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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귤은 따가워요. 그래도 좋아요. (4/13)

epilogue 귤은 따가워요. 그래도 좋아요.

크고 동그란 눈동자에 투명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을 씻고 나온 금산이 물기를 닦으며 침대 가로 걸음을 옮겼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금산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일락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반가움을 감추지 않은 일락이 상처투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아저씨다.’

의자 대신 침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금산이 가만 일락을 내려다보았다.

‘만져 봐.’

‘네?’

‘꿈 아니니까 만져 보라고.’

‘…….’

멍하니 금산을 올려다보는 일락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선뜻 손을 가져다 대지는 못했다. 꿈인 걸 아는데도 막상 꿈인 걸 알게 되면 더 슬퍼질 것 같았다. 본인이 말해 놓고 먼저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댄 금산이 더 기다려 주지 않고 일락의 왼손을 감쌌다. 움찔한 일락의 눈동자로 잔잔한 파문 같은 감정이 물결쳤다.

‘와….’

조심스레 왼손을 끌어다 제 뺨에 붙인 금산이 한참을 가만히 있어 주었다. 일락이 실감할 때까지 오래도록.

‘어디가 제일 아프냐.’

‘모르겠어요.’

‘거기선 왜 뛰어내렸어?’

‘…제가 다치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요.’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금산이 반질반질한 귤껍질을 깠다. 입 안이고 밖이고 다 터져서 아플 텐데도 일락은 귤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픈 애 고집 꺾을 생각이 없던 금산은 상큼한 향이 물씬 풍기는 귤을 반으로 가르고 하나를 떼어 얇은 껍질을 벗겼다. 속살을 드러낸 과육 중에서도 무르디무른 알맹이만 작게 발라 일락의 입에 넣어 주며 말했다.

‘다음부턴 무작정 떨어지지 말고 머리라도 감싸 안고 뛰어.’

‘…네.’

씨익 웃는 일락의 입가에서 다시금 핏물이 주룩 흘렀다. 비몽사몽 중인 일락이 알아차리기 전에 입가를 닦아준 금산이 일부러 말을 붙였다.

‘아프면 참지 말고.’

‘…아저씨.’

‘응.’

‘삼촌을 처음 본 날에요. 처음 맞아 봤어요.’

뺨을 맞았는데 벽까지 붕 날아갔다. 처음 맞아 봐서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마구 발길질을 당해 엉엉 울면서 몸을 웅크렸다. 그보다 더 많이, 심하게 맞은 적도 많았는데, 일락은 그날을 가장 아팠던 날로 기억했다.

‘그때만큼 아픈 것 같아요.’

창문에 매달렸을 때 일락은 당장 울음을 터트리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겁을 먹고도 창밖으로 몸을 뺐다. 조금 다치는 건 안 되고,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다쳐야 덕수 패거리도, 그 남자들도 포기할 것 같아서.

‘그런데 아저씨가 와줘서 괜찮아졌어요.’

그새 흠뻑 젖은 얼굴로 애처럼 웃는 일락을 말없이 내려다본 금산이 알맹이를 발라 작은 입에 넣어 주었다.

‘내가 그렇게 좋냐.’

‘네.’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답한 일락의 얼굴에 보드라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몇 번이나 봤다고.’

‘많이 봤어요.’

‘…….’

‘꿈에서요.’

나는 아저씨를 맨날맨날 봤어요.

중얼거리며 스르륵 잠든 일락을 가만 내려다보는 금산의 손끝에 귤즙이 서서히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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