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잇닿을 연(聯) (5/7)

5. 잇닿을 연(聯)

 털이 쭈뼛 설 만큼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마당에 나타난 미남을 본 윤 참판이 마른침을 삼켰다.

 6척은 족히 넘는 장신에 마른 체형이나 넓은 어깨, 새카만 머리칼과 대비되는 샛노란 눈. 필시 사람은 아니었다.

 “뉘, 뉘시오…….”

 “감히 내 각시에게 손을 올리고.”

 각시? 하면 이 남자가―!

 깨닫는 순간, 마당에 있던 종들이 일제히 낮게 엎드렸다.

 “산군.”

 “산군.”

 목멱을 비웠던 산군이 돌아왔다.

 윤 참판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 허씨가 살갑게 웃으며 나섰다.

 “처음 보는 사위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차차 설명하도록 하고, 소화야.”

 그녀가 딸을 향해 나긋나긋 손짓하며 “오랜만에 뵌 낭군께 인사드려야지.” 하고 말을 이었다. 한데 딸은 자리에 우뚝 굳어져 다가오지 않았다.

 “소화야?”

 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허씨와 윤 참판이 소화에게 “무엇 해. 어서 오지 않고.” 재촉했으나 그녀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산군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조화야.’

 무슨 소리야. 산군은 흉측하고 더러운 거죽을 쓴 도깨비인데. 저리 아름다운 남자를 보는 건 일생 처음이었다. 영물이라 둔갑하였나 싶었는데, 표정이며 목소리가 개울에 배를 맞춘 이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러던 찰나 산군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장신의 사내 둘이 웬 검은 호랑이를 질질 끌며 들어왔다.

 무랑과 장탁이 마당 구석에 호랑이를 내던지자 크르륵, 신음한 호랑이가 이내 사람으로 변했다.

 “사, 산군!”

 소화가 피와 침을 질질 흘리는 안강을 향해 달려갔다.

 “어찌된 일입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이리 다치시고…… 산군, 산군! 일어나 보세요.”

 “산군이라니?”

 산서가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소화가 소리를 내질렀다.

 “어서 산군을 부축하지 않고 뭣 하는……!”

 “별당 아씨는 어찌 안강 님을 산군이라 부르십니까?”

 까투리마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산서, 까투리와 함께 소란을 지켜보던 백사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설마!” 소리치며 소화를 노려보았다.

 “별당 아씨 몸에서 나던 호랑이 정 냄새가 안강 님의 것이었구나!”

 소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분께서 분명 스스로를 산군이라 하시고, 내게 신방을 내어주시겠다고 하시었는데!”

 이상하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어째서 분위기가……. 소화가 안강을 붙잡고 화급히 물었다.

 “제 말이 맞지요? 분명 제게 산군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

 “대답하세요, 산군! 그렇다고 말씀하셔야 하잖아요!”

 “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거야!”

 안강이 소화를 떠밀고 엉금엉금 기어 산군에게 다가갔다.

 “제, 제가 어찌 산군을 참칭하였겠습니까, 형님. 저년이 망상에 사로잡혀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한낱 미물을 이 아우보다 신뢰하는 것은 아니시지요? 예?”

 소화는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아니라니. 그럼 나를 수태시킨 사내는 대관절 누구란 말야. 그녀가 떨리는 눈으로 산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건, 이건 뭔가 잘못된…… 말도 안 되는…….”

 “어째서 이 계집에게 청화 향이 나는 거지.”

 영물조차 쉬이 접할 수 없는 귀한 청화는 오직 각시를 위한 것이었다.

 산군은 분명 입가엔 미소를 띠우고 있지만, 눈엔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당의 입들은 서릿발에 묻혀 움직이지 못했다.

 “황우임.”

 지목하여 물으니 황우임은 자세를 바로 하여 엎드렸다.

 “별당 아씨께옵서 향을 흡족해하시어 안채에 핀 청화를 남김없이 별당에 옮겨 심으라 명하셨나이다.”

 “별당 아씨라. 내가 들인 적 없는 시앗이 어째서 나의 별당을 차지하고, 내 각시의 것을 탐하였을까.”

 산군은 제 다리에 들러붙은 안강의 팔을 단숨에 짓밟았다. 동시에 우지끈 소리와 함께 어깨까지 비틀렸고, 안강은 미처 다 명이 끊어지지 않은 해충처럼 꿈틀거렸다.

 “아우야, 나를 끝내 속일 수 있을 성싶었느냐.”

 “사, 사, 산… 산…….”

 산군은 꿇어앉아 엉금엉금 물러나며 실금하는 안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구미호의 꾐에 넘어가 목멱 아래 군사를 숨기고 있는 것은 꽤 재미난 볼거리였지. 나를 참칭해 감히 목멱에 정을 뿌린 것도 봐줄 만은 하였다.”

 살려주려는가 보다. 성급히 생각한 안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찰나, 그의 뺨을 툭툭 두드리던 산군이 눈매를 나붓이 휘었다.

 “각시께서 주무시는 신방에 얼씬거리지만 않았어도 내 아비 자식을 모두 물어 죽이진 않았을 것이 아니냐.”

 안강이 모자란다고 해서 그 부친 남혁까지 약골인 것은 아니었다. 한때 남혁은 산군 다음가는 호걸로, 한 번 포효하면 팔도의 새들이 자취를 감추고 앞발로 땅을 사납게 내리치면 천지가 요동쳤더랬다.

 안강은 아비가 산군의 손에 찢어 발겨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산군이 아비의 목을 비틀어 쥐자 아비는 어린애 댕기처럼 공중에서 흔들리다가 종국엔 현신도 하지 못하고 까무룩 숨이 끊어졌다.

 저보다 족히 두 척은 더 큰 아비의 목을 손아귀에 쥐고 나붓이 웃던 산군의 모습이 생각나자 안강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었다.

 ‘니미럴! 니미럴!!’

 개울에서 안은 계집 맛이 제법 마음에 차 산군이 돌아오지 않는 틈에 슬쩍 다시 목멱을 찾았다. 한데 제 정을 받은 계집은 보이지 아니하고 웬 여인이 신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치맛자락이 대청을 미끄러질 적에 목단 향이 풍겼다. 살 내음도 저리 달까 궁금하던 찰나에 장지문 밖으로 들리는 눈물 어린 숨소리를 들으니 교성도 듣기에 좋겠구나 싶어 교합도 전에 씨물이 줄줄 흘렀던 것이다.

 참지 못하고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 난데없이 산군의 호위들이 나타났다.

 ‘결국엔 치마폭도 들추지 않았잖아!’

 안강이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걸했다.

 “그, 그것은, 산군 없는 목멱에서 각시님이 외로우실까 하여 말벗이나 되어드리려…… 혀, 형님… 크아앗!”

 반듯하던 산군의 손톱이 일시에 날카로워진다 싶었더니 눈 깜짝할 새에 안강의 목을 파고들었다

 “쉬― 내 각시 앞에서 고약한 입을 열지 마라.”

 “크흐흐흑…… 끅…….”

 안강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하자 산군은 몸을 밀어 넘어뜨리곤 무랑에게 눈짓했다.

 무랑이 안강을 질질 끌고 나서는 것을 보고 종들은 안강이 젯밥 받는 날이 오늘임을 예감하였다. 각시님 앞이 아니었더라면 산군에게 직접 눈도, 혀도 뽑혀 엉망으로 나뒹굴었을 것이 틀림없다.

 상황이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허씨가 소화의 어깨를 흔들었다.

 “대체 무슨 말이냐, 응? 저것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게야.”

 소화가 굳어 대답이 없자 이번엔 참담하게 무너진 표정의 윤 참판을 붙들었다.

 “대감, 말씀 좀 해보셔요. 우리 애에게 이상한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

 이미 상황을 파악한 윤 참판은 입을 열지 못했다.

 소화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제가 수태한 아이는 산군의 씨가 아니라 흉악한 괴귀의 씨임이 틀림없다. 그녀가 무릎으로 기어 산군을 붙었다.

 “사, 산군. 산군. 제가 소화랍니다. 나라님께서 보내고, 본래 신방에 들었어야 할 사람이 저여요. 한데 괴귀가 저를, 저를…….”

 소화는 처연히 눈물지으며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산군이라 믿었기에 괴귀의 겁탈을 입 밖에 내지 않았어요. 이 마음은 정절을 지킨 거여요. 그러니까―”

 “가엽기도 하지.”

 “아… 산군…….”

 소화의 눈빛이 금세 몽롱해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내는 본 적이 없었다. 옥황상제가 직접 빚은 것처럼 어느 한 곳 곱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

 ‘이런 사내라면.’

 소화는 붉어진 얼굴로 어깨를 바짝 움츠리며 말했다.

 “저는 별당이라도 좋습니다.”

 다른 씨를 배태하였으니 억장이 무너지지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자, 다음을.

 “산…….”

 “각시.”

 산군은 소화를 본체만체 않고 연에게 다가갔다.

 “찬 바닥에 주저앉아 계시면 이 마음이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

 연은 차마 소리를 내지 못하고 구순만 달싹였다. 산군은 각시를 다정히 일으켜 뺨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주고는 손을 내밀었다. 뻗은 손에 선명한 핏자국을 본 산군이 “이런.” 하며 거두려 하자 연이 살포시 손끝을 잡았다.

 “두렵지 아니하십니까.”

 “두렵습니다…….”

 “한데도 낭군의 손이 민망스러울까 억지로 내밀어 주셨습니까.”

 “……저는 보고 싶어서, 나으리가, 그러니까…….”

 성이를 불러 달라 고집을 부려서 싫어진 줄 알았다. 이름을 속이고 감히 비천한 몸으로 산군의 내실에 들어 오만 정이 떨어진 줄로만 알았다.

 산군은 환히 웃으며 연을 끌어당겼다.

 “어찌 저를 기쁘게만 하시는지.”

 산군의 냄새다. 두 달이 지나는 동안 금침에서 사라진 냄새. 연이 품에 고개를 묻자 산군은 다정히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연아!”

 허씨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낭군 각시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제야 내막을 눈치챈 허씨는 치맛자락을 쥐고 급히 걸어 연을 향해 다가갔다.

 “무엇하니. 산군께 소화의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 달라 청해야지!”

 “…….”

 “대감이 너를 집에 들일 적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만류하였는지 아느냐. 역당의 자식이 호의호식하는 것으로 보이면 너희 남매가 곤란할까 하여 내 가슴이 찢어져도 사납게 대한 것이다.”

 허씨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연에게 손을 뻗었을 때였다. 산군이 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할까요.”

 “저는…….”

 “각시께서 원하시는 무엇이라도 합니다, 저는. 죽이라 하시면 그리할 테고, 용서하라 하시면…….”

 산군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중얼거렸다.

 “저 여인을 시앗 삼아 별당에 들이지요.”

 흠칫 놀란 여종들이 산군과 연을 올려다보았다. 까투리와 백사, 산서의 눈에 간절함이 깃들었다. 황우임마저 전혀 기꺼운 기색이 아니었다.

 별당에 저 요망한 인간 계집이 있는 한 제 명에 살 수 없다. 내내 보지 않았는가. 창고에 멋대로 드나들고, 연의 종들의 이마를 깨고, 손까지 올리는 것을.

 “아기 마님…….”

 “마님.”

 반대쪽에선 윤 참판과 허씨가 간절하게 소리쳤다.

 “연아!”

 “어서, 연이야. 너는 선한 아이지 않니.”

 연은 고개를 조금 수그렸다. 목이 바짝 탔으나 억지로 목소리를 냈다.

 “시앗 삼는 것은…… 싫습니다.”

 “하면요.”

 “저는, 저는 제가 낭군의 오롯한 각시이길 바랍니다.”

 얼어붙은 대청 앞에 기분 좋은 목 울음이 낮게 깔렸다. 후후, 웃은 그가 연의 눈꺼풀에 입 맞추며 “잘했어요.” 속삭였다.

 “황우임.”

 “예.”

 “각시를 신방에 모셔라.”

 황우임이 비척비척 일어나 연에게 손을 뻗었다. 저보다 더 병자 같은 그녀가 “아기 마님.” 하며 조용히 부르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제가 방에 들어가야 이들도 쉴 수 있을 터였다.

 무랑이 윤씨 일가를 신방과 멀리 떨어진 별당에 옮겨두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산군이 느른히 문을 넘어서자 도깨비 장탁이 뒤를 쫓았다.

 “네가 사람이었더라면 진작에 귀신이 잡아갔을 것이다.”

 힐난하는 말에 산군은 빙긋이 웃었다.

 산군이 태부인에 의해 쫓겨났을 적에 만난 장탁은 그에게 말을 편히 하는 유일한 상대였다. 그가 그저 웃는 산군을 쏘아보았다.

 “결국 뜻대로 일이 풀려 좋으냐?”

 “좋지. 좋지 말고.”

 ‘저는, 저는 제가 낭군의 오롯한 각시이길 바랍니다.’

 은애하는 각시께 달큼한 말을 들었는데 기쁘지 아니할 리 있겠는가. 두 달간 멀리서 목멱을 바라보며 수음만 하던 일이 허사는 아니었다.

 장탁이 쯧, 혀를 차고 물었다.

 “안강은 어찌 처리할 테냐.”

 “원하는 대로 놀아나 주었으니 양물이나 뽑아서 단숨에 죽여주어라.”

 산군의 목소리가 선득하게 가라앉자 장탁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스물두 산맥의 주인인 산군이 고작 인간의 진명을 알아내지 못할 리 없다. 각시의 이름이 윤소화가 아니란 것은 저고리 매듭을 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진명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기에 입을 다물어 드렸을 뿐. 아랫것들을 풀어 내막을 알아내기까지는 한 시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바로 나서 윤씨들을 찢어발겼을 수도 있었으나, 그리하면 선한 각시 마음에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짐으로 남을 듯하여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소화라 부르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저를 끌어안는 것도 퍽 귀여웠고.

 ‘한데 감히 그따위 서신을 보내 명을 재촉해.’

 보고 있어도 그리운 각시를 떼어놓고 근지에 웅크려 안강과 소화가 원하는 대로 장단을 맞추는 것을 보는 건 귀찮은 일이다.

 산군이 청화 밭에 이르렀을 때 별당 안에서 우당탕! 소음이 일고 잔뜩 흥분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멍청한 것! 이 불효막심한 년! 괴귀를 산군으로 오인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아비에게 뺨을 맞아 나뒹군 소화가 끅, 끅 눈물을 흘리며 신음했다. 팔짱을 낀 채 방관하던 허씨는 문간의 인기척을 느끼고 흠칫 물러났다.

 “산군……!”

 이전처럼 미소짓고 있으나 연이 앞에서의 온화하던 기색이 거짓인 양 사나운 기세가 휘몰아쳤다. 산군이 성큼성큼 걸어 주저앉은 소화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소화의 눈에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얼굴을 붉히며 산군의 손을 잡으려는데.

 “꺄아악―!”

 팔이 뒤틀렸다. 산군은 꿇어앉아 비명이 연이어 튀어나오는 입안에 손을 밀어 넣고 새빨간 혀를 잡아챘다.

 “혓바닥의 쐐기가 내 각시를 평생 찔렀으니 가져가마.”

 혀가 끊어지고도 소화는 죽지 못하고 온몸을 뒤틀었다.

 허씨 부인은 딸의 꼴을 보고 질겁하여 뒷걸음질 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주저앉았다. 산군의 시선이 벌벌 떨리는 허씨의 손에 닿았다.

 “내 각시에게 휘두른 손은 필요치 않겠지.”

 귓속으로 서걱거리는 소리가 파고들기 무섭게 격통이 몸을 파고들었다. 손목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윤 참판은 우뚝 굳어져 움직이지 못했다. 산군은 두루마기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허공에서 윤 참판과 산군의 시선이 얽혀들었다.

 “저, 저는 그 아이에게 죄, 죄가 없, 없……!”

 “영달을 위해 지기를 팔고 그 자식들을 노비로 전락시킨 주제에 은인 행세를 하였으니 네 죄가 가장 크지.”

 어떻게, 어떻게 그것을……!

 산군이 다가가기 무섭게 윤 참판은 샛노래져 히익! 히익! 비명을 내질렀다. 별당 안으로 온갖 괴이한 것들이 밀려들더니 참판의 온몸을 옥죄였다.

 “히이익―! 사, 살려줘!”

 괴이한 기운이 끼히히, 웃으며 살을 물어뜯고 입안으로 쑥 들어와 창자를 헤집고 지나갔다. 윤 참판은 마치 실성한 사람마냥 눈물과 침을 줄줄 흘렸다.

 별당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던 윤씨의 종들이 난데없이 절규하며 온몸을 더듬는 주인을 보고 마른 침을 삼켰다.

 장탁과 무랑은 참판의 꼴을 보고 혀를 찼다. 인간에겐 보이지 않으나 온갖 삿된 귀들이 윤 참판의 몸을 점령하여 날뛰고 있었다.

 산군은 참판에게서 상제가 인간에게 내리는 다섯 가지 가호를 모두 거두었다.

 병마에게서 육신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니 온갖 병을 앓을 터이고, 신의가 사라져 평생을 외롭게 살 것이고, 악운을 떨치지 못할 테니 손대는 것마다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질 테고, 지혜가 좀 먹히니 그간 쌓은 학문이 헛물이 될 것이고, 울화를 다스리지 못하니 고초를 피할 수 없을 터였다.

 “무랑아.”

 “예, 산군.”

 “저들을 목멱 아래로 쫓아 보내고 목숨을 끊어내지 못하도록 종을 붙여 지켜라. 임금에게 이 일을 소상히 전해 내 처가의 억울함을 풀어주도록 하고.”

 “명 받잡겠습니다.”

 윤씨들이 군왕을 속인 죄로 끌려가 노비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건 보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무랑이 윤씨들을 짊어지고 하산한 뒤, 산군은 신방에 들어왔다. 우두커니 앉아있던 연이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수그렸다. 산군은 다정히 웃으며 등 돌린 각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본 낭군을 안아주지 않으십니까.”

 재회의 기쁨에 잊고 있었으나, 연은 산군에게 서운했다. 말도 없이 떠나놓고선. 버림받은 걸까 봐, 다시는 그 미소를 보지 못할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데.

 연이 침묵하자 산군이 아이를 살살 꾀듯 정다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각시가 그리워 눈에 진물이 날 것 같았지요. 제 눈이 온전한지 살펴주십시오.”

 “……대청 앞에서 뵈었을 적엔 멀쩡하셨습니다.”

 “하면 어여쁜 내 각시가 상한 곳이 없나 살펴보게 해주십시오.”

 연은 입을 앙다물고 치마를 꼭 쥐었다.

 “허언이십니다.”

 “그럴 리가.”

 “제가 어여쁘시다면서 두 달이 넘도록 서신 한 장 주지 않으시고…….”

 산군은 연을 끌어안은 채 목덜미에 입술을 꾹 눌렀다.

 “저는 내내 각시를 보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연이 고개를 돌려 산군을 바라보았다.

 “근처에 계셨습니까?”

 “예.”

 연의 동공에 화르륵 불길이 일었다. 산군을 밀쳐내고 일어나선 눈에 바짝 힘을 주었다.

 “제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재보다 검을 터인데, 고약하십니다. 무정하셔요.”

 “그게 아니라…….”

 “홀로 주무십시오.”

 “잠깐, 각시.”

 산군이 따라 일어났으나, 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장지문을 나섰다.

 연이 걷는 곳마다 산군이 졸졸 쫓는 것을 보고 종들이 기함하였다. 부엌문 뒤에 다닥다닥 붙은 까투리와 백사, 산서가 킥킥 웃으며 주인 내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살아생전에 이런 구경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산군이 아기 마님께 저리 안달복달하시니.”

 “암.”

 윤씨들은 내던지고 돌아온 무랑이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삼켰다. 장탁도 고소하다는 얼굴로 실소를 흘렸다.

  그 후로 사흘. 각시는 정말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온종일 아우 성이의 방에서 지내며 산군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적엔 얼른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구들장 위에서 서책을 넘기던 성이가 수를 놓는 연을 힐끔 쳐다보았다.

 “누이.”

 “그래.”

 “오늘도 이곳에서 주무시나요?”

 바늘을 천에 꿰어 넣던 연이 눈을 크게 뜨며 성을 돌아보았다.

 “누이가 있는 것이 곤란하니?”

 누이와 함께 잠드는 것은 기껍지만, 신혼의 단내에 젖어있어야 할 신부가 사흘째 신방을 찾지 않으니 걱정스러웠다. 성은 가만히 누이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좋고 말고요.”

 “성이 네가 귀찮으면…….”

 “또 괜한 걱정을 하시고. 저는 잠시 산책이라도 하고 올 테니 마저 수를 놓으세요.”

 방을 나서는 성의 뒤로 연의 시선이 달라붙었다.

 목멱산은 좋다. 윤 참판의 행랑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극락이겠지만, 아름다운 목멱산은 각별했다. 산군의 구역엔 북풍도 기승을 부리지 못하여서 낮이면 약간 쌀쌀할 뿐 두툼한 외투가 필요하지 않았다.

 성의 뒤로 작은 영물들이 살금살금 따라붙었다. 아기 마님의 아우는 다 큰 영물들에겐 기특하고 지혜로운 도련님이었고, 어린 영물들에겐 호감의 대상이었다.

 태어나 줄곧 행랑에서 지내셨다면서 어찌 저리 예의 바르고 고우실까. 붉은 도깨비 묘리가 한숨을 터뜨렸다.

 책을 읽으며 거닐던 성은 머리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우뚝 멈추었다. 산군이었다.

 “목멱산의 주인께 예를 올립니다.”

 산군의 잇새로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자의 아우이니 이 몸에겐 처남이 아닌가. 한 가족끼리 멀리하지 말고 정답게 지내세.”

 “아…… 예.”

 “누이는 잘 있나.”

 “예, 방에서 수를 놓고 계십니다.”

 “식사는?”

 “호박죽을 몇 술 뜨셨습니다.”

 “방이 작아 두 사람이 지내기엔 힘들 것인데.”

 은근한 어투였다.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겠다. 누이를 살살 꼬드겨 신방으로 돌려보내란 뜻이겠지. 온화하게 웃은 성은 책을 소리 나게 덮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외려 누이와 함께 지내니 기쁘지요.”

 이것 봐라.

 열 두엇밖에 되지 않는 것이 산군 앞에서 겁도 먹지 않는다.

 “신경 쓰여 서책이 넘어가지 않을 거다.”

 “상황에 따라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어찌 학문을 닦겠습니까.”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어린 것이 맹랑하다. 각시가 애면글면한 아우만 아니라면 당장에 호수에 처넣을 텐데, 그리 하면 신방에 돌아오기는커녕 다신 각시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손에 쥔 것을 보니 윤봉의 호국서도 취향에 맞겠군.”

 “호국서라면 조선 선비들이 모두 구하려 안달하는 서책이 아닙니까. 보고야 싶지만 그런 귀한 것은…….”

 “창고 있는데.”

 “예?!”

 성이 눈을 홉뜨자 산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국서가…… 제, 제가 그것을 읽을 수는 없겠습니까. 깨끗하게 읽고 서둘러 돌려드리겠습니다.”

 “뭣하러.”

 단호한 대답에 성의 어깨가 떨어졌다. 부친 석환을 꼭 빼닮은 성은 서책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노비로 지낼 적엔 윤 참판의 등 뒤에서 흘끔흘끔 몇 자를 엿보고 지푸라기에 옮겨 적어 내내 끌어안고 다녔다.

 “그냥 가져.”

 “우와!”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오자 성은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산군은 이제야 열두 살짜리 애로 보이는 처남의 어깨를 두드렸다.

 임금이 진상하는 것 중엔 꼭 서책 몇 권이 끼어있었다. 저희들은 귀하다 여겨 보낸 것이겠지만, 정말로 무료할 때 외엔 땔감이 될 뿐이었다.

 “하, 하면 서책은 언제 받을 수 있을는지요.”

 “오늘 밤 전하라 이르지. 한데 밤새 서책을 보면 누이가 잠을 설치지 않겠나?”

 “그렇죠!”

 성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낭군 품에서 푹 주무시는 것이 누이에게도 좋을 겁니다!”

 산군은 만족스럽게 웃고, 성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야기 나온 김에 함께 창고로 찾으러 갈까.”

 “그래도 됩니까?”

 마음 맞는 매형보다 부자 매형이 좋다는 말에 시큰둥하였는데, 직접 겪으니 좋기는 좋았다. 성이 산군에게 얼른 길을 트며 말했다.

 “가시죠, 산군.”

 “누이의 낭군을 언제까지 산군이라 칭할 텐가. 다정히 부르면 누이가 안심할 터인데.”

 “그건 차차…….”

 산군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윤명규의 정요치국서도 창고에 있던가.”

 “형님!”

 성이 산군의 옷깃을 잡으며 눈을 반짝였다.

 날이 저물고 제 방으로 돌아온 성이는 옆구리에 서책을 잔뜩 끼고 있었다. 늘 점잖은 아이답지 않게 신이 나서 책을 늘어놓은 성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보세요, 누이! 호국서와 합자해입니다. 그리고 이건 무려 청요치국서라고요!”

 낮에 있던 일을 들은 연은 기가 막힌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이걸 받고 나를 내쫓겠다는 거야?”

 “내쫓긴요. 이제 슬슬 신방에 돌아갈 때이니 제가 핑계를 만든 게지요.”

 “말이나 못 하면.”

 애를 어떻게 꼬드겼기에 말끝마다 ‘형님, 형님’ 하며 신이 난 걸까. 매일 표정 없이 지내던 때보다야 보기에 좋았지만, 사내들끼리 저만 쏙 빼놓는 것 같아서 복잡한 심경이었다.

 “내가 안 간다고 하면 어찌하려고?”

 “예? 아니 됩니다! 선비가 약조를 어기면 어찌합니까.”

 “이 녀석이 정말.”

 “가세요, 누이, 네? 네?”

 눈을 가늘게 뜨고 성을 바라보던 연이 물었다.

 “또 무엇을 받기로 하였어?”

 “바, 받기는요. 선비는 약조를 목숨처럼…….”

 “성아.”

 “……붓을 만들어 주신다고…….”

 성이 우물우물 말하자 연의 눈초리가 샐쭉해졌다.

 “서책 몇 권과 붓에 누이를 홀랑 팔아먹은 거니? 하늘에서 아버님이 보시면 경을 치실 거야.”

 “아버님도 청요치국서라면 누이를 매형께 냉큼 내주었을…… 말이 헛나왔습니다.”

 연은 성을 잔뜩 혼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우가 이리 뇌물을 잔뜩 받아왔으니 꼼짝없이 신방에 돌아가게 생겼다. 하지만 이리 가는 건 조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장지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시.”

 산군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창호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쳐다봤다.

 “잘못했습니다. 각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못난 낭군입니다. 이리 빌 테니 각시가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

 “다시는 각시를 걱정시키지 아니하겠습니다.”

 홀로 돌아가는 길이 민망할까 봐 용서를 비는 척 데리러 온 것이다. 연이 손을 꼼지락거리자 성 또한 말을 보탰다.

 “형님이 저리 비시는데 마음 푸세요, 누이.”

 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못 이기는 척 일어나 문밖으로 나섰다.

 “가요.”

 산군이 눈매를 접으며 연의 손을 잡았다. 오래 기다린 모양인지 손이 차게 식어 있었다.

 신방에 들어가자 오색 다식과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녹차가 상에 곱게 놓여있었다. 제가 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린 모양이었다.

 연이 상 앞에 앉으며 산군을 힐끔 쳐다보았다.

 “앉으시지 않고 어째서 서 계십니까.”

 “곁에 앉으면 끌어안고 싶어질까 봐.”

 “……됩니다.”

 웅얼거리는 말에 산군은 연은 번쩍 들어 무릎에 앉히고 손을 매만졌다.

 “처음 왔을 적엔 손에 뼈가 불거져 있었는데.”

 “흉했지요…….”

 “잘 드시고, 잘 주무시는 착한 각시를 둔 것이 흡족하여 그럽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와요.”

 연의 픽 실소를 흘리자 산군이 입술을 매만졌다.

 “낭군이란 자가 각시의 이름도 모르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다시 돌아왔다. 연은 떨리는 눈으로 샛노란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구순을 열었다.

 “판서 지내신 주석환의 장녀, 주연입니다. 아래로 아우가 하나 있고, 천지에서 제일가는 낭군이 있지요.”

 산군은 쿡쿡 웃으며 연의 뺨을 쓸어내렸다.

 “천지에서 제일 못난 낭군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부족한 각시를 아껴주시니 세상에 그리 다정다감한 분이 따로 없습니다.”

 “이리 걱정을 시켰는데.”

 “그건 좀 큰 단점이지요.”

 “다시는 각시를 걱정시키지 않겠습니다.”

 “예…….”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준 산군의 눈이 일렁였다.

 “다과는 후에 하지요.”

 “예?”

 “입술이 더 고파서.”

 그와 닿는 부분이 모두 뜨거웠다. 요동치는 심장까지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입술이 뭉개질 정도로 뜨거운 입맞춤이 이어지자 타액이 턱 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혀를 옭아매던 그의 혀가 천천히 멀어졌다. 잠시 떨어진 것조차 아쉬워 견딜 수 없었다.

 “내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 모르실 겁니다.”

 “…….”

 “차라리 접어 뱃속에 넣어 다니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인데.”

 “저를 잡아드실 겁니까…?”

 “잡아먹는 것은 각시겠지요. 내 좆을, 그대 입구로.”

 위험한 목소리에 배 안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연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수그렸다. 이글거리는 눈빛이며 뜨겁게 달아오른 피부, 가슴을 매만지고 있는 손. 모든 것에서 자신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거대하게 부푼 성기가 허벅지에 닿았다. 연이 다리를 얽어 피하려 들었으나 산군은 그녀의 다리를 순식간에 잡아 벌렸다.

 연은 배 끝까지 밀려온 치마를 내리기 위해 낑낑거렸다. 그와 한 몸이 되는 건 그녀 또한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혀가 달콤하게 얽힐 때, 유두를 핥으며 뜨거운 눈길로 자신을 볼 때마다 머리가 하얘지도록 흥분하고 있었다.

 가슴에 꽃물이 들었음을 자각한 뒤로 익숙하던 색사가 이리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벌써 흥분하셨습니까.”

 갈라진 웃음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수록 연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매번 새색시마냥 수줍어하시니. 질구는 이미 내 모양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낭군이 주는 색사의 열락을 연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조차 낱낱이 본 적는 성기를 잡아 벌리고 혀를 뾰족하게 세워 쿡쿡 찌를 것이다. 입맞춤하듯 입안 가득 머금고 음핵을 혀뿌리로 문지를 적엔 허리가 절로 뒤틀렸다. 손가락 두세 개가 능히 드나들도록 푹 젖으면 그 후엔…….

 기묘한 기대감에 허리가 들썩였다. 그가 낮게 웃으며 붉게 달아오른 허벅지에 입을 맞췄다.

 “음탕한 내 각시.”

 “다, 다리는 놔주세요. 민망합니다.”

 그러자 정말 다리를 놔주었다. 놀란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제 몸을 탐할 때면 언제나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울먹임도, 애원도 통하지 않았다.

 연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산군은 느른히 물었다.

 “어찌 그리 귀엽게 보십니까.”

 “오늘은… 왠지 다르셔서…….”

 그가 귓불을 깨물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네?”

 “각시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바라는 일만 하여야지요.”

 연이 마른침을 삼키자 산군은 목덜미를 핥아 가슴께로 내려왔다.

 “무엇을 해드리리까.”

 아주 야릇한 목소리였다.

 “젖이 나올 때까지 빨아드릴까요―”

 “흣.”

 오돌토돌 선 혀의 돌기로 곧추선 유두를 휘감았다.

 “좆 대신 손가락을 넣고 흔들어 드릴까요.”

 손가락 세 개를 단번에 질구에 짓쳐 넣었다.

 “내 양물을 각시의 음핵에 비벼 드리는 것도 좋겠지요.”

 그의 무릎이 성기를 대신해 음부를 비볐다.

 “흐윽, 나으리, 제발…….”

 산군은 혀를 길게 늘여 그녀의 아랫입술을 핥았다. 정말 그녀가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흉포한 스물두 산맥의 주인은 기어이 명을 받을 생각이었다.

 질끈 눈 감은 연이 겨우 목소리를 냈다.

 “만, 만져주세요.”

 “어디를?”

 산군은 허벅지 안의 여린 살을 쓰다듬으며 은근한 물었다.

 “…….”

 “어서.”

 연이 그를 새초롬히 노려보다가 다시 눈꺼풀을 닫은 채 억지로 입을 열었다.

 “소음… 순을.”

 “그대 낭군은 아둔하여 질 낮은 단어가 아니면 알아듣기 힘듭니다.”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연은 울먹이며 팔로 눈을 가렸다.

 “어찌 그러십니까. 그런 말을 어떻게 입에…….”

 쿡쿡 웃은 산군이 각시의 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음부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소음순을 문질렀다. 예민해진 육체는 손가락 끝이 피부를 비비는 것만으로도 해면체를 잔뜩 적신다.

 그는 음순을 적시며 떨어지는 꿀을 후룩, 소리가 나도록 핥아먹었다. 엄지와 중지로 음순을 벌리고, 검지로는 내벽을 사정없이 문질렀다.

 “아으응!”

 그녀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성기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서 들어가고 싶다고,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고, 저 안에 비집고 들어가 길을 내고 싶다고 주장하는 듯.

 연의 질구 틈으로 들어간 손가락은 이리저리 내부를 탐색했다. 그러다 한곳에 정착해 뱀이 몸을 비틀 듯 빙빙 돌기도 하고, 여린 살을 찌르며 농탕질을 치기도 했다.

 찔꺽…….

 애액과 낭군의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낭군은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집어넣고 음순이 벌어질 때마다 속을 들여다보았다.

 “한동안 쓰지 아니하였더니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습니다.”

 “나, 나으리, 그만…….”

 “발갛게 붓지 않아 문지르기엔 수월하겠으나 다시 좁아져 쉬이 넣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산군은 각시를 끌어안고선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귓불을 살살 핥으면서 각시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연의 몸이 흠칫 튀어 올랐다가 다시 진정하자 뭉툭한 귀두가 음부를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흐으읏!”

 거대한 것이 틈 없이 안에 들어차니 연이 허리를 바르르 떨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격통은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보다 더 날카롭게 허리를 가로질렀다.

 산군은 괴로워하는 연의 눈을, 뺨을, 턱을 스치고 지나가 다리를 가볍게 들었다. 볼록한 종아리를 입술로 지분거리니 종아리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다리를 더 활짝 벌리셔야지요. 아직 반절이 남았습니다.”

 “흐으, 흐…… 읏.”

 이 큰 것이 반이나 더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질펀하게 젖었던 음부가 고통에 말라가자 산군은 가볍게 물러났다가 얕게 들어가길 반복하며 조금씩 틈을 비집었다.

 각시는 바르르 떨면서도 도망가지 않으려 애써 허리를 내렸다.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여 턱을 간질이자 후, 후, 숨을 고른다.

 “이제 다 들어갔나요…?”

 “아직 멀었습니다.”

 “흐으… 어찌 이리 크셔서…….”

 연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인 산군은 낮게 웃었다.

 “각시의 복이지요.”

 “……아닙니다.”

 연이 눈물 어린 눈으로 산군을 흘기자 그가 단숨에 허리를 쳐올렸다.

 퍽.

 “아흣!”

 “낭군의 양물이 마음에 차지 않으십니까.”

 뿌리까지 들어오고도 성에 차지 않아 밀어붙인다. 연은 자지러지며 산군의 어깨를 바짝 끌어안았다.

 “아으응, 나, 나으리, 그만…… 이제 그만…….”

 “묻지 않습니까.”

 귀두만 걸리도록 쑥 빼내었다가 다시 세게 몰아쳐 들어왔다. 퍽! 퍽! 고랑을 팔 생각인지 산군은 사정없이 연을 몰아 붙었다. 강렬한 고통은 짧았고, 이내 허리가 저리며 익숙한 쾌락이 발끝서부터 밀려들었다.

 쩍― 쩌억― 쩍!

 뭉근한 애액에 젖은 살이 철벅 철벅 부딪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산군은 기어이 답을 들을 모양인지 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연이 “하아앙!” 교성을 내지르며 낭군의 등에 손톱을 박았다.

 “마, 마음에 듭니다, 들어요. 나으리, 아아……!”

 “이리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면… 후…… 그러시겠지요.”

 “하으읏!”

 산군의 눈이 음욕으로 일렁였다. 흉흉하게 발기한 제 것을 조물조물 씹어대며, 들어갈 때 맞춰 벌리고, 나올 때 조여드는 질벽이 요망도 하다. 그가 연의 허리를 반쯤 들고 무릎으로 땅을 디디자 연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래 입만은 난잡하시니, 허기져 다른 사내를 찾을까 각시 홀로 두기가 두렵습니다.”

 “나으리, 하읏! 나으리!”

 허리를 바짝 끌어안은 채 힘을 주어 퍽! 내부를 짓이기니 연이 파르르 떨었다. 동시에 축축하게 젖은 연의 질벽이 와락 달려들어 산군의 성기를 감싸 안았다.

 울컥, 파정하자 씨물이 음부에 미처 다 담기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질질 흘러나왔다.

 연은 색색 숨을 내쉬며 낭군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수태하면 돌려보내실 건가요.”

 등을 토닥이던 산군의 손이 우뚝 멎었다.

 “각시를 꾀려 괜한 말을 하였습니다.”

 “괜한 말…….”

 “도망칠 생각 마세요. 세상이 두 쪽 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실 게 아닙니까.”

 저 하나 사라진다고 천지를 두 쪽 내겠다는 사내가 기가 막히고도 귀여워 연은 가는 실소를 흘렸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 따위 조금도 남아있지 않으니 그저 평생을 낭군 품에서 살아야겠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지만, 이미 정신까지 혼미하지 않은가.

 “나으리…….”

 “예.”

 “나으리.”

 “예, 각시.”

 “내 호랑이 나으리.”

 연이 미소짓자 산군은 그녀의 뺨을 쥐며 달콤하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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