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해피 나이트메어
하진은 얌전히 제르에게 안겨 있었다. 제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쉬거나 말거나 고분고분하게 굴기로 했다. 오메가를 싫어하니 어쩌니 해도 조금 친해지면 다정해지는 성품인 줄 알았는데, 반쯤 미쳐 있는 놈일 줄이야.
하진을 반쯤 기절하게 만든 범인은 바로 제르였다.
“여러분.”
“응?”
“아마 저 다다음 주에 발정기가 올 것 같은데. 그러니 다다음 주에 만날까요?”
오늘 당한 일을 생각하면 약속을 지키는 편이 하진의 나메 생활을 위해서 좋았다. 그래서 선심 쓰듯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는데, 듣고 있는 르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뭐가 또 불만이지?
“내일은 접속 안 하려고?”
아, 그 때문이구나.
“렙업도 하고 싶다며.”
“아뇨! 이젠 안 하고 싶어졌어요!”
너라면 당근 채집으로 업하고 싶겠냐. 미친놈을 보는 시선으로 째려봤더니 르칸이 되레 키득키득 웃었다.
“그거야 당연히 우리 멍멍이 혼내려고 쓴 방법이고. 설마 우리가 그렇게 렙업했겠어?”
“……아.”
왜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 당근 채집이 너무 충격이었나. 하기는 건장한 체격의 르칸이나 마른 근육질의 제르가 말 위에 올라가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지는 않나? 하진은 은근슬쩍 르칸의 판판하고 우락부락한 상체를 훔쳐보았다.
“마법사가 되고 싶댔지? 마침 직업 상성도 딱 맞네.”
“네?”
“내가 검사고, 제르가 힐러거든. 원거리 마딜러가 한 명쯤 있었으면 하긴 했어.”
네? 저를 끌어안고 계신, 반쯤 미쳐 있는 분이 힐러요? 수틀리면 힐이고 뭐고 안 주고 후장에 힐러용 무기를 꽂아줄 것 같은 분이, 힐러요?
“잘 키워줄게. 우리만 믿고 따라와.”
“으음.”
당근 채집에 이어 제르의 직업을 듣고 연이어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르칸이 대뜸 제안을 해왔다. 어차피 키워주겠다고 다시 한 번 말을 꺼내면 이제 거절하지 않을 생각이긴 했다. 그랬다간 아예 반쯤 죽어날 것 같아서. 수락을 하긴 할 거였지만.
“으으음.”
“응? 왜?”
“그러면 언제까지…… 같이 다니는 거지……?”
“오호라. 이하진 씨. 아직 덜 혼났나 보구나.”
“아니, 아니, 아니!”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에 안정을 취하고 있던 제르가 스윽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다. 가늘게 접히는 르칸의 눈과, 뒤통수에 쏟아지는 시선에 하진은 두 팔을 있는 힘껏 내저었다.
“저 말고 님들! 여러분이! 지겨워질 수도 있고! 저보다 궁합 잘 맞는 파트너가 나타날 수도 있고! 걸리적거리는 뉴비 데리고 다니느니 스펙 좋은 마법사랑 파티 하는 게 훨씬 편할 테고!”
어디까지나 내가 아닌 당신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고, 한참을 설득시키고 나서야 하진의 머리를 뚫어버리려고 했던 두 쌍의 매서운 눈길을 거두게 할 수 있었다.
“괜찮아. 그때 가서 생각해. 나랑 제르는 어쨌든 지금 하진 씨가 마음에 드는 거니까.”
오늘은 여러 번 봐준다고 투덜거리면 물러난 르칸이 하진의 머리를 헝클었다. 부담을 덜어주는 상쾌한 손길이었다. 덧붙여 기습적인 돌발 고백까지. 하진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얼떨떨하게 끄덕였다.
“하진 씨 이름을 들었으니까 우리도 통성명을 해야겠지. 난 채우라고 해. 임채우.”
“……임서우.”
“어…… 형제예요?”
“응, 쌍둥이.”
“아하.”
쌍둥이 형제라. 그래서 게임 속에서도 같이 다니고,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동시 삽입도 개의치 않아 했던 건가. 머리색이나 눈동자 색 때문에 이국적으로 보이는 외모를 번갈아 보고는 스윽 눈길을 내려 두 사람의 아래에 달려 있던 그것들도 힐끔힐끔 보고는 하진 나름대로 납득했다. 사이즈가 형제라서 비슷하게 무식했구나. 바꿔 말하면 저 두 사람을 받아낸 자신이 더 무식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
“응.”
“저 이만 나가봐도 되나요?”
질린 눈으로 두 사람의 물건을 보았는데, 하진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무시무시한 것들이 슬그머니 머리를 일으키려 했다. 후다닥 시선을 치워버리고 접속을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생각 같아서는 나가겠다고 일방 통보를 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후환이 두려워서 허락을 구하는 방식으로.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접속할게요!”
물론 안 된다고 할까 봐 얼른 덧붙였다.
“하진 씨. 많이 힘들었어?”
“네? 네에. 힘들구, 아직도 뒤가 욱신욱신하고 가슴은 저릿저릿하고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어요. 기력 보충 좀 하러 가야겠어요. 인삼이 절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흐음.”
순순하게 내보내줄 것처럼 여지를 주는 듯한 질문에, 두 알파의 마음이 혹시라도 변하기 전에 쐐기를 박고자 죽을 만큼 힘든 자신의 몸 상태를 열심히 피력했다. 인간적으로 오늘처럼 굴렸으면 좀 일찍 보내줘라.
“저릿저릿 욱신욱신은 섹스 마사지로 풀어줘야 하는데.”
“…….”
“하하, 농담이야.”
장난이라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다. 하진은 실수로 보고야 말았다. 르칸의 성기는 더 굳세게 일어서 있었다. 대체 불쌍한 척한 자신의 어디를 보고 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르칸의 분신은 참으로 건강했다.
“좋아. 오늘은 보내줄게.”
그래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편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나랑 서우 연락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