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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방(新房) (2/7)

2. 신방(新房)

 산군의 저택에서 지내는 며칠은 꿈만 같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마당을 쓸고, 가재를 닦던 일이 아득히 멀어질 만큼 호사스러운 생활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산군의 품에서 일어나서 서책을 보거나 주변을 거닐고 허기가 지면 스무 첩 반상을 받는다. 식사 후엔 해가 저물 때까지 금침 위에서 뒹굴거렸다.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는 신세가 민망스러웠으나, 산군은 그녀가 나른한 얼굴로 창밖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했다.

 바로 어제, 산군은 동상으로 까맣게 텄던 연의 손에 새살이 오르는 것을 기껍게 바라보았다. 해가 떴을 때의 그는 몹시 다정하지만, 밤이 되면…….

 ‘더 게걸스레 내 좆을 씹으세요. 각시의 속살은 내 좆이 빠져나갈 적이면 아쉬워서 함께 딸려 나오지 않습니까.’

 시정잡배보다 입이 걸고, 먹이를 앞에 둔 맹수와 같이 흉포했다.

 어젯밤 산군은 양물을 뿌리까지 짓쳐 박았다. 파정한 후에도 쉬이 빼주지 않고 배부른 표정으로 연의 얼굴을 핥았다.

 밤을 떠올리자 아랫배가 저릿해졌다. 어느덧 산군의 모양으로 자리잡힌 음부가 요기할 것을 내어달라며 채근하는 것만 같았다. 연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 아래로 숨기자 백사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걷기에 벅차시온지요.”

 “아닙니다. 찬 바람을 쐬니 머리가 맑아져 좋습니다.”

 “산군께서 자리를 비우시어 각시님이 무료하시겠습니다.”

 산군은 저택을 비운 것은 연이 온 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덕에 연은 저택을 돌아볼 짬이 났다. 신방 안에서 막연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저택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돌담으로 나뉜 정원이나 별당 같은 것이 수없이 많이 있었다.

 그때 황우임의 난처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태부인, 태부인!”

 요란하리만치 호화로운 적삼을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그녀의 뒤로 긴 종의 행렬이 따라붙었다.

 “너냐, 산군을 꼬여낸 인간 계집이.”

 턱을 바짝 잡아 올린 여자가 우로 좌로 연의 얼굴을 흔들며 돌아보았다.

 “태부인, 산군께서 보시면―”

 “내 태로 낳지 못했으나, 이 손으로 길렀으니 내가 그 애의 어미가 아닐 리 없다. 시어미가 며느리의 얼굴을 확인하러 온 것이 무에 문제란 말이냐.”

 “하옵지만…….”

 “고작 이깟 계집이란 말이지. 대악산 선녀만큼 곱다래도 기가 막힐 것을, 고작 이따위 빼빼 마른 계집애를.”

 제가 붙인 아이들을 모두 마다한 산군이 택한 계집이 고작.

 고작.

 ‘그대가 팔도를 호령한 것이 벌써 반 천 년입니다. 이제 슬슬 후사를 낳아야 분수 모르는 것들이 산군의 지위를 노리지 않겠지요. 내 질녀가 성품이 온순하고 고우니 금슬이 원앙과 다르지 않을 겝니다.’

 ‘성품이 온순한 그 질녀가 수태하면 태부인께선 이보다 더한 호사를 누리실 작정이십니까.’

 ‘산군!’

 ‘피 섞인 형제도 눈알을 저미고 혀를 뽑았습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태부인은 그보단 더 쉽겠지요.’

 ‘어찌……!’

 ‘내 인내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영물의 소망은 승천이었다. 산군으로 오백 년을 호령하고 후계를 두면 지상의 탈을 벗고 승천하여 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승천하는 산군은 단 한 명, 함께 천상에 오를 자를 지목할 수 있는데 효를 아는 자들은 어미와, 짝에게 정이 깊은 자들은 배필과 함께 천제의 가마에 올랐다.

 선대는 누구도 택하지 않고 오직 홀로 승천했다. 그 날, 태부인 서란은 붉은 입술을 꽉 짓씹으며 승천 가마를 노려보았다.

 포기할 줄 알고. 그 영광스런 자리를 내가 포기할 성싶으냐. 남편이 안 된다면 그 아들, 그 아들이 안된다면 손주라도 좋았다.

 제 손으로 기른 것들은 모두 산군에게 물려 죽었다. 산군이 저를 승천 상대로 지목할 리는 없으니, 질녀와 맺어주고 산군의 아이를 제 손으로 길러 그 아이가 승천할 적에 함께 가마에 오르는 것이 서란의 목표였다.

 ‘그런데 이깟 계집애라.’

 영물에게조차 영험한 산군의 씨를 인간 따위가 배태하긴 어렵다. 이러다 산군이 근처의 아무나 후계로 낙점하고 승천하게 된다면 서란은 낙동강 오리 알이 될 터였다. 승천은 물거품이 되고, 지금의 호사도 유지할 수 없다.

 “밤마다 창기처럼 음란하게 교성을 내지른다지.”

 “…….”

 “아래 입 놀리는 재주가 비범한 것을 보면 민가에선 더러운 사내놈들에게 다리깨나 벌렸을 것이야. 그렇지?”

 “…….”

 “그 외에 무슨 수로 산군을 꼬드겼지? 제물 따위가 어떻게 산군과 배를 맞추고 그 품에서 아침을 맞는 게냐. 응? 비천한 것이 여우보다 간악하게 내 아드님을 꼬드겼어!”

 날카로운 고성이 하늘을 가르자 구미호의 진노에 놀란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저러다 일 나겠다. 산서는 황우임의 허리춤을 잡고 안절부절못했다. 아기 마님은 날로 삼켜도 뼈 하나 걸리지 않을 만큼 말랑해 보인다. 제게도 오금이 저린 태부인의 노기를 받아낼 수 있을 리 없다.

 저러다 까무룩 쓰러지기라도 하면. 아니, 쓰러지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혀라도 씹어 명줄이 끊어지면 이 산의 모두가 산군의 발톱에 갈가리 찢길 것이다.

 황우임이 급히 나서려던 찰나였다.

 “시어머님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연은 허리를 굽혔다. 태부인의 시선이 샐쭉 날카로워졌다.

 “알기는 하는 모양이야. 산군이 기르는 개처럼 굴기에 생각하는 양도 금수만 한 줄 알았더니.”

 “어머님.”

 서란의 시선이 샐쭉 날카로워졌으나 연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어머님께선 저를 며느리라 부르시면서 어찌 아랫것들보다 못한 대우를 하십니까.”

 “뭐라!”

 서란의 입에서 기막힌 실소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연의 종들이 눈을 홉떴다. 저리 야들야들하게 생긴 주제에 제법 강단이 있다.

 산군의 호위인 삵 무랑과 도깨비 장탁을 제외하면 이 저택의 종 중 가장 입김이 센 것은 태부인의 종이었다. 인간 각시의 종노릇을 하는 까투리와 백사, 산서는 종들 사이에서 은근히 무시당했다. 그런데 다들 낮잡아 보던 인간 각시께서 태부인 앞에서 저리 강단 있게 나오시니 어깨가 으쓱 솟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태부인이 벼락같은 노성을 내질렀다.

 “감히 제물 따위가! 언제까지 산군이 너를 귀애할 줄 아느냐. 너는 산군을 위해 인간 임금이 준비한 보양식일 뿐이야.”

 “하면 더욱 제게 예의를 갖추셔야지요. 저는 산군을 위해 왔으니 이 집의 귀빈이 아닙니까.”

 태부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고작 인간이 감히 제 앞에서 이리 맹랑하게 굴 수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천한 것이!”

 태부인이 손을 높이 쳐들었다. 손톱이 벼린 검처럼 날카롭게 늘어나자 황우임을 비롯한 연의 여종들이 펄쩍 뛰며 달려갔다.

 그러한 찰나.

 “각시의 말이 옳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숲을 헤집고 나타났다. 태부인이 움찔, 물러섰다. 어느새 돌아온 산군이 연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 안았다.

 “나으리…….”

 연이 중얼거리자 산군은 나붓이 눈을 휘며 그녀의 손에 웬 봉투를 쥐여주었다. 봉투 안엔 귀한 맥분으로 만든 노르스름한 매작과가 가득 들어있었다. 어제 식사를 할 적에 평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기에 옛 기억을 더듬어 매작과라 대답했었다.

 “직접 사러 다녀오신 건가요?”

 “하인에게 시키는 것보다 빠를 테니.”

 “제가 괜한 말을 하여 나으리를 고생시켰습니다.”

 “맛좋다 하시면 그것으로 흡족합니다. 한데.”

 산군이 샛노란 눈동자가 태부인에게 고정되었다.

 “무슨 소란입니까.”

 태부인은 바싹 마른 입을 혀끝으로 억지로 적시곤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시어미 보는 눈이 공손하지 않아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입니다.”

 “손톱을 드러내고서 말이지요.”

 태부인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형제들을 도륙했을 적에 꼭 저 같은 눈빛과 저 같은 목소리였다.

 놀란 연이 움찔, 봉투를 끌어안자 산군이 다정한 기색으로 그녀의 면면을 살폈다.

 “상한 곳은 없는 듯합니다.”

 “예…….”

 “황우임, 너는 각시를 모시고 사랑에 들어가 있어라.”

 황우임은 곧장 연에게 달려가 손을 뻗었다. “아기 마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바짝 긴장되어 있어서 연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발을 떼었다. 사랑으로 향하면서도 내내 뒤를 돌아보아서 까투리와 백사, 산서가 시야 가리며 연을 재촉했다.

 연이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산군이 느른히 몸을 움직였다. 태부인을 빙 둘러 걷던 그가 낮게 읊조렸다.

 “태부인, 제게 고약한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분수를 모르는 자들은 찢어발겨 버리고 싶어지지요.”

 “사, 산군.”

 산군의 팔이 태부인 서란의 어깻죽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키에엑―!”

 태부인의 뒤에서 도열하고 있던 종이 비명을 내지르며 웅크렸다. 한순간에 시야가 새빨개지고 격통이 날카롭게 몸을 가로질렀다.

 태부인은 희게 질린 얼굴로 뚝, 뚝, 핏물이 떨어지는 산군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 무슨… 무슨 짓입니까, 산군!”

 “감히 내 각시 보는 눈에 조롱이 섞였기에 내 친히 눈알을 뽑아주었습니다.”

 눈을 빼앗긴 종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본래 형상인 물뱀이 되어 파들파들 떨었다.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에 태부인의 낯빛이 거무죽죽해졌다.

 “내 직접 낳지 못하였어도 산군의 어미입니다. 미물인 인간조차 효를 알아요!”

 “어미라.”

 산군은 유쾌한 듯 웃다가 고개를 모로 꼬고 눈에 핏발이 선 태부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태부인의 말씀이 참으로 우습습니다.”

 선대가 터를 둔 곳은 작은 목멱이 아닌, 우뚝 선 거대한 백두산이었다. 선대는 백두산에 치성을 올리러 온 인간에게 푹 빠져 새끼를 보았다.

 ‘영물 계집도 어처구니없을 판에 인간이라!’

 산군이 태어나 제일 먼저 들은 것은 태부인의 노성이었다.

 ‘더러운 인간의 피가 섞였으나 낭군의 씨이니 내가 데려가 키워야겠다.’

 ‘여우 님, 여우 님. 아이에게 첫 젖도 물리지 않았습니다…… 아아, 여우님!’

 태부인은 어린 산군을 어미에게서 기어코 빼앗았으나, 품어주는 일은 없었다. 산군이 될 확률이 높은 이복형제들에게만 젖을 물려주고, 인간의 피가 섞인 산군은 멀리 목멱에 던져놓았다.

 그전까지 목멱에 있는 영물이라곤 도깨비 몇이 전부였고, 하나같이 야멸찬 도깨비들은 어린 호랑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여 산군은 스스로 짐승을 잡고, 소젖을 물어 성장했다.

 “내 어미는 태부인이 보낸 악귀에게 찢어 발겨지지 않았습니까.”

 “죽은 친모가 안쓰러워 나를 이리 홀대하십니까.”

 “설마요, 친모가 안쓰러웠다면 태부인은 선대가 승천할 적에 멱이 따였겠지요. 그저 여우 사냥이 귀찮았답니다.”

 태부인이 입을 가리며 비틀거리자 산군은 “저런” 하고 말하며 그녀를 부축했다.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가는 목입니다.”

 “사, 산…… 커억―!”

 순식간에 태부인의 목을 쥐고 나무 기둥에 밀어붙였다.

 “끄, 흐윽, 사, 살려주― 살…… 컥!”

 “얼마나 더 힘을 주어야 부러지려나.”

 서란의 다리가 허공에서 거칠게 버둥거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으니 눈은 점점 뒤로 넘어갔다. 산군은 그 꼴을 웃음기 어린 눈으로 지켜보다가 서란을 바닥에 내던졌다. 저고리 밑에 달린 호화로운 노리개가 툭 끊어지며 흙바닥에 널브러졌다.

 산군은 티끌만 한 상처조차 없는 고운 손을 발꿈치로 짓이겼다.

 “각시의 수태 전엔 흉사를 보지 않으려 합니다.”

 “끄으윽…….”

 “하니 자중하십시오. 내 자비가 하루라도 더 이어지길 바라신다면.”

 연을 향해 치켜들었던 손을 힘주어 짓밟자 뚜둑―! 소리와 함께 손목이 비틀렸다. 고통을 참지 못한 태부인이 물뱀 종처럼 본신으로 돌아가 “켕!” 신음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앞발을 질질 끄는 구미호를 보고 산군은 평소와 다름없게 읊조렸다.

 “태부인께서 옥체 미령하시니 별채로 옮겨 요양케 해라.”

 종들이 납작 엎드려 “예…… 예, 산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창을 판자로 막고, 이틀에 한 번 물죽을 들여 죽지 않게 잘 살펴드리고.”

 “명…… 받잡습니다.”

 산군은 웅크린 구미호를 힐끗 쳐다보곤 걸음을 돌렸다.

 호위 무랑과 장탁이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태부인이 별채에 갇힌 것을 알면 구미호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산군이 여상하게 중얼거렸다.

 “늙은 것이 믿는 구석도 없이 설쳤을 리 없지. 수장이란 놈이 틀림없이 늙은 것을 들쑤셨을 것이다.”

 “하옵시면…….”

 “너는 가서 여우들을 잡아 와라.”

 신방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춘 산군이 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목멱까지 살려올 필요는 없다.”

 목소리가 선득하도록 낮게 울려 퍼졌다. 무랑이 마른침을 삼키며 허리를 굽혔다.

 “예, 산군.”

 무랑과 장탁이 단숨에 도약하여 사라졌다.

 장지문 안에서 어른거리는 가녀린 그림자를 화폭 감상하듯 보던 산군이 천천히 문을 밀었다. 신방에 들어가자 고개를 살풋 숙이고 있던 연이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연과 마주한 산군의 기세가 초봄에 눈이 녹듯 사그라졌다. 각시는 조용히 그의 두루마기를 받았다. 태부인과 관련한 말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가 되레 먼저 질문했다.

 “어찌 원망하지 않으십니까. 종 앞에서 불쾌한 일을 당하셨는데요.”

 “상서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라 하였으니…….”

 “논어.”

 “예…….”

 산군의 눈이 흥미로 이채를 띠었다.

 계집이 논어를 알아?

 인간은 미천한 주제에 저희들 사이에서도 상하를 나누어 해야 할 것과 해선 안 될 것을 규정했다. 양반과 천민, 사내와 여인. 계집이 감히 사내들의 전유물인 학문을 탐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네들 사이의 규율이었다.

 ‘논어를 아는 각시라.’

 산군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일어난 일은 탓하지 말고, 끝난 일은 간하지 말며, 지난 일은 원망하지 말라.”

 “예, 나으리.”

 “하면 각시가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속은 편해지겠지요.”

 그런 것치고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용기 있게 태부인과 맞선 주제에 손이 가늘게 떨렸다. 영물과의 대거리가 퍽 겁이 난 모양이었다.

 산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두루마기를 끌어안는 연을 보고 “진정?” 되물었다. 연은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칫하고 웅얼거렸다.

 “공자님 말씀을 핑계 삼은 변명일 뿐일 테지만요.”

 산군이 말없이 각시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앞으론 변명하지 마십시오.”

 “……예?”

 “뭐든 물으시고, 억울할 적에 소리치시고, 두려우면 나를 찾으십시오.”

 “…….”

 “대답은?”

 “예…….”

 벽에 붙어있던 여종들이 눈치 빠르게 연에게서 산군의 두루마기를 받아 신방을 나섰다.

 연은 민가에 내려간다고 튼 산군의 상투를 풀며 “저…….” 속삭였다.

 “예.”

 “하면 여쭈어도…….”

 “뭐든.”

 사실은 내내 궁금한 것이 있었다. 황우임에겐 머리에 암소다운 작은 뿔이 있었고, 백사에겐 팔 안쪽으로 비늘이 있었으며 산서에겐 말린 꼬리가 있었다. 까투리도 견갑골에 작은 날개가 있다고 했다.

 그럼 나으리는?

 “종들은 대부분 동물의 무엇 하나는 가지고 있는데 나으리께는 무엇이 있습니까?”

 “꼬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벌거벗은 몸을 보았는데 그런 건……. 엉덩이는 사람의 것과 같았습니다.”

 산군이 빙글빙글 웃으며 물었다.

 “제 알몸을 그리 유심히 보셨습니까?”

 “그, 그게!”

 그는 “흐음” 신음하고 장난기 어린 눈으로 연을 가만 쳐다보았다.

 “음탕하시긴.”

 얼굴이 화닥닥 달아올라 연은 손등으로 뺨을 감추었다. 산군은 그런 각시를 즐거이 바라보다가 순식간에 위에 올라탔다. 어느새 금침 위에서 그에게 깔린 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산군이 각시에게 다정히 답변했다.

 “영물의 힘엔 차이가 있어서 강한 개체는 짐승의 흔적을 숨길 수 있습니다.”

 “평소엔 숨기고 다니셨나요?”

 “보이지 않도록 했지요.”

 산군이 연의 손을 제 둔부 위에 붙였다. 올라붙은 바위처럼 단단한 둔부가 느껴지자 손이 굳어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밭은 숨만 내쉬는데 약지 끝에 부드러운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연은 그것을 더듬거려 손안에 쥐었다. 푹신하기도 하고 미끈하기도 한 이것은 진정 꼬리였다.

 비단처럼 매끄러운 그것이 손안에서 움틀거렸다. 놀랍도록 보드라워서 연은 무심코 그것을 위아래로 쓰다듬으며 탄성을 터뜨렸다.

 산군의 목구멍 안에서 그르륵, 쇠를 긁는 듯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내 꼬리가 각시의 마음에 찹니까.”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또?”

 “해삼처럼 손에서 꿈틀거리는가 하면 비단처럼 감겨들기도…… 아.”

 어느덧 부푼 산군의 양물이 가랑이 사이에 바짝 붙었다. 연은 저도 모르게 꼬리를 꽉 그러쥐었다.

 “큿…….”

 호랑이에 엉치 근처엔 양물처럼 신경이 모여 있었다. 연의 녹녹한 손끝이 털을 헤집을 때마다 하초에 피가 몰린다.

 산군이 저고리의 매듭을 손톱으로 툭, 잘라내자 곧 저고리가 팔 아래로 떨어지며 새하얀 젖가슴이 드러났다. 그가 흥분으로 곧추선 유두를 지그시 바라보자 연은 양팔로 가슴을 끌어안고선 고개를 돌렸다.

 “사내를 동하게 하는 법을 어찌 그리도 잘 아십니까.”

 낮게 웃은 산군이 턱을 쥐자 연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좁은 틈 사이로 고른 치열과 뜨거운 살덩이가 얼핏 보인다. 그의 입술이 각시의 입술을 삼키듯 입가를 덮고 흘러나오는 단숨을 잔뜩 머금었다.

 축축한 살덩이의 뿌리 끝을 옭아매고 혓바닥에 오돌토돌한 돌기를 거칠게 문댔다.

 “으응…….”

 연은 달콤한 신음을 흘리며 그의 꼬리를 매만졌다.

 교합에 익숙하지 못한 입은 타액을 삼키지 못하고 입 밖으로 쏟아냈다.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침을 남김없이 핥은 그가 일렁이는 눈으로 달아오른 연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혀는 유난이 맛이 좋군요. 다디답니다.”

 “방금 매작과를 먹어서…….”

 “맛은 괜찮았습니까.”

 근황을 묻듯 여상히 말하면서도 손은 속곳을 파고들었다. 수풀 안을 헤집으며 들어가 여린 살에 자리 잡으니 색사를 아는 몸은 바짝 긴장되었다.

 “예, 흑! 마, 맛있었… 어요.”

 “하면 보답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보답이라 하시면…….”

 산군의 손이 꼬리를 잡았을 때와 같이 그녀의 손등을 붙들고 하초로 내려갔다. 뜨겁고도 거대한 살덩이가 손바닥에 닿았다. 연은 흠칫 놀라 산군을 올려다보았다.

 “매작과를 핥듯 머금으시면 됩니다.”

 “하, 하지만.”

 산군이 바지춤을 내리자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가 꿈틀거렸다. 안에 들어가 있을 적엔 몰랐는데 대낮에 마주하니 실로 망측한 생김새였다.

 어린애 팔뚝만 그것의 기둥은 검은 편이나 선단으로 갈수록 새빨갰고, 연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꿈틀거렸다.

 “저는 어찌하는지 모르는데…….”

 “내가 각시의 음부를 머금고 빠는 것과 같이 하시면 됩니다.”

 한참 머뭇거리던 연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사타구니 쪽으로 고개를 숙였으나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입보다 먼저 손이 다가갔다. 양손으로 성기를 쥐자 산군의 눈이 음욕으로 일렁였다.

 엄지로 살살 쓰다듬다가 검지를 귀두와 마주 대 쿡, 찍으니 연의 머리를 잡은 산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만지는 대로 반응하니 슬슬 재미가 붙는다. 한 손으로 양물을 바짝 잡고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었다.

 “크…….”

 그의 잇새서 다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서.”

 “…….”

 “각시.”

 연은 천천히 선단을 물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양물을 쳐다보았다. 낭군의 것에선 사내의 냄새가 난다. 위험하고, 뜨겁고, 사나운 짐승의 냄새. 산군이 제 것을 빨아먹을 적처럼 한입에 넣기엔 어려운 크기였다.

 고개를 젖혀 기둥을 물었다. 그리고 수음하듯 위아래로 흔들자 연의 머리 사이에 파고든 산군의 손가락 움직임이 더욱 농밀해졌다.

 “배움에 이리 능하셔서야 금세 색사에 재미를 붙이시겠습니다.”

 산군은 혀로 입술을 적시며 제 양물을 문 각시를 내려다보았다. 목이 탄다. 이 작은 계집을 끌어안고 혼이 나가도록 풀무질하고픈 욕망이 목을 옥죄었다.

 연은 기둥을 연신 핥다가 산군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지자 머뭇거리며 다시 고개를 바로했다. 그리고 눈을 깍 감은 채 흰물이 덩어리져 고이는 선단을 다시 물었다.

 “하…….”

 색스런 신음이 터져 나오기 무섭게 산군의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쯔읍, 쯉, 츕.

 커다란 살덩이가 입안을 쿡, 쿡 찔렀다. 여린 점막으로 거대한 것이 사정없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지자,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정신을 쏙 빼고 양물을 빨다가 목구멍에 걸려 켁켁 기침하자 산군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따라 움직였다.

 각시가 입술을 조금 열자 틈 사이로 그의 혀가 들어왔다. 혀를 옭아매고, 고인 타액을 맛보며 달래듯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윗입의 일은 천천히 배우도록 하고 아랫입 허기부터 달래 주어야겠습니다.”

 “흣…….”

 동공을 가린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미처 여미지 못한 앞섬으로 그의 손이 쑥 들어왔다. 맨살에 거친 손바닥이 닿기 무섭게 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드러난 가슴골 사이에 얼굴을 묻은 그가 제 것이라 인이라도 찍듯 가볍게 깨물었다.

 “으응…….”

 “간밤에 물어두길 잘했군요. 발갛게 부풀어 맛 좋아 보이니.”

 그는 긴장한 그녀를 달래며 여린 색의 유두를 한입에 삼켰다. 예민한 유두가 혀 돌기에 마찰되자 허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수태도 전에 젖이 나올 듯합니다.”

 그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유두를 장난치듯 깨물었다.

 “읏!”

 연은 간신히 신음을 참아냈다. 유두가 물린 것뿐인데도 아래가 젖어 들고 있었다. 그녀는 들킬세라 다리를 꼬았다.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가 그녀의 몸에서 조금 떨어졌다. 커다란 손이 가랑이를 비집고 자리를 만들기 시작하자 화들짝 놀란 연이 몸을 비틀었다.

 “자, 잠깐……!”

 고개를 저으며 반항했으나 산군은 바짝 힘을 준 다리를 반강제로 열었다. 애액이 엉망으로 섞여 얼룩진 속곳이 드러났다.

 “이렇게나 고대하고 계셨을 줄이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난잡한 아랫입과 달리 윗입은 늘 정숙하시니.”

 연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금침에 얼굴을 묻었다. 낮게 웃은 그가 젖은 속곳 틈으로 파고들어 앙 다물린 음부를 갈랐다.

 쩌적, 민망한 소리에 당황한 연이 도망치려 시도했으나 어림없었다. 엉덩이를 단단하게 잡은 산군은 쪼개듯 음부를 벌리고, 주저 없이 틈 사이에 입 맞췄다.

 무릎으로 기어가는 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의 입술을 받아들인 그녀는 “학!” 날카로운 숨을 터뜨렸다.

 그가 속곳을 넘어 좁은 틈에 손가락을 쑤셔 넣으며 탐색하듯 혀를 넣어 파고든다. 내벽이 비벼지자 질 주름이 놀라 오그라들었다.

 여문 주름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애액을 혀뿌리로 문지르니 그녀는 자지러질 듯 신음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으응!”

 음부를 빠는 음란한 소리가 귓속을 화살촉처럼 파고들었다. 부끄러움과 쾌락이 엉망으로 뒤범벅되어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산군은 젖은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 세 개를 단숨에 넣었다. 꽉 맞물린 주름을 쫙 벌어지자 음부를 뭉툭한 손끝으로 긁어내렸다.

 “하윽!”

 오므린 질구를 사정없이 늘리며 그의 손이 마치 성기처럼 들락거렸다.

 “스스로 벌려보세요.”

 “아…….”

 “초야에도 잘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황으로 바들바들 떠는 것이 정신 나갈 정도로 요염하다는 것을 연은 몰랐다.

 ‘더, 더.’

 한낮에 보이는 정숙한 거죽을 찢어발기고 저만 아는 탐욕스러운 민낯을 보고 싶었다.

 그는 복숭아처럼 보드라운 그녀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잡고, 애액이 질질 흐르는 음부를 주변을 성기 끝으로 지분거렸다.

 “하면 금수처럼 엎드려 박히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 그건……!”

 “내 인내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연은 밭은 숨을 내쉬었다. 다리를 쥔 손이 덜덜 떨린다.

 ‘아, 안 돼.’

 속으론 그리 생각하면서도 입 맞추듯 음부 사이로 파고들어 오는 낭군의 시선을 이길 수 없었다.

 “하……하아…….”

 그녀는 차게 식은 손으로 천천히 음부를 벌렸다. 손이 덜덜 떨려서 자꾸만 음부가 다시 오므라들 것만 같았다.

 “더 활짝 벌리셔야지요. 내부가 훤히 보이도록.”

 수치와 왜인지 모를 죄악감이 온몸을 내달렸다. 연이 금침에 얼굴을 뭉개고 손끝에 바짝 힘을 주었다.

 산군은 구순을 혀로 핥으며 중얼거렸다.

 “안도 어여쁘십니다.”

 “흑…….”

 “어느 하나 곱지 아니한 곳이 없으니.”

 “나, 나으리…….”

 부끄러운 말은 그만하시라는 듯 울먹이자 산군은 빙긋 웃었다.

 “은애하는 각시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무에 문제란 말입니까.”

 연은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 그를 쳐다봤다. 처음 듣는 소리에 심장이 펄펄 뛰던 것도 찰나. 단숨에 몸이 뒤집혔다. 귀두가 예민해진 피막을 비집기 시작했고, 그녀는 눈을 깍 감았다.

 “으읏, 흑!”

 그녀가 그의 어깨에 매달려 도리질 치는 순간, 산군은 허리를 밀어붙였다.

 “하아앙!”

 연이 날카롭게 신음하며 흐윽, 흑,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커다래진 눈에 물기가 어렸다. 눈꼬리에 어린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금침 아래로 떨어졌다. 산군은 흐르는 눈물을 핥아먹으며 탐욕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이리 꽉 조이시면 들 적에 세차게 꽂아 넣어야 합니다. 낭군의 것이 아무리 맛 좋아도 조금은 벌려주셔야지요.”

 “그, 그렇지만…….”

 멋대로 음부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빼려 했으나, 불기둥 같은 것이 들어올 적이면 저도 모르게 꽉 오그라졌다.

 그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성기를 흔들었다. 그녀가 익숙해질 때까지 그 안에 흉포한 범은 짓눌려 있었다. 곧 주둥이를 벌리고 사납게 포효할 것만 같은 욕망이 손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서서히 그의 성기에 익숙해져 갔다. 삽입의 고통으로 잊고 있던 쾌락이 다시 찾아왔을 즈음, 퍽! 그의 성기가 쐐기처럼 거세게 파고들었다.

 “아으응!”

 눈앞이 새빨갛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격렬한 쾌락이 육신을 빠르게 훑어내리며 지나갔다. 허리가 찌르르 울리고, 머릿속이 흐려진다.

 푹! 퍽! 퍽!

 그의 것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예민한 주름 안을 마구 자극하자 연은 속절없이 앙앙, 교성을 내질렀다.

 “하으윽!”

 “맛있으십니까?”

 연은 양팔로 얼굴을 가린 채 숨만 급히 토해냈다. 그러자 산군이 입술로 귓불을 짓이기며 다시 물었다.

 “음탕하게 제 좆을 씹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 싫어요, 싫어요, 나으리.”

 그리 말하지 마세요……. 수치와 쾌락이 뒤엉켜 머릿속을 헤집는다. 연은 애원하듯 산군을 바라보았다.

 “욕심도 많으셔라. 이리 비좁은데도 더 빨아먹으려 안달을 하시니.”

 “아흐…… 나으리.”

 “소화.”

 순간 머릿속이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금침 위에서 듣는 다른 여자의 이름은 밧줄이 되어 심장을 칭칭 동여맸다.

 ‘싫어.’

 연은 그의 목을 꽉 끌어안고 애써 힘을 주어 양물을 꽉 옥죄었다. 그가 “큿…….” 짓씹듯 신음했다.

 “이런 요망한 행동은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작게 중얼거린 그가 거칠게 성기를 쑤셔 박았다. 진득한 애액이 음부와 성기를 감싸며 뚝, 뚝, 떨어졌다.

 풀무질이 얼마나 이어졌는지 모를 만큼 서로를 탐닉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연은 음부 속으로 쏟아진 온기를 느끼며 축 늘어졌다.

 이튿날, 망치 두드리는 소리에 연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눈치 빠른 백사가 “기침하셨습니까?” 묻고는 세숫물을 들였다.

 “무슨 소리인가요?”

 “별채에 난 창을 막고 있습니다.”

 “어째서 창을…….”

 “영물은 인간과 달리 고기나 채소 따위로 육체를 보전하지 않나이다. 인간을 취해 기를 받아들이는 이들도 더러 있으나, 대체로 바다의 영물은 해수를 통해, 육지의 영물은 햇빛을 통해 영기(靈氣)를 받아 살아가지요.”

 백사의 말을 곰곰이 곱씹던 연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채에 영기를 받아선 안 될 죄인이 있는가 보군요.”

 “과연 영민하십니다.”

 백사가 야살스러운 얼굴로 미소를 머금었다. 평소엔 까투리, 산서와 달리 그다지 충성스럽지 않던 여종이 입속의 혀처럼 구는 것은 어제 일 때문이었다.

 산군은 태부인에게 꽤 관대했다. 이것을 해달라, 저것을 치워달라 애걸하면 지체없이 물렸으나, 귀찮은 인사를 물어 죽이지 않은 것으로 관용을 베풀었다.

 한데 각시에게 다소 무례했다는 이유만으로 손목을 분지르고 별채에 처박아 영기조차 누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저택의 힘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일깨우려는 것처럼.

 어제, 으스대던 태부인의 종들이 모두 거무죽죽한 얼굴로 토악질을 했다.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산군의 그림자는 물론이고 다른 종들마저 피해 다녔다. 우스운 꼴이었다.

 ‘오늘 세숫물은 내가 내갈 테야. 까투리, 아기 마님 좋아하시는 약밥을 짓고 산서, 너는 가서 해당화를 꺾어와. 신방 화병에 꽂아두게.’

 ‘신방이라면 진저리를 치더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산군의 총애가 남다르지 않니.’

 ‘어저께 아기 마님의 기세가 꽤 대범하였지? 덕분에 옥령이 고 뻣뻣한 계집애가 마님을 뵙게 해달라고 알랑거리는 꼴도 보았잖아.’

 ‘흥.’

 코웃음은 치나, 딱히 맞서지 않는 백사를 보고 까투리는 깔깔 웃었다.

 백사는 연의 머리를 빗질하며 사분사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달포에 한 번 겁 모르는 장사꾼들이 목멱에 들지요. 올 적이면 어여쁜 장신구도 가져오고, 팔뚝만 한 산호도 가져옵니다. 구경이 꽤 재미나니 아기 마님께서도…….”

 “객주…… 서신이 옵니까?”

 연은 얼른 백사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예?”

 “나으리께서 객주가 들어올 적에 가족의 답장을 가져온다 하셨습니다. 하면, 하면…….”

 아기 마님이 민가로 서신을 내려보낸 것이 여드레. 발 빠른 자들이 전했으니, 이번에 객주가 들어올 즈음 서신을 받을 수 있겠다.

 “그러믄요.”

 “오는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가요?”

 “어디 보자, 삼 주 전에 왔었으니…… 일주일이면 당도하겠습니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던 백사가 빙긋 웃으며 답하자 연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종일 한갓지게 지내다 산군의 밑에서 꼴딱꼴딱 숨이 넘어가도록 교성을 내질러도 하루 끝엔 매번 성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애는 아직 열둘이다. 갓난쟁이 때 부모를 잃고 누이에게만 의지하던 아이. 기골이 장대하여 또래보다 두 뼘은 더 크지만 연에겐 언제나 젖먹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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