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여기에……?”
“오랜만이네요. 한…… 5일 만인가?”
문 전무는 말을 하다 말고 짧게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5일 만이라며 능청스럽게 웃어댔다. 수행 비서 하나 없이 덜렁 등장한 그에게 나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지난 주말 바에서 만났다. 만났다는 건 정말 얼굴을 보고 인사했다 뿐이지, 나는 일을 해야 했기에 계속 피아노를 쳤고 그는 와인을 마셨다. 그게 전부였다.
“…….”
눈가를 찡긋거리는 문 전무에게 도무지 똑같이 웃어줄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가, 아니 내가 숨겨온 걸 들켰다고, 형이 무척 화가 났다고…… 말해야 하는데, 놀란 것인지 말문도 턱 막혔다.
입을 벌리려다가도 입술이 너무 떨려 나도 모르게 확 깨물며 다물었다. 어쩌지. 하필 이 타이밍에 등장한 그를…… 반가워해야 하는지, 아니면 싫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울어……요?”
“아니요!”
다급히 아니라고 대답은 했지만 나도 느껴졌다. 눈가에 차오른 눈물이 눈을 한 번 깜빡이자 톡 밑으로 떨어졌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온 게 무색하게, 문 전무를 보니 무척 놀란 모양인지 감정이 넘쳐흘렀다.
내 꼴이 너무 멍청해서 부끄러웠다.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손으로 눈물을 마구 닦아냈다. 셔츠 끝으로 눈가를 비비는데, 근처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들자 문 전무가 코앞으로 다가와 인지할 새도 없이 얼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그렇게 문지르면 다쳐요.”
“…….”
“괜찮아요?”
문 전무는 부드러운 손길로 젖은 뺨을 훑고는 엄지로 눈가를 훔쳤다. 젖은 속눈썹을 조심스레 문지르며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문 전무가 하필 오늘 나타난 것, 내가 회사에서 또 눈물을 터뜨린 것, 그리고 그가 눈물을 닦아주는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것.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그와 같이 있는 것은 절대 좋은 그림이 아니다. 다른 곳도 아닌 회사였으며, 나는 지금 거짓말을 들킨 것도 모자라 또 다른 오해를 뒤집어썼다. 해명조차 하지 못했다.
어쩔 줄을 몰라 뒷걸음질 치려고 했다. 하지만 나쁜 일은 한 번에 몰아닥쳐 나를 이도 저도 못 하게 만들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서늘하게 내려앉은 목소리였다. 형이 열리는 유리문 사이로 등장하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사님.”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잖습니까, 서도운 씨.”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울었다고? 그래서 문 전무가 닦아 주었다고? 그의 화를 돋우기만 할 게 분명했다.
“정해일, 왜 그래. 눈에 뭐가 들어갔대서 불어줬어.”
“넌 연락도 없이 다짜고짜 왜 여기까지 찾아와.”
“연락했잖아? 회사 앞에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문 전무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를 가리듯 내 앞에 섰다.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거지.”
“선약 있어. 서도운. 이리 와.”
내 이름을 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장이라도 목이 졸릴 것 같은 위압감이 온몸을 감싸들었다.
유리문 너머로 팀원들이 슬쩍 눈치를 보다 들어가는 모양새가 보였다. 여기서 길게 대화했다가는 상황이 더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래서 재빨리 걸음을 옮기려고 했는데, 턱 하고 어깨가 잡혔다.
“……선약 있으면 서 비서님이랑 식사하지, 뭐.”
어깨동무하듯 어깨에 둘린 팔에 등이 차갑게 식었다. 경악하듯 문 전무를 쳐다보는데, 그는 누굴 놀리려는 것처럼 나를 보며 웃었다. ‘비서님은 선약 있어요?’ 하고 물으며.
그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형이 문 전무의 팔을 거칠게 떼어내고는 내 손목을 으스러트릴 것처럼 붙잡았다. 확 잡아당겨진 몸이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형의 가슴팍에 코를 박을 뻔했다.
“너 뭐 하자는 거야.”
“왜. 너야말로 왜 이렇게 화가 났는데? 네 비서 건드려서?”
“지금 네 농담 받아줄 정신 없으니까 그만해.”
“여기까지 왔는데 밥도 못 먹고 가기 싫어서 그러지. 비서님 손 좀 놔줘, 부러지겠다.”
둘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사시나무 떨리듯 몸이 덜덜 떨려왔다.
“둘이 짜고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거 일도 아니네.”
“뭐?”
“그동안 속이느라 고생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 없다고.”
문 전무는 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미간을 좁히며 슬쩍 시선을 주었는데,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입술을 하도 씹어대서 피 맛이 날 지경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형을 문 전무가 막아섰다.
“정해일, 잠시만. 내가 설명할게.”
“들을 말 없어.”
“정해일!”
“이렇게 나서줄 정도면…… 보통 사이가 아닌가 봐.”
형은 조소를 띠며 열린 문 사이로 나를 거칠게 밀어 넣었다. 문 전무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의 문은 닫혔다. 전용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곧장 하강했다.
“윽……!”
형이 내 어깨를 밀어 누르며 모서리로 밀어붙였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지만, 기어코 고통 어린 소리가 터졌다.
“이게 네 특기야?”
“…….”
“좀 불리해지면 눈물 짜면서 남자 꼬여내는 게 네 특기냐고.”
노려보는 그의 눈에서 살기가 흘렀다. 아니에요, 정말 아닙니다. 나는 서로에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잠깐이나마 널 불쌍하게 여긴 내가 바보 같을 지경이야.”
“이사님, 아니에요. 저희 정말 아무 짓도……!”
“저희?”
한쪽 입꼬리만 당겨 비웃는 형의 등 뒤로 문이 열렸다. 그는 그제야 나를 억압하던 팔을 내렸다.
“마침 금요일이고.”
“…….”
“좋아하는 짓 내가 실컷 하게 해주겠습니다.”
……그의 말이 무엇을 예고하는지 잘 알았다.
“넌 돈만 주면 뭐든 하겠지. 안 그래?”
재킷을 탁 털듯 당긴 형이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갔다. 그가 지나간 길이 서늘하다고 느낄 정도로 두렵기 그지없었다.
무서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회사에서 벗어나 그의 눈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도망쳐 평생을 숨어 살고 싶다는…… 그런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뭐 하고 있어.”
형이 뒤돌아 나를 불렀다. 그 말에 나는 목줄을 맨 개처럼 그에게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간신히 형에게 따라붙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도착한 그의 행동이 더 나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내 뒷덜미를 잡고 조수석에 밀어 넣고는 자신이 운전석에 올라타는 것이다.
울컥거리는 감정을 애써 눌러 삼키며 내가 운전하겠다고 말했지만, 벨트나 매라는 단호한 말로 단번에 차단당했다. 거기서 더 뭐라 말을 덧붙이면 공연히 그의 화를 돋우는 꼴만 될까 봐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형은 거칠게 차를 몰았다. 핸들을 쥘 때는 으드득 소리가 나는 듯했고,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이 순식간에 호텔에 도착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발을 직직 끌었지만, 정말 뒤처졌다간 장소 가리지 않고 그의 화가 쏟아질 것 같았다. 화난 형의 큰 보폭에 맞추려 빠른 걸음으로 뒤를 졸졸 따랐다. 그게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네가 열어.”
“…….”
문 앞에 다다른 형이 날 억지로 세웠다. 등 뒤에 자리한 그가 내 어깨를 부술 것처럼 세게 쥐었고, 아픔에 신음하지도 못하고 이를 물며 가까스로 지갑을 꺼냈다.
호텔 카드키를 문 아래에 접촉하자 기계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었고,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꾹 눌렀다.
눈이 질끈 감겼다. 차마 당길 수가 없어 덜덜 떨고만 있는데, 형이 순식간에 내 손 위로 손을 겹쳐 당기고는 나를 퍽 밀쳐 넣었다.
따라 들어온 형은 내가 구두를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끌고 들어갔다. 억지로 침대 위로 몸이 던져지고, 그 위로 그가 올라왔다.
“으윽……!”
허벅지를 무릎으로 세게 누르는 힘에 통증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아파하는 게 우습기만 하다는 듯 진하게 웃으며 자신의 재킷을 벗을 뿐이었다.
“문 전무랑 이 호텔까지 왔던 건 아니겠죠?”
“안 그랬습…….”
“호텔 카드키랑 같은 곳에 꽂아놨길래.”
내려다보는 눈빛이 차가웠다. 목적어가 없어도 명함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호텔에 문 전무나 내가 출입하면 그가 모를 수가 없었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는 것을 자기도 알고 있으면서 나를 추궁하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막 뱉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서 다른 단서를 이끌어내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형이 재킷을 벗어 침대 밖으로 던지는 틈에 몸을 조금 비틀어 뒤로 빠져나왔다. 그의 눈이 더 차게 가라앉았다. 팔꿈치로 상체를 지탱하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이사님.”
“화 돋우지 말아요.”
“전무님과 저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의 귀에 들릴지 의문이었지만 한 번은 제대로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무 일이 뭔데요.”
형이 내 넥타이 끝을 쥐어 살짝 올리며 물었다.
“이사님이 생각하시는…… 관계요.”
“섹스 말하는 거예요?”
“네……. 윽!”
“내가 그거 하나 때문에 화난 것 같습니까.”
넥타이를 세게 잡아당기자 통증이 목을 감싸들었다. 나도 모르게 팽팽하게 당겨진 넥타이를 답삭 붙잡았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눈동자로 어물어물 물기가 어린다.
“얼마나 만났습니까.”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옆으로 틀었다. 못마땅했는지 형이 다시 넥타이를 팍 당겨 고개를 바로 하게 만들었다. 목이 살짝 졸렸다. 긴장감 사이로 스며든 공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울지 말고.”
“으……. 올 초, 겨울에…….”
억지로 다시 고개를 원상태로 돌려놓으며 끊어지듯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도 그의 화가 풀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기에서 또 거짓말을 했다가 들키면 그가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간신히 시선을 올려 형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입술이 벌벌 떨리며 눈가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들었다.
“1…… 1월쯤, 입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1월쯤, 눈 내리는 날이었다. 당시 문 전무가 했던 말 때문에 어쩐지 그날의 날씨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부연설명을 했다간 그의 화를 더 돋우게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반년을 넘게 알고 지냈네.”
“…….”
“돈만 주면 남자한테 뒤 대주고 다니는 네가…… 그 긴 시간 동안 문 전무랑 아무 일 없었다고 하면 내가 믿겠습니까.”
“……정말, 읏, 정말 없었습니다.”
한껏 낮아진 목소리가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형의 말에 틀린 게 하나 없어 더 괴로웠고, 눈물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순진한 척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만났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고.”
그렇지만 나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일은 돈이 급해서 시작했고, 내 일터의 손님으로 문 전무가 찾아왔다고. 비밀을 쥐고 있는 그를 내가 밀어낼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젠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앞으로…… 절대 따로 안 만나겠습니다, 이사님. 잘못했습니다.”
“후우. 울지 말라고 하잖아.”
“잘못했어요, 이사님…….”
그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는 듯 빳빳하게 펼쳐졌던 손이 다시 꽉 주먹 쥐어졌다. 뼈가 도드라지고, 손등에 핏줄이 서는 것에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당장이라도 손이 날아와 뺨을 때릴 것만 같았다.
내가 자아낸 결과였고, 내 죄였다. 이젠 그저 잘못을 빌며 형의 용서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첫 만남부터 거짓과 오해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는데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흑, 으윽, 잘못했어요…….”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다. 다정해진 그와 뭐라도 될 수 있을 줄 알고 헛된 꿈을 꿨다. 벌을 받는 것이다.
나는 형의 허벅지쯤을 붙잡으며 빌었다. 옷이 구겨질 정도로 쥐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밑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는 거 질색이라고 내가 말 안 했나.”
“흐윽, 으읏…….”
“아니면 맞고 싶어서 이래요?”
“아윽!”
형은 다시 넥타이를 강하게 당겼다. 중심을 못 잡고 앞뒤로 휘청이다가 간신히 새하얀 시트 위로 팔을 짚었다. 그러고는 주름이 지고 구겨질 정도로 세게 쥐었다. 그가 나를 보고 쯧, 하며 혀를 찼다.
“그 일, 아르바이트한다는 거. 당연히 그만둬야겠죠, 서도운 씨.”
“……네.”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술 파는 곳에서 일한다는 거 자체가 짜증 나니까.”
스윽, 그의 넥타이가 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애써 팔에 힘을 주고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정말, 흐으, 그런 일 하는 곳은 절대 아닙…….”
그때, 갑작스럽게 그의 손이 날아왔다.
“말버릇부터 다시 고쳐야겠네.”
오른손이 내 뺨을 세게 때렸다.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잠시 멍해져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뒤, 광대 밑에서부터 얼얼하게 통증이 퍼져 나갔다.
“읏…….”
통증을 느끼며 다시금 눈물이 터졌다. 말 한마디를 덧붙이려다 이렇게 공연히 그의 화를 사고 말았다.
“고개 똑바로 해.”
“흑…….”
“울음 그쳐, 더 화 돋우지 말고.”
나는 애써 울음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으나, 한 번 터지기 시작한 것은 쉽게 그쳐지지 않았다. 고개를 다시 똑바로 한 뒤 눈치를 보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널 봐준 건데, 나한테 이런 식으로 굴어……. 응?”
형은 비아냥거렸다. 그런 그에게 또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낮게 흘렸다. 울먹임 때문에 제대로 전달됐을지 의문이었다.
“혀 씹지 않게 이 꽉 물어요.”
뺨이 또 한 번 내려쳐졌다.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뺨이 얼얼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징징 울렸다. 뇌가 흔들린 것만 같은 강한 충격이었다. 뺨이 마비된 듯하다가도 저릿저릿 전기가 오르는 통증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다른 새끼들이랑 섹스를 하고 다녔는지 아닌지 알 방법도 없고.”
내 꼴이 우스운지 형이 피식 웃으며 눈물이 흐르는 자국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그의 손이 젖을 것 같아 다급히 손등으로 훔쳐냈지만 훌쩍임은 도무지 숨길 수가 없었다.
“검사라도 할까요? 전처럼, 구멍 벌리고.”
“……하겠, 읏, 하겠습니다.”
“아, 아니지.”
형은 내 입 안으로 엄지를 넣어 억지로 입을 벌리고 턱을 쥐었다. 손가락으로 거칠게 치아와 잇몸을 쓸다가, 얼얼할 정도로 확 끌어당겨 자신의 고간에 얼굴을 묻게 했다.
“서도운 씨가 더 좋아하던 게 있었죠.”
콧등이 바지에 세게 쓸리고 뭉개졌다. 입에서 손을 빼고 뒷머리를 꾹 누르는 탓에 나도 모르게 형의 허벅지를 붙들었다. 그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머리채를 잡아 확 꺾듯 떼어내었다.
“전처럼 열심히 해봐요. 어쭙잖게 서툰 척하지 말고.”
“…….”
목구멍에 무언가 차오르는 듯했다. 애써 침을 꼴깍 삼키며 눈을 꾹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눈물이 맺힐 새도 없이 후드득 시트 위로 떨어졌다.
떨리는 손을 옮겨 조심스레 형의 허리로 가져갔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벨트를 풀어냈다. 그 밑의 버클과 지퍼도 차례로 천천히 풀었다. 자꾸만 손날에 반쯤 발기한 그의 성기가 닿는 것이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성기는 천천히 속옷을 끌어 내리자 위로 튀어 올랐다. 더 지체하지 않고 아래쪽을 쥐었다. 뜨거운 열감에 손이 데일 것만 같았다.
마른 입술이 터지지 않도록 혀를 내어 위아래로 핥았다. 촉촉이 젖은 상태로 귀두에 촉 내리고 동글게 문질렀다.
“우읏…….”
입을 조금 벌려 입술로 부드럽게 끄트머리를 물었다. 기둥의 윗부분을 손으로 감싸며 귀두에 혀를 내었다. 타액으로 축축하게 적셔 매끄럽게 만든 뒤에 츕츕 소리를 내면서 힘주어 빨았다. 훌쩍거리느라 숨이 모자랐다.
마침내 입을 크게 벌려 귀두를 입 안에 담았을 때는 머리 위에서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형은 목 안으로 길게 긁는 소리를 내며 내 뒤통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살짝 누르는 힘에 성기가 안으로 들어가며 입천장을 긁었다. 놀라 퍼덕거리자 두피가 홧홧하게 당겼다.
“제대로 해.”
“흐우, 으, 으읍…….”
형이 머리카락을 세게 쥐는 탓에 아픔이 몰려왔다. 절로 입 안이 조여들었다가, 귀두가 목구멍을 꽉 막는 모양새가 되어 숨이 턱 막혔다. 뱉어내듯 고개를 빼다가 그가 또 화를 낼까 슬쩍 시선을 올렸다.
형의 눈치를 보며 혀를 이리저리 문질렀다. 손아귀에서 점점 힘을 받아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지만 손 안의 이 열감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기둥에 솟은 핏줄을 따라 입술을 문지르고 혀로 꼭꼭 눌렀다. 다시 올라와 귀두부터 입 안으로 넣으면 츠읍, 하는 야한 소리와 함께 강한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더 깊게 빨아.”
“으응!”
형이 내 머리를 쥐고 허리를 강하게 쳐올렸다. 안을 순식간에 파고들어 와 목구멍을 퍼억 찔렀다.
눈물이 팟 터졌다. 찢어진 듯한 아픔과 숨이 막히는 데서 오는 공포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정하듯 그의 허벅지를 쥐고 시선을 위로 했지만,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흡, 윽! 읍! 으읍!”
“아, 우니까…… 입 안이 울리네.”
나는 필사적으로 형의 허벅지를 밀어내려고 했으나 그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꾸만 허벅지를 긁어내리는 내 손이 무척이나 거슬린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형은 내 어깨를 확 밀어 뒤로 눕히더니 몸을 움직여 내 상체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내 머리 뒤를 손으로 받쳐 들고…….
“크흡, 윽! 하읍!”
입 안으로 성기를 박기 시작했다. 밀어 넣는 게 아니라 입 안을 때리는 것처럼, 꼭 뒤에 삽입하고 피스톤질 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올라탄 그의 무게가 묵직하게만 느껴졌다.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내 몸을 누르고 조이는 것만 같았다.
두툼하게 부푼 귀두가 혀와 입천장을 압박하듯 누르고는 목구멍까지 억지로 벌려 들었다. 한 번 허리를 꽂을 때마다 이전보다 조금 더 안으로 진입하는 느낌이었다. 목이 겉으로 보기에 볼록하게 올라올 정도로 깊게 파고들었다.
한 손에 쥐기도 버거운 굵기였다. 그렇게 두꺼운 것이 손아귀보다 더 비좁은 목구멍을 쑤시고 들어오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릴 뿐이었다. 혀를 쓰거나, 입 안을 조여 성기를 애무할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목구멍이 찢어진 것처럼 아파 옆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가 아무리 옷자락을 잡고 애원해도 형은 무정하게 허릿짓만을 반복했다. 퍽, 퍽. 토기가 차오르고 구역질이 났다. 숨이 막히기 직전, 간신히 도리질을 치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천천히 성기를 잡아 뺐다.
“큽, 콜록……!”
일부러 몸을 모로 돌려 목을 부여잡고 콜록댔다. 흘러내린 눈물을 훔쳐 닦는데, 형이 내 어깨를 다시 눌러 똑바로 눕히더니 얼굴 위를 귀두로 문질러댔다.
반쯤 체념한 상태로 혀를 내밀었다. 할짝거리며 끄트머리의 팬 곳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더운 숨을 내쉬었다.
“하아, 흡……. 후으…….”
“아……. 씨발, 이래서 다들 너한테 개처럼 달려드는 거야. 알아?”
빨갛게 부은 입술 위를 툭툭 치며 문지르던 형이 말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훌쩍이며 올라오는 울음 섞인 숨을 애써 참듯이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머잖아 얼굴 위로 정액이 쏟아졌다.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곧 몸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목에 손이 닿아왔다. 흠칫거리며 눈을 떠보자 형이 넥타이 매듭에 손가락을 걸어 주욱 당겨 풀고 있었다. 매끈한 실크 넥타이는 어느새 바닥으로 떨어졌고, 손은 내 다리로 닿아왔다.
버클을 푼 뒤 곧장 쓱 당겨 벗겨내고는 옆으로 던졌다. 무겁게 옷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시선은 그에게 고정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드러난 허벅지를 쓰다듬던 형은 내 몸을 붙잡고 휙 돌려 엎어지게 만들었다. 몸이 순식간에 돌아갔다. 당황해 얼굴을 시트에 처박고 있자 그가 속옷 위로 엉덩이를 때렸다.
“허리 세워요.”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다리도 끌어와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눈앞 시트에 그의 정액이 옮겨 묻은 게 보여 눈을 질끈 감았다.
형은 올바른 자세가 되자 만족스럽다는 듯 때린 볼기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더니, 이내 무릎까지 속옷을 내렸다. 구멍 위로 차갑고 축축한 젤이 떨어지고, 그의 긴 손가락이 파고드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었다.
“아읏……!”
최근에 가졌던 잠자리와는 다르게…… 내 몸을 만져 열을 돋우는 애무가 전혀 없었다. 물론 처음 섹스를 할 때도 그런 전희 과정은 전혀 없었지만, 몇 번 그렇게 했다고 금방 애무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애무 없이 파고드는 손가락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단번에 두 개가 파고든 모양인지 손가락이 벌어지며 위아래로 쓸리는 느낌이 선연했다.
이를 꽉 깨물고 손은 시트를 쥐어뜯으며 고통을 참아냈다. 잇새로 흘러나가는 악문 신음은 막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형은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정말 그냥 박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처럼 뒤를 넓혀 성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듯했다. 서러움에…… 자꾸만 눈가가 뜨거워졌다.
손가락 하나가 젖은 구멍을 매만지다 쑥 밀고 들어왔다. 형의 손가락은 무척이나 길고, 또 마디가 툭 튀어나와 있어 세 개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그는 멈추지 않고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아흐으……. 흐으…….”
“힘 빼.”
“으응!”
네 개는 정말 버거웠다. 형의 움직임이 부드럽지 않아서 고통이 더했다. 그는 힘을 빼라고 말하면서 손가락을 구부리고 내벽을 확 긁어내렸다. 내장으로 퍼지는 고통에 구멍이 오므라들었다가 벌어지기를 반복했다.
뻑뻑했는지 젤을 더 쏟아붓는 게 느껴졌다. 질꺽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닿기도 전에 형은 손을 전부 넣을 듯이 콱콱 피스톤질 하기 시작했다.
“흐, 으으, 읏! 아, 아파요……. 으읏!”
“힘 빼라고 했어요.”
“아, 이사, 님, 윽!”
힘을 내 마음대로 뺐다 주었다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구멍 근처로 손가락 네 개가 모이는 곳까지 다가오면 절로 무서워 뒤가 확 조여들었다. 발가락도 덩달아 움찔대다 못해 무릎으로 기며 손길을 피했다. 그러자 역시 또 엉덩이 위로 매서운 손길이 날아왔다.
“흐윽…….”
“후우.”
형은 짧게 숨을 뱉더니 거칠게 손을 잡아 뺐다. 순간 상체를 무너뜨리며 엉덩이를 훅 내려 발꿈치에 닿게 만들었다. 발끝을 서로 맞비비며 고통을 참아내려고 했으나 홧홧하게 벌어져 쑤셔진 고통이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벌벌 떨리는 엉덩잇살을 형이 쥐며 위로 다시 올렸다. 금방 꽉 다물려 버린 뒤를 보며 비웃는 것도 같았다.
“구멍이 너무 잘 다물려서 다른 새끼랑 잤는지 알 수가 없네.”
미끈미끈한 젤에 축축하게 젖은 성기가 구멍 위를 꾹 압박했다. 그는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내 허벅지를 세게 쥐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는 허리를 더 눌러 기어코 뒤를 열었다.
“아, 아으읏!”
주먹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한계까지 벌어져 두툼한 귀두가 억지로 내장을 밀어내며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달달 떨었다. 상체를 지탱한 팔도 저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고인 눈물이 시트 위로 후드득 떨어지며 동그랗게 자국을 남겼다. 훌쩍이는 소리를 숨기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입술이 터져 피 맛이 나는 듯했다.
형은 꼬리뼈부터 시작해 척추를 손끝으로 타고 올라가며 자연스레 허리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밑도 부드럽게 주욱 삽입되었다.
“아아! 아……!”
배를 아릿하게 감싸는 통증에 뒤를 확 조였다. 너무 아파…….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주먹을 쥐었으나 해소되지 않았다. 조이는 힘에 등 뒤의 그가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형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 기다리는 듯 잠시간 움직이지 않다가, 내 숨소리가 점차 누그러지자 곧장 허릿짓을 시작했다.
“하아, 아……. 아으…….”
“내가, 하, 너 때문에…….”
“윽, 으으! 아파, 아…….”
“허리 무너트리지 마.”
형은 내 허리를 끌어안고 퍼억 소리가 날 때까지 쳐올렸다.
“하아아! 아……!!”
무너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억지로 붙들고 있어 간신히 엉덩이만 추켜세우고 있을 뿐, 상체는 이미 무너져 지탱한 팔 위로 이마를 기댄 자세였다.
귀두의 툭 튀어나온 부분이 안을 죽죽 긁어내리다 강한 힘으로 저 안쪽까지 치받았다. 형이 허리를 처박는 힘에 몸이 자꾸만 앞으로 덜컥덜컥 밀렸다. 오싹한 기운이 엉덩이부터 머리끝까지 타고 내달렸다.
젤이 녹아 질꺽이는 소리와 허벅지로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나도 적나라했다. 누가 들어도 극도로 흥분한 짐승이 교미하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형이 아예 내 상체를, 뒷덜미를 손으로 꾹 눌렀다. 다시 침대에 얼굴을 묻은 나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숨을 쉬었다.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듯한 자세로 거세게 밀려 박히는 성기를 받아내었다.
“흐으응, 으응…….”
뒤로 쭉 빠졌던 허리가 안을 억지로 파고들 때 어느 한 곳을 주욱 눌렀다. 눈앞이 깜깜하게 암전되었다 서서히 돌아오는 이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다.
형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허리를 더 빠르게,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내벽의 예민한 부분도 덩달아 부어오르며 자극받았다.
“아, 으, 너무…… 빨라, 아……. 아!”
이젠 슬퍼서도 아닌, 자극에 의한 생리적인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형이 눈치챘는지 허리를 길게 눌렀다.
“아파, 아파요……! 아으으……!”
“하아, 씨발, 안쪽이 아주 씹고 있는데 아프긴.”
그는 성기를 끝까지 빼내었다가 다시 퍼억 박으며 허리를 돌렸다. 자꾸만 눈이 뒤집힐 것 같아 질끈 감으며 목을 빼고 길게 울었다.
“엎어놓고 박아만 주면 느끼고 싸면서.”
“흐, 으으아!”
“이거 봐. 지금 벌써, 윽, 좆 세우고 있잖아, 응?”
형이 척척 허리를 쳐올리며 내 성기를 쓸어 올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힘을 받으며 서 있던 것이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파득 떨리며 더 발기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통통하게 오른 내 성기를 감싸고 엄지로는 귀두 끄트머리를 꾸욱 누르며 문질렀다.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그의 허릿심에 밀리지 않도록 무릎에 힘을 주고 싶었는데, 성기를 자극하는 손길에 당장이라도 온몸을 무너뜨리고 온전히 쾌감만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섹스가 아닌데, 하아.”
“우윽, 으! 아! 아……!”
“질질 흘리기나 하고.”
선단에서 미끈거리는 액이 흐르며 형의 손을 끈적하게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젖은 손길로 내 것을 쥐고 흔들었다.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이젠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다.
“아! 아아, 하아……. 아……!”
타액을 줄줄 흘리는 내 입에서 곧 사정할 것 같다는 애원이 흘러나왔다. 끈질기게 허리를 밀어붙이던 형은 속도를 올려 고환이 퍽퍽 부딪힐 정도로 허리를 쳐올렸다. 내 것을 아플 때까지 꾹 쥐었다가, 그가 사정함과 동시에 해방하듯 팟 놓았다.
“우으으, 으……. 흐으…….”
울먹임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손에 질질 사정하며 완전히 엎어졌다.
형은 내 몸 위를 압박하듯 누르며 안쪽 깊은 곳에 정액을 내보냈다. 배꼽 근처가 저릿저릿했다. 사정량이 많아 안이 꽉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성기가 꿈틀거리며 한참을 안에 파묻혀 있다가 남은 정액 모두를 내보낸 뒤에야 빠져나갔다.
“아…….”
형이 뜨거운 성기를 내 엉덩이 위로 툭 올려두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감상하듯 엉덩이를 벌리며 구멍 위를 문지르기도 했다. 엉덩이와 허벅지가 이어지는 어느 부분, 분명 점이 나 있을 부분을 쿡 찌르면 몸에 힘이 확 들어갔다.
솜털이 선 엉덩이 위로 비벼지는 성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슬쩍 움직이자 형이 몸을 비켰다. 하지만 금세 다시 붙잡혔다.
“으……!”
순식간에 형의 몸 위로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 조소를 띠는 그와 달리 나는 허리를 내달리는 통증에 입술을 짓씹었다. 아직 채 다물리지도 않아 벌어진 구멍 속이 간지러웠다. 그가 안에 내보낸 정액이 서서히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이거 봐요.”
형이 정신 못 차리는 내 뺨을 툭툭 쳤다. 치는 손끝이 젖어 있었다. 열기와 눈물에 젖은 눈을 어물어물 떠 바라보니 내 정액으로 흠뻑 젖은 그의 손가락이 보였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부끄러운 것과 동시에 그가 화가 났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밀려왔다.
“허락도 안 했는데 싸기나 하고.”
“죄, 죄송합…….”
“깨끗하게 하세요.”
형은 손가락을 그대로 내 입술 위로 올렸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내리깔며 조심스레 입술을 벌렸다. 그의 손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양손으로 그의 손을 쥐고 깨끗해질 때까지 츕츕 빨았다. 입술에 묻는 줄도 모르고 그저 어서 눈앞의 정액만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두 뺨을 붉히며 손가락을 오물거렸다. 모양새만 보면 사탕을 빨아 먹는 것만 같다.
정액을 모두 빨자 형은 이제 타액에 젖은 손가락을 밑으로 가져갔다. 엉덩이를 양쪽으로 세게 벌리고 그 사이, 뻐끔거리는 구멍 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앗…….”
몸이 위로 움찔대며 떨려왔다. 허공에 떠 있던 손이 순간 그의 어깨를 쥐었다가, 다시 급히 떨어져 그 뒤 침대 헤드를 짚었다.
“으, 으응…….”
“내 화 마저 받아내야 할 것 아닙니까.”
“흐읏…….”
갑작스레 엉덩이로 닿는 성기에 놀라 떨며 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시 발기한 그의 것이 엉덩이골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손으로 성기를 꾹 눌러 구멍 위를 압박하듯 움직였다.
“아……. 질질 흘리기나 하고.”
벌어진 엉덩이 사이에서 흰 액체가 주륵 흘렀다. 그의 성기 위로 툭, 툭 떨어지며 그를 자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아래로 다가오는 뜨거운 위압감에 몸을 부르르 떨기만 했다.
형은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내 허리를 조일 듯 세게 쥐어 위로 살짝 들었다. 절로 몸이 들린 나는 무릎으로 몸을 지탱했다.
“흐으, 으으으…….”
“또 울지.”
“죄, 죄송합니다……. 아! 아아!!”
뺨을 얻어맞을까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형이 들었던 허리를 서서히 누르기 시작했다. 발기한 성기 위로 천천히 내려앉는 고통에 몸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고개를 젖히고 울다, 다시 숙이며 그의 팔을 붙잡는 것을 반복했다.
“아파, 아픕, 으, 흐윽, 흐으……. 흣…….”
“힘 빼고.”
“천천히, 제발, 아, 아으으!”
이미 무척 느린 속도였으나 나에겐 다르게 느껴졌다. 허리를 쥔 손이 미끄러지듯 내려가 허벅지에서 멈췄다. 형은 안쪽 살을 부드럽게 쓸며 몸의 이완을 도우려 했으나 자세 탓인지 그리 쉽지 않았다.
스스로 넣으라는 듯 턱짓하는 그의 신호를 보고는, 이제 뺨을 맞든 뭘 하든 상관없는 사람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을 내렸다. 발기한 성기의 기둥을 손끝으로 쥐었다. 구멍을 벌리고 밀려드는 아픔에 손이, 엉덩이가 벌벌 떨렸다.
뭉쳐진 숨을 토해내듯 간헐적으로 뱉으며 서서히 성기를 담았다. 누워서, 엎드린 채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쇠창살에 몸이 꽂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도 채 들어오지 않은 성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만 같았다.
뇌가 절절 끓다 녹아버릴 정도로 머리가 뜨거웠다. 형의 화가 어떻게 하면 풀릴지, 풀리긴 하는 것인지 생각하던 것도 이젠 모두 잊고 말았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반쯤 넣었을 때, 그가 다시 앞을 만졌다. 내벽이 확 조여들었다.
“아, 하아! 아아……!!”
허리를 거세게 때린 자극에 몸에서 힘이 탁 풀렸다. 그의 몸 위로 철썩, 하고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윽……!”
그의 잇새에서도 거친 신음이 흘렀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곳의 문을 억지로 밀어 여는 느낌이 들며, 저 안쪽 깊은 곳이 푹 찔려 벌어지고 말았다.
“하아아! 아아!”
커다란 성기를 완전히 담았다. 이제까지 한 번도 끝까지 밀고 들어온 적 없는 부분에, 있는 대로 발기한 귀두가 파고들었다.
저 안쪽 아주 깊은…… 어느 한 곳을 찢을 것처럼 비틀어 누르고, 그 통로를 꿈틀거리는 성기가 가득 메웠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전신을 부르르 떨다가…… 툭, 투욱, 형의 배와 가슴 위로 정액을 쏘아댔다.
눈이 감겼다. 누군가 뒷덜미를 때리는 것처럼 자꾸만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눈앞이 번쩍이다가 희게 퍼졌다.
“이, 씹…….”
“흐으으, 응……! 으읏, 아!”
형은 내가 싸지른 정액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허리를 퍽퍽 쳐올리기 시작했다.
“아흐, 아아! 아……! 아!”
“이 안쪽으로, 느껴? 응? 서도운. 대답해.”
“흐아, 아, 윽, 잘못했, 어요. 잘못……! 아아!!”
그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무작정 잘못했다며 빌었고, 또 울었다. 형이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을 때마다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이 야해빠진, 몸을, 굴리고……. 아……. 아주, 자지러지는데.”
“하아……아……!”
“또 사정했습니까.”
그제야 또 정액을 줄줄 싸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물기가 어려 속눈썹이 축축이 젖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의 배에 맞고 문질러지는 성기에서 불투명하고 희뿌연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 느껴서, 온몸이 불 위에 올라온 것처럼 뜨거워서 지금 사정하는 줄도 몰랐다. 나는 그저 형의 성기를 받으며 천치처럼 입을 벌리고 신음해 댈 뿐이었다.
그의 어깨를 쥔 손을 내려 배 위로 가져갔다. 단단하게 짜인 근육 위로 흐른 정액이 미끈거렸다. 나는 몸을 지탱하며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조금이라도 덜 깊게 박히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형은 낌새를 금방 눈치채고는 내 등을 감싸 어깨를 누르며 허리를 쳐올렸다.
“아으윽! 흐윽!”
내장이 밀려 구역질이 올라오는 듯했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뭉개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억지로 눈을 끔벅이며 눈물을 흘려보내도 똑같았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철썩이며 허벅지가 떨렸다. 나는 형의 허리를 안쪽 살로 조이듯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그것이 큰 자극이었는지, 그가 흥분에 찬 몸짓을 이어갔다.
“아무도, 여기까지 박아준 사람이 없어?”
“윽, 흐윽, 흐으응!”
“하아, 아……. 서도운…….”
그가 이를 악물며 그르렁거리듯 물었지만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형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깨와 목이 이어지는 곳에 눈가를 문지르며 마구 울었다. 몸이 위로 치솟았다가 밑으로 꺼질 때마다 정말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오싹한 쾌감이 손끝까지 저리게 만들었다.
형은 내 엉덩이에 손톱을 세워 주무르다가, 허리까지 간지럼 태우듯 올라왔다. 턱, 턱, 박히고 있는 몸뚱어리에 자국을 남기듯 이리저리 손끝으로 긁어내리다 허리를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마지막 스퍼트를 내듯 아예 무릎을 세우며 내 몸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의 품에 폭삭 안긴 내 귓가를 이로 세게 물며 허리를 쥐고 밑으로 콰악 눌렀다.
“아, 아! 아아! 하아……!!”
이 이상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내벽을 파고든 그의 것이 내가 가장 느끼는 깊은 안쪽에서 정액을 터뜨렸다. 나도 동시에 왈칵, 묽은 정액을 싸질렀다. 역시나 알아채지도 못했다.
형은 내 몸을 조여 뭉갤 것 같은 힘으로 꽉 끌어안았다. 내가 자지러지며 벌벌 떠는 것도 다 그의 품 안에 가둬지고 말았다.
“아……. 아으…….”
내장이 꿈틀거리며 성기를 조여대다가, 퓨즈가 나간 것처럼 툭 힘을 빼자 구멍이 이완되었다. 그가 싼 정액이 뒤로 줄줄 흘러내렸다. 이미 안에 한 번 내보냈던 탓인지 엉덩이에 차마 다 담지 못하고 죽죽 떨어져 그의 사타구니로, 그리고 시트로 질척하게 고였다.
“흐으…….”
벌벌 떨리는 몸은 진정되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총알이 관자놀이를 관통한 것처럼 사고가 멈췄다.
형은 한참이 지나도 내 몸을 놓아주지 않았다. 팔뚝만 한 성기를 담고 있는 뒤가 너무 아팠다.
깜빡깜빡 눈을 뜨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결국 눈꺼풀을 닫고 말았다. 뒤에서 흘러내린 정액에는 붉게 핏기가 섞여 있었다. 반쯤 정신을 잃은 내가 그걸 알아챈 것은 여덟 시간이 흐른 뒤였다.
“…….”
눈을 떴을 땐, 이미 창밖에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불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 기절하기 전 온몸을 휘감던 달뜬 쾌감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차갑게 식은 공기가 맨살에 닿아왔다. 그렇게 한참을 모로 누워 간신히 색색거리는 숨만 쉬었다.
눈동자만 겨우 굴려 사방을 살폈으나, 나를 혼내고 괴롭혔던 형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냥 멍하니 정신이 깨어진 때도 있었고, 밖에서 희미하게 소음이 들리기도 했다. 바스락거리거나,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아주 작은 소리.
꿈인가 싶은 생각에 다시 잠든 것이다. 몸이 아프고 피곤하니 깊게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것인 줄 알았다.
“……급하게. ……알겠습니다. 따로…….”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물속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소리가 웅웅 울리고 퍼져 문장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수준이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너무 울어서 눈이 붓고, 얻어맞은 뺨도 탱탱하게 부어올라 눈을 제대로 뜨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눈을 비비려고 팔을 드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몸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한 묵직한 통증이 끝없이 이어졌다.
입과 턱, 목구멍에까지 남아 있는 통증은 아무리 침을 여러 번 삼켜도 해소되지 않았다. 물리고 빨린 가슴엔 쓰라린 붉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허리와 엉덩이 사이를 저릿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고통은 잠재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트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다리는, 차마 계속 바라볼 수가 없어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질끈 눈을 감았다. 정액이 붉은 선혈과 엉겨 붙어 다리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앉았을 때 엉덩이가 심히 아프다 싶더니…….
꼴도 보기 싫어 시트를 끌어다 다리를 덮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형이 너무 미웠다. 내 정신과 몸을 이다지도 흔들어놓는 형이 정말…….
나도 마음껏 그를 싫어하고 싶다. 그가 하는 것처럼 그의 인생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며 증오와 분노를 쏟아내고 싶다.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내 힘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이제야 일어났습니까.”
형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저 깊은 새벽빛을 닮은 눈동자만 바라보아도 마음속 깊은 곳이 꿈틀거리며, 심장을 뛰게 만든다. 설령 감정을 쏟아낸다 해도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모질게 굴지 말라고, 사랑해 달라고 꼴사납게 애원할 게 분명했다.
“…….”
문을 열고 나타난 형에게 대답을 해야 하는데, 목이 잠겨 그러지 못했다.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는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 안 갔구나. 당연히 곧장 돌아간 줄 알았다. 몸도 씻겨주지 않았기에.
씻겨주는 게 당연한 건 아닌데, 몇 번 그렇게 배려를 받았다고 난 또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맞다. 내가 나쁜 것이다.
“룸서비스 부를 거니까 오기 전에 정신 좀 차려요. 씻고.”
형은 작은 전등을 켜고 내 상태를 위아래로 훑었다. 지저분한 오물이라도 봤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경멸 어린 시선을 받아내는 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차피 쳐다보지도 않기에 이번엔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내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라는 듯 그는 일인용 소파가 놓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불을 켜니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반신만 탈의한 채였다. 내가 냈을 게 분명한 손톱자국이 어깻죽지에 길게 나 있었다.
“아……. 문 전무한테서 계속 연락이 오더군요.”
형은 탁자 위의 핸드폰을 집어 들어 침대로 던졌다. 손 앞에 툭 떨어진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몇 건 찍혀 있었다.
“서도운 씨 핸드폰으로요.”
“…….”
“이걸 내가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는데, 내가 받으면 또 화낼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가느다랗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게 내가, 선 알아서 잘 지키라고 했잖아요.”
선. 틀린 말이 없었다. 그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고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떤 치료법을 써도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깊은 곳으로 굴을 파고 들어갔다. 애초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 아니, 뻔뻔하게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던 게 아닐까.
이 지경까지 치닫게 된 모든 원인이 나여서 더없이 부끄러워졌다. 부끄럽다는 감정이 맞을지도 의문이었다. 부끄러운 수준이 아니라 한심 그 자체였다.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으니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또 오는데.”
“아…….”
“받아봐요.”
무음 모드로 전환된 핸드폰 화면에 전화가 걸려왔다는 표시가 빛나고 있었다. ‘문 전무님’. 화면에 떠오른 사람은 문 전무였다. 형은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겠다는 듯 뒤돌아 소파에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화면에 손을 댔다 떼기를 반복했다.
형은 태연하게 담배 케이스로 손을 뻗었다. 저 큰 손이 사정없이 내려친 고통이 아직도 부어 있는 볼에 선연히 남아 있었다.
“……안 받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다시 핸드폰을 엎어 내려놓았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어서, 문 전무와 통화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 생각되어 그리한 것이다.
“하. 이제 와서.”
“…….”
“진작 그래야 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
형은 하얗고 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죄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입 안에 모래가 굴러다니듯 텁텁함이 느껴졌다.
“다음부턴 내가 부르면 M 호텔로 오도록 하세요.”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이질적인 단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
그리고 되물었다. 갈라진 목소리가 형편없었다.
형은 담배 끝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였다. 그의 흉곽이 부풀었다가 차분히 내려앉으며 근육이 꿈틀거렸다. 연기가 길게 내뱉어졌다. 무척이나 느릿하게 이어진 동작들이었다.
그사이 대답을 기다리는 나는 초조해져만 갔다. 그가 왜 돌연 호텔을 바꿨는지에 대한 의문보다도, 그 호텔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윽, 하지, 마. 하지 마!’
그 당시 나의 어리석고 나약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는 것만 같았다. 흠칫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깡패의 협박, 아니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가 향했던 그곳. 약 탄 술을 마시고, 그대로 강간당할 뻔했던 그 호텔이었다.
“형이 곧 귀국합니다. 호텔에 잠깐 묵고 싶어 하더군요. 굳이 내가 여기서…….”
형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때의 감각이 선연했다. 둔해진 몸 위로 쏟아지던 진득한 손길과 짐승처럼 핥아대던 커다란 그림자들. 형과는…… 전혀 달랐다.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그대로 끌려다니다 간신히 도망쳐 나왔을 때의 그 오싹함이 또…….
“……그 호텔은 싫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말허리를 자른 것인지 그가 조금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왜.”
“…….”
“보안이 이유라면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나는 형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보안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안 쪽은 이런 관계를 들켰을 때 더 타격이 큰 그가 철저하게 대비할 것이니 아무 걱정 없었다.
“네가 지금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처지던가?”
“저는…… 그곳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절대, 내 발로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떠올리기만 해도 이렇게 몸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정말로 갔다간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왜. 문지원이랑 거기서 섹스라도 했어요?”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몸 팔던 걸 처음 본 게 그 호텔이었던가.”
어깨가 잘게 떨려오는 것을 그에게 들킬까 두려웠다. 나는 티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시트 밑으로 팔을 감쌌다.
“……부탁드립니다.”
하필이면 딱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던 그 날…… 형이 날 보다니.
“부탁드려요, 제발.”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전달될까. 아닐 것 같다. 모르겠다.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담배 연기를 흘리던 그가 재떨이 위로 담배를 던졌다. 촉촉이 젖은 헝겊 위에서 불이 서서히 꺼져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그는 이내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 호텔에서 또 다른 새끼 숨겨놓고 만나는 건 아니겠죠.”
“절대, 절대…… 아니에요.”
고개를 마구 저으며 대답하자 어느 순간 형이 한 손으로 턱을 감싸듯 볼을 누르며 고개를 멈춰 세웠다. 손에 힘을 줘 위를 쳐다보게 만들고는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내가 부탁을 들어주고 싶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글쎄. 형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답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예쁜 짓이라면.
엉거주춤 형의 허리 근처로 손을 살짝 뻗으며 말했다.
“빨까요……?”
“싸게 먹으려고 하네.”
“……그럼 씻고 오겠습니다. 아직 좀…… 지저분해서.”
얼른 시트를 걷었다. 피와 정액이 묻어 있는 다리가 드러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허리가 아파 발을 딛는 것은 조금 힘이 들었다.
움찔거리며 아픔을 참아내다가 겨우 몇 발짝을 뗐을 때였다. 내가 일어난 빈 침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그가 막 옆을 지나치는 내 팔뚝을 잡아 확 밀어 침대로 눕혔다.
“으윽!”
당황해 팔꿈치로 상체를 기대며 몸을 일으키자 형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습니다. 느려 터져서는.”
그는 짜증 내듯 뱉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 붙박이장을 열어 셔츠 한 장을 꺼내더니 거울 앞에 서서 팔을 끼워 넣었다.
“청담동에 놀리는 집 하나가 있습니다.”
단추를 하나씩 끼우며 그가 말했다. 어쩐지 한숨을 쉬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주소는 나중에 알려주겠습니다. 거기면 되겠습니까.”
“……예.”
“아주 까다롭네.”
어리둥절했지만 형이 그렇게 배려해 준다니 다행인 일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굉장히 번거로운 일을 벌였다는 듯한 느낌.
셔츠를 다 입은 형은 매무새를 가다듬고 재킷을 마저 걸쳤다. 그리고 지갑에서 종이를 몇 장 꺼내 앞에 내려놓고는 문으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형의 뒷모습에 대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가 멈칫했다.
“도, 돈이 아니라…… 부탁 들어주신 것 말입니다.”
혹시나 그가 오해할까 봐 말을 덧붙였다. 이미 오해로 점철된 관계에서 그거 하나 정정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겠지만 말이다.
“처신이나 똑바로 해요. 엉덩이 가볍게 돌아다니지 말고.”
“…….”
“그 순진한 척하는 얼굴도…… 집어치우고.”
힐끗 나를 돌아본 시선이 차갑게 가슴에 박혀들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형이 호텔 방을 나서는 소리를 듣고서도 한참을 그 자세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하늘이 무너져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