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욕망
각시로 간 여인이 초야를 넘기고도 살아있다는 소식에 임금은 크게 기꺼워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르릉 산을 울리고, 비를 퍼붓던 산군은 각시가 든 이후로 자비를 베풀었다. 그가 민가에 걸음한 뒤로 한성까지 뻗쳤던 역병이 사그라진 것은 각시를 보낸 데에 대한 보답이 틀림없다.
윤 참판집 마당엔 임금의 포상품이 그득 쌓여있었다.
허씨는 거무죽죽한 얼굴로 남편을 붙들었다.
“계집이 죽지 않았으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곧 산군에게 제를 올리러 세자의 가마가 은밀히 목멱산을 오를 것이다. 대궐에서 그와 소화가 마주친 적이 있으니 각시가 바뀌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소화를 대신해 연을 보낸 것이 들통나면…….
윤 참판의 잇새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비전의 명을 어기고 지엄한 임금의 눈을 속였다. 참형을 피하지 못할 터였다.
허씨가 남편을 채근했다.
“그 아이에게 보낸 서신에 무어라 적으셨어요? 동궁을 피하라 이르신 게지요? 예?”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오.”
“어째서요!”
“산군이 연이를 귀애하는 이상 그 애를 이용해 들려는 자들이 필시 생길 터. 지금이야 산군이 변덕을 부리는가 하여 엎드리고 있지만, 곧 벌레떼처럼 목멱에 밀려들 거요.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
허씨가 이를 악물고 연이 지내던 행랑을 노려보았다.
처음 보았을 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당이 되어 죽은 정부인의 곁에서 비단옷을 입고 곱게 허리를 굽히던 모습을 보았던 그때부터.
주씨와 윤씨는 한 스승 밑에서 수학한 동년배인지라 숱하게 비교당했는데 언제나 주씨 쪽이 윤씨를 앞섰다.
연의 아비 주석환이 정랑 벼슬을 얻으면 남편은 그 아래 좌랑이었다. 주씨 집안이 멸문한 지금도 남편은 주석환이 지낸 판서 밑인 참판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하필이면 딸자식까지 또래라 묶여서 비교 대상이 되었다. 낯을 가리고 되바라진 소화와 달리 연은 어려서부터 외견이 곱고 품성이 의젓하여 뭇 어른의 귀여움을 받았다.
외명부 부인들까지 대거 참석하는 대궐 연회에서 주씨들은 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자신과 딸은 언제나 음지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계집 주제에 글을 읽는 것이 무에 그리 대견하다고 둘러싸서 어화둥둥……!’
그런데 가문이 망한 지금도. 어떻게 지금까지도!
“그 애가 했다면 우리 소화라고 못하겠어요?”
“무슨 소리요?”
“산군의 처라면 중궁보다 나은 자리가 아닙니까. 세자가 제를 지내러 가기 전에 둘을 다시 바꾸면 되지요.”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면 소화는 산군에게……!”
“우리 소화가 노비 계집애보다 미색이 부족하길 해요, 참하지 않기를 해요. 산군도 내 딸을 보면 그까짓 계집애 당장이라도 내던질 겁니다.”
윤 참판이 신음을 삼켰다.
‘소화가 목멱산 왕후가 된다면…….’
마당에 쌓인 포상품을 보는 그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목멱에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창고에 쌀 포대가 그득 쌓였다.
산군이 소화를 귀애하여 세상일에 조금만 나서 준다면 임금 머리 위에서 호령이라도 못 할까.
눈앞에 금관이 아른거렸다.
윤씨가 마당에 쌓인 포상품을 정리하던 하인을 향해 손짓했다.
“아범, 성이 고뿔은 차도가 있는가?”
“차도가 있으면 무엇합니까. 나을 만하면 밤이슬 맞으며 제 누이를 기다리니 매번 덧이 나지요. 저… 대감마님.”
그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성이가 연이 서신이라도 읽게 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어린 것이 아픈 몸으로 밤새 누이를 기다리는 게 안쓰러워서…….”
“그래야지, 암. 가서 성이를 데려오게. 지필묵도. 서신을 읽었으면 응당 답장을 보내야지.”
“예, 예! 가서 얼른 데려오겠습니다요!”
순진한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가는 것을 보고 참판을 뒷짐을 지었다.
산군은 출타했지만, 연의 얼굴은 밝았다.
며칠 전부터 종일 이날만을 고대했다. 오늘은 객주가 목멱산에 들어온 날이었다. 봇짐을 풀어헤쳐 갖은 금은보화를 구경시켜준 행수는 돌아가기 전, 몇 통의 서신을 전했다.
연은 얼른 신방으로 뛰어 들어가 서신을 펼쳤다. 석 장의 서신중 처음 두 장은 윤 참판의 것이었다.
[연이 보아라. 무탈하게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였다. 이곳 사람들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내자는 산신의 각시 노릇을 잘 해낸 네가 썩 대견키도 하고, 궂은일을 떠넘긴 건 아닌가 싶어 겸연쩍은 모양이기도 하다.
석환이가 비명에 떠나고 관노로 전락한 너희 남매를 맡은 것이 힘에 부쳤던 날도 있으나, 이 마음이 정답지 아니한 날은 없었다.
그런 네가 짐승 각시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못내 가슴 아파 한숨이 늘었다. 무엇보다 네가 떠난 이후로 내내 밤이슬 맞으며 누이를 기다리는 어린 성이가 가엽구나. 성이는 나을 만하면 누워 있지 못하고 매일 밤 대문 앞을 서성인단다.
연이야, 피붙이 같은 너를 목멱에 보내고 내 어찌 잠을 이뤘겠느냐. 손에 물 한 방울 묻힌 적 없는 딸자식이 눈에 밟혀 못 할 짓을 하였으나, 네 서신을 받고 정신이 돌아왔다.
마주 보고 사죄하고 싶으니 산군에게 청해 우리를 목멱으로 불러다오. 너만 좋다면 성이와 함께 찾아가마.]
연은 서둘러 다음 서신을 펼쳤다.
성이의 필체.
서신엔 원망 한 줄이 없었다. 어찌 말도 없이 떠났느냐, 무정하고 무심하다 힐난할 만도 한데 서신엔 온통 누이의 걱정뿐이었다.
저는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외양간에 여물 주러 가는 일을 맡았는데, 이전보다 일이 편해서 서책 볼 시간이 늘었다고. 저 홀로 호사를 누리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거우니, 누이는 부디 즐거이 지내라고.
‘성아……!’
서신을 끌어안은 연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어찌 아프다는 말 한마디가 없어. 어찌, 어찌…….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이마를 마주 댄 그녀는 하염없이 울었다. 가여운 동생이 가슴에 얹혀 도무지 숨을 쉴 수 없었다.
밤늦게 산군이 돌아왔다. 곧장 신방에 들어온 그가 각시의 파리한 안색을 보고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왜 이리 낯빛이 어두우십니까.”
연은 양손을 맞잡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를… 저를 돌려 보내주세요.”
산군이 만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의 앞에선 단 한 차례도 사나워진 적 없던 얼굴이었다. 늘상 미소를 짓고 있어 종들이 그를 보며 벌벌 떠는 것이 기이할 지경이었는데…….
연은 떨리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말아쥐었다.
“아주 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그저 가족을 보고 싶어서…… 서신에 아우가 아프다고…….”
“안 됩니다.”
“나으리……!”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연이 애걸하듯 산군의 팔을 붙들었으나 허락의 말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보내지 않는다.
돌려보내는 건 적어도 제 새끼를 출산한 후였다. 마음 약한 각시가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연은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았다. 동생 걱정으로 곡기도 넘기지 못하고, 매일 눈을 피해 울었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산군은 민간에서 인간 의원을 잡아 와 으름장을 놓았다. 내 각시의 열이 내리지 않으면 네 목을 물어뜯고 삼대를 모조리 도륙하겠노라 겁박했다. 의원은 내도록 사지를 발발 떨면서 갖은 정성을 다해 연을 돌보았다.
연은 눈을 뜰 적이면 반드시 가족을 찾았다.
‘아버지, 어머니…… 성아…….’
종국엔 그윽그윽 쇳소리만 남았으나 다시 눈 감을 때까지 그놈의 성이를 찾아댔다.
마음 약한 여종들이 “아기 마님, 아기 마님” 하며 훌쩍였으나 각시는 까무룩 잠들고 나면 해가 다 져서야 겨우 눈을 떴다.
바람이 찬 오후. 산군은 죽그릇을 들고 연에게 다가갔다.
“드십시오.”
수저를 입가에 들이밀어도 연의 입술은 열릴 줄을 몰랐다.
“또 앓으실 작정입니까.”
“…….”
산군의 인내는 길지 않았다. 이레가 넘도록 침상에서 누워지내는 것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넘치게 자비를 베풀었다.
“각시가 더는 찾지 못하도록 그것들의 목을 비틀고 창자를 끄집어내오리까.”
“…….”
“각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황우임과 종들을 절단 내는 것이 먼저겠군요.”
문지방 가까이에 엎드려있던 여종들의 등허리가 흠칫하였다.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멍하니 보던 연의 두 눈에서 멀건 것이 기어이 뺨을 타고 툭, 툭, 떨어졌다. 사납게 미간을 짓이기던 산군은 욕설을 삼켰다.
‘빌어먹을.’
송곳니에 뚫려도 아픈 줄을 모르던 가슴에 인간 계집애의 눈물이 스며들었다. 그때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산군이, 스물두 산맥의 주인이며 승천을 앞둔 영물의 왕이 작은 인간 계집의 눈물에 맥없이 무너졌다.
연은 저고리 끝자락만 그러쥔 채 고개를 수그렸다. 어깨가 가냘프게 떨리며 눈물이 쉴 새 없이 뺨을 타고 미끄러졌으나 신음성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산군은 소리 내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는 각시를 끌어안았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무엇이라도 해드린다지 않았습니까.”
“…….”
“세상의 귀한 것들을 모두 이 손에 담아 드리겠습니다. 용왕의 구슬은 어떻습니까. 상제의 노래하는 백로를 잡아다 안겨드릴까요.”
“성이는 폐병이 있습니다…….”
희게 샌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 웅얼거렸다. 다 낫지 못한 목에선 말과 함께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누이가 걱정할까 봐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가 지푸라기를 입에 물고 기침을 삼켰었지요.”
“…….”
“쓰임을 다하지 못하는 저 대신 누이가 고생하는 게 싫어 열이 펄펄 끓는 몸으로 눈밭에 발을 디뎠습니다. 다른 이들은 저더러 혹 때문에 시집도 못 가는 박복한 팔자라 하였으나, 저는… 저는 성이가 아니었더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세상에 단둘인 남매였다. 관비로 끌려가 정절을 잃기 전 목을 맨 어머니는 갓난쟁이가 쌓인 강보를 연에게 건네며 거듭 당부했다.
‘동생을 잘 챙겨다오.’
‘어머니…….’
‘연이, 네가 의젓하여 어미는 마음 놓고 대감을 따를 수 있단다.’
강보에서 바르작거리는 아기를 끌어안고 널브러진 어미의 시신을 지켜보았다. 성이를 잘 키워 좋은 짝과 맺어주는 것으로 장례를 대신하기로 다짐하며.
열두 살 계집아이가 갓난쟁이를 업고 부려지는 건 지독한 일이었다. 삯으로 나온 보리밥 두 덩이를 모조리 동래 어멈에게 바쳐 구걸하듯 젖동냥을 하고, 도련님 기저귀를 훔쳐 싸리비로 얻어맞기도 하고, 고된 일을 한 후에 쓰린 눈을 비비며 겨우 아기 저고리를 기우고.
하고, 하고 또 하고.
죽은 부모 곁으로 도망치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살아야지, 살아야만 해,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나으리…….”
연이 산군의 옷깃을 잡고 애원했다.
“성이는 폐병이 있습니다. 병든 아이가 내내 누이를 기다리느라 고뿔이 들었으니 다시 볼 수 있다 확언하지 못합니다……!”
홑옷 차림으로 비척비척 일어나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이마를 붙였다.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 무엇이라도, 그 무엇이라도. 제발 성이를 만나게 해주세요…….”
얼굴을 엉망으로 적시며 연은 가슴께를 꾹 쥐었다. 산군의 샛노란 동공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보다 못한 산군의 호위 무랑이 혀를 깨무는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산군, 아기 마님께서 저리 원하시니―”
“어귀에 떠도는 삿된 영(靈)을 정화하고 인간이 오를 수 있도록 길을 놓아.”
“하옵시면…….”
“임금에게 내 처가족를 목멱에 들이라 일러라.”
“예.”
무랑과 장탁이 무릎을 굽혀 명을 받잡자 황우임과 여종들이 얼른 연을 부축했다.
“되었습니다, 마님.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황우임이 후들거리며 무너진 연의 등을 연신 쓸어내렸다. 산군은 기력을 죄 토해낸 것처럼 주저앉은 각시를 짧게 응시하고선 장지문 밖을 나섰다.
그 후 며칠. 임금은 크게 기뻐하며 윤 참판을 서둘러 목멱에 들이겠노라 답신을 보냈고 연은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산을 뒤덮은 붉은 물결이 북풍에 날려 사라진 후, 나무는 앙상한 몸을 드러냈다.
까투리는 추위로 곱은 손을 후후 불며 약을 달였다. 불씨가 죽을까 싶어 문간을 닫던 백사가 아연한 표정으로 냉큼 얼굴을 숨겼다.
“뭐가 있어?”
까투리의 물음에 도토리묵을 쑤던 산서가 빼죽 입술을 내밀고 중얼거렸다.
“임이 오신 게지. 안강 님 말야.”
“산서, 너!”
흑호 안강은 산군의 먼 친척뻘 사내였다. 혈족이란 혈족은 죄 도륙한 산군이 그를 살려둔 이유는 감히 자리를 노리지 못할 만큼 아둔한 인사기 때문이었다.
제 아비가 물려 죽을 적에 안강은 바지에 오줌을 적시며 산군의 다리 사이를 기었다. 그런 주제에 산군이 제 지혜를 아껴 사사하지 못했다고 굳게 믿었다.
안강은 5척을 겨우 넘긴 키에 바지춤 밖으로 살이 늘어졌으며 한겨울에도 몸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거기에 주먹만 한 코와 콧잔등에 검은 깨 같은 것이 수없이 많이 박혔고, 면면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여인은 또 어찌나 좋아하는지 반반한 것들만 보면 품으려 안달을 했다. 어미가 수태를 돕는 어신이라 씨물이 얼마나 강한지, 겁탈한 처자들이 죄 애를 뱄다. 그런 까닭에 여인들은 안강의 그림자만 보여도 가마솥에 숨을 기세였다.
산길을 거닐다 안강에게 끌려갈 뻔하였던 백사는 그만 보면 넌더리가 났다.
“산군께선 왜 하필 저 이를 목멱에 불러들여서.”
“주인이 없으니 산을 지키라 부르신 게지.”
“흥, 호랑이인지 도야지인지 모를 것이 송곳니는 제대로 있겠어? 제일 먼저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저 이와 비하면 우리 무랑 님은 얼마나 점잖고 용맹하시냔 말야. 그 밤, 나를 구해주신 것도…….”
백사가 몽롱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까투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말을 들은 것이 이번으로 아흔여섯 번째다.
“무랑 님이 우리 같은 종년을 거들떠나 보실까. 괜한 짓 말고 손이나 놀려. 아기 마님 허기지실라.”
백사는 까투리를 샐쭉 노려보았다.
“인간도 산군 품에서 아침을 맞는데 같은 영물인 내가 무랑 님 양물 한 번 물어볼 수도 있지.”
“독니 가진 뱀에게 잘도 양물을 물려주시겠다.”
까투리와 산서가 깔깔 웃자 백사는 팔짱을 끼며 씨근덕거렸다.
“내 무랑 님 별당에 들면 두고 봐!”
“그러시옵니까, 별당 마님. 하지만 별당까지 가는 길이 몹시 멀고 험하니 지금은 사발이나 반질반질하게 닦아두셔요.”
“예, 예, 별당 마님. 묵을 무쳐야 하오니 깨기름도 좀 건네주시옵고.”
“너희들, 정말!”
까투리와 산서가 “아이쿠, 무서워라.” 하며 재빨리 도망쳤다. 백사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쉭! 소리를 내며 그네들을 쫓았다.
“누가 부엌에서 경망을 떨어.”
황우임이 들고나서야 부엌이 조용해졌다. 여종들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수그리자 황우임이 몇 차례 혀를 차고 말했다.
“아기 마님께선 어디 계시냐.”
까투리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신방에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래.”
그러자 백사가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끼어들었다.
“하면 호숫가에서 잉어를 보고 계시겠지요.”
“날이 쌀쌀하니 밖에서 거니시지 않도록 하라 이르지 않았어.”
“날보다 마음이 더 쌀쌀하실 테니 바람이라도 쐬어야……. 산군께서 각시를 찾지 않으신지 벌써 이레지 않습니까. 아기 마님께는 숨 돌릴 곳이 필요합니다…….”
백사가 웅얼거리자 황우임이 벼락같은 노성을 내질렀다.
“산군은 팔도를 돌아보러 가신 게야! 달포가 넘도록 공무를 미뤄두셨으니 목멱에 돌아오지 못하시는 거라지 않았어. 아기 마님께서 괜한 오해를 하시면 어찌하려―”
“나으리께서 출타하셨습니까?”
문 뒤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기 마님.”
“말씀도 아니 하시고 가신 겁니까…….”
소스라치게 놀란 여종들과 당황한 황우임이 얼른 연에게 달려갔다.
“금세 돌아오실 겁니다.”
“예, 예. 산군은 스물두 산맥의 주인이십지요. 일이 많아 출타가 길어지시는 것이니 아기 마님은 염려 마십시오.”
“이따금 분수 모르는 것들과 교전하실 땐 석 달도 더 산등성을 비우셔요.”
산군이 신방을 찾지 않은 것이 벌써 이레였다. 고집에 속이 상하셨나 하였더니 말씀도 없이 출타하시었구나. 성이를 만나게 해달라 부린 고집이 썩 불쾌하셨던 모양이다.
황우임이 연의 손등을 두드리며 살뜰히 말했다.
“곧 조반을 올리겠습니다. 방에 돌아가 계시지요.”
“거닐다 들어가렵니다.”
황우임이 등 뒤로 손을 내젓자 백사가 얼른 겉옷을 내와 연애의 어깨에 걸쳐주고 물러났다. 눈치 빠른 여종들은 홀로 걷길 바라는 연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 산에 들어온 것이 단풍이 무르익은 가을이었는데,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하늘이 궂은 것을 보면 눈이 내릴 모양이다. 연의 입가에서 뽀얀 한숨이 흘러나왔다.
며칠 후, 목멱산 어귀에 윤 참판 일가의 가마 행렬이 당도했다. 각시의 인척을 마중 나온 까투리와 백사, 산서가 윤씨와 종들을 둘러보았다.
“가마를 내리고 직접 산을 오르셔야 하니 서둘러 걸으십시오.”
참판의 부인 허씨가 인상을 찌푸렸다.
“임금께서 내린 어가를 돌려보내란 거요!”
“각시의 가마 외엔 그 어떤 가마도 목멱에 오를 수 없습니다.”
“기가 막혀서. 산군께 말씀 전하시오. 나는 정헌대부로 영전을 앞둔 윤 참판 내자요. 당상관의 일가가 어찌 신에 흙을 묻히겠소. 참담한 처사라 여쭙고, 속히 종을 단속하라 전하―”
쉬익―!
백사의 새빨간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순식간에 음기가 몰려들고 까맣게 덩어리져 뱀 형상이 되어 움틀거렸다.
“미천한 것들이 감히 목멱산 흙을 밝는 주제에 잘도 혀를 놀리는구나.”
“무, 무슨…… 우, 우리는 산군에게 초청받은……!”
“아기 마님의 당부가 아니었더라면 진즉 조여 죽였을 터인데.”
“백사야.”
까투리의 부름에 백사의 쉬익, 쉭― 혀를 날름거렸다.
“아기 마님의 친정 어른 앞에서 흉한 모습을 보인 것을 안다면 황우임 님께서 너를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자 산서가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산군께서 분부하신 일입니다. 지체 말고 오르시지요.”
허응경이 새빨간 입술을 꽉 물었다. 겉보기엔 작은 목멱산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오르면 오를수록 산등성이 멀어졌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까투리와 백사, 산서는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 허씨는 쓰개치마를 뒤집어쓴 소화의 손을 붙들고 다른 손으로 땀을 훔쳤다.
윤 참판이 숨을 거칠게 고르며 말했다.
“해가 다 저물겠구려. 어서 가십시다.”
허씨는 홱 고개를 젖혀 산등성에 어른거리는 거대한 저택을 노려보았다.
“연이 저 영악한 것이 우리를 골리려 작정을 한 겝니다!”
“목소리 낮추시오. 저들이 들으면 어찌하려고.”
“모르시겠습니까? 부러 사특한 것들에게 명해 우리를 겁박하는 거예요. 괜한 고생을 시키는 거라고요.”
윤 참판의 시선이 묘해졌다.
“대단도 하군.”
“뭐라고요? 대감!”
“금상도 고개를 조아리는 영물들을 턱 끝으로 부리지 않소. 이번 산행으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지…….”
그러자 쓰개치마를 끌어 내린 여인이 눈매를 사르르 접으며 웃었다. 흑단같이 아리따운 머리칼과 상아처럼 고운 피부, 보기 좋게 자리잡힌 볼우물이 인상 깊은 미인이었다.
허씨가 곱게 땋아 내린 딸애의 머리끝을 매만지자 소화는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산군도 양물 단 사내예요. 여인 미색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나요.”
우후훗, 웃음소리가 산 공기에 뒤섞여 사라졌다.
“암, 우리 딸 미색은 월궁항아가 따로 없지. 괴귀의 처가 되기엔 아까운 아이야.”
“일흔을 넘긴 늙은 임금에게 안기는 젊은 계집들이 수두룩해요. 눈앞에 영화가 있는데 다리를 여는 것이 무에 대수인가요.”
“뭣들 하십니까!”
저 멀리서 우레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백사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다.
“해가 넘어가는데 언제까지 꾸물댈 생각……!”
소화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었다. 백사의 손을 잡은 그녀가 처연히 중얼거렸다.
“나이 든 몸으론 오랜 산행이 힘겹습니다. 목이라도 축이고 가게 해주셔요.”
백사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윤 참판 일가를 노려보았다. 저들 중 제대로 뒤를 따르는 건 어느 소년뿐이었다. 키가 훌쩍 크고, 호리호리한 소년은 영물의 걸음을 필사적으로 쫓았다.
“일각 후에 출발할 테니 준비들 단단히 해두십시오.”
백사가 흥, 콧방귀를 뀌고 멀어지자 허씨가 “종년도 영물이라고 고얀……!” 하며 혀를 찼다.
경으로 모습을 살피던 소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험한 산길을 오르느라 머리가 조금 흐트러졌다. 그녀는 몸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백기름.”
“향유병이 짐 속에 있는데 아직 짐꾼들이 올라오지 않아서…….”
“단장할 것도 챙겨 올라오지 않았다는 거야? 멍청하긴!”
“소, 송구합니다, 애기씨.”
몸종 아이가 넙죽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비비자 소화는 신경질적으로 아이를 걷어차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니?”
허씨의 물음에 소화는 쓰개치마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근처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개울이 있는 모양이에요. 물이라도 적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야지요.”
그러곤 몸종만 데리고 물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벽계수가 고인 곳에 손을 적신 소화는 머리에 물을 바르며 물었다.
“빗은?”
“그건 제가 가져온 봇짐 안에… 아!”
일행이 있는 곳에 두고 왔다. 몸종이 동동거리자 소화가 짜증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어, 얼른 가서 가져올게요!”
몸종이 헐레벌떡 뛰어가는 것을 보고 소화는 신경질적으로 판판한 바위에 주저앉았다.
연이 떠나고 바뀐 몸종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노비 주제에 고고하게 구는 연을 볼 적마다 거슬렸는데, 그래도 몸종으론 그만한 계집애가 없었다. 부러 어릴 적 지기들 앞에서 종년이라 망신을 줘도 눈물 바람은커녕 고개를 가만히 수그리고, 새벽에 매작과를 찾아도 군말 없이 시장에 다녀왔다.
‘한데 이 산은 어찌 겨울에도 이리 더운 거람.’
소화는 앞섬을 풀어헤치고 가슴 위로 손을 나붓나붓 흔들었다.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종의 기척이라 여긴 소화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왔으면 빗질하지 않고 무엇 하는―”
“고년, 젖이 탐스럽기도 하구나.”
낯선 목소리에 소화가 앞섬을 붙잡고 얼른 몸을 일으켰다.
“뉘신…… 헉!”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만큼 흉측한 사내였다. 5척쯤 되는 키에 온몸에 털이 무성하고, 눈은 샛노라며, 입술을 찢고 굽은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는 데다, 엉치 쪽에서 뭉텅한 꼬리가 살랑거렸다.
불현듯 산군은 호랑이 거죽을 뒤집어쓴 도깨비라던 말이 떠올랐다.
“사… 산군?”
안강은 저를 산군이라 부르는 계집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 계집은 영물이 아니다. 계집의 몸에선 사람 냄새가 질펀하게 났다. 인간 주제에 목멱산에 올랐어?
‘나를 산군으로 착각하는 것을 보면 그리 중한 계집은 아닌 모양인데.’
안강이 으끅, 으끅, 웃으며 다가오자 소화는 마른 침을 삼켰다. 듣던 대로 실로 흉측한 형상이었다.
“사, 산군께 인사드립니다. 호조 참판 윤두익의 여식 윤소화라 합니다.”
안강이 “호오” 신음하며 다가오자 소화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어찌 된 일인지 의아하시겠지요. 돌아가면 천천히 서, 설명을…… 꺄악!”
안강은 소화의 손목을 잡고 단숨에 끌어당겨 허리를 끌어안았다. 쓰개치마가 개울에 떨어졌다.
“이름 따위가 무엇이 중하냐. 네 젖이 야들한 것이 중하지.”
소화는 소매로 코와 입을 동시에 가렸다. 각오는 하였으나 도무지 참아줄 수 없는 꼴이었다. 흉악한 외모나 거적때기 같은 옷은 둘째 치고라도 이 냄새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안강의 입에선 살이 부패하는 것만 같은 고약한 냄새가 훅 뿜어져 나왔다. 구역질이 치민다.
그러나 소화는 금세 능숙히 표정을 가리고 입꼬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산군, 어찌 각시를 홀대하십니까.”
소화가 야살스레 웃자 안강이 “홀대?” 하고 되물었다.
“소녀에겐 첫 교합이온데, 고작 개울에서 저를 안으실 참이십니까?”
사내는 애가 닳을수록 더 큰 것을 내어준다. 소화는 앞섬을 잡은 채 은근히 어깨를 돌렸다. 안강은 예상처럼 다급히 달라 붙어왔다.
“해가 질 적까지 내 자지가 외로워 어찌 참는단 말이냐. 네가 도망치면 어찌하려고!”
“나라님께서 중매선 자리를 소녀가 마다할 리가요.”
“백사 고 계집애도 나를 살살 꼬드겨놓고 도망쳤지. 분수도 모르고.”
백사라는 말에 산어귀에서 본 뱀 계집이 떠올랐다. 신묘한 기운이 허공에 일렁이는 것은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산 초입까지 윤씨 집안을 호위하고 온 대궐 군관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주저앉지 않았던가.
‘그런 것도 이 이 앞에선 꼼짝 못 한다는 거지?’
안강이 소화의 저고리 안으로 손을 쑥 밀어 넣어 젖을 주물럭거리자 그녀는 하윽, 달뜬 숨을 터뜨렸다.
“내숭은 치워둬라. 네년도 내 육봉 맛이 궁금할 것이다.”
“아응, 산군……!”
그는 곱게 땋은 머리채를 콱 쥐고 흙바닥에 찍어눌렀다. 미약하게 저항하는 몸을 잡아 누르고 갈퀴처럼 흙을 헤집는 손을 꺾듯이 비틀어 붙들었다. 안강은 껄껄 웃으며 제 아래서 버둥거리는 소화를 희롱했다.
“옳지, 계집이 이만큼은 팔팔해야지.”
썩은 내가 나는 입술이 다가왔다. 사람보다 족히 서너 배는 큰 입이 턱까지 모조리 삼키고 소화의 입가를 날름거렸다. 독한 내에 혀가 도망치면 아예 손으로 입을 벌리고 살덩이를 끄집어내 쭉쭉 빨았다.
“우욱!”
비위가 상해 토악질을 하니 끌끌 웃으며 젖가슴을 물고 유두를 혀뿌리로 비볐다.
“네 조가비는 얼마나 싱싱하게 다물렸는지 보자.”
다리가 하늘을 향해 거칠게 열리자 소화가 양손으로 제 음부를 가리며 숨을 학, 하악, 몰아쉬었다.
“소녀의 순결을 거두신 대신에 산군은 무엇을 주시겠습니다.”
“빌어먹을 년, 손목을 부러뜨리기 전에 어서―!”
“별당은 싫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어 산군과 먼저 혼례를 올리지 못하였으나, 본래 각시의 자리는 제 것이었어요. 운 좋게 자리를 꿰찬 것을 별당으로 보내고 저를 안채에 들이시렵니까?”
‘가, 각시?’
목멱산의 각시가 바뀌었고, 이게 진짜 각시라고?
산군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제 것에 손을 대는 것이었다. 손을 대는 것도, 손을 탄 것도 죽는다. 아비와 형제가 물려 죽을 적에 그가 얼마나 잔혹한지 아로새기지 않았는가.
안강이 당혹스런 얼굴로 딱 맞물린 가슴을 떼었다. 그것을 먼저 혼례 치른 각시에 대한 정으로 오인한 소화가 스스로 음부에 손가락을 찔러넣었다.
찔꺽, 찔꺽.
“목석같은 연이가 산군을 어떻게 만족시켰겠어요.”
“네, 네년…….”
“약조만 해주시면 이 구멍에서 열락을 맛보실 터인데.”
손가락을 하나 더 찔러넣고 허리를 비틀며 “아흐흑!” 크게 신음하자 안강의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갔다. 하초가 크게 부풀어 이내 터져나갈 듯하였다.
계집애들이 제 그림자만 보아도 소스라쳐 도망가는 통에 그 좋은 색사를 보름이나 못했다. 인내는 짧아질 대로 짧아져 있었고, 두려움보다 음욕이 앞섰다.
“에잇! 네 좋을 대로 해라!”
안강이 달려들자 소화는 깔깔 웃었다. 그는 소화의 양손을 찍어 누르고 단숨에 성기에 양물을 밀어붙였다.
“아으응―!”
“오냐, 오냐. 지아비 좆 맛이 어떠냐.”
“아앙! 다, 달기도 하고 맵기도 합니다, 아흑,”
“맛 좋아 죽겠지, 응? 내 자지에 속살이 이리 달라붙어 오지 않어. 헉헉대는 꼴이 개만도 못하구나.”
“아흑, 흑! 산군, 사, 산군!”
허씨는 소화가 말도 떼기 전부터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외눈박이 점쟁이가 그러더구나. 내 집에 왕후장상의 씨가 들어올 거라고. 소화야, 소화야. 어서 자라 어미에게 대궐 구경을 시켜다오.’
어미고, 아비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만 내주었다. 그런 부모와 임금이 주선한 혼사이니 오죽 귀한 혼처일까 싶었다.
괴귀는 목석같은 연이와 지루한 색사만 하였을 터. 내 허리를 돌려 혼을 쏙 빼놔야지. 가노주제에 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연이 고 계집애 따위 생각도 나지 않도록.
풀무질은 짧았다. 오 분도 채 방아를 찧지 못하고 질구 안에 울컥, 울컥 파정했다.
“크흐흣…….”
안강이 허리를 떨며 잔뜩 사정하자 소화는 땅을 짚고 일어나 안강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학, 하악, 숨을 몰아쉬며 안강의 팔을 끌어당겨 제 가슴을 쥐게 했다.
힘 빠진 성기에 애액과 정액이 질질 흐르는 음부를 바짝 붙여 위아래로 흔들자 안강은 금세 다시 발기했다.
“그간 목석, 같은, 흐으응! 계집애만 안으셨으니, 얼마나 지루, 아흑… 지루하셨습니까.”
“크흐흑!”
안강이 젖가슴을 주무르며 땅에서 허공으로 퍽, 퍽, 성기를 밀어붙였다.
“언제까지… 아앙, 목멱에만 계시렵니까.”
“크흐!”
“임금도 머리를 조아리는 산군이 어찌 산중만 호령하셔요.”
음부를 잡아 벌리고 안강의 것을 입구에 맞춰 조준하자 그는 조급해져서 꺽꺽거렸다.
“소녀는 산에서만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 사는 대궐에서 중궁과 나란히 앉아 상연도 관람하고…… 아윽!”
안강이 기어이 참지 못하고 퍽! 뿌리까지 짓쳐 박았다. 바들바들 떨던 소화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바르르 떨었다.
“흐으윽, 사, 산군, 소녀의 청을 들어주시겠지요?”
“허억, 허억!”
소화는 개울에서 안강의 씨를 세 번을 받아냈다.
일각이 지나도 오지 않는 소화를 찾아 부모와 종, 까투리, 백사, 산서가 개울에 왔을 적엔 안강은 사라져 없고 쓰개치마로 몸을 가린 소화가 밤꽃 냄새를 가득 묻힌 채 주저앉아 있었다.
“에구머니나!”
소스라치게 놀란 동래 어멈이 소화에게 달려가 얼른 몸을 가렸다. 윤 참판과 허씨는 기겁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너, 너, 소화… 네가…….”
허씨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딸을 가리키자 소화는 처연한 체 어깨를 떨구었다.
“산군의 처가 되었어요.”
“뭐, 뭐?!”
“이 개울에서 저를 안으시고 신방에 들이겠노라 약조하셨습니다.”
까투리와 백사, 산서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까투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저앉자 산서는 얼른 소화에게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호랑이 정 냄새가 맞아…….”
“아기 마님이 신방에 든 지 석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변고가.”
여종들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