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Prologue
초여름의 날씨는 아침에도 인정이라곤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와 사물함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티셔츠에는 온통 땀이 배었다. 세스는 옅은 에어컨디셔너의 냄새가 나는 복도에서 사물함의 철제문을 열고 우두커니 시간을 헤아렸다.
하나, 둘, 셋.
주차장에 차를 댄 알렉산더 랜스키가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시간.
하나, 둘, 셋.
알렉산더 랜스키가 세스의 사물함에서 다섯 칸 떨어진 제 사물함 앞에 서는 시간.
하나, 둘, 셋.
사물함 문짝 안에 붙여 놓은 거울 위로 알렉산더 랜스키의 옆얼굴이 떠오르는 시간. 그 시간 동안 세스는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마를 덮은 앞머리가 묘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늦잠을 잔 모양이었다. 눈가가 살짝 흐렸다. 알렉산더 랜스키는 피곤한 듯 평소의 무심에 권태를 덧씌운 표정으로 책을 골랐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눈썹을 건드린 모양인지 그가 귀찮은 손길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티셔츠가 당겨져 어깨와 허리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탕. 이윽고 알렉산더 랜스키가 사물함을 닫았다. 기다렸다는 듯 매일 어울려 다니는 무리가 그를 에워싸 버렸다. 저벅대는 얕은 소리를 내며 거울 속의 그가 점점 작아졌다. 세스는 랜스키의 뒷모습이 거울 안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을 잊었다.
알렉산더 랜스키를 기다리는 것으로 세스의 아침은 시작했다. 그가 사라지는 것으로 아침이 끝났다.
세스는 다시 숨을 쉬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으로 아침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에 찾아오는 것은 짧은 안도였다. 세스는 멈췄던 숨을 아주 길게 내쉬었다.
느린 손끝이 이제야 수업에 쓸 교과서를 찾았다. 이미 사물함 주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늘도 저가 가장 늦었고, 세스 그린은 그 사실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 아침은 곧 끝날 터였다.
반년만 더 있으면 알렉산더 랜스키는 이 학교를 떠날 것이다. 아마도 그는 동부의 대학으로 진학할 테고 세스는 계속 이곳에 남아 졸업 후에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냉동 감자를 튀기고 있을 것이다. 남은 아침은 반년뿐이었다.
반년은 늘 같을 것이다. 거울 안의 알렉산더 랜스키를 보며 숨을 잃다가 그가 거울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할 것이다.
세스는 문득 손을 들어 거울을 쓸었다. 아무것도 없는 표정 밑으로 아무도 볼 수 없는 감정의 한 편린이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