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후(哮吼)
외전
외전 1. 아메트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지루해질 때쯤 훌쩍 떠났다.
행선지는 매번 달랐다. 때로는 인간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대도시였고, 때로는 바다를 건너고 국경을 넘어야 할 수 있는 낯선 이방이었다. 몇 주든 몇 달이든, 아무도 그를 아는 곳이 없는 땅에서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돌아왔다.
그렇게 해야만 고질병처럼 주기적으로 번지는 권태를 잊을 수 있었다.
그는 번잡한 대로의 건널목에 섰다. 도시에 부는 바람은 황량했다. 그가 입은 검은색 코트가 가볍게 흔들렸다. 도로를 빽빽이 메운 자동차들이 무정하게 쌩쌩 스쳐 지나갔다.
샛노란 뱀의 눈동자가 길거리를 느긋하게 훑었다. 어딜 가나 인간들이 가득했다. 대도시 영경, 교활하고 열등하고 영악한 이종족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는 몇 년 전 마지막으로 왔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무채색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루했다. 이제 슬슬 이 무의미하고 간헐적인 외출을 마치고 화리연으로 돌아갈 때가 된 모양이었다.
그때 발견했다. 널찍한 길 건너편, 건물 틈새의 좁고 허름한 골목에 선 수인 소년을.
“아니, 이 새끼가. 훔쳤으면 훔쳤다고 솔직하게 말하라니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누군가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선 중년 남자는 허름한 앞치마를 맨 채 허리에 손을 얹고 핏대를 세워 가며 언성을 높였다.
“응? 손버릇이 나빠서 그랬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 이 말이 그렇게 어렵냐? 네 사정 어려운 거 안다고, 솔직하게 빌면 네 급여에서 까든 봐 준다니까 그러네.”
남자는 손등으로 소년의 머리를 툭툭 치며 빈정거렸다. 그가 한 번 때릴 때마다 충격으로 소년의 고개가 작게 흔들렸다.
길 건너편에 선 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거리가 멀었지만 골목에서의 대화는 충분히 잘 들렸다. 웅성대며 지나가는 수많은 인파의 말소리와 자동차의 소음은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제가 훔치지 않았습니다.”
애써 무뚝뚝한 척하고 있었지만 흉흉한 분노를 숨길 수 없는 음성이었다.
그랬지, 늑대 수인은 다혈질로 유명했지. 그런데도 하찮은 인간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써 가면서 용케도 참는군.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의 뾰족한 동공이 사르르 가늘어졌다. 흥미로웠다.
“그런데 왜 시재가 안 맞느냔 말이야. 어? 가게 돈에 손댈 놈이 너 말고 더 있어? 더 있냐고!”
“전 결코 금고에 손댄 적이 없습니다.”
“이게 진짜.”
그는 솥뚜껑만 한 손을 들어 가차 없이 소년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상대를 결코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행위였다.
짜악!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선명한 노란색 눈이 가려졌다. 고개가 휙 돌아가며 검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더러운 개새끼 주제에 어디서 감히 말대꾸야, 건방지게. 음침하게 뒤로 돈 빼돌리는 것만 배워 가지고는. 이래서 덜떨어진 수인 놈은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
“…….”
“제기랄, 재수가 없으려니 원. 짐승 비린내 옮겠네. 내 손만 더러워졌구먼.”
남자가 누런 가래침을 탁 뱉으며 손을 털었다. 소년이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눈빛이 달랐다. 금빛 눈동자에 적나라하게 맹수의 흉성이 드러났다.
도둑으로 몰릴 때도 불쾌해할지언정 억지로 인내하고 있었는데, 정체성을 모욕당한 소년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단단히 갈무리되어 있던 이성이 깨어지고 야성이 고개를 드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뭐라고? 이 새끼가…….”
“그따위로 말하지 말라고!”
맹수의 살벌한 으르렁거림이 터졌다. 노예를 부리는 주인처럼 마냥 기세등등하던 남자가 움찔했다. 순간적으로 겁먹었지만, 상대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퉁퉁하게 살이 오른 볼을 푸들푸들 떨며 화를 냈다.
“이, 이 미친놈이…… 못 하는 말이 없어.”
“못 하는 말이 없는 건 너겠지. 듣자 듣자 하니까 좆 같은 말만 골라서 씨불이고 있어.”
“수인 새끼가, 어, 어딜 대들어? 엉? 짐승이 사람 해친다고 신고한다!”
“신고하든가, 그럼. 신고 꼭 해라, 씨발놈아. 두 번 해라!”
“하, 참 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내 이름 알지? 외워 놨다가 신고할 때 헷갈리지 말고 써먹어. 가해자는 서문하제라고!”
“고용주한테 그따위로 말하라고, 꼬리 달린 네놈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이래서 수인들은 안 된다니까. 넌 해고야! 지금 당장 꺼져!”
“아, 그래! 그것참 잘됐네! 더러워서 네 가게에서 일 안 한다!”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가며 중년 남자에게 맞섰다. 남자는 질린 얼굴을 하더니 두툼한 다리로 소년을 퍽 걷어차며 가게 뒷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아…….”
시원하게 제 할 말 다 해 놓고 뒤늦게 이성을 되찾았는지, 소년은 착잡하게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댔다. 맹렬하게 터져 나오던 살기는 어디로 가고,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더니 허리에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골목에 내동댕이쳤다.
힘없이 허공을 올려다보던 노란 눈동자가 문득 길 건너에 서 있던 남자를 향했다.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눈길이 느껴지니 저도 모르게 상대를 쳐다본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년은 곧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잠시 맞물렸던 시선이 도로 엇갈렸다.
소년이 비틀비틀 골목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떠났다. 결코 기죽지 않고 수그러들지도 않고 형형하게 타오르는 황금빛 눈, 그 늑대의 눈동자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 * *
아메트는 스르르 눈을 떴다. 잠의 여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정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익숙한 노란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제는 상체를 반쯤 일으키고 아메트의 몸 위를 가로질러 침대 곁의 탁자에 놓인 물병에 손을 뻗고 있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매끈하고 탄탄한 상체가 눈에 띄었다.
아메트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제는 흠칫 놀랐다. 잠든 줄 알았던 이가 기척도 없이 눈을 번쩍 뜨고 자신을 보고 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놀랐다는 걸 내색하기는 싫었다.
“뭘 봐?”
괜히 멋쩍어진 하제가 팍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는 아메트를 무시하고 물병의 뚜껑을 열어 병째로 물을 마셨다. 벌컥벌컥 기세 좋게 목울대가 움직였다.
“잠이 와서 좋겠다, 넌.”
하제가 물병을 내려놓고 손등으로 입가를 쓱 훔치며 투덜댔다. 아메트는 그가 마신 물병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어 자신도 목을 축였다.
“난 아까 그 일 때문에 잠이 오기는커녕 아직도 이가 빠득빠득 갈리는데.”
하제는 퍽 소리가 나도록 짜증스럽게 도로 드러눕더니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그가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도시의 조직 폭력배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을 소탕하려고 가신들을 동원해 몇 달을 공들여 수사했는데, 어찌나 약삭빠른지 아직 뿌리 뽑지 못했다는 것이다. 침대에서 뒤엉켜 한 판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일이 하제가 여기까지 찾아온 주된 목적이었다.
“죽여줄까……?”
아메트가 손을 뻗어 하제의 맨 가슴을 스르르 쓸어내렸다. 서늘하고 흰 손이 맨 피부에 닿자 오싹한 긴장이 일었다.
“하제야. 그놈들, 죽여줄까? 네 앞에서 팔다리를 토막 내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쏟는 걸 보여 줄게……. 그러면 되겠어?”
“죽이긴 뭘 죽여? 사고방식 한 번 존나 극단적이네. 누가 또라이 아니랄까 봐. 됐다. 내 일이니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하제가 퉁명스럽게 그의 손을 쳐냈다.
“그럼 그 이야기를 왜 내게 한 거지?”
“그냥 신세 한탄이지. 이런 얘기 할 사람이 네놈 말고 더 있어?”
우두머리란 본래 외로운 존재였다. 일이 힘들어 죽겠다느니, 요즘 맡은 건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느니. 결코 아랫사람들에겐 쉬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므로. 그래서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닮을 수밖에 없었다.
둘은 여전히 사이가 나빴다. 아메트는 하제가 조금이라도 그를 거부하려 하면 철저하게 응징했고, 하제는 그에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고 아득바득 달려들었다. 두 남자가 붙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험한 말이 오가고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서로 가장 추악한 밑바닥까지 다 보인 자들 특유의 묘하게 격식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긋지긋하게 증오한 끝에, 자석의 양극처럼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끌리는.
아메트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침상 옆에 놓인 장죽을 집었다. 탄탄한 근육이 잡힌 허리를 타고 실크 이불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의 어깨와 팔을 따라 새겨진 흉악하고 아름다운 문신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 우아한 손길로 담뱃잎을 채워 넣고 불을 붙였다. 조금 전까지 침대에 누워 있던지라 검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샛노란 눈을 나른하게 깜빡이며 담배를 무는 모습이 요염했다.
“들개 무리 쪽에는 협력을 구해 봤어?”
“그게 쉽게 됐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지.”
“하기야…….”
낮은 목소리로 무심한 대화가 오고 갔다. 방금까지 짐승처럼 뒹굴며 거칠게 몸을 섞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아메트와 하제는 서로 눈 한 번 마주하지 않고 침상의 양쪽 끝과 끝에 누워 각자 시간을 보냈다. 데면데면한 동시에 묘하게 친밀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침실을 밝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나은 수준의 어슴푸레한 조명 하나뿐이었다. 희끄무레한 빛 위로 담배 연기가 느릿하게 퍼졌다. 아메트는 길게 연기를 뿜으며 하제를 돌아보았다. 하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본인의 팔을 베고 누워 어두컴컴한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남자를 살리기 위해 아메트는 수백 년의 세월을 버렸고 백 일 동안의 죽음을 감수했다.
백 일이었다. 하루도 아니고 십 일도 아닌, 백 번의 밤. 심장보다도 더 귀중한 것을 타인에게 줘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백 일 동안의 기나긴 가사 상태에 빠져들며, 아메트는 자신이 살아서 다시 깨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호시탐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잠만 자는 아메트는 어린애라도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일 테니까. 이대로 죽음을 맞이할 각오를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고요하게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고, 싸늘한 추위 속에서 그는 다시 깨어났다. 아무도 없는 저택의 텅 빈 침실에서였다. 그의 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제는 그의 곁을 떠났고, 아메트의 상태에 대해 철저히 비밀을 지켰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그를 백 일 동안 고스란히 내버려 두었다. 자신이 의식을 잃으면 가장 먼저 이때다 하고 심장에 칼을 꽂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아메트는 뜻하지 않게 삶을 되찾았다. 아주 오랜 세월을 품어 오던 여의주를 잃고 나서도 삶은 계속되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하제야.”
한 손에 연기가 느리게 피어오르는 담뱃대를 든 채, 아메트는 하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체온이 높아 따끈따끈한 어깨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아메샤 스펜타의 당주가 즐겨 피우는 담배는 고급품답게 일반적인 보급형 궐련과는 차원이 달랐다. 역하고 매캐한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고, 씁쓸하면서도 향긋한 내음이 묻어났다.
“하지 마.”
하제는 낮은 목소리로 불평했지만, 몇 번의 거부 끝에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결국 입맞춤에 응했다. 어둠 속에서 입술이 얽히며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아랫입술을 빨아들이고 혀를 상대의 입안 깊숙이 넣어 여린 살을 헤집었다.
“……착하다.”
집요하고 음탕한 키스 끝에 입술이 떨어졌다. 번들번들 젖은 아랫입술을 슬쩍 핥으며 아메트가 웃었다. 하제가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뭔 소리야?”
“계속 밀어내면 아예 네 혀에 독니를 박아서 입을 마비시켜 버릴까 했거든…….”
“미친 새끼.”
“그거 알아? 혀가 완전히 마비된 채로 잘못 굳으면, 질식사할 수도 있어. 제 혀가 기도를 틀어막아서. 재미있지 않아?”
“더럽게 재미없으니까 닥쳐.”
“그래……? 유감이군.”
아메트는 둘의 하반신을 느슨하게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치우며 하제 위에 올라탔다. 물 흐르듯 매끄럽고 농염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하제의 목덜미에 가볍게 이를 세웠다. 펄떡펄떡 건강한 동맥이 뛰는 살갗을 앞니로 긁고, 자국이 남도록 가볍게 빨아들였다. 그 와중에 그의 긴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들린 담뱃대는 유유히 연기를 피워 올렸다.
“아……!”
아메트는 하제의 몸 위로 죽 손가락을 그었다. 가슴과 배, 성기를 지나 아직 약간 젖어 있는 입구 위를 눌렀다. 긴 손가락이 엉덩이 사이를 질척하게 헤집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구멍은 아까까지만 해도 아메트의 성기를 한가득 물고 쭉쭉 빨아댔으면서, 그새 다시 단단하게 다물려 있었다.
입구 위를 더듬던 아메트가 느닷없이 안으로 손가락 두 개를 불쑥 밀어 넣었다. 흠뻑 젖은 것이 무색하도록 꽉 다물린 구멍은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를 간신히 삼켰다.
“정말이지 학습능력이 없는 구멍이야. 여기까지도 쓸데없이 주인을 닮았군.”
“흐윽, 읏. 아파!”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정도로 박아 댔으면 내 자지에 맞게 늘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응? 왜 매번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지……?”
하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저 새끼가 뭐라는 거지? 그는 아메트를 걷어차며 짜증을 냈다.
“그럼 네 좆 크기를 줄이든가, 네가 박히든가.”
허공에 휘두른 하제의 다리가 아메트의 손에 턱 잡혔다. 하필 저번에 한 번 부러졌던 쪽 발목이었다. 하제가 무심결에 흠칫 굳었다. 학습된 공포였다.
“여길 다시 부러뜨려 줄까? 다리를 한껏 벌리고 깔려서, 부러진 발목을 덜렁거리면서 박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렇지?”
“큭, 으윽……!”
아메트는 말끔히 나은 발목을 한 번 콱 깨물었다 놓으며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완전히 쑥 밀어 넣었다. 내벽은 좁았지만 덜 씻어낸 정액과 윤활유 따위로 미끄러웠다.
그는 검지와 중지를 벌려 구멍을 억지로 넓혔다. 뻑뻑한 구멍이 탄력 있게 벌어졌다. 손가락 틈으로 언뜻 붉은빛을 띤 안쪽 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하제의 안이 제 주인을 닮아서 다소 멍청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몇 번이나 다시 좆을 박아서 되새겨 주면 될 테니까.
구멍에 박혀 있던 손가락을 쑥 빼냈다. 그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하제의 입술 사이에 물렸다. 헐떡이던 하제가 얼떨결에 어설프게 장죽을 받아 물었다.
그는 하제의 허벅지를 잡아 넓게 벌리며 고개를 낮추었다.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고 번들번들 젖은 구멍에 망설임 없이 혀를 밀어 넣었다.
“헉, 하윽, 미친. 안 돼! 거기 건드리지, 마, 앗, 윽……!”
담뱃대를 물고 있느라 발음이 뭉개졌다. 그것이 오히려 묘하게 배덕했다. 아메트는 상대의 거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깊숙이 혀를 들쑤셨다. 뜨겁고 매끄러운 내벽의 감촉을 느끼며 안쪽을 찌걱찌걱 소리가 나도록 문질러 주었다.
하제의 신음에 흐느낌이 섞이기 시작할 무렵 아메트가 혀를 빼고 고개를 들었다. 구멍은 아까보다 확연히 흐물흐물 풀려 있었다.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할 거면, 하제야. 절제 없이 벌떡벌떡 서는 이 자지부터 어떻게 해야지. 뒤를 쑤셔주면 좋아서 발정 난 것처럼 질질 흘려대는 주제에.”
아메트는 흠뻑 젖은 입술을 혀끝으로 일부러 소리 나게 훑었다. 꼿꼿이 선 자신의 성기 끝에서 맑은 액체가 줄줄 흐르는 것을 발견한 하제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더 깊게 빨아 봐.”
아메트가 하제가 문 담뱃대를 툭툭 건드리며 명령했다. 하제는 옅게 헐떡이며 무심결에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씁쓸하고 그윽한 향이 가슴 안까지 확 밀려들었다.
“옳지……. 내 좆을 하도 못 빨아서 이것도 못 하려나 했더니…… 잘 했어.”
“시발, 그놈의 입 좀!”
하제가 분통을 터뜨리거나 말거나, 가느다란 흑색 장죽이 다시 아메트에게 되돌아갔다. 그 또한 한 모금 담배를 빨아들였다. 둘의 입술에 같은 향이 머물렀다.
아메트는 나른하게 연기를 내뿜으며 한 손으로 하제의 다리를 벌렸다. 잔뜩 성이 난 흉악한 물건이 고개를 치켜들고 꺼떡거렸다.
그는 기둥 아래쪽을 붙잡고 질척한 구멍 위에 느릿하게 귀두를 문질렀다. 큼직하고 단단한 귀두에 투명한 액체가 묻어 번들거렸다. 성기 끄트머리가 삽입될 듯 말 듯 구멍 위를 위협적으로 꾹꾹 눌러댔다.
“하제야.”
“왜.”
날 선 대답이 돌아왔다. 하제는 자꾸 가빠지는 숨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저 무시무시한 흉기를 받으려면 최대한 몸을 이완시키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아메트가 처박을 때마다 명치까지 쿵쿵 울려서 죽을 맛이었다.
“내게 입 맞춰 줘.”
“뭐? 돌았냐?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지랄이야. 박을 거면 빨리 박기나 해.”
“어서…….”
아메트가 반듯하게 세우고 있던 허리를 숙이며 몸을 낮추었다. 간격이 확 가까워졌다.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만을 고수하고 있는데도 특유의 미모는 어디 가지 않았다. 상대를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눈을 깜빡이는 것마저 요염했다.
하제가 먼저 아메트에게 입을 맞춘 적은 거의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화풀이를 하고자 입술을 물어뜯고 혀를 피가 나도록 씹은 경우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메트의 말을 듣는 순간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발목에 붕대를 감은 채 절뚝이며 도망치려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급하게 입술을 겹쳤던 그때.
가만히 눈을 감은 아메트는 평소와 다르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입안의 혀도 잠잠했다. 의식 없는 이의 입술을 강제로 빼앗던 그때의 감각이 너무도 생경했다.
“…….”
과거의 회상 위로 현재가 덧씌워졌다. 아메트가 하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제가 그의 입술을 깨물든, 혀를 송곳니로 으깨든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 모습이 저택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하제가 조금 인상을 쓰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사나운 눈매에 당황이 어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메트의 턱을 쥐고 끌어당겼다. 고개를 살짝 틀어 입을 맞추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메트는 조금 놀랐다. 절대 못 하겠다고 끝까지 버티거나, 억지로 시킨 입맞춤이라 눈 딱 감고 투박하게 달려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지그시 와 닿은 입술이 아메트의 입술을 부드럽게 갈랐다. 따뜻한 손이 턱을 좀 더 강하게 당겼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혀를 얽고 말캉한 입술을 머금었다 놓았다. 씁쓸한 담배 향이 뒤엉키는 입술 사이에서 맴돌았다.
하제의 키스는 다정했다. 그래, 이것은 다정이라 불러 마땅했다.
대체 그는 이걸 어디서 어떻게 익혔을까. 가문의 늑대 놈들과 친밀함의 표현을 가장하여 주둥이를 비비면서? 아니면 박연오와 수도 없이 혀를 섞으면서?
어느 쪽이든 결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아메트는 말없이 하제가 이끄는 대로 몸을 좀 더 낮추어 주었다. 가슴과 배가 맞닿고 두 남자의 상체가 완전히 겹쳐졌다.
귀두 끄트머리가 살짝살짝 입구를 쑤시다가, 결국 찔꺽 밀려 들어갔다. 내벽이 미끄덩하게 벌어지며 젖은 기둥을 버겁게 삼켰다.
“헉…….”
입을 맞추던 와중에 하제가 짧게 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아메트는 미끌미끌한 안쪽을 음미하며 허리에 힘을 주어 멈추지 않고 쑤욱 성기를 박아 넣었다. 성기가 점점 깊이 들어설수록 벌어진 하제의 허벅지가 움찔움찔 경련하며 움츠러들다 결국 아메트의 허리에 감겼다.
“흐으, 아, 앗.”
아메트의 성기는 배 안을 가득 메운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한껏 밀어 넣은 채로 내벽을 꾹꾹 누르듯 미온적으로 들썩일 뿐이었다.
차라리 빼냈다가 다시 밀어 넣으며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저 안까지 좆을 처박아 놓은 채 가만히 있으니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제가 괴롭게 밭은 호흡을 흘렸다.
“엄살이 심하군. 다 넣지도 않았는데.”
“닥쳐.”
“적응하는 데 또 한참 걸리겠어. 그냥 이대로, 한숨 더 잘까…….”
아메트가 게으르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한 팔로 하제의 허리를 고쳐 안았다. 몸이 덜컥 흔들리며 성기가 배 안 저 깊은 곳을 푹 쑤셨다.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으, 윽!”
내벽이 순간 확 움츠러들었다. 아메트는 목 안으로 낮게 웃으며 하제의 옆에 고개를 묻었다. 뺨이 서로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하제의 위에 올라탄 채, 그의 몸이 점차 느슨하게 이완되었다.
“지, 진짜 자게?”
“왜……? 난 이대로도 좋은데.”
당황한 하제가 그를 밀어내려 했다. 아메트는 몇 번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그 와중에 허리는 자잘하게 툭, 툭 올려붙이며 배 안에 미지근한 자극을 가했다.
“미친, 변태 새끼. 자빠져 잘 거면 좆이나 빼! 흐읏, 헉, 빨리.”
하제가 끙끙대며 그를 타박했다. 아메트가 시끄럽다는 듯 슬쩍 인상을 쓰더니 들고 있던 담뱃대를 도로 그에게 대뜸 물렸다.
거대한 성기를 쑤셔 박아 놓고 살짝살짝 애태우듯 움직이기만 하니, 역으로 더 열이 올랐다. 내벽이 한껏 민감해졌다. 성기 기둥에 돋은 핏줄이며 귀두의 윤곽까지 모두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느릿느릿 들썩이던 와중에 아메트의 성기가 어딘가를 진득하게 꾸욱 눌렀다. 작살에 찔린 물고기처럼 성기에 꿰뚫린 채 힘없이 버둥거리던 하제의 몸이 그 순간 딱 굳었다. 엉덩이가 상대방 쪽으로 퍽 튀어 오르며 성기를 힘 있게 베어 물었다. 아슬아슬하게 입술 가장자리에 걸려 있던 장죽이 시트 위에 툭 떨어졌다.
“아…… 앗, 흐윽!”
“시끄러워……. 하제야. 잘 수가 없잖아.”
아메트의 서늘한 손이 하제의 목덜미를 쥐었다. 금방이라도 목을 조를 듯이. 손은 찬찬히 내려와 심장 위를, 허리를 매만지다가 골반을 단단히 붙잡았다.
“네 몸은 따뜻하지 않은 곳이 없어. 얼굴도, 손도, 목도, 내장 안도……. 그래,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이렇게 뜨거운 게 펄떡이면서 박아달라고 조르니 어쩔 수 없지.”
내가 언제 박아 달랬어, 오히려 빼라고 했지.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 아냐. 어이가 없어진 하제가 반박하려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의 항변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하제의 골반을 단단히 붙든 채, 아메트가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다시 처박았다. 퍼억! 굵직한 기둥이 내벽을 가르며 꽂혔다.
“헉, 흐윽!”
하제가 고개를 휙 젖혔다. 그는 저도 모르게 등 아래 깔린 시트를 쥐어뜯었다. 빠드득 소리가 나도록 천을 움켜잡을지언정 상대에게 매달리기는 싫었다.
빠르게 드나드는 성기가 쉴 새 없이 안을 찧어댔다.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격렬했다. 성기가 배 안을 짓이길 기세로 퍽퍽 처박힐 때마다 하제가 드문드문 끊긴 신음을 토했다.
“힘 빼……. 구멍이 너덜너덜해져서 피를 흘리는 게 취향이라면, 그대로 박아주겠는데.”
아메트가 손을 들어 자신의 성기를 힘겹게 문 엉덩이를 철썩 후려쳤다. 하제가 고개를 뒤척이며 흐느꼈다.
“아, 아파. 아파…….”
“칼을 맞고서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던 주제에…… 이게 아파?”
“으, 흑, 으읏, 아파.”
하제는 벌겋게 달아오른 구멍을 벌리며 성기가 찌걱찌걱 드나들 때마다 한껏 벌어진 허벅지를 벌벌 떨었다. 이렇다 할 저항조차 못 하고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열기에 젖어 찡그린 눈매가 야했다. 그 모습이 가학욕을 더욱 자극한다는 사실은 왜 모를까.
아메트는 하제의 팔목을 잡아 위로 확 꺾으며 그의 목덜미를 베어 물었다. 살갗에 송곳니를 박아 긁어내렸다. 연한 피부가 금세 찢어지고 피가 맺혔다. 흘러나오는 피를 남김없이 빨아먹으며 허리를 퍽퍽 쳐올렸다.
침상 위에서 두 짐승이 뒤얽혔다. 아메트는 하제를 품 안에 단단히 옭아맸다. 아무 데도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둔 채 마구잡이로 성기를 쑤셔 넣었다. 이대로 숨통을 조여 질식시킬 셈인가 싶었다.
“흐으, 윽……! 아, 그만, 잠깐만, 안 돼. 아메트! 잠깐, 흣, 으응.”
“더, 더. 하제야. 하아, 읏, 더 울어야지…….”
성기를 물고 있는 입구에서 투명한 액체가 줄줄 흘렀다.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 시트를 적셨다. 젖은 기둥이 쫀득한 구멍을 찢을 듯이 벌리고 드나들 때마다 찔꺽, 찔꺽, 낯 뜨거운 소리가 났다.
하제의 다리가 쾌감을 못 이겨 버둥거렸다.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저항하다가 결국 아메트의 허리를 힘껏 감았다. 발뒤꿈치로 단단하게 근육이 잡힌 엉덩이를 꾹꾹 누르며 사정을 재촉했다.
귀두만 남기고 쑥 빠져나갔던 기둥이 다시 퍼억! 하고 처박혔다. 폭력적인 쾌감이 아랫배에서부터 확 퍼졌다. 몇 번이고 귀두로 짓이겨진 내벽이 저릿저릿했다.
“아으윽!”
하제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시야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는 옆에 보이는 아메트의 팔뚝을 다짜고짜 물어뜯었다. 창백한 피부에 핏기가 맺혔다. 둘의 배 사이에서 쓸리던 하제의 성기가 왈칵 정액을 토했다.
“허억, 아, 흑……. 박지 마, 가, 가고 있잖아. 큭!”
“그래서……?”
“으, 흐윽, 씨발새끼.”
아메트는 하제의 골반을 쥐어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며 격렬하게 안을 치댔다. 가쁜 숨소리가 오가고 진득한 액체가 퍽퍽 튀었다.
절정에 달한 내벽이 잔뜩 조여들어 성기를 우물우물 씹었다. 벌겋게 부은 구멍이 한계까지 벌어져서는, 성기를 넣었다 뺄 때마다 입구 주변의 속살이 움찔움찔 밀려 나오고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다리, 더, 벌려, 읏…….”
“하아, 흑, 으윽!”
쾅, 질척한 성기가 배 안에 틀어박혔다. 아메트는 하제의 귓바퀴를 발갛게 되도록 자근자근 씹으며 사정했다. 골반이 뻐근하게 아플 정도로 서로 하체를 맞붙인 채였다.
내장 저 깊은 곳에 정액이 꾸역꾸역 흘러들었다. 아메트가 가볍게 인상을 썼다. 긴 눈매 아래 드리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곧바로 정액 범벅이 된 성기를 쑥 빼냈다. 아직 사정이 끝나지 않았는지 귀두에서 희뿌연 액체가 질질 흘러 엉덩이 골에 묻었다. 그는 하제를 휙 뒤집어 엎드리게 하고, 뒤에서부터 다시 삽입했다. 흥건하게 젖은 구멍을 열고 자지가 박혀 들어갔다.
“흐으……!”
하제가 이를 악물며 힘겹게 신음했다.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정사에 시달리느라 노란 눈동자가 탁해져 있었다. 한 번 사정했는데도 아메트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 한 번뿐이겠는가, 그들은 이미 조금 전에도 실컷 뒹굴며 정액을 싸지른 전적이 있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참 징그러울 정도로 절륜한 놈이었다.
아메트는 거칠게 자지를 꽂아 넣으며 팔을 뻗어 하제의 뺨을 쥐었다. 쾌감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감상하다가, 예고도 없이 달려들어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읏, 흐읍……. 헉.”
반사적으로 아메트를 밀어내던 하제는 결국 힘이 빠졌는지 입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받아들였다. 젖은 혀가 뒤엉키고 타액이 주르르 흘렀다. 그대로 뜨거운 내벽에 물려 있던 성기를 잡아 뺐다. 좁은 안을 벌리고 다시 밀어 넣자 안쪽이 움찔하더니 탄력적으로 성기를 쥐어짰다.
아메트는 하제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아랫도리를 바짝 붙였다. 하제가 으르렁대며 욕설을 토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꽉 안고 입술을 겹쳤다.
몇 년 전 영경의 길거리에서, 먼발치에 선 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를 하제는 알지 못할 것이다. 알아챘다 해도 결코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언뜻 스쳐 지나갔던 이와 하제를 죽이는 건 자신이 될 거라고 선언한 이가 동일인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