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29/29)

  6.

짧은 몇 개월 동안 많다면 많은 일이 지나갔다.

가장 먼저 부서 이동을 하겠다던 심 과장이 결국 사표를 냈다. 재단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끝까지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도운은 그를 더 비난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저런 사람이라면 어디가 되었든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붕 뜬 채 살아갈 것이다.

다음으론 재혁이 승진했다. 재혁은 이제 서 주임이 되었다. 비서실 내에서 주임이라는 직책은 크게 의미가 없었기에 위의 상사들이나 박 대리 또한 주임을 거치지 않고 바로 그 위 단계로 올랐다. 하지만 재혁만 예외로 빠르게 주임을 달았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해일과 도운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온통 하얬다. 커다란 눈송이가 천천히 날아와 여기저기에 소복이 쌓여갔다. 한 해가 가기 직전의 겨울이었다.

“짐 다 챙겼어요?”

“네, 이대로 들고 가면 돼요.”

도운은 자신의 캐리어 지퍼를 당겨 잠그며 대답했다.

“여권만 잘 챙기면 됩니다. 다른 건 사면 되니까.”

해일이 대신 도운의 캐리어를 챙겨 들었다. 도운이 눈길을 뒤뚱뒤뚱 따라 나오며 자기가 들겠다고 했지만, 해일이 끝까지 손잡이를 사수할 수 있었다. 트렁크 문이 쾅 닫혔다. 이젠 정말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목도리 풀어지지 않게 잘 매고.”

“매주세요.”

해일은 도운의 목도리를 목 주변으로 꼼꼼하게 둘러 감쌌다. 매듭을 지어 마무리한 뒤, 그사이 도운의 머리 위에 쌓인 눈도 털어주었다.

그들은 눈을 마주하고 포시시 웃었다. 한겨울이었지만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리고 곧 차에 올랐다.

마당에 찍혔던 크기가 다른 두 발자국은 서서히 쌓이는 눈에 모습을 감추었고, 집을 빠져나간 차는 공항을 향해 달렸다.

두 사람은 계획했던 미국 여행을 떠난다.

크리스마스 전부터 내년 초까지 머물다 오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앞으로도 함께 여행할 날은 더 많이 남아 있을 테니.

그리고…… 해일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가, 이 사랑의 확고한 결실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더 이상의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엮는 더없는 굴레를 쓰려고 한다.

꽃섶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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