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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짐승의 사육제 (3/11)

제2장. 짐승의 사육제

설 연휴 직전은 오히려 한가했다. 새로 배당된 사건도 별로 없어서 요한은 밀린 미제를 집중적으로 처리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청사를 나섰다.

연휴구나.

늘 혼자 보내던 명절이었는데 이번 설에는 손님이 찾아온다.

보통은 일부러 당직을 떠맡는 요한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뻔뻔스레 후배에게 당직을 떠넘겼다.

요한은 기지개를 켜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송곳같은 겨울 밤공기마저 상쾌했다.

“어?”

옆구리가 불타오르는 듯한 아픔을 느끼자마자 요한의 근육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요한이 천천히 바닥으로 무너졌다.

* * *

목말라.

요한이 깨어난 곳은 어디도 아닌 곳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곳에 작은 철문 하나만 달랑 달려 마치 콘크리트 상자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무거운 머리를 털털 흔들자 몇 겹으로 얼비치던 시선이 하나로 모였다.

그와 동시에 격렬한 고통이 척추를 내리달았다. 전신의 근육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요한이 자기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검사님 역시 정신력이 강하시구나. 생각보다 빨리 깨셨네?”

“이문화?”

“네. 이문화 여기 대령했습니다.”

묵직한 의자에 억지로 앉혀져 팔은 뒤로 묶여 있고 양 발목 역시 의자 다리에 고정되어 꼼짝할 수 없게 된 자신을 깨달은 요한이 격하게 들썩거렸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뭐 하는 짓이야? 너 이거 당장 안 풀어?”

“미친 새끼는 맞는데 당장 풀지는 않을 겁니다. 풀 거면 내가 왜 힘들게 묶어 놨겠어. 서 검사, 얼굴 예쁜 만큼 눈치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네.”

“안 풀어? 죽고 싶어?”

연한 회색의 스리피스 슈트를 빼입은 문화는 아까부터 흘러나오던 잔잔한 피아노곡의 볼륨을 높였다.

조금도 웃지 않는 문화의 눈이 주광색 조명을 받아 불그스름하게 빛났다.

“서요한 검사님.”

“씨발 새끼야, 너 진짜 죽는다? 어? 죽여 버린다고!”

“저한테 죽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아. 서요한 검사님이 직접 죽여 주실 때까지 절대로 죽지 말라는 말씀이셨던가? 야, 되게 낭만적인 고백인데? 설레서 막 두근두근한다. 저야 서 검사님 손에 죽으면 영광이지요. 누가 먼저 죽을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요.”

문화는 가면을 쓴 것 같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 음악 아세요?”

“이거 풀라고 했다.”

“제목이 동물의 사육제예요. 사육제는 뭔지 알아요?”

“씹새끼야, 당장 안 풀어?”

“카니발은 알죠? 사육제가 카니발이에요. 그래도 사육제가 뭔지 모르겠어요? 힌트 필요해요? 음…… 카니발리즘이 카니발이랑 어원이 같아요. 설마 카니발리즘도 모르는 건 아니지?”

요한이 그르렁거리며 알아듣기 어려운 욕을 내뱉었다.

“기독교 용어이기는 한데, 영어야 워낙 그쪽 용어를 많이 가져다 일상적으로 쓰니까. 검사님 이름 요한이면 그쪽 아닌가? 이미 아는 소리 내가 또 하는 건가? 그냥 참고 들어요. 나도 매일 검사님 잔소리 참고 들어 줬잖아. 부활절 전 40일 동안을 사순절이라고 하거든요. 그동안은 고기를 안 먹어요. 사육(謝肉)은 육류를 키우는 게 아니라 고기를 없앤다는 뜻이거든. 그러니까 고기 끊기 전에 마지막으로 신나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가 사육제(謝肉祭). 제가 말장난을 좋아하거든요. 우리 말의 장점이 동음이의어 아니겠어요? 사육제 기간에 깡패 새끼가 검사님을 사육해 보려고 해요. 어. 얼굴이 왜 그래? 사육제 어원 처음 듣나 보네? 서요한 검사님 무식하네. 한국대 나온 검사가 깡패보다 무식하면 어떡해.”

“미친 새끼…….”

“나 미친 새끼 맞는다니까 아까부터 자꾸 확인하고 그러셔. 서 검사님. 사육제 버텨 내면 내가 근사한 상 줄게요.”

문화가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쳤다.

“그럼 사육제 시작해 볼까요?”

회색 공간은 눅눅하고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습한 공기 탓인지 아니면 바닥이며 벽에 튀어 있는 불길한 얼룩 탓인지, 쿰쿰한 곰팡내 사이로 기분 나쁜 비린내가 났다.

침침한 불빛 때문에 한층 더 스산하고 음침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요한은 벌써 미칠 것 같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공포와 고통, 사람이 걷어차이거나 두들겨 맞을 때 나는 살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끔찍한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이문화는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각 맞춰 정리하고 있었다.

피아노곡을 따라 흥얼거리며 간결하게 몸을 움직이는 그는 요한이 알던 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상했으며, 동시에 괴기스러웠다. 그가 조심스럽게 만지는 물건이 전부 요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코트, 요한의 재킷, 요한의 넥타이, 요한의 벨트, 요한의 양말, 요한의 구두, 요한의 지갑, 요한의 공무원증, 요한의 휴대 전화.

요한은 낯익은 구두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맨발임을 깨달았다.

바닥의 냉기가 발바닥을 뚫고 들어와 냉기가 마치 작은 얼음조각처럼 전신의 혈관을 찌르며 돌아다녔다.

몸이 차갑게 식을수록 머리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성이 바글바글 끓으면서 나온 수증기가 눈과 귀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굳이 무슨 일을 당하지 않더라도 그곳에 갇혀 있다가는 분명 오래지 않아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작은 권총처럼 생긴 물체가 자신의 소지품과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요한이 신음 같은 숨소리를 토했다.

“그거 어디서 났어.”

“뭐요? 아, 이거요?”

문화가 테이저건 방아쇠를 검지에 걸고 달랑달랑 흔들었다.

“그거 경찰 진압용 테이저건이잖아! 어디서 훔쳤어!”

“훔치기는요. 저를 뭐로 보시고.”

“좆같은 조폭 새끼가.”

“그러니까요. 제가 조폭이지 도둑은 아니잖아요? 경찰한테 직접 받았습니다. 저한테 빚을 좀 많이 지신 분인데, 돈 마련할 때까지 잠깐만 맡아 달라 그러더라고요. 아, 그리고 검사님 옆구리에 박힌 침은 잘 빼 뒀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쓰러지기 직전에 옆구리가 뜨끔했던 건 테이저건을 맞았기 때문이었던 듯했다. 무방비한 사람에게 테이저건을 쏘다니. 눈앞의 남자는 정말로, 문자 그대로 미친놈이었다.

요한은 온몸의 근육이 자율신경의 통제를 벗어나 속절없이 무너지던 순간의 막막함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사납게 찌푸렸다.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예쁜 얼굴만 찌그러지잖아요. 저 검사님 얼굴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어허, 인상 쓰지 마시라니까요?”

“미친 새끼.”

“미친 새끼 왜 자꾸 부르시는데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서?”

문화는 테이저건을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가지런히 정돈된 테이블을 한번 둘러본 뒤에 동물의 사육제인지 짐승의 지랄병인지 하는 음악을 껐다.

숨소리가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올 정도의 적요와 손발이 저릿저릿한 한기가 작은 공간을 채웠다.

그는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치고 씨근덕거리는 요한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옷이 흐트러져도 머리가 헝클어져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 아득한 미모였다.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거리거나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 없으면 꼭 인형 같았다. 성별을 넘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릴법한 완벽한 얼굴이었다.

“……말쟁이…….”

“응? 말을 똑바로 말해야 알아듣죠. 뭐라고요?”

“사기꾼 새끼! 너 처음부터 나 속일 생각으로 접근한 거지! 너 같은 놈을 잠깐이라도 믿었던 내가 돌은 놈이지. 평생 그렇게 거짓말만 하다가는 너도 언젠가 남 거짓말에 속아서 뒤질 거다.”

“거짓말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제 이름은 이문화이고, 제 직업은 사업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검사님 분류 방식에 따르면 조폭이고요. 고등학교 중퇴에 청소년 대표까지 올라갔던 왕년의 야구 소년 출신에, 전과는 없습니다. 이대한한테 삥 뜯긴 적 없고, 백호엔지니어링 이창훈 사장한테 지시받는 사람 아니고요. 제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러세요?”

“너, 사장이 시켜서 보낸 거 아니라고 했잖아!”

“아, 그거요. 당연하죠. 제가 사장인데요.”

“미, 미친…….”

“보세요. 제 나이도 모르면서 대뜸 반말하면서 동생이라고 한 사람도 검사님이고, 먼저 연락처 알려 준 사람도 검사님이고,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신나게 가르쳐 준 사람도 검사님이에요. 아, 이창훈이 쓸데없는 짓 벌인 건 미안합니다. 사무실 다 때려 부수고 왔으니까 그걸로 봐줘요. 이창훈을 때려죽일 수는 없잖아요. 응?”

“너희들 전부 한패였을 줄 알았어.”

“요한아. 나 마음 상하게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할래? 나 이창훈이랑 사이 별로야.”

“지랄하네.”

문화의 유머러스하던 표정이 180도 바뀌면서 그의 올리브색 눈 안쪽에서 거칠고 사나운 불꽃이 타올랐다.

“어휴, 얼굴은 참 예쁜데 입이 너무 더러워.”

“야, 이 개새끼야! 지랄하지 말고 빨리 풀어!”

요한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울부짖었다.

“내가 왜?”

요한의 정수리로 문화가 야유하는 목소리가 꽂혔다. 들썩들썩 요란하게 몸을 비트는 요한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아래로 꾹 내리누르면서 문화는 살기가 그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요한을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지금 검사님한테 제일 필요한 건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인 것 같아요. 마음을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게. 응?”

문화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생수병 뚜껑을 따서 바닥에 내려놓고 철문 밖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겨진 요한은 황망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북받쳐 오르는 울분에 다시 발광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문화 개새끼야! 좆같은 새끼야! 너 씨발 이리 안 와? 이거 당장 안 풀어? 죽고 싶어? 야! 씹새끼야!”

얼마나 발악하며 소리를 질러 댔는지 모르겠다. 목이 쉬어 철판을 긁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고함을 질렀지만, 그 누구도 철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몸을 활활 태운 분노의 열기가 가라앉으니 추위가 한층 더 심해졌다. 내내 힘을 주고 버티느라 과도하게 힘을 쓴 허벅지 근육이 기어코 무너져 파들파들 경련하기 시작했고, 그와 때를 맞추어 육안으로도 몸이 흔들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전신이 벌벌 떨렸다.

자신이 부르르 몸을 떨 때마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요한은 홀로 이문화를 생각하고 지난 1년을 생각했다.

이문화가 나가기 전에 마음을 고요한 호수처럼 다스리라고 했던가. 깡패 주제에 명경지수(明鏡止水)도 알다니. 쓴웃음이 절로 배어 나왔다.

이문화에게 깜빡 속아 넘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자기 신세도 우습고, 아무것도 모르고 휘둘리는 자신을 보며 즐거워했을 이문화를 생각하니 그것도 우습고, 그저 멍청하게 군 대가를 치를 뿐인데 독립투사처럼 비장한 흉내를 내는 것도 우습고, 조금만 의심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 단서를 전부 놓친 것도 우습고, 하여튼 전부 우스웠다.

거울처럼 맑아진 요한의 마음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져 갔다.

가위로 썩둑 잘라 버린 것처럼 기억에서 완벽하게 사라진 열세 살 이전의 시간, 결국 적응하지 못했던 학교와 이제는 얼굴조차 잊어버린 새 가족들.

어릴 때는 검사가 되겠다는 꿈이, 검사가 된 뒤에는 검사로서 살아가는 자존감이, 쫓겨났을 때조차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겠다는 집념이 요한을 지탱해 주었다.

그리고 이문화.

몇 시간, 어쩌면 며칠 전까지는 즐거운 기억뿐이었다. 어수룩한 모습도 우직한 모습도 그저 좋게만 보였던 터라, 이문화가 ‘진짜’ 조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도 분명 친우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유학길에 그를 데리고 갈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분명 좋은 사이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기대와 믿음을 깨뜨린 문화에 대한 격한 노여움과 순식간에 돌변한 문화에게 압도당했던 요한을 뒤덮은 것은 수치와 공포였다.

“목말라…….”

두 가지 격렬한 욕구가 요한을 괴롭혔다. 죽을 것처럼 목이 말랐고, 아래가 터질 것처럼 소변이 마려웠다.

둘 다 지금의 요한이 해소하기에 요원한 욕구라는 점을 알고 있으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더는 소리를 지를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아 요한은 그저 입술만 짓씹었다.

“씨발…….”

갈증은 참을 수 있었지만, 요의는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바지를 적셨다. 모멸과 치욕에 이를 악물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입술을 지나치게 세게 씹었는지 입에서 피 맛이 났다. 콘크리트에 짙게 밴 피비린내에 지린내까지 섞이자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절로 구역질이 났다.

내장까지 토해 낼 기세로 쿨럭거리다가 진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혀를 꽉 깨물어 참았다.

억눌렀던 눈물이 기어코 터졌다. 한번 둑이 터지면 다시 막을 수 없듯이 한번 열린 눈물샘은 쉬이 닫히지 않았다.

요한은 아주 오랫동안 소리도 없이 주룩주룩 눈물만 흘렸다. 우는 동안은 차라리 괜찮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으니까.

눈물이 잦아들고, 뺨이 마르고, 허덕거리던 숨이 차분해지자 뒤로 밀어 두었던 본능적 욕구가 다시 올라왔다.

“물…….”

요한은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생수병을 발견하자 갑자기 경기를 일으킨 것처럼 숨을 훅 들이마시고는 몸을 경직시켰다. 이문화가 왜 굳이 생수병 뚜껑을 열어 바닥에 내려놓았는지 깨닫자 새삼스럽게 분노가 타올랐다.

그가 묶여 있는 의자는 묵직하기는 해도 바닥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요한이 몸을 들썩거리면 따라서 들썩거리고, 양옆으로 몸을 비틀면 삐거덕거리며 따라서 흔들렸다.

무릎이 벌어진 채 의자 다리에 발목을 묶여 있는 관계로 일어설 수 없을 뿐, 요한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건 아니었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바닥에 엎드리면, 개처럼 혹은 벌레처럼 피 얼룩이 진 축축한 바닥을 꿈틀꿈틀 기면 달고 시원한 생수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병에 입을 댈 수 있다.

뒤로 묶인 손은 쓸 수 없을 테지만, 혀를 내밀어 물을 핥고 입으로 병 주둥이를 물어 흔들면 겨우 해갈할 정도로는 목을 적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문화가 바라는 것일 테지.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서요한이 그저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무언가를 요한 스스로 버리게 하는 것.

요한은 심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난 적 없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서요한 검사실의 집무실 의자인 것처럼.

나는 목마르지 않다. 나는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지금 둥글고 깊은 연못에 잠겨 있다. 입만 열면 깨끗한 물이 콸콸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은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요한은 몸에서 힘을 빼고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것은 기억을 잃은 뒤 배운 감정 조절 방법이었다. 자신을 소설이나 영화의 등장인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육신의 서요한을 바라보는 정신의 서요한은 그 소설, 혹은 영화의 작가인 셈이었다.

내 몸이 겪는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진짜 나는 지금 여기서 저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끔찍한 현실에서 도망칠 여유가 생겼다.

“하여간 고집하고는.”

얼굴에 액체가 확 부어지는 느낌에 요한이 느릿느릿 눈을 떴다.

속눈썹에서, 코끝에서, 광대뼈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혀를 내밀어 입 주위를 스치는 물을 허겁지겁 핥아먹었다. 작게 웃는 소리나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으나 요한에게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조금만 더, 한 방울만 더.

턱을 타고 뚝뚝 셔츠 위로 떨어지는 물이 아쉬워 요한은 입맛을 다시자 문화가 손바닥으로 요한의 얼굴을 훔쳤다. 요한이 자기도 모르게 문화의 젖은 손바닥을 혓바닥으로 넓게 훑자 문화가 낄낄거렸다.

“내가 이래서 검사님을 좋아해요. 꼬장꼬장하게 자존심 세우다가도 이상한 데에서 확 무너지거든.”

“개씨발 새끼야!”

다 갈라진 목소리로 요한이 고함쳤다. 정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냈던 건지, 요한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문화가 받칠 새도 없이 의자와 함께 털썩 옆으로 쓰러졌다.

“검사님. 그거 알아요? 하루 지났어요. 24시간. 독종은 독종이야.”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의 대가로 물벼락을 맞았다. 이번에는 페트병에 든 생수가 아니라 호스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였다.

“냄새가 나서 참을 수가 없네요. 제가 좀 깔끔한 편이라.”

물 자체는 차갑지 않았지만, 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기에 요한은 순식간에 온기를 잃었다.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심하게 몸을 떨자 문화가 어깨와 머리를 받쳐 의자 채로 요한을 일으켜 세웠다.

“내 몸에, 손대지 마…….”

“얌전히 굴어요. 착하게 있으면 살살 해 줄게요.”

매끄러운 목소리로 문화가 말했다. 마치 요한을 달래는 것처럼 속삭이고는 요한의 귀에 달짝지근한 숨을 불며 웃음소리 같은 비음을 냈다.

“자자, 가만히 있어요. 착하지. 응? 서 검사님. 내가 좋은 것 해 줄게요.”

문화가 요한의 바지 버튼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요한은 무서웠다. 아니, 부끄러웠다. 이건 부정한 일이야. 올바른 일이 아니야. 그렇지만 요한은 문화의 손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얼굴을 가릴 수도 없었고, 몸을 움츠릴 수도 없었다.

“흐윽…….”

“좋아요?”

“죽어, 버려…….”

“좋구나?”

“놔, 손대지…… 헉!”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쟤는 왜 저럴까. 생각 많이 했죠?”

“으, 흐으.”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껴요. 검사님은 여기도 예쁘네요. 신기하다. 검사님 것이라서 그런지 하나도 안 징그러워. 호오. 심지어 제법 크네? 이야, 검사님 대체 눈치 빼고 모자란 게 뭐예요?”

“그, 그만, 윽, 읏…….”

“조금만 더 참아 봐요. 벌써 가면 어떡해. 혹시라도 제가 짜증 나서 검사님 죽여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준비는 해 놨는데, 그래도 귀찮아서.”

자유로운 손으로 철문 앞에 가져다 놓은 커다란 드럼통과 시멘트 포대를 가리키며 문화는 입가를 광대까지 끌어올리고 활짝 웃었다.

강제로 절정을 뽑힌 요한은 앉은 자세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건 ‘행성’이라고 해요. 영화 배경 음악으로 나와서 더 유명해졌어요. 저는 4악장을 제일 좋아해요. 4악장 소제목이 목성이에요. 목성이 영어로 뭐게요? 검사님 요새 영어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대답해 봐요. 그것도 몰라요? 아, 무식하네. 주피터잖아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그래서 제가 4악장 좋아하거든요. 신 중의 신 제우스니까. 검사님. 지금 검사님 신은 누구게요? 네? 대답해 보세요.”

“……씨발, 새끼…….”

“땡. 세상에 씨발 새끼라는 신이 어디 있어요? 지금 검사님 신은 나잖아요. 이문화. 검사님은 이제부터 이문화가 주관하는 세계에서 새로 태어나는 거예요.”

다시 눈을 떴을 때 요한은 의자가 아닌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었다. 다리를 양쪽으로 벌린 채 얼굴을 테이블에 처박고는 허리를 뒤로 쭉 빼고 있었다.

엉덩이 사이에 생생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물감이 느껴지는 건 몸 안쪽.

요한이 그간 한 치의 의심 없이 출구로만 여겨 왔던 항문이 외부로부터 공격받고 있었다.

조밀한 출구의, 아니 입구의 주름이 팽팽하게 당겨져 최대한 벌어진 상태로 낯선 무언가를 물고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점막이 찢어질 것 같은 격통에 몸서리치며 요한은 거부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테이블에 뺨이 짓눌린 그가 겨우 내뱉은 건 다 뭉개진 웅얼거림뿐이었다.

“왜 이렇게 꿈틀거려요?”

“……우, 우허 어힉 어햐(죽여 버릴 거야)!”

“네?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다고요? 역시 똑똑해서 그런지 눈치가 금방 늘었네요.”

배 속을 가득 채운 묵직한 덩어리가 극도의 불쾌감을 불러왔다.

내보내는 곳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온 외계 물체의 정체가 문화의 성기라는 것에 더욱 불쾌했다. 그 끔찍한 물체를 도로 밀어내려 요한의 내장 벽이 계속 꿈틀거렸다.

꽉 맞물려 있어야 하는 틈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이물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으로 바뀌었다.

꿈틀거리는 요한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쥔 문화가 허리를 슬슬 움직였다. 이미 한계까지 넓혀져 있다고 생각했던 내벽이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장이 파열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요한을 덮쳤다. 패닉에 무릎 뒤가 벌벌 떨렸다. 직장 안에서 커지는 압력에 뱃속 전체가 눌리며 연신 구역질이 나왔다.

구역질로 몸이 흔들리면 더욱 고통스러웠다. 요한의 뒤를 꿰뚫은 살덩이가 점점 더 안으로 밀고 들어왔으니까.

“검사님 요실금 있어요? 어제부터 계속 앞이 느슨하시네.”

몸 안쪽에서 눌린 방광이 더 버티지 못하고 이른 항복을 선언했다. 요한은 굴욕과 분노가 뒤섞인 액체를 흘렸다.

반복해서 주인을 배반하는 신체 말단의 횡포가 쥐새끼처럼 요한의 의식을 갉아먹었다.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다리가 풀리며 몸이 미끄러지자 문화는 요한의 손목을 묶은 줄을 테이블 다리에 묶어 고정했다.

“버둥거리면 어깨 빠집니다.”

요한은 등 위를 덮친 문화의 무게에 소스라쳤다. 거대한 성기에 꿰뚫린 하복부에 문화의 몸무게가 더해지자 내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한달음에 정수리까지 치달았다.

“……하, 으, 야…… 여기서 그만, 하면, 너 봐줄게.”

“네?”

“너, 청성 터널…… 개산항…… 네가, 죽, 였지…… 더 안 캐고…… 너, 그냥 봐준다고…… 없었던 거로 해, 줄 테니까…… 그, 그만해.”

문화가 서투른 배우처럼 푸학 소리를 내며 웃었다.

“검사님 자의식 대단하신데?”

“너, 그냥 모른, 척할 테니까.”

“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마지, 마지막으로 말…… 한다. 너, 는 봐…… 줄게.”

“검사님. 서요한 검사님.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

요한은 밭은 숨을 몰아쉬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본인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아시나 본데요. 검사도 껍질 벗겨지면 그냥 똑같은 고기거든요. 검사는 납추 달고도 바다 위 걸을 수 있는 줄 알아요? 아니, 그것보다 서 검사님 당신, 그냥 끈 떨어진 시골 검사예요. 당신 입으로 그랬잖아요. 나가리 됐다고. 정신 좀 차리세요.”

“너, 뭐 바, 바라고, 헉…….”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돈도 싫어, 술도 싫어, 여자도 싫어, 심지어 겁도 없어. 떡검이면 떡검답게 떡값이나 받아 처먹고 말 것이지, 왜 그렇게 고고하게 굴어요? 흥미 생기게.”

“미, 친…….”

“아. 또 전화 온다. 권유경 끈질기네?”

문화가 요한의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며 짜증을 부렸다.

“아까부터 계속 문자에, 전화에 난리도 아니에요. 귀여운 유경이가 검사님한테 형이라고 하던데? 부럽게시리. 부러우니까 죽여 버릴까요? 응?”

“흐, 흐읏.”

“지금 유경이한테 전화해서 니네 형 조폭 새끼랑 붙어먹는다고 소리 들려줄까? 아니면 화상 전화 걸어서 검사님 뒷구멍이 내 좆 맛있게 빨아먹는 거 보여 줄까?”

“하, 하지, 마…… 시, 입새, 끼야.”

“형 어디세요? 전화를 안 받으시네요. 저 지금 검찰청인데 형 출근 안 하셨다면서요. 형 문자 보시면 연락해 주세요. 요한이 형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보자, 부재중 전화가 열두 건. 문자가, 어휴, 너무 애틋해서 정말로 죽여 버리고 싶어지는데요?”

“주, 주거…….”

“저도 다정하게 좀 불러 주세요. 문화 형, 하고 불러 봐요. 내가 너보다 세 살 많아요. 누구 마음대로 초면에 반말 까셨어요, 싸가지 없는 검사님아.”

한참 전부터 바스러지기 시작한 요한의 의식이 문화의 비웃음에 자잘하게 조각났다.

그와 동시에 그의 뒤를 거칠게 쑤시던 문화의 성기가 거칠게 뽑혀 나갔다. 내장이 같이 딸려 나가는 듯한 극통이 요한의 온몸을 휩쓸었다.

겨우 끝났는가 하고 테이블 위로 늘어진 요한의 허리를 문화가 양손으로 세게 움켜쥐었다. 미끈거리는 덩어리가 퉁퉁 부어오른 하문 안으로 거대한 고개를 들이밀었다.

몰아치는 듯한 문화의 거친 몸짓에 테이블이 앞으로 밀려 나갔다. 비통한 흐느낌이 요한의 악문 잇새로 새어 나왔다.

“감상이 어때요?”

“……씨, 발, 변태 새끼.”

“그건 감상이 아니잖아요? 아. 근데 검사님 경험은 있어요?”

“좆대가리 까지도록 했다, 개새끼야.”

“얌전한 줄 알았는데 걸레잖아? 그럼 후장은?”

“하도 해서, 며, 몇 번 헐었…… 흐윽.”

테이저건을 맞고 기절한 채로 납치당하고, 창문도 없는 곳에 갇혀 묶인 채로 방치당하고, 옷 위로 실금하고, 강제로 추행당해 사정하고, 기어코 강간까지 당했다.

요한의 박살 난 자아는 문화에게 범해지면서 오히려 단단하게 뭉쳤다. 고무줄도 과도하게 당겨지면 탄성을 잃는다. 죽음에 대한 실제적 두려움은 몸이 찢기는 아픔과 대치되며 현실감을 잃었다.

요한은 육체의 고통에 집중했다. 시간은 흐르고 순간은 스친다. 만약 문화의 목적이 요한을 모욕하는 것이라면 마음껏 능욕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으아악!”

“그러니까 구멍 헐 때까지 다른 놈들하고만 붙어먹지 말고 나한테도 한번 대주지 그랬어요.”

“으헉, 헉, 허억.”

“나한테 거짓말쟁이라더니 거짓말은 검사님이 하고 있네. 뒤는 아다잖아요. 맞죠? 내가 검사님 아다 따먹었으니까 원산지 이력 찍어 줘야지.”

문화는 요한의 뒤에 성기를 삽입한 채로 그의 꼬리뼈 위에 불붙인 담배를 지그시 눌러 찍었다.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역하게 피어올랐다.

“이 느낌 잊지 마요. 내가 검사님 제일 먼저 따먹었다고 도장까지 콱 박아 놨으니까요.”

꽉 닫힌 세계에서는 시간도 흐르지 않는 듯했다. 문화의 말대로 문화는 요한의 절대신이 되어 그의 시공을 주물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화가 담뱃불로 허리를 지졌을 때 요한은 두 번째로 정신을 놓았다. 그 후로 요한의 의식은 점멸하기를 반복했다.

깨어나면 문화가 여전히 뒤에서 헉헉거리고 있을 때도 있었고, 언제 가져다 깔았는지 모를 매트리스 위에 눕혀져 있을 때도 있었다. 여전한 것은 문 옆에 놓인 드럼통과 시멘트 포대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드럼통 들어가겠는데.

요한은 늘 죽음이 두려웠다.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은 더 사절이었다. 절대 죽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지만, 살아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라앉은 절망이 요한의 마음에 곰팡이처럼 피었다.

문화를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건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틈을 노려 도망치기에는 요한의 몸이 너무 쇠약해졌다. 문화가 몸에 손을 댈 때 격렬하게 반항하면 절로 비명이 나오는 거친 삽입으로 응징당했고, 순순히 몸을 내주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따랐다.

죽어 가는 척 문화의 동정심을 끌어 볼까도 싶었지만, 그의 무감각하게 반들거리는 눈동자를 보자마자 단념했다.

이문화는 조금도 망설임도 없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요한을 드럼통에 처넣고 시멘트를 부을 것이 분명했기에 괜한 짓은 시도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음식이 입에 들어왔던 것 같기도 했다. 기운이 없는 이유가 허기 때문인지 내내 학대당하느라 찢어지고 비틀린 몸의 고통을 감내하느라 에너지를 다 털어 썼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사육제는 잔혹했다. 이문화는 요한이 굶어 죽지도 못하게 음식을 먹인 뒤에 죽고 싶어질 만큼, 그러나 죽지 않을 만큼만 범했다.

문화 덕분에 요한은 제 몸의 새로운 쓰임새를 알게 되었다. 배설용 출구는 문화의 붉게 성난 성기를 받아 무는 성기가 되었으며, 미처 퇴화하지 못해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유두는 문화가 빨고 깨물고 비비고 잡아당기는 성적 도구가 되었다.

요한의 성기는 처음에 문화의 손에 사정한 이후 한 번도 손을 타지 않았지만, 문화가 전립선이 뭉개지도록 성기를 처박을 때마다 냄새도 색도 없는 액을 줄줄 흘렸다.

그때마다 새삼스럽게 수치가 요한을 옥죄었다.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액체를 쏟아 내는 성기를 잡아 뜯어 버리고 싶었다.

다리가 내내 양쪽으로 활짝 벌려진 터라 고관절이 아프다 못해 감각이 없어졌다. 엉덩이는 문화의 손자국 모양으로 멍든 지 오래였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생각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지금 물건이야. 물건은 사용하는 거니까 굴려지는 건 당연해.

요한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분노로 태워지는 에너지를 아껴 살아남는다.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는 것은 서요한의 특기이며, 지금 그의 목표는 생존으로 정해졌다.

“검사님. 내가 처음에 했던 말 기억나요? 사흘 버티면 상 준다고 했잖아요. 역시 검사님은 대단해. 이제 네 시간 있으면 사흘이에요. 좋은 거 줄게요.”

“지, 랄…….”

“있잖아요, 검사님. 나는 검사님이 느끼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어차피 나만 좋으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내 순수한 호의라는 거 잊지 말고 제대로 고마워하기예요?”

문화는 처음 만났던 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웃음을 만면에 띄웠다.

벌써 이틀 반이나 지났던가. 박제된 줄 알았던 이곳의 시간도 꾸준히 흐르고 있었음에 요한은 안도했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살아만 있으면 저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지익.

문화의 바지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에 요한의 몸이 자동반사적으로 굳어졌다. 벌어진 틈으로 튀어나올 흉포한 살덩어리의 난폭한 움직임을 생각하자 요한은 자기도 모르게 우는소리를 하고 싶어졌다.

제발, 제발 그만!

소리 없는 비명을 목이 터지게 질렀다. 목구멍 안쪽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점막으로 흡수해야 빠르거든요.”

“뭐, 뭐야!”

“보채지 말고 기다려요. 꼼꼼하게 발라야죠.”

문화는 요한의 뒤에 대고 바로 짜 넣던 젤을 콘돔 위에 꼼꼼하게 발랐다.

흐린 눈으로 문화를 바라보던 요한은 그가 손을 닦고 작은 비닐봉지를 뜯어 하얀 가루를 콘돔을 끼운 성기 위에 뿌리자 문화가 이야기했던 ‘상’의 정체를 깨달았다.

“미, 미친 새끼…… 하지 마, 하지 마!”

“가만히.”

“하지 마. 너 진짜 그거, 선 넘는 거야. 하지 마…….”

“선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어. 엉덩이 좀 그만 흔들어요. 미끄러지잖아요.”

문화는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요한의 뒤를 벌리고 묵직한 성기를 단숨에 안쪽으로 찔러 넣었다.

엉덩뼈가 조각나는 아픔에 요한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문화가 요한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붓고 쓸려 예민하게 곤두선 내벽이 또다시 거칠게 후벼지는 고통에 요한의 정신을 부유했다.

“느껴져요?”

문화가 요한의 몸을 끌어안으며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요한의 감각 수용체가 활짝 열렸다.

모든 감각이 폭력적으로 증폭되는 낯선 느낌. 요한은 눈이 터져 버릴 듯한 폭력적인 감각에 숨을 멈췄다.

“반응 빠르네요. 숨 쉬어요. 천천히. 응, 이제 들이쉬고.”

요한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던 문화가 요한의 입에 손가락을 넣었다.

요한은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침만 뚝뚝 흘리다가 문화가 목젖을 세게 찌르자 정신이 돌아온 듯 캑캑거리며 막힌 숨을 토해 냈다.

“으…… 하아, 하아. 헉, 으으, 흣…….”

“끝내주죠?”

“……허억, 헉…….”

몸 뒤에서 시작한 기묘한 수런거림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문화의 성기가 내뿜는 열기에 요한은 심지가 불타오르는 것 같아 허리를 비틀고 엉덩이를 흔들었다. 안쪽 근육이 멋대로 꿈틀거리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헐떡임이 멈추지 않았다.

“이거, 너……!”

“솔직하지 못하게. 검사님도 좋잖아요.”

문화는 극도로 팽창해 꺼떡거리는 요한의 성기를 세게 튕겼다. 요한의 모양 좋은 성기는 문화의 손가락이 주고 간 반동을 신호로 묽은 정액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요한의 성대를 울리는 것은 고통의 신음도 비통의 탄식도 아니었다. 확연하게 물기를 띈 애욕의 흐느낌이 악문 잇새로 터져 나왔다.

문화가 요한의 허리를 잡고 하체를 슬쩍 문지르자 깊숙하게 박힌 성기가 녹녹하게 풀어진 내벽을 크게 휘저었다.

요한은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문화가 움직임을 멈추자 요한이 엉덩이를 뒤로 밀며 자극을 졸라 댔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그르렁대며 어찌할 줄 모르고 부들부들 떨었다.

전신을 해일처럼 덮친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요한을 내려다보던 문화가 자기 손에서 다시 태어난 아름다운 피조물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 * *

연휴의 끝과 함께 사육제도 끝이 났다.

그러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그날의 상흔이 요한의 몸 구석구석을 뱀처럼 휘감았고,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의 마음 한편에 똬리를 틀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해쓱해지다 못해 힘이 없어 똑바로 걷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요한을 향해 검사실 직원들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연신 걱정스러운 추궁을 해 왔다.

요한은 힘이 없어 자꾸 기우뚱거리는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는데 입원할 정도는 아니고요,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이 독한지 계속 졸리고 속도 쓰리네요.” 하며 서툴게 둘러대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설득력 있는 변명은 아니었으나, 그에게 정교한 핑계를 떠올릴 여유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유경: 저 이제 부대 복귀해요. 제 문자 보면 꼭 답 주세요. 형 어디 계세요? 걱정돼서 미칠 거 같아요.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정신력으로 아픈 몸을 채찍질해 주간 업무 회의를 겨우 마쳤다. 집무실 소파에 누운 요한은 생기 없는 눈으로 휴대 전화를 확인하고 힘 빠진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쳤다.

“유경아.”

― 형! 형, 어디세요?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갑자기 쓰러져서 며칠 의식이 없었어. 오늘 새벽에야 집에 와서 연락을 못 했어. 계속 기다렸지. 정말 미안하다. 너무 미안해.”

― 뭐가 미안해요. 지금은 괜찮아요? 목소리 엉망이에요. 말하지 마요. 병원에 더 계시지…….

“지금은 괜찮아. 그냥 과로, 현기증…… 아…… 정말 너무 미안하다. 너 잠은 어디서 잤어?”

―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형 몸이나 잘 챙기세요. 저 지금 버스 타거든요. 복귀하자마자 다시 전화할게요. 몸조리 잘하시고요.

“미안해…… 면회 갈게.”

― 흐흐. 약속한 거예요? 몸 다 나으면 천천히 오세요. 저 기다리는 거 잘해요.

유경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덜미가 빳빳해졌다. 요한은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지탱해 휴대 전화를 겨우 탁자에 내려놓고 등을 굽혀 몸을 웅크렸다.

아무리 잠깐이었더라도 이문화를 저렇게 착한 애와 닮았다고 착각하다니. 미친놈. 동태 눈깔.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으니 당해도 싸다. 애초에 자초한 일이었는지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제 꼴을 자조하며 쿡쿡 웃었더니 허리 아래가 칼로 쑤시는 듯이 아팠다. 요한의 앙다문 잇새로 목울음 섞인 신음이 길게 흘러나왔다.

요한이 몸의 변고를 자각한 건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첫날은 심적 고통이 너무 심해 몸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이틀째에는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에 온갖 진통제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먹었다.

너덜너덜해진 위와 식도가 너무 아파서 진통제를 줄이자 급격하게 피로해졌다. 그렇게 시달렸으니 피곤한 것이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극도의 무기력과 더불어 끔찍한 망상이 불시에 요한을 덮쳤다.

일반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치부하기에 요한은 아는 것이 너무 많았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기억. 때때로 요한을 얼어붙게 하는 플래시백과 의식 혼탁.

전혀 되새기고 싶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콘크리트 감옥에서의 일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려 했다.

어째서인지 아무리 애써도 어느 순간 이후로는 마치 암전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전형적인 급성 마약 중독 증세가 나타났다.

강력부나 형사부 경력은 없지만, 검사인 이상 요한도 마약에 관한 기본 지식은 있었다.

가장 가능성 큰 것이 메스암페타민, 일명 히로뽕과 GHB, 이른바 물뽕. 상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코카인을 섞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금단 증세로 미루어 보건대 헤로인 계열은 아닐 가능성이 크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할 수는 없었다. 검사가 마약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식을 잃은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마약을 투여 당한 거라는, 요한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대체 누가 믿어 주겠는가.

그렇다고 요한이 당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밝힐 수는 없었다. 조폭에게 속아 테이저건을 맞고 납치당해서 며칠이나 감금된 채 강간당하다가 결국 마약까지 맞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만약 문화가 쓴 약이 메스암페타민이라면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해독약이 없으니 약 기운이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길어야 일주일이다. 요한은 시간의 힘을 믿고 버티기로 했다. 참고 또 참는 건 요한의 특기이니까. 검사 서요한을 지키기 위해 요한이 견디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가던가.

요한은 짜증이 늘었고, 쉽게 화를 냈고,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초조하게 혀를 차거나 손가락을 꺾었고,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아 불현듯 정신을 차려 보면 턱이 아플 정도였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갔다.

관사에 들어가면 수십, 수백 개의 눈알이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꼈다. 급성 마약 중독자인 자신에게 제대로 된 판단력이 있을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누가 자기를 집요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불쾌한 느낌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요한은 기어코 관사를 샅샅이 뒤집어엎었다. 찬장을, 서랍을, 옷장을 전부 열고 가재도구를 탈탈 털어 뒤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관사 수색에는 진전이 없었고, 전신에 바늘처럼 꽂히는 누군가의 시선은 계속되었다.

결국 잠을 완전히 잃었다.

관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검사실에서 쭈그려 밤을 지새우고, 청사 경비들이 사용하는 간이 샤워실에서 대충 씻고, 구겨진 옷에 새빨개진 눈을 하고 집무실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다.

일 중독자 서 검사가 귀가하지 않고 검사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야 딱히 드문 일이 아니었으나, 요한의 눈빛이 점점 귀기를 띄기 시작하자 검사실 직원들마저 요한을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부유하던 정신이 가끔 현실로 돌아오면 요한은 몇 번이고 괜찮아, 지나갈 거야, 하며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짙은 보라색이었던 멍 자국은 누렇게 퇴색했다. 상처가 서서히 아물듯 금단 증세가 사라지면 떼다 만 껌처럼 뇌리에 붙어 있는 기억도 녹아 없어질 거라고 믿었다.

벌벌 떨리는 손이 놓친 물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조각난 어느 아침까지.

그날, 요한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

괜찮지 않다. 무엇도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너무 심하게 떨려 몇 번이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요한을 흔든 건 금단 증상이었을까, 아니면 금단의 영역으로 자진해 걸어 들어간다는 죄책감이었을까.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진작 찾아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한 시간 반이면 가는데 말이에요. 조만간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네네, 맞습니다. 여기 더덕주가 진짜 끝내줍니다. 트렁크 가득 채워서 들고 가겠습니다. 하하, 그럼요. 당연하죠.”

자신의 공허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웃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요한은 안구 뒤가 불타는 기분이 들어 억지웃음을 끊고 목구멍 안쪽으로 욱여넣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신흥 폭력조직 수사하다가 약이 나왔어요. 항구로 들어온 것 같은데 개산항은 아직 체계가 덜 잡혀서 선 닿는 쪽이 없기도 하고, 아무래도 선배님 관할 구역에서 당겨 오는 것 같아서요. 네.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관리 조직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약만 비교해 보면 되거든요. 만약에 연관성 확인되면 바로 수사 협조 요청하겠습니다. 네네. 꼬리 안 잡히게 잘하겠습니다. 연락처 주시면 조심히 알아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시절 회식 때마다 요한을 서 마담이라 부르며 옆에 앉혀 술을 따라 따르게 시키고 안주를 먹여 달라고 하며 징그러운 주정을 부리던 선배에게 마약상 정보를 구걸했다.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비록 틈만 나면 성희롱을 하던 인사지만, 마약 수사라면 검찰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문가였기에 굴욕을 감수할 가치는 충분했다.

요한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한이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요한이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루트를 묻는 것을 딱히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쾌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많은 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피부를 칼로 저며내고 싶은, 뇌를 송곳으로 찌르고 싶은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충분했다.

지독한 금단 증상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벗어나려면…… 당장 급한 상태를 해소한 뒤 약의 용량을 서서히 줄여 나가면 오래지 않아 완전히 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선배가 보내 준 마약 판매상들의 익명 메신저 아이디를 외울 때까지 노려보다가, 요한은 익명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

약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달받은 아이디 다섯 개 중 둘은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답신을 하지 않았고, 둘은 아예 아이디를 삭제했는지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다섯 계정이 모두 한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각각 다른 다섯 그룹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일하게 요한의 메시지에 응답한 마지막 아이디와 겨우 접선해 지정 장소에 돈과 약을 두는 방식으로 거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요한이 약속한 곳에 갔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돈만 가지고 도망친 건가 싶어서 자신이 돈을 던지고 온 골목으로 돌아가 보았으나 돈뭉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분노를 억누르고 애원에 가까운 메시지를 보냈으나 판매자는 냉정했다.

[이봐요약속이랑다르잖아요]

[2937: 안팔아요]

[돈더드릴 수있어요]

[2937: 영업안해요 연락노노]

일부러 관할지역과 거리가 있는 곳을 골랐다. 검찰이나 경찰의 함정 수사라고 의심하지 못하도록 충분히 조심했다.

요한에게 접선 방법을 알려 준 선배에 따르면 익명 메신저 아이디로 접근하는 자체가 누군가의 소개라는 뜻이라 거래를 거절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는데.

영업을 아예 안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잠시 쉰다는 뜻인지, 그것도 아니면 약을 가지고 현장에 나왔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발을 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요한은 하도 벅벅 긁어 시뻘건 줄이 몇 겹으로 그어진 팔뚝에 새로운 상처를 추가하며 초조하게 입술을 씹었다.

혹시 나를 알고 있었나.

내가 약을 사러 올 것을 미리 알고 접선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거래를 제안한 건 그저 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나. 애초에 약을 팔 생각 같은 건 없었던 거지.

이런 식으로 요한을 농락할 사람은 단 하나뿐이다.

요한이 금단 증세를 이기지 못하고 마약을 구하러 돌아다닐 것을 아는 사람. 어디에서도 약을 구할 수 없을 것임을 확실하게 깨닫게 하여 요한을 더욱 좌절하게 만들 사람. 그래서 결국 자신을 찾아올 수밖에 없게 할 사람.

요한은 그제야 덫에 걸려 빠져나갈 수 없게 된 자신을 깨달았다.

“씨발…… 하하, 하…… 씨발, 씨발, 씨발!”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내리치니 요란한 경적만 열없이 울렸다.

신호가 바뀌고도 움직일 생각이 없는 요한의 차를 향해 뒤로 열을 지은 다른 차들이 신경질적인 경적을 울렸다. 차선을 바꿔 요한의 차를 추월한 뒤차가 창문을 내리고 험한 욕을 외치며 지나갔다.

요한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신호가 몇 번을 바뀌도록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다가 휴대 전화를 들었다.

신호음이 채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수화기 반대편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웃음기를 머금고 대답했다.

― 나 까먹은 줄 알았잖아.

“너, 나한테 무슨 원한 있어?”

“여기저기 원한 사고 다니는 타입인가 봐?”

“대답해.”

“딱히 원한 같은 거 없는데요.”

“그럼 나한테 왜 이러는데!”

문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사고 같은 거로 생각해. 세상에 사고당하고 싶어서 사고당하는 사람은 없잖아? 그냥 내가 참 재수가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검사님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그는 주먹으로 얼굴을 갈기고 싶을 정도로 태연했다. 아마도 문화가 내뱉는 말은 전부 진심일 테였다.

그의 말대로 요한은 그저 재수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문화는 하필이면 요한이 길을 지나가고 있을 때 그의 위로 떨어진 간판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개씨발 새끼야.”

“왜 자꾸 욕이야. 나도 좀 다정하게 불러 줘요. 문화 형, 해 봐. 얼굴 너무 구겨진다. 형이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싫어? 그럼 문화야, 해 봐. 난 그것도 괜찮아.”

요한의 눈빛이 어두웠다. 창밖에 깔린 밤처럼 어두웠다.

“닥치고 본론이나 말해.”

“얼마나 필요한데?”

“필요하다면 팔 거야?”

“근데 코 묻은 돈 받고는 안 팔아.”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엄청나게 비싸거든요. 돈으로는 못 사요.”

“어, 얼마인데. 나 돈…… 있어.”

“왜 그렇게 돈타령이야. 검사님 은근히 속물적이네? 세상에는 돈으로 안 되는 일도 있어요.”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가는 요한의 눈빛이 번득였다.

“누구 상대로 수작질이야?”

“커피 마실래?”

“개수작하지 마.”

“수작이고 뭐고, 약 팔라고 나 찾아온 건 검사님이잖아? 팔든 안 팔든 결정권은 나한테 있는데 왜 이렇게 나한테 약 맡겨 놓은 사람처럼 굴어요? 그리고 내가 돈 받고 안 판댔지, 아예 안 판댔어요? 거래 조건 협상하려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막말하시면 아무리 검사님 좋아하는 나라도 조금 상처받는다?”

“너. 원하는 게 뭐야.”

문화가 몸을 기울여 요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요한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문화의 시선을 받아쳤다.

“서요한.”

“뭐?”

“검사님이 나한테 서요한 주면 나는 검사님한테 약 줄게.”

“지금 나한테 신체 포기각서 쓰라는 소리야?”

유쾌한 웃음소리가 유쾌하지 못하게 울렸다.

“와, 진짜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일관적이지…… 내가 신체 포기각서 쓰라고 하면 쓸 거야?”

“똑바로 말해. 무슨 소리야.”

“일단은 몸.”

“몸?”

“이제까지 먹어 본 구멍 통틀어 검사님 구멍이 제일 맛있더라. 이제 다른 건 맛 없어서 못 먹을 거 같아.”

“넌 정말 미친 새끼야.”

요한의 몸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문화는 잘게 몸을 떠는 요한의 모습을 핥듯이 살펴보았다. 그 며칠 사이에 확연하게 여위었다.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시체 같았고, 꽉 쥔 주먹은 상처투성이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구겨진 옷까지, 겉모습만 보자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보였다.

다만 그렇게 초췌한 꼴을 하고도 요한의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했다. 문화를 초조하게 만드는 그 불꽃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대답은?”

“너는 내가 꼭 죽인다.”

“어이구 무서워라.”

“죽인다고, 너.”

“이쪽으로 오시지요.”

문화는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안쪽으로 난 문을 열었다.

“검사님한테 좋은 냄새 난다. 무슨 향수 써?”

“…….”

“향수 뭐 쓰냐고.”

“안 써.”

“그럼 이거 검사님 살냄새야?”

요한을 뒤에서 껴안은 문화가 요한의 셔츠 단추를 풀며 아직 멍 자국이 희미하게 남은 하얀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진짜 끝내준다. 나 꼬드기는 냄새인가 봐. 자지가 벌떡 서네. 봐요, 검사님. 벌써 이렇게 커졌어 또.”

“좆 세웠으면 빨리 박고 싸고 끝내.”

“왜 이렇게 까칠해. 젖꼭지는 바짝 세워서 토라진 척하면…….

“씹…….”

“장난 아니게 귀여운 거 알지?”

문화는 이를 세워 마른 어깨를 꽉 깨물고는 혀를 내밀어 잇자국을 살살 핥았다. 요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사님 젖꼭지 아프게 하는 거 좋아했었나? 응?”

“…….”

“대답 안 하면 아프게 한다?”

“싫어! 싫다고! 개새끼야, 세상에 아픈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많던데…… 검사님은 아니야? 진짜로?”

“닥치고 박기나 하라고!”

끄트머리가 갈라진 목소리로 날카롭게 받아쳤지만, 한번 길든 요한의 몸은 정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부들거리며 등허리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관자놀이에 푸른 혈관이 솟아 올랐다. 느껴서는 안 되는 감각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에 요한의 마음이 허물어졌다.

“한쪽…… 만 자꾸 만지면…….”

“한쪽만 만지면, 뭐?”

“그쪽만, 커지…… 면…….”

“짝 젖 되는 거지 뭐.”

“아프다고, 이, 씨발…… 새끼야…….”

“아픈 거 진짜 싫어하는 거 맞아? 아닌 거 같은데? 아픈 거 싫다며 여기는 왜 질질 흘려? 하여간 야해 빠졌다니까. 더 아프게 해 줄까?”

요한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며 문화는 부지런히 유두를 희롱했다. 붉게 부어오른 돌기를 손가락 사이에 넣어 비비고 잡아당기며 수치와 굴욕에 몸을 움찔움찔 떠는 요한의 성기를 꽉 쥐고 귀두를 거칠게 문질렀다.

“아직 넣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젖꼭지로 가는 거야?”

“아파…… 아프다고, 십, 새끼야…….”

“자지가 이렇게 되는 건 아픈 게 아니라 좋은 거야.”

여린 점막을 쥐어뜯을 기세로 잡아당기자 발발 떨던 요한이 기어코 문화의 손에 정액을 토해 냈다.

“빠르네.”

화끈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헐떡이는 요한은 아랑곳없이 문화가 요한의 바지와 팬티를 단번에 잡아 벗겼다.

“검사님은 아무것도 안 입은 게 제일 예뻐요.”

“추워…….”

“조금만 참아. 금방 땀 뻘뻘 흘리게 해 줄 테니까.”

문화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요한의 손을 세게 잡아당겼다.

알몸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요한이 문화의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 하자 문화는 요한의 어깨를 내리눌러 도로 바닥에 앉히고 다리를 양쪽으로 넓게 벌렸다.

“혼자만 가고 말이야. 사람이 의리가 없어요. 이번에는 내 차례.”

문화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붉어진 눈으로 문화를 노려보는 요한의 뺨이 잘게 경련했다. 문화가 제 벨트를 풀어 멀리 던지고 바지 지퍼까지 내렸지만, 요한은 고개를 팩 돌리는 것으로 무언의 요구를 외면했다.

문화는 요한의 하얀 허벅지를 밟듯이 발로 누르고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요한의 머리채를 잡아 제 가랑이 사이로 들이밀었다.

“너무 말랐어. 단백질 보충 좀 할까?”

“…….”

“이렇게 검사님 생각해 주는 건 나밖에 없다니까?”

“…….”

“빨아.”

요한이 꼿꼿하게 서서 대가리를 꺼떡거리는 문화의 성기를 양손으로 그러쥐고 혀를 내밀어 귀두를 핥기 시작하자 문화는 요한의 허벅지에 얹어 둔 발을 움직여 요한의 성기를 슬슬 비볐다.

“약 없이 연속 몇 번 쌀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요한이 눈을 치뜨고 입을 벌리자마자 문화가 요한의 정수리를 눌러 성기를 목구멍 깊은 곳까지 찔러 넣었다.

요한이 필사적으로 퍼덕거리며 캑캑거렸지만, 문화는 느긋하게 요한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발가락으로 요한의 힘없이 늘어진 성기며 고환을 지분거렸다.

“약은 후불제야. 검사님은 똑똑하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 고고하던 서요한이 홀딱 벗은 채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세상 제일가는 진미인 양 성기를 핥고 빤다.

서툴기 짝이 없는 구음이었으나, 눈요기만큼은 최고였다. 하체에서 올라오는 뭉근한 감각이 짜릿한 시각적 자극과 합해지자 문화의 숨이 급격하게 거칠어졌다.

요한의 머리카락을 그러쥔 손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가자 요한의 머리가 목각인형처럼 흔들렸다.

“읏.”

바닥을 긁는 듯한 짧은 신음과 함께 문화가 요한의 입에 사정했다.

“뱉으면 처음부터 다시 할 거예요. 입 벌려. 응. 예쁘네요. 남기지 말고 다 먹어요. 다시 입 벌리고. 맛있어요?”

문화는 말없이 인상을 찌푸린 요한을 채근했다.

“맛이 어땠어요?”

“궁금하면 네가 처먹어 보든가.”

“아, 빨아 달라고?”

“미친 새끼…….”

“맛있냐고 물어봤잖아요. 왜 대답을 안 해? 물어본 사람 민망하게.”

요한의 성기를 배에 닿도록 접어 꾹 누르면서 문화는 재차 물었다.

“토할 것 같아.”

“다시 말해 봐요.”

“네 정액, 구역질 나는 맛이야. 썩은 우유에 대걸레 빤 물 섞은 맛.”

미간을 살짝 접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터는 요한의 눈가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문화가 신경질적으로 발을 놀려 성기를 세게 문지르자 요한의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억누른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문화는 그제야 포만하게 웃었다.

<함부로 다정하게>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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