여 있었다.

‘벌써 황궁 파티가 내일이야….’

포티스는 자꾸만 떠오르는 황궁 파티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포티스님, 뜨거우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녹인 설탕이 담긴 그릇을 포티스가 옮기려 하자, 브라우니가 주의를 주었다. 포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푹신한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릇을 자신의 앞쪽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저며진 분홍빛 슬라임의 살 세 조각, 유리병에 담긴 투명하고 반짝이는 동그란 구슬, 그리고 노란색이 감도는 에센스를 레시피에 적혀있는 대로 녹아있는 설탕에 넣고 섞어주었다. 슬라임의 살과 구슬, 에센스는 설탕에 빨려들 듯이 녹아버리더니 곧 설탕 전체가 투명한 분홍빛을 띠기 시작하고, 젤리처럼 탱글탱글해졌다.

“으음, 이제 이것을….”

앞치마를 두른 브라우니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포티스를 돕고 있었는데, 포티스가 다음 순서를 고민하자 이미 익혀둔 조리 순서를 확인해주었다.

“쟁반에 한 국자씩 떨어트리면 돼요.”

브라우니가 가리킨 쟁반에는 굵은 설탕이 뿌려져 있었다. 포티스가 조심스럽게 작은 국자로 혼합물을 떠서 떨어트리니 쟁반 위에서 둥글게 방울지며 모양이 잡혔다. 그리고 쟁반의 양 끝 손잡이를 쥔 채 혼합물을 이리저리 굴리자 설탕이 묻으면서 마무리되었다.

“아, 그럼 이대로 전부 만들면 되는구나.”

“굳기 전에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혼합물은 굵은 설탕을 뒤집어쓰자 그대로 빠르게 식었다. 포티스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 국자씩 떨어트려 하나 봉봉을 완성해갔다.

이 레시피는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이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오직 솜씨가 서투른 포티스만을 위해 블라우가 개발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시간도 많이 들고, 무척이나 손이 많이 가는 간식이었다.

완성된 하나 봉봉에서는 처음 맡아보는 꽃향기가 풍겼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향은 분홍빛 꽃이 핀 여름의 이른 저녁을 연상케 했다.

‘정말 향이 진해, 꽃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구슬들이나 노란색 에센스에서도 아무런 향은 나지 않았기에 갈수록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굴려서 만든 하나 봉봉을 자기 접시에 서둘러 옮겨 담자, 사탕을 만드는 일이 전부 끝났다.

햇빛이 투과되는 디아망으로 만들어진 케이지드에슈로 아름다운 햇살이 쏟아져 사탕이 보석처럼 빛났다. 포티스는 정신을 집중한 덕분에 몸에 기분 좋은 땀이 흘렀고, 브라우니 역시 볼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휴우….”

겨우 요리를 완성하고 나자, 내일 황궁 파티에서 입을 의상을 입어보아야만 했다. 뮤용 튜니카와 파즈의 의상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파즈의 의상이 노출이 좀 더 적었다. 포티스가 약 30벌에 달하는 의상을 하나씩 입었다가 벗어보는 동안, 브라우니는 부지런히 움직여 그 의상에 어울리는 구두와 장식을 가져왔다.

“못 고르겠는데….”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각양각색의 옷들 사이에서 포티스가 한숨을 쉬자 브라우니가 차를 권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고르면 돼요.”

이터너티의 차에는 설탕을 듬뿍 넣었고, 함께 먹는 간식은 씁쓸한 커피 쿠키였다. 포티스는 쿠키를 한입 깨물고는 차를 머금었는데, 어릴 때부터 이렇게 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포티스가 팔다리를 쭉 뻗은 채로 쉬고 있을 때, 아무런 기척도 없이 포티스의 근처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반가워하며 고개를 들면, 시스 황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 폐하….”

“잘 있었어?”

기쁨을 먼저 느꼈지만, 동시에 그의 모습이 너무나 애틋하게 여겨져 포티스는 시스 황제가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올려다보기만 했다.

‘내일이면…. 황제 폐하가….’

포티스의 눈이 흐릿해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생각에 빠져드는 사이, 시스 황제가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포티스는 잠이 깬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눈을 깜박이는 사이 흐릿함도 사라졌다.

“아…. 즐겁게 있었어요.”

“옷을 고르는 중이었구나.”

“네에, 종류가 많아서….”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팔을 잡아서 일으키더니 입고 있는 의상을 한번 살펴보았다. 어깨의 양옆에 리본 장식이 길게 늘어지고, 짧은 망토가 달린 부드러운 옷감의 튜니카였다.

“지금 입은 게 귀여워.”

“그, 그럼 이걸로 할까요….”

시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포티스는 쑥스러워하면서 미소를 보였다. 시스 황제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무척 좋은 향이 나는데.”

“제가 하나 봉봉을 만들었거든요, 잘하지는 못했지만요….”

포티스가 머뭇거리면서 테이블로 다가가 하나 봉봉이 가득 담긴 자기 접시를 들어 올려 보여주었다.

“색이 예쁘고 향도 좋아, 맛있겠어.”

“드, 드셔보실래요?”

포티스가 얼른 시스 황제의 곁으로 다가와 입가에 사탕을 갖다 댔다. 그것을 받아먹는 시스 황제의 모습을 포티스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하나 봉봉은 입 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맛있어.”

원래 그다지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 시스였는데도 포티스가 만들어주어서인지 하나 봉봉의 향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저도 먹어볼게요.”

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포티스가 얼른 하나 봉봉을 집어 먹자,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입가에 묻은 설탕 가루를 닦아주었다.

“어때.”

“맛있어요, 무척 달콤하고….”

시스 황제의 차분한 연보랏빛 눈동자가 포티스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그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하나 봉봉은 침대에서도 애용하는 간식이지.”

놀란 포티스가 눈을 깜박였다. 시스 황제의 서늘한 손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네?”

“기분이 고조되는 성분이 들어있거든.”

“아….”

사실 어쩐지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고, 몸에 열이 오르는 듯해서 단지 시스 황제와 함께 있어서라고 생각했는데, 하나 봉봉의 효과도 있는 것 같았다. 제2기관의 요리 전문 엔지니어는 어째서 이런 레시피를 자신에게 보내준 것일까?

민망해진 포티스가 시선을 떨어트리고 우물쭈물하는데 시스 황제가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주위에서 포티스의 의상을 정리 중이던 브라우니에게 손짓해서 돌려보냈다.

그것을 눈치챈 포티스가 흠칫 몸을 떠는 순간, 자신은 이미 시스 황제의 품에 안긴 채였다.

“황제 폐하….”

포티스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입술이 겹쳐졌다. 포티스의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자연스레 시스 황제의 몸에 기대게 되었다. 아쉬움을 남기는 입맞춤이 끝나자, 시스 황제는 포티스를 휙 안아 들어 나선 계단을 올라 침실로 향했다. 포티스는 목을 끌어안고는 뺨을 발갛게 물들였다.

“옷, 옷이라도 갈아입는 건….”

“곧 벗을 테니 상관없어.”

침대에서의 행위를 암시하는 말에 포티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꼼지락거리기만 했다. 마침내 푹신한 침대에 포티스를 눕히자, 포티스는 그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리본이 풀어지고, 튜니카가 살며시 벗겨졌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에서 포티스는 투명한 맨피부를 드러내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시스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그 무방비한 모습이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황제, 폐하….”

하지만 이번 입맞춤은 아까와는 달리, 혀가 얽혀들었다. 포티스는 키스에 능숙하지 않았지만, 시스 황제가 리드했으므로 열심히 뒤섞이는 타액 속에서도 상대의 혀를 핥았다.

“으응….”

포티스는 정신없이 키스에 빠져들었다. 키스를 하기 전에는 그와 행위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쑥스러웠지만, 막상 하고 나니 욕구가 몸 안쪽에서 저릿하게 올라왔다.

“후우….”

입술이 떨어지고,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대로 귓가로 내려가 귓바퀴를 핥으면서 깨물기 시작했다. 귀에서 들리는 질척하고 야한 소리에 포티스는 다리를 움츠리면서 신음을 참았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지금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어딘지 알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아, 황제 폐하….”

포티스가 바들바들 떨면서 시스 황제의 옷깃을 붙잡았지만, 시스 황제는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포티스의 귀를 깨물었다. 말랑한 귓불을 혀로 핥고 빨아들이면, 포티스의 피부는 눈에 띌 정도로 금방 발갛게 달아올랐다.

“앗, 응…!”

간질간질한 감각에 참을 수 없어진 포티스가 결국 작게 비명을 내면서 시스 황제에게 안겨들었다. 몸을 뒤로 빼는 게 아닌, 오히려 품에 파고든다는 점이 시스 황제를 즐겁게 했다. 그래서 작게 소리 내 웃고 목덜미를 핥아 내려갔다. 포티스는 몸 안이 어쩐지 조여지는 기분이 들어서, 애원하듯이 그를 응시했다.

“…원하는 걸 말해 봐.”

“…….”

부끄러워진 포티스가 너무나 조그맣게 말한 탓에 시스 황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는 재촉하지 않고, 포티스가 한 번 더 말하기를 기다렸다.

“안에, 마음대로 해주세요….”

“네가 원하는 건?”

포티스가 입술 끝을 깨물면서 눈을 깜박였다. 자신이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시스 황제는 그저 포티스를 애타게 할 뿐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황제 폐하의 것으로, 마음껏….”

비록 고개를 살짝 들어 다음 말은 시스 황제의 귀에 속삭이긴 했지만, 그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 듯이 살며시 미소를 보였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후우….”

포티스의 땀에 젖은 붉은 얼굴에 어두운 빛깔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져있었다. 시스 황제의 손이 포티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고는 가슴으로 내려가 움켜쥐면서 유두를 입 안에 담아 빨아들였다.

“흐응…!”

그저 혀가 닿았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포티스는 손을 움츠렸다 펴면서 헐떡였다. 다리 사이에서 체액이 흘러나와 입구가 번들번들해진 것은 물론이었다. 시스 황제가 한 손으로는 포티스의 유두를 거칠게 문질러 괴롭히면서, 다른 쪽 가슴을 쪽쪽 빨아들이자 우유가 슬그머니 새어 나왔다. 혀에 우유가 닿는 것을 느낀 시스 황제가 이로 살짝 물면서 강하게 빨아들이자 놀라울 정도의 쾌감이 허리와 배로 퍼져나갔다.

“하앙, 아…. 윽, 황제, 폐하…!”

시스 황제는 유륜을 깨물어 잇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포티스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고, 목덜미까지 붉은 기운으로 물들어 있었다.

“으응, 어서…. 아, 좋아…!”

포티스가 허리를 팟, 튕기는 동안 시스 황제의 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허리가 뻐근해질 정도로 성기가 발기되었고, 당장이라고 포티스의 안에 박고 싸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다. 그는 포티스의 축축하게 젖은 하반신에 자신의 몸을 밀착했다. 성기가 입구에 닿자, 포티스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

시스 황제가 상체를 떼어내고 포티스를 내려다보았다. 포티스는 애처롭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자신의 처분이 결정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귀여워.’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가슴 중앙에 입을 맞추고는 그의 몸을 안아 뒤돌아 눕혔다. 포티스가 두근두근한 채로 그의 손길에 따라 엉덩이를 들게 되었다. 시스 황제의 입술이 허리를 타고 엉덩이로 내려가자 포티스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부끄러워요…!”

이미 수차례 그에게 입구를 보인 상태였지만, 포티스는 항상 처음처럼 뺨을 붉게 물들이며 수줍어했다.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반응이 재미있기도 해서, 일부러 혀를 내밀어 엉덩이 사이에 흘러 있는 체액을 핥았다. 그러자 포티스가 허리를 파들파들 떨었다.

“그, 더러워요….”

“그렇지 않아.”

시스 황제는 단언하면서, 포티스의 엉덩이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고 장식끈을 풀어 망토를 벗어냈다. 그리고 튜니카 아래에서 성기를 꺼내 손으로 쥐어 입구에 맞추고는 포티스의 볼록 나와 있는 배를 받치듯 안으면서 단번에 밀어 넣었다.

“아…!”

분명 그가 성기를 삽입할 거라고 예상했는데도, 삽입에 의한 쾌감은 상상 이상이라 포티스는 숨을 삼키며 눈물을 떨어트렸다.

“후우….”

“포티스.”

시스 황제가 낮게 이름을 부르며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자 포티스는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아 시트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네, 네에…. 하아….”

“좋아해.”

그 말과 함께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해서, 포티스는 끙끙 앓으면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 맞춰 몸을 흔들었다.

“하아, 아앙…. 읏…!”

성기가 드나들면 신음을 내지 않을 수 없었고 덕분에 입안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시스 황제의 손이 배에서 가슴을 훑어내자 고여있던 우유가 그의 손끝을 적셨다.

“윽…!”

갑작스레 안쪽의 휘어진 부분을 자극받아, 포티스는 엉덩이를 든 채 발끝을 움츠렸다. 강한 쾌감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눈은 흐릿하게 풀어진 채 입가에는 타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스 황제가 느끼는 감각과 포티스의 감각에 차이는 있었지만, 시스 황제 역시 포티스의 안을 드나들면 드나들수록 욕구가 점점 강해졌다.

“하아, 앗…!”

성기가 들어갈 때는 뜨겁게 내벽을 긁는 감각에 몸이 움츠러들었고, 빠져나갈 때는 오히려 아쉬워져서 입구를 꽉 조여 물게 되었다. 포티스는 숨을 헐떡이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겨우 그의 팔에 기대어서야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시스 황제의 단단한 팔은 포티스가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응, 으읏…. 앙, 하앙…!”

포티스가 시스 황제의 체온을 느끼면서, 마음껏 절정에 달했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만큼 잔뜩 느낀 탓에, 포티스는 편안한 침대에 엎드려있는데도 시야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포티스가 빠르게 여러 차례 갈 동안 시스 황제 역시 사정감을 느꼈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 기분 좋은 순간을 조금 더 연장하고자 했다.

마침내 정액이 내벽으로 쏟아져 들어가자 포티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딸꾹질을 했다. 길고 긴 여운이 시작되었다.

“읏, 아…! 으응…!”

포티스가 몸을 비틀자, 시스 황제가 그대로 포티스의 몸을 덮어 안았다.

“하아….”

“내일 널 나의 파트너로서 소개하려고 해.”

무척이나 갑작스러웠기에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했다가, 곧 깨달은 포티스가 눈을 깜박였다.

“저…. 저를요?”

“…그래.”

시스 황제가 포티스의 몸을 붙잡아 자신과 마주 보도록 눕혔다. 포티스는 놀라움과 당황, 기쁨이 섞인 얼굴로 시스 황제를 응시했다.

“넌 내게 너무나 소중해.”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순수하게 기뻐하기도 전에 불길함이 발끝에서 온몸을 타고 흘러드는 것 같았다. 포티스는 그에게 다시금 황궁 파티에 참석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려다가 겨우 참았다.

‘그냥 기분 탓이야…. 내가 걱정이 많아서….’

포티스가 잠자코 있자, 시스 황제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기울여 포티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포티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기뻐서.”

포티스가 망설이며 웃어 보이자, 시스 황제 역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포티스의 불안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

“넌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아도 돼.”

겨우 네에, 하고 대답하고 나자 잠이 솔솔 쏟아졌다. 포티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다음날이 되었다.

황궁 파티가 열리는 날, 포티스는 일어나자마자 튜니카 차림으로 브라우니에게 편지를 쓸 종이와 깃펜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시스 황제는 드물게도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편지지와 깃펜을 가져왔어요, 포티스님”

브라우니가 또랑또랑하게 말하자, 포티스는 얼른 검지를 입가에 갖다 대고 쉬잇 하고 소리를 냈다.

“황제 폐하가 주무시니까, 깨우지 않게 조심해야 해.”

“알겠습니다.”

브라우니가 덩달아 소곤소곤 말하며 포티스의 손에 종이와 깃펜을 넘겨주었다. 포티스는 빙긋 미소를 보이고는, 케이지드에슈의 투명한 벽에 기대어 띄엄띄엄 글을 적어나갔다. 그것은 시스 황제에게 보내는 편지였는데, 포티스 나름대로 고심해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언젠가 너무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면, 그때는 편지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그것이 포티스의 꿈이었다. 한 자 한 자 글을 써나가는 동안 높은 곳에 위치한 케이지드에슈에 아침 햇살이 점차 비치기 시작했다. 시스 황제가 누워있는 침대에도 곧 밝은 빛이 드리워지고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 황제가 눈을 깜박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포티스.”

“좋은 아침이에요, 황제 폐하.”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놓고 글을 쓰던 포티스가 밝은 미소를 보이자, 시스 황제도 희미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이상한 꿈을 꿨는데.”

“어떤 내용인데요?”

“…잊어버렸어.”

포티스가 무언가 대답하려 하자, 시스 황제가 이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포티스는 서둘러 편지 꾸러미를 등 뒤로 숨겼다.

“왜?”

“이건, 그게…. 황제 폐하께 드리는 제 마음이거든요. 지금 보시면 곤란해요.”

그 말에 시스 황제가 천천히 포티스와 시선을 맞추어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포티스의 뺨을 건드렸다.

“…선물?”

“네에…. 별 건 아니지만요.”

“기쁜데, 네게 무언가를 받는다니. 고마워.”

“앞으로 더 많이 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시스 황제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포티스에게 물었다.

“네가 갖고 싶은 건? 원하는 건 뭐든 줄 수 있어.”

“아….”

그렇게 말하니 바로 무언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포티스는 그저 좋아하는 상대와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없다고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추운 북쪽의 설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버지와 미츠가 떠올랐다.

‘지금 말해도 괜찮을까….’

포티스가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

“가족들을…. 샤토드네쥬에서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 그곳은 너무 춥고 쓸쓸해서….”

만약 시스 황제가 납득하지 않는다면 설득이라도 해볼 요량이었지만, 뜻밖에도 그는 선선히 대답했다.

“그래, 그게 네가 바라는 거라면.”

“정말요?”

포티스가 뛸 듯이 기뻐하며 뺨을 물들이고 눈을 반짝이며 시스 황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시스 황제는 포티스의 머리로 손을 옮겨 쓰다듬어주었다.

“저, 정말 기뻐요.”

사실 포티스가 말하지 않아도 시스 황제는 그들을 데려올 생각이 있었다. 포티스의 가족이기도 했지만, 현재 벨저를 따르는 세력의 움직임도 영 좋지 않았기에 그 분위기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아우라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공표되면, 벨저도 더는 꿍꿍이를 드러낼 수 없을 것이었다.

둘은 아침나절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황궁 파티는 이른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기에 낮 동안 무리하지 않고 쉬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식사를 마친 포티스는 시스 황제에게 편지의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마무리를 하고, 아이 덕분에 묵직해진 몸을 침대에 눕히며 단잠을 잤다.

꿈에서 포티스는, 은색과 연보라색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데다 좋은 향이 감도는 연회장에 있었다. 샹들리에의 불빛은 반투명한 커튼이 쳐진, 초저녁의 파란색이 감도는 창문을 비추었다. 크림색의 천이 얹어져 있는 테이블에는 실론과 파즈의 기분을 좋게 하는 미드주가 놓여있었고, 포티스 역시 유리잔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넓은 연회장에는 포티스뿐이었다.

‘이상해, 왜 아무도 없지….’

어쩐지 가만히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포티스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발이 스스로 움직여 연회장 중앙에 유리잔을 아치 모양으로 쌓아 올린 장식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분명히…. 황제가 마셔야 할 술이 있었다.

‘안 돼, 그걸 마시지 마세요…!’

하지만 포티스는 이미 술이 들어있는 병을 쥔 상태였다. 식은땀이 손과 목덜미에 배어 나왔다. 안간힘을 써서 술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팔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병을 기울였다. 투명한 술이 유리잔으로 흘러나왔다. 이 술을 마시면 시스 황제는….

뒤를 이어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포티스는 순전히 물리적인 고통 탓에 잠에서 억지로 깨어나게 되었다.

“안 돼…!”

얼굴은 눈물로 범벅되었고, 튜니카 역시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무섭고 안타까운 꿈을 꾼 기분이 들어, 바로 시스 황제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는 곁에 없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아….”

포티스가 작게 브라우니를 부르자, 브라우니는 평소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우니, 황제 폐하는?”

“정사를 돌보러 가셨어요, 저녁에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구나…. 나 좀 씻고 싶어.”

“목욕물을 준비해드리겠어요, 포티스님.”

포티스는 브라우니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전에 시스 황제와 함께 썼던 욕조는 비어있었지만, 브라우니가 다가가 무언가 조작하자 금세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미지근한 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포티스는 이터너티의 꽃을 듬뿍 넣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수면이 투명하게 일렁였다.

‘그냥 꿈일 뿐이야.’

튜니카를 벗고 물에 몸을 담그면서 물에 젖은 노란 꽃을 만져보아도 불안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시스 황제도 오늘 아침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포티스는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지 몰라서 그저 불안해하며 물속에서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황제 폐하는 내가 지켜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계속 생각하던 것을 소리 내어 말하니 조금 용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포티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스 황제가 저녁에 만나자고 했으므로 포티스는 그가 데리러 올 때까지 몸단장을 마치고 기다렸다. 시스 황제가 골라준 리본이 달린 튜니카를 입고 브라우니와 함께 어울리는 신발을 고심해서 골랐다. 머리에는 이터너티의 꽃으로 소박한 장식을 했다.

포티스는 반지를 낀 손을 매만지면서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황궁 파티에 대연회를 함께 연다면 수많은 황족에 귀족, 젊은 실론과 파즈들까지 함께할 것이었다.

‘……. 날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으시면 좋겠어.’

뭘 잘 모르는 포티스가 보기에도, 황제의 아이를 가졌다고는 하나 대역죄인이었던 뮤를 정식 파트너로 맞이하는 건 분명 평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포티스도 그런 사례를 듣거나 본 적은 없었다. 하물며 황제가 그런 일을 한다니….

그렇다면 적어도, 모두가 보았을 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포티스는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았다.

케이지드에슈의 허공에 아름다운 석양이 물드나 싶더니 순식간에 감청색으로 바뀌었다. 저녁이 되어갈수록 포티스는 안절부절못했는데, 당장이라도 케이지드에슈에서 벗어나 먼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황제 폐하를 지켜야 해….’

이런 생각을 할 때만 잠시 마음이 진정될 뿐이어서, 결국 케이지드에슈의 좁은 공간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초조해했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지?”

시스 황제의 목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다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정장 튜니카는 평소와는 달리 보랏빛 망토에 은사로 훌륭한 자수가 놓여있었다. 시스 황제를 발견한 포티스가 얼른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냥…. 그냥요….”

포티스가 조그맣게 말하며 기대자, 시스 황제는 달래듯이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불안해?”

“조금요….”

무엇이 불안한지 그 원인도 정확히 모르면서 포티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시스 황제는 희미하게 미소를 보이면서 고개를 숙여 포티스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포티스의 손을 잡더니 그를 이끌었다.

“내 곁에 있어 줘, 포티스.”

이제 황궁 파티에 참석할 시간인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 들어왔던 안락한 낙원 같은 케이지드에슈에서 빠져나가면서, 포티스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케이지드에슈에서 황궁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접어들자,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들, 리더인 니즈를 포함한 전원이 완벽한 무장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시스 황제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시스 황제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 보였을 뿐이다.

“이제부터 안전할 거야.”

니즈가 쾌활한 웃음을 보이면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포티스는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해서 위축되었던 몸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가시죠, 황제 폐하.”

파나와 라토가 각각 시스 황제와 포티스의 옆에 붙어 섰고, 다른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들은 뒤를 따랐다.

황궁 파티의 장소는 연회장이었지만, 대연회뿐만 아니라 파티도 겸하기에 훨씬 화려하고 근사하게 꾸며졌다. 연회장 안에는 온갖 실론과 파즈들이 근사하게 차려입고 황제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사실 그들 중 대부분이 기대하는 건 소문의 ‘황제의 뮤’였다. 몇몇은 이미 포티스를 보기도 했고, 또 뮤가 되기 전에 알기도 했지만, 온갖 자극적인 소문들로 인해 다시 한번 포티스를 직접 실물로 보고 싶어 했다.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호위를 받으면서 대연회장의 입구에 도착한 포티스는, 빛이 머무는 듯한 공간으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모습을 시스 황제가 가만히 응시했다.

“후우….”

포티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안으로 발을 옮기자 단번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포티스는 뺨이 달아오르는 걸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 말이 메아리처럼 연회장에 울려 퍼지며, 여러 실론과 파즈들이 예를 갖추며 허리를 숙였다. 포티스는 앞만을 보고 걸었다. 시스 황제가 중앙으로 나아가자 홀에 가득 차 있던 인원이 옆으로 조금씩 물러나며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문득 아치처럼 쌓여있는 유리잔을 보자 포티스의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두통이 덮쳐왔다. 눈을 깜박여보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머리가 아픈 나머지 잠시 걸음을 멈춘 사이 고통은 완전히 포티스의 몸을 장악했다. 마술사의 마법 언어란 이토록 강력한 것이었다. 포티스의 눈은 반짝임이 없이 멍하니 풀려버렸고,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시스 황제에게 독배를…. 건네야만.’

테이블 위에는 황제가 마실 유리잔이 이미 준비되어, 샹들리에의 빛을 섬뜩하게 반사했다.

‘아, 안돼….’

희미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저항이 곧바로 거친 바닷물에 삼켜지는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포티스는 시스 황제의 곁에서 얌전히 걷고 있었는데, 시스 황제는 단순히 포티스가 긴장했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마술사의 최면이 이미 포티스를 조종하고 있는 상태였는지라,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들도 특별히 이상한 눈치를 채지 못했다.

시스 황제가 점점 테이블로 나아가면서, 옆에 있는 포티스의 어깨를 팔로 감싸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달라붙게 했다.

“파티를 즐기도록.”

연회장에 모인 이들에 대한 시스 황제의 인사는 간단했다.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축배를 들고 난 이후에 포티스를 소개할 생각이었고, 어디서 습격할지 모르는 암살자에 대비해 시스 황제도,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들도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상태였다.

‘…….’

그때 귀가 민감한 니즈가 약간 이상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회장 내에서 마술이 행해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쩐지 밖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니즈는 즉시 시스 황제에게 바깥의 경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가 말을 시작했기에 방해할 수가 없었다.

한 쌍의 실론과 파즈가 미래를 함께한다고 알리는 자리에서 으레 그렇듯이, 포티스는 술이 든 유리병을 양손으로 집어 들어 테이블에 놓여있는 은빛 테두리가 둘러진 고블렛에 술을 따랐다. 포티스는 톡 쏘는 술의 달콤한 향도, 많은 이들이 모여있어 약간 갑갑하게 느껴지는 연회장의 공기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눈은 앞을 보고, 몸 역시 움직이고 있었지만, 잠이 들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블렛에 맑은 액체가 거품을 일으키며 절반가량 담겼다. 술은 이미 벨저가 손을 써두어서, 충분한 양의 특수한 독인 이브 압생트를 넣어둔 상태였다. 포티스는 초록빛 술이 담긴 유리잔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잔을 들어 시스 황제에게 건네주려고 했다. 포티스의 손끝이 떨리면서 술잔도 함께 흔들렸다.

시스 황제는 부드럽게 미소를 보이며 잔에 손끝을 댔다.

그런데 그 순간, 포티스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더니 술이 담긴 잔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누군가 고블렛을 빼앗기라도 할 것처럼 자신 쪽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숨에 들이키고 말았다. 투명한 초록빛 액체가 남김없이 목으로 넘어갔다.

“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벨저가 결국 탄식하고 말았다. 자신이 정말 마술사와 거래를 한 것이 맞는가? 마법이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벨저는 결코 포티스가 자신의 의지로 마법 언어의 최면을 깼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일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나이츠 오브 디아망의 기사들 중 일부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마술사의 육체와 혼을 분리시킬 각오를 굳혔다. 아무 쓸모없는 행위라고 해도 적어도 마술사에게서 먹고 마시는 기쁨 정도는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른 수가 없네.’

벨저가 연보랏빛 눈을 번뜩이는 사이, 시스 황제는 의아하게 잔을 든 포티스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미 술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포티스?”

“…….”

포티스는 놀란 얼굴로 분명히 네, 라고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을 열자 나온 것은 말 대신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맑은 피였다. 포티스가 입을 막자 피는 격렬한 기침과 함께 손을 타고 흘러내렸고, 흰 튜니카에 붉은 얼룩이 생겼다.

‘아…. 너무, 너무 좋아해요….’

그것이 최면에서 의식을 되찾은 포티스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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