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 엔드(HAPPY END) 2권-3. 달콤한 시간 (5/24)

3. 달콤한 시간

문 앞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흔들렸다. 도란도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나가는 여학생 두 명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엔지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탄성처럼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피곤하다.”

“고생하셨어요.”

“아니야, 이원 씨도 피곤하겠다. 앉아, 앉아. 좀 먹고 쉬자.”

날씨가 초여름에 접어들면서 무더워지니 손님이 부쩍 늘었다. 다른 카페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고 하지만, 한 무리가 들이닥쳐 종류별로 커피를 대여섯 잔씩 시키면 정신이 나가기 마련이다. 아침에 가득 채워 뒀던 얼음의 반이 없어졌다. 팥빙수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일지도 몰라. 엔지가 테이블에 이마를 괸 채 흑흑거리는 소리를 냈다.

개수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남은 와플 위에 아이스크림과 생크림을 함께 올려 엔지에게 가져다주며 말없이 등을 툭툭 두들겼다. 아직 일에 서툰 탓에 커피나 음식을 만드는 건 엔지가 혼자 거의 다 하고 있었다.

얼음을 잔뜩 넣어 시원하게 만든 달콤한 밀크티를 건네자 엔지가 반색하며 두 손을 뻗어 잔을 잡는다. 빨대를 입에 문 엔지가 턱 밑에 묶어 둔 리본 끈을 풀었다. 꽃무늬가 잔뜩 박힌 끈이 늘어져 있어 얼굴에 둘러 묶을 수 있는 독특한 모자였다. 여름이라고 재질을 맞췄는지 밀짚모자나 옅은 색 쉬폰 끈이 시원해 보이긴 했지만,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면 갑갑한 모양이었다.

오늘도 엔지는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반팔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더울 정도로 꽉 껴입은 분홍색 점퍼스커트와 흰색 블라우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까지. 보는 사람이 숨 막힐 정도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다. 등 뒤로 돌려 묶은 커다란 리본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장난을 치자 엔지가 우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사람이 많이 오네. 원래 여름이라도 이러지 않았는데…….”

“늘어져 있지 말고 일어나요. 손님 오면 어쩌려고.”

“으, 이제 장사는 더 못 하겠어……. 슬슬 팻말이나 돌려 둘까.”

“먹고 있어요. 대신 돌려 두고 올게요.”

“부탁할게.”

같이 일하는 사이 부쩍 친해진 엔지는 이제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다. 호칭은 버릇인지 꼭 이름 뒤에 씨, 하고 존칭을 붙였지만 내게 투덜거리기도 할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되었다. 재연은 그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엔지와 붙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을 열고 팻말을 뒤집자 손가락 끝이 따끔거렸다. 가게에 결계가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것 같아 신기했다. Close라고 적힌 문구를 손가락으로 따라 적다가 문을 닫고 돌아왔다. 키위를 포크로 찍어 먹으며 엔지가 기지개를 쭉 켰다.

“으아, 오늘은 예약 손님이 있어.”

“예약 손님이요?”

“응. 아주 중요한 손님이신데, 이원 씨가 있어서 드디어 해결하게 되었지 뭐야.”

엔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엔지가 허겁지겁 테이블을 치우고는 문 앞으로 달려갔다. 바로 열어 주면 될 텐데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스커트가 접히지 않았나 점검까지 하며 부산을 떨어 댄다.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엔지가 마지막으로 모자를 똑바로 쓰고는 한 번 헛기침을 했다.

“들어오세요.”

자연스럽게 문이 덜컹 열리면서 흰빛이 들어왔다. 치렁치렁한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소매와 옷자락이 어찌나 긴지 바닥에 질질 끌렸고, 진줏빛 옷감의 표면은 광택이 흘렀다.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치우 님.”

“엔지, 언제 봐도 예쁜 옷이야.”

“어머나, 감사해요. 저도 치우 님 옷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엔지가 방글방글 웃는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예쁘게 웃는 모습이, 엔지가 좋아하는 사람인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치우라고 불린 남자는 문 앞에 서서 엔지와 담소를 나누다가 이쪽을 흘낏 쳐다봤다. 재잘거리던 엔지는 그제야 남자를 안내해서 테이블 의자에 앉혔다.

남자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쳐다본다. 시선으로 얼굴이 뚫릴 것만 같아 민망해져 뺨을 긁적이자 픽 웃는다.

“엔지, 이쪽이 새로 일하는 직원?”

“네, 그렇죠. 드디어 치우 님의 소원을 들어 드릴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소문의 그 변칙적 영혼의 소유자인가.”

지금 내 이야기를 하는 건가. 눈치를 보자 엔지가 등 뒤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일이라곤 시작한 지 일주일이 겨우 넘은 초보인데, 어떻게 엔지도 못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 멍하니 바라보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규룡이다.”

“아아, 예에.”

이젠 놀랍지도 않다. 술이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남자가 턱을 쓸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놀라지 않는군.”

“그게 이원 씨의 장점이죠.”

엔지가 불쑥 끼어들며 찻잔을 남자의 앞에 두었다. 남자가 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찻잔을 잡았다. 길고 화려한 복식은 동양의 옷 그 자체였지만, 서양식 찻잔을 들고 있는 것도 잘 어울리는 미남이다.

“천 년 전 상처를 입고 이 땅에 머물렀는데, 눈을 뜨니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남자의 눈은 푸른색이었다. 바다와 닮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나라에서 힘을 회복해 돌아가려 하였으나 그러지 못했다. 눈을 떴더니 전쟁으로 이 나라의 토지는 더러워져 있었고,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줄어들고, 또다시 늘어났다. 자연이 파괴되고 몸을 담고 있던 바다가 더러워지자 기운 역시 쇠락했고, 하늘에서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죄로 그리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결국, 절망에 침전된 채 구름조차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영혼이 검게 변했다.

괴로움에 지쳐 몇 번이고 하늘에 호소했지만 이미 타락한 혼이라 천문으로의 귀환마저도 거절당했다. 그 뒤로도 용은 돌아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으나 너무나도 존귀하고 강력한 생명체였던 탓에 천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미 신수로서의 권능을 상실했으나, 육체가 가진 시간은 여전히 무한하였다. 자살은 신으로 주어진 혼을 모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허락되지 않는다. 치우는 오래 세상을 떠돌며 구천을 벗어날 방법을 알아냈고, 마침내 도달했다. 긴 시간이었노라, 남자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바깥의 공기가 통하는 곳은 없었는데도 그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있었다.

“참아 보려 했으나, 여긴 더는 신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하늘로 돌아갈 수도 없는 몸이 되었으니 나는 죽고자 한다.”

점점 더 최악으로 가는 이야기였다. 엔지가 쟁반을 든 채로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영면을 원하는 존귀한 자의 무게가 공기를 짓눌렀다.

“신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그대는 인간이나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자. 나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런 짓은…….”

“이곳은 소원을 들어주지. 끝을 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찻잔을 깔끔하게 비워서 내려놓으며 남자가 싱긋 웃었다. 소매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손톱은 날카로웠고 손등에는 비늘이 돋아 있었다. 용의 상징인가. 구부러진 손아귀를 보며 생각했다.

“그대의 피를 나에게 다오.”

“…….”

“업을 덜어 주지. 내가 원한다면 그것이 소원이며, 답례로 그대의 죄도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대답 없는 나를 대신해서 엔지가 은으로 만들어진 단검을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남자는 손톱으로 엔지의 얼굴을 긁지 않도록 조심하며 다정하게 뺨에 입을 맞췄다.

“엔지, 네 노력 역시도 감사했다. 은혜를 잊지 않을 테니, 행복하거라.”

“제 기쁨이에요. 조심해서 떠나세요. 이제는 괴로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둘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는 동안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집어 들었다. 숨이 막혀서 몇 번이나 무거운 칼자루를 놓치자 남자가 대신 칼을 잡고 내 손을 뒤집어 손바닥이 천장을 보도록 했다.

날카로운 칼끝이 손바닥을 십자로 찢었다. 따끔한 아픔에 눈을 질끈 감자 남자가 툭툭 상처 난 곳을 두드리며 웃었다.

“마지막이나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슨 소리지.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용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내 어깨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존경을 담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엔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볼 수 없는 자를 용은 보고 있었다. 홍채가 세로로 길게 변한 남자의 뺨과 목덜미에 비늘 자국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우리를 믿지 않는 이 척박한 땅에서 잠시나마 존귀한 분을 뵈었으니 제 영혼도 편히 쉴 수 있겠지요.”

“치우 님.”

그의 이름을 불러 봤지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소름이 끼쳤다. 무당이 말했던 나의 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몇 마디의 칭송을 더 중얼거리던 남자는 피가 점점 더 흘러 손바닥에 티스푼 하나 정도 될 만큼 고이자 입술을 천천히 가져다 댔다. 마지막으로 피를 삼키기 전, 용이 가늘고 좁은 동공에서 파르스름한 빛을 뿌리며 말했다.

“그대는 죄를 지었지만 죄가 나를 구원했으니 행위가 그르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를 입 안에 머금은 남자가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의 상처를 쓸었다. 날붙이에 긁혔던 상처가 단숨에 나았다.

“버티지 못할 때가 온다면 신이 그대를 도울 것이다.”

“…….”

“난 이만 가도록 하지.”

눈을 감은 남자가 머금고 있던 피를 삼켰다.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엔지가 헛숨을 들이켜며 입을 틀어막았다. 서서히 남자의 전신에서 비늘이 떨어져 흩어지기 시작했다. 고귀한 존재가 스러지고 있었다. 발끝부터 서서히 벗겨져 휘날리는 빛의 파편이 가게 안을 둥실둥실 떠돌아다니다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갔다.

마지막으로 목과 얼굴만 남은 남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들리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생과 사를 동시에 축복하는 언어에 얼굴을 찌푸렸다. 엔지가 손을 꼭 잡아 왔다.

“이번 일, 재연 씨가 알면 화내겠지?”

“그렇겠네요.”

“비밀로 하자. 돈 많이 줄게.”

“좋아요.”

“역시 재연 씨랑 달라서 화끈하네. 우리 술이나 먹을까?”

“좋네요.”

“좋아.”

눈을 맞추고 동시에 킥, 하고 웃었다. 엔지가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우 님 얼굴이 엄청 마음에 들었는데. 웃기는 소리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를 기꺼이 안아 주며 안쓰러운 마음을 다스렸다.

근처 편의점에 술을 사러 갔다 돌아오는 사이 엔지는 옷을 바꿔 입고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옷, 하면서 상의를 가리키자 엔지가 한 바퀴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술 마실 때는 간단하게 입거든. 좀 안 어울리잖아?”

“그렇겠네요.”

하긴, 레이스와 프릴이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소주병을 따는 것도 이상할 순 있겠다. 하지만 엔지가 간단하게 갈아입었다는 옷도 그다지 일반적인 복장은 아니었다. 큼지막한 꽃무늬가 그려진 짙은 푸른색 스커트와 세일러 칼라 모양의 블라우스가 귀엽다.

엔지가 말려 올라간 옷깃을 바로 하며 봉투를 받아 소주와 맥주병을 하나씩 꺼냈다. 술병을 보는 엔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어지간히 술이 마시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스버너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냄비에 라면을 끓이자 엔지가 흐흐 웃으면서 소맥을 말았다.

“비율이…….”

“소맥은 1 대 1이지.”

“……아, 그럼요.”

직종도 직종이지만 보통은 아닌 사람이다. 가게에 있는 것 중 술안주가 될 만한 건 다 끌어모아 쌓아 두고 잔을 부딪쳤다. 소맥에서 엄청난 맛이 난다. 콧잔등을 찌푸리며 크으, 하고 숨을 뱉자 엔지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두 번째 잔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저러다간 술만 마실 것 같아 앞접시에 라면을 좀 덜어 줬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엔지가 두 번째 잔을 건넸다. 우리는 시원하게 한 잔을 또 비웠다. 술은 무조건 원샷이라며, 엔지는 매우 한국적인 술자리 문화를 강요했고, 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다가 채워지길 반복했다. 그렇게 끝도 없이 빈 술병이 늘어났다. 나중에는 수저질할 섬세함이 부족해 라면 국물까지 접시째로 들고 마셨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진 가게에 음식과 술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라면으로는 안 되겠다며 재료를 되는대로 집어넣고 만든 부대찌개가 눈앞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술이 동나서 편의점에 가는 김에 사 온 포장 김치와 라면 스프를 전부 때려 넣고 끓여서인지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 났다. 비엔나소시지를 건져 먹으며 엔지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으흐흑, 치우 님만큼 잘생긴 분이 없었는데.”

아까부터 저 소리다. 엔지는 이제 고개를 처박고 오열하고 있었다. 예쁘게 한 화장이 엉망진창이 되었는데도 꿋꿋하게 울고 있다.

“다 비주얼이 구려서, 치우 님 오시면 크흡, 기분도 좋고, 흑. 으흑”

“그만 울어요.”

“뽀뽀라도 한 번 할걸. 사진이라도 찍을걸!”

“……사진은 찍지 그랬어요.”

“용이라서 사진 찍으면 기계가 고장이 나더라고. 엄청 노력했는데!”

오래 살던 전설의 동물이 죽음을 택했으니 기분이 안 좋긴 하겠지만, 엔지는 다른 쪽이 더 서러운 모양이다. 따라 주는 술을 받으며 숨을 푹 내쉬었다. 입에서 술내가 풀풀 새어 나온다. 손가락도 마비가 온 것처럼 무뎌지는 게 많이 마셨다 싶긴 하다. 소주를 꽐꽐 붓고 있던 엔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뜨긴 떴는데 술기운에 반쯤 게슴츠레하게 떠진 눈이었다.

음아음, 이상한 소리를 내던 엔지가 물었다.

“우리 얼마나 마셨지?”

“세어 볼까요.”

테이블 위로 내려놓은 소주와 맥주병을 세기 위해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소주 여섯 병에 맥주 일곱 병. 둘이서도 이 정도면 어지간히 많이 마셨다. 속이 안 좋은지 화장실에 다녀와야겠다며 엔지가 의자에서 내려가 비척비척 걸어갔다. 열이 오른 뺨에 연신 부채질을 하며 오징어 하나를 뜯어 불에 구웠다. 배가 꽉 찼는데도 꾸역꾸역 안주가 넘어간다. 알코올은 위대했다.

혼자 잔에 소주와 맥주를 다시 꽉꽉 채운 후 훌쩍 비우는데 갑자기 가게 문이 열렸다. 팻말을 바꿔 뒀는데, 누구지. 눈을 찌푸린 채 문을 벌컥 열고 선 남자를 보았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가게에 들어왔다면 분명 사람일 텐데.

“죄송한데 오늘은 영업이…….”

“이거 꽤 장관인걸.”

가벼운 말투로 이야기하며 남자가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왔다. 이진현이었다. 불쾌한 남자가 나타나자 카페 안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공기가 요동쳤다. 이진현은 느낄 수 없었는지, 태연한 얼굴로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여긴 어떻게…….”

“내 연락은 받지도 않길래 뒷조사를 좀 했지. 윤이원 씨, 구애를 그렇게 거절하면 섭섭해.”

“구애라뇨.”

이진현은 지치지도 않고 연락을 해 왔다. 첫 대면에서 위협을 하고 목을 졸랐던 주제에, 같이 동업을 하지 않겠냐며 걸어온 문자와 전화도 수십 통. 고 영감까지 당장 연락을 하는 게 좋을 거라는 협박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그 뒤로는 바로 엔지의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더 엮일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게 화근인 모양이었다.

신기가 있어서 예지몽이라고 볼 수 있는 꿈을 꿨다고 둘러댔지만, 가장 더러운 범죄를 이용해 부와 명예를 쌓아 온 남자에게 있어 나는 시한폭탄을 짊어진 인간이었다. 동업을 제의했지만 아래에 두고 부리며 감시를 할 목적이겠지. 언젠가 폭탄과 함께 나를 터트리기 위해서.

“한 번 거절했으니 끝난 이야기입니다.”

“끝? 누구 마음대로?”

그가 저지르는 범죄에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원장과 엮였던 남자라는 게 불쾌했다. 최근 저 남자의 손에 죽을 뻔했다는 것까지 포함해 거부감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서자 이진현이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는 바짝 따라붙었다.

“나가시죠.”

“이 가게는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하나?”

“영업 끝났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어느새 찌개의 국물이 다 쪼그라들어 가스버너를 끄며 대꾸하자 이진현이 코웃음 치는 소리를 냈다. 전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무시하고 술을 다시 한 잔 따랐다. 이진현이 마음대로 의자 하나를 빼서 앉는다. 엔지가 앉았던 자리 바로 옆이다. 누구 마음대로 앉는 거지. 내 목을 조르던 남자의 살의를 기억하지 못하는 병신은 아니었다.

찌푸린 채로 노려보고 있자 이진현이 뒤쪽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림자처럼 서 있던 수행원이 불쑥 튀어나왔다. 차 실장이었다. 밝은 곳에서 보았더니 새삼스럽게 덩치가 꽤 좋았다. 무뚝뚝하게 서 있는 남자를 향해 이진현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명령했다.

“최근에 돌아다닌다고 수고했어. 먼저 들어가 봐.”

“감사합니다.”

실장이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가게를 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가게 앞에 죽치고 있던 귀신들 중 일부가 실장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불쾌한 장면이었다. 이진현은 더러운 테이블을 대충 휴지로 닦고는 턱을 괴고 빤히 바라봤다. 짜증 나는 시선을 피하려고 잔을 들자 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졌던 거야? 고생 좀 했다고. 집에는 왜 안 계셨을까?”

“스토킹이 취미이신 줄 몰랐네요.”

“그쪽이 마음에 들어 그런 거잖아. 우리 같이 즐거운 이야기나 해 보는 게 어때, 무당 씨?”

“무당은 아니고…….”

입술을 질끈 깨물고 변명할 말을 찾기 위해 애쓰는데 구둣발 소리가 둥둥 울렸다.

“어라,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

활짝 열린 카페 문을 헤치고 들어온 사람이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이진현과 동시에 고개를 확 돌려 문을 보았다. 서주영이다. 퇴근하고 들렀는지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기가 막힌 얼굴로 손님을 보고 있는데 이진현이 어라, 하고 아는 체를 했다.

“양 사장 비서 아닌가?”

“어라, 이사님 안녕하세요. 호텔 카페만 가시는 비싼 분이 여긴 어쩐 일로…….”

L캐피탈에 대해 잘 안다 싶더니 사업적으로 면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서주영이 나불거리다 말고 아차 하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매우 빈정거리는 말투였는데 이진현은 화를 내지 않고 눈썹만 위로 까딱거렸다.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동네 아닌가. 왜 이렇게 다들 끼리끼리 알고 있어? 어쩐지 곤란한 상황에 끼어 버렸다는 생각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진현과 성의 없는 인사를 마친 주영이 코를 틀어쥐면서 다가왔다.

“얼마나 마신 거야? 일한다고 해서 놀러 왔더니 영업 안 해?”

“오늘은 일찍 접었…… 그 전에 오면 온다고 연락을 하고 와.”

“했는데 네가 안 받았어. 그런데 카페 아니었어? 언제 술집으로 업종 변경했어?”

“그럴 리가 있냐.”

말하는 것만 보면 술에 취한 쪽은 서주영 같았다. 투덜거리며 대꾸하자 멀뚱히 보고 있던 이진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둘이 친한가?”

“친구인데요.”

“서주영 씨, 그쪽 친구가 전과자인 건 알고 있나?”

전과자라는 말에 힘이 들어가 있다. 내가 비열하거나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서주영은 교도소 면회를 왔던 유일한 사람이다.

“고아원 동기인데요.”

서주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해맑게 대답했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술도 잔뜩 먹어서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토할 거 같아, 섞어 마신 게 문제였나, 엔지는 왜 안 나올까, 화장실에 데리러 가야 할까. 온갖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주영이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귓가에 속삭였다.

“너 사채 썼냐?”

귓속말 시늉을 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커서 다 들렸다. 이진현이 앞에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는 꼴이 살아 있는 귀신 같아 보였다.

“아니야.”

“그럼, 그…… 깔이냐?”

슬그머니 새끼손가락을 치켜든다. 시발,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주영이 머쓱한 얼굴로 떨어져 나갔다.

“아님 말고.”

“……아니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 오늘은 날이 안 좋으니 다음에 오거나…….”

“그래야겠지?”

“가긴 어딜 가시나, 서주영 씨. 시간 되면 이 친구 내 밑에서 일하게 설득이나 좀 해 주지?”

마음대로 술을 따라 마시며 이진현이 권유했다. 주영이 어색한 얼굴로 하하 웃더니 또 귓속말을 했다. 여전히 다 들릴 만큼 큰 목소리였다.

“너 마성의 게이였어?”

“아니,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진짜.”

왜 서주영과 대화를 하면 기운이 빠지는 걸까. 맥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주영이 갸웃거리며 빈 의자 하나를 가져와 앉고는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남이 마시던 컵을 마음대로 가져가 자기 몫의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주방에서 여분의 컵을 들고 나왔다. 이진현과 주영의 앞에 컵과 수저를 놓아 주고 화장실로 갔다. 아무래도 소식이 없는 엔지가 걱정이 된다.

술에 취해 쓰러진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허겁지겁 화장실로 가는 통로로 들어갔는데, 사람 하나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나자 깜짝 놀랐는지 으아, 하고 탄성 같은 비명을 지른 엔지가 곧 히히 웃으면서 붉어진 뺨에 부채질했다. 조금 달아오른 것을 빼면 아주 멀쩡한 얼굴이었다. 어깨에 힘을 빼면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엔지, 안 나와서 걱정했었어요.”

“아, 갑자기 상황이 이상해져서 구경하고 있었어. 그리고 저 남자 때문에 나가기가 좀 그렇더라.”

엔지가 손가락으로 이진현을 가리켰다. 여전히 당당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의 뒤를 따라온 귀신 무리는 가게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가게에 악귀가 들어올 수 없어서 다행이었다. 창문이며 문틈 구석구석 달라붙어 이진현을 쏘아보고 있는 모습은 지옥과 비슷한 풍경을 만들었다. 얼굴과 손바닥을 창문에 딱 붙인 채 안으로 들어오려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고 엔지가 작게 헛구역질을 했다.

몸을 부축하고 등을 두드려 주자 엔지가 호흡을 고르며 몸서리쳤다.

“진짜 최악인 사람이네……. 이원 씨도 처음 봤을 때 장난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저 남자는 죄책감도 없나 보다.”

“그런 일로 돈을 벌었던 사람이니까요. 되도록 나오지 마세요.”

“아냐, 괜찮아. 내가 주인이니까 얼른 쫓아 보내야지.”

귀엽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엔지가 씩씩하게 바깥으로 나갔다. 뒤를 졸졸 따라가자 이미 소주 한 병을 사이좋게 비운 남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엔지가 머리카락을 귀 뒤편으로 넘기며 방긋 웃었다.

“어머나, 잘생긴 남자가 많아져서 기분이 좋네요!”

전혀 쫓아내는 멘트가 아니었다. 어이가 없어 바라보자 엔지가 슬금슬금 딴청을 피웠다. 본인도 막상 대놓고 말하자니 곤란한 모양이었다. 이진현이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걷어 올리며 물었다.

“여기 카페 사장이신가? 내가 그쪽 종업원을 스카우트하려고 들렀는데.”

드러난 팔뚝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손목시계를 찬 곳까지 꼼꼼하게 그려진 그림에 엔지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못 넘겨요.”

“개인의 의사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개인의 의사라면 말할 것도 없이 이원 씨는 여길 택할걸요?”

“내 의사 말입니다.”

“농담도 과하셔라.”

엔지가 영업용 미소마저 거두고 팔짱을 낀 채 노려보기 시작했다. 서주영이 앉은 채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헛기침을 한번 했다.

“이사님, 제 친구는 그런 곳에서 일할 사람은 아닙니다.”

“이미 잘했는데 왜?”

이진현이 환하게 웃으면서 술잔에 소주를 콸콸 부었다. 거의 넘치기 직전까지 가득 찬 소주를 보니 벌써 비위가 역해 토기를 억눌렀다. 남자는 방금까지 내가 앉았던 자리 앞에 잔을 놓으며 손가락을 까딱했다.

“맨 정신으로 시체도 갈아 버리는데, 술을 마시면 다른 일은 더 잘하지 않겠어?”

“…….”

“그리고 내가 아직 이쪽이 권혁대를 죽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서.”

서주영이 눈을 찌푸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엔지가 한 발짝 물러서더니 팔을 꽉 잡아 왔다. 내 등 뒤에 거의 몸을 숨긴 엔지가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목소리를 냈다.

“재연 씨 화났다.”

“…….”

“어쩌면 좋지.”

문이 부서질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커다란 굉음에 일제히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달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재연이 문을 걷어찬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한쪽만 삐뚜름히 올라간 입술이 그림처럼 움직였다.

“엔지, 초대해.”

불쾌한 기운이 문을 두드렸다. 하재연이 서 있는 곳만 세상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아니, 세상이 아니라 하재연 자체가 이질적이었다. 싸늘하게 변한 얼굴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어쩐지 재연의 얼굴에 저승사자가 데려왔던 어둠이 스며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안 하면 안 돼?”

엔지가 쪼그라든 풍선 인형처럼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문턱을 사이에 두고 장승처럼 선 재연이 으르렁거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드, 들어와!”

가게를 뜯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협박하는 재연에게 눌렸는지 엔지가 급하게 외쳤다. 이상하다. 하재연은 왜 초대를 요구하지. 처음 집에 찾아왔을 때 재연은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지고 난 뒤에야 현관문을 넘었다. 그저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이제 와서 불길하게 느껴졌다.

“씨발.”

엔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안에 성큼성큼 들어온 재연이 짜증을 냈다. 저렇게 대놓고 화를 내는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한발 물러서 눈치를 보는데, 재연이 서주영을 보고는 또 순한 얼굴을 했다.

“주영이 형도 있었네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네기까지 한다. 조금 전까지 사람 하나 죽일 기세였던 모습은 오간 곳 없이 온순한 모습이었다.

“어, 그래……. 안 보는 사이에 박력이 넘치는구나.”

서주영은 얼빠진 목소리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았다. 박력 좋아하시네. 덜덜 떨고 있는 엔지를 내 옆에 앉히고는 주영의 등을 주먹으로 퍽 때렸다. 어윽,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트리며 주영이 앓는 소리를 냈다. 테이블 틈 사이로 컵에서 흘러내린 술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이진현이 부대찌개에서 소시지 하나를 건져 먹으며 담배를 꺼냈다. 가게 금연인데. 말릴 기운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자 재연이 다시 흉흉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눈치껏 상황을 살피는 동안 이진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즐겁게 말했다.

“윤이원 씨 주변은 독특한 사람들이 많네. 서주영 씨도 그렇고, 저 친구도 그렇고.”

“…….”

“나는 이진현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이진현이 웃으면서 담배 연기를 훅 뿜었다. 팔뚝에 그려진 문신만 아니라면 권태와 여유가 적절하게 조합된 멋진 모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외관만 놓고 본다면 타인에게 쉽게 호감을 살만큼 멋들어진 남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연의 얼굴이 냉소적으로 변했다.

“시체 덩어리를 짓밟고 올라간 인간이 우아한 척해 봐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흠?”

“개돼지가 인간인 척 두 발로 걷는 것과 뭐가 다르죠?”

엄청난 발언이다. 발언보단 모욕이었다. 쿡쿡 쑤시는 이마를 부여잡자 주영이 귀를 잡아당겨서 속삭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귓속말이다.

“하재연 미쳤냐?”

“아니.”

“근데 왜 저래? 저 이사님 무서워.”

“난 이 상황이 무섭거든…….”

남의 가게 테이블 위에 마음대로 담뱃불을 비벼 끈 이진현은 정장 셔츠 소매를 한 칸 더 접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소매가 반쯤 걷어 올라가자 문신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팔뚝에 그려진 건 용이었다. 오늘 완전히 이 땅을 떠난 치우가 생각나 괜히 입술 끝을 늘어트렸다.

“불쾌한데. 우리가 초면에 그런 말을 들을 사이였나?”

“초대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들어와 앉아 있는 당신한테 들을 말은 아니지.”

말이 반 토막이다. 재연아, 저 사람은 직업이야 어떻든 너보다 열 살은 많은데……. 끼어들어 설교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한숨을 푹푹 쉬고 있자 이진현이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까딱했다.

“독특한데. 그쪽도 내가 하는 일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나 봐?”

“아마도.”

“윤이원에게 들었나?”

“그렇다고 해 둘까요.”

둘 사이 날 선 분위기가 팽팽하다. 의자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엔지가 오들오들 떨면서 내 손을 꽉 잡아 왔다. 애처로운 모습에 어깨를 토닥거리자 서주영이 이상한 얼굴을 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쓰레기 같은 생각 좀 집어치워.”

“앗, 들켰다.”

“너는 이 상황에서도…….”

저 조잡한 머릿속을 개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바탕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준비를 하는데, 재연이 테이블 하나를 뒤집어엎었다.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둘 다 자세는 그대로인데 언제 저렇게까지 험악한 진도를 나간 걸까. 그나마 빈 테이블을 걷어차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엔지가 둘 다 아니라는 듯 슬픈 소리를 내면서 앓았다.

이제 진짜 말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려가 재연의 팔을 움켜잡았다. 재연이 험악한 얼굴을 하다가 멈칫하고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 품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안긴 채로 멀뚱히 이진현을 바라봤다. 이진현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쳐다봤다. 그 눈에서 불쾌한 생각이 읽혀졌다.

“아, 게이였어?”

“아닙니다.”

“애인한테 집적대는 장면을 목격하고 저 친구가 화나서 달려온 상황인가?”

“아니라고요.”

“맞는 거 같은데.”

뒷말은 서주영이 했다. 고개를 홱 돌리고 주영을 노려봤다. 저 새끼는 친구가 맞는 걸까. 살의를 꽉 채워서 쏘아보자 주영이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피한다. 흠흠, 콧노래까지 불러 대며 상황에서 회피하려 노력하는 인간을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심란해 죽겠는데 재연은 멋대로 내 정수리 위에 턱을 올리며 엉겨 붙었다.

“미안하지만 이제 이원이 형에게 접근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째서? 난 윤이원 씨가 매우 마음에 드는데. 앞으로도 쭉쭉 보고 싶은걸.”

이진현이 망설임도 없이 맞받아쳤다. 재연이 멈칫했다.

“어이, 사채.”

하재연의 목소리가 사체처럼 차가워졌다.

“당신의 복은 전부 조부가 쌓아 둔 거야. 평생 감사하고 살아. 다음에 태어나면 착한 일만 해야 더 구르지 않을 테니.”

“게이 무당 커플은 처음인데.”

남자가 새 담배를 하나 빼내며 서글서글한 웃음을 흘렸다. 미묘한 대치 구도 중간에 끼인 주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떻게 해 봐. 입 모양을 읽었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남자 네 명이 카페 안에서 흉흉한 기색으로 대치하고 있자 멀리 앉아 있던 엔지가 다시 우는 소리를 냈다. 남의 가게에서 여러모로 민폐다.

“커플 아닙니다.”

한숨을 쉬면서 가장 먼저 이진현의 말을 정정하자 미묘하게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서주영과 이진현 둘 다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물며 엔지까지도 완전히 이상하게 굳은 표정이다. 의아한 기분에 재연을 돌아보자 갑자기 고개를 휙 옆으로 돌려 버린다.

“아아, 불쌍하다. 공개적으로 차였어.”

주영이 웃음을 실실 섞어 가며 말하자 이진현까지 덩달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등에 닿은 남자의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얘가 나 좋아한다고 했었지. 하도 정신이 시끄러워서 까먹고 있었다. 곤란한 얼굴로 눈을 굴리자 이진현 이사가 타이르는 음성으로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안타까운데. 그럼 나는 어때? 정말로 그쪽이 내 밑에서 일해 줬으면 좋겠는데.”

“싫은데요.”

머리가 아파졌다. 짜증스럽게 대답했는데도 이진현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실실 웃었다. 그의 입 안에서 하얀 담배 연기가 새어 나온다. 기운이 빠져 골칫거리 같은 인간들을 바라보고만 있자 주영이 한 발짝 걸어 나오며 대꾸했다.

“아니, 이사님이 뭔데 이원이에게 관심입니까.”

“내 마음인데.”

“그 관심 제게 주시죠.”

“…….”

주변이 싸늘하게 변했다. 눈치를 보며 상황이 어떤지 관전하고 있던 엔지까지 쩍 하고 굳었다. 오로지 서주영만 멀쩡한 얼굴로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나불거렸다.

“하하, 그렇게 열렬한 눈으로 보시다니. 그렇지만 전 호모 섹슈얼이 아닙니다.”

“당신 주변은 전부 저렇게 이상한 사람뿐인가?”

대꾸하기도 싫은지 이진현이 주영을 완전히 무시하고 물었다. 이마를 감싸 쥐며 고개를 저었다. 저놈 목을 졸라 버리든가 해야겠다. 돌덩이에 매달아 강물에 던져도 입만 살아남아 떠다닐 새끼.

“아니요, 쟤만 저렇습니다.”

“윤이원, 너무한 거 아니냐?”

상처받았다고 주영이 앓는 소리를 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그래도 주영이 헛소리를 한 덕분에 분위기가 그나마 조금 풀렸다. 재연까지도 조금 웃으며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이진현이 흘낏 내 등 뒤에 버티고 선 재연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상당히 인생 피곤하겠어.”

“별말씀을요.”

“언제든 그쪽 사람들이 피곤해지면 내게로 오라고. 좋은 자리가 있으니까.”

마지막까지 권유를 잊지 않은 이진현이 셔츠 소매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가게를 가로질러 걸어가 문을 열고 나가는 내내 재연은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따끔따끔한 재연의 시선이 이쪽까지 느껴져 어깨를 움츠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도 5분이나 10분, 그것보다 더 짧거나 긴 시간이 지났을 때 재연이 나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풀면서 엔지를 노려봤다.

“엔지, 어쩌자고 들인 거야?”

“나도 몰랐어! 화장실 간 사이에 들어왔단 말이야!”

엔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나름대로 억울함이 가득 차 있었다. 엔지는 그렇다 치고, 하재연은 왜 저렇게까지 험악한 말을 쏟아 내며 화를 냈던 이유를 모르겠다. 머리를 꾹꾹 누르며 손을 들어 엔지의 말을 멈췄다. 엔지가 눈을 깜박이며 입술을 붙였다.

이러다 다시 2차전이 시작될 기세다. 둘의 관계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싸우는 건 곤란하다. 계속 기다리자니 먹다 남은 음식도 치워야 했고, 술병도 정리해서 내놔야 했다. 내일 카페를 개점하려면 환기도 시켜야 했고, 부족한 재료도 점검해 둬야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이러다간 꼭두새벽까지 싸울 것 같아 먼저 재연의 팔을 툭툭 쳐 풀고 떨어졌다.

하재연이 아쉬운 얼굴로 두 손을 쳐다봤다.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남을 인형처럼 끌어안고 있는 게 기분이 꽤 좋았던 모양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재연의 얼굴색이 파리했다. 역시, 귀신이 벅벅 끓어 대던 내 집에서 지내는 게 좋지 않았던 것일까. 기세와는 달리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파리한 혈색을 빤히 바라봤다.

“너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그거야…….”

“인간인데 초대는 왜 받아야 해?”

“그게…….”

혈색이 점점 더 안 좋아진다. 캐묻지 않으면 알려 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허리에 맨 앞치마에 식은땀으로 젖은 손을 닦으며 한 번 더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아는 거고?”

“…….”

“대답해, 하재연.”

나 아직 너 안 믿어. 마지막 말을 덧붙이자 재연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뭘 하다 달려온 것인지 옷차림도 엉망이었다. 붉은 얼룩이 진 그의 티셔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린다. 엔지가 치워야겠다, 하고 어색한 얼굴로 일어나자 재연이 입을 열었다.

“형의 업을 대신 받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재연 씨.”

엔지가 곤란한 얼굴로 말렸지만 재연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영혼에 틈이 생기는 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귀신과 가까워지고, 죽음과 가까워지는 영혼과 육체의 틈새. 그걸 재연도 겪고 있다고? 멍하니 재연을 바라보자 손을 내저었다.

“형이 생각하는 종류는 아니에요. 이쪽 업계 사람들은 힘을 쓰면 원래 틈이 조금씩은 생기는데, 저는 그 틈이 커지는 것뿐이에요.”

“…….”

“특히 귀기를 다루는 곳은 심하게 반응하거든요.”

“가게 안은 괜찮잖아.”

“그 남자가 있었잖아요.”

위협하는 것처럼 바닥을 발로 한 번 굴리며 재연이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먼지 하나가 앉을 듯 말 듯 떠돌아다니다 그를 비껴가 바닥으로 내렸다.

“형은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역신의 후손이에요.”

“……뭐?”

“역신 본인은 해를 입지 않아요. 주변인에게 해를 끼치는 거고, 형은 특히나 그런 부분에 취약하니까 그 사람과 붙어만 있어도 화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요.”

역신이라고? 후손? 애초에 신이 인간을 통해 자손을 볼 수 있는 건가. 이게 말이야, 농담이야. 어지러운 머리를 억지로 돌리고 있으니 재연이 호흡을 한 번 고르며 시선을 틀었다. 엔지가 있는 쪽이었다. 죄인처럼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서 있던 엔지가 움찔거리며 어색하게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엔지는 막을 수 있으니까 부탁해 뒀는데, 술에 취해 있을 줄은 몰랐죠.”

“미안.”

“초보한테 과한 손님을 주는 것도 그렇고.”

“미안하다니까…….”

“저기…….”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다. 재연이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상황을 파악 못 해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던 주영이 손을 들며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설명 좀 해 주실 분?”

“…….”

“선생님,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주영이 발표하는 초등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재연이 침묵에 빠졌다. 하아. 힘 빠진 한숨 소리에 헛웃음을 지었다. 서주영의 눈치 없는 당당함이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서주영에게 전부 다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다. 시간을 돌렸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하재연이 내 액막이라는 것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교도소에 면회를 온 주영이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에도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다시 후회하게 되었다. 더 잔인하게, 더 괴롭게 죽였어야 했다는 추악한 후회. 서주영이 그런 나를 보고 혐오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불안정한 마음을 읽었는지 재연이 설명을 자처하며 등을 떠밀었다. 서주영과 하재연은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엔지와 함께 가게를 치웠다.

더러워진 바닥을 대걸레로 닦고 다시 마른걸레로 깨끗하게 물기를 제거하는 동안 엔지는 술병을 바깥에 내놓고 돌아왔다. 젖은 손을 닦고 고무장갑을 끼자 주방에 냄비와 접시를 들고 들어온 엔지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옆에 작은 보조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달그락거리는 접시 소리를 한참 듣고 있던 엔지가 슬그머니 옆구리를 찔렀다. 모르는 척 꿋꿋하게 선 채로 세제 거품을 문질러 닦고 있자 엔지가 흠흠, 헛기침했다.

“있잖아, 재연 씨가 성격은 안 좋지만 이원 씨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 맞아.”

“알아요.”

“어어, 그 사람이 이쪽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어. 내 실수야.”

“저는 이사…… 그 사람이 역신인지도 몰랐어요.”

“역신은 아니야. 역신의 후손이니까 인간은 맞아.”

엔지가 발 장난을 치면서 손가락을 꼽았다. 설명할 때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었다.

“재연 씨 말대로 남들에게 화를 불러 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본인도 인간이라는 자각 말곤 없을 거고. 옛날에는 무당 중에서 용한 사람이 귀접(鬼接)(귀신과의 성교)이란 방식으로 신의 아이를 점지받기도 했거든. 인간에게서 수태되어 나왔으니 인간은 인간인 거야.”

“그럼 재연이는요?”

“응?”

“재연이도 신의 후손인가요?”

아직도 걸리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무당이 재연의 사주를 읽고 신이 될 뻔한 사주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그도 신인가. 혹시 내 등에 머물러 있다는 신이 하재연 본인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말도 안 돼! 서주영이 바깥에서 소리치는 게 들렸다. 엔지가 일어나서 가득 쌓인 접시 하나를 들어 마른행주로 닦았다. 나란히 서서 나는 접시를 씻고, 엔지는 접시를 닦아 찬장에 넣어 놓는 과정을 다정다감하게 반복했다. 여전히 바깥에서는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하는 하재연과, 이상한 소리를 내는 서주영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재연 씨는 인간이야.”

“…….”

“이원 씨, 믿기 힘들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믿어 줘.”

마지막 남은 식기를 집어넣어 두고 다시 보조 의자를 끌어다 앉은 엔지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혼자 뭔가를 납득한 표정으로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재연 씨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하는 노력은 인정하고 있어.”

“엔지.”

“요 몇 달간 재연 씨는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서울 바닥에 있는 업계 사람은 모두 만나고 다녔지. 다들 이원 씨의 사주만 보고도 학을 뗐어.”

“…….”

“있지, 가끔 그런 사람이 있어. 사주에 죽는 살밖에 없는 사람.”

보조 의자가 더 없어 그냥 주방에 있는 테이블에 무례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엔지는 흔들던 두 다리를 모으고는 마주 보고 앉은 내 무릎 위에 손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행주를 잡고 있었던 바람에 무릎도 천천히 젖고 있었다.

“그런 사람의 액막이를 할 정도면 재연 씨도 목숨을 걸었다고 봐야 해.”

역시 과분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목숨을 대가로 하는 사랑이라니. 그런 주제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흥얼흥얼 휘파람만 불던 재연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도 재연 씨한테 전부 듣지 못했고, 재연 씨가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이원 씨한테 먼저 말해 줄 수도 없어.”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옳은 말이었다. 하재연이 숨기고자 하는 사실을 대신 말해 달라고 계속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허리에 둘렀던 앞치마를 풀어내며 바깥을 흘끗 바라봤다. 주영이 머리카락을 열심히 쥐어뜯고 있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테이블에서 훌쩍 뛰어내려 주방을 나가자마자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인간들은 가게에서 주인 허락도 없이 2차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술 마시는 낌새는 없었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비워진 소주병만 3병이었다. 주영이 알딸딸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반갑게 이름을 부르짖었다.

“윤이원!”

“부르지 마.”

시시껄렁한 자세로 다가가자 서주영이 허리를 안고 매달렸다. 무거운 사내자식이 교태를 부리며 매달리는 느낌이 끔찍했다. 얼굴을 최대한 구긴 채로 재연에게 눈짓했더니 어깨를 으쓱한다. 서주영이 흑흑 우는 흉내를 내면서 변태처럼 내 엉덩이를 만졌다. 이번에는 하재연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었다. 웃기는 놈들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냐. 꿈이니 나발이니 하는 게 더 웃기다, 야.”

“응?”

주영이 내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짜식, 형님한테 말하지 그랬어.”

“……뭘?”

“난 원장 선생님이 변태였던 거 몰랐다고. 그냥 어린 마음에도 좀 못생겼다 싶었지.”

“…….”

어이가 없다. 재연을 흘끗 돌아보자 손가락 두 개로 귀엽게 가위표를 만든다. 본인은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는 반박에 입술 한쪽만 올려서 비뚤어진 미소를 그렸다. 서주영은 눈치도 없이 팔을 교차해 가슴팍을 감싸고 몸서리를 쳤다.

“으, 여장이라니 싫다. 원장 나쁜 놈이었네. 그래도 그렇지, 너도 참 성격이 화끈하다. 불 지르는 바람에 우리가 다 같이 고생하긴 했잖아? 잘 곳이 없었다고. 내가 아끼던 토끼 인형도 그때 못 들고 나왔었어. 근데 윤이원이 그때만 해도 좀 예쁘긴 했지.”

취한 사람의 주정은 기승전결이 모자랐고, 이해하기 힘든 장황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따라가기 힘든 주영의 화법이 점점 더 난해한 길로 빠져들었다. 어흐흑, 서주영이 우는 흉내를 내며 원장과 변태와 살인과 방화와 예쁨에 대한 두서없는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지금 이대로 머리를 내려치면 적당히 쓰러지지 않을까, 고민하며 주영의 말을 흘려들었다.

어렸을 때야 성별에 관계없이 고만고만하고, 서주영이나 하재연도 나름대로 예쁜 얼굴이었지만 체력도 좋고 활발한 편이라 키가 또래보다 꺽다리처럼 껑충 컸었다. 원장의 눈을 비껴간 건 그런 길쭉한 체형 탓이었겠지.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고도 키가 작고 왜소했다. 교도소에 처박히고 나서 자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억울하다고 호소할 수도 없었다.

하품을 하면서 어, 그래 하고 성의 없이 대답하자 재연이 손뼉을 치면서 주의를 끌었다.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 다들 돌아가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싫어, 안 갈 거야. 같이 자자. 어흐흑.”

“야, 떨어져.”

“같이 자자니까? 너희 집은 구리니까 우리 집으로 초대해 줄게.”

“사내새끼 집에 안 가.”

한심함을 숨기지 않고 짜증을 내자 주영이 상처받은 시늉을 하며 징징거린다. 재연이 주영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왜?”

“퇴근해야죠, 주영이 형.”

“어? 퇴근?”

서주영이 눈을 크게 떴다. 충격적인 사실이라도 들은 표정이었다.

“네, 퇴근.”

“그래, 퇴근해야지. 다들 다음에 보자.”

평생 집에 갈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주영이 바로 인사를 한다. 직장인에게는 집에 가자는 말 보다는 퇴근이 더 효과적이구나. 놀라운 인간 사회의 신비를 깨닫고 감탄했다. 하재연이 칭찬해 달라는 것처럼 뒤에서 눈을 접으며 살살 웃었다. 아무리 애교를 부려 봐야 얼굴에 핀 홍조와 풀린 눈이 이쪽도 취했다는 걸 보여 주고 있었다. 취한 사람을 예뻐해 줄 마음은 없다.

“다음에는 형님 사주도 좀 봐 주라.”

무당이나 팔자 이야기도 들었는지 서주영이 뻔뻔하게 공짜 사주풀이를 강요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하재연이 떨떠름한 얼굴을 하며 즉답했다.

“연애나 결혼을 물어보고 싶은 거면 형은 복이 없어요.”

“뭐?”

“사주에 여자가 없는걸요.”

서주영이 세상을 다 잃어버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얼빠진 얼굴을 보다 가만히 주먹을 물고 웃음을 참았다. 지금 웃으면 주영을 달랜다고 3차, 4차까지 가야 할 판이다. 옆에 있던 재연이 정말 진지한 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앞으로도 여자 만나긴 힘들어요. 만나려면 지금 있는 인간관계 다 끊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게 좀…….”

“퇴사가 답이야?”

“평생 같이 가는 인연이 많아서요.”

“미쳤어? 절대 싫어.”

서주영이 처절한 얼굴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몰골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재연이 대리가 도착했다며 의자를 끌면서 일어났다. 둘이 힘을 합쳐 비틀거리는 서주영을 차에 싣고, 정장 주머니에 숙취 해소 음료를 넣어 주었다. 원래는 엔지와 함께 마시려고 산 거였는데, 제대로 취하기도 전에 술이 다 깨 버렸다.

“안 들어가?”

주방에서 졸고 있을 엔지도 챙겨 보내려고 다시 가게로 들어가는데 재연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고개만 돌려 물었더니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흔든다. 그래, 더운 바람이라도 쐬면서 담배를 피우면 술이 깨겠지. 나름대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주방으로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엔지는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옷을 정리해 주고 등을 툭툭 쳤다. 엔지가 일어나기 싫은지 앓는 소리를 냈다. 몇 번 더 어르고 달래서야 겨우 일어나더니 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간다.

걱정이 되어서 큰길까지 같이 나가 택시를 잡았다. 몇 번이나 소지품 단속을 시키고 번호판과 기사를 확인한 뒤에야 허리를 폈다.

굳이 쫄랑쫄랑 따라 나온 재연이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얌전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아직 술이 덜 깨서 그런지 귀여워 보이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벼 주고는 가게 문을 닫기 위해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재연이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뒤따라 걸어왔다.

몇 개 안 되는 컵을 마저 씻어 놓고 가방을 챙기는데 재연이 갑자기 목 뒤를 손가락으로 긁었다. 따끔하고 간질간질한 감각에 깜짝 놀라 목 뒤를 손바닥으로 가렸다.

“뭐야?”

의도하지 않았는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급소를 내준 기분에 저절로 어깨와 허리가 굽어졌다.

“아니…… 형 비늘 돋았어요.”

“비늘?”

비듬을 잘못 발음한 건 아니겠지? 어안이 벙벙해 재연을 바라보자 손가락으로 집고 있던 것을 내민다. 빤히 바라보자 정말로 빛이 반짝거리는 비늘 한 장이 잡혀 있었다. 재연이 쓰읍, 하고 숨 들이켜는 소리를 내며 엔지에 대한 저주를 중얼거렸다.

“코지마 엔지, 진짜…….”

“비늘이, 그, 왜, 아니, 그 비늘 내 거 맞아?”

황당해서 말을 더듬자 재연이 아예 내 손바닥 위에 비늘을 올려 주었다. 엄지손톱 크기의 비늘은 치우 님의 손에 돋아나 있던 것처럼 오색찬란한 빛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었다.

이게 목에 돋아 있다고? 충격을 받아 입을 벌리자 하재연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을 하고는 멋대로 남의 셔츠를 휙 들어 올렸다. 찬 바람이 맨 살결 위를 치고 들어왔다.

“야, 뭐 해!”

“잠깐만요, 확인 좀 하게…….”

사람 옷을 마음대로 휙휙 벗겨 낸 재연이 바지 버튼에까지 손을 가져다 댔다.

기겁하고 뒷걸음질 쳤다니 재연이 씁, 하고 경고하는 소리를 내더니 마음대로 바지를 홀랑 벗겼다. 속옷 하나만 입은 채로 덩그러니 주방 바닥에 누운 꼴이 되는 바람에 눈만 굴리고 있자 재연이 몸 이곳저곳을 뒤지듯 살폈다.

발바닥과 허벅지 안쪽과 겨드랑이, 엉덩이와 어깨뼈, 등과 목까지 세세하게 훑어보는 시선에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속옷만큼은 필사적으로 사수했더니 재연이 아쉬운 듯 야릇한 표정을 짓고는 내 몸을 일으켜 앉혀 줬다.

싱크대 하단에 등을 기댄 채 건네주는 셔츠를 팔에 꿰는 동안 재연이 휴대폰 액정을 빠르게 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태도가 엔지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 같았다. 어찌나 살의가 꽉꽉 눌러 담겨 있는지 휴대폰이 반으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장문의 문자를 끝내고 나서 재연이 내 눈꺼풀 위에 입술을 쪽 붙였다.

“뭐야?”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곳을 만지작거리며 묻자 재연이 셔츠 단추를 대신 여며 주며 중얼거렸다.

“용은 신수니까, 만나면 영향을 많이 받아요. 형은 육체보다 영혼 자체로 가지고 있는 기질이 강한 사람이니까 신체에 변화가 있었던 거예요. 당분간은 일을 좀 쉬는 게 좋겠어요.”

“문제가 되는 거야?”

“문제랄 건 없는데…….”

하재연은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며 씩 웃었다. 심하게 화를 낸 것에 비해 큰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악동처럼 보이는 웃음에 이상하게 불안함이 샘솟았다.

“반인반용 상태면 얼마나 맛있을지 생각해 봤어요?”

“응? 맛있어?”

“흠…… 귀신들이 선호하는 건 물론이고, 용이잖아요? 인간의 몸이 아니란 말이에요.”

“근데?”

“뭐라고 해야 하나, 체향도 그렇고 섹스를 하면 끝내주게 몸이 잘 열려서…….”

“…….”

“나랑 잘래요?”

“…….”

이놈이 끔찍한 소리를 하고 있다. 못 보던 사이에 하재연이 미친 게 분명하다. 아니, 게이 섹스를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건 과거고. 잠깐, 하재연이 내가 시간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 둘이 연애하고 섹스까지 진도를 쫙쫙 뺐던 사실도 알고 있는 건가?

질겁한 얼굴로 쳐다보자 재연이 애써 여몄던 단추를 다시 풀고 있었다. 바지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거의 무방비의 극치가 된 꼴로 재연을 올려다봤다. 이상한 얼굴로 실실 웃으면서 코끝을 깨문다. 축축한 질감에 비명을 지르자 소리 내서 웃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저건, 하재연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봤던 얼굴이다.

그 애는 스무 살이 되기를 학수고대했다. 성인이 되면 사귀겠다고 조건을 걸었으니까. 그해의 12월 31일 밤, 나는 설레서 열까지 오른 재연과 같이 있었다. 재연은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물수건도 내동댕이치고 내 뺨을 잡아채서 침대 위로 끌어 올렸다. 독방을 쓰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눈을 감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재연은 사랑에 빠진 소년의 티가 났다. 숨길 수 없는 애정의 방향과 몸짓에 원장까지도 은근히 하재연과의 관계에 대해 추궁했을 정도였다.

거기다 나중에는 연하 특유의 왕성한 성욕에 치근거림까지 감당한다고 고생을…….

“……재연아, 아니지?”

“뭐가 아닌데요?”

“너랑 사귀는 것도 아닌데.”

“아,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죠.”

심술궂은 목소리로 대꾸하며 재연이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빨리 이 상황에서 탈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무 말이나 집어삼켰다.

“이진현 이사가 역신의 후손이라며?”

하재연이 눈썹을 힐끗 밀어 올린다.

“맞아요. 아주 싫은 작자인 데다 솔직히 생각만 해도 불쾌한데, 그걸 여기까지 들이면 어쩌자는 거예요?”

“고의는 아니었는데…….”

“형 상태를 스스로 알긴 하는 거예요? 내가 그랬죠. 노력하는 사람 기운 빠지게는 하지 말라고.”

“……음, 하지만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건 당연하잖아.”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하자 재연이 브리프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내 아랫입술을 핥았다.

“알아요. 그렇지만 형도 알려고 노력하진 않잖아요? 조언을 구하고도 그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위험하다는 걸 알아도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안 된다는 걸 알고도 저지르고.”

“하재연.”

“다시 화가 나네.”

재연의 얼굴 표면에 서늘한 장벽이 생긴 것 같았다. 빙벽이자 매몰찬 겨울바람 같았다. 재연이 눈을 까맣게 죽이고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온도가 1도씩 내려가고 있었다.

더는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화를 정직하게 삭이는 모습을 바라보다 어깨를 잡아 끌어당겼다. 손에 닿는 체온이 뜨거워 다행이었다.

내 집도 아닌 남의 가게 주방에서 뒹구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설득에 설득을 겹쳐서 겨우 택시를 탔다. 재연은 이상하게 자신의 원룸이 아닌 비좁고 더러운 내 반지하 자취방으로 가길 바랐다. 재연이 지내면서 뭔가 바뀌긴 했을까. 궁금한 마음을 억누른 채 뒷좌석에 처박혀 숨을 골랐다.

어깨 위로 올라온 재연의 손가락이 툭툭 피부 위로 돋아난 비늘을 건드리고 있었다. 더운 숨이 나왔다. 손톱이 비늘 밑을 파고들어 따끔따끔한 생채기를 남긴다. 툭툭 손톱과 딱딱한 비늘이 마주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재연이 교묘한 얼굴로 입술을 올렸다.

종종 택시 기사가 쓸모없는 넋두리를 흘리며 백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본다. 귀와 목덜미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건 둘째 치고, 왼쪽 손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깍지 낀 손이 더 눈치가 보였다. 몸이 뜨거워졌다.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손가락이 등 쪽의 티셔츠를 들추고 척추를 따라 돋아난 비늘을 긁었다.

“흐…….”

“친구가 아픈가 봐?”

“아프진 않고요. 술을 좀 마셨거든요.”

“토할 거 같으면 꼭 말해 줘요. 하루 일당 완전 종 치니까.”

“그럴게요.”

택시 기사는 영 걱정이 되는지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아예 무릎에 고개를 처박고 신음을 삼켰다. 보지 않아도 브리프 안쪽이 질척질척하게 젖었다는 게 느껴졌다. 이게 뭐야, 몸이 왜 이렇지.

늦은 밤, 도로가 막히지도 않았는데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택시비가 만 원을 넘긴 지도 오래되었다. 하재연은 어마어마한 택시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덤덤하게 등줄기만 득득 긁어 왔다. 그냥, 지금 이대로 다리를 벌려 성기를 훑어 내고 싶다. 어디든 제대로 만지고 주물러 줬으면 좋겠다. 사출하고 싶어. 들리지 않는 비명을 입 모양으로 읽었는지, 재연이 눈웃음을 치면서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가고 싶어요?”

“……흐, 으으…….”

“좋아요, 쉬이…… 소리 참아야 해요.”

기사가 귀를 쫑긋 세우는 게 보였다. 재연이 등을 쓸어 주는 척하며 바짝 붙어 와 배와 허벅지 사이의 빈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유니폼으로 입는 까만 슬랙스 바지 위에 남자의 넓고 뜨거운 손바닥이 닿았다.

“……!”

허억, 소리가 터질 것 같아 이를 세워 무릎을 깨물었다. 검은 천이 침으로 축축하게 젖어 짙은 색을 냈다. 힘을 줘 부풀어 오른 바지춤을 문지르는 손길에 쉽게 사정했다. 더 세게, 더 강하게 만져 주면 좋겠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이 바지 틈새가 질척거렸다. 재연이 태연하게 덥네, 하고 중얼거리면서 창문을 내렸다. 뺨과 귀를 때리며 바람이 쏜살같이 밀려 들어왔다. 나쁜 자식, 완전히 울먹거리기 시작할 때에 택시가 드디어 멈춰 섰다. 재연의 부축을 받아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의 안겨서 집으로 들어갔다.

“재연아, 하재연.”

뜨거운 숨과 이름을 섞어 불렀다. 하재연은 대꾸도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며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두 번이나 틀린 뒤에야 겨우 문이 열렸다.

상쾌하고 시원한 냄새가 났다. 바람 향이 난다. 무 향 같으면서도 명백하게 코끝에 맡아지는 향이었다. 재연의 체향이 좁고 퀴퀴하던 반지하의 집에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집이 재연의 냄새에 잠겨 있는 느낌이었다. 재연아. 울면서 이름을 불렀다. 재연이 입술을 빨았다. 아니다, 혀가 먼저 얽혔다.

인간의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 친절과 사랑에는 요구가 있다. 내가 배웠던 인생의 규칙이란 이런 것들이었다.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전의 삶에서 딱 하나 그 규칙을 위배했던 것은 섹스라는 행위였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는 분명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심장 언저리를 직격하는 통증과 애틋한 감정이 고통을 완화했다. 오로지 사랑을 목적으로 욕구를 배출하는 행위에 대해서 나는 그때껏 들어 본 바가 없었다.

흰 원피스를 입고 스타킹을 신지 않았는데도, 리본을 묶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건네주는 키스. 그리고 비쩍 마른 몸인데도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욕정하는 재연의 흥분한 낯에 저절로 내 몸이 달뜨던 시절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였고, 한참 전 잃어버린 유흥이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재연이 입은 티셔츠 면이 구겨졌다. 가슴팍을 밀치고 때렸다. 반지하 골방에 들어오는 건 달빛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방에서 둘이 엉키듯 매달려 먼지를 샅샅이 핥으며 뒹굴고 키스했다.

입 안에서 숨이 터졌다. 코로 숨을 쉬려고 애써 봤지만 키스를 시작하면 호흡이 그대로 멈췄다. 입술을 빨고 혀끝을 씹고 뺨과 턱을 잡고 입술 전체를 삼키고 빨았다. 할리우드 영화의 키스 장면보다 더 게걸스러웠다. 눈꺼풀 위로 재연의 땀이 떨어졌다. 비늘이 돋은 뒷목을 물리고 셔츠와 바지가 벗겨졌다.

땀에 젖은 천 뭉치를 잡아 던지고 재연이 유두를 빨았다. 아무것도 아닌 애무의 일환에도 성기 끝에서 끈적거리는 쿠퍼액이 흘렀다. 하재연이 브리프를 내리고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조금 전까지 체온의 접촉을 가로막고 있던 천도 없겠다, 그는 용암이 끓는 것처럼 뜨거운 손바닥을 움직여 성기를 주물렀다. 이미 한번 사출했던 성기는 질척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추근거리는 성욕에 허리를 꿈틀댔다.

“음, 더, 하…… 거기, 흑!”

가슴팍을 누르고 올라탄 재연이 정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핥으며 환희하는 것처럼 웃었다. 수치스러움에 눈물이 왈칵 새어 나왔다.

“재연아, 이제 그만…….”

“느껴요?”

하재연이 쉰 목소리를 내며 내 아랫입술을 빨았다. 몇 번이나 빨렸던 입술이 퉁퉁 부어 따끔거렸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아랫도리를 비집고 다시 손가락이 돌아와 둔부를 벌려 안쪽을 파고들었다.

“여기 젖었잖아.”

아아, 애액이 질척거리는 소리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몸이 이상했다. 나는 남자였다. 교합을 위해 액을 흘리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둔부의 사이가 간지러웠다. 아니, 허벅지와 엉덩이골 사이가 온통 끈적거리는 액으로 젖었다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애널 사이를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왔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뒷구멍으로 손가락을 물었는데 입에서 단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괴로울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차오른 신음을 삼켰다. 재연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땀에 젖은 천은 구석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바지 지퍼를 내리고 브리프 안에서 성기를 꺼내는 모습에도 욕정했다. 제 성기를 아래위로 흔들며 자세를 잡는 재연에게 울며 보챘다.

빨리 넣어 줘. 맨 정신으로 하지 못할 소리를 지껄이며 너무하다고 보채고 발뒤꿈치로 방바닥을 문질렀다.

하재연은 참을성이 없다며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미칠 것 같아 울음소리를 냈더니 엉덩이를 쥐어짜듯 벌리고 손가락 세 개를 밀어 넣었다. 갑작스런 이물감에 몸을 뒤틀어도 무시하며 제 마음대로 쑤셔 댔다. 손가락이 빠져나갈 때마다 질척거리는 액이 사방으로 튀어 주변을 적셨다. 바닥에 얼굴을 문지르며 마음껏 비명을 질렀다.

“제발, 제발 넣어 줘…… 어, 아! 아아!”

“음란하게…… 미친 것처럼 조여 물고…….”

재연이 으깨지는 음성으로 속삭였다. 느꼈다. 하재연은 정말 화가 나 있었다. 그의 분노와 슬픔, 어지러운 마음과 같은 각양각색의 빛들이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가 떨어트리는 땀과 눈물방울에는 맛과 향이 있었다. 색채가 있었다. 혀로 핥으면 사카린의 달고 쓴 맛이 났다.

“평소라면 이 정도로 바뀌진 않을 텐데, 이제 역신을 만난 대가를 알겠어요?”

재연이 무언가 말을 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 말고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입을 열고 되는대로 지껄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알고 있는 모든 음탕한 언어를 배운 만큼 떠들었다. 하재연이 손바닥으로 입을 막아 버리고 단숨에 삽입했다.

“으……!”

허리가 뒤틀렸다. 성기에서 사출한 정액이 재연의 배와 가슴팍에 튀었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날것의 환상이 보였다. 혀를 내밀어 재연의 손바닥을 빨았다. 이를 세워 딱 붙은 손가락 마디를 깨물었다. 가장 물이 고이기 쉬운 그 중앙을 미친 듯이 핥았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빨리 움직이고 싶었다. 이건, 학습된 섹스가 아니었다.

“알겠냐고.”

“흐, 읏, 재연…… 하아, 아!”

결합부가 타는 듯 뜨거웠다. 맨살에 닿는 감각 하나하나에 발정해서 얼른 사정하고 싶었다. 아래를 쑤시는 성기를 엉덩이로 쥐어뜯는 것처럼 빨았다.

“윤이원, 후, 씨발 진짜…….”

미칠 것 같아. 재연의 팔뚝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다리를 버둥거리며 허리를 뒤틀자 욕을 하면서 내 몸을 잡아 뒤집는다.

맨바닥에 무릎을 찧었지만 아픈 것보다 뒤를 파고 들어오는 성기의 색욕이 우선적으로 다가왔다. 뇌혈관 어디가 마비된 것 같았다. 우리가 하던 섹스가, 원래 이런 것이었나. 울면서 입을 벌리고 재연의 입술과 혀를 빨았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어깨와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다리를 벌린 채 짐승처럼 교합했다. 성기가 빠르게 들어왔다 빠져나갈 때마다 귀두 끝이 입구에 걸렸다. 애액이 튈 때마다 끔찍할 정도로 높은 교성을 지르며 허리를 흔들었다.

재연이 혀를 내밀어 등줄기를 핥고 빨았다. 비늘 구석구석을 건드릴 때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참을 수 없는 감각에 울었다. 좁은 입구를 파고 들어온 성기가 안쪽 깊은 곳을 강하게 처박고 빠져나갔다.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 때마다 재연이 허벅지와 볼기를 때리며 화를 냈다.

“하, 아으, 흑! 흐으.”

“윤이원.”

손을 더듬더듬 뻗어 이불 귀퉁이를 잡아끌었다. 어디든 조금 더 편안하게 있고 싶었다. 하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시야가 한 번 멀었다가, 청각이 멀었다가, 목소리가 끊기길 반복했다. 머리를 깨부수어 죽고 싶었다. 이게, 이런 게 뭐지.

발버둥 치는 허벅지 안쪽을 벌리고 재연이 성기를 잡아 쥐었다. 목구멍에서 찢어지도록 비명이 터졌다. 아아아, 놔 줘. 울면서 빌었지만 재연은 다른 손으로 성기를 먹고 있는 구멍만 더 잡아 찢어지도록 벌렸다. 온몸에 경련이 올라오는데 재연은 성기 밑동을 쥔 채 놔 주지 않았다.

“흐으, 아, 하아. 싫, 거기, 거기이, 아!”

“윤이원, 내 이름 불러 봐.”

시키는 대로 이름을 불렀다. 재연아, 하재연. 입에서 침이 새어 나왔다. 성기 끝에서도 찔끔찔끔 정액이 터졌다. 제발 사정하게 해 달라고 빌면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손으로 사출이 틀어막힌 채로 후벼 파이는 기분이 끝내주게 좋았다. 몇 번이나 강한 추삽질을 반복하던 재연이 마지막으로 내벽 깊숙한 곳에 정액을 쏟으며 손에 힘을 풀었다. 배 속에 정액이 차는 만큼 바깥에도 똑같이 뱉어 냈다. 몽롱한 와중에 포만감이 들었다.

“달다.”

“……흐으, 흐…… 하아…….”

“윤이원, 이원이 형.”

목이 따가웠다. 줄줄 울었던 눈가와 성기 끝과 성기가 처박혔던 애널 입구가 죄다 쓰라렸다. 재연이 눈가를 빨아 주며 웃었다.

몸을 다시 뒤집어 정상으로 돌린 재연이 발목을 잡아 위로 올렸다. 아킬레스건이 있는 부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씩 웃는다. 재연아? 불안한 생각에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무릎 뒤쪽의 얇은 피부가 꽉 깨물렸다. 파르르 몸을 떨자 재연이 몇 번 쪼듯이 키스를 날리며 허벅지를 주물렀다.

“알아요? 이건 어느 정도 해갈시켜 주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거든.”

“이미, 흐, 했잖…….”

“나는 겨우 한 번이고, 얘는 아직 서 있는데.”

손가락으로 반쯤 일어선 성기 기둥을 튕긴다. 입술을 깨물면서 도리질을 치자 재연이 입술을 사타구니에 붙여왔다. 끈적거리는 정액과 애액이 벌려진 구멍에서 질질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만, 이제 싫어…….”

피곤하다. 심장이 꼬챙이로 꿰뚫린 것처럼 아팠다. 단호할 정도로 냉정하게 입술을 여민 재연이 눈 한쪽만 들어 웃는 척하면서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허리가 공중에 위태롭게 부유한 상태로 다시 삽입당했다. 머리를 긁어내리는 쾌감이었다.

뒷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죽을 것 같았다. 질척거리면서 줄줄 흘러내린 정액이 뒤섞여서 거품이 일었다. 둔부에 고환이 날아와 부딪힐 때마다 쩍쩍거리고 철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대로 쾌감에 빠져 질식사라도 할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대로 숨이 막혀 죽으면 더는 고통 같은 쾌락에 미치지 않아도 될 텐데. 눈을 끔벅거리며 눈물을 쥐어짰다. 엉덩이와 허리가 공중에서 마구 흔들렸다.

성기를 꾸역꾸역 먹어 삼켰다. 아니, 삼킬 때마다 성기가 삼키라고 아가리를 잡아 뜯으며 자신을 밀어 넣었다. 기둥이 내벽을 죽죽 긁고 완전히 빠져나갔다가 다시 선단액을 바르고 귀두를 문지르며 찢어질 듯 강하게 때려 박는다.

허리가 높게 들어 올려지는 바람에 애쓰지 않아도 발기한 성기가 꺼떡거리며 아랫배를 두들기는 게 보였다. 손을 들어 시야를 가리면 삽입 속도가 거세졌다. 손을 떼어 내면 다시 자극적인 시야에 눈이 감겼다.

“그만, 하아, 시잃, 훗…… 아……!”

쩌억거리며 성기가 질질 빠져나가면 영혼이 딸려 나가는 것 같았다. 실금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랫도리에서 줄줄 액체가 흘렀다. 제발. 울면서 애원할 때마다 재연이 허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다리 하나가 재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서 바닥에 질질 끌렸다. 각도가 뒤틀리면서 익숙하지 않은 곳을 찍었다. 어딜 더듬고 어떤 방식으로 쑤셔 넣어도 느꼈다.

용의 힘이 뭐 이래, 시발. 신수라며. 개새끼들.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자 재연이 고개를 숙여 유두를 빨았다. 흡착하는 것처럼 강하게 빨며 혀로 문지르듯 핥자 성기에서 정액이 터졌다. 이미 사정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 계속 싸지르고 있던 터라 시원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냥 뭔지 모를 이 지속적인 쾌락이 끝이 났으면 좋겠다.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면 재연은 피를 먹였다. 물인가 피인가 잘 모르겠지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받아 마시며 뒤로는 성기를 받았다. 그로테스크했다.

한쪽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린 채로 스스로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더 넣어 줘. 눈물 콧물을 쏟아 가며 빌자 재연이 본인의 입술을 와드득 깨물며 화를 냈다. 그러나 말은 없었고 입구를 비비는 선단 끝으로 응징이 찾아왔다. 내벽이 아닌 입구와 엉덩이를 적시는 정액의 온도에 눈물을 삼켰다. 모자랐다, 모자랄 수밖에 없다.

“아, 안에…… 싫어어…….”

울면서 몸서리치자 재연이 끈적끈적한 엉덩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맞추며 허벅지 안쪽을 때렸다. 비늘이 돋아난 부분을 문지르기만 해도 사정을 했다. 후, 성기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떨어졌다. 이제는 정액이 나오지도 않는다. 물 같은 액체를 흘리면서 다리를 활짝 벌렸다. 해 줘. 얼빠진 얼굴로 애원하자 재연이 허벅지를 끝까지 밀어 올려 귀 옆에 처박았다. 180도로 접힌 허리가 땅겼다.

“달아.”

“……하아, 재연아…….”

“이대로 먹어 치우고 싶어.”

재연의 까만 눈이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 호흡할 때마다 애널이 개폐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남자인데 남자의 성기가 박혀 들어오는 걸 기다리며 흐물흐물하게 풀린 채였다. 게다가 재연이 먹여 준 정액까지 흘리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재연의 팔을 잡았다. 보채는 것처럼 손톱을 세우자마자 성기에 쑤셔졌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흔들렸다. 아래위로 흔들리는 건지, 양옆으로 흔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되는대로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고 박제된 나비처럼 사지를 결박당한 채로 엉덩이를 조였다. 재연의 성기가 빠르게 들어왔다가 빠지면서 주름 하나하나가 부어오르도록 강하게 혹사당했다.

더 긁어 줘, 하는 성욕과 이제 그만이라는 체력적 한계가 볼기 부위를 강타했다. 실제로도 바닥에 몇 번이고 머리가 처박히고 있었다. 딱딱한 바닥에 부딪힌 골반도, 어깨와 날개뼈도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대로 끝을, 끝까지 갔으면. 어딘가에 있을 한계의 쾌락을 경험하고 싶었다. 허겁지겁 재연의 등을 끌어안고 소리 질렀다.

“재연, 하재…… 흐으! 그마, 아, 하으으!”

“왜 자꾸…….”

“흐읏, 아, 아앙! 아!”

“자꾸, 후, 사람 속을 썩여.”

재연이 울고 있었다. 몇 번이나 엉덩이를 맞으며 날아와 부딪히는 바지 버튼과 지퍼의 금속에 살이 쓸려 아프다고 울면서도 재연의 눈물을 빨아 먹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재연이 화가 나서? 아니면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깍지를 낀 채 풀지 않아서? 손이 뜨겁고 혓바닥이 미끈거리니까? 이상하다,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냥 밤이기 때문이라고 할까.

아슬아슬하게 끝까지 빠졌던 성기가 다시 내장을 위로 밀어 올리면서 안에 쑤셔 박혔다. 아랫구멍은 성기의 굵기와 길이와 모양을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성을 무시하고 맛있게 집어삼켰다. 단것은 내가 아니고 재연이었다.

젖은 뺨을 움직이며 재연이 이를 드러내 목덜미를 꽉 깨물었다. 오르가슴을 느낀 채 눈을 홉뜨고 발작하듯 온몸을 떨었다. 내벽을 적시는 애액의 끈적거리는 온도에 자극받은 듯 성기에서도 정액이 찔끔 흘렀다.

“……너무…….”

목이 따가웠다. 억지로 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무거워지는 건 싫어…….”

엔지와 일하게 되면서 배운 것은 상실감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이 아닌 손님들은 소원을 이루면 그대로 생문(生門)을 통과해 환생의 궤도에 올랐다. 그곳으로 가는 자들의 발걸음은 죽어서라도 원하는 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후회 없이 가벼웠지만 나는 홀로 늘 후회했다.

혹시 나도 그때 죽는 것을 선택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행복한 새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그때 신이 그리 말씀하셨으므로.

그러니 몸을 겹치고 있는데도 상실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걸까. 가볍기만 하던 재연이 아쉬워졌다. 재연이 지쳐 늘어진 몸을 끌어안으며 뺨에 입을 맞췄다.

“나는 당신을 보면서 기적을 생각해.”

“재연아……?”

피곤하고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교합 과정이었다. 축 늘어진 정신을 들어 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힘이 부족했다. 까무룩 하게 떨어지는 내 눈과 시선을 맞추며 재연이 웃었다.

“어차피…… 것도…… 만…….”

뺨을 매만지는 손가락이 부드러웠다. 어딘가로 가 버려. 재연의 손가락을 떼어 내며 맥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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