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기억과 상실 (9/24)

7. 기억과 상실

토토는 무럭무럭 자랐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아기라고 부르면 딱 귀여울 만한 사이즈였는데. 가끔 동물이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 걸까 고민할 정도로 일주일 사이에 두 배는 커 버린 것 같다. 미친 것처럼 먹고 싸고 자기만 하니까 이렇게 살이 찌지. 손가락으로 혼자 팔자 좋게 늘어진 배를 툭툭 치면 온 사방을 뒹굴면서 화를 내는 바람에 더 괴롭히지도 못했다.

주영은 토끼를 키운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기뻐 미친 사람처럼 굴더니 하루에 한 번씩 출근 도장을 찍었다. 먹을 걸 바리바리 싸서 들고 오는 바람에 쫓아내지도 못하고 문을 열어 줬다. 가끔은 아예 갈아입을 옷을 들고 하룻밤 자고 갔다. 귀신이 많은 흉가 특유의 음습함이 있을 텐데 토토를 보겠다고 찾아오는 걸 보면 보기 드물게 신경이 무딘 놈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시 퇴근을 마치고 집에 쳐들어온 불청객 때문에 집이 좁아졌다. 서주영이 전기세를 감당하겠다고 토로하지 않았다면 에어컨을 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좁고 더러운 집에 달린 벽걸이형 에어컨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먼지 냄새가 심하게 났다. 결국 에어컨 수리 기사를 불러서 필터를 교체했는데, 언제 죽었는지 모를 바싹 마른 바퀴벌레 사체가 나오는 바람에 잠깐 이사를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더럽고 지저분한 에어컨을 다 뜯어 청소한 덕분에 방에서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여름에 선풍기가 아닌 에어컨으로 하루를 보내다니,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사치다. 머리 위로 내려오는 찬 바람을 쐬면서 치킨 박스를 열었다. 나무젓가락을 뜯으며 자리 잡고 앉은 주영이 맥주를 먼저 한 모금 마시고는 술에 취한 아저씨처럼 토토를 안고 어화둥둥 사랑놀이를 시작했다.

“집에 안 가냐?”

“응.”

“요즘 왜 이렇게 일찍 퇴근하는 건데?”

“사장님 연애한다고 바빠서.”

저렇게 사장이 사생활에 미쳐 있는 회사가 멀쩡하게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젓가락을 문 채 입을 다물자 주영이 닭다리를 집어 들어 대차게 한 입 베어 먹었다. 와삭거리는 크리스피 튀김이 씹히는 소리에 침이 고였다.

남은 다리 하나를 들어 통통하게 올라붙은 살점을 앞니로 찢으며 쭉 뜯어 먹었다. 뜨거운 육즙이 입 안에 쭉 들어찼다. 입천장을 찌를 정도로 바삭하게 튀겨진 튀김옷과 다리 살을 같이 씹을 때마다 쫀득거리고 바삭거리는 소리가 합창처럼 울렸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흘러나온다는 호르몬이 실체가 되어 입 안을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작은 박스를 열어 샐러드와 소스를 비벼 섞었다. 주영이 소스 뚜껑을 뜯어서 닭다리를 소스에 푹 찍었다. 빨간 양념이 덩어리져서 뚝뚝 떨어졌다. 커다란 다리라고 해도 남자 두 명이 먹기 시작하니 다섯 번도 뜯지 않았는데 긴 뼈다귀 하나만 남았다. 봉지에 뼈를 던져 넣고 물렁뼈를 씹으며 가슴살로는 보이지 않는 조각 하나를 진지하게 엄선했다. 손가락에 기름기가 넉넉하게 묻어났다. 입술도 기름으로 범벅이었다. 미끈미끈한 입술을 쭉 빨았다.

“요즘도 그럼 계속 그 카페에서만 일해?”

“응.”

“미친놈은 안 오고?”

“문 앞에 해코지만 해 두고 가는 것 같아.”

“저런…… 비밀스러운 남자한테 인기 많은 타입인가 보네.”

서주영이 쓸데없는 헛소리를 하며 양배추 샐러드를 듬뿍 집어 먹었다. 눈을 찌푸리며 치킨을 반으로 뚝 찢어 머스타드 소스에 절여 먹었다. 그 싸이코 같은 놈을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긴 한데 치킨은 맛있다. 튀김옷과 고기 사이에 은근히 배인 매콤한 향이 느끼한 기름 맛을 적당히 중화시켜 주었다.

맥주로 미끈거리는 입 안을 씻어 내고 남은 살 위에 소금을 조금만 찍어 먹었다. 매운 양념과 소금, 머스타드 소스로 번갈아 먹자 치킨이 무한으로 들어갔다. 벌써 맥주 하나를 끝장낸 주영이 깨끗하게 발라 낸 날개뼈를 봉투 안에 휙휙 던져 넣고 치킨 무를 씹었다. 토토는 그 옆에서 얇게 썬 무를 꼬들꼬들 먹고 있었다. 정이 많이 들었는지 사이가 상당히 좋아 보인다. 일찌감치 유언장이라도 작성할까. 짐짓 근엄한 마음으로 말했다.

“나 죽으면 토토는 네가 키워.”

“뭐?”

“쟤 혼자 살 수는 없잖…….”

“언제 죽는데?”

매우 기뻐하는 얼굴을 보자 최소한 저 새끼가 죽고 난 뒤에 죽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넌 인간도 아니야.”

“왜, 충분히 인간적이라고.”

“어느 부분이?”

“몰라.”

뻔뻔하기 짝이 없다. 손에 들린 치킨을 입에 쑤셔 넣고 우물우물 먹었다. 주영이 편의점 봉지에서 새로 맥주를 꺼내서 풀탭에 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아, 천국이야. 사장님이 오래 연애했으면 좋겠다.”

“사장님 정도면 슬슬 결혼해야 맞는 거 아니야?”

“어. 결혼은 무리이긴 한데…… 그래도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버텨서…… 결혼까지도 괜찮아……. 퇴근만, 퇴근만 하면 돼.”

“…….”

본인의 빠른 퇴근을 위해 사장님의 연애 상대인 것 같은 아가씨를 팔아 치운 건 아닐까. 묘한 불안감에 흘끗 서주영을 넘겨보다 토토가 씹고 있던 무 조각을 뺏어 쓰레기통에 던지고 우리 안에 가뒀다. 토토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옆으로 쓰러졌다. 흑흑 소리를 내는 것처럼 낑낑대며 울자 주영이 옆에서 함께 울먹거렸다. 덜떨어진 지능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모양이다. 주영이 봉투에서 침 범벅이 된 무 조각을 꺼내서 토토에게 내밀길래 옆구리를 걷어 찼다.

다시 더러운 무 조각을 뺏어 아예 화장실 바닥에 던졌다. 토토가 휙 날아가는 뽀얀 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좌절했다. 돼지토끼. 손을 탁탁 털고 남은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들며 냉정하게 말했다.

“쟨 다이어트 좀 해야 해.”

아픈 옆구리를 잡고 끙끙 앓아 대던 주영이 열 받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야, 너나 해!”

“지랄하지 마.”

내가 어딜 보나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은 아니었다. 최근 저놈이랑 배달 음식이며 맥주를 하도 먹어 붓고 살이 좀 쪄서 봐 줄 만해졌지, 말라비틀어져 골골대는 친구한테 다이어트 좋아하시네. 발을 뻗어 서주영의 배를 콱콱 누르며 빈정거렸다.

“너부터 빼. 너나 토토나 똑같아. 돼지처럼 살만 쪄서.”

“야, 나 살 안 쪘어!”

“음, 그건 그렇지만.”

서주영도 적당히 관리 잘한 남자는 맞았다. 그래도 놀리면 파르르 떨어 대니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맨 정신으로 저걸 칭찬해 줄 인간도 아니다. 서주영이 이건 다 스트레스 지방이라고 엉엉 우는 사이 남은 치킨을 전투적으로 씹었다. 사실 잘 먹는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으니 치킨 한 마리로는 모자랄 때가 많았다.

“야, 물렁살만 골라 먹지 마.”

서주영이 누워서 토토에서 자기 신세 한탄을 하다 말고 지적했다. 커흠. 목에 튀김 부스러기가 걸려 쿨럭거리자 주영이 장판을 짚고 일어났다.

“치사하게, 퍽퍽살도 먹고 그래라.”

“……집었는데 허벅지 살이었을 뿐이거든.”

“얍삽한 새끼.”

남자들의 치킨 부위별 쟁탈전이란 욕이 수반된다. 결국 집었던 치킨 조각을 서주영에게 그대로 뺏기고 퍽퍽한 살 하나를 찢어 먹었다. 주영이 입 안에 맥주를 가득 부었다. 볼을 크게 부풀려 남은 맥주를 한 모금 크게 물고 조금씩 넘기면서 새 맥주 캔을 땄다.

입 안에서 잔뼈를 뱉어 봉투 안에 휙 던졌다. 마지막으로 바닥을 보이는 머스타드 소스를 치킨 조각으로 굴리듯이 박박 닦아 입 안에 넣자 주영이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야, 그걸 너 혼자 다 먹으면 어떡해?”

“누가 멍청하게 있으라고 했냐. 드러눕지 말고 월세나 내라.”

“보증금 갚아.”

“…….”

“치킨도 내가 샀거든.”

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치킨 무 하나를 우적우적 씹었다. 주영이 하나 남은 치킨 토막을 끌어다 자신의 앞에 둔다. 물주 앞에서 개기지도 못하고 냉장고를 뒤져서 마른 오징어를 꺼냈다. 서주영이 치킨을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케첩.”

“어, 그래.”

오징어를 케첩에 찍어 먹는 희대의 혓바닥 병신이 저놈이었다. 지갑의 본분에 충실하지만 않았으면 입맛을 가지고 대자보라도 붙였을 텐데. 괜히 안타까웠다.

오징어와 라면 하나를 부숴 남은 맥주를 싹 털어 버리고 난 뒤 이불을 깔고 둘이 나란히 누웠다. 포만감 뒤에는 늘 허기진 공허함이 밀려온다. 느끼하고 부대끼는 속을 붙들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끙끙 앓자 토토가 위장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짚고 섰다. 철물점에 들르기 귀찮아 허접한 울타리를 그대로 뒀더니 틈만 나면 구멍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와 사람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귀신 때문에 잘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오들오들 떨기만 하더니 이제는 집 안을 사방팔방 마음대로 쏘다닌다. 인간의 몸 두 개를 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타 넘기를 반복하자 주영이 옆에서 끙끙 죽어 가는 소리를 냈다.

“아, 배불러. 출근하기 싫다. 퇴사하고 싶어.”

“닥치고 잠이나 자라. 그런데 안 좁아? 집에 좀 가라.”

“아, 안 돼.”

“왜?”

“하재연이 나보고 너랑 같이 좀 지내랬어.”

“……걔랑 사귀냐?”

어이가 없다. 이쪽 의사는 어디로 팔아먹고 둘이서만 작당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짓자 주영이 실실 웃으면서 자는 척 코 고는 소리를 냈다.

“이것들이…….”

골이 아파 와 머리를 꾹꾹 눌렀다. 하재연은 다 부러졌는지 없는 손가락이 서주영한테 연락할 때만 생기는 모양이다. 이득도 없는 배신감에 몸부림치다 겨우 잠이 들었다.

꿈에서 토토가 커다란 닭다리를 들고 아귀처럼 허겁지겁 뜯어 먹더니 거대하게 변신해 나를 밟았다. 엄청나게 뚱뚱한 돼지가 된 토토의 털은 내 몸만큼 길었다. 너무 아파서 끙끙거리며 몸부림치다 겨우 앞발을 밀어 올리자 토토가 공중에서 한 바퀴 재주넘기를 하더니 귀신으로 변했다. 머리와 혓바닥이 바닥까지 질질 끌리는, 팔다리가 거미처럼 가늘고 긴 귀신이었다. 귀신은 긴 혀로 몸을 졸랐다. 배와 심장이 너무 답답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겨우 가위에서 풀려 눈을 뜨자 반짝거리는 눈으로 먹이를 조르는 토토의 얼굴이 정면에 보였다.

이 돼지토끼가 올라타면 늘 에어컨 귀신이 팔다리로 몸을 칭칭 묶고 배 위에 올라타 괴롭히는 악몽을 꿨다. 꼭두새벽에는 서주영이 출근 준비를 한다고 소란을 피워 잠을 다 깨우고, 다시 좀 자려고 하면 토토가 산책 준비 끝냈다고 괴롭힌다. 쌍방으로 엿을 먹이는 짜증스러운 두 생명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야, 너 살 좀 빼.”

화를 내 봐도 토토는 듣는 시늉도 안 하고 귀여운 척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침 9시만 되면 산책하러 가자고 몸 위에 올라타 가위와 악몽을 유도하는 토끼 한 마리 때문에 강제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

몸이 허해졌는지 최근 아침에 일어나면 코피가 주르륵 콧물처럼 흐른다. 옆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 몇 칸을 뜯어 코를 틀어막고 토토의 목줄을 잡았다. 토토가 신이 나서 주둥이를 오물거리며 뒤뚱뒤뚱 현관문으로 발을 뻗었다. 얘가 위험하게. 한쪽 팔로 몸을 번쩍 안아 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위험하게 유리 파편 같은 것이 잔뜩 깔려 있었다.

얼마 전에도 조심성 없이 뛰쳐나가다 발이 다쳐 고생했으면서. 지능이 딱 토끼 수준이다. 영물이 맞겠지, 그렇겠지. 의미 없이 신뢰를 고쳐 잡으며 신발장에 있는 빗자루로 어지럽게 널린 유리 파편을 치웠다. 밤사이에 수북하게 쌓인 모래와 먼지까지 쓸어 버리고 돌아보니 토토가 뒷다리로 목을 박박 긁으며 토라져 있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산책하러 나가는 시간이 5분 늦춰졌다고 기분이 상할 수 있나. 내가 약속 장소에서 혼자 한 시간을 기다려도 저것보단 덜 화난 척할 거다. 안 가겠다고 버둥대는 토토를 옆구리에 잡아 끼고 바깥으로 나오자 햇살이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여전히 동네는 푹푹 쪘다.

붉은 리본을 곱게 목에 묶은 토끼가 아장아장 산책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봤다. 부식 가게를 지나갈 때면 아저씨나 아줌마가 귀엽다고 조금 시든 말린 무청 한두 장이나 흠이 져 팔지 못하는 당근 조각 따위를 쥐여 줬다. 그걸 조금씩 잘라 먹이면서 동네를 빙글빙글 돌았다.

최근 경찰은 골목길 안에서 우연히 잡은 남자가 살인범이라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누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찮은 일을 대충 처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보여 한차례 화병을 앓았다. 그래서야 놈의 앞에 대놓고 부추기며 협박을 한 보람이 없지 않은가.

물론 당사자야 눈속임이란 걸 알았는지 당분간은 살인을 피하는 모양이었다. 근방에 가벼운 방화 사건이 있었지만 그놈이 한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경찰도 동일인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낡은 가게의 밸브에서 노출된 가스가 문제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이 든 어르신 단골이 많던 생선구이 가게는 당분간 휴업을 한다는 종이를 그을음이 껴 거뭇해진 가게 유리문 앞에 붙여 두었다.

눈꺼풀을 찌르는 태양 빛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점점 숨 막히게 더워지는 날들이었다. 그동안 엔지의 가게에만 출근하며 몇 명의 손님을 더 받았다. 엔지도 지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틀 전 무당의 집에도 들렀지만, 휴업한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장군신이 못 보던 사이에 노쇠해진 걸 보고 발걸음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내게 사실을 말해 준 대가를 어느 정도 치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신이 자리를 비웠어도 이미 신내림을 한 번 받았던 몸은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무당이 신내림을 받으라고 권유했던 것이 기억났다. 대가도 없이 신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 어떤 말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신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고.

손을 꼽아 보았다. 두 번째로 십이신장과 만났을 때 그들은 기묘한 붉은 진 안에서 온몸을 사슬로 묶은 채 버티고 있었다.

“야, 토토야.”

제 이름을 부르자 토토가 바닥에 엎어져 더운 숨을 쌕쌕 내쉬다가 고개를 반짝 치켜든다.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목소리를 가만히 낮췄다.

“남은 시간이…….”

신의 수명과 관련이 있니?

토토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토토가 길고 보송보송한 귀를 파르르 떨면서 빠른 속도로 쫑긋거렸다. 기이하게 팔짝거리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하재연은 주인이 없는 무덤에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토토를 안아 주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십이신장들이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왕의 수명에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신은 태초부터 전해져 내려와 인간의 삶에 관여하고 자연과 생명의 이치를 다루었다고 한다.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존재했으니 어떻게 보면 무한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강박 관념 같은 틀을 깬 것은 하재연이었다. 인간인 재연이 신이 되지 못했다는 사주라니. 과연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불교에서는 해탈과 열반에 들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에서 부처는 제자 수보리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설포한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일체의 현상계는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경) 제 32 <응화비진분>)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연 만물에는 부처의 모습이 있다, 너와 나 또한 부처이다. 그런 식의 말이다.

도교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물아일체와 자연 속에서의 삶을 추구하지만 신에 대한 가치관은 분명히 다르다. 내가 만났던, 왕이라 지칭되는 신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불교보다는 도교에 가까이 존재하는 자였다. 위대한 힘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왕…….

토토가 집에 돌아가자는 듯 슬리퍼 끝을 물면서 바닥에 몸을 굴렸다. 얘는 바닥이 얼마나 더러운지 몰라서 이렇게 실뭉치처럼 굴러다니는 걸까. 온갖 더러운 것이 엉겨 붙어 끈적끈적해진 토토를 들어 주머니 안에 밀어 넣고 슈퍼에서 배 맛 쭈쭈바를 하나 사서 빨았다.

오늘은 일도 없고, 그저께 엔지한테 받은 월급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평화로웠다. 월세와 공과금으로 빠질 돈을 미리 빼 뒀지만 숨 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아직 남아 있었다. 막 출소했을 때는 앞으로 어쩌나 막막하기만 했었다. 주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두 번째 사고를 거하게 쳐서라도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조금 걸었다고 피곤한지 금방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토토를 흘끔 내려다보다 물렁물렁하게 녹은 쭈쭈바 밑부분을 꾹꾹 눌러 먹으며 한숨을 쉬었다. 입술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삼킬 때마다 코피를 흘린 이후 아플 정도로 울리던 머리가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흠, 주머니 바깥으로 튀어나와 꼬물거리는 앞발을 내려다보다 졸고 있는 토토를 툭툭 건드려 깨웠다. 토토가 불만이 넘쳐나는 표정으로 귀를 쫑긋거리며 올려다본다.

“야.”

뭐. 토토가 표정으로 대답하며 앞발을 내밀었다. 조각낸 당근 하나를 입에 물려 주며 미간 사이를 살살 긁어 주었다.

“하재연 어디 있는지 알지?”

모르는데. 당근 맛있다. 토토는 그딴 표정을 지으며 당근이나 처먹었다. 이 배은망덕한 돼지토끼가. 귀를 잡아 흔들자 토토가 먹던 당근을 뱉으며 바둥거렸다. 토끼의 약점이라는 귀를 아무렇지도 않게 괴롭히자 구슬픈 눈물을 흘리며 토토가 바닥에 흘린 당근을 바라보았다. 귀가 뜯기는 것보다 당근을 먹다 떨어트린 게 더 슬픈 모양이었다. 하여튼 돼지였다.

“당근 사 줄 테니까 재연이한테 좀 가자.”

토토가 들은 척도 안 하고 뒷발로 귀 뒤를 박박 긁었다. 말을 말자. 귀찮아서 다시 토토를 주머니에 밀어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큰마음 먹고 에어컨 청소를 끝냈더니 낡은 에어컨이라도 그럭저럭 여름을 시원하게 날 만했다. 폭염이 점점 더 심해지는데 선풍기나 하나 사서 전기세를 알뜰하게 아껴 볼까 생각했던 건 미친 짓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자마자 토토는 자기 우리로 들어가 얌전히 잠을 잤다. 옆으로 엎어져 쿨쿨 자는 모습을 보다 덩달아 자연스럽게 깔아 둔 이불 안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시원한 공기에 갇혀서 두툼한 이불을 덮으니 잠이 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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