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선 긋기
일락의 첫 번째 가출은 입원으로 끝났다.
사정없이 후려 맞아 곰팡이 핀 호빵처럼 부푼 일락의 양 볼을 내려다보는 금산은 여전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였다.
‘형님, 일락이 찾았습니다.’
가출 딱 다섯 시간 만에 찾은 일락을 업소 지하실에서 들쳐업고 나온 건 행방을 찾은 즉시 금산에게 보고를 올린 남권호였다.
스물, 일락이 막 고3이 된 3월 15일쯤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었다. 제 영역에서 벗어난 지 딱 다섯 시간 만에 만신창이가 된 일락을 발견한 금산은 전신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론 강한 염증과 의문을 느꼈다.
라일락은 길에서 주워온 들꽃이었다. 보육원에 밀어 넣은 뒤엔 정원 식물로 바뀌었고, 황금 빌라에 들인 뒤엔 반려 식물에서 반려동물로 진화한 정도였다. 말 그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손만 많이 가는 사치품이었다. 그럼에도 일락은 그 자체로 제 존재 의의를 다했다.
볕 잘 드는 거실 아무 데나 웅크려 잠들고, 뭐라도 돕겠다고 황금 상가 전체를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곧잘 사고도 치고, 구석구석 제 흔적과 냄새를 남기고, 텅 빈 빌라에 불을 켜고, 추운 겨울에는 보일러를 올려 온기를 유지하는, 일락의 존재 하나로 삭막하고 칙칙했던 황금 빌라의 분위기가 좀 더 일반적으로 바뀌었다. 그것만으로 일락은 제 값어치를 다했다. 일락에게 기댄 것도 바란 것도 없던 황금산에겐 특히 더 그랬다.
그래서 일락이 가출한 이유를 짐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저 그 어리광을 받아 주지 않을 뿐이었다.
‘괜찮아?’
퇴원하는 날, 병실 침대에 앉아 금산을 기다린 일락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우울하고 슬픈 얼굴이었다.
‘안아 줄까?’
멍하니 금산을 올려다본 일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에 굶주린 아이는 언제 어느 때고 상관없이 제게 내민 손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가벼운 몸을 훌쩍 안아 든 금산이 병실을 빠져나왔다.
‘왜 그랬냐.’
운전대를 잡은 금산이 말문을 연 건 육중한 차체가 8차선에 매끄럽게 안착한 무렵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내내 죄지은 아이처럼 주눅 들어 있던 일락이 답할 때까지 금산은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아르바이튼 줄 알고 갔어요.’
‘몸 파는 것도 알바는 알바지.’
‘…….’
‘그러다 본격적으로 발들이고 나락 가는 것도 순간이고.’
무릎 위에 꽉 쥔 주먹을 내려다보는 일락이 크게 뜬 눈에 힘을 주었다.
‘돈이 왜 필요해?’
황금 빌라에 들어 앉혀진 이후로 일락은 돈 쓸 일이 없었다. 금산도, 상가 사장 놈들도 일락에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나 몰래 사채 썼어? 요즘 어린 것들 도박하다가 강도질까지 하던데.’
‘그런 거… 잘 몰라요.’
‘아는 걸 말해봐.’
크게 뜬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일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살려구요.’
‘혼자 살고 싶어? 겪어 보니까 깡패 새끼들하고는 같이 못 살겠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아저씨.’
‘깡패 새끼를 깡패 새끼라고 하는데, 내가 틀린 말 했나?’
‘그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아저씨.’
제가 혼날 때는 잘도 참던 눈물을 깡패 새끼들을 깡패 새끼라고 욕했다고 뚝뚝 떨어뜨린 일락이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식충이라고, 아저씨랑 형들한테 빌붙어 사는 거머리라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러지라고.’
후드득 떨어진 눈물이 일락의 옷소매를 다 적셨다.
‘그래서요. 저도 제가 그런 거 잘 아는데요, 아저씨랑 형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알아도 신경 안 쓰는 것도 같아서요. 그런데, 나중에 어느 날 갑자기 아저씨랑 형들이 신경 쓸 수도 있잖아요. 그때 저더러 나가라고 하면 진짜 많이 슬플 것 같아서요.’
버려지기 전에 나가서 살려고 했다는 말이었다.
‘라일락. 어린 것들은 다 그래. 식충이고, 거머리고, 버러지고. 어린 것들만 그런 줄 알아? 누구든 제 몸 하나 건사할 때까진 평생 그런 취급 받으면서 살아. 너라고 다를 줄 알았어?’
‘흑.’
‘그렇게 사는 게 싫냐? 그런 어중이떠중이 말고 본격적으로 중개해 줘? 아무리 머리 나쁜 너라도 깡패 새끼들이 뭐 해 먹고 사는 줄은 알겠지. 넌 아직 어리고, 예쁘고, 순진하니까 제법 목돈 받고 시작할 수 있어. 다른 일? 툭하면 부러지고 다치고, 이로운 놈 해로운 놈 구분 하나 못해 날파리를 있는 대로 끌고 다녀서 사고나 치는 네가 평범한 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중간하게 망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줄 잘 타서 근사하게 망가지는 게 네 신상에도 이로워.’
‘아저씨….’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갔다? 거기 업소 입구는 편의점처럼 생겼냐? 인테리어도 업소 같지 않게 건전하고 멀쩡해서 순순히 발을 디뎠어? 거기가 어딘지 정확히 알고 가셨잖아요, 라일락 씨. 깡패 새끼들 싫어서 간 데가 그 깡패 새끼보다 못한 구더기가 득시글거리는 시궁창이야?’
‘아저씨이.’
기어코 흘러넘친 눈물이 일락의 얼굴을 흥건히 적시고 허벅지까지 적셨다. 말하는 내내 언성 한번 높이지 않은 금산이 신호에 걸려 브레이크를 밟은 뒤 일락을 돌아보았다.
‘라일락.’
대답하려고 했지만, 우느라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일락이 훌쩍거리는 소리만 냈다.
‘일락아.’
‘…네에, 흑.’
‘보육원으로 다시 보내 줄까? 삼촌 찾아 줘?’
‘아저씨…, 정말 나빠요.’
퍽- 같지도 않은 주먹으로 금산의 팔뚝을 친 일락이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보육원으로 돌아가면 원장 선생님도, 동생들도 다시 볼 수 있었지만, 덕수 같은 패거리들한테 언제든지 찍힐 수 있었다. 삼촌은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일락의 피붙이였지만, 일락을 숨 쉬듯이 학대하고 방임했다. 보호자도 그럴듯한 후원자도 없는 일락에게 황금 빌라 밖은 위험하기만 했다. 그걸 알면서, 금산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락을 다그치고 있었다. 나쁜 애들의 괴롭힘이, 삼촌의 학대가 무섭다기보다는 금산의 냉정함이 일락을 서럽게 했다.
‘깡패 새끼하고 살기 싫어서 가출한 거잖아, 응? 그래 놓고 왜 울어, 일락아.’
‘그게, 끅, 그런 게, 흑, 아니에요. 끄읍.’
‘그런 게 아니면?’
‘저는, 저는…, 평생 아저씨랑 살고 싶어요. 끄윽, 내가 밥값 못 하고, 사람 구실 못 해도, 아저씨랑 형들이 평생 데리고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흐윽, 아저씨 나빠요. 정말 나 보육원에 보낼 거예요? 삼촌한테 보낼 거예요? 그럼 일주일에 한 번씩, 아니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아저씨 얼굴 보여 주세요. 다른 애들한테 괴롭힘당해도 좋아요, 삼촌한테 맞고 살아도 좋아요. 아저씨가 가끔씩이라도 얼굴 보여 준다고 약속하면 갈게요. 다른 데로 도망도 안 갈게요. 혼자 살러 나가지도 않을게요. 나 보러와요. 꼭 나 보러와요. 어엉.’
울지 말라고 달래 주지도 않는 금산이 바뀐 신호를 확인하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 뽀얀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질 때까지 펑펑 울어 젖힌 일락은 황금 상가에 도착했을 때쯤엔 쌕쌕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버렸다. 자다가도 훌쩍거리는 일락의 안전벨트를 풀어준 금산이 코트를 벗어 두른 채로 안아 들었다.
저벅저벅, 황금 상가 주차장을 빠져나온 금산이 원룸과 상가를 하나씩 끼고 있는 좁은 블록 서너 개를 가로질러 상가 골목 입구에 섰다.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왼쪽엔 교차로가, 오른쪽엔 90년대식 목욕탕이 자리하고 있었다.
‘라일락.’
걸음을 옮기는 사이 잠에서 깬 일락이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꼭 감은 눈을 뜨고 금산을 올려다보는 일락의 얼굴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예쁘고, 생산적인 뭔갈 하지 않아도 거슬리거나 못마땅하지 않은 건 금산도 일락이 처음이었다.
사랑이나 욕정 같은 원색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동정이나 애정 같은 것도 아니었다. 예쁘게 생긴 일락은 하는 짓도 밉지 않았다. 곁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고,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비춰도 미운 짓 하나 없이 예쁜 짓만 하려고 해죽해죽 웃으며 끙끙거렸다. 결국은 생존 본능일 것이다.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아 안달 난 가장 약한 것의 노력이었다. 그 속내가 한 길 물속처럼 투명하고, 계산적이지 않아서 보기 나쁘지 않았다.
끈질긴 생명력도 생활력도 없는 일락은 누군가 함부로 꺾었다가 쓸모없어서 버린 야생화 같았고, 키우다가 성가시거나 질려서 내다 버린 반려동물 같았다. 일락을 향한 금산의 마음도 그 첫인상에서 시작되어 정착했다. 그래, 살면서 저에게 실질적 해도, 득도 끼칠 수 없는 생명체 하나를 곁에 두고 키우는 것도 심심하진 않을 성싶었다.
‘추워?’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을 가로젓는 일락에게 제 코트를 제대로 입혀 주고 단추까지 빠짐없이 채워준 금산이 앞장섰다. 제 손을 감싸 쥔 커다란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끝내 꼭 맞잡은 일락도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버스정류장부터 목욕탕까지.
‘너, 나랑 계속 살고 싶으면 이 골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마라.’
‘…언제까지요?’
‘5년.’
두 눈을 크게 뜬 일락이 울먹거렸다.
‘평생은 안 돼요?’
‘평생 먹고살게는 해 줄게. 대신 5년만 내 걸로 살아.’
‘…5년 지나면 영영 못 봐요?’
‘글쎄. 그건 그때 가 봐야지.’
3월인데 겨울 같은 바람이 불었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웃음을 띤 금산의 잘생긴 얼굴이 고스란히 비쳤다. 그때 가서 변하는 게 금산의 마음일지, 일락의 마음일지 두고 봐야지 않겠냐는 금산의 목소리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변하는 건 일락의 마음일 것이라는. 아무것도 모르고 똑똑하지도 않은 일락은 그 확신만은 똑바로 읽어낼 수 있었다.
아저씨는 바보예요.
씩씩하게 눈물을 닦은 일락이 까마득하게 먼 금산을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