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걸어 둔 시간
“이제 나가서 잘 살아.”
교도소 소장이 어깨를 두드린다. 의례상 하는 말이 괜히 심중을 건드렸다.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치고는 영 부실한 인사였다. 그의 거칠고 두툼한 손바닥을 느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씨 좋은 봄날이었지만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봄날에도 칙칙한 회색빛 교도소 건물을 바라보았다. 길고 긴 12년의 복역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만 좋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방을 쓴 놈들은 드디어 닭장 같은 감옥을 나가는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부러울 수가 없는 사람이니까.
속된 말로 개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나였다. 처음 소년 교도소에 입소할 당시에도 쥐고 있던 돈은 3만 원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수사 중이던 형사가 딱하다고 혀를 차며 쥐여 준 용돈이었다. 그러니 변변찮은 사식*을 사 먹을 돈도 없었다. 복역 내내 영치금*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고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온종일 출력*을 나가 일을 해도 빵장*들에게 털리고 나면 천 원짜리도 몇 장 안 남았다.
재산 없음, 가족 없음, 능력도 인맥도 없음, 봐줄 것 하나 없는 놈이니 교도소 안에서도 대놓고 왕따와 폭력이 이루어졌다. 숨이 붙어 있어 살긴 했지만, 미래가 긍정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늘 표정도 없이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며 교도소 구석에 웅크린 채 시체처럼 지냈다.
교도소 근처 버스 정류장에 조그만 마을버스가 몇 번이나 멈춰 섰지만 타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묵묵하게 시간을 보냈다.
차츰차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하늘이 어두워지고 서편의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을 때쯤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약속 시각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물어 가며 약속 장소 지하철역 근처까지 걸어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늘은 검푸른 색이 되어 있었다.
열다섯에 살인을 저질렀다. 살인 방법이 잔인하고 죄질이 악해 이례적으로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김천의 소년 교도소에서 시간을 꾸역꾸역 채우다 스물둘에 쫓겨나듯 안양에 있는 교도소로 옮겨 살았다.
소년 교도소의 소장은 나를 안쓰럽게 여겨 붙들어 놓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평판이 바닥인 죄수 하나를 그 나이까지 데리고 있는 게 아마 더 곤란했을 것이다. 결국은 김천에서도, 안양에서도 사고에 많이 연루되는 바람에 가석방은 꿈도 꾸지 못하고 꾸역꾸역 12년을 전부 채웠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도, 작업장의 사람들도, 교도소 소장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등에 붙어 있는 붉은 딱지는 내가 구원받을 수 없는 살인마라고 외치고 있었다. 같은 원생들 역시도 그랬다. 그들은 법정에서 내가 천사 같은 아버지를, 자신들의 신을 죽인 살인귀라고 소리 질렀다.
형제들에게 원장은 정말로, 정말로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빠듯한 고아원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았다. 우리가 마음대로 무릎에 올라타거나, 다리에 매달려도 웃기만 했다. 너른 어른의 품에 안겨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상쾌한 바람,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자애로운 얼굴…….
모두는 그를 하느님이고 신이라 믿었다. 원장은 우리를 천사들이라고 불렀다. 천사는 신의 종이다. 우리는 그걸 모르고 귀애받는다 생각하여 그저 좋아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첫 번째 종이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원장은 신이 아닌 비열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신에서 인간으로 몰락한 원장을 죽일 때의 감각은 생생했다. 손톱 밑을 파고들던 물컹거리는 살점. 분수처럼 치솟던 뜨거운 피와 목이 찢어져라 소리 지르던 그의 부어터진 얼굴. 불덩이에 일그러져 춤을 추듯 방 안을 뛰어다니던 풍선 인형 같은 꼴. 여러 인생과 고아원을 한 번에 집어삼킨 화마.
단 한 번도 원장을 죽였다는 사실을 후회해 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황홀한 일이었다. 다시 돌아가도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죽일 수 있었다. 더 잔인하고, 더 끔찍한 방법으로 수십 번 반복해서라도 죽일 수 있었다. 집과 터를 잃어버리고 죄를 짓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윤이원 아니신가.”
상념을 깨고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매끈하고 젊은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팔을 떼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방금 퇴근을 했는지 양복 차림이었다. 내가 12년을 허물처럼 찢어 벗어 버리는 동안 누군가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다.
“놔.”
“이때까지 너 뒷바라지해 줬더니 버리겠다 이거야? 너무한다, 정말.”
뒷바라지 좋아하시네. 얼굴을 찡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팔을 올린 주영이 그대로 내 등을 떠밀어 근처 포장마차 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 하나를 빼서 앉자마자 서주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모님, 여기 두부김치랑 어묵탕이요.”
“……두부 좀 빼라.”
“이런 날엔 두부를 먹어야지.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자기 마음대로 음식을 주문한 주영이 웃으면서 소주를 받아 뚜껑을 땄다. 말없이 소주잔을 집어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낯선 물건이었지만 익숙한 물건이기도 했다. 한때는.
“술은 처음인가?”
그걸 전혀 모르는 주영이 묻는다. 테이블의 물 얼룩을 손끝으로 문질러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한 잔 마시고 뻗지 마.”
“너보다 잘 마실 텐데.”
주량은 자신 있었다. 최소한 서주영보다 잘 마시는 편이었다. 익숙한 몸짓으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주량 네 병.”
“쓸데없이 정확하네. 그 안에서 술 마셔 봤냐?”
“아니.”
교도소에서 소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킥킥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주영이 술잔을 손안에서 가만히 기울이더니 물었다.
“그럼, 꿈에서?”
“그래.”
꿈이라, 주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 없이 빈 잔을 채워 주었다.
서주영. 고아원에서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였던 그는 수감 생활을 할 때 유일하게 면회를 와 준 사람이었다. 입소하고 3년 만에 받았던 편지와 5천 원, 만 원씩 넣어지던 영치금. 변호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한 것도 충동적인 감상에 젖어서였다.
짧은 면회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들은 뒤 주영은 정신병자의 망상이라고 말했다. 본성에 내재되어 있던 살인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고, 나는 가볍게 긍정했다. 틀리지 않은 답이었다.
소년범이 받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형량을 받고 오랜 시간 지옥과 가장 가까운 교도소에서 살았다. 그렇지만 그곳은 결코 지옥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진실한 지옥을 보았다. 검은 불꽃, 그 뜨겁고 염도 높은 악취.
나는 교도소에서 뉴스를 보지 않아도 사회가 돌아가는 흐름을 알았고, 과학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는지 알았다. 스마트폰도 인터넷의 발달도, 그 해의 이슈도.
종종 내가 기억하는 세상이 사실은 거짓된 상상이라는 악몽을 꿨다. 불안감으로 인해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릴 때면 신기하게도 서주영이 면회를 왔다. 주영은 세상에서 가장 크게 바뀐 이야기를 한두 개쯤 떠들었고, 고아원에서 지내던 아이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 주었다.
세상은 기억하고 있던 미래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고, 서주영을 제외한 고아원의 형제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상냥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를 죽인 나를 귀신이 낳은 아이라 욕하며 침을 뱉었다. 그때마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구역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형제들에게 분노를 느낀 것이 아니다. 원장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들이 싫었다. 고정된 미래나, 고장 난 인생이나, 기억 같은 것들 전부.
생각의 시작은 더운 여름이었다. 선풍기가 미지근한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가던 방에서 깨어나 원장의 방문을 두드렸다. 이어지는 살을 저미는 감촉, 비명을 지르던 원장의 목소리, 더러워 모조리 불태우고 싶었던 기억의 증거.
“당장 지낼 돈은 있고?”
“응.”
“생필품 사면 돈 많이 들 텐데, 너 거지잖아.”
말을 참 예쁘게도 한다. 얼굴을 조금 찡그리곤 모난 표정 없이 빙글빙글 웃는 주영을 흘겨보았다.
“일당 주는 일이라도 하지, 뭐.”
“노가다?”
“노가다.”
“비리비리해서 벽돌 나르다 깔리는 거 아닌지 몰라.”
굳이 입으로 꿱, 하고 터지는 소리까지 내며 납작하게 깔린 흉내를 내는 주영을 노려보았다.
“좀 닥쳐라.”
“진심이야, 진심.”
“진심이면 더 닥쳐.”
주영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한두 푼 모았던 돈으로는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얻은 싸구려 단칸방도 주영에게 빚을 졌다. 백만 원도 없는 인생. 삶은 마른 우물이었다. 오목하게 고여 썩어 가는 물도 없었다. 돌바닥 위에 쌓인 먼지와 쓰레기. 다들 쳐다도 보기 싫을 뿐이지 내 안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을 터였다.
덜떨어진 인생이지만 출소를 기념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얀 두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귀퉁이를 잘라 먹으며 오랜만에 음식의 맛을 느꼈다. 혀가 아릴 정도로 자극적인 짠맛, 단맛과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 교도소의 음식은 멀건 국물에 기름이 조금 떠다니는 게 전부였다. 살기 위해 먹었다기보다는, 먹지 않으면 급식판에 얼굴을 처박고 괴롭혀서 억지로 먹었다.
간간이 소주를 한 병씩 추가하다 보니 테이블 위에 동그란 소주 뚜껑이 점점 늘어났다. 초록색 알루미늄을 구부러트려 날카로운 모서리를 안으로 차곡차곡 접었다. 조금 취했는지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주영이 이마를 짚은 채 물었다.
“바깥 공기는 어때?”
“그냥 똑같아.”
“이상한 놈이네.”
오간 말은 적었다. 아무도 열심히 살겠다거나, 열심히 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어날까.”
“그러지, 뭐.”
고개를 끄덕이고 늘어진 상체를 들어 올렸다. 코를 간지럽히는 꽃가루와 흙먼지. 서울 근교의 봄 냄새가 온화해 이미 잊어버린 얼굴이 빛처럼 머릿속에서 반짝거렸다. 주황색 불빛, 빨간 천막의 반사된 색소 먹은 빛.
따뜻하네. 주영이 천막 사이로 스며 들어와 바닥에 깔린 꽃잎을 보며 낭만적인 소리를 했다. 옅은 분홍색을 보며 정말로 그렇다는 척 대꾸했다. 그러게.
지갑이 가난한 나를 대신해 주영이 지갑을 열고 계산했다. 짙은 색 양복이 무거워 보이는 어깨를 따라 한참 도로를 거슬러 걸어 올라갔다.
“보여 준 적 있나?”
“응?”
“네가 살 집.”
“아니…… 그냥 벽 있고 지붕 있겠지, 뭐.”
“지하철이랑 버스 타기는 꽤 좋아. 주변에 상점도 많고 인적도 뜸하진 않고…….”
“그럼 됐네.”
어디든 교도소보단 깔끔하고 넓은 공간일 거다. 여름에는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산소가 희박하던 그 좁은 골방.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천장에서 물이 샜다. 일정한 간격으로 뚝뚝 떨어져 이마와 콧잔등을 적시던 물방울을 생각하며 신호등을 보았다. 붉은색으로 깜박거리던 신호등이 이내 물처럼 파란빛으로 얼룩지더니 선명한 녹색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방이 좀…….”
운을 떼는 주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움직였다. 그 순간 거대한 경적이 뇌를 관통했다. 집채만 한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스쳐 달렸다. 육중한 트레일러 꽁무니가 낡은 운동화 코끝을 긁으며 멀어졌다. 소름이 쭈뼛 섰다.
“미쳤냐, 출소하자마자 죽으려고?”
목덜미 옷깃을 잡아챈 주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타박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마자 신호등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붉은 빛이 켜져 있었다. 분명히 아까는 녹색이었는데. 눈을 깜박이다 녹색 신호등 위치에 달라붙은 검은 몸체를 발견했다.
날카롭게 생긴 검은 덩어리가 꿈틀거리면서 바닥에 쏟아졌다. 갈아둔 고깃덩이처럼 눈과 코의 형체가 완전히 짓이겨져 있었다. 쩍 벌어진 주둥이에서 녹색 진물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건너편에 서 있는데도 진물에서 느껴지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다.
주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텅 빈 어둠 사이를 가만히 노려보는 나에게 신호 준수에 대해 잔소리를 시작했다. 신호등은 한참 뒤에야 녹색으로 변했고 달리던 차들도 서서히 정지선 앞에 멈춰 섰다. 나란히 길을 건너며 주영이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건 너무 허무한 인생 계획 아니야?”
“……뭐 어때.”
“이미 크게 사고도 쳤으니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장식해 줘야지. 교통사고는 너무 평범하다.”
“닥쳐.”
“최소한 방화라도 해 봐.”
“그건 이미 했거든.”
“아차.”
쓸데없이 티격태격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신호등 옆을 지날 때 시커먼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발목 근처를 쓸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죽음이 코앞을 지나쳐 갔다는 걸 잊은 것처럼 내 주둥이에서는 태연한 헛소리만 쏟아져 나왔다.
주영이 구해 놨다는 집에서 역까지의 거리는 가까웠다. 지하철역에서 15분 정도. 조금 낡은 골목길 중앙에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원룸 건물이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에서는 터널에서 나는 낡은 철문과 습기 찬 냄새가 가득했다.
주영이 앞장서서 내려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울컥거리며 냉기가 흘러나왔다. 퀴퀴한 이 악취는 익숙했다. 시체가 수십 구는 굴러다녔을 것 같은 방의 몰골을 보고 현관문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음, 서주영이 눈치를 보더니 등을 툭 쳤다.
“그래도 지하철로 30분이면 서울 중심이나 마찬가지야. 뭐…… 상태가 적당히 쓰레기 같긴 하지만 괜찮아, 너도 쓰레기니까.”
“아주 고맙다.”
보증금 200만 원, 월세 17만 원. 교통의 이점에 비하면 지나치게 저렴하긴 했다.
“……몇 달 전에 사람이 죽은 뒤로 월세를 내렸다더라.”
대신 싸잖아? 쓸모없는 위로를 하며 주영이 힘차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차마 같이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유일하게 바깥으로 뚫린 창문을 현관에서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창 가득 허연 달이 꽉 차 있었다. 곧 손바닥 두 개가 둥실둥실하게 떠오른 보름달을 가리며 창문에 철썩 달라붙었다. 길게 자란 손톱이 유리창의 표면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그래. 괜찮겠지.”
괜찮을 수가 없었지만, 애써 대답했다. 주영이 힘내라는 듯 어깨를 한번 꽉 쥐었다 놓았다.
“일단 조금만 써. 시간 나는 대로 더 돌아다녀 볼게.”
“아냐, 충분해. 나 이런 거 익숙해.”
진심이었다. 교도소는 괴물만 살았다. 사람 흉내를 내는 놈이 외려 웃긴 취급을 받았다. 인간이 되지 못한 놈들을 묶어 놓았다 보니 그 안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창문에 붙은 저런 게 복역 중인 놈들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서 아는 체를 해 왔다. 지금 와서 이런 축축한 방이 무서울 수는 없었다. 단지 싫을 뿐이다. 살아갈수록 싫은 것은 점점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고마워. 잘 가.”
“……연락해.”
“응.”
주영이 빠져나간 텅 빈 방에 서서 들고 왔던 짐을 내려놓았다. 방 구석구석 찌꺼기처럼 뭉쳐 있던 것들이 서서히 기어 나왔다. 천장에서 내려온 흰 발이 어깨를 툭툭 친다. 전등이 삐걱거렸다. 어깨를 건드리는 차가운 발을 짜증스럽게 치우고 방구석에서 쪼그려 앉았다.
여전히 방안에는 창문을 긁어 대는 날카로운 손톱 소리가 고막을 찢을 것처럼 울렸다.
“……아, 정말 시끄럽네.”
원장을 죽인 걸 후회하지 않는다. 몸을 웅크린 채로 귀를 막아도 소음과 비슷한 자괴감은 끝이 없었다.
마음 속의 바닥에 미끄러운 물이 웅덩이처럼 고였다. 꿈속에서도 쫓아와 괴롭히는 망자의 사념. 오늘도 불면의 밤, 타오르는 지옥의 불구덩이가 살갗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더운 숨을 뱉어 냈다. 아직도 살아 있었다.
***
아침에 눈을 떴더니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남자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멍 뚫린 곳은 터널처럼 깊고 어두웠다. 이게 무슨 괴팍한 아침 인사야. 비명을 지르는 대신 안면을 손으로 후려쳤다. 귀신은 비틀거리며 옆으로 쓰러져 끽끽거리는 기묘한 곡성을 냈다. 아침인데도 다들 기운이 팔팔하다. 혀를 차면서 방 옆에 딸린 작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가 깨진 바가지가 새롭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이건 또 뭐야.”
이제 보니 욕실 구석구석 검푸른 곰팡이가 포진해 있다. 타일 틈마다 꽉 차 있어서 처음에는 까만색 실리콘으로 시공이라도 한 줄 알았다. 손톱으로 득실득실 자라난 곰팡이를 긁어 보다 한숨을 쉬었다.
“되게 교도소 같네.”
위생으로 치면 최소 교도소 독방 수준이다. 남부럽지 않은 낡은 시설을 자랑하는군. 사람이 죽어 나갔다는 말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는지, 아니면 집터의 탓인지 수도꼭지를 돌리자 녹물이 나왔다. 한참이나 붉은 녹물을 빼고 나서야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미지근한 물로 몸을 적시고 일어나자 현기증이 났다. 하얗게 변해서 핑핑 돌아가는 시야에 세면대를 잡고 한참 끙끙 앓았다.
“음.”
사야 할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주영이 미리 몇 개 가져다 두긴 했지만, 속옷도, 입을 만한 옷도 필요했다. 이제는 휴대폰도 만들어야 할 테고,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도 바꿔야 했다. 거기에 새로운 은행 계좌도…….
세면대 위에 달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눈 밑이 퀭했다. 살인을 저지른 이후 단 한 번도 좋은 꿈을 꾸지 못했고, 삶은 계속 불행의 미만을 달렸다.
“이래서야 살아도 사는 게 아니잖아.”
눈을 뗀 뒤에도 거울에 무언가가 찰싹 붙어 내 얼굴을 똑같이 흉내 내며 웃는다. 배알도 없이 따라서 실실 웃어 줬다.
‘살려 줄까.’
누군가 물었었다.
‘살려 줄까, 원아.’
가장 절박한 순간에 그렇게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손을 잡았다. 살고 싶다 대답했다.
“살려 줄 거면 좀 확실하게 살려 주지 그랬나.”
싱거운 소리를 하자 거울 안에 들어 있는 내 얼굴이 픽 웃는다. 그대로 남겨 놓고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으며 바깥으로 나왔다.
일단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교도소에 있을 때 알고 지낸 노망난 인간이 나중에 일자리가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연락처를 건네줬었다. 달갑지는 않았지만 마땅히 손 벌릴 곳도 없으니 먼저 그곳에 가 볼 요량이었다.
신발을 구겨 신고 문을 열었다. 먼지 낀 계단 위는 바깥에서 달라붙어 오는 봄바람 냄새가 화하게 나고 있었다. 시멘트 계단 위에 자작하게 깔려 있는 벚꽃 잎이 바닥에서 움찔거렸다. 그 순간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허리를 들어 올렸다.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내 몸 전체를 전부 먹어 치우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
나지막한 목소리가 코앞에서 탄성을 터트렸다. 조그만 웃음소리, 옷자락을 쥐여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그치던 천연덕스럽고 사랑스러운 소년.
“언제 나오나 했네.”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은 먼 옛날의 언제와 매우 닮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태양 빛에 가려진 얼굴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달갑지 않은 얼굴 옆으로 비스듬하게 귓가를 스치고 내리쬐는 직선의 빛을 보았다. 오랫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태양의 황금색을 눈을 붉히며 노려보았다. 침으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오랜만이에요, 형.”
꿈속에서의 친근했던 감정이 고개를 슬쩍 꺾고 심장의 어느 부위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연약한 혈관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잘 지냈어요?”
“……하재연?”
“네.”
기억 속의 소년은 시간이라곤 1초도 놓치지 않고 빨아들인 것처럼 훌쩍 자라 있었다. 얼굴을 전부 일그러뜨리며 울던 소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청년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십자가에 박힌 신의 모습과 같았다. 불안한 기분에 뒷걸음질을 치려다 맥없이 붙잡혔다.
“보고 싶었어요.”
끌어안긴 몸은 적당히 더웠다. 청년이 된 재연이 입은 하늘색 셔츠에서 서늘한 바람의 향이 났다.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박거렸다. 태양에 고스란히 방치된 시체를 안는 것같이 몸에 닿은 체온은 뜨거웠다.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재연의 울던 얼굴. 그리고 그 기억보다 훨씬 건너편에 있는 것은…….
“형은 나 안 보고 싶었어요?”
어릴 적 앳된 모습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는 얼굴이 눈을 반달로 접었다.
“어떻게…….”
“주영이 형한테 물어봤어요. 보고 싶어서.”
집들이 선물도 샀고. 재연이 옆에 있는 묵직해 보이는 노란색 마트 봉투를 들어 올리며 마저 말했다.
“차 한 잔 안 주나요?”
“…….”
“아니면 내가 끓여 줄 수도 있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닫았던 현관문을 다시 열었다. 건전지가 떨어져 가는지 경고음을 내며 느릿느릿하게 풀리는 도어록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거품이 터지지만 절대로 끓지 않는 물이 된 것 같았다.
재연이 현관 근처에서 머뭇거렸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커다란 짐을 든 채 들어오지는 않는다. 신발을 한쪽 구석에 밀어 놓고 가볍게 손짓했다.
“……들어와.”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연이 반색을 띄고 웃으며 한발 성큼 들어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대한 건 아니지만, 다짜고짜 기다리던 것치곤 예의가 있는 모양이다. 무거워 보이는 짐을 건네받기 위해 손을 뻗을 때 재연이 완전히 집 안으로 올라왔다. 갑자기 습기로 출렁거리던 집이 조용해졌다. 종이 위에 지우개질을 한 것 마냥 방금까지 집 안에서 들끓던 것들이 자취를 감췄다.
“깨끗하네요.”
가져온 짐을 구석에 내려 둔 재연이 좁은 방 안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며 빙긋 웃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얼떨떨한 기분을 숨기려고 굳어지는 얼굴을 문지르면서 바닥에 주춤 앉았다.
“뭐…….”
타인과 하는 대화는 여전히 어색했다. 집 안이 갑자기 지나치도록 좁게 느껴졌다. 공기도 희박했다. 불편한 자리였다.
“그래도 살기에 좋은 집은 아닌 거 같은데.”
“상관하지 마.”
“야박하게.”
재연이 작은 목소리로 투정을 부린다. 일방적인 친근함이 어색하기만 했다.
“출소한 건 어떻게 알았어?”
“감이죠. 슬슬 했겠다 싶었어요.”
“…….”
“괜찮아요, 나밖에 몰라요. 다른 애들이랑은 연락도 끊겼고.”
이상한 얼룩이 묻어 있는 누런 장판을 손톱으로 긁으며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재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 왔다. 마디가 지나치게 굵지도 않았고, 길쭉하게 쭉 뻗은 손가락이었다. 손톱 주변도 거스름 없이 정갈하다. 굳은살이 박혀 거친 내 손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지내고 있어요.”
“…….”
“그런데 이렇게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행복 고아원. 행복이라곤 조금도 남겨 주지 않았던 옛 터전의 이름을 조용히 읊어 보았다.
“형이 내 손을 잡고 자주 걸었죠.”
단순히 새벽마다 엄마를 찾으며 깨는 재연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고아원은 방음 시설이 좋지 않았다. 한 사람이 울기 시작하면 다른 애들도 잠투정하며 깨어났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당시에는 나도 아직 어렸지만 형으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으니 반쯤은 책임감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복도를 길게 가로지르던 그 서늘한 공기가 싫던 것은 아니었다. 칭얼거리며 보채던 재연이 내 품에만 안기면 울음을 그치던 것도 좋았다. 형아, 어리광 섞인 음성이 사랑스러웠다. 사실은 특권처럼 누렸었다.
“그 복도 풍경이 아직 생각나요.”
재연이 가만히 내 어깨 위로 머리를 올려 온다. 옛날에는 품에 안아도 줬지만, 이제는 살짝 기대 오는 무게도 벅차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 재연이 말한 것은 이미 퇴화한 기억이었다. 고작 12년이 아니다. 그보다 더 오래전의 기록이었다. 추억이 끝났으니 내게는 그때의 애틋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 형을 생각했어요.”
그립다는 건 꿈에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옛날을 더듬으며 의심과 불신에 찬 시선으로 재연을 바라봤다.
“매일 밤.”
참 이상한 일이다. 교도소에 처박혀 있을 때는 연락 한 번 없었던 놈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보고 싶었다며 열렬한 고백 타임이라니. 오래 살진 않았어도 이것저것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나왔다고 환대라도 해 주는 건가.
“아, 그럼 계속 생각하든가.”
괜히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재연이 선물이라고 가져왔던 봉투를 끌어다 열었다. 묵직한 봉투에는 커피나 티백, 주전부리가 잔뜩 들어 있었다. 가장 위에 있는 식빵 봉투를 열자 고소한 냄새가 났다.
“잼도 사 왔는데.”
“필요 없어.”
밋밋한 빵을 씹으며 빗물과 곰팡이가 얼룩진 천장을 바라보았다. 입 안과 목구멍이 금방 뻑뻑해졌다. 빵가루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꾹꾹 입 안에 빵을 뭉쳐 넣으며 손바닥으로 지저분한 바닥을 쓸었다. 걸레질을 했었는데도 손바닥이 금방 새까맣게 변했다.
싱크대에서 지저분해진 손을 씻는데 재연이 등 뒤에서 얼쩡거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른거리는 인기척이 신경 쓰인다.
“좀 앉아 있어.”
“음, 형이 서 있으니 불편해서.”
“내가 더 불편한데.”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이 집까지 쳐들어온 덕에 가시방석인 건 이쪽이었다. 손에 걸린 물방울을 털며 등을 돌렸다. 전등을 반대로 짊어진 재연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니, 그림자가 진 것뿐이다.
“형.”
흰 손이 뻗어와 목덜미 근처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름이 끼쳐 어깨를 움츠리자, 검지와 중지로만 가볍게 빗장뼈 부근을 눌러 어깨를 펴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라 재연의 손을 쳐 냈다.
“갑자기 왜…….”
“참으려고 했는데.”
“응?”
“내가 오래 기다리긴 했나 봐요.”
까만 눈동자가 일렁거리더니 가까워졌다. ‘아, 새카맣다’라고 생각할 무렵 입술이 닿았다. 숨은 집 안의 습도만큼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끓을 듯 말 듯 갈팡질팡하던 물이 단숨에 부글부글 끓어 흘러넘쳤다. 고온의 물을 잘못 받아 낸 심장이 온통 화상을 입었다. 쓰라렸다.
“……너.”
지나치게 많은 말들이 무성의 소음이 되어 넘쳐흘렀다. 입만 벙긋거리며 얼어 있자 재연이 오묘한 표정으로 슬쩍 웃었다.
“강의 늦겠네.”
태연한 목소리가 툭툭 발치에 떨어졌다. 명치끝을 헤치고 칼날이 서늘하게 들어선 것 같았다.
“저 갈게요. 자주 봐요.”
홀로 만족스러운 얼굴이 순식간에 현관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녹슨 소리를 내며 닫히는 두꺼운 문 사이로 뼈 모양이 드러난 손가락이 보이더니, 서서히 집 안으로 미라같이 바짝 마른 몰골이 기어들어 왔다.
그게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장판과 장롱 구석구석에서 벌레처럼 다시 불쾌한 것들이 들끓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불청객이 불쾌한 손가락을 꺾으며 앞에서 입을 벌렸다. 입 안에 구더기가 가득했다. 한숨을 쉬며 그놈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최악이었다.
***
주영의 들뜬 목소리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하재연이 찾아왔다고?”
“응.”
“그래서 이건, 걔가 사 온 거고?”
“응.”
주영이 커플 머그잔을 들어 올리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 같이 이상한 표정을 지어 줬다.
“너한테 뽀뽀도 했다고?”
“응.”
거리낄 것도 없으니 그대로 일러바쳤다. 주영의 입꼬리가 이상하게 꿈틀거렸다.
“나 요즘 그런 거 있나 봐.”
“뭐.”
“호모 레이더.”
웃기지도 않는다. 코웃음을 쳤더니 주영이 손가락으로 앉은뱅이 소반을 두들기며 열변을 토했다.
“진짜야, 요즘 내 주변은 게이뿐이야.”
“그러는 너는.”
“여자 얼굴 못 본 지 한참 된 거 같아……. 이러다 꿈에 남자가 나오면 어쩌지.”
“네 욕구 불만 스케일을 알고 싶진 않거든.”
쓸데없이 불쌍한 척하는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직장 상사가 주말 내도록 부려 먹어 애인한테 매번 차인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 외울 정도였다.
“너무하시네. 피곤함을 불사하고 찾아온 내 열정이 보이지도 않냐.”
“안 보이니까 닥치고 커피나 마셔.”
면박을 주자 주영이 말없이 입술에 머그잔을 붙였다. 입술이 씰룩거리는 게 여전히 이 상황이 웃긴 모양이다. 하긴, 12년 만에 만난 사내자식이 다짜고짜 입술 박치기 하고 사라졌으니 황당하긴 매한가지였다.
“걔도 참 이상하네. 너랑 어울린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안 돼. 나는 말도 못 하면 스트레스로 말라비틀어질 거야.”
주영이 다시 직장 상사가 사이코에 상상 이상의 변태라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 귀로 듣고 흘리고는 혼자 머리를 굴려 가며 고민했다. 내 삶은 원래부터가 이상했고 전부 비틀려 있었다.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바깥에 나오자마자 겪는 일이 이런 거지.
흘끗 곁눈질로 주영의 허벅지에 매달린 것을 보았다. 얼굴 절반이 없는 귀신 하나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달갑지 않은 눈웃음을 친다.
토할 것 같네. 얼른 커피로 입을 채우며 주영의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서주영은 자신의 몸 이곳저곳에 귀신이 얹혀 있는 것도 모르고 신나게 상사 뒷담을 하면서 커피를 두 잔째 축냈다. 재연이 들어왔을 때와 달리 집 안은 여전히 숨 막히게 많은 귀신들로 들끓고 있었다.
늘 자리가 비좁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교도소에도 유달리 기가 강한 사람은 있었다. 범죄자들뿐이니 오히려 많은 편에 속했지만, 하재연처럼 깔끔하게 한 장소에 있는 귀신을 전부 밀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이상하네. 조금 더 고민하고 있을 때 서주영이 할 말을 끝냈는지 드디어 이상한 몸짓을 멈추고 잔을 내려놓았다.
“일할 곳은 구했고?”
“응, 내일 소개받은 곳에 한번 가 보려고.”
“그렇군. 나도 알아보고 괜찮은 곳 있으면 소개해 줄게.”
“그래.”
주영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바닥에 앉은 채로 배웅하고는 머그잔 바닥에 조금 고여 있는 커피 믹스를 마저 마셨다. 단맛이 강하게 났다.
살인을 저지른 이후로 하재연을 만난 적이 없었다. 재판 중에 법정으로 찾아온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릴 적 그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애틋하게 돌봐 준 이유만으로 찾아왔다기엔 부족했다.
하물며 이성적인 사랑이라면 더욱 기이한 일이었다. 우리는 둘 다 남자였고, 성적인 접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열다섯이던 과거에는.
좀 더 구체적인 사연이 있어야 재연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교도소 골방에 처박혀 벼룩과 씨름하던 지난 십여 년간 도대체 무슨 사연이 생길 수 있는 거지? 짚이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열다섯 살에 꿨던 꿈. 주영에게만 말했었던 꿈을…… 하재연도 꿨다면?
혹시나, 불확실한 가정이 머리 한구석을 때렸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연이 찾아와 감성에 찌든 소리를 했지만 지난 12년간 연락 한 번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인과 관계가 강하게 얽혀 있어서 그런가. 인과라. 다듬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 안을 깨물었다.
오래 기다렸다고 했지. 그때는 하재연 자신이 어렸기 때문에 12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긍정적인 뜻으로 생각해 봐야 하나. 허벅지에 매달려 오는 귀신을 무릎으로 쳐 떨어트린 후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늪에 빠진 것처럼 장판이 질척거렸다.
그 꿈에서도 원장은 우리의 신이었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있어 유일한 마음의 혈육, 아버지, 가족. 맹목적인 사랑이 눈을 가렸기에 아무도 고아원의 병폐를 몰랐을 것이다.
종종 고아원의 살림이 어려워지면 원장은 입을 줄이기 위해 한 명씩 입양을 보내곤 했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인자한 인상을 지닌 양부모들이 찾아와 인사를 하고, 동생들을 데려갔다. 헤어지는 순간이 아쉬워 눈물바다가 되었던 것도 잠시였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 아이가 없었던 것처럼 놀았다. 학교에 다니고, 모여서 퍼즐 맞추기를 하다 또 누군가를 떠나보냈다.
‘입양’이라.
고아원이 어려울 때마다 기적처럼 이루어지던 입양, 그 뒤로 이상하게 다시 유복해지던 생활. 기계적일 정도로 똑같은 패턴을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 우리 중 의심 많은 사람은 없었다. 그곳에서 일해 주던 보육 교사조차도 몰랐다. 우리는 원장의 품에서 세상의 악함과 타락을 모르도록 천진난만하게 자랐으니까.
가끔은 막 한글을 다 뗀 어린아이가, 가끔은 이미 중학생이 된 맏형들이 입양을 갔다. 그러나 나만은 늘 입양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원장은 나를 아꼈다. 이원이 너를 특히 사랑한다며, 예쁘고 가장 자랑스러운 아이라고 입을 맞추고 칭찬해 줬다. 자애로운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세상의 꽃과 달콤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내가 가장 아끼니 영원히 이 아비와 같이 살자고 속삭였다.
내 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웅크렸다. 숨을 참자 헐떡거리는 심장 소리가 몸 안에서 깊숙하게 고였다. 슬금슬금 몸 위를 타고 넘어온 것이 혀를 할짝이며 귀에 속삭였다.
살인자, 악마, 죄, 낙인, 벌과 구원…….
보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고아원을 떠났다. 다 큰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있기에 그곳은 너무나 작았고 볼품없이 가난했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고아원에 남았다. 원장 곁에서 고아원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자잘한 서류 작업을 처리하며 소소하게 용돈을 벌었다. 입양 기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그때의 이야기였다.
서류를 집어 던지며 무섭게 화를 내는 내 앞에서 원장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변명했다.
‘다 죽어, 다 굶어 죽을 바에야 하나만 죽는 게 낫지 않겠니. 응, 돈이 얼만데. 사람이 얼마나 귀한데…….’
우리를 품에 안고 귀하다 말해 준 것은 그런 뜻이었다. 원장의 말을 듣고 배신감에 휩싸였다. 말을 떼기 전에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크고 나서는 믿었던 신에게 배신당했다. 나는 낭떠러지를 평지라고 생각하고 걸었나. 지나쳐 온 삶은 전부 비틀려 있었다. 결국은 구원받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구석진 곳에서 굳어 있는, 나이 든 노동자의 모습을 한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 잇몸이 시뻘겋게 전부 드러난 귀신이 뻐드러진 이를 딱딱 부딪치며 외쳤다. 나가, 걸어라. 뛰어라. 피를 흘리고 일을 해라. 정지된 머리를 때리는 거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어둠이 긴 밤이 오면 또 방 안에는 물이 고이는 것처럼 수많은 영혼이 찾아들겠지. 배 위에 마음대로 엉덩이를 깔고 앉아 사람을 괴롭히는 어린아이의 혼을 보며 손가락으로 장판을 두들기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편하게 쉬어서는 안 되는 죄인이었다. 아직도 갚아야 하는 빚이 수억 수천의 금화가 되어 발밑에 깔려 있었다. 아직은 인간이다. 일하고, 살아야 했다. 최소한 죽음이 직접 등 뒤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
갓 만든 따끈따끈한 통장과 카드를 들고 구인·구직이라는 노란 팻말이 커다랗게 붙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 안에 있는 낡은 소파 옆에는 전기히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소파 위에 누운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노인이 흘끗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뻘겋게 켜진 기계의 불빛 탓인지 눈이 덩달아 붉었다. 이마 위에 깊은 주름살이 패여 있었다.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도도하게 굴더니, 고까운 얼굴이구먼.”
“누가요, 제가요?”
도도하다고. 코웃음을 치면서 미닫이문을 닫아걸었다. 비닐 가죽이 벗겨지고 삭은 스펀지가 드러난 의자를 빼 걸터앉았다. 노인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지가 풀풀 날린다. 거만하게 의자 등받이를 팔로 끌어안은 채 몸을 흔들자 삐걱거리는 스프링 소리가 났다.
“일자리를 찾는 거냐?”
쌀쌀한지 위에 낡은 작업복을 껴입은 노인이 담배 필터를 손톱으로 누르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개털이니까요.”
“여전히 약질 못해. 자네 정도면 학교 안에서도 잘 살 수 있었어.”
“아하…… 아시다시피 집단생활은 영 편하지 않아서요.”
점잖은 체하는 말투에는 가시가 있다. 노인이 손을 덜덜 떨며 담뱃재를 털었다.
“그래서 그 꼴을 당하며 살았던가?”
“꼴이란 게 정확하게 뭐죠?”
“공사 아니겠나.”
공사라. 순식간에 입술이 비틀렸다. 골방의 놈들은 평소에는 내 존재를 잊고 지냈지만 눈에 띄면 그날 기분에 따라 공사를 시작했다. 교도소의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공사란 대부분 잔인했다. 폭력, 강간, 고문.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았지만 가끔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하물며 그게 교도소를 옮겨 다니며 10년 넘게 이어졌다면.
“끝까지 버티다니 지독하군.”
“그래서 저한테 연락처를 알려 주신 것 아닌가요.”
“맞아. 자네가 독특한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았지.”
눈앞의 남자는 벌써 70이 넘은 노인이다. 살인 및 사기죄로 복역을 하던 이 노인은 늙은 몸으로도 알력 싸움에서 이긴 자였다. 교활한 세 치 혀와 사람의 목숨으로 교도소 안에서도 돈을 벌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시킬까?”
노인이 가래를 뱉으며 웃었다. 그의 가랑이 사이에서 무릎을 꿇고 빵을 구걸하며 성기를 빨았던 과거가 있다. 네발로 기어 다니며 시키는 대로 오물에 머리를 처박고 개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 가며 목숨과 식량을 빌어먹었다.
그는 인격적이지 않은 행위을 군말 없이 행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고, 출소 전에 자신의 연락처를 건넸었다. 아마 지금도 교도소에서 하던 것과 비슷한 일을 하며 지내고 있겠지. 더러운 곳에서, 더 더러운 인생을 위해.
“그렇지, 공사를 해 보는 건 어떤가?”
“나쁘지 않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공사 대상으로 지정되고 제정신으로 복역을 마치는 사람은 드물다. 그간 두들겨 맞으며 배운 해사한 미소를 짓고 얌전하게 앉아 있자, 얼굴을 빤히 보던 노인이 담배를 끄며 긍정했다.
“좋아, 일자리를 소개해 주지.”
살아서 버티게 된 이유는 모른다. 죽을 뻔한 적은 많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이야. 손에 붙은 티끌을 털며 억지로 노인과 악수했다.
“밥이나 한 끼 먹을 텐가?”
“아니요.”
“바빠 보이진 않는데.”
“바쁩니다.”
낡은 의자를 책상에 끼워 넣으며 대답했다. 노인이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채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휴대폰 사러 갈 거예요.”
“휴대폰?”
“사회생활도 좀 해야죠.”
“집단생활이랑 안 맞는다더니?”
“집단이랑 사회는 좀 다르지 않나요?”
빈정거리며 컨테이너를 빠져나왔다. 바닥에 깔린 회색 철근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굉음 같다. 뒤에서 괴물 같은 노인네가 친히 뒷짐을 지고 나와 인사를 건넸다.
“가는 길에 담배 하나 태울 텐가?”
“예에.”
통째로 넘겨주는 담뱃갑을 받으며 고개를 까딱 숙였다. 노인의 시퍼런 눈동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무겁게 훑고 떨어졌다.
“내일부터 나오게.”
“…….”
“바깥은 바깥대로 자네를 받아 주진 않을 것 같으니까.”
초 치고 자빠졌네.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흙먼지 날리는 길을 빠져나와 골목을 돌아 나갔다. 푸른색 트럭 하나가 막 골목을 빠져나오며 근처에 고여 있던 웅덩이의 흙탕물을 벽에 뿌렸다. 더러워진 벽을 쳐다보다 벽을 발로 콱 찼다. 부스스한 석회 먼지가 흩날렸다.
오늘따라 황사가 심한지 하늘이 누런빛이었다. 10년 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는데, 매일매일 서울의 공기는 점점 더 나빠진다고 한다. 이전에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농담을 했었는데. 이런 부분은 변화가 없다.
텁텁하고 온화한 봄 날씨에 코끝이 간질거렸다. 노인이 넘겨준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며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 휴대폰 파격 할인이라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전단이 붙어 있는 대리점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었는지 짜장면을 먹고 있던 두 사람 중 단발머리 여자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는 자리에 앉은 그대로였다.
“안녕하세요, 잠시만요.”
여자는 입 안에 든 음식을 허겁지겁 씹어 삼키고 물을 마셨다. 입 주변은 여전히 군데군데가 새카만 색이었다. 식욕을 자극하는 배달 음식 냄새가 매장 전체에 퍼져 있었다. 천천히 하라고 손짓을 해 주고 상담용 의자에 앉았다.
“휴대폰 바꾸러 오셨나요?”
“아뇨.”
부정하자 아가씨의 얼굴이 흐려진다. 금방금방 드러나는 아쉬움에 재차 말을 얹었다.
“개통하러 왔어요.”
그제야 표정이 펴졌다. 개통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그때까지 그릇에 고개를 박고 있던 남자가 일어나 아가씨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내가 할 테니 너는 가서 그릇이나 정리해.”
“아뇨, 제가…….”
“아, 내가 한다니까?”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으름장을 놓는다. 아가씨는 기가 죽었는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리고 식사를 하던 자리로 가서 신문지를 구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입 안에 사탕을 하나 넣고 굴리다 뱉고는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생각하신 휴대폰은 있으세요? 어떤 거로 봐 드릴까요?”
“아, 죄송한데―”
앞에 놓인 사탕 바구니에서 딸기 맛을 하나 꺼내 들었다.
“저 아가씨한테 개통할게요.”
“네?”
“저기, 아가씨 안 바쁘시면 개통 좀 도와주실래요?”
아가씨의 흐린 얼굴이 확 밝아졌다. 꽃이 핀 것 같았다. 얼굴을 찡그리는 남자 앞에서 망설임 없이 일어나 다른 테이블 앞에 가서 앉았다. 그사이에 그릇을 치운 아가씨는 다 먹지도 못한 짜장면이 아깝지도 않은지 방글방글 웃으며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기고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휴대폰 개통은 빠르게 끝났다. 아가씨는 개통 선물이라며 케이스와 휴대폰 거치대 같은 것을 이것저것 챙겨 줬다. 자질구레한 것들이 잔뜩 들어 있는 종이 가방을 들고 바깥에 나와 근처 벤치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벤치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벚꽃 잎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 아래를 몸통만 남은 귀신이 구르고 있었다. 발치에서 귀신이 앞니로 벚꽃을 갉작거리며 신발 코에 꽃 덩어리를 뱉었다. 예쁘네. 성의 없이 귀신이 뱉어 내는 꽃잎을 칭찬하며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외우는 번호가 있다는 게 어디야. 힘없이 빈정거리며 기계를 귀에 붙였다. 몇 번 신호음이 가더니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비서실장 서주영입니다.
벽이라도 두른 것처럼 단단하게 각진 목소리에 소름이 끼친다.
“야.”
-어?
“나거든.”
-윤이원?
“그래.”
갑자기 뭐가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뒤를 이어서 꺄악, 하는 비명도 들렸다.
-으아아, 부끄러워! 수치스러워!
“…….”
병신 같은 새끼. 심하게 부산스러운 소음을 열심히 참고 또 참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했는지 비실비실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부끄러워라. 다음부터는 문자라도 먼저 보내 주지 않을래?
“도대체 뭐가 부끄러운데?”
-내 입으로 비서랬잖아. 으으, 부끄러워. 으으…….
“그러니까 그게 뭐가?”
자기소개 한 걸 가지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나. 각 잡힌 목소리에 좀 소름 끼치긴 했지만. 닭살이 돋은 목덜미를 긁으며 불평하자 서주영이 뚱한 소리를 냈다.
-부끄러워. 수줍단 말야.
“미친놈이…….”
-너도 친구한테 자기소개 해 봐. 부끄러워.
“뭐. 안녕하세요, 열다섯 살에 인생 시궁창으로 말아먹고 교도소에서 12년쯤 가볍게 구른 사람입니다, 하고?”
별로 부끄럽진 않은데. 덧붙여 말하자 옆자리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헛기침을 하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사라졌다. 노인 말대로 역시 세상 살기 힘든 경력이긴 하다.
-아니 뭐, 그 정도면 부끄러운 게 아니고 한심한 거 아닐까.
“……닥쳐.”
-하하, 뭐. 그래서 이거 네 번호야? 저장한다?
“응.”
-좋아, 나는 사장님이 부르셔서 끊는다. 퇴근하고 연락할게.
결국 5분짜리 통화에서 4분은 혼자 부끄럽다고 설치는 것만 들었다. 첫 전화라고 의미를 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쓸모없는 통화라니.
아무것도 없이 빈 액정을 가만히 보았다. 통신사에서 개통 문자가 몇 건 날아온 것 빼고는 조용했다. 당연한 일이다. 서주영에 이어 노인의 연락처를 저장하고 나니 다시 휴대폰이 쓸모가 없어졌다. 괜히 휴대폰을 산 걸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을 하다 낯선 열한 자리 숫자를 떠올렸다. 노란색 마트 봉투에 같이 들어 있던 작은 쪽지. 잠깐 망설이고는 빠르게 숫자를 눌렀다. 이상하게 휴대폰이 뜨거웠다. 액정을 두들길 때마다 입술 위를 누르고 도망가던 온도 역시 생각났다. 남들보다 배로 더웠었다.
-형?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다짜고짜 들리는 말이 이거다. 무당이라도 되나, 어떻게 알아차렸지. 놀라서 눈만 깜박이고 있자 들뜬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형, 제 번호 기억해 주셨네요.
“기억하라고 알려 준 거 아니었냐.”
-그건 맞죠. 아, 안 그래도 형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어요.
“진부한 멘트 치지 마.”
안 보던 사이에 뭘 먹고 큰 것인지, 이쪽도 기가 막힌 성격으로 자랐다.
-정말이에요. 우리 운명 아닐까요?
“헛소리하지 마.”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은근한 목소리가 간질간질 귓불을 매만지는 것 같았다. 바람이 훅 불자 꽃잎이 와르르 떨어졌다. 아, 추워. 쌀쌀한 바람에 어깨를 움츠렸다. 바람이 뒤에서 불어왔다. 시야가 분홍색 벚꽃 빛으로 흠뻑 젖었다.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꿈결처럼 흩어지는 꽃을 보는데 전화 너머에서 재연이 포만감이 느껴지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형이 내 눈앞에 있죠.
“그러니까 형이 내 눈앞에 있죠.”
무선의 전파로 연결된 목소리와 실제 목소리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설명해 보자면, 온도가 노골적이다. 천천히 휴대폰을 내리고 등 뒤를 돌아보았다. 놀랍지는 않았다. 조금 전부터 주변이 조용했으니까. 발치에 있던 몸통 귀신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불과 두 번째지만 이런 감각을 쉽게 잊을 리가 없다. 흰 셔츠에 까만 바지를 단정히 차려입은 재연이 휴대폰을 든 채 웃고 있었다.
“날씨 좋네요.”
“…….”
“아닌가?”
“뭐, 그래.”
재연이 자연스럽게 옆에 걸터앉아 손바닥으로 쓸어 낸 꽃잎을 훅 불었다. 공기에서 부드러운 향이 났다. 솜사탕이라도 사 먹어야 할 거 같은 날씨네요. 그의 손가락이 시원시원하게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솜사탕을 바람개비와 섞어 몇 개 꼽아 둔 낡은 기계가 보인다. 더러운 토시를 낀 아저씨가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헛소리를 다 한다 싶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여긴 왜 있어?”
“지나가던 길이었는데요.”
“거짓말하고 있네.”
대학교라곤 근처에 하나도 없는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코웃음을 치자 은근한 미소를 흘리며 재연이 옆구리에 엉겨 붙었다.
“정말인데요. 이쪽에 볼일이 있었어요.”
“무슨 볼일?”
“이런저런 볼일이죠. 형은요?”
“일자리 구하느라.”
“아아, 여기 근처에서 일해요? 무슨 일?”
“공사.”
재연은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조금 가까이 파고들었다. 옆에서 전해지는 나긋한 온기를 타고 가벼운 체향이 느껴졌다. 간질거리는 무슨 향을 닮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독특하고 좋은 향이다. 상쾌하고 포근했다. 가벼운 걸 보니 사향은 아니고, 편백나무 향도 아니고, 이게 뭐더라? 봄꽃 같기도 하고.
꿈속에서도 하재연은 특별하게 목욕 제품이나 향수를 챙겨서 쓰지 않는데도 가까이에 있으면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전혀 단 향이 아닌데도 달콤하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마다 어릴 적 좋아하던 딸기잼 파이 과자처럼 졸음이 한 겹씩 바삭하게 겹쳐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찾아온 춘곤증에 몸이 늘어졌다. 귀신이 들끓는 집에서는 시끄러워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조용하다는 게 이런 거였지.
형, 자요? 재연이 옆에서 속닥거린다. 그 언어조차 이름 모를 향이 실려 있었다. 달콤하다. 입에 머금어야 할 것 같아서 숨을 들이켰다. 가물가물 흩어지는 정신을 모으려고 애썼지만 결국에는 점점 머리가 무거워졌다.
하재연이 옆에 있었던 탓인지 짧은 잠은 시끄럽지도, 조악하고 잔인하지도 않았다. 나긋나긋하고 조용했다. 오랜만에 그리웠던 꿈속의 꿈을 꿨다.
나는 고아원 사무실에서 얼마 전 입양이 끝난 아이의 서류를 정리하다 기지개를 쭉 켰다. 나긋나긋한 봄바람이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살랑거렸다. 벌써 날씨가 이렇게 따뜻하네. 계절의 변화를 새삼스레 느끼며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낮은 건물 아래에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소꿉장난을 한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이 귀엽다.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꽃바람이 날리는 풍경에 마음마저 화창해지는 날씨였다. 창가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으니 재연이 들어왔다.
‘형, 바빠요?’
‘아니.’
어차피 방해할 거면서 괜히 물어보긴. 창틀에 대충 담배를 내리누르며 까딱까딱 손짓했다. 재연의 얼굴이 확 밝아져서 가까이 다가왔다. 다 커서는 여전히 어리광이 심하다. 넓은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자 재연이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갑자기 왜?’
‘낮잠 자다가 안 좋은 꿈을 꿔서…….’
아, 역시나. 하재연은 어릴 적부터 악몽에 자주 시달렸다. 늘 새벽마다 깨서 울음을 터트리더니, 커서는 악몽만 꾸고 나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달려오곤 했다. 낮잠이면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도 얼마나 시달렸는지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목덜미에 이마를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내는 재연의 몸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조금 더운 체온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입술이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이놈이 또 한낮부터 판을 벌이려고 하네. 버릇 나쁜 놈의 어깨를 찰싹 때리자 안긴 채로 키득키득 웃는다. 명랑하게 휘어지는 눈을 보며 잔소리를 하는 대신 먼저 입술을 붙였다. 보드라운 숨결이 입 안에 가득 찼다. 목덜미와 뺨을 쥐고 몸을 붙여 온다. 마음이 무더워졌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
창백한 세상이었다.
잊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목 안에서 모래알 같은 비명이 울리려다 꺼졌다. 벤치에 눕혀진 몸을 일으켰다. 머리 아래 재연의 것으로 보이는 점퍼가 곱게 개켜져 있었다. 조금 떨어진 나무 옆에서 분홍색 솜사탕을 손에 쥔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와 솜사탕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어울리지 않다 못해 이상했다.
태양 빛에 몸을 따라 그려진 선이 환하게 빛이 난다. 지금 당장에라도 눈을 감으면 다시 꿈속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순진무구한 세상으로. 눈을 감은 채로 빛을 받고 있던 재연이 느리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하얗고 짙었다.
“깼어요?”
눈을 뜬 재연이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해 온다. 담배 맛과 섞이면 이상할 텐데 부드러운 솜사탕을 뜯어 먹는 얼굴은 달콤함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강의 없어?”
소용없는 말을 하자 재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은 오전 강의뿐이었어요.”
아무 문제없다고 대꾸한 재연이 손가락에서 담배를 털어 냈다. 분홍색 솜사탕을 다시 크게 뜯어 먹는 남자의 얼굴에 기억 속 소년이 덧씌워졌다. 벚나무 아래에서 단 과자를 먹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다 먹은 솜사탕 막대를 쓰레기통 안에 넣고는 경쾌하게 걸어온다. 산뜻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꿈속의 얼굴이 희미하게 겹쳐졌다.
“아, 날씨 좋네요. 어디 구경이라도 갈까요? 배는 안 고파요?”
“별로.”
“그렇다면 좀 더 앉아서 꽃구경이라도 할래요? 여기도 경치가 참 좋네요.”
꿈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였던 건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얼마나 사랑했던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내 선택에 하재연이란 인간이 차지했던 비중 정도는 기억난다. 그렇게 많이 사랑했었나. 의아하다.
운명이라면 만났을 때 최소한 심장이 두근거리기라도 할 텐데. 눈앞에 선 하재연은 기이하게도 사랑스럽다기보단 공포에 가까운 상징물이었다. 손가락을 타고 가늘게 올라오는 소름을 애써 숨겼다.
“형, 표정이 이상하네요.”
솜사탕 탓인지 재연에게서 좀 더 짙은 단 향이 났다. 뻗어 오는 손가락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이상하니까.”
집에 무턱대고 찾아와 입을 맞추고 사라졌다. 낯선 번호일 텐데도 전화한 사람이 나라는 걸 바로 알았다. 사람이라면 어디보다 많은 서울인데 중심지도 아닌 외곽의 어느 동네 공원 근처에서 나를 찾았다. 우연을 가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끈질기게 쫓아오는 손을 잡아 내리며 말하자, 하재연이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것처럼 재미있어하며 웃었다.
“이상하다고요?”
“그래.”
“그렇게 치면…….”
입을 여는 재연의 표정은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는데도 스산했다. 바람도 없었고 햇볕은 여전히 따뜻한 날씨였는데도.
“형의 지나온 인생도 이상하잖아요?”
재연이 치열한 난투를 벌인 뒤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초조하고 불안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한 그가 재잘거렸다.
“이제 시작인데 너무 물러서지 말아요. 어차피 형은 앞으로도 전진밖에 할 수 없을 텐데.”
뭘 알고 있는 거야? 묻고 싶었지만 냉정한 표정에 얼어붙어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하재연이 우울한 배역을 맡은 사람처럼 느리게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웃으세요, 형.”
갑작스러운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재연이 가볍게 뺨에 입을 맞추고 떠났다. 입술이 닿았던 뺨에 꿀로 된 샘이 솟는 것처럼 지독하게 단 향기가 났다.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참았다. 현기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발밑으로 꺼지기를 반복했다.
***
그날 밤, 새로운 악몽을 꿨다.
출소하는 날이었고, 주영과 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며칠 전과 똑같이 두부김치과 어묵탕에 소주를 마시다 우연히 하재연과 조우했다. 웃는 얼굴로 포장마차에 들어오던 그는 윤이원이라는 사람을 본 순간 더는 웃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본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딱딱하게 굳은 낯빛.
재연은 혐오를 숨기지 않고 걸어와 내 멱살을 틀어쥐었다.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윤이원.’
훌쩍 큰 남자의 입에서 나온 언어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나를 겨냥했다.
‘재연아, 아니…… 얘는.’
주영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정작 목이 졸리는 나는 태연했다. 10년이 넘었는데도 단숨에 알아보다니 눈썰미가 좋군, 그런 생각이나 했을 뿐이다.
‘어딜 뻔뻔하게 기어 나와.’
‘하재연, 놔!’
‘주영이 형, 형도 제정신이야? 이 새끼는, 교도소에서 죽어야 했어.’
아름다운 얼굴이 험악한 욕설을 지껄이며 저주했다. 새파란 살기를 흘리는 눈동자가 말없이 쏘아붙이고 있었다. 살인자, 악마 같은 새끼. 당연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악마이며, 괴물 이라고 소리 질렀다.
서주영은 성격이 꽤 좋은 편이라, 당시 고아원에서 지냈던 형제들과도 간간이 연락하고 있었다. 그러니 언젠간 내가 출소했다는 소문이 새어 나가 마주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그곳의 누구든 나를 보는 그 순간 목을 조를 것이다. 원장의 숨통을 끊었던 것처럼 단숨에.
‘거기서 문드러져 죽어야 했다고.’
꿈이라서 그런가, 목이 졸려도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재연의 손으로 죽는다니 기쁜 일이었다. 아니다, 사실 이게 바라던 결과물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죄를 사해 준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죄인 양 무시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 짓은 결코 구원이 아니었고, 정의도 아니었다.
이대로 단숨에 내리쳐졌으면. 영혼까지 불에 뚝뚝 녹아내렸으면.
‘더러워.’
이를 뿌드득 가는 재연은 예쁘게 성장해 있었다. 그의 반듯한 입술과 콧대를 보자 생각이 났다. 갓난쟁이일 때부터 살았던 나의 집. 죽음의 문턱에서도 자애로운 줄 알았던 우리의 아버지, 신. 재잘거리는 아이들. 수많은 악귀가 스며들어 있었던 고아원의 허전한 터. 불꽃처럼 터졌던 원장의 방. 하재연을 인생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 행복에 미쳐 활짝 웃자 재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모두 깊은 잠에 빠지고 난 뒤라 발소리를 죽이고 홀로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낡은 건물은 비만 내리면 엄청나게 습했다. 뒤뜰 개천에서 나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다. 꿱꿱 울긴. 입술에 남은 질척한 립스틱을 손등에 닦아 지우려고 애쓰던 중에 옅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불쾌한 표정이 금세 달라붙었다.
또 누가 악몽을 꾸고 우는 걸까. 어린아이들은 이불보에 오줌을 싸는 건 예삿일이었고, 툭하면 새벽에 자지러지며 일어났다. 복도에 듬성듬성 들어찬 방문마다 귀를 댔다. 방은 옹알이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착각인가. 아니면 괴담으로 들었던, 불우해 목매달아 죽었다는 여자의 귀곡성인가.
몇 안 되는 방문을 하나하나 다 열어 보다 소리의 근원이 바깥에서 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먼지 낀 창문의 잠금장치를 열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루살이가 날아다니는 가로등은 먼지로 머리통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초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긴팔을 입은 어린아이가 문 앞에서 목청껏 울고 있었다. 망설이다 바깥으로 나가 잠긴 고아원 대문을 열었다.
벌겋게 부어 있는 서글픈 눈이 나를 보았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놀랐는지 딸꾹질을 시작한 남자아이가 소매 끝으로 부어오른 눈을 닦았다. 대여섯 살 된 것 같은 아이는 초라한 행색이었다.
안타까움보다 망설임이 많이 들었다. 좁고 가난한 고아원은 사람을 더 데려올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원장 선생님이 부담스러워하시면 어쩌지. 나는 어렸지만 잔인하도록 현실적인 생각을 하다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름이 뭐야?’
울어 붉어진 얼굴을 들고 아이가 눈을 깜박거린다. 독촉하듯 다시 물었다.
‘몇 살이야?’
초여름이라고는 해도 새벽 공기는 조금 쌀쌀했고 개구리는 여전히 시끄럽게 울었다. 낯설도록 차갑고 눅눅한 새벽, 아이를 하나 주웠다.
아이는 다섯 살, 이름은 하재연이었다. 원장은 남루한 몰골의 아이가 추가됐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을 했다고, 착한 아이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등을 돌려 몰래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당시 하나 있었던 보육 선생님은 원장이 쓸데없이 인덕을 베푼다고 짜증을 내며, 재연에게 화장실을 가리지 못하면 체벌을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다.
불협화음 같은 환영 속에서 아이는 복도 맨 끝 방을 배정받았다. 아이들은 가뜩이나 좁은 방에 사람이 늘었다고 하루 종일 투덜거렸다.
숨이 헉헉 막히는 여름이 깊어지는 동안, 하재연은 자주 잠에서 깨어났다. 더위에 시달리느라 잠을 설친 채로 새벽을 서성거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재연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우는 재연 때문에 같은 방을 쓰는 아이들은 늘 불만투성이였다.
고아원에서 엄마와 아빠는 금지된 단어였다. 늘 투덜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그 애를 끌어내, 눈물이 그칠 때까지 손을 잡고 걸었다. 더러운 것을 날려 버리듯 울음을 날려 버리듯, 빈 복도를 한참이나 서성였다.
그 세월은 길었다. 나중에는 잠에서 먼저 깬 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을 기다릴 정도로 우리는 친해졌다. 아이는 조금 더 큰 내 손을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쥐고 걸었다. 땀에 젖은 손바닥이 축축했다. 늦은 새벽, 숨겨 둔 초콜릿을 통통한 입술 사이에 물려 주며, 대문 바깥에서 주워 길러 낸 아이를 귀애했다.
우리는 어렸고 삶은 후줄근했다. 하지만 좋았다. 둘이 같이 있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아. 하지만 저 애는 이제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걸. 나 혼자만의 감상이 무슨 소용인가.
***
“하재연, 그 염병할 새끼를 만나서 그런가…….”
꿈에서 깨니 새벽이었다. 네발짐승처럼 기어가 거울을 보았다.
“재수 없는 꿈을 꾸고 지랄이야, 염병…….”
창백한 얼굴은 역겨웠다. 그 위에 원장의 늙은 얼굴이 겹쳐 보였다. 거울의 유리가 가루가 되어 부서질 때까지 두들겨 패 죽여 버리고 싶었다. 역겨워, 더럽다. 누가? 내가. 요란한 생각을 하면서 거울을 보았다. 손바닥만 한 더러운 표면에 악몽에 푹 젖은 얼굴이 울고 있었다.
허리 높이의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냈다. 출소 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새 부리로 쪼는 것처럼 쑤시는 머리를 짚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벽에 걸린 거울이 정면에서 보였다.
어차피 전진밖에 할 수 없을 거라며, 저주 같은 말을 한 재연은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의문스러운 말을 하며 날카롭게 굴던 모습과 꿈속에서 만났던 모습이 차근차근 떠올랐다. 최초의 기억이라 부를 만한 부드럽고 작은 손도 떠올랐다. 묘한 향수병을 느꼈다. 생생한 감촉을 지우려 뒷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회색 건물이 그리울 리가. 사탕을 빨아 먹는 것처럼 거울에서 얼굴을 핥아 치워 버리고 남은 맥주를 빨아 마셨다. 온몸이 척척했다.
반지하 원룸에 앉아 목을 길게 빼야만 보이는 창 너머 나무에 초록 물이 들어 있었다. 아직도 봄이었다. 봄이 뭔 대수인가. 고개를 떨어트리며 웃었다. 끝이 나기 전까지는 행복했던 꿈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가 잠에서 깨면 다시 생지옥이었다.
등 뒤에 매달린 날갯죽지가 따끔거렸다. 원장을 죽인 밤의 화마는 흉터를 남겼다. 아니, 사실은 불을 내기 전에 생긴 흉터다. 손끝으로 상처를 더듬거리며 원장을 기억했다. 주름이 져 축 늘어진 볼과 부푼 흉곽.
“아버지…….”
아버지, 그때 왜 저를 죽이셨어요. 저만은 아버지를 믿고 따랐을 텐데. 아버지의 가장 성실한 첫 번째 종으로 이름도 의지도 잊고 살았을 텐데.
꿉꿉한 마음을 타인이 알아주진 않는다. 귀신들이라고 알아줄 리도 없다. 기력이 쇠하자 좋은 먹잇감이었는지 귀신들이 요란스럽게 돌아다녔다.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물건을 마음대로 건드리는 바람에 딸기잼이 들어 있던 병이 떨어져 깨졌다.
삽시간에 흘러 퍼지는 단 냄새와 유리 조각과 함께 끈적거리는 잼을 보자마자 화가 솟아 꼭지가 빙글 돌았다. 방 구석구석 귀신을 쫓아 보겠다고 굵은 소금을 퍽퍽 뿌려 대며 난리를 치고 나서야 시끄럽던 소음이 조금 줄어들었다.
종량제 봉투를 뚫고 나온 유리병 조각 위에 테이프를 붙이며 중얼중얼 욕을 뱉었다. 병을 치운 손바닥이 끈적끈적했다. 딸기잼은 빠르게 녹아 뭉글뭉글해져 벌레를 불러들였다. 한낮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오가 되면 기온이 27도까지 치솟았다. 봄인가 여름인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열이 아스팔트를 뜨끈하게 데웠다.
꿈과 귀신들의 소동에 불쾌한 것치고는 괜찮은 토요일이었다. 동굴처럼 바닥을 파고들어 앉은 집이라 그나마 시원했다. 장마철만 빼면 살 만할지도 모른다. 시체처럼 차가운, 둥근 모양의 귀신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그런 생각을 했다. 퀴퀴한 쓰레기봉투를 이제 바깥에 내놓을까, 하는데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같이 리듬이 들어간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전과자.”
허락도 없이 다짜고짜 남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놈은 뻔했다. 서주영이다. 주말인데도 출근을 했는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뭐야.”
“연락도 없길래 죽은 줄 알고 찾아왔지.”
살랑살랑 웃는 얼굴이 반갑지는 않았다. 쓰레기봉투를 현관 바깥에 내놓는 사이 서주영은 알아서 작은 방석을 하나 깔고 앉아 있었다. 뭉친 채로 굴러다니는 이불을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고 엉금엉금 걸어가 마주 앉았다. 주영이 커다란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전기 포트였다.
“짠, 선물이다. 능동적이고 유동적인, 상쾌하고 발랄한 생활을 위한 필수품이지.”
“전혀.”
왜 전기 포트 따위에 그렇게 많은 수식어가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딱 잘라 대꾸하자 주영이 금방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 주려고 일부러 회사에서 슬쩍했단 말이야.”
“회사는 너 안 자르냐.”
“응. 이거 합법적인 거야.”
주영이 들어서 보여 주는 전기 포트는 꽤 비싸 보였다. 플라스틱이 아니라 유리로 만들어진 포트는 내부가 선명하게 보였다.
“여기, 금 갔잖아.”
“…….”
서주영이 가리킨 곳은 손잡이였다. 몸체도 아니고 손잡이에, 1센티미터쯤 돼 보이는 금이 가 있긴 했다.
“멀쩡하잖아.”
“사장님이 바꾸랬어.”
“너희 사장님 돈 많냐.”
“내 월급 주잖아.”
“아.”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봉지를 열어 맥주 캔을 하나 꺼냈다. 방금 샀는지 맥주 캔은 손가락이 떨어질 정도로 차가웠다. 빠르게 풀탭을 따고 쭉 들이켰다. 보리 맛이 풀풀 나는 맥주를 여러 모금 삼키자 코가 울렸다.
“크으.”
“역시 술이 최고지…….”
심각한 얼굴로 알코올을 평가한 주영이 봉투 안에서 안주를 꺼내 들었다. 큼지막한 과자 봉투를 보고 소반을 얼른 끌어다 앞에 놓았다.
과자를 한 주먹 입에 넣고 으적으적 씹었다. 이게 오늘 첫 끼였다. 짭짤한 과자를 먹다가 봉투 밑에 깔린 삼각 김밥을 발견했다. 비닐을 까는 동안 서주영은 알아서 전기 포트에 물을 붓고 있었다. 컵라면을 뜯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밥 안 먹었냐?”
“응.”
“주말에 출근했는데 밥도 안 줘?”
“출근한 거 아냐.”
“그럼?”
“밤새웠어. 이제 퇴근했다.”
“…….”
턱밑까지 그늘이 내려온 주영이 우울한 얼굴로 맥주를 마셨다.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을 비워 낸 얼굴에 홍조가 어른거렸다. 날밤을 꼴딱 새고 술부터 마시다니 저놈 위장도 철벽이구나.
“때려치울까.”
“응.”
남 인생인데 어떠랴 싶어 사직을 권고했더니, 다시 주영이 도리질을 쳤다.
“아, 안 돼.”
“왜.”
“월급이 많아.”
서주영은 멀쩡하게 생겨서는 물욕에 찌들어 있었다. 고아원에서 같이 지낼 때는 저런 인간이 아니었는데.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돈 아까워서 보증금은 어떻게 빌려줬냐.”
“투자야, 투자. 여기도 언젠가 재개발이 들어가면…….”
“월세거든.”
잘못된 망상을 바로잡아 주자 주영의 고개가 힘없이 푹 꺾였다. 우울한 직장인의 몰골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주영이 나무젓가락을 뜯으며 말했다.
“사장님한테 보너스로 건물 달라고 해 볼까.”
“사표를 쓰고 싶으면 써라. 말 돌리지 말고.”
“네가 대신 일해 볼 생각 없냐.”
그렇게 말하며 서주영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고등학교도 졸업 못 한 사람한테 비서 일을 하라는 건가. 입술을 비틀면서 빈정거렸다.
“너희 사장님 사업 망치기로 작정했냐.”
“야, 우리 사장님 쿨해. 전과 그런 거 안 따져.”
“너희 사장도 전과 있으신가 보네.”
말하고 나니 웃겼다. 픽 웃으면서 익지도 않은 라면 면발을 건져 올렸다. 주영이 라면 안에 들어 있는 싸구려 어묵을 들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사장님은 그냥 법을 신경 안 쓰셔.”
“…….”
세상은 코딱지만큼 공평하다고, 서주영은 이름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대신 상사를 심각하게 잘못 만난 모양이었다. 물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보너스 받았다고 사 줄 고기가 중요하지.
“음, 맛있네.”
한 젓가락 가득 씹어 삼킨 주영은 포만감이 올랐는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덩달아 라면을 입에 가득 넣고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영이 먹다 남긴 삼각 김밥 자투리를 마저 해치우며 눈을 빛냈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너 제대로 취직할 생각은 없어?”
“……뭐, 막노동 자리가 또 있으면 몰라.”
“경비는 어때.”
“미친, 경비? 한 대 맞으면 날아가겠네.”
나는 절대로 골격이 단단하다고 할 만한 몸이 아니었다. 못 먹고 자란 것치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었지만 남들에 비하면 마른 체구였다. 교도소에서 툭하면 두들겨 맞아 맷집만 늘었지, 비실비실해서 잔병치레도 많았다. 소장이 독방에 그만 좀 들어가라고 애원을 할 정도였다.
“우리 회사는 경비원이라고 몸싸움 시키진 않아. 그냥 출입증 검사하고, 위치 안내하고 그 정도야.”
“안 해.”
“야, 너 막노동 계속하면 뒤로 넘어간다?”
“닥쳐.”
저건 친구라는 놈이 죽으라고 굿판을 펼치네. 욕을 하며 컵라면 그릇을 싱크대에 처박았다. 반쯤 남은 국물이 하수구로 줄줄 흘러내린다. 뻘건 국물이 핏물 같아 눈앞이 어지러웠다. 개수대에서 물이 꽈르르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봐, 진짜 넘어간다니까. 아까 들어오는데 귀신 보는 줄 알았다.”
휘청거리는 걸 봤는지 서주영이 혀를 찬다. 거기다 대고 네가 본 게 진짜 귀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적인 대꾸를 해 주진 않았다. 주영은 지금 자기 머리 위에서 목매 죽은 놈이 늘어트린 혀로 발꿈치를 핥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어차피 공사니까 몇 달만 하면 끝이야. 일당도 많이 주고.”
“아, 그래. 거기 꽤 이름 있었지. L캐피탈이라고 했었나?”
“응.”
“최근에 업계 1위로 올라앉은 곳이야.”
그 회사가 얼마나 더러운 손을 탔는지 모르는 주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싱크대를 붙잡고 있다가 곧 쓰러질 것 같아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문으로는 대부업보다 인신매매로 돈깨나 번 거라는 말이 있더라. 사장님이 관심 있다고 명함 받아 왔어.”
“…….”
정정한다. 주영이 다니는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영은 몰라도 얘네 사장은 L캐피탈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 회사는 인신매매로 버는 돈이 더 많았다. 표면에 내세운 대부업을 이용해 돈을 빌려주고는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팔아 치웠다. 그들에게 있어 인간은 남은 금액을 쥐어짜 낼 걸어 다니는 금고밖에 되지 않았다. 공사는 장기를 박박 긁어낸 뒤 남은 껍데기를 처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런 회사에 관심 있다고 말한 사장도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한숨을 쉬면서 주영에게 다시 사직을 권유했다. 월급 때문에 안 된다고 파르르 떨던 주영은 갑자기 배가 덜 찼다며 치킨을 시켰다.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고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사 준다면 먹고 말지.
“음, 이번 신메뉴는 별로다.”
“역겨워.”
이상한 맛이 나는 치킨 조각을 집어 던지며 욕을 하자 주영이 양념이 묻은 튀김옷을 벗기며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왜 통과시킨 걸까?”
“응?”
“우리 회사 계열사야, 이 치킨.”
“……그러냐.”
“꼭 이야기해야지. 사장님 성격 같은 맛 난다고.”
얘가 안 보는 사이에 입만 살았군.
“너는 왜 안 잘리는 건데?”
“아, 하재연이랑은 연락하냐?”
뻔뻔하게 말을 돌린 주영이 실실 웃으면서 지껄였다. 연락 없어. 대꾸하자 주영이 금방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희가 벌써 떡이라도 친 줄 알았지.”
주영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다른 손의 검지를 찔러 넣으며 외설적인 흉내를 냈다. 뒤통수를 내리치자 밟힌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놈이 비명을 질렀다.
“상스러운 행동 좀 하지 마.”
“야, 네가 더 상스러워.”
“닥쳐.”
“후후, 게이 커플의 탄생이라니. 대한민국의 2세 씨가 마르겠군…….”
헛소리를 꾸역꾸역하는 주영의 입을 역겨운 맛이 나는 치킨으로 틀어막았다. 주영이 우물우물 살점을 씹으며 불분명한 소리를 냈다.
“야, 있잖아.”
“없다.”
“감방 조크냐.”
“…….”
닥치고 치킨이나 먹어. 치킨 무 하나를 씹으며 짜증을 내자 주영이 맥주로 입 안을 쓱 헹구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음, 내가 심심해서 하재연 조사 좀 했거든.”
“……어, 그러냐.”
두 번 심심하면 인신매매도 할 놈일세.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더니 주영이 씩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게 대학 다니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좀 이상해. 갑자기 양부모랑 왕래도 없어지고, 같은 학과생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좋은 거 같진 않더라. 그리고 최근 걔 주위에 이상한 일이 주변에 많다던데.”
“이상한 일이 뭔데?”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일들.”
무슨 소리야. 눈을 찌푸리자 주영이 휴대폰을 흔들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액정에서 뿌연 빛이 흘러나왔다.
“그게 하재연이 그런 거라는 말이 많더라. 매번 사고 현장에는 있는데,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어서 의심만 사고 있다더라고.”
말을 멈추고 잠깐 머뭇거리던 주영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흐려져 어두워진 얼굴이 불빛에 일렁거렸다.
“너 싫어하는 놈들 많아. 나오면 바로 죽여 버리겠다고 아직도 이를 갈더라. 걔도 그런 새끼일지 모르지. 조심해라.”
돌려서 말했지만 서주영은 고아원 동기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순박하던 얼굴이 틀어져 칼날이 되던 순간을 생각하며 물었다.
“너는?”
그렇게 치면 서주영도 원망을 가지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 저놈도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들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원룸 건물은 CCTV도 달리지 않은 허름한 곳이었다. 질문을 들은 주영이 씩 웃으면서 맥주 캔을 잡았다.
“과거에서 질척거리면 아무것도 못 해. 너도 빨리 벗어나라.”
“거참, 눈물 나게 좋은 조언이네.”
빈정거리면서 발로 어깨를 콱 밀어 넘어트렸다. 서주영은 빨리 가라는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낄낄 웃으며 뒹굴뒹굴하다 밤이 늦어서야 겨우겨우 집을 나갔다. 잔뜩 구겨진 정장을 입은 뒷모습이 문밖으로 빠져나가자 현관문이 탁 하고 닫혔다. 건전지 좀 갈아 달라고 잠금장치에서 삐릭거리는 경고 소리가 났다.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놈이라. 구석에 처박아 둔 짐을 뒤졌다. 고아원에서 다 함께 찍은 사진이 어디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교도소에서는 고아라고 하면 아주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게 있어서 일부러 들고 있었던 사진이었는데 소장이 챙겨 주는 바람에 출소 후에도 들고 나왔다.
테두리가 갈라진 낡은 사진은 대문 앞에서 다 함께 찍은 모습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 틈에서 어린 나와 재연이 개구쟁이처럼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옆에는 주영도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몇 안 되는 원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사건 당일, 벽돌로 내 머리를 내리치려다 붙잡힌 놈이 있었는데.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 기억이 잘 나진 않았다. 네 명인가 다섯 명인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주영이 두 다리 뻗고 자지 말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 같다. 하재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간 뒤였다.
***
꽃구경은 3일에 비가 5일이라더니, 봄날은 어디 가고 미세 먼지가 기승이었다. 작업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가릴 수 없는 눈은 따끔따끔했다. 먼지 때문에 색이 멀겋게 변한 하늘을 보며 쌍욕을 했다. 엄청나게 더웠다.
“날씨 한번 죽이네.”
여름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찐다고 다들 앓는 소리였다. 작업복 안에 갇힌 몸에서 열기가 화롯불처럼 솟아올랐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모래 포대를 바닥에 내던지고 몸을 비틀었다. 거친 마대로 된 포대를 옮기느라 살이 벅벅 쓸려 따가울 정도였다. 얼음물에 담가 둔 생수병을 하나 꺼내는데 작업반장의 두툼한 손이 신경질적으로 가슴팍을 밀쳤다.
“어이, 고 영감더러 나오라고 해.”
“네.”
안전모 안에 갇힌 머리카락이 축축했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 내며 걸음을 옮겼다. 남들이 뼈 빠지게 일하는 사이 노인은 시원한 컨테이너 안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밉살스러운 인간.
“작업반장님이 찾는데요.”
“으응, 뭐어?”
노인이 숨 꺾이는 소리를 내면서 소파에서 일어났다.
“작업반장님이 찾는다고요.”
“망할, 그 새끼는 툭하면 늙은이를 불러내. 노인 공경이 없어…….”
끝없이 투덜거리던 노인이 손을 덜덜 떨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곤 라이터를 던졌다.
“옜다, 너도 피워라.”
덩달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공사장에서 고 영감으로 불리는 노인은 인부들에게 하루 치 일당을 지급하고 서류 작업을 대충 처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들 일흔이 넘은 노인네가 하는 일도 없이 팔자도 좋다고 투덜거렸다. 작업반장은 사사건건 고 영감을 씹어 댔다. 그리고 그건 고 영감도 마찬가지였다.
“씨펄, 일을 잘한다고 해서 불러다 놨더니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인부들 사이에는 노인의 과거가 더럽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디서 주먹 좀 쓴다는 무리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말이 가장 유력했고, 그 뒤를 이어 전과 몇 범이라거나, 사실 부동산계의 큰손이라거나 하는 풍문이 떠돌았다.
지금 짓고 있는 으리으리한 빌딩이 뒤에서 돈 좀 크게 벌어 차렸다는 대부업체의 건물이었으니 소문은 기정사실처럼 되고 있었다. 뭐, 안 좋은 소문에 한해서는 대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고 영감이 그늘 밑에서 땀을 훔치고 있는 작업반장을 불렀다. 둘이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고는 교대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과 나이 많은 남자들까지 여럿이 모여 앉은 곳은 왁자지껄했다. 짬밥이 있는 고참 하나가 도시락 뚜껑을 열며 더딘 진도를 두고 거친 욕을 했다.
“일손이 부족한데 어떻게 빨리하느냔 말이야. 애들을 쓸 거면 몸 좋은 놈으로 골라 주질 않고…….”
남은 도시락 하나를 집어 들어 젓가락을 뜯다 잠깐 숨을 참았다. 고참이 투덜거리는 이유는 내게 있었다. 몇몇이 함께 눈을 흘겼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에, 체력도 힘도 좋지 않으니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노인의 소개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작업반장 선에서 잘렸을 게 분명했다.
말없이 김치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아무렇게나 밥과 반찬을 쓸어 넘기고 있자 옆에 있던 인부 하나가 슬며시 팔을 툭 치고 돈가스를 집어 갔다. 시발. 짜증을 낼 수도 없어서 입술을 꽉 닫고 있자 그가 실실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일은 할 만해?”
“네.”
“그래도 깡은 있는 모양이야. 하루 만에 엄마라도 부르며 도망갈 줄 알았더니.”
“거, 영감님이 불러온 사람이라잖아. 어디 뒤에서 한 가닥 하는 놈 아녀?”
“어이쿠, 그럼 미리미리 잘 보여야 하나?”
“잘 보일 놈이면 이런 곳에 안 오지!”
가시 돋친 농담에 다들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시멘트를 입에 부어 버릴까 보다.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인이 슬그머니 다가와 어깨를 잡았다. 다들 시치미를 뚝 떼고는 아닌 척 다른 이야기를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노인이 흰자위가 도드라지는 눈으로 인부들을 쓱 훑어보더니 귓속말을 했다. 담배 고린내가 푹푹 풍겨서 비위가 상했다.
“자네는 오늘 야간이야.”
아까 작업반장과 나눈 이야기가 이것이었나 보다. 일주일 넘게 노가다를 뛰면서 야간작업은 처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통보에 어깨를 굳혔다 서서히 풀었다. 결국 이 일을 하러 왔다. 긴장할 필요가 있을까, 씁쓸한 생각을 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파트 몇 채쯤 되는 대규모 공사는 아니었다. 조금 높은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굳이 야간에 일할 필요는 없었다. 밤에는 인공적으로 불을 밝히지 않아도 트럭이 몇 번만 더 왔다 갔다 하면 기초 뼈대 공사는 끝날 것이다. 그래서 해가 지면 다들 칼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노인만 빼고.
진짜 야간공사는 빛이 없어야 할 수 있었다. 회색 시멘트를 대충 찍어 발라 둔 건물 외관을 보았다. 밤이 깊어지면 바깥에서는 안쪽을 볼 수 없다. 일부러 그런 구조로 안전 가림막을 만들었다고 노인이 설명했었다.
“돈이나 많이 주세요.”
집세 내야지. 태연하게 중얼거리며 젓가락으로 식은 밥을 떠 흙바닥에 던졌다. 아까부터 침을 뚝뚝 흘리던 나이 많은 여자가 바닥을 기어와 밥 덩어리를 씹었다. 게걸스러운 장면을 흘금거리며 남은 밥을 먹었다.
“고수레인가?”
“네.”
“미신을 믿다니 특이하군.”
“여긴 공사장이잖아요.”
숨기려고 해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더위와 미세 먼지만큼 귀신들이 숨 막히도록 가득 채워진 공간이었다. 이전에 뭘 했던 곳인지 안 봐도 뻔했다.
“미신을 좀 믿어도 나쁠 것 없는 곳이죠.”
발치에 매달려 좀 더 달라고 구걸하는 아귀에게 다시 밥을 던져 주며 웃었다. 억지웃음이 뻔히 보이는 빈정거리는 말투에 고 영감이 은근히 물었다.
“여전히 적응이 어려운 모양이지?”
“…….”
“저런 단순한 놈들한테서도 못 버티잖아. 자네 인생이 딱 그 정도라네.”
노인이 지적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 감옥에서 보냈다. 그곳은 이와 벼룩이 뛰었고 그보다 더 자주 타인의 피가 튀었다. 사회에 나와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인제 그만 먹고 일어나 일을 하라는 작업반장의 고함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도시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은 쭈그려 앉은 채 해괴한 얼굴로 웃었다.
“이따 뵙죠.”
“그래, 기대하고 있어.”
“고맙습니다.”
목장갑을 끼고 목재와 철근, 시멘트 포대가 가득 쌓인 곳으로 뛰어갔다. 빨리빨리 옮겨! 작업반장이 목에 핏줄을 세웠다. 인부들의 머리와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무거운 시멘트 포대에 어깨가 눌렸다.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자재를 옮기거나 엮어 둔 철골 구조에 올라타 자재를 묶었다. 위태롭게 작업하고 있다 보면 밑에서 트럭이 반복해서 물건을 쏟고 떠나는 걸 볼 수 있었다.
흙먼지가 풀풀 날렸고 작업복을 입은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더러운 목장갑을 벗은 다음 눈을 닦았다. 오른쪽 눈에 티끌이 들어갔는지 따끔거렸다. 다들 마시고 던져둔 빈 생수병이 한쪽에 가득 쌓였을 때 고 영감이 나타나 작업의 끝을 알렸다.
하루치 일당을 받는 놈들이 먼저 돈 몇 푼을 손에 쥐고 떠났다. 소주에 복권이라도 사러 가자고 낄낄거리며 발걸음을 재게 놀린다. 정식으로 고용된 인부들도 어깨와 허리에 파스를 나눠 붙이며 수선을 떨었다. 벌써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정남향으로 짓고 있는 건물 반대편에 지는 해가 보였다. 검은 그림자가 곳곳에 깔리기 시작했다.
“씹,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개 같은 새끼들.”
작업반장이 담배를 피우며 거친 욕을 했다.
대부업체가 보통 그렇듯 이 회사 역시 기원은 조폭이었다. 어디서 돈깨나 긁어모았다는 놈들은 사업을 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있으면 손쉽게 멱을 땄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대부업을 하면서 돈을 갚지 않는 놈이 있으면 처음에는 손가락을 자르고, 그래도 받을 게 없으면 내장을 뽑았다.
그 뒤에는 돈 될 만한 것을 싹싹 긁어낸 텅 빈 거죽만 시멘트와 섞어 땅에 묻어 버리면 된다. 시멘트 섞는 기계는 전기만 연결하면 손쉽게 몇 백 킬로를 갈아 버렸다. 그게 야간에 하는 공사였다.
오늘도 죽는다. 사람이, 이름도 모르는 시신이 지하에 묻힌다. 밑바닥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시체 유기, 은닉, 살인 공조, 사기와 협박…… 가장 더러운 죄.
“윤이원이라고 했나?”
“네.”
“자네는 왜 이런 일을 해? 고 영감 소개라더니, 너도 그쪽인감?”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작업반장이 히죽 웃는다. 사람의 상처를 후벼 파기 위해 노력하는 비열한 얼굴을 보았다.
“네.”
“그쪽은 몇 년이나 했는데?”
손가락이 둥글게 구부러진다.
“5년? 6년?”
5년 좋아하시네. 자랑거리도 아닌 일에 헛웃음이 나왔다.
“12년이요.”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하자 작업반장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12년? 쉰 목소리가 다시 한번 긴 세월을 읊었다.
“네.”
“거참. 고 영감만 세게 볼 게 아니었구먼.”
“별로요.”
“그쪽도 아주 화려한가 봐. 어이쿠, 이러다 내가 한 수 배워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작업반장이 즐겁지 않은 농담을 건네며 트로트를 불렀다. 내 가슴에 사랑의 이름표를 붙여 달라는 구수한 노래가 흥얼흥얼 공사장을 채웠다. 뜻밖에도 노래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이제 곧 해야 할 일과 어울리지 않는 흥겨운 어조에 까마귀가 잠깐 앉았다 날아갔다.
아직도 자리를 뜨지 않고 미적거리던 인부 몇이 삼겹살과 소주 이야기를 했다.
“어이, 총각. 자네도 갈 건가?”
누군가 나를 부르며 손짓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고.”
두 번 권유는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우르르 철수하는 인부들을 보며 다 식은 커피를 마셨다.
“일단 밥이나 먹자고.”
야간 공사를 목전에 두고 작업반장이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강제로 안겨 주는 짜장면을 받아 나란히 중국 음식을 먹었다. 기름진 맛에 속이 느끼했다.
컨테이너에 비집고 앉아 TV를 보면서 시간을 얼마쯤 때웠을까, 바깥에서 자동차 타이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어른거리는 불빛에 영감이 허리를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왔구먼.”
컨테이너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가자 검은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운전석에서 덩치 큰 남자가 내리더니 트렁크를 열고 커다란 캐리어를 꺼냈다.
“차 실장님, 오셨습니까?”
“이번에도 잘 부탁하지.”
“아이고, 그러믄요.”
고 영감이 실실 웃으면서 커다란 캐리어를 덥석 받아 끌었다. 남자는 고 영감을 지저분한 벌레처럼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누가 봐도 힘 좀 쓸 것처럼 단단하게 생긴 자였다.
“저 사람은 누구지? 처음 보는데.”
“아이고, 제가 미리 소개를 안 드리고. 어어, 윤이원이. 이리 와 봐라.”
신발을 찍찍 끌면서 영감의 옆에 가 섰다. 영감이 뒤통수를 눌러 강제로 허리를 숙이게 하였다. 한참 뒤에야 손에서 힘이 풀렸다. 뻐근한 상체를 들어 올리자 남자가 불쾌해 보이는 눈으로 내 얼굴을 훑어보고 있었다.
“저번에 말씀드린 놈입니다. 젊지만 쓸 만할 겁니다. 자자, 인사드려라. 차 실장님이시다.”
노인은 비굴할 정도로 간드러진 목소리를 냈다. 장단에 맞춰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윤이원입니다.”
“……윤이원이라고?”
차 실장이 억세게 내 턱을 쥐더니 얼굴 구석구석을 살폈다. 똑같은 사람 눈인데 실장의 눈은 이상하게 번들거렸다. 이런 일을 하는 새끼들 눈은 다 똑같은가.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입을 꽉 다물었다.
“어이, 이 새끼는 어디서 만났지?”
“학교지요, 학교. 딱 배우기 좋은 곳 아닙니까.”
“흠.”
흉흉한 출신에 차 실장이 턱을 쓰다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이 말한 사람이니 일단 넘어가지. 하지만 이상한 소문이 새어 나가면 가만두진 않을 거야.”
어깨를 툭툭 치는 손끝에는 살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네, 하고 대답했다. 그게 맘에 들었는지 남자는 더 이상의 추궁 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가 떠나는 내내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비실거리던 노인이 히죽 웃으면서 건물 안으로 쑥 들어갔다. 자리에 남아 있는 캐리어를 끌어오라고 턱짓을 한 작업반장이 그 뒤를 따라갔다. 어깨가 씰룩거리는 게 졸개가 생기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생각보다 무겁지는 않았다.
“뭣 해, 빨리빨리 움직여.”
“……네.”
다그치는 작업반장의 목소리에 캐리어를 질질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공터에서 허리를 숙이고 앉아 지퍼를 열었다. 안에는 예상한 것처럼 시체가 들어 있었다. 이미 다 비워 낸 듯 움푹 꺼진 눈과 뱃가죽이 검은 실밥으로 듬성듬성 꿰매져 있었다. 천을 꿰맬 때나 쓰는 싸구려 실이 이 시체를 인간이 아니라 물건으로 다룬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었다.
역겨운 놈들. 작업반장이 욕을 하며 콘크리트 배합기 전원을 켰다. 작은 사이즈의 기계는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았다. 용량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체 한 구를 집어넣기에는 알맞은 크기였다.
이미 뻣뻣하게 굳은 시체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모래와 시멘트를 삽으로 떠 넣었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꽈드득 하는 소리도 났다. 뼈가 부서지고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살인이었다. 이미 죽은 몸뚱이라고는 하지만 살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기혐오가 기어 올라왔다. 구더기가 양심에 구멍을 숭숭 뚫으며 파먹고 들어갔다. 억지로 계속 기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작업반장도 고 영감도 말이 없었다.
믹스 작업이 끝난 기계를 끄고 안에 들어 있는 시멘트를 구멍 안에 붓는 것까지, 작업은 거의 다 홀로 해야 했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묵직하게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펴자 고 영감이 주머니에 뭔갈 찔러 넣고 등을 두들겼다.
“잘했어.”
“…….”
“앞으로도 그렇게 하는 거야.”
‘앞으로도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로 들렸다.
“왜 대답이 없어?”
“……네, 감사합니다.”
전혀 고맙지 않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두둑한 지폐가 잡혔다.
그날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눈에 핏발이 서고 목이 찢어질 것처럼 구토했다. 낡고 더러운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울었다. 타일 위를 슬금슬금 기어 온 뱀 같은 여자가 혓바닥으로 발목을 핥았다. 여자의 얼굴은 콘크리트 배합기에 밀어 넣어 죽인 시체와 닮아 있었다. 이 귀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천장과 벽의 틈, 집안 곳곳 그 어디든 오늘 죽인 여자의 두 눈과 코와 입을 가진 것들이 붙어 나를 욕하고 있었다. 엉엉 울었다. 죽고 싶었다.
교도소에 있을 때 서주영이 면회를 왔었다. 왜 원장을 죽였냐고 물었다. 꿈을 꿨다고 대답했다. 원장이 나를 죽여서 이번엔 내가 그를 죽였다고 대답했다. 서주영이 다시 물었다. 그건 꿈이잖아.
아니야, 현실이었어. 나는 죽었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뒤로 깔딱 숨이 넘어간다. 눈이 타는 것 같다.
그래, 정신이 있을 때 생눈이 뽑혔다. 너무 아파서 온몸의 실핏줄이 다 터졌다. 살갗이 찢겼다. 아아, 죽고 싶다. 죽여 버리고 싶다.
후회가 찢어지도록 아프게 혈관을 핑핑 돌았다. 더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다. 더 갈기갈기 찢어야 했다. 이미 불타 없어진 육신이라도 끼워 맞춰 다시 한번 죽이고 싶었다.
왜 괴로움은 산 자의 몫이어야 합니까, 아버지. 거울 틀을 내리쳤다. 정신없이 기억을 헤집었다.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
스무 살이 되어도 고아원에 남기로 했다. 내 자신이 바라기도 했고 원장도 바랐다. 돌봐 주던 어린아이들도 원했다.
원장은 나를 이상할 정도로 특별하게 아꼈다. 다섯 살에 고아원에 버려졌던 하재연과 달리 나는 갓난아기일 때부터 원장이 받아 길렀다. 젖도 떼지 못해 칭얼거리는 아이를 기르는 것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갓난아이를 도맡아 길러 보고 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원장에 대한 보은의 마음은 더욱 커졌다.
원장은 나를 방에 불러들여 무릎에 앉히고 온갖 세상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신문 기사를 펼쳐 놓고 부모를 토막 살인한 자식의 패륜적인 범죄, 부모가 자식의 목을 졸라 교살한 이야기, 더러운 이야기, 가식적인 이야기, 꿈과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 모든 것들을 가감 없이 읽어 주었다. 나는 원장이 해 주는 모든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들었다.
그런 끔찍한 범죄들은 아이가 듣기에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어렸었고, 주위에는 그걸 가르쳐 줄 제대로 된 어른도 없었다. 그냥 특혜를 받는다고 생각해 영광으로 여겨 몸을 사렸다. 은혜라는 이름의 목줄이 이미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장이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지 했다. 밤마다 방에 불려 가 가발을 쓰고 입술에 끈적거리는 립스틱을 발랐다.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무슨 돈으로 사는 건지 모를 옷이었다. 프릴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원피스와 빨간 리본 구두를 신고 원장의 앞에서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며 재롱을 부렸다. 원장은 나를 ‘예쁘다’고 칭찬했다.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태적인 행위였다. 밤늦게, 새벽까지 이어지는 기현상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하기 싫어요.’
‘왜?’
‘힘드니까요.’
남자아이가 여성복을 입기 위해서는 식단을 조절해야 했다. 살을 찌우는 건 엄금이었고, 또래 친구들처럼 근육을 키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노출이 심한 옷이 많았기 때문에 몸에 흉터가 남지 않게끔 늘 신경 썼다.
가끔 과한 장난을 하다 얼굴에 상처가 생기면 원장은 엄청나게 화를 내며 나쁜 아이라고 욕했다. 부모에게 대드는 아이는 버려져야 한다는 말에 겁을 먹고 빌었다. 말을 듣지 않는 나쁜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늘 가만히 앉아서 운동장을 구경만 했다.
착한 아이로 남고 싶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축구공을 차고 싶은 나이였다. 누구나 힘들다고 느낄 만한 일이었다. 원장이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랐지만 그는 단칼에 뺨을 후려쳤다.
‘……나쁜 아이로구나.’
‘아버지.’
‘내 말을 듣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저는.’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굳게 닫힌 방 안에서 원장은 주먹을 휘둘렀다. 이상했다. 왜, 겨우 치마를 입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건지. 두들겨 맞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너를 아꼈는데!’
잘못한 건가. 남자니까 여자 옷을 입지 않겠다고 한 것뿐인데, 큰 실수를 저질렀던 건가.
원장이 강요하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짓이라는 것을 머리가 굵어진 그때도 몰랐다. 늘 다정한 아버지였고 자애로운 신이었기 때문에 의심이 없었다. 마음의 그늘만 잡초처럼 무성해졌지 그것은 타인이 제거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폭력에 오래도록 길들여진 사람이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원장도 결국 한 발짝 물러섰기 때문이다. 요구는 축소되었다. 원장의 생일, 크리스마스, 신년, 고아원 개원일, 또 몇몇 특별한 날에만 입어 달라고 부탁했다. 더는 존경하는 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승낙했다.
1년에 단 몇 번의 재롱잔치였지만 여성복을 입어야 했기에 여전히 식단은 엄격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MT나 개강 파티에 참석하는 일이 드물었다. 밤 10시가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라는 원장의 명령이 있었고, 돌봐야 하는 동생들도 여전히 있었다.
그즈음 중학생이던 재연에게 고백을 받았다. 짙은 남색 교복을 입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떳떳하게 사귀자고 하다니.
당시에도 하재연은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고아원에 꽃이 피었네, 봉사 활동 온 누나들이 농담을 건넬 정도로 수련같이 예쁘게 피어난 사람이었다. 고백을 받던 순간에도 여자 옷은 재연이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 만큼.
‘넌 너무 어려.’
‘그렇게 어리진 않은데.’
‘대학생과 중학생의 차이는 엄청나거든?’
그놈의 대학생. 재연은 내 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낡은 교복 재킷을 구겼다. 고집이 센 얼굴이 비뚤어진다.
‘그럼 내가 스무 살이 되면 만나 주세요.’
‘뭐?’
‘어려서 안 되는 거라면, 크고 나서 나랑 연애해요.’
‘왜 하필 나야? 예쁜 여자애들도 많잖아. 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거나…….’
‘형, 내가 바보야?’
하재연은 불쾌하면 말이 짧아졌다. 반항적인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외면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삐딱하게 팔짱을 낀 채 짜증을 내는 재연의 얼굴을 보다 못해 백기를 들었다. 둘 사이에 이미 남자끼리는 ‘불가능’하다는 대답은 없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하재연은 날 때부터 호모 섹슈얼이었고, 나는 원장에 의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이 희미해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5년이 지난 후 우리는 각각 스물다섯과 스물이 되어 연애를 시작했다. 5년 사이에는 별일이 없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정식 교제는 나름대로 그때부터였다.
밤에는 위태로운 두 사람이 사랑과 욕망에 겨워 섹스를 하고, 낮에는 사이좋게 고아원의 재정을 관리하고 일을 도왔다. 스물아홉까지 삶은 평범하고 멀쩡했다.
‘나도 빨리 취직해야 하는데.’
학비 때문에 중간중간 휴학을 하는 바람에 아직도 졸업이 한참 남은 재연이 투덜거렸다. 아직도 앳된 티를 덜 벗은 얼굴이 귀엽다. 방긋 웃으며 최근 몇 년간 입양 갔던 아이들의 입적 서류를 정리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좀 더 놀아.’
‘형은 일찌감치 졸업하고 일하니까 그런 말 할 수 있는 거예요. 아, 나도 여기 취직…….’
‘월급 짜다. 부탁이니 다른 곳에서 많이 많이 벌어 와.’
‘쳇.’
후원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고아원에서 직원을 늘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최저 임금도 못 받는 수준인데. 잔소리하면서 등을 내려치자 재연이 투덜거리면서 방 바깥으로 나갔다. 그제야 억지로 웃고 있던 얼굴을 조금 풀 수 있었다.
‘…….’
이번에 입양이 된 아이와 꽤 친했었다. 천금처럼 아끼던 토끼 인형을 두고 갔기에, 보내 줄까 싶어 양부모의 연락처로 전화했지만 둘 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만 나왔다. 이상해서 원장실에 있는 서류를 멋대로 뒤지다 통장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원장 선생님 개인 명의의 통장이었는데, 입양 날짜와 같은 날 거액의 돈이 들어와 있었다. 후원금이나 개인 자금이라고 치기에는 액수가 컸다. 1억 2천…….
그 말고도 비슷한 액수가 뜸하게 입금되어 있었다. 전부 익숙한 날짜였다. 입양 날. 생각해 보면 입양된 형제자매들은 그 뒤로 고아원을 찾지 않았다. 편지에 답장도 없었다. 종종 양부모로 온 사람들이 어눌한 한국어를 쓰는 경우가 있었다. 화교나 연변 쪽 말투 같은…….
불신도 병이라더니, 홀로 농담을 건네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29년 만의 깨달음이었다.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날 밤 제 발로 원장의 방에 찾아갔다. 원장은 특별한 날도 아닌데 와 준 나를 보고 크게 기뻐했다. 오랜만에 착한 아이라고 칭찬을 하며 옷장에 가득 차 있던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꺼냈다. 느슨하게 묶인 푸른 리본 끝을 잡아 풀며 억지로 웃었다.
원장은 직접 입술에 색을 칠해 주었다. 붉은 립스틱, 분홍색 립밤. 뭐든 좋았다. 뺨을 물들이고 눈을 칠하고 여자 옷을 걸치고 구두를 신었다. 다 자란 남자가 이런 꼴을 하면 이상해 보일 텐데. 원장은 성인 남성을 인형처럼 다루며 기이할 정도로 절박한 얼굴로 콧김을 뿜으며 찬사를 내뱉었다.
‘착하다, 이제 다시 착해지기로 한 거니? 내가 큰일을 저지를 뻔했구나.’
‘네?’
‘아니다, 아니야. 오랜만에 술도 마셔 볼까.’
싱글벙글 웃으며 원장이 맥주를 꺼냈다. 기분이 좋다고 마구 마시는 원장을 좀 더 꼬드겨 취하게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술에 잔뜩 취한 원장을 부축해 침대에 올려놓고 휴대폰을 몰래 훔쳐보았다. 타인의 휴대폰을 마음대로 훔쳐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하늘 같아 배반할 생각도 못 했던 사람의 것을.
지문인식 잠금이 걸려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술에 곯아떨어진 원장의 엄지를 버튼에 가져다 대 보안을 풀었다. 전화번호부를 훑어보다 입양 중개소라고 등록된 연락처를 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권 원장, 새벽에 어쩐 일이야?
들어 본 적 있는 어눌한 한국어였다. 원장의 몸부림에 침대 밑으로 흘러내린 이불보 끝을 손으로 꽉 쥐었다. 팔이 떨렸다.
-팔아 치운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화야? 요즘 돈 쓸 일이 많나 봐? 뭐, 어린애들 구하는 곳은 널렸으니 우리야 좋지만…….
요즘 귀한 게 심장이야. 체력 좋은 애로 골라 봐. 전화 너머에서 상대는 신난 목소리로 인간의 장기에 값어치를 매기기 시작했다. 아, 목에서 피고름이 나오는 것 같았다.
-듣고 있어? 그런데 저번 애는 왜 그렇게 비쩍 꼴았…….
‘…….’
-권 원장? 여보세요? ……너 누구야?
코 고는 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겨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침대를 돌아보았다. 원장은 침대 위에서 폭행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이불로 몸을 감싸고 덜덜 떨고 있었다. 살찐 몸이 도살 직전의 돼지처럼 보였다. 혐오와 배신감에 구역질이 나왔다.
‘이, 이원아.’
‘내 이름…….’
‘이원아, 아니야. 아니야. 응? 착하지?’
‘내 이름 부르지 마.’
두툼한 손가락이 어르기라도 할 것처럼 뺨으로 다가왔다. 휴대폰을 내던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죽여 버리고 싶다. 아니야, 그 전에 알려야 했다. 여기는 고아원이 아니다. 사육장이었다.
원장실의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이원아! 원장이 살찐 비명을 질렀다. 헉, 헉. 늘 걸었던 짧은 복도가 너무 길었다. 한바탕 거세게 넘어지면서 무릎이 대판 깨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혼자 쓰는 방문을 거세게 열어젖히고 들어가 서랍을 미친 듯이 뒤졌다. 신원 불명의 양부모들, 유령 회사 같은 소개소, 거액의 돈.
‘이원아, 내 아가. 아니야, 이건 오해란다.’
뒤따라왔는지 원장이 비참한 몰골로 설설 기며 방 안에 들어왔다. 믿고 싶지 않아 숨겨 두었던 서류를 꺼내 집어 던졌다.
‘당신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오, 오해야. 정말로 내 말 좀 들어 보렴. 응?’
‘오해라고? 당신이, 어떻게, 우리를…… 나를, 어떻게…….’
숨이 막혔다. 가슴이 꺼질 것처럼 답답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죽음의 손을 잡고 걸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였다.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게 내가 되었으면, 그게 만약 재연이었으면, 우리였으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야. 쓰레기, 개자식.’
‘내, 내가 뭐든 할게. 제발, 제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두 손을 싹싹 모아 비는 원장을 보자 구토감이 일었다. 눈물은 내게서도 떨어지고 있었다. 원장은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신이었다. 형제들의 아버지였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였다. 사고뭉치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을 늘 끌어안고 귀애한다 말해 주었다. 그에게 귀한 것은, 우리의 몸 안에서 펄떡이고 있는 장기였을 뿐인데.
‘……자수해.’
‘워, 원아.’
‘자수해. 당신이, 직접 고백해.’
‘아…… 으으, 모, 못 해.’
‘내가 하기 전에 해. 하세요. 제발, 내가 당신을 죽이기 전에 하라고.’
증오와 사랑은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무거워 얼굴을 감싸 쥐고 하염없이 울었다. 어떻게 아버지, 당신이 우리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린 원장의 앞에 같이 주저앉아 울었다. 차마 감싸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종신형을 면하기 어려운 범죄였다.
원장은 이틀 뒤 자수를 하겠다며 무서우니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 부탁이라는 호소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의 무릎에 앉아 보낸 세월이 길었고, 입술에 발랐던 건조한 립스틱은 아직도 덜 지워져 있었다. 입고 있는 하늘색 원피스와 장롱 안을 채운 옷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는 입을 일 없을 그 화려한 옷들은 전부 불태워 버려야지.
원장이 삶을 정리하기 위해 달라고 한 이틀은 허무했다. 원장은 나와 마주치기만 해도 덜덜 떨었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기 조각만 보여도 역겨워 구역질이 났다. 물을 마시면 피를 마시는 것 같아 전부 게워 냈다. 혹시나 원장이 도망칠까 봐 꼬박 이틀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버텼다. 다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억지로 괜찮다고 말하며 손사래 쳤다.
심신이 괴로웠던 건 나였는데 이상하게 하재연이 앓아누웠다. 알바에 시험 기간까지 겹쳐 마무리 짓는다고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꼭 나가야만 했는데, 예쁜 얼굴이 시름시름 앓는 걸 보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한 열에 찬 물수건이 벌써 미지근해져, 결국 30분 넘게 재연의 머리맡에 앉아 수건을 갈아 주고 병간호를 했다.
‘형, 오늘 일 있다면서요. 안 나가?’
‘너 아픈데…….’
‘난 괜찮으니까, 얼른 다녀와요. 한숨 자고 나면 될걸.’
열에 들떠 붉어진 눈을 하고선. 마뜩잖은 얼굴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을 앞두고 있어서 마음이 무거워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원장을 붙잡고 시내로 나갔다. 원장은 마지막까지 증거를 담은 가방을 흘낏거리며 비굴하게 굴었다.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용서요? 뭘? 내가요?’
원장이 용서를 빌어야 할 상대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다. 우는 소리를 내며 푸들푸들 떨리는 늙은 얼굴이 가련하고 추했다.
‘나, 나도 널 용서했잖니.’
‘뭐라고요?’
‘나쁜 아이는 너잖아.’
‘지금 무슨 소리를…….’
‘봐주려고 했는데!’
원망이 뚝뚝 흐르는 눈동자가 나를 들짐승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뻔뻔한 헛소리에 기가 차 험한 욕을 삼켰는데, 갑자기 머리 뒤통수가 둔해졌다. 멍하게 뒷머리에 손을 갖다 댔더니 축축한 액체가 묻어났다.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럼, 이건 우리가 마음대로 해도…….’
‘네, 네, 그럼요. 상관없습니다.’
‘다음부턴 주의하라고. 멍청하게 들키면 우리도 곤란해.’
‘여기 돈. 세어 봐.’
‘하나, 둘, 셋…….’
머리가 너무 아파서 정신이 들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지만 귀로 소리는 들렸다. 27만 5천 원. 머리맡의 입이 시끄러웠다. 원장이 정확하게 말하던 그 액수가 이상하게 귀에 들어왔다. 원장은 뒤이어 담배와 술을 즐기지만 젊으니 쓸 만할 거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차가운 금속으로 내 눈꺼풀을 슬슬 비볐다.
‘아주 좋아, 너무 좋아. 예쁜 애를 작업하면 기분 최고지.’
낮은 목소리가 콧노래를 불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움찔거리는 몸을 보았는지 원장이 귓가에 속닥거렸다. 침이 튀었는지 귓가가 축축해졌다.
‘미, 미안하다.’
그는 울고 있었다.
‘하, 하지만 아가, 네가 나쁜 아이니까 어쩔 수 없어. 아, 아버지 말에 대들면 안 돼…… 너는 착했는데, 이제는 옷도 잘 입어 주지 않고…….’
‘뭐야, 변태 영감. 얘 데리고 인형 놀이했었어?’
‘저, 정말 예뻤는데…… 예쁘다고 내 말도 들어 주지 않는 거니. 너는 나쁜 아이야. 그렇지만 걱정 말아. 재연이는 아직 착하니까, 네가 멀리 갔다고 이야기해 줄게.’
안 돼. 하재연의 이름을 듣는 순간 죽음이라는 것이 적셔 들어오고 있었다. 원장을 조금이나마 믿었다. 믿고 있었다. 그가 죄의 무게 앞에서는 굴복할 거라고. 그러나 원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팔았다. 27만 5천 원. 1억 2천도 아니야. 겨우 27만 5천 원!
그는 살기 위해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했으면서, 자수하겠다고 했잖아. 도망쳐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을 때 두 눈이 있던 부위가 미친 듯이 아파 왔다.
‘아아아아악!’
‘어이쿠, 조심, 조심.’
‘으아. 하, 아아악!’
‘흔들렸잖아. 예쁘게 뽑아 주려고 했는데 너무 많이 찢어졌네.’
눈이 타는 듯 뜨거웠다. 어떤 말로도 서술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입이 찢어지도록 벌리고 비명을 질렀지만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온몸이 산 채로 찢어지고 있었다. 서늘한 금속이 몸 구석구석에 꽂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묶인 채로 미친 듯이 펄떡거리며 뛰었다.
‘역시 어른들이 잘 버틴단 말이야. 어린 애들은 쇼크사 하니까…… 아아, 역시 마음에 드네.’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 고통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어디가 뒤틀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도 참을 수 없었다. 누가 그냥 단칼에 죽여 주었으면 좋겠다. 살아 있다는 것이 더 괴로웠다. 다 쉰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희미한 음성이 생각났다.
빨리 돌아와요, 형. 침대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괜찮다고 말하던 재연을 생각했다.
누가 나 좀 살려 줘. 제발, 살려 주세요.
‘심장, 간, 췌장…… 힘줄, 피부 조직, 혈관, 피까지. 아직 한참 많이 남았어, 응? 힘내.’
‘빨리해, 아파하잖아. 저러면 아무것도 못 쓴다고.’
‘아, 그래야지.’
손톱이 바닥을 긁었다. 너무 아팠다. 재연이가 보고 싶었다. 좀 더 살아 있고 싶었는데…… 부모에게 버려졌다고 세상에서도 버려질 수는 없잖아. 나도 사라지는 거야? 안 돼. 재연아. 혹시 재연이도 똑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나는 멍청했으며 나약하고 힘이 없었다. 순진무구하고 철이 없었다. 현실과 배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약한 믿음이 더 많은 형제들을 죽게 만들 것이다.
‘시, 신…….’
입 안에서 어금니가 깨졌다. 혀를 잘못 물어 피거품이 입 안에서 튀었다.
‘신이시여…….’
처음으로 원장이 아닌 실체 없는 신을 찾았다. 살려 주세요. 이렇게 살기 위해 내가 태어나진 않았잖아요. 신이시여, 나를 구하시고 죄 많은 이들을 벌하소서. 이 죄를 벌할 수 있다면, 혼과 육을 바치겠습니다.
이름 없는 신에게 올리는 마지막 기도가 끝나갈 때 묘한 음성이 들렸다. 사악한 목소리였고, 따뜻한 온도였다. 둥근 구슬처럼 투명했다. 몸을 덮던 고통이 일시에 전소하는 것처럼 시간이 멈췄다.
「살려 줄까.」
이게 무슨 소리일까.
「살려 줄까, 원아.」
너무 아파서 미쳐 버린 게 아닐까.
「이번 삶을 포기한다면, 다음 생에서 너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많은 부와 운을 가지게 된단다.」
그런 게 있었으면 일찍 줘야지. 조소하는 사념의 귓가에 대고 목소리가 다른 선택지를 속삭였다.
「하지만 살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도 된단다. 」
어떻게?
「시간을 돌리겠니?」
시간을 돌려?
「미래의 부귀영화를 모두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거지.」
그건 좀…… 끌리는데. 재밌는 이야기다. 동화책이나 영화 속에 자주 나온 타임머신을 생각하며 웃었다. 미쳐서 환상을 겪는 걸까. 낄낄거리며 목소리에게 계속 이야기하라 재촉했다.
「첫 번째 선택을 한다면 너는 윤회를 거쳐 다시 태어날 거란다. 아름답고 평온한 인생을 살겠지. 공기는 달고, 햇볕은 온화하고 부유하며 축복받은 날을 지내게 될 것이다. 억울한 건 한순간이지 않을까. 원장도 언젠가 죽어 죗값을 치를 거고, 다음 생에는 자신이 지은 죄만큼 고통받는단다. 별개로 너는 아름다운 미래를 가지게 될 거야.」
재연이는? 목소리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선택지가 있지. 말한 대로 시간을 돌리는 거야. 복록을 지불하고, 지옥 불을 견뎌내 네가 가진 업을 치르면 다시 생을 반복할 수 있단다. 남들은 가질 수 없는 기회를 가지니 너는 모았던 복록을 전부 대가로 써 버릴 거고, 미래는 비참해지겠지. 그래도 좋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게 해 주겠다.」
과거로 가면 재연이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될까. 아이들이 입양이라는 이름 아래에 팔려 가 장기를 떼어 내고 버려지지 않아도 될까. 원장이 원하는 대로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될까. 그 전에 원장을 내가 미리 죽여 버린다면.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맞아, 눈이 뽑혔지. 고통스러웠다. 뱃가죽이 산 채로 열렸다. 날카로운 것으로 피부를 긁었다. 췌장과 심장을 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고통을 전부 끌어모아 목을 조르는 것처럼 아팠다.
사랑한다고, 누구보다 아낀다는 말에 헌신하는 종처럼 여성의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입지 않으면 죄를 지었다고 때렸다. 그런 비뚤어진 모습도 사랑했습니다, 아버지.
그 맹목적인 마음은 헐값에 팔렸다.
「선택하렴. 타인의 행복과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불구덩이에서 태워지는 듯한 아픔을 되새기며 이를 악물었다. 돌아간다면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다시 돌아갈래.
「네가 비참해져도?」
돌아가면 내 미래가 비참해진다고? 내게 미래는 이미 없는데?
날 선 대답에 목소리의 주인이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불쾌하고 난처한 웃음이었다.
뽑혀 나가 텅 비었던 눈이 서서히 차올랐다. 찢어진 복부가 붙고 장기가 생기자, 도깨비가 채찍을 내리치며 바닥을 기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허름하고 좁은 고아원의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오래 썼던 낡은 이불이 손에 잡혔다. 천천히 몸을 확인했다. 말랑말랑한 손바닥과, 벽에 얌전히 걸린 중학교 교복이 보였다. 그대로 뛰쳐나와 아래층에 있는 주방에 들어가서 칼을 꺼냈다. 식칼의 나무 손잡이는 느슨하고 미지근했다. 복도는 맨발이 부딪칠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숨 막히는 살의, 이것은 환희였다.
햇살에 건물이 이글이글 타오르다 겨우 식어 가던 여름날 밤이었다. 고아원에 불이 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불을 붙였다. 겨울에 쓰고 남은 난로 기름을 부어 만든 불은 금방 건물 전체로 번졌다.
잠을 자다 뛰쳐나온 상급생들이 아이들을 막는다고 몸싸움을 벌이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아직 나오지 못한 사람이라며,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비명이 들렸다.
‘형, 원이 형!’
내 이름을 부르며 재연이 오열하는 소리가 창문을 타 넘고 들렸다. 그 여린 목소리에 잃어버린 지난날의 심상이 잠깐 일었다 사그라들었다.
울부짖는 비명은 불타는 소리보다 더 컸다. 창문을 통해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다 불붙은 커튼을 잡아 쳤다.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가 조금 가려졌다.
멀리서 소방차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화마는 이미 건물 전체를 뒤덮고 난 뒤였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고,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방 안에는 나무와 고무, 플라스틱 타는 지독한 냄새가 가득했다. 이제 이곳에는 단둘뿐이다. 짐승이길 선택한 나와, 눈앞의 짐승.
원장의 발목과 연결된 한쪽 손목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길게 늘어진 줄은 중간 쯤 무너진 가구에 깔린 채로 반쯤 불에 타고 있었다.
‘씨발, 이거 풀어, 당장 풀어!’
원장이 반쯤 그슬린 얼굴로 욕을 퍼부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는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런 원장을 무시하고 밧줄 매듭을 꼼꼼히 둘러보다 책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익숙한 브랜드의 립스틱이었다.
수백, 수천 번을 입술에 바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 흉내를 냈다. 여자의 옷을 입고 저 무릎에 올라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게 나쁜 일이라는 것도 모르고 병신처럼 살다 처음으로 거부를 했더니 때렸다.
죄를 물었더니 살해당했다.
‘27만 5천 원…….’
나보다 덜 사랑하던 아이도 1억은 받았으면서, 뜻을 거슬렀다고 도떼기시장의 폐기물처럼 팔아 치웠다. 돈의 가치로 평가받고 싶진 않았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불티의 거스름이 낀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핑크빛이 도는 립스틱을 익숙하게 입술에 발랐다. 텁텁한 질감이 느껴졌다. 크레파스 향이었다. 몇 번 입술을 부딪쳐 제대로 바르고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 복종이 겨우 그만한 값어치였다니, 너무하세요. 저를 그렇게 아끼셨잖아요.’
타인의 인생과 영혼을 망가트리기 위한 도구가 되어 삶이 끝난다니, 완벽하기 그지없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대로 두었다면 더 많이 죽었을 형제들을 이번에야말로 구하는 것이다.
어차피 살아남을 생각은 없었다. 남김없이 죽여 버리기 위해 지옥에서 돌아왔다. 안도감이 든다. 불을 잔뜩 먹은 방의 가구와 커튼에서 피어나는 불꽃 소리가 화음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당신을 죽일 거야.’
‘윤이원! 이 씨발년, 개 같은 새끼, 네가 은혜도 모르고!’
원장은 인생 처음으로 만난 악인이었고, 최악의 악인이었다. 죄책감도 없이 부풀어 오른 저 독 같은 얼굴에 삶이 망가졌다.
불이 붙은 몸은 아프지 않았다. 이미 아픈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타인을 아프게 하고 살아왔던 원장만 불붙은 몸을 미친 듯이 흔들며 울부짖었다. 살려 줘, 살려 줘. 그러나 튼튼하게 매듭지어진 끈은 끊어지는 법이 없었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불에 휩싸인 문으로 기어가는 육덕 진 몸을 나와 연결해 붙들고 있었다. 좀 더 편안한 작업을 위해 손에 힘을 줬다. 날카로운 칼이 원장의 정강이를 찢었다.
‘아아악! 아, 아, 아, 아파, 살려 줘!’
‘나도 아팠어.’
눈이 뽑혔어. 정신이 남아 있는데. 당신도 옆에 있었잖아, 내가 비명을 지르는 걸 보았잖아. 그들이 내 눈을 뽑았어. 내 장기도 손톱도 뽑았어. 장기가 텅텅 빈 시체는 찾을 수도 없겠지. 재연이가, 그 애가 나를 아주 오래 찾으며 울다가 지치진 않았을까.
‘정말로 아팠어요, 아버지.’
‘윤이원! 풀어, 살려 줘! 풀어!’
오래전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수많은 형제가 나와 똑같은 꼴을 당했겠지. 당신은 정말 개새끼야.
손가락을 쑤셔 넣어 원장의 눈을 뽑았다.
이미 노화된 건물은 불길을 걷잡을 수 없었다. 뼈만 남기고 모두 타고 있었다. 원장이 아이들을 빼돌려 장기밀매를 했었다는 증거도, 그릇된 욕망과 어리석은 애정도 전부 사라질 것이다.
식칼로 허벅다리와 어깨를 찢었다. 무뎌서 잘 잘리진 않아 몇 번이나 칼자루를 고쳐 잡아야 했다.
불로 소독을 하고 나면 깨끗해지겠지. 전부 태워 없앤다면 너는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재연아.
늙고 티 많은 살갗을 벗겼다. 피가 너무 많이 말라붙어 칼날이 잘 들지 않아 마지막에는 손으로 직접 벗겼다. 피부 조직도, 혈관과 피도 돈이라고 했었다.
사랑스럽고 예쁜데, 뭐가 그렇게 미워서 네 부모님은 재연이 너를 버렸대. 왜 하필, 이렇게 최악인 고아원을 골라 너를 놔두고 갔을까.
매일 새벽 내가 더러운 줄도 모르고 손을 붙들고 웃던 얼굴이…… 내가 좋다고, 거리낌 없이 안아 주던 네가…… 사랑한다고 말해 주던 모습이,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헤어진 마지막이 입 안의 가시 같았다. 아니, 그랬나?
불이 붙은 손에서 살점과 뼈가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원장이 울부짖으며 벽에 머리를 박았다. 저 정도로 고통스러운가…… 전혀 아프지 않은데. 온몸이 피와 살점에 더러워져 끈적거렸다.
바깥이 아주 시끄럽고,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났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자살 뉴스를 예로 들며 죽음은 쉽게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 말했다. 스쳐 지나간 말에 불과했었나 보다.
형이 나를 살렸었죠.
그러니 오래오래 함께 있자고, 재연이 내 어깨와 등을 끌어안으며 청혼했다. 아, 스물이 넘고 청년이 된 그 애는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미소만 지어도 꽃이 흐드러진 것처럼 예뻤다.
나 같은 칙칙한 남자랑 연애해 준다니, 영광이었어. 이제 와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죽어서도 잊히지 않겠지. 감정은 어려우니 잘 모르겠지만, 죽는 이 순간 너를 생각할 만큼 깊게 사랑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오직 죽이기 위해 돌아왔으니, 이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마음을 다독거리며 피투성이와 내장으로 질척거리는 칼자루를 놓았다.
누군가 입술을 핥았다. 녹아내린 눈꺼풀 위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영 쓸모없는 짓을 하는구나.」
기회를 주었던 목소리가 쓰러진 내 멱을 잡았다. 피로 범벅이 된 손가락에 새살이 돋고 있었다. 화상과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불꽃의 덩어리에서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 흰 발등, 검은 가죽신.
「살아라. 살아서 걸어라.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원장이 입과 눈을 크게 벌린 채 타들어 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미 반쯤 시커멓게 타버린 시체의 살점과 내장이 익는 냄새가 역겨웠다.
「살아서, 죗값을 다시 한번 치러 나를 기쁘게 해 다오.」
뜨겁게 타오르는 불을 보며 몇 번이고 강요당했다. 살아남아라, 살아라.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인 상태로 구출되었지만 화상은 거의 입지 않았다. 너무 멀쩡한 몰골에 다들 기적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들것에 원장의 사체가 실려 나오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입이 딱 다물렸다.
내 손톱 밑에 알알이 박힌 살점, 주머니에 잔뜩 들어 있던 인간의 내장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한 형사가 그 자리에서 구토했다.
당시에는 왜 주머니에 그걸 전리품처럼 집어넣고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왜 죽였어?’
‘죽이고 싶었으니까요.’
‘장기는 왜 꺼냈어?’
‘나한테도 그랬으니까요.’
수사 과정은 곤욕이었다. 생각해 보지도 않은 행위의 이유를 물어보니 짜증이 났다. 무슨 말을 해도 들어 먹히는 건 한 마디뿐이었다. ‘죽이고 싶었다.’ 원장의 아름다운 평판은 진술한 살인 동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여장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었지만, 신체에 성폭행의 흔적도 없었으니 역시나 의도로는 불충분했다.
수사관들은 심리 검사랍시고 이상한 테스트 몇 개를 하더니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했다.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소용없었다.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을 죽여야만 했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자 사람들은 나를 공감 능력이 결여된 정신병자로 확정 지었다.
어리다고 관대하게 넘어가기에는 살인 방법이 지나치게 잔인하다. 피해자는 살아 있는 상태로 장기를 뜯기고 불에 탔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은 피해자, 고아원 건물 소실, 큰 재산 피해를 낳은 데다 많은 인명 피해까지 낳을 수 있었던 범죄 행위.
‘피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음, 그 사람도 지옥에 갔으면 좋겠는데요.’
그리고, 반성의 태도가 없는 행동을 모두 고려해서 판사는 12년 형을 선고했다.
삶이 망가졌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때는 푼돈을 모아 혼자 국내 여행도 갔었는데 어딜 갔는지 잊었다. 대학교 생활이 어땠는지, 전공이 뭐였는지, 재연이와 나눴던 섹스나 키스가 어땠는지도 이젠 모른다.
***
“…….”
처음 살인을 저지르던 그 순간의 희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죽었던 과정을 똑같이 따라 했다. 두 손 가득 잡히던 눈알의 끈적거리고 미끄덩한 감촉이 떠올랐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눈 한쪽이 툭 불거진 귀신과 시선이 마주쳤다. 반들거리는 눈동자에 내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귀신이 흥미로운 얼굴로 눈을 데굴 굴렸다.
“야, 너네 빨리 성불해.”
귓등으로도 안 들을 내용이지만 되는 대로 지껄였다.
“내가 가 봤는데, 지옥 거긴 오래 있을 곳이 안 된다니까.”
끼이익. 입술이 없는 남자 귀신 하나가 금속 마찰음을 흉내 내며 낄낄 웃었다.
“진짜야. 거긴 1초라도 덜 있는 놈이 승자야.”
애써 충고를 해줬더니 다 같이 비웃는다. 이놈들이 사람 말을 안 믿네. 뒷골이 당겼지만 인내심을 가지기로 하고 다시 한번 설득했다.
“씨발, 내 집에 있을 거면 월세라도 내든가.”
설득을 하려고 했는데 진심이 나왔다. 우울해서 이불 안으로 고개를 처박자 누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아까부터 점점 튀어나오던 귀신의 눈이 이제 가는 신경으로만 겨우 연결된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귀신이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찌르면서 웃는다. 나름의 위로인 것 같긴 한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정말 싫거든…….”
습기를 먹어 축축한 이불을 발로 걷어차고 벌렁 누웠다.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귀신 하나가 갑자기 창문 쪽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덜컹, 집에 유일하게 하나 난 창문이 흔들렸다. 누운 채로 고개만 슬쩍 들어 손가락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상 위로 두 뼘 정도 올라간 창문을 통해 누군가가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두 주먹이 울끈 쥔 쇠창살을 몇 번 더 거세게 흔들었다. 눈 아래까지 올려 쓴 마스크와 푹 눌러쓴 모자 때문에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비명이라도 질렀을 텐데, 교도소에 살면서 손바닥만 한 창을 휙휙 열어젖히고 소리를 지르던 간수들 탓에 저런 관음증이야 익숙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배를 긁적거렸다.
“뭘 봐, 불났냐.”
태연하게 대하자 변태 같은 놈이 움찔하더니 새카만 눈을 번뜩이며 노려보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아서 곤란하다니까. 난 스토커랑 연애할 마음이 없거든.”
심드렁하게 중얼거리자 놈이 어깨를 부풀리며 입 안으로 무슨 말을 웅얼거리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집 안으로 툭 던져 넣었다.
코가 저절로 찌푸려질 만큼 고약한 냄새가 났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이미 구더기가 꼬인 들쥐 사체였다. 이런 걸 주머니 안에 넣고 있다니, 비위도 좋은 놈일세. 다른 의미로 감탄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깔짝거리지 말고 꺼져.”
맨손으로 쥐 사체를 움켜쥐고 창문 밖으로 다시 던지자, 놈이 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창문에서 떨어져 나갔다.
사체에서 굴러떨어진 구더기 몇 마리가 바닥과 창문틀을 기어 다녔다. 허겁지겁 도망가는 놈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노려봤다. 분명히 저 자식, 왼쪽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발돋움해서 바깥으로 난 쇠창살 부분을 매만졌다. 흠집이 우둘투둘하게 나 있었다. 칼로 몇 번 그어 댄 자국이었다.
성큼성큼 걸어온 꺽다리 귀신이 입을 쩍 벌리고 기어 다니는 벌레를 꿀꺽 집어삼켰다.
착하다, 남은 구더기 하나를 마저 던져 줬더니 구더기를 삼킨 혓바닥이 쭉 늘어나며 날름 발가락을 핥았다. 귀신 중 하나쯤은 벌레잡이로 키워도 좋을 거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쇠창살의 흠집을 반복해서 만졌다.
주영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를 죽이고 싶어 하는 놈은 많아. 하재연 주위에 최근 들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대.
아니다. 하재연이라고 보기에는 체구가 달랐다. 물론 체구를 속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놈이 도망친 골목 끝이 이상하게 어두웠다.
다음 날,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살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