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부방
하진의 목에는 쇠사슬이 달린 가죽 목걸이가 채워졌다. 두 팔은 뒤로 교차되어 단단하게 구속되었고, 속옷 하나 남기지 않고 온몸은 발가벗겨졌다. 개목걸이처럼 채워진 목걸이의 줄은 적발의 르칸이 잡고 있었다. 하진의 어깨를 눌러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게 만들었다. 그러나 입은 막히지 않았으니, 원한다면 안전어를 외칠 수는 있는 상태였다.
……좋은데?
하진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응시하던 르칸은 입꼬리를 비죽 끌어 올렸다.
“공부방으로 가보자고, 테스.”
현실에서의 하진은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원하셔서, 취업을 위해,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세뇌를 해서 4년제 인서울 대학을 위해 공부를 했을 뿐, 공부가 적성은 아니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토익, 토플, 교환학생, 과제, 팀플, 제2외국어 등. 순수학문이 아닌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였음에도 배움엔 끝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공부방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두근 뛰었다. 하진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르칸이 이끄는 방향으로 걸었다. 아니, 음울한 복도를 기었다.
공부방으로 가자고 하기 직전, 제르가 손을 들어 르칸을 멈춰 세웠다.
“사람처럼 걸으려 하면 곤란하지.”
그 후 다리가 반으로 접히고 까만 가죽 밴드가 하진의 허벅지와 발목을 각각 동여맸다. 르칸이 시범 삼아 목줄을 한번 당겼을 때, 일어설 수 없어 하진은 무릎으로 걷는 꼴이 되었었다. 그 상태에서 르칸은 하진의 목줄을 잡고 서서 걸었다. 르칸과 같은 보폭과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는 하진은 뒤뚱뒤뚱 목줄에 의지해 끌려가다시피 걸어야 했다.
르칸은 느긋하게 걷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성큼성큼 걷는 속도가 제법 빨라서 하진으로선 맞추기가 힘들었다. 몇 번이고 넘어지는데 두 팔이 구속되어 있는 탓에 상체가 그대로 바닥에 부딪히곤 했다. 그때마다 목줄이 당겨져서 르칸은 뒤돌아야만 했다.
“조, 조금만, 천천히…….”
복도에 붉은 융단이 깔려 있다고는 하지만 닿을 때마다 부딪히고 쓸리니 생채기가 난 피부가 붉어졌다. 쉬지 않고 쓸리는 무릎이 따끔거렸다. 결국 하진이 참다못해 애원을 꺼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멈춰 선 르칸의 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조금 스산했다. 힐끔 살핀 제르의 시선 역시 한없이 차가웠다. 뭔가 잘못 말했나?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장신의 두 남자를 기웃기웃 살폈다.
“아직 자기 처지를 모르네.”
금색 눈을 기이하게 빛내고 있는 르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진은 살짝 목을 집어넣었다. 딴에는 나름 애절하게 부탁했는데. 역할에 충실하게 애원했단 말이다.
“빨고 시작하자, 아가야.”
앞머리를 쓸어 올린 르칸이 다리를 벌리고 서서 나른한 어조로 명령했다. 하진은 무엇을 빨라는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해 무릎을 꿇은 채 멀뚱멀뚱 르칸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답답했는지 하진의 머리칼을 쥐고 확 제게로 끌어당겼다. 르칸의 바지춤에 부딪힌 코끝이 얼얼했고 당겨진 두피가 아팠다.
“시간 끌면 구멍 찢어질 때까지 좆 쑤셔 박는다.”
심드렁하게, 버텨도 상관은 없는데 후환은 내 알 바 아니라며 웃는 르칸였다. 진심으로 들리는 경고에 하진은 허겁지겁 르칸의 바지에 얼굴을 묻었다. 성기의 실물은커녕 페니스 모양 딜도도 빨아본 적 없지만 지금은 경험 유무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마른 입술로 낑낑대며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속옷을 헤집었다. 손을 쓸 수 없어 더듬다시피 해서 속옷 안에 수납되어 있는 성기를 찾기 위해 정신없이 뺨과 코를 비벼댔다. 쓸데없이 실제와 똑같은 수준의 후각에 르칸의 향이 물씬 잡혔다. 거친 알파의 페로몬에 하진은 신음을 삼켜야 했다. 르칸 자식, 알파구나.
잘 나오지 않는 페니스를 겨우겨우 힘들게 꺼냈을 땐 눈앞이 아찔했다. 나이트메어는 분명 성기만큼은 모양을 바꿀 수 없었을 텐데. 굵어도 너무 굵었다. 설마 실제 크기란 말인가? 근육 덩어리로 된 몸에 어울리는 굵은 페니스는 하진의 주먹만 해서 빨기는커녕 삼키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굵기에는 연연한 적 없었던 동정한테 이 크기는 인간적으로 너무하지 않나. 하진은 속으로는 눈물을 흘렸지만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재촉하듯 머리 꼭대기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있었다.
절망을 삼키며 입술을 벌렸다. 뜨거운 살덩이가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스치고 이에 닿았다. 이계의 존재는 성기가 살짝 긁히는 정도로는 개의치 않는지 별다른 반응은 없었으나, 나중에 꼬투리가 잡힐 것 같아 입술을 둥글게 말고 가능한 한 크게 벌렸다.
귀두를 간신히 삼킨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혀를 움직여 핥으려 해도 입 속을 가득 메운 덩어리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으아으, 절로 벅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물고만 있지 말고 빨아야지.”
삼켰으나, 매달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빨아보겠답시고 이 흉물은 깊숙이 넣었다간 숨도 막힐 것 같았고. 하진의 주저함을 눈치챘는지 르칸은 북슬북슬한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속삭였다. 도와줄까?
하진이 두 눈을 치켜떴다. 뻐근해질 정도로 한껏 입을 벌려 귀두와 성기 일부분을 삼킨 상태에서 아니라고 대답을 하려 했는데, 머리를 든 순간 강한 힘이 뒤통수를 꾸욱 눌렀다.
르칸의 손에 눌린 머리가 점점 아래로 향했다. 페니스가 좁은 입 안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숨이 막히고 괴로웠다. 헐떡이면서 머리를 들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흉포한 성기의 끝이 목젖을 찌른 순간 참고 있었던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르칸은 꺼억, 꺼억 숨을 삼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하진의 눈물을 슬쩍 훔쳤다. 흐읍 안쪽의 공기가 사라진 양 뺨이 홀쭉해지고 하진의 입속이 르칸의 페니스에 맞추어 빈틈없이 달라붙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머리를 누르고 있는 힘이 풀렸다. 목젖을 찌르는 압박감에서 살짝 해방되었다. 여전히 물고 있어야 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우면 다 뽑아버린다.”
나지막한 경고에 소름이 돋았다. 이를 세운다는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살덩이가 다시금 입 속을 들이쳤다. 르칸이 하진의 머리를 부여잡고 제 쪽으로 뒤통수를 누르고 잡아당기기를 반복했다. 숨 막히는 질량감이 목젖을 찌르며 드나들었다. 하진은 두 눈을 홉뜬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르칸의 성기를 받아내야 했다.
고통을 선사하는 추삽질 뒤에 머리가 훅 앞으로 당겨졌다. 금색 체모가 코를 간질였다. 하진의 번들거리는 입술이 기둥을 더 깊이 삼키고 페니스가 숨구멍을 빈틈없이 막았다.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르칸은 하진의 머리를 단단하게 붙든 채로 사정했다.
“흐, 흐읍, 읍……!”
머리를 치우지 못한 하진은 꼼짝없이 정액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몇 차례 목울대가 꿀렁이며 움직였다. 숨도 쉬지 못하고 기침도 터트리지 못하고 하진은 르칸이 넘겨주는 족족 정액을 받아 삼켰다.
“으, 아, 아…….”
갑작스럽게 성기가 쑤욱 빠져나가며 한참을 막고 있던 숨구멍을 틔워주었다. 아직도 나오고 있던 뿌연 정액이 하진의 얼굴 위에 흩뿌려졌다.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된 하진이 축 늘어져 어깨를 가쁘게 헐떡였다. 정액을 맞은 채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속으로 주워 삼키던 욕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고 신음으로 바뀌어 새어 나왔다.
큰 건 안 좋아. 역시 좋지 않아. 살았다는 해방감에 도리질을 치는 하진을 내려다보는 르칸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테스.”
차르륵. 쇠사슬이 당겨졌다. 방심한 사이 당겨진 목줄로 인해 늘어진 몸뚱이가 끌려 올라갔다. 허공을 헤매던 눈동자가 두려움을 담고 제르에게로 돌아왔다. 왜 이번엔 이 새끼가 분위기를 잡지.
지금이라도 안전어를 말할까. 아니, 아직은 아쉬웠다. 자기만 르칸을 즐겁게 해줬지 하진은 아직 돌려받지도 못했다. 제대로 된 봉사를 받지도 못했는데 벌써 나갈 순 없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동참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치사한 과금러가 돈의 위력을 십분 발휘해서 페널티를 접속불가로 걸어놨다. 하진이 제일 두려워하는 벌칙이 접속불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2주에서 한 달로 늘렸다.
“오메가네.”
그때 제르가 하진의 뒤에서 목덜미에 코를 묻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르칸의 페로몬을 맡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제되지 않아 한껏 거칠지만 한편으로는 호쾌하고 시원한 향. 체모에 코를 박고 페로몬을 들이켠 순간 한순간이나마 뒷목이 저릿해지면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었다. 오메가를 유혹할 용도의 발정 페로몬이 아닌데도 그랬다. 아마 르칸 고유의 페로몬 향이겠지. 나이트메어는 페로몬까지도 완벽하게 구현하는 모양이었다.
“웬일이래. 제르가 먼저 스스로 향을 맡으려고 하다니.”
어쩌다 같은 포식자로 힘을 합친 정도가 아니라 익히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 르칸은 제르의 행동에 놀라워했다. 한편으로는 즐거워 보이는 기색의 어조였다.
“이 오메가는 괜찮아?”
“응. 안 역해.”
뭐 그리 대단하셔서 오메가 혐오증이라도 있으신 알파신가, 제르라는 남자는. 하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제르는 그러거나 말거나 코를 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르는 제 쪽으로 하진을 더 가까이 당겼다. 희고 아름다운 손이 턱을 치켜들게 한 뒤 목을 감싸 조였다.
그때 하진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페로몬이 하진을 발목부터 감싸고 올라갔다. 르칸의 것과는 다른. 날카롭게 벼려진 검을 닮았고 묵직하고 진득한 향이 똬리를 틀듯 종아리, 허벅지를 빙빙 둘렀다.
무형의 기운이 하진의 페니스를 감싸자 뒷구멍이 젖어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생소한 기분에 당황한 하진이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제르가 벌을 주듯 하진의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으하앗!”
웃기기까지 한 신음이 높은 음성으로 터졌다. 오메가를 유혹하는 알파의 페로몬이 이런 느낌이었나. 다리의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한 하진을 누군가가 부축했다. 단단한 품에 갇혀 기대고 있는 몸에 자꾸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내려가는 턱을 세게 붙들고 있는 손만 아니었으면 고개도 푹 숙이고 고꾸라졌을 터였다.
“아가야.”
“……내가, 아기로 보이면…… 이건 범죄, 거든?”
딴에는 시크하게 대꾸하려고 했는데 헐떡임이 섞여 나왔다. 르칸은 핏 실소를 흘리며 하진의 머리를 헝클었다. 정말로 강아지를, 귀여운 조카를 쓰다듬는 듯한 모양새 같아서 하진은 기력이 쭉쭉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인상을 썼다. 아, 진짜. 페로몬 좀 적당히 풀지.
“그래, 그래. 나린아.”
아기에서 어린이로 조금 올라갔다. 이걸 올라갔다고 표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뉴비가 자꾸 귀여운 짓을 하니 제르도 마음에 들었나 봐. 그래서 말인데.”
이게 어디가 저를 마음에 들어 하는 행위며, 대체 자신이 언제 귀여운 짓을 했다는 건가. 그러나 르칸은 무언의 항변을 가뿐히 무시하고 어느새 근처에 나타난 적갈색 문을 열었다. 끼이익, 불길한 소리를 내며 열린 문 너머로 까만 어둠이 쩌억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공부방에 어서 와, 테스.”
르칸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발을 디디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구조인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촛대부터 차례대로 화르르 불이 타오르고 방 안이 점차 단계적으로 밝아졌다. 고성과 어울리게 현대식 전등 없이, 테이블 위의 촛대와 벽에 고정된 초가 방을 밝히는 전부였다. 아른아른 춤을 추는 촛불이 공부방에 들어온 세 사람을 반겼다.
“…….”
하진은 꿀꺽 침을 삼켰다. 외견만 보면 공부방이라기보다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연회장이었다. 물론 연회장이라고 해도 공부방에 있을 법한 가구가 있긴 했다. 예를 들면 책상이라거나 의자 같은 것들.
그러나 책상은 잉크, 만년필, 양피지 등은 굴러다니지 않고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책상과 하나의 세트여야 할 의자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정작 생김새는 산부인과에서 자주 보는 형태에 가까웠다. 가죽을 덧댄 두껍고 무거운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이 있을 법한 자리에는 벽에는 죄수를 묶어두기 적합한 모양의 구속구가 달려 있기도 했다.
힐끔힐끔 눈을 굴려 살핀 바로 보자면 공부방은 기대심을 잘 충족했다. 한번 써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이것만큼은 무서워서 무리겠다 싶은 것도 있었으며 불안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본 적 있었던 것까지 다양하게. 다시 한 번 꿀꺼억, 침이 넘어갔다.
나이트메어는 섹스가 목적인 플레이어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하고 수단이기도 하다. 철저한 보안으로 사용자들의 접속 기록이 외부로 절대 유출되지 않게 관리하고 있어 스스로 밝히지만 않는다면 비밀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모임 장소였다. 또한 그 어떤 플레이를 해도 현실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전하게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접속한다고 해서 완벽한 섹스 라이프를 절대적으로 보장받을 수는 없었다. 나이트메어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다. 모든 플레이 방식은 유저에게 맡겨져 있다. 나이트메어는 다른 이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고 놀 수 있는 장소와 도구를 제공할 뿐이다. 예를 들어 하진이 엉덩이를 맞고 싶다고 해서 나이트메어가 스팽킹을 해줄 사람을 무조건 제공해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자유도가 높은 만큼 하진이 나서서 스팽킹을 해줄 상대를 찾아서 계약을 진행해야 했다. 나이트메어의 시스템이 보장하는 범위는 하진의 신체가 위험해질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강제로 퇴장을 시키는 정도일 뿐이다.
그렇기에 접속 첫날부터 교육을 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기대도 하지 않았었는데. 하진은 생각했다.
나는 아마도 운이 좋은 뉴비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