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이에요.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이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아 가며 아빠가 지어준 내 이름이었고, 부모에게 한 번도 불려보지 못한 이름이기도 했다. 이름을 등록하고 돌아오던 길에 두 분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내 꿈은 할머니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였다. 엄마 아빠 대신 날 거둔 할머니는 김밥 장사로 내 뒷바라지를 하셨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해 주셨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족, 사랑하는 할머니는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겨울밤, 꽁꽁 언 골목길에서 돌아가셨다.
미끄러운 오르막길을 오르시다가 넘어진 할머니는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었다. 뇌출혈이었다. 우연히 골목길을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구급차를 불렀지만, 너무 늦게 발견했다. 유난히 춥고 인적 하나 없이 적막했던 밤, 골목길 구석에서 한 시간 내내 혼자 얼어붙은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고아였던 어머니와 유복자로 자란 아버지, 그리고 혼자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를 거둔 건 얼굴도 몰랐던 삼촌이었다. 아버지와는 배다른 형제였던 그는, 갑자기 나타나 내 후견인을 자청했다. 절차랄 것도 없이 간단히 내 보호자가 된 삼촌과는 얼마간 돌아가신 할머니의 집에서 같이 지냈다.
삼촌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잘 웃었고, 슬플 때는 술을 마셨으며, 술을 마시고는 항상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환하게 웃으며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삼촌을 마주할 때마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러는 대신 얼른 일어나 삼촌 손에 든 비닐봉지를 받아 들며 헤헤 웃었다. 그러지 않으면 주먹에 맞아 나동그라진 채 발길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사실 헤실헤실 웃으며 비위를 맞춰도 술에 취한 삼촌은 나를 샌드백 삼아 때리곤 했다.
삼촌의 샌드백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정확히 석 달 뒤였다. 삼촌은 엄마와 아빠가 남긴 보험금, 그리고 할머니의 유산을 다 정리하고 집을 나갔다. 삼촌이 돌아오지 않은 첫날 밤은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불안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다. 둘째 날부터 잠들어 버리는 시간이 빨라지다가 닷새째 밤에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엿새째 아침,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할머니의 집을 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기가 개발지구로 확정돼서 곧 허물릴 거라는 둥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해 가며 세숫대야 따위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중에서 가장 늦게 문을 열고 들어온 키가 크고 덩치도 큰 아저씨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해를 등지고 앉은 아저씨의 얼굴은 온통 까맣기만 했다.
‘형님, 애는 놓고 튄 것 같은데요.’
‘전에 살던 할마시가 죽기 전까지 끼고 살던 애 같은데.’
‘양아치 새끼, 그래도 애는 챙길 줄 알았더만, 홀라당 다 먹고 튀어 버렸네.’
‘노름꾼 한두 번 보냐? 씨벌.’
‘애는 어떻게 할까요?’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덩치들을 뒤에 두고 말이 없던 아저씨가 손을 뻗었다. 내 얼굴보다 커다란 손이 나를 때리는가 싶어 몸을 잔뜩 움츠린 순간 딱딱한데 따뜻한 뭔가가 내 뺨을 쿡 찔렀다. 아저씨의 손가락이었다.
‘이름?’
굵은 목소리는 내가 살면서 들어본 성인 남자의 목소리 중 가장 부드러웠다.
‘…….’
‘애가 어디 좀 모자란가?’
‘야, 꼬맹이. 형님이 물으시잖아. 이름 뭐냐고.’
‘형님, 애가 좀 띨띨한 것 같은데요?’
‘막내야, 근처 보육원 좀 알아봐라.’
‘뭘 또 보육원까지. 걍 놔두면 알아서 하겠죠.’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내 주변으로 하나둘 몰려드는 덩치들이 괜히 무서워서 시선을 내리는데 또 한 번 쿡, 볼을 찔렸다. 이번엔 반대쪽 볼이었다.
‘이름.’
화난 것 같은 목소리에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든 찰나 자리를 옮긴 햇빛이 아저씨의 얼굴을 비췄다. 남자 어른 하면 나는 늘 도깨비보다 무서운 술 취한 삼촌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생각했는데, 탤런트 같은 얼굴을 한 아저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아저씨의 눈길을 느꼈다. 이번엔 볼따구가 아닌 다른 데를 찔릴 것 같아 두 손으로 최대한 얼굴을 가리며 답했다.
‘라…일락이요.’
아저씨의 등 뒤에서 풉- 하고 웃음소리가 터졌다.
‘이름 한번 졸라 쌈박하네.’
‘꼬맹이 어무니 아부지가 담배를 허벌나게 좋아했는갑다.’
‘지을 게 없어서 애 이름을 담배 이름으로 짓냐? 누가 노름꾼 새끼 집구석 아니랄까 봐. 안 봐도 훤하다 저놈 새끼 싹수는.’
‘꽃이에요.’
내 항의에 한마디씩 거들던 덩치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시커먼 성인 남자들의 사나운 눈길에 더럭 겁을 집어먹었지만, 내 이름은 꽃이었다. 할머니가 예뻐해 주고, 엄마 아빠가 마지막으로 주고 간 선물이었다.
‘꽃이에요. 내 이름은.’
‘허.’
‘저놈 시키.’
‘성깔 보게?’
‘코딱지만 한 게.’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성큼 다가오려던 덩치들이 우뚝 멈춰 섰다. 주변에서 뭐라 떠들든 찌를 곳을 찾아서 내 얼굴을 꼼꼼히 살피던 아저씨가 느긋하게 입을 연 탓이었다.
‘그래.’
쿡, 결국 아저씨의 손끝에 다시 찔렸다. 손바닥으로 가리느라 짜부가 된 얼굴 중에서 유일하게 튀어나온 입술이었다. 볼따구보다는 약하게 찔렸지만, 생각지도 못한 자리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딸꾹질하는 나를 재밌다는 듯이 쳐다본 아저씨가 피식 웃었다.
‘잘 어울리네.’
‘…….’
‘예쁘고.’
아저씨는 보육원 앞에 날 내려 주었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차 문을 닫아준 아저씨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 이름은 알아서 뭐 하시게.’
‘나중에… 꼭 은혜를 갚으려고요.’
‘…….’
‘할머니가 그랬어요. 도움을 받았으면 꼭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요.’
‘내가 널 도운 것 같아?’
‘네. 삼촌이 날 버렸다는 걸 알려 주셨잖아요.’
그리고 그 집에 날 혼자 두지 않고 보육원까지 데려다주었다. 감정표현이 풍부한 삼촌은 변덕도 심했다. 변덕스러운 성격대로 언제든지 마음을 바꿔 갑자기 돌아올지도 모르는 삼촌과 더는 같이 살지 않게 해 주었다.
‘어떻게.’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이려던 아저씨가 다시 물었다.
‘은혜는 어떻게 갚으시려고?’
다행히 쉬운 질문이었다.
‘아저씨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 줄게요.’
불이 붙지 않은 담배꽁초를 어느 순간 툭 떨어뜨린 아저씨가 구둣발로 멀쩡한 담배를 짓이겼다.
‘다 크면 기억도 못 할 텐데?’
‘할 수 있어요. 저 머리는 나빠도 기억력은 좋아요. 우리 할머니 생일, 우리 엄마 아빠 생일도 다 기억해요.’
나를 내려다보는 아저씨의 얼굴에 다시 그늘이 졌다. 탤런트 같은 얼굴이 잘 안 보여서 조금 아쉬웠다.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황금산.’
불쑥 이름을 알려준 아저씨가 고개를 슬쩍 틀었다. 덕분에 햇빛도 방향을 바꿔 아저씨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늘보다는 햇빛이 더 잘 어울렸다. 그래서 이름도 황금산인가 보다. 아저씨가 알려준 이름을 곱씹는데 어느새 익숙해진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은혜. 그거 나중에 말고 지금 갚아라.’
‘정말요?’
‘그래. 빚은 당장 갚아 버릇해야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지금 당장 갚을 수 있다는 말이 기뻐 아름드리나무 같은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발꿈치를 들어 아저씨의 눈을 가까이 마주할 수만 있다면 발가락까지 세웠을 터였다. 그런 내가 못마땅했는지 잠시간 날 쳐다본 아저씨가 입매를 끌어 올렸다. 분명 화가 난 것 같았는데. 왜 웃는지 알 수 없어서 눈치를 보다가 그래도 웃어 주는 게 좋아서 나도 따라서 웃었다.
‘잘 살고. 다신 보지 말자.’
‘…네?’
‘원하는 건 다 해 주겠다는 말도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말고.’
어느새 웃음기를 지운 아저씨가 성가신 일을 마친 사람처럼 돌아섰다. 아저씨만큼 커다란 차는 요란한 먼지를 날리며 좁은 길을 달려 나갔다.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골목길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저씨가 밟고 간 담배꽁초가 보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저씨에겐 담배꽁초나 나나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오늘 처음 본 나 같은 건 담배꽁초만큼의 쓸모도 없었다.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짓눌린 담배꽁초를 내려다보다 허리를 숙여 주워들었다. 쓰레기통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보육원 문을 열고 나오는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빠보다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는 가까이 다가와 ‘안녕?’ 인사를 건네며 자신을 원장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 * *
종례가 끝나자마자 아이들 틈에 섞여 교실을 빠져나왔다. 고1이나 되고서도 체구가 작은 덕에 덩치 큰 아이들 뒤에 잘 숨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하교하는 학생들로 북적북적한 비탈길을 달리다가 거듭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 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학생이 많은 길만 골라 달리느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빠른 길을 택할 수는 없었다. 덩치 큰 애들만 쫓아다니며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야! 라필터!”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걸음을 빨리했다.
“씨발, 라필터! 야! 야!”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목소리에 주변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아이들의 틈새를 뚫고 요리조리 비탈길을 빠져나갔다.
“야! 라일락 이 개새끼야! 거기 안 서!”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그렇다고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은 절대 붙잡히면 안 되는데. 간신히 비탈길 끄트머리를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려는 순간 가방을 턱 잡히고 말았다.
“컥!”
뒤에서 가방을 잡아챈 덕수가 헤드록을 걸며 쌍욕을 뱉었다.
“야, 이 씨발아 내가 서라고 했냐, 안 했냐? 좆만 한 새끼가 씨발! 사람을 며칠이나 좆뱅이 치게 만들어? 내가 씨발 좆같은 네 새끼 때문에! 씨발! 야! 야! 라필터 너 이 새끼! 진짜 죽고 싶냐?”
“켁, 켁. 아, 아니…, 나, 나 숨을 못 쉬겠….”
두툼한 덕수의 팔을 탁탁 치면서 발버둥 쳐도 한참 헤드록을 풀어 주지 않아서 눈앞이 팽글팽글 돌았다. 정말 더는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팔다리가 축축 늘어질 지경이 되어서야 팔뚝을 푼 덕수가 그대로 내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놔, 놔줘. 내가, 내가 걸어갈….”
“입 안 닥치냐?”
퍽-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후려갈긴 덕수가 힐긋힐긋 쳐다보는 아이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내며 인파를 빠져나갔다. 도움을 청하려 주변을 둘러봤지만, 눈이 마주친 아이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덕수는 선생님들도 껄끄러워하는 퇴학생이었고, 나는 보육원 출신 은따였다.
물론 은따가 된 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덕수 같은 애들이 자꾸 들러붙어서 다른 애들이 내게 다가오지를 않았다. 나는 맞는 것도 싫고,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것도 싫어서 덕수 같은 애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술도 처음 마셔봤고, 담배도 처음 피워 봤다. 그런데 술을 한 잔 마시고는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기도 전에 알레르기로 식도가 부어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학폭위가 소집돼서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 일로 덕수 패거리는 정학을 받았다. 덕분에 몇 대 얻어맞긴 했지만, 정학당하고 바빠진 덕수 패거리와는 더 안 봐도 돼서 좋았다. 그렇다고 없던 친구가 생기진 않았고, 정학이 영원한 것도 아니었다.
덕수 패거리가 학교로 돌아오자 자연스럽게 또 같이 어울려 다녔다. 이전처럼 억지로 술을 먹이거나 담배를 물리진 않았는데, 내가 간혹 말을 안 들을 때 혼내는 용도로 썼다. 입을 크게 벌리게 하고 내 앞에서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등, 뭐 그런 것들이었다. 괴롭긴 했지만, 식도가 부을 정도는 아니라서 참을 수 있었다.
그러다 한 달도 안 돼서 다른 학교 애들이랑 패싸움을 크게 벌인 바람에 덕수 패거리는 퇴학당했다. 그래서 다시는 걔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덕수 패거리는 퇴학당하고도 이틀에 한 번꼴로 나를 찾아왔다. 오늘이 벌써 세 번째였다.
“시, 싫어. 나 여, 여기 안 탈래….”
“씨발, 병신이 말 똑바로 안 하냐? 시, 싫어. 나 여, 여기 안 탈래? 이게 확! 한 대 더 처맞기 전에 얼른 타라?”
버텨 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괜히 한 대 더 얻어맞고 좁은 차에 구겨지듯 올라탔다. 덩치가 산만 한 덕수까지 뒷좌석에 올라타자 안 그래도 좁은 내부가 꽉 차고, 경차 한쪽이 기우뚱 내려앉았다. 맞은편 문에 깔리듯이 붙어 앉는데,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백미러로 나를 쳐다봤다.
“쟤냐?”
“네, 형님!”
“실물이 더 낫네.”
아예 뒤돌아 앉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자는 많아야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덕수가 정학당했을 즈음에 조직에 스카우트 됐다며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던 적이 있는데, 깍듯한 걸 보니 그때 알게 된 사람인 것 같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세모꼴 눈이 무서워서 슬그머니 창밖을 돌아보았다.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을 구경하는 척하다가 힐긋 차 문을 훔쳐보았다. 언젠지도 모르게 잠겨 있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덕수 패거리가 첫 번째로 찾아왔을 땐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술집 입구에서 덕수가 한눈판 사이 도망쳤고, 두 번째로 찾아왔을 땐 밤늦게까지 음악실에 숨어 있다가 당직 선생님 손에 끌려 복도를 빠져나왔다. 보육원까지 바래다준다고 해서 냉큼 선생님의 차에 올라탔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길에 문 뒤에 숨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덕수 패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학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구석에 웅크려 있다가 당직 선생님의 눈총을 받았다.
무슨 일이냐는 당직 선생님한테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는 눈초리에 실없이 웃으며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피곤하고 귀찮은 얼굴로 더 캐묻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왜 거기에 있었냐며 혼내는 당직 선생님한테도, 보육원 선생님한테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하교 시간을 놓쳤다고 둘러댔다. 거짓말을 들키면 어쩌지 걱정이 됐으나, 두 분 다 믿어줘서 다행이었다. 조금 죄책감도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에 숨어 있는 대신 빨리 도망가기로 했다. 애들 틈에 섞이면 잡히지 않을까 싶어 종례가 끝나자마자 뛰쳐나온 건데. 덕수는 시력이 좋은 건지 날 잘도 찾아냈다. 쪼끄만 게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욕할 때는 언제고. 괜스레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우냐?”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키득거리며 묻길래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래야지. 이왕 울 거면 물주 앞에서 울어야 한 푼이라도 더 받지. 짜식, 생긴 것도 그렇고. 타고났네, 타고났어.”
운전석 남자가 미심쩍은 얼굴로 끼어들었다.
“저런 게 진짜 돈이 됩니까?”
“너 형 못 믿냐? 저런 거 밝히는 새끼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해. 짭새들 눈도 피하고 안전빵으로 돈도 더 뜯어내고. 일타쌍피! 오키?”
“아무튼 전 형님만 믿습니다? 이번에 우리 구역만 상납금 못 채웠다고요. 이번 주 안에 다 못 채우면 저도 형님도 끽- 아시죠?”
“새끼, 쫄기는. 됐어. 물주도 다 잡아놨으니까 넘기기만 하면 돼. 신삥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그러게 저 쪼그만 걸 왜 한 번에 못 잡아 와서 사람 뺑이를 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서 죄송하다고 외치는 덕수의 이마빼기에서 삐질삐질 땀이 흘렀다. 투실투실한 뺨이 번들거렸고, 두툼한 목둘레를 감싼 티셔츠 라운드는 벌써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벌겠다. 덕수도 저 형님들이 무서운 것 같았다. 무서우면 같이 안 놀면 되는데. 중얼거리다 푹 고개를 숙였다. 나도 무서워서 덕수 패거리랑 같이 안 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나저나 다른 애들은 어딨지? 차에 익숙한 얼굴은 덕수뿐이었다. 스카우트는 덕수만 된 건가? 걔넨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그랬는데. 나는 싫다고 그랬다가 머리가 띵하도록 얻어맞았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데. 나는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은데. 울면서 하소연했다가 한 대 더 맞았다.
덕수 패거리는 다 살집이 있고 덩치가 커서 손도 솥뚜껑만 했다. 그 손으로 툭하면 내 머리를 때리고, 뺨을 치고, 헤드록을 걸고, 허리가 부서질 정도로 팔을 조여 힘자랑을 했다. 아프고 살짝 기분이 나빴는데 그런 티를 내면 일부러 더 세게 건드려서 그냥 웃으면서 넘겼다.
분위기가 심각해지면 어쩐지 걔들의 장난도 더는 장난이 아니게 될 것 같아서, 나는 괜히 볼멘 목소리로 장난치지 말라며 핀잔도 주고 말려도 보고 화내기도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 걔들은 기분이 좋아져서 날 더 안 건드렸다.
‘삐졌냐?’
은근히 달래며 먹던 햄버거를 입에 물려 주기도 했다.
‘고아원에 있으면 이런 거 먹기 힘들지? 많이 먹어라?’
고아원 아니고 보육원인데.
‘햄버거 먹어보긴 했냐? 처음 먹어보지? 새끼, 고맙다는 말도 없이 처먹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간식으로 나오는데. 일요일엔 피자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고기도 구워 먹었고, 짜장면도 시켜 먹고, 생일엔 원생 한 명도 빠짐없이 미역국과 케이크를 먹었다. 그런데 왠지 사실대로 말하면 화를 낼 것 같아서 나는 못 들은 척 덕수가 먹다 남은 햄버거를 해치웠다.
‘배 속에 그지가 들어앉았냐? 누가 고아 새끼 아니랄까 봐 존나 추접스럽게도 먹네.’
아닌데. 우리 할머니는 나 먹는 게 제일 예쁘다고 했는데. 먹던 거 먹으랄 때는 언제고. 덕수 패거리들이 밉고 보기 싫어서 일부러 먹는 데만 집중했다. 그게 또 덕수의 성질을 건드렸는지, 아니면 내 속마음을 알아챈 건지.
‘야, 라필터.’
목소리를 잔뜩 깔고 부르기에 쭈뼛쭈뼛 시선을 들었다. 화를 낼 줄 알았던 덕수가 외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곤 감자튀김을 한 주먹 집어서 내 앞에 내밀었다.
‘먹어라.’
아니, 그건 화를 내는 게 맞았다. 만약 먹기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면 감자튀김을 내 얼굴에 던지고 머리를 후려쳤을 게 분명했다. 감자튀김은 느끼해서 싫었다. 더구나 덕수는 손을 잘 씻지도 않았다. 안 먹는다고 고개를 저으려는데 덕수가 유리 벽 너머를 가리켰다.
‘어? 저기 그지 새끼들 지나간다.’
덕수가 그렇게 부르는 애들은 정해져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먹던 햄버거도 내려놓고 덕수를 노려봤다. 그러자마자 덕수가 손을 들어 올리며 윽박질렀다.
‘이게 확! 얻다 대고 눈을 부라려?’
‘너 진짜 나빠.’
‘뭐 이 새끼야?’
‘너 진짜 나쁘다고!’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냅다 질렀는데 덕수가 킥-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앉은 패거리도 뭐가 웃긴지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이해가 안 돼서 걔네들을 돌아보는데 덕수가 움켜쥐고 있던 감자튀김을 다시 내 앞에 내밀었다. 한 번 꽉 쥐었다가 놓은 바람에 형태가 다 일그러져 있었다.
‘먹으라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프긴 해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예전처럼 효과가 있었다.
‘아니면 저 그지 새끼들, 아니, 너 고아원 동생들 불러다 먹으라고 할까? 환장해서 달려들겠지? 이거 줄 세워야 되는 거 아니…,’
덕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뻗어 감자튀김을 집어 먹었다. 와구와구 먹는 나를 구경하던 패거리 중 하나가 휴대 전화를 꺼내 영상을 찍었다. 그제야 만족한 덕수가 두어 번 더 감자튀김을 움켜쥐었다가 내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짜식, 그러게 편하게 먹으라니까? 없어서 못 먹고 다니는 거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어디서 센 척이냐?’
덕수 손에서 짓이겨진 감자튀김을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주워 먹었다. 그러는 내내 휴대 전화를 들이밀고 있던 패거리 중 하나가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손으로 덕수가 케첩 봉지를 뜯고 있었다.
‘씨발, 넌 감자튀김 한 번도 못 먹어 본 걸 이렇게 티 내냐? 내가 진짜 쪽팔려서 너 같은 그지 새끼랑 같이 다니다가도 빡이 쳐요, 빡이. 감자튀김을! 엉? 케첩도 없이 먹는 빡대가리가 씨발 여기 있네? 너 어디 가서 나랑 아는 사이라고 주둥이 털고 다니기만 해 봐? 콱! 씨.’
그럴 일은 죽어도 없을 텐데,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
‘안 먹어?’
‘…나 감자튀김 다 먹었어.’
‘씨발, 케첩을 안 먹었잖아! 케첩을!’
‘…….’
‘저 그지 새끼들 불러? 어?’
‘그지 새끼들 아니야.’
‘아아~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처먹어라?’
한쪽 귀를 후비며 손을 까닥이는 덕수를 노려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새끼. 진짜 나쁜 애들이었다.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두 눈을 크게 뜨며 덕수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입술을 아- 하고 크게 벌렸다. 패거리들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덕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입에 케첩을 쭉쭉 짜 넣기 시작했다. 목구멍으로 바로 쏟아지는 시큼한 케첩이 목젖을 건드려서 기침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다 받아먹었다.
‘맛있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 먹인 덕수가 히죽거리면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맛없었다. 내가 먹은 것 중에 최고로 맛없었다. 술보다도 더.
‘하여간 쪼끄만 게 성깔은.’
손끝으로 내 이마를 툭툭 밀어젖힌 덕수가 내 앞에 콜라 컵을 놓았다.
‘이것도 먹어라.’
나는 덕수 패거리 앞에서 빨대로 뭔갈 먹는 게 싫었다.
‘네가 안 먹어 봐서 모르는 것 같은데, 원래 햄버거랑 감튀에 콜라 세트는 국룰이야. 먹으라니까?’
이번에도 동생들 운운할까 봐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덕수가 그만 먹으라고 할 때까지 쪽 빨아 먹었다. 콜라가 너무 톡 쏴서 목구멍이 다 따가웠다. 그만 먹으라는 말이 없어서 숨도 못 쉬고 콜라를 빨아 먹는데 앞에서 느닷없이 쌍욕이 쏟아졌다.
‘씨발, 누가 라필터 아니랄까 봐. 존나 이름값 하네, 좆밥 새끼.’
저런 게 싫었다. 내 이름은 꽃인데. 덕수는 맨날 싸구려 담배 취급을 했다. 존나 잘 빨게 생겼다면서 나를 라필터라고 부르고 담배를 입에 물렸다. 응급실에 실려 가고 난 뒤에는 담배 대신 빨대나 막대사탕, 하드를 입에 물렸다.
나는 음료수도 먹기 싫었고, 사탕도 먹기 싫었고, 하드도 먹기 싫었다. 그런데 덕수는 싫다는 내게 억지로 무언가를 물리고는 재밌어했다. 순간 참지 못하고 싫은 티를 냈지만, 결국엔 나도 웃으면서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다 장난으로 끝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웃으면 장난으로 끝낼 수 있을까? 앞에 앉은 형님들한테 저보다 더 겁먹은 것 같은 덕수를 훔쳐보다 시커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운동화에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가 밟혔다. 아무렇게나 던진 과자 포장지, 뭐가 묻었는지 끈적끈적해 보이는 비닐봉지, 구겨진 담뱃갑, 얼음이 녹아 출렁거리는 일회용 컵 등, 낡은 차 바닥은 쓰레기통이나 다름없었다.
운동화 지난주에 빨았는데…. 덕수한테 쫓기느라 그새 더러워진 운동화에 다른 게 묻을까 봐 발끝을 뒤로 뺐다. 실은 뭘 잘못 밟았다가 소리를 내 형님들의 주의를 끄는 게 더 무섭기도 했다.
“나 집에 가고 싶어….”
먼저 차에서 내린 형님들이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동안 덕수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 틈을 타 덕수에게 애원하듯 부탁했다.
“덕수야, 나….”
“입 닥치라고 했다? 씨발, 집 같은 소리 하네, 엄빠도 없는 그지 새끼가.”
“나 거지 아니라고 했잖아. 엄마 아빠도 있어.”
“눼눼~ 븅신 새끼. 일찍 뒈진 것도 엄빠라고. 씨발, 넌 최소한의 양심이란 것도 없냐? 울 엄빠가 낸 세금으로 처먹고 다니면서 씨발, 이깟 일도 못 해 줘?”
자기도 벌벌 떨면서. 그리고 우리 보육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거 아닌데. 원장 쌤이 후원해 주는 데가 따로 있다고 했는데. 자기 돈도 아니면서. 엄마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면 나는 아예 엄마 아빠가 없는 거야? 돌아가신 분한테 뒈졌다고 그러는 게 어딨어.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덕수를 노려보다가 머리를 들이받았다.
“으악! 야! 야 이 개새끼야! 이리 안 와?”
이마를 부여잡고 허우적거리는 덕수의 손을 피해 차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아까 형님들이 내릴 때 안 잠긴 걸 확인해두길 잘했다. 들은 척도 안 하고 내빼려는데 코앞으로 부앙-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식겁해서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 뒷목을 턱 붙잡혔다. 운전석에 앉았던 남자였다.
“이것 봐라?”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한 대 칠 듯이 내려다보는 남자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여태 통화 중이던 조수석 남자가 붙잡힌 나를 돌아보곤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왜 저렇게 웃는 사람들은 꼭 나를 때리거나 괴롭힐까.
형님들에게 코피가 나도록 싸대기를 맞은 덕수에게 질질 끌려 올라간 곳은 4층 당구장이었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낡은 당구장엔 마르거나 배불뚝이거나, 민머리거나 장발인 아저씨들이 큐대를 들고 당구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를 대놓고 쳐다보는 눈길에 주눅이 들어 뒷걸음질을 치려는데 덕수에게 뒤통수를 맞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건에 흠집 나면 안 된다는 형님들의 경고에 덕수는 내 얼굴 대신 뒤통수만 때리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4층으로 올라오는 내내 내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눈동자를 굴릴 기미만 보여도 사정없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프고 화가 났지만, 나를 때리는 덕수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덕수가 맞은 건 내 잘못도 아닌데, 꼭 내 잘못 같았다.
“빨리 안 걷냐? 씨발아?”
머뭇거리는 사이 또 뒤통수를 맞았다. 그 반동으로 걸음을 옮기며 기침을 참았다. 담배 연기를 너무 많이 들이쉬어서 목구멍이 간질간질했다. 이러면 안 좋은데. 핑 도는 눈물을 꾹 참고 형님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당구장 구석에 처박힌 작은 사무실이었다. 여기도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오려는 기침을 참으며 형님들 앞에 섰다.
소파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은 두 형님이 각자 담배를 꺼내 물며 불을 붙였다. 조수석 남자의 불은 운전석 남자가 붙여 주었다. 덕수는 경비견처럼 출입구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너는 미끼만 하라는 거야, 미끼.”
4층을 올라오는 내내 들은 말이었다. 4층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오는 내내 걸걸한 형님들의 목소리가 징처럼 내 머릿속을 울렸다.
“엉? 누가 변태 새끼들한테 깔리래? 그냥 가서 얼굴만 보여 주고! 씻으러 들어간 사이! 우리한테 딱 전화를 해 주면? 우리가 쳐들어가서! 알아서 싸바싸바 해 준다고! 얘가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야! 빵덕수! 이 새끼 어디 모자란 거 아냐? 주둥이를 몇 번을 털게 만드는 거야? 씨발!”
“아, 그, 그게 아닙니다, 형님! 저 새끼가 원래 눈치가 빻긴 했는데요. 그래도 어디 모자라거나 하진 않…,”
“야, 야! 애를 타일러야지 그렇게 윽박지르면 쓰냐?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애기가 얼마나 무섭겠냐?”
덕수한테까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운전석 남자를 지켜보다 못한 조수석 남자가 쯧쯧,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라일락? 너 이름 존나 이쁘다? 꼭 이 일이 천직인 것처럼. 생긴 것도 반반하니~ 변태 아저씨들이 좋아하게 생겼잖아. 누누이 말했지만, 우리는 너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다? 우리는 길거리 양아치 새끼들하고는 달라~ 어? 수익금도 딱딱! 얼마나 깔끔하게 나눠 주는데? 너 엄마 아빠 없이 고아원에서 신세 지고 있다며? 원장 쌤은 잘해 주시고?”
대답을 요구하는 눈초리에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 쌤은 엄하시지만, 지금도 옛날에도 친할아버지처럼 잘해 주셨다. 최근엔 아프셔서 병원에 계시느라 자주 못 뵀는데.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눈앞이 흐려지려는 걸 막으려고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새끼, 속눈썹도 야들야들한 게 존나 기네.”
“집에… 보내 주세요.”
“알았어~ 누가 안 보내 준대? 그냥 우리는 이런 블루오션이 있으니까. 같이 동업하자 이거야. 동업해서 잘되면 너도 돈 벌고, 원장 쌤한테 용돈도 드리고, 고아원 동생들한테 까까도 사 주고. 얼마나 좋겠어? 응?”
“안… 돼요.”
“왜?”
“나쁜… 짓이잖아요.”
“야! 너 그렇게 순진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래? 나쁜 놈들 뒤통수치고 사는 건 나쁜 짓이 아니야~! 어? 너같이 이쁘고, 착하고, 순진한 애를 홀라당 벗겨 먹으려는 변태 새끼들이 나쁜 거지, 그런 새끼들 혼내 주는 거 아주 살짝, 도와만 달라는 건데. 그게 어떻게 나쁜 짓이야? 아님, 너 우리 몰래 그 변태 새끼들한테 엉덩이 대 준 다음에 우리 계획 까발리고 돈까지 받아먹을 생각이냐?”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하는 조수석 남자의 눈길에 그런 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안 하고 싶어요. 저… 안 할래요.”
“하! 이 새끼가 좋은 말로 하니까 못 알아듣네?”
“…….”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에 살갗이 따끔따끔했다. 털썩,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앉은 조수석 남자가 담배 연기를 훅 내뱉었다. 그게 곧장 나한테 뿜어져서 그만 사레가 들고 말았다.
“콜록, 콜록.”
“이 새끼, 빡대가리가 아니라 여우 새끼였잖아? 아주 쑈를 한다 쑈를 해!”
그러잖아도 좋지 않았던 기도가 막히는 기분에 쉭쉭 숨을 들이쉬며 켁켁거렸다. 그것도 도망가려는 수작으로 본 남자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싸대기를 때리고 발길질할 것 같은 남자들을 무서워할 겨를도 없었다. 나는 정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헐떡거리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제야 덕수가 눈치를 보며 끼어들었다.
“혀, 형님들! 얘가 꾀병이 아니라요. 진짜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다, 담배 알레르기요!”
“뭐 이 새꺄?”
움찔한 덕수가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겨우 변명을 해 댔다.
“저, 저번에도 담배 한 대 억지로 물렸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적 있었거든요! 저 스카우트하러 오셨을 때, 정학도 그 일 때문에 받은 거였어요! 이, 이렇게 놔두면 얘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형님들!”
“뭐 이런 병신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며 운전석 남자가 각목을 주워 드는데, 조수석 남자가 각목을 든 팔을 툭툭 쳤다.
“씨발 됐고. 애 숨넘어가기 전에 어떻게 좀 해 봐!”
“1, 119에 신고할까요?”
덕수의 질문에 운전석 남자가 재차 끼어들었다.
“이 돼지 새낄 확!”
온갖 쌍욕을 뱉어 내다 각목을 내던지며 한마디 했다.
“화장실에 끌고 가서 찬물이라도 끼얹든가!”
신경질을 내는 운전석 남자에게 굽신굽신한 덕수가 나를 질질 끌고 퀴퀴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가자마자 당구대를 어슬렁거리던 아저씨들이 이번에도 대놓고 쳐다보았다. 사색이 된 덕수는 축축 처지는 나를 화장실까지 끌어내는 와중에도 아저씨들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카우트 됐다고 방방 뛸 때는 언제고. 방덕수 나쁜 새끼. 저도 무서워하는 데를 왜 나까지 끌고 와. 나쁜 새끼. 나쁜 놈. 멍청이.
“야, 씨발. 라필터! 야! 정신 안 차리냐?”
당구장을 빠져나온 덕수가 내 뺨을 툭툭 치다가 화장실 문고리를 마구 흔들었다.
“뭐야? 왜 안 열려? 아, 씨발 진짜!”
기어코 나를 던지듯이 내려놓은 덕수가 두 손으로 화장실 문고리에 매달린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기침을 멈추고 빠르게 복도를 달려갔다.
“어? 씨발! 야! 야! 라필터! 야 이 라일락 개새끼야! 거기 안 서!”
뒤늦게 알아챈 덕수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뒤쫓아왔다. 정신없이 달려 계단을 뛰어내리는데 뒤에서 육중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덕수 고함에 당구장 아저씨들이 다 쫓아 내려온 것 같았다. 아저씨라니. 내 아저씨는 저렇게 안 생겼다. 고작해야 다들 스물 중반밖에 안 돼 보였는데. 이 밝은 대낮에 당구장에 처박혀서 뭐 하는 거야. 쫓아오지 마, 쫓아오지 마.
“야 이 새끼야 안 서!”
“잡히면 씨발 아가리를 다 찢어버린다! 너 이 새끼!”
무시무시한 말들이 제대로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정말 잡히면 죽을 것 같아서 안간힘을 다해 달리다가 그만 발을 삐끗했다. 우당탕탕- 결국 두어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에 굴러서 계단참에 처박혔다.
“헉.”
어디가 잘못된 건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까 담배 연기 때문에 아픈 척할 때와는 달랐다. 특히 왼쪽 어깻죽지 쪽이 너무 아팠다.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끙끙거리는데 계단 위에 선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다 잡힌 쥐새끼를 보는 것처럼 날 내려다보며 느릿느릿 계단을 밟았다.
보육원 동생들이 생각나고, 원장 쌤이 생각났다. 그래도 이러는 건 아니었다. 내가 나쁜 짓을 하면 동생들이 본받을 것이고, 원장 쌤이 속상해할 것이다. 차라리 내가.
“흑.”
어깨 어디가 잘못됐는지 너무 아팠다. 왼팔을 꽉 잡고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 한번 도망가 보라는 듯이 남자들은 걸음을 빨리하기는커녕 외려 계단 위쪽에 멈춰 섰다. 바보들. 나는 도망 안 갈 건데.
힐긋 옆을 보았다. 다행히 반쯤 열린 창문 높이가 낮았다. 그리고 나는 열여덟 살치고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어? 어! 저, 저 미친 새끼가!”
나는 더 머뭇거리지 않고 창문 틈으로 머리를 내밀고 몸을 쑥 뺐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지만 꾹 참고 힘을 줬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차라리 내가 다쳐서 병원에 몇 달 입원하는 게 잡히는 것보단 나았다. 남자들이 말한 블루오션이고 수익금이고, 그런 것 따윈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냥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는 것만 알았다.
“야! 야, 야! 야 이 새꺄!”
뒤에서 비명 비슷한 게 들렸지만,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느라 끝까지 듣지 못했다. 아니, 3층 반 높이에 있는 바닥이 너무 빨리 가까워져서 질끈 두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곧이어 엄청난 충격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너무 아파서 울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 뒤의 기억은 나지 않았다.
* * *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금산의 뒤로 사내 두 명이 따라붙었다. 비서실장인 남권호와 수행원인 구광연이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 승강기엔 다른 승객이 없었다.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밀도가 확 좁아진 엘리베이터의 반질반질한 문에 덩치 큰 세 남자가 선명히 비쳤다. 권호와 광연을 앞에 두고 가운데에 선 금산이 제 넥타이에 튄 핏물을 발견하곤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왼손을 꺼냈다.
“이제 막 수술방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상태는?”
“쌩쌩하답니다. 내일 당장 퇴원해도 될 만큼.”
넥타이를 당겨 뺀 금산이 묻자 농을 섞어 답한 권호가 광연에게 눈짓을 했다.
“피지낭종이 죽을병은 아니지.”
웃으며 대꾸한 금산이 제 넥타이를 풀어서 주려는 광연에게 되었다, 손짓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VIP층에 섰다. 앞장서서 수행하는 권호와 광연을 내버려 둔 금산이 피 묻은 넥타이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화환은?”
“방에 들였습니다.”
“잘했어. 병문안 가는데 빈손은 예의가 아니라더라.”
환자보다 병원 관계자들이 더 많은 복도를 정장 입은 덩치 셋이 점령하다시피 하자 자연스레 이목을 끌었다. 특히 더 눈길을 끈 금산은 그러거나 말거나 복도를 가로질러 특실 앞에 섰다. 벽에 걸린 환자 이름표를 확인하는 눈이 새카맣다 못해 푸른빛이 돌았다.
「강은영」
피지낭종 수술을 마치고 이제 막 수술방에서 나온 특실 환자의 이름이었다. 동시에 ‘씨앤테크’ 사장 최석두의 부인이기도 했다. 이름표에서 눈을 뗀 금산이 문을 두드렸다. 정중히 노크를 해 놓곤 안쪽의 허락도 없이 드륵-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 누구세요?”
침대 곁을 지키던 간병인이 화들짝 놀라며 그들을 맞았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저는 ‘골든 브릿지’ 기획실 남권호 실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우리 ‘골든 브릿지’ 사장님.”
얼결에 권호의 명함을 받아 든 간병인이 황금산을 돌아보곤 에그머니나, 낮게 탄성을 지르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익히 봐온 반응에 내심 웃은 권호가 간병인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살갑게 한마디 덧붙였다. 본인은 상당히 귀찮아했지만, 어딜 가나 저 남다른 얼굴은 쓸모가 많았다.
“연락을 아직 못 받으신 모양입니다? 최 사장님과 여기서 뵙기로 했습니다. 30분 뒤에 오시기로 하셨죠?”
“아…, 네, 네. 그렇긴 한데.”
“어이쿠 마침 저녁 시간이네. 여사님 시장하시겠다. 여긴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식사하시고 잠깐 쉬었다가 오세요.”
“네? 아, 아니. 그건.”
“초면이라 걱정스러우신 거죠? 아니면 지금 저랑 같이 나가셔서 최 사장님께 직접 연락해서 확인하셔도 좋구요.”
“네, 네?”
“저, 꽃바구니 보이시죠? 우리 사장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사모님과도 친분이 있으시거든요.”
“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확인하는 데 뭐 오래 걸린다고요. 여기 제 전화에도 최 사장님 번호 있습니다.”
제 휴대 전화를 챙기려는 간병인을 자연스럽게 돌려세운 권호가 제 것을 꺼내 보였다. 그 의도는 짐작도 못 한 간병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지, 직통이요?”
“아~ 우리 여사님께서는 비서 번호만 가지고 계시는구나?”
남권호 등쌀에 떠밀려 어느새 병실을 나서게 된 간병인이 뭐라 답하는 소리가 닫히는 문 너머에서 뚝 잘렸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휴대 전화를 꺼낸 금산이 마취가 덜 풀려 곤히 잠든 강은영을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강은영 독사진 한 장, 강은영과 ‘골든 브릿지’ 문구가 정자체로 적힌 꽃바구니를 같은 프레임에 담은 한 장을 찍어 최석두의 휴대 전화에 직통으로 날려 주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전송되기가 무섭게 금산의 휴대 전화가 바르르 떨어 대기 시작했다.
「스톤 대가리」
휴대 전화 액정에 뜨는 이름을 확인한 금산이 볼일을 마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병실을 빠져나오는 금산의 등 뒤에서 간병인의 휴대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재빨리 무음으로 바꾸고 침대 밑에 툭 밀어 넣은 광연이 조용히 금산의 뒤를 따랐다.
“아이참,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시지….”
눈치를 보며 최석두에게 전화를 걸던 간병인이 문을 열고 나오는 금산을 저도 모르게 쳐다보았다. 두 번째 보면서도 적응이 안 되는지 여전히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는 간병인보다 먼저 금산을 발견한 권호가 까딱 눈인사를 했다. 용건을 마쳤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이내 슬쩍 간병인의 손에서 제 휴대 전화를 빼 들며 생글 눈웃음을 쳤다. 곰같이 생긴 남정네의 눈웃음이 남사스럽지 않은 건 덩치도 얼굴도 동글동글한 권호가 제법 서글서글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최 사장님께서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마침 잘 됐습니다. 저희 사장님께서도 바쁜 일이 생기셔서. 여사님 덕분에 사모님 얼굴은 뵀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아쉽지만 최 사장님은 다음에 뵙도록 하죠.”
슬그머니 자리를 바꿔 간병인의 시야를 차단한 권호가 주둥이를 털어대는 사이 걸음을 옮긴 금산이 복도를 빠져나갔다. 사진을 확인한 최석두는 아마 지금 똥줄 빠지게 병원으로 달려오고 있을 터였다. 내연녀를 다섯이나 달고 있는 최석두가 와이프 걱정돼서 달려올 리는 없고, 그저 제 돈줄인 사모님께 손절 당할까 봐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올 뿐이었다. 협박은 확실하게 먹힌 셈이었다.
하여간 능력도 빽도 없이 가진 건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새끼가 지조도 없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욕을 한 바가지 퍼붓던 권호가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남권호입니다.”
뒤에서 권호가 통화하는 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금산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알겠습니다. 말씀은 드리죠.”
짧은 통화를 마친 권호가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저, 형님.”
“그래, 나도 내가 사장 같진 않더라.”
“네? 그게 무슨 말씀…, 아~니 그게 아니고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저는 당연히 형님이 더 친근하고 오래 입에 붙어서 그렇죠. 우리 사장님만큼 직함에 어울리는 분이 어디 계시다고.”
“1절만 하고. 말해, 뭔데?”
“아! 보육원 원장 전화입니다.”
뒤늦게 용건을 떠올린 권호가 제 궤도로 돌아와서 보고를 시작했다.
“원생 하나가 여기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요.”
후원금은 넘치도록 지원해 준 데다 여긴 ‘골든 브릿지’ 산하 병원이었으니 필요한 치료야 얼마든지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생전 안 하던 전화까지 직접 하나, 몸도 안 좋은 양반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금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고를 다 하기도 전에 금산이 내용을 짐작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권호가 얼른 털어놓았다.
“네, 그 꼬맹이 말입니다. 지가 꽃이라던.”
“…….”
“쪼끄만 게 몸이 약하긴 한가 봅니다. 몇 년 전에도 열병 때문에 사람 골치 아프게 만들더니.”
“어디 있어?”
“7층 1인실입니다.”
바로 한 층 아래였다.
쯧, 혀를 찬 금산이 결국 7층 버튼을 눌렀다.
한 층에 병실 하나뿐인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림자처럼 뒤따라붙은 권호와 광연을 문밖에 세워 둔 금산이 병실로 들어섰다. 침대맡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간병인이 금산을 발견하곤 부스스 일어났다. 미리 언질을 받은 건지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가다가 문밖에 선 덩치 둘을 마주치자마자 “아이고야!” 화들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뭔 깡패도 아니고 떡대가 둘씩이나….”
듣는 깡패 보람찰 소리를 핀잔이랍시고 흘리는 간병인의 기척이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졌다.
병실은 넓고 쾌적했다. 벽걸이 티브이 하나, 냉장고 하나, 손님용 소파 한 세트, 간병인 침대 하나. 웬만한 5성급 호텔 방 하나는 옮겨 놓은 수준이었다. 보육원 생활관보다 더 넓은 병실 한구석을 차지한 침대에 라일락이 누워 있었다.
‘뇌진탕에 내장은 다 멍들고, 오른팔, 오른쪽 정강이, 갈비뼈 골절, 등 근육 파열까지 골고루 다쳤습니다. 4층, 아니, 3층 반 높이에서 떨어졌거든요.’
떨어진 충격으로 시커멓게 멍든 얼굴도 부기가 제법이었고, 오른쪽 이마는 아예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자살은 아니고, 양아치 새끼들한테 쫓기다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네, 살려고 떨어진 거죠.’
간병인이 앉았던 의자를 끌어다 침대맡에 앉은 금산이 일락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조금 자랐나? 저렇게 퉁퉁 부어선 얼마나 컸는지, 어디 더 못나진 구석은 없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키는 그대로인 것도 같고. 보육원에서 밥을 안 먹이나. 오 원장이 그러진 않을 테고. 입이 짧은가. 제 어깨에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일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올린 금산이 눈살을 찌푸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6년 만에 보는 데도, 애가 저렇게 망가져 있는 데도, 금산은 첫눈에 일락을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리가 비상한 만큼 눈썰미도 기억력도 좋은 탓이었다. 게다가 오늘까지 총 세 번, 일락은 마주칠 때마다 강한 인상을 남겨 잊으려야 잊을 수도 없었다.
‘꽃이에요. 내 이름은.’
꽃 같은 얼굴로 꽃이라고 말하니까 진짜 꽃으로 보였다.
사람 장사하는 놈들이라면 그대로 낚아채 어디든 비싼 값에 팔았을 것이다. 금산이라고 다를 게 있나. 그러지 않은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때마침 사람 장사에서 손 털고 나와 업종을 변경한 참이었다.
- 그게 말입니다, 사장님.
보육원은 돈세탁 삼아 설립한 재단 세탁기 중 하나였다. 거기서 쓸만한 놈들이 있으면 조직으로 건져 올리고, 대학도 보내 주고, 유학도 보내 주었다. 열일곱이 되고도 싹수가 안 보이면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 내보냈다. 일락은 싹수가 안 보이면서도 태양 보육원에 남은 유일한 열여덟 살이었다. 금산이 따로 이래라저래라하지 않았는데도 보육원 오 원장이 알아서 처리한 일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6년 전, 그러니까 라일락이 12살이 되던 해, 생전 연락도 않던 오 원장이 ‘그게 말입니다, 사장님.’으로 말문을 트고는 일락을 들먹였다. 금산은 라일락이 누구냐고 되묻지 않았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맹랑한 열 살 꼬마의 눈빛만큼이나 이름도 잊기 어려웠으니까.
- 사장님께서 직접 데려오신 아이요. 네, 라일락. 그 아이가 고열로 입원을 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요즘 시대에도 고열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합니까?’
- 그게… 너무 늦게 알아채서….
대개 보호자를 잃고 기관에 던져진 아이들이 그러했다. 쫓겨날까 봐, 혼날까 봐, 혹은 미안해서. 아픈 걸 숨기고 끙끙 앓다가 병을 키웠다. 라일락도 다르지 않았다. 고열로 생명이 위험해질 때까지 아픈 걸 숨긴 이유는 셋 중 하나일 터였다.
금산의 질책에 오 원장은 변명 대신 상황을 보고했다. 그때도 이 병원이었다. 메디컬센터에 불과했던 병원은 6년 사이 지방 대학 인수 후 성문 부속 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생명 대신 시력을 잃은 일락의 각막이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원 교수는 현재 금강 부속 병원 장기이식센터장직을 겸하고 있었다.
규모가 커지며 리모델링을 한 병원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지만, 같은 병원 같은 방이었다. 금산이 일락의 얼굴을 본 건 오늘까지 지난 8년간 딱 세 번에 불과했는데, 그중 두 번이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특실이자 중환자실인 이 방을 이렇게 쓰라고 만든 것도 아니고, 일락을 특별 취급하라 한 적도 없었다.
아니, 말장난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애를 손수 보육원에 밀어 넣고, 죽거나 실명하거나 별 상관도 없는 애를 편법에 불법까지 동원해 멀쩡하게 만들어 놓았다. 기껏 공들여 고쳐 줬더니 이젠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들한테 쫓기다 반송장 꼴로 누운 라일락을 누구보다 먼저 특별 취급한 건 금산이었다.
‘동네에서 가출 청소년 잡아다가 설거지시키는 짬짬이 포주 짓도 하는 놈들입니다.’
그래서 오 원장도 뭔 일이 생기면 즉시 금산에게 연락했고, 아랫놈들도 때마다 일락의 동향을 체크했을 것이다. 이 쪼끄만 게 뭐라고.
‘어떻게 할까요? 형님.’
국가 보조 기관에 넘길 수도, 아예 질 좋은 업소에 넘겨 먹고 살 만한 길을 만들어줄 수도 있었다.
‘애가 독한 구석도 없고, 약지도 않고, 뭐 운동을 잘하길 하나 공부를 잘하길 하나. 장점이라곤 예쁜 거 하나밖에 없어요. 이렇게 예쁘면 빽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빽은커녕 핏줄 하나 없고. 얼씨구나? 착하기까지 해요. 그런 애들 결말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열여덟 살이나 된 애를 입양해갈 인간들이 멀쩡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태양 보육원은 개원한 이래 입양 사례가 없기도 했다. 세탁기는 단순할수록 좋았고, 입양이든 보조금 지원금이든 정부 기관과 엮이는 건 복잡해지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태양 보육원은 전액 재단 후원으로 유지됐고, 쓸모가 없는 아이들은 입양 대신 다른 기관으로 이관했다.
‘그러니까 진작에 딴 데 넘기시라니까.’
쉼 없이 잔소리를 하던 권호는 이미 아랫놈들 시켜다 그 양아치들을 피똥 쌀 때까지 쥐어팬 뒤였다. 아니, 본인도 몇 대 쥐어박은 것 같았다. 애가 좀 띨띨한 것 같다고 면박을 줄 때는 언제고 철마다 애를 챙기는 것도 권호였다.
‘정 보낼 데 없으면 우리가 데리고 있을까요?’
은근슬쩍 본론을 꺼내는 권호 곁에서 광연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쉰답시고 둘이서 나돌아다니더니 보육원을 기웃거린 모양이었다. 뭐, 언제부터 정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우리랑 있는 결말은 뻔하지 않고?’
멈칫한 권호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도 맞고 사는 것보단 때리고 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곁에서 광연도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맞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벌써부터 저런 벌레들이 꼬여 대는데 저 꼬맹이 저러다 가랑이가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요.’
‘네가 봐서 적당한 데 넘겨주든가.’
‘아니, 저렇게 예쁘고 착한 애를 어떻게 업소에 넘깁니까? 아직 솜털도 다 안 난 애를!’
‘소꿉놀이하고 싶은 거면 네놈들끼리 해. 끼고 살고 싶은 거면 몸값 치러 들어 앉히고.’
‘형님!’
깁스로 고정된 일락의 팔다리를 차례대로 들여다본 금산이 다른 곳도 하나하나 살폈다. 전치 12주짜리 부상이었다. 운 좋게 주차된 차로 떨어져 치명상은 피했지만, 다칠 만한 곳은 성실히도 다 다쳤다.
‘일락이가 가벼워서 그나마 덜 다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정형외과 센터장도 조카라도 된 듯 애를 대했다. 그도 그럴 게 일락은 각막이식하느라 1년을 병원 신세 졌고, 이렇게 저렇게 다치는 일이 많아 어느덧 병원 단골이 되어 있었다.
보육원에 던져두고 신경 안 쓴답시고 안일하게 방치하긴 했다. 열여덟이면 슬슬 독립해 밥벌이를 준비해도 될 나이였다. 여기저기서 일락이 금산의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 걸 보니 지금까지의 처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어디로든 일락을 내보내기로 생각을 정리한 금산이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퉁퉁 붓고 시퍼렇게 멍든 일락의 눈꺼풀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스륵 열렸다. 그나마도 왼쪽 눈 하나만 뜨였고, 까만 홍채를 감싼 공막은 핏줄이 터져 충혈되어 있었다. 그 눈을 힘겹게 감았다가 뜬 일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 아저씨다.”
“…….”
저를 보고 웃느라 한껏 일그러진 일락의 얼굴을 내려다본 금산은 난데없이 배 속이 들끓는 듯한 기분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씹새끼들. 턱 밑 근육이 살벌하게 돋았으나 금산 본인도, 시야가 흐린 일락도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웃느라 벌어진 일락의 입술 새로 흐르는 핏물을 닦아준 금산이 물었다. 짧게 대답만 할 것이지 아프지도 않은지 고개를 크게 끄덕인 일락이 또 생긋 웃었다.
“네.”
“내가 누군데.”
“아저씨요.”
“…….”
“황금산 아저씨요.”
지난 8년간 일락이 금산의 얼굴을 본 건 오늘까지 딱 두 번이었다. 그런 금산의 마음을 읽은 건지 배시시 웃은 일락이 말했다.
“저 기억력 좋다고 했잖아요.”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 없어요.
입에서 또 피가 흘러서 뒷말까지는 못 한 일락이 스륵 눈을 감았다.
아…, 이것도 꿈인가 보다. 아저씨는 맨날 꿈에서만 나타나니까.
덕수 패거리한테 쫓길 때도, 남자들한테 쫓길 때도, 꿈에서까지 쫓길 때도 꾹 참았던 눈물이 일락의 관자놀이를 타고 또르륵 흘러내렸다.
“…….”
일락의 입가에 거듭 손수건을 대준 금산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는 작은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