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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퀘스트를 완료하는 방법 (13/15)

4. 퀘스트를 완료하는 방법

하진의 뺨 한쪽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에 눌려 있었다. 비죽 튀어나온 입술 사이에선 주룩 침이 흘렀다. 기절로 시작했으되 체력을 회복하는 동안 수면 상태로 바뀐 하진은 침까지 흘려가며 자다가 제풀에 놀라 깼다.

“깼어요?”

다만 눈을 뜨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사이 누군가의 손이 하진의 반대편 뺨을 문지르며 웃음기 어린 음성으로 조곤조곤 물었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긴 한데 왜인지 모르게 섬뜩하게 한기가 들어 하진은 재빠르게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오메가님. PK 한 번 더 당할래요?”

“일어났습니다!”

자는 척에 실패한 하진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부위가 목 위뿐이고, 팔과 다리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로 매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발터의 무릎베개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여, 여긴 어디…….”

“아직 과자마을이에요.”

무릎베개라니. 무릎베개라니! 심지어 그의 허벅지에 침까지 흘리다니. 하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지만 발터가 그를 일어나지 못하게 눌렀다.

“너처럼 레벨도 낮고 체력도 낮은 섭은 너무 간만이라서 힘 조절이 조금 힘들었지 뭐예요.”

정작 발터는 마냥 웃으면서 하진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잘도 조절해놓고는 뻔뻔하게 힘들었다 했다. 알몸으로 꽁꽁 묶인 채 보들보들한 담요를 덮어 꿈틀거리는 상태가 된 하진은 머리만 바짝 치켜들었다.

“대체…… 형들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측건대 발터는 제르와 르칸과 사이가 나쁜 알파인 듯했다. 잘은 몰라도 그들에게 감정이 있어서 만만한 하진에게 대신 화풀이를 하려고 했나 본데, 때문에 서러운 감정이 북받쳤다.

“형들한테…… 제가…….”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원한이 있으면 당사자한테 가서 풀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하지? 맘에 안 들면 르칸과 제르와 직접 싸워라?

르칸이나 제르가 지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패배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주인님들이 싫어질 리는 없지만.

그러면 차라리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끝내라? 이미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나니 기세등등하게 그런 말을 할 자신도 쏙 들어갔다. 기분 좋게 아픈 건 좋아하지만 쾌감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교묘하게 나이트메어의 시스템을 비껴가고자 PK까지 이용한 집요한 비열함을 보건대 발터는 적정 수준에서 끝내줄 것 같지 않았다.

하진이 차마 이렇다 저렇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자 발터가 피식 웃었다.

“걔들한테 아무 감정 없으니 걱정 말아요.”

“네?”

“불만 있다고 애먼 오메가님 하나 잡아서 화풀이할 사람으로 보이나 보네요, 내가.”

그럼 아니야?

“임씨 쌍둥이랑은 노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마음이 안 맞긴 하지만, 얼굴 안 보면 그만인걸요. 난 처음부터 오메가님이 목적이었어요.”

“……저를 아세요?”

“아하하.”

발터는 무엇이 그리 웃긴지 시원하게 웃었다. 하진을 돌려 똑바로 눕히고는 덮어두었던 담요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아늑한 오두막 내부처럼 보이는 공간의 기온은 훈훈한 편이었지만 따듯한 담요가 반 정도 사라지니 어깨 근처에서 으슬으슬 한기를 느껴졌다.

“그 쌍둥이들이 제법 유명한 돔이거든요……. 정확히는 서우, 아니, 제르보다는 르칸이 유명하지만. 돈도 잘 쓰고, 매너도 좋고, 은근히 다정하고.”

발터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하진을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손가락이 하진의 턱을 은근하게 문질렀다. 머잖아 그의 손은 느긋하게 아래로 향했다. 하진의 목덜미를 배회하더니 어깨의 선을 따라 장난을 치며 내려갔다.

“인기는 좋은데 말이야. 르칸은 다가오는 섭을 막지도 않고 원하면 플레이는 잘해주지만 그뿐이거든요. 다정하면 뭐해요. 정을 안 주는데. 르칸 좀 잡아보겠다고 알짱거린 오메가니 섭이니 셀 수도 없었어.”

르칸에게 당연히 과거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진짜로 과거를 알게 되니 조금 놀라웠다. 하긴 르칸은 주인님으로선 좋은 상대였다. 단 하나 오프라인에서도 자꾸 만나자고 은근슬쩍 유혹하는 일만 빼면. 그래도 하진이 딱 잘라서 싫다 하면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쉬워하는 기색을 풀풀 내비치는 정도에서 그쳤더랬다.

“제르 녀석도 마찬가지야. 워낙 까다로워야지. 오메가 페로몬이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데, 냄새가 역하니 뭐니 취향만 이상해가지고. 러트 아니고서는 먼저 오메가 찾는 일도 없었던 사람이었거든.”

발터의 손가락 장난은 계속 이어져서 하진의 배꼽 주변까지 뻗어나갔다. 아까보다 더 아래로 내려간 담요는 하진의 고간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발터가 조금 더 상체를 숙여 팔을 뻗으면 담요가 전부 벗겨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둘 다 요즘 나메가 재미없어졌다고 접니 마니 하더니 갑자기 웬 오메가 하나를 끼고 돌잖아. 한두 번 붙어먹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계속 같이 다니네? 그러다 보니 오메가님 은근 유명한데, 몰랐죠?”

르칸과 제르가 하진을 두고 한 「멍멍이 보는 재미로 나메한다.」는 말이 진짜인 줄은 몰랐다.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해주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오메가님. 그래서 말인데. 나도 맛을 보고 싶어졌거든요.”

담요가 완전히 벗겨지기 직전, 발터가 본론을 꺼냈다. 어두운 그림자가 진 미소 띤 얼굴이 하진 위에 자리했다. 짙어진 그림자가 주는 무언의 압박에 하진이 꿀꺽 침을 삼켰다.

“주인님 바꾸라고는 안 할 테니까. 나랑 놀아보는 건 어때요?”

비록 하진이 꽁꽁 묶여서 덮쳐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라 해도 플레이 시작과 종료의 권한은 오롯이 하진에게 있었다. 발터는 현금을 써서 몇 번이고 하진을 PK로 죽일 수 있을지언정, 하진이 허락하지 않으면 성관계는 할 수 없었다. 하물며 랜덤매칭도 시도할 수 없게끔 파트너가 있는 하진이었기에 더더욱 수락이 필요했다.

“르칸이나 제르가 미치도록 생각나게 만들어줄게요.”

……저기요?

보통의 구애였다면 「다른 알파가 생각나지 않게 만들어주겠다.」가 옳은 표현이었으리라. 그러나 우아하게 미소를 띠며 섬뜩하게 속삭이는 발터의 구애는 협박이었다. 수락하지 않으면 르칸과 제르가 울면서 찾게 만들 정도로 괴롭혀주겠다는.

“전리품도 돌려줄게요.”

협박에 이어 회유도 했다. 하진 맞춤형 회유였다. 하진이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발터는 습득한 전리품의 목록을 불러주었다. 전리품이 된 아이템들의 거래소 시세 역시 덤으로 알려주었다. 치밀하게 비열한 알파 같으니라고.

“합, 합시다.”

패배 페널티랍시고 빼앗긴 아이템들은 거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두레박 탑승권은 현재 시세 2천만, 던전 입장권은 2억 5천이었다. 하진은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해요, 하자고요, 놀이!”

하진은 아이템의 가격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팩 돌리며 흐느꼈다. 끝끝내 원하는 답을 듣고야 만 발터는 두 번째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 근데요.”

“네에.”

“놀아달라면서요……?”

“네. 그래서 놀러 나갈 준비 하잖아요.”

맛을 보겠다느니, 놀아달라느니 하기에 섹스를 하자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랬는데 웬걸, 발터는 하진에게 파티 신청을 하더니 과자오두막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게 아닌가.

선물을 전송하기에 얼떨결에 받았더니 크리스마스 의상이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옷깃과 소매에 포슬포슬한 털이 달려 있는 갈색 점프슈트와 루돌프 머리띠는 하나의 세트였다. 발터는 심드렁하게 제가 찢고 태운 옷 대신이니 입으라 했다. 왜 입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입기 싫으면 밖에서 추위에 떨든지 말든지 하라고 무심히 대꾸했다.

그 말인즉슨 파티 상태로 오두막 밖으로 나가자는 소리인데. 야외플레이를 하자는 뜻인가 했지만, 기껏 아델라를 지불하여 오두막을 빌린 의미가 없어지므로 아닐 터였다.

하진은 계속해서 발터의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루돌프 옷을 입었다. 머리띠는 안 하려고 했는데 발터가 턱짓으로 머리띠를 가리키고 그다음 하진의 머리를 가리켜서 하는 수 없이 착용했다.

“오메가님. 퀘스트 양말 몇 개 모았어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발터의 눈치를 살피는 하진에게 대뜸 퀘스트 진행 상황을 물었다. 퀘스트 양말이라 하면 크리스마스 푸딩을 잡아서 얻는 빨간 양말을 뜻할 텐데.

“하, 한 개요.”

도통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진은 착실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 대답은 한다 해도 큰일이 나진 않겠지.

“그럼 나머지 네 개만 더 모아서 가봅시다.”

“어……디를요?”

“루돌프 경비대장이요. 크리스마스 일일퀘 중이었잖아요?”

“그렇긴 한데…….”

“얌전히 따라와요.”

얼떨떨해하는 하진의 뒷덜미를 잡았다. 발터는 하진을 질질 끌다시피 하여 과자오두막을 나섰다. 따듯한 실내를 벗어나니 현실감 있게 차가운 함박눈이 내렸다. 추운 겨울바람이 하얀 입김을 내뿜는 하진을 맞이했다.

먼저 성큼성큼 걸어간 발터는 아까 그들이 만난 장소이자 크리스마스 푸딩이 모여 있는 공터로 향했다. 저벅거리는 군화 소리가 울리는데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퐁, 포옹 뛰어노는 푸딩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마법을 시전하는 행위도 없었다. 떠 있는 마법진이 있는 방향으로 절도 있게 손을 내리긋자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콰과광 떨어졌다. 하진은 한 마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기어가는 속도로 캐스팅을 한 다음 힘들게 잡았던 푸딩들이 단숨에 퍼퍼벙 터져나갔다. 달콤한 디저트 내음이 공터를 물들였다.

“뭐 해요? 안 줍고.”

“네? 아, 네.”

푸딩 열댓 마리를 단숨에 잡아버린 발터는 하진을 재촉했다. 잡아주겠다는 설명도 하지 않았고 하진에게 사전 동의도 구한 바 없으나, 나름 퀘스트를 도와줄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하진은 괜찮으니 혼자 하겠다는 사양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공터에 널려 있는 빨간 양말들을 줍기 위해 뛰어갔다.

푸딩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하진이 잡을 때는 그토록 나오지 않던 빨간 양말은 다섯 개가 훨씬 넘게 널려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눈에 띄게 차이 나는 불운에 눈물을 삼켰겠지만 오늘은 그럴 새도 없었다. 빨간 양말 네 개를 획득하자, 하루 습득 최대치를 달성한 하진의 앞에서 남아 있는 양말들은 저절로 스르르 사라졌다.

“퀘 완료하러 가죠.”

“네, 넵.”

설마 진짜로 퀘스트를 도와주려는 거였나?

발터는 다시금 주춤거리며 서 있는 하진을 재촉했다. 먼저 성큼성큼 앞서가다가 하진이 영 따라오지 못하자 걷는 속도도 늦춰주었다.

“임씨 쌍둥이가 이동속도 붙은 신발 하나 안 해줬어요?”

“네? 아니, 제가 스스로 장비 하나씩 맞춰보려고…….”

“뭐야. 걔들이 그렇게……”

하진이 듣게 할 의도는 없었는지 발터의 혼잣말은 지극히 작았다. 중간중간 「구질구질하다」느니 「무르다」느니 하는 단어도 섞여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요지는 쌍둥이한테서 처음 보는 모습을 계속 봐서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진은 눈을 깜빡이며 속으로 다짐했다. 주인님들 접속하면 당장 장비 다 맞춰 달래야지. 하진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은 괜찮지만 주인님들이 무시당하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오메가님. 잠깐만. 여기 서봐요.”

각오를 되새기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퀘스트 완료 NPC가 있는 과자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발터가 하진을 불러 세웠다. 발터가 가리키는 위치는 그의 옆이었다.

“여기 보고. 양말 하나만 꺼내 들어요.”

갸웃거리면서 일단은 시키는 대로 섰다. 보라는 방향을 보면서 빨간 양말 하나를 꺼냈다. 그러자 발터가 허리를 살짝 숙였다. 흰 피부와 싸늘한 표정의 알파가 뺨이 맞대며 바짝 붙었다. 놀란 하진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옆을 바라보는 사이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흠. 생각보다 잘 나왔네요.”

가상현실 게임이지만 나이트메어에도 스크린샷 기능이 있어서 셀카를 찍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가 가능했다. 플레이 중에는 동영상은 물론 사진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막혀 있었지만, 평소에는 사진 찍기가 가능했다.

“저기요? 알파님?”

하진 역시 발터라고 불러줄 마음은 없었으므로 황망하게 알파라고 칭하며 발터를 불렀다.

“별거 아니에요. 요긴하게 쓸 데가 있어서 그래요.”

요긴하게 쓰일 곳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지만 스샷을 확인한 발터가 볼 일이 끝났다는 양 하진을 과자집 안으로 밀어 넣는 통에 더 이상 따질 수도 없었다.

과자집 안에는 불퉁한 표정으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경비대장 루돌프가 앉아 있었다. 딱 봐도 「오늘의 기분 : 나쁨」으로 보이는 루돌프를 발견한 하진은 멈칫했다.

그러나 발터는 루돌프의 기분 상태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지 저벅저벅 다가갔다. 심지어 루돌프의 앞에 빨간 양말을 한 개 꺼내 툭 던지기까지 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오만불손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본 루돌프는 침묵을 지켰다.

하진은 꿀꺽 침을 삼켰다. 경비대장 루돌프는 성미가 까다롭다. 그런데 루돌프와 페어를 이루는 산타의 성격은 더 더러웠던 탓에 루돌프의 기분은 좋을 때가 거의 없었다.

하루에 양말을 최대 다섯 개 획득 가능하니 다섯 번의 기회가 있다는 소리였는데, 루돌프의 표정이 저러했을 때는 실패 확률이 99%에 육박했었다.

“접수했수다. 여기 상자 받아 가슈.”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데 침묵을 지키던 루돌프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발터를 위아래로 살피고는 접수 완료를 알렸다. 보상으로 보상 상자를 건네주는 태도가 나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퀘스트 완료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진은 발터를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루돌프 앞에 수줍게 양말을 내밀었다. 발터가 한 번에 성공했으니 어쩌면 하진 자신도…….

“퉷!”

“…….”

성공할 리가 없었다.

하진이 내민 빨간 양말을 본 루돌프는 갑자기 열이 받았는지 양말을 패대기쳤다. 하진의 시스템창은 무정하게 퀘스트 실패를 알렸다.

아직 하진에게는 네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희망을 끈을 버리지 못하고 한 개를 더 내밀었으나, 루돌프는 이번에는 양말을 구겨서 던졌다.

“……오메가님. 왜 이렇게 운이 나빠요?”

“그러게요…….”

세 번째 시도가 실패했을 때엔 지켜보던 발터도 어이가 없었는지 조금은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진은 남은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럴 땐 몇 번이고 다시 와서 표정이 풀려 있을 때 건네는 편이 나았다.

“저는 그냥 다음에 할…….”

“흠. 오메가님. 다시 건네줘 봐요.”

터덜터덜 과자집을 나서려 하는 하진의 뒷덜미가 잡혔다. 발터는 하진을 질질 끌어 루돌프의 앞에 던졌다. 휘청이며 루돌프 앞에 선 하진은 발터의 눈치를 보다 하는 수 없이 양말을 내밀었다.

“이딴 양마, 꾸에엑!”

경비대장 루돌프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진에게 화풀이를 하려했다. 네 번째 양말을 들고 찢으려는 루돌프의 목으로 까만 그림자가 날아들었고, 루돌프는 미처 말을 끝내지 못했다. 순록에게서 돼지 멱 따는 비명이 났다.

“…….”

가차 없이 NPC에게 발차기를 날린 발터는 풍채가 산만 한 루돌프를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목을 자근자근 발로 밟으며 하진이 여러 차례 당한 채찍을 꺼냈다. 루돌프가 벌떡 일어서 반격을 하기도 전에 번개를 품고 번쩍거리는 채찍이 루돌프의 다리를 휘감았다.

“꾸에에엑!”

“경비대장님. 양말이 어쨌다고요?”

말도 못 하게 목을 밟아놓고는 제 할 말만 던지는 발터는 루돌프가 답을 안 했다며 전기고문을 가했다. 무자비하게 튀는 스파크를 보며 하진은 마지막 남은 양말에 절로 솟아나는 식은땀을 닦았다. 저 고문의 수위에 비하면 하진이 당한 것은 장난 수준이었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하, 하, 하보! 하보옥!”

NPC라고 정말로 강도를 조절하지 않고 번개채찍을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수차례 얻어맞고 목이 졸린 루돌프는 하얗게 질려 항복을 외쳤다. 발터는 듣지 못한 척, 항복이라는 단어를 다섯 번쯤 듣고 나서야 그제야 발에서 힘을 풀어주었다.

“경비대장님. 양말 받을 거예요, 말 거예요?”

“바, 받겠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은요?”

“여, 여기 있습니다……. 산타 같은 유저 새끼…… 흐어엉.”

루돌프는 우락부락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훌쩍이며 하진의 양말을 접수했다. 발터와 거리를 벌리려 애를 쓰며 하진에게 깨끗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상자를 건넸다. 서럽게 울면서 뒤돌아서 발터에게 욕을 퍼부었건만 정작 당사자는 욕에는 관심이 없는지 심드렁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NPC를 이렇게 협박하고 고문해서 퀘스트를 완료하는 방법도 있구나. 발터가 새삼스럽게 무서워지는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넙죽 인사를 했다. 감사의 훈장 상자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허리를 숙이는 하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발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랐나 보네. 임씨 쌍둥이는 이런 모습 안 보여줬나 봐요?”

“네? 네…….”

르칸과 제르는 하진 앞에서는 어디까지나 상냥하고 다정한 주인님이었다. 오묘한 뉘앙스를 내포한 발터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던 하진은 갑자기 떠오른 시스템창에 흡 숨을 삼켰다.

플레이어 ‘발터’님으로부터 친구 신청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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