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1. 12월의 업데이트 (10/15)

1. 12월의 업데이트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진의 발걸음이 들떠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제 꼴이 딱 그 짝인 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엣헴, 엣헴 신이 나 춤을 추었다.

무엇보다도 요즘 푹 빠져 있는 행위는 도둑질에 비견될 만큼 나쁘지도 않다는 점에서 하진은 당당했다.

본디 성욕은 인간의 욕구이자 본능일진대 사회적으로 약속한 도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상호 동의하에 즐기고 있으니만큼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단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섹스요!」라고 외칠 수 없을 뿐이며, 에둘러 표현하자면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칼퇴근의 대가는 오늘도 어김없이 한 칸 한 칸이 빽빽하게 들어찬 지하철이었다. 출근은 시간을 앞당김으로써 콩나물시루 대중교통을 피해갈 수 있지만 퇴근만큼은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집에서 애타게 하진을 기다려줄 나이트메어 게임을 떠올리며 고행을 견뎌냈다.

의도치 않게 타인의 신체와 접촉하여 상대방이 오해라도 할까 봐 필사적으로 스스로의 몸을 구겨서 다니는 것까지는 괜찮다. 다만 오메가인 하진에게는 페로몬 냄새가 상당히 고역이었다.

으으, 떠올리니 토할 것 같잖아.

버스의 경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킬 수도 있고 지하철은 오메가 전용 칸도 있으며 대부분 페로몬을 잘 갈무리하고 다니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모든 사람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오늘은 별다른 사건을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람으로 빼곡하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답답한 지하철 안에서 풍기는 각종 페로몬 냄새가 뒤섞여 괴로웠다.

“토끼 같은 내 새끼가 기다리는 집에나 얼른 가야지…….”

애인도 없고, 그나마 회사 갈 때에만 집 밖에 나오는 방구석 아싸의 토끼 같은 자식은 당연히 나이트메어 게임 접속기였다.

하진은 나이트메어를 떠올리며 슬금슬금 떠오른 자차 생각을 지워냈다. 아무리 싼 차를 사도 차를 한 대 사려면 적금을 깨야 한다. 기름값은 그간 썼던 교통비로 갈음한다 쳐도 보험료니 뭐니 자잘하게 돈 들어갈 일투성이다. 무엇보다도 하진이 사는 원룸은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차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게다가…….

“오늘은 대망의 업데이트 날이지요, 흐흐흐.”

지하철역에서 나와 인도를 걸으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폰을 꺼냈다. 지하철에서는 가능한 한 몸을 꽈배기처럼 말아서 나쁜 손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기 때문에 폰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죽일 여유도 없었더랬다.

하진은 들뜬 기분을 감추지 않고 폰을 켜 나이트메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가 플레이 중인 「나이트메어」는 가상현실에서 마음이 맞는 유저끼리 섹스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특히 나이트메어의 초기 개발 목표는 성행위 시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구현이었다. 여기서 약자는 오메가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했으며 나아가서는 BDSM이 동반된 성관계에서 서브나 마조의 역할을 맡는 모든 사람을 아울렀다.

그러나 아무리 게임의 취지가 좋다 한들, 다양하면서도 특색 있는 장소를 제공해준다고 한들 변화가 없으면 머잖아 질리게 마련이었다. 현실과 똑같은 수준으로 감각을 구현해놓았다고 해도 그래봤자 가상현실이었다. 결국 질리고 흥미를 잃으면 진짜 현실을 찾아 떠날 터였다.

그래서인지 제작사에서는 나이트메어의 유저들로 하여금 롤플레잉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롤플레잉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했다. 먼저 모험 판타지 세계처럼 마법사, 기사, 성직자, 암살자, 궁수, 상인 등의 직업을 선택해 육성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인간을 비롯해 늑대인간, 뱀파이어, 악마, 천사, 엘프 등 인외종족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다.

하진은 종족은 인간, 직업은 마법사로 골랐다. 아직 정식 마법사로 전직하지 못한 마법사 지망생이지만 열심히 육성 중이었다. 때로는 안전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진짜 목적을 잊고 캐릭터 육성에 몰두하게 될 정도로 나이트메어는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이렇듯 유저를 끌어들이고 정착시키는 데에 성공한 제작사는 유저의 지갑을 악착같이 털기 위한 콘텐츠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하진이 지금부터 확인하려 하는 목록들이었다.

12월 1일 업데이트 내역 안내


1. 신규 테마 「한국의 동화」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신규 채널명은 「달밤의 무궁화가 간직한 비밀 보따리」입니다.

―신규 채널을 관리할 NPC는 치열한 접전 끝에 「선녀와 나무꾼」에서 파견되었습니다.

―신규 채널에 일반 몬스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호롱요괴, 그슨새, 용국함 및 보스 몬스터 도깨비, 구미호 2종이 추가됩니다.

―지역 특산품 도깨비 방망이 딜도, 천의무봉 구속구, 당과 볼 개그, 노리개 카테터 등이 추가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게임 내 플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12월의 이벤트 테마 「나이트메어의 크리스마스」가 추가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12월 1일 점검 후~12월 31일 24:00까지만 진행됩니다.

―이벤트 채널명은 「크리스마스의 꿈,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과자마을」입니다.

―이벤트 채널을 관리하는 NPC는 「산타클로스 회사」에서 파견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채널의 계절은 겨울로 고정됩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한정 전용 던전 「미드나잇 화이트」가 생성됩니다. 해당 던전의 입장 티켓은 자판기에서만 획득 가능합니다.

3. 12월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보물찾기가 시작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페이지에서 확인해주세요. (링크)

4. 12월 신규 자판기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목록과 획득 확률은 상세 안내 페이지에서 확인해주세요. (링크)

5. 공성전 콘텐츠는 개발 테스트 중 오류가 발견되어 연기되었습니다. 추후 재공지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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