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pilogue 열아홉 순정 (6/13)

epilogue 열아홉 순정

땀으로 번들거리는 금산의 등 근육이 굵게 갈라지며 퍽- 젖은 음부를 힘껏 쳐올리는 소리가 일락의 귓가를 후려쳤다.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린 일락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불청객을 알아채고 휙 고개를 든 금산의 번뜩거리는 눈과 마주친 순간 일락은 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그 자리를 뛰쳐나가고 말았다.

‘왜요? 누구 왔어요?’

밑에서 흔들리는 내내 죽겠다고 신음하던 여자가 허리 짓을 멈춘 금산의 가슴팍을 아쉬운 듯 쳐다보다가 이내 굵은 허리를 두 다리로 감으며 밑을 꽉 조였다.

‘고양이 키워요? 의외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요.’

안방 문틈에 일락이 떨어뜨리고 간 커피 두 잔을 쏘아본 금산이 관심을 끄고 하반신을 쳐올리려다 쯧, 혀를 차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새 차갑게 식은 공기를 읽은 여자가 미련을 보이면서도 애써 금산을 붙잡지는 않았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죽겠는 건 죽겠는 거였다. 경험이 적지 않은데도 이런 남자는 처음 상대하는지라 순간순간 밑이 빠질 것 같은 기분에 몇 번은 까무러칠 뻔도 했다. 아마 계속했으면 여자는 정신을 잃고 매달렸을지도 몰랐다. 쪽팔리게.

‘이사님이 사장님 양기 쪽쪽 빨고 오라고 했어요.’

들은 척도 않고 침대를 벗어난 금산이 추리닝 바지와 티셔츠를 대충 꿰입었다. 다시 봐도 살벌한 근육 덩어리들을 감탄하며 쳐다본 여자도 몸을 추스르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라고 했거든요? 이렇게 끝내면 나 혼나는데.’

‘집 나간 고양이 찾으러 갔다고 해.’

있는 그대로 권 이사한테 불어도 되냐는 여자의 질문에도 바닥에 쏟아진 커피를 내려다본 금산이 한마디 툭 던지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와, 박력. 테스토스테론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내심 박수 친 여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내려다보곤 피식 웃었다.

‘고양이가 꽤 큰가 보네.’

고양이보다는 크지만, 금산에겐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일락을 쫓아 건물을 빠져나간 금산의 걸음이 빨라졌다. 육중한 몸으로 가볍게 골목을 가로지른 금산은 쉽게 일락을 찾아냈다. 슬리퍼가 벗겨진 줄도 모르고 마구 달리던 일락이 골목 끄트머리 버스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너, 나랑 계속 살고 싶으면 이 골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마라.’

옛날 그 엄포를 똑똑히 기억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골목의 입구이자 출구인 정류장 근처에 멍하니 서 있었다. 두툼한 가슴팍을 크게 한번 들썩거린 금산이 머리칼을 쓸어 넘기곤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제 손바닥의 반의반도 안 되는 일락의 팔뚝을 붙잡고 잡아 돌렸다가 씨발, 낮게 욕설을 뱉었다.

새빨갛게 물든 일락의 얼굴이 혼란과 충격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하얗고 작고 말랑말랑한 몸을 감싼 여름 교복이 땀에 젖어 목덜미에, 가슴팍에, 등줄기에 달라붙었다.

‘아, 아저씨….’

불안하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매달리듯 금산을 올려다본 일락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데, 밝은 햇빛 아래의 일락은 두 눈만 커다랗게 뜬 채 금산을 담아내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범람하는 그 눈을 읽은 순간, 애한테 섹스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차원적인 고민만 하고 있던 금산의 눈빛이 변했다.

‘…….’

뺨보다 더 붉은 입술을 덜덜 떠는 일락이 기어코 눈물을 떨어뜨렸다.

‘다른 사람이랑 잤어….’

‘…….’

‘아저씨가…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이랑.’

그런데 그게 왜 이렇게 서러운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금산을 올려다본 일락이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한낮의 거리에서, 금산을 앞에 두고 혼자 선 일락이 작은 몸을 마구 떨며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그날 그 순간 라일락은 제가 금산을 어떻게 좋아하는지 전신으로 깨우쳐버렸다. 그리고 사랑을 깨닫자마자 무참히 버려진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

당혹스러운 눈길로 일락을 내려다보던 금산이 곧 차분해졌다. 이 망할 꼬맹이가. 이내 평상심을 되찾은 얼굴로 한숨을 삼키며 일락을 안아 들었다. 맨발로 아스팔트 길을 뛰어다닌 탓에 생채기가 많이 생겼지만, 다행히 엎지른 커피에 덴 것 같지는 않았다.

한 팔로 가볍게 일락을 안아 들고 골목을 터벅터벅 되돌아온 금산의 다른 손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슬리퍼 한 켤레가 들려 있었다. 얌전히 안긴 채 훌쩍거리는 일락의 마른 등과 금산의 우락부락한 등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래도 한마디 타박하지 않은 금산이 땡볕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일락과 금산을 시원한 그늘처럼 집어삼킨 빌라 이름은 황금 라일락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