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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어린 날의 이야기 (6/7)

 6. 어린 날의 이야기

 판서로 영전한 주석환의 집안엔 잔치가 한창이었다. 이리저리 보아도 죄 어른들 천지라 어린 연은 말 붙일 상대도 없이 홀로 뒤뜰을 거닐었다.

 “고성댁! 고성댁!”

 중년의 여종이 연의 젖어멈인 고성댁을 부르며 급히 달려왔다.

 “느이 남편이 탁주를 훔쳐 마시고 뻗었단다. 저 뒤에 널브러져 있으니 마님 보시기 전에 얼른 치워.”

 “이 인간이 또!”

 고성댁이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가려다 멈칫하고 연을 돌아보았다.

 “멀리 가시면 아니 되십니다. 금세 다녀올 터이니 이 근처에서만 계셔요.”

 다른 아이라면 두고 갈 생각은 꿈도 못 했겠으나, 연은 또래답지 않게 의젓하여 마음이 놓였다. 고성댁의 당부에 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도 없는 뒤뜰에 우두커니 서서 돌담 위로 날아든 나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바람이 휙! 불어와 댕기를 빼앗았다.

 조부님이 장에 들리셨을 적에 친히 사다 주신 소중한 댕기였다. 댕기를 잃어버린다고 혼을 내시진 않겠지만, 혹여라도 서운하실까 걱정되었다.

 연은 허겁지겁 댕기를 따랐지만, 댕기는 담을 넘어 날아갔다. 담 밑에 작은 개구멍이 있어서 나갈 수는 있는데, 고성댁의 당부가 떠올라서 다리가 딱 굳어졌다

 ‘어쩌지.’

 멀리 가지 말랬는데. 여기에만 있으라고 하였는데.

 고민하던 연이 뒤편을 힐끔 바라보다가 개구멍을 향해 몸을 구부렸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테니 얼른 주워서 돌아오자.

 꾸물꾸물 개구멍을 넘어가니 나무 위에 걸린 댕기가 보였다. 나무 기둥을 붙잡고 몇 번이나 폴짝폴짝 뛰었지만, 닿을락 말락 잡히지 않았다.

 “끄응…… 자, 잡았― 앗!”

 손끝에 겨우 걸렸던 댕기가 다시 바람에 날렸다. 연은 댕기를 따라 정신없이 뛰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댕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연은 한숨과 함께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러고 나서 몸을 일으키는데.

 ‘여기가 어디지.’

 모르는 곳이었다.

 “큰일 났다.”

 어른들이 걱정하시겠어.

 연은 걸음을 재촉하였으나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또 이 길 같았다. 그러다 집에 돌아가기는커녕 산까지 이르러 버렸다.

 “어떻게 해…….”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산짐승이라도 만날까 싶어 오금이 저렸다. 연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풀을 헤치며 걷다가 헉, 숨을 들이켰다.

 바위 아래에 커다란 범이 잠들어 있었다.

 “아윽, 으으윽…….”

 눈물이 울컥 새어 나올 것 같아서 연은 작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범의 근처로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포수들이 사냥하고서 두고 간 걸까…….’

 한참 있어도 범이 움직이지 않아서 연은 살금살금 움직여 바위 아래로 다가갔다.

 그르륵, 그륵.

 벌어진 입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았어!’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자 샛노란 눈이 연을 따라 움직였다.

 산군은 오들오들 떠는 계집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겁도 없이 다가온 주제에 인절미처럼 웅크려선 발발 떨었다.

 ‘저것을 잡아먹으면 기운이 날 것인데.’

 제 앞마당에서 기승을 부리는 두억시니들을 잡아 죽이던 중에 호랑이에게 뒤를 잡혔다. 형제들은 거진 다 명줄을 끊어놓은 줄 알았더니 하나가 요망하게 죽은 체 숨죽이고 있던 것이다.

 감히 제 뒤를 노린 것을 물어 죽이려 하면 두억시니들의 뿔이 옆구리에 박혔고, 두억시니 하나를 밟아 죽이면 미처 다 죽지 않은 호랑이가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서른이 족히 넘는 두억시니와 호랑이를 전부 도륙했을 땐 운신할 수 없었다. 하여 가까스로 인적 드문 곳을 찾아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영물이 사람의 목숨을 거둘 수 있듯,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네들이 가진 날붙이는 제법 날카로워서 떼로 달려들면 영물이라 해도 숨이 끊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적어도 근처에서 나는 약초라도 발라 피를 멎게 해야 개죽음을 면할 터였다.

 “아이야.”

 산군이 쇳소리를 내며 부르자 연은 흠칫 고개를 들었다.

 “호랑이가 사람 말을…….”

 “이리 가까이 오너라.”

 “…….”

 어린 것은 겁을 집어먹어 움직이지 못했다.

 “착하지, 이리로.”

 “으으…….”

 “어서.”

 산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어린 것이라고 만만한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생선 대가리가 아닌 이상에야 호랑이가 부른다고 넙죽 오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쳤어요?”

 “뭐?”

 “다쳤어요?”

 “그래.”

 아이가 쭈뼛쭈뼛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보인가.

 산군은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를 향해 입을 쩍 벌릴 준비를 했다.

 “호오…….”

 그런데 아이가 산군에게 난 상처에 입바람을 불며 토닥였다.

 “아픈 거 날아가라. 날아가라.”

 “뭣 하는 게야.”

 “고성댁은 제가 넘어지면 이렇게 해주는데…….”

 “그런다고 고통이 가실 리가.”

 기가 막혀서 삼킬 기운도 사라졌다. 산군은 자꾸만 호오, 호오 입바람을 부는 아이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말했다.

 “느릅나무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느릅나무…… 올 때 보았어요.”

 “나무뿌리에 종기처럼 난 알맹이들을 캐올 수 있겠어? 그것을 짓이겨 바르면 상처가 낫는단다.”

 연은 기억을 더듬었다. 느릅나무, 느릅나무……. 그러다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에 흉한 것이 붙어있어서 병든 게 아닌가 걱정하였는데, 그것인 모양이었다.

 연이 얼른 뒤를 돌아 뛰어갔다. 산군은 가물가물 감기는 눈에 억지로 힘을 주며 아이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꽤 지나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버렸군.’

 니미럴, 차라리 삼켜버릴 것을.

 포수에게 제가 있는 자리를 고해바치면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 산군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려다 엎어지길 반복했다.

 그런데 그때 자박, 자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치마폭에 화종을 잔뜩 담은 아이가 환히 웃으며 달려왔다.

 “호랑이 님, 이것이 맞지요?”

 “그래.”

 “호미가 없어서 시간이 걸렸어요. 손으로 파내기가 어려워서…….”

 그렇겠지. 화종은 이런 날을 대비하여 구천현녀에게서 강탈해온 것이었다. 천계의 것이 인계에서 자랐으니 독을 품고 끌려나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연은 돌멩이를 주워 화종을 꽝꽝 짓이겼다. 그러곤 산군의 상처에 살살 비벼 발랐다.

 아이의 손을 보는 산군의 눈빛이 묘해졌다. 어찌나 안간힘을 쓰며 화종을 캐왔는지 손톱이 다 덜렁거리고 그 아래에서 핏물이 줄줄 새 나왔다.

 아이는 거대한 몸에 겨우겨우 화종을 바르고 지쳐 잠들었다. 쌀쌀한지 잠든 채로 에치― 에치― 연이어 기침했다.

 물끄러미 아이를 보던 산군이 발톱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품으로 질질 끌어왔다. 이제야 따스한지 품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이상한 녀석.”

 “네에…….”

 정말로 이상했다. 자면서도 꼬박꼬박 “네, 네.” 대답한다.

 “어린 것의 공이 크구나.”

 “네에…….”

 냠냠 입맛을 다시며 대답하는 아이를 보고 산군은 쿡쿡 웃었다.

 “내 너를 찾아내 포상할 것이다.”

 “네…….”

 어린 것의 몸은 따스했다. 잔뜩 다친 데다 수면 성분이 있는 화종까지 바르고 있자니 도무지 잠을 쫓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산군이 눈을 떴을 땐 품에서 고물거리던 것이 사라져 있었다.

 “산군!”

 “산군.”

 무랑과 장탁이 달려오자 산군은 인간화하여 그들이 가져온 두루마기를 걸쳤다.

 “근처에서 아이를 보지 못하였느냐.”

 “아이라니요?”

 “……냄새는 남아있나?”

 무랑이 매우 놀라 물었다.

 “냄새까지 맡으실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당하신 겁니까.”

 “아이 냄새는.”

 “산군의 피냄새에 가려져 맡아지지 않습니다.”

 아쉬워라.

 산군이 노란 눈을 빛내며 주변에 나뒹구는 화종을 바라보았다.

 “인간 임금에게 전해라. 내 다시 각시를 받아야겠다고.”

 “찾는 인간이 있으십니까?”

 “꽤 고왔으니 자라면 절색이 될 터이지. 한성 제일가는 계집을 바치라 해.”

 “예.”

 다시 길을 떠나는 산군의 눈이 어쩐지 온화하여 무랑을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집에 돌아온 연은 고성댁의 치마폭을 잡고 종알거렸다.

 “정말이야. 호랑이가 있었어.”

 “꿈을 꾸신 게지요. 호랑이가 어찌 사람 말을 합니까. 전설 속의 산군도 아니고. 그보다 어서 드셔요. 혼이 나시느라 이제야 한술 뜨시는 거잖아요.”

 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저를 들었다. 정말 꿈인 걸까. 굉장히 멋진 호랑이님이셨는데.

 ‘다시 만나면 좋겠다.’

 연과 산군이 재회한 건 그로부터 십여 년은 훌쩍 지난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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