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포로로 밴드
8년 전.
도심을 빠져나온 SUV 차량이 흙먼지를 날리며 비포장도로에 들어섰다.
‘형님 바쁘신데 직접 움직이고 그러십니까? 안 그래도 어수선한 마당에. 밑에 놈들 시켜도 되는데요.’
결국, 참지 못하고 툴툴거린 권호가 대꾸도 하지 않는 금산의 무시에 입을 댓 발 내놓으며 괜히 옆자리를 노려보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창문에 매달려 휙휙 지나가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의 머리털이 복슬복슬했다.
여름 지나간 지가 언젠데 저런 것도 옷이라고. 다 늘어진 반소매 티 아래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못해 투명했다. 때릴 데도 없는 애를 어찌나 구석구석 다져놨는지 솜털 돋은 피부가 퍼렇다 못해 시커멨다. 열 살이라기에는 너무 작고, 뼈는 툭 치면 똑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멍든 복숭아처럼 생긴 아이는 예쁜 얼굴 말고는 쓸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금산의 속내를 짐작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이렇게 생겨 먹은 애를 아무 손에 맡겼다가는 저희들이 마음 고쳐먹은 보람도 없이 돈 몇 푼에 엄한 놈한테 홀랑 넘겨버리고 말 터였다. 권호 저는 절대 금산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 밑에 놈들 손에 맡겨야 할 텐데. 아무리 몇 년을 동고동락했다지만,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고 욕망에 약한 놈들이 유혹을 쉽게 떨칠 것이라 자신할 수는 없었다. 완전히 손 털고 나온 것도 아닌 그들에게 이런 꼬맹이 같은 건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권호는 제 형님이 좋았다. 짐승만도 못한 저 같은 것들과 진창을 뒹굴면서도 최후의 마지막까지 자극과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금산의 이성적인 면모를 숭배했다. 금산은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을 때도 흥분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죽일 때도 술이나 약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저지르는 짓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인지한 채 행했고, 실수 한번 없이 일을 처리했다. 현실주의 사고에 비상한 머리, 뛰어난 신체 능력까지 겸비한 황금산은 권호를 비롯한 밑바닥 놈들에겐 경외의 대상이었다.
‘형님 퇴원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구시렁거리면서 조수석에 앉은 금산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본 권호가 휙 옆을 돌아보았다. 맹한 게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어느새 창문에서 떨어져 나와 얌전히 권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 왜.’
‘…….’
권호를 빤히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로 마침 창밖의 햇빛이 비쳤다. 존나 요정같이 생겼, 아니 그게 아니라. 씨발,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애 얼굴도 맞아서 다 시퍼렜다. 맞고 사는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핏덩이로 버려지는 것들도 수두룩한 마당에 열 살까지 곧 죽을 늙은이 하나라도 거둬줄 사람이 있었던 라일락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니 새삼 동정심 같은 게 생길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꺼림칙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권호가 돌연 인상을 쓰며 욕설을 뱉었다.
‘에이 씨.’
허락도 없이 제 얼굴에 손을 대는 아이의 버릇없는 행태에 따끔하게 혼을 내줄 작정이었던 권호가 마주친 얼굴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작고 따뜻한 손으로 권호의 턱 밑을 건드린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다쳤어요.’
금산이 권호 대신 옆구리에 칼빵을 맞고 쓰러졌을 때 씹새끼가 휘두른 칼끝이 살짝 스친 자리였다. 작은 손으로 바지 양쪽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한 아이의 가는 목덜미도 퍼렜다. 발목이 다 보이길래 칠부바지나 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사이즈가 커서 정강이까지 덮은 여름 반바지였다.
‘…….’
한참을 꼬물꼬물 주머니를 뒤진 아이의 손에 딸려 나온 건 구깃구깃한 일회용 밴드였다. 노는 거 좋아하는 포로로가 박혀 있었다. 저나 붙이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포장지를 까서 일회용 밴드를 권호의 턱 밑에 조심스레 붙인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순간 할 말을 잃은 권호는 씨발, 나오려는 욕설도 밖으로 뱉지 못했다.
그 모습을 룸미러로 지켜본 금산이 점차 가까워지는 보육원을 한숨 쉬듯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