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10. Salad days (03:25)
sálad dàys
1. [one’s ~] 경험 없는 풋내기 시절
2. 젊고 활기 있는 시절,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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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설민, 오은은 동시에 기가 찬다는 듯 탄식했다.
“Oh, my GOD.”
“차영롱. 죽어도 비밀로 하라더니.”
“하, 미친 새끼. 우리도 우리지만 차영롱이랑 형도 제정신은 아니야…….”
태휘가 눈을 치켜 올려 쏘아보자 오은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태휘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에 있던 담배를 챙기며 말했다.
“다들 놀란 것 같은데, 나 담배 피우고 올 동안 머리 좀 식혀.”
“같이 가.”
설민이 바로 따라 일어서자 태휘는 의외라는 듯 위아래로 흘겨보았다.
“나도 너랑 가는 거 안 내키지만, 지금 담배 도저히 못 참겠다.”
그렇게 비흡연자인 강과 오은을 서재에 남겨 두고 태휘와 설민이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은 아파트 옥상에 있는 흡연 구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옥상엔 둘뿐이었다. 각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개비를 다 피울 때까지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설민이 암만 생각해 봐도 기가 막힌 지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차마 말을 못 잇고 자신을 향해 삿대질만 해대자 태휘는 무시한 채 계속 담배만 피웠다.
“원태휘, 너 어떻게 이걸 지금까지……!”
“모르는 척했냐고? 지금 그게 중요해?”
“난 그것도 모르고 이제까지…….”
설민은 말끝을 흐리고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너 때문에 걔 잠수 탔다고 착각했지?”
태휘가 아픈 지점을 정확히 건드리자 뼈가 다 아려왔다.
“……어.”
“너랑만 했다고 믿었냐? 꿈도 야무지네.”
세상 허탈한 설민의 표정에 태휘는 절로 비웃음이 나왔다.
“혼자 헛물켜느라 마음고생 많았네.”
“야, 원태휘.”
“내가 말했지. 넌 그놈의 지레짐작하는 버릇이 독이라고.”
“너 그동안 내가 영롱이 타령하는 거 보고, 아주 우스웠겠다?”
설민은 부끄러움에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태휘는 힐끗 한 번 쳐다보더니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너까진 어느 정도 이해했어.”
설민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넌 진심으로 걔 좋아했으니까.”
내뿜은 담배 연기 사이로 태휘를 바라보던 설민은 곤란한 표정을 감추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새끼. 다 알고 있었네.”
“그렇게 티를 냈는데, 모를 수가 없지.”
태휘는 휴지통 재떨이에 담배를 짓이겨 껐다.
“그런데 이해되면서도 네가 제일 좆같아.”
그 말에 설민은 바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넌 걔 마음조차 알고 있었잖아. 강이 형이나 오은이 자식은 몰랐어도.”
설민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잠깐. 뭐라고?
“너……. 영롱이가 너 좋아한단 것도 알고 있었어?”
태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머릿속이 복잡해진 설민은 애꿎은 머리카락만 마구 쥐어뜯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뭔데?”
“뭐긴 뭐야. 동물의 왕국이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태휘는 도리어 덤덤해 보였다. 비아냥거릴 여유까지 있고. 거의 해탈의 경지에 오른 걸까?
“그럼, 태휘 너도 영롱이랑…….”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묻자 태휘가 또다시 흘겨보았다. 그 눈빛에 기가 죽은 설민은 즉시 시선을 피했다. 아니면 말지, 새끼.
“난 해체하고 나서고.”
뭐야, 이 개새끼가! 장난하나!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롱은 태휘를 좋아했다. 태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롱은 그룹 활동 시절, 태휘를 제외한 멤버들과 다 잤다. 자신이 중간에 뭔가를 놓친 걸까 궁금했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솔직히, 우리는 몰랐다고 쳐도 다 알고 있던 네가 더 문제 아니야?”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했던 건데? 일이 다 벌어진 뒤에야 알게 된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달리 뭐가 있었겠어?”
“잘은 모르지만, 이 사단이 다…… 너랑 영롱이 사이의 문제 때문에 벌어진 거 아니야?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용당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설민이 다소 격양되자 태휘는 입가에 쓴 웃음을 가늘게 띤 채 말했다.
“이용당했다니. 넌 걔 좋아했으면서 그저 섹스 파트너로 만족했다는 거네.”
정곡을 찔렸는지 설민은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이 됐다. 태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귀는 사이였다면 이용당했다는 말 안 할 텐데. 다들 걜 어떻게 여기고 그런 짓 했는지 궁금했어.”
그 궁금함을 혼자서 삭인 것도 자그마치 13년이었다. 이제 와서 이 얘기를 꺼내게 될지는 태휘 자신도 몰랐지만.
“연인으로 대했을 수도 있고, 단순한 섹스 파트너였을 수도 있지. 그래도 이설민 넌 전자였을 거로 생각했는데.”
“너랑 영롱이 사이를 아는데, 내가 어떻게 그러냐?”
“아는 녀석이 걔랑 잤다고?”
설민은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을 모르다가 계속되는 태휘의 빈정거림에 결국 작심한 듯 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럼, 먼저 유혹해 오는데! ‘아, 영롱이는 태휘 거니까 안 건드려야지.’ 이럴 재간이 있냐? 내가 고자냐?! 그럼 네가 먼저 사귀든가, 도장 콱 찍든가 하지 그랬어?!”
“너…….”
“그때 난 고작 21살이었다고!”
◀◀◀
- 199□년 2월 -
이전 해였던 199●년은 3집 활동에다가 첫 콘서트도 열고, 가을에 4집 앨범까지 내며 ‘STORY’ 멤버들 모두 정신없이 보냈다. 그에 비해 199□년은 충분히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회사 측과 얘기가 돼서 한결 여유롭게 시작했다.
올해는 앨범 발매보다 콘서트 투어에 집중하기로 했기에, 구체적인 투어 일정이 잡히기 전까지 멤버들은 각자 자유 시간을 보냈다.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덕분에, 회사 측에서 멤버들의 대우도 한층 더 좋아졌다.
이전까지 연습 및 앨범 작업 일정 등이 멤버들 위주가 아니라 회사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이제는 멤버들에게 우선 발언권과 선택권이 주어졌다. 그렇게 멤버들은 훨씬 편하고 안정적으로 다음 작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작년 하반기 활동을 소화하는 동안 눈에 띄게 변한 멤버는 다름 아닌 영롱이었다. 4집 앨범 준비 때까지만 해도 철부지처럼 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여전했지만, 어린애같이 제멋대로 구는 태도는 좀 줄었다.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쫑알대고 숨 쉬듯 애교 떨던 녀석이 말수와 애교가 눈에 띄게 줄었다.
평소 영롱의 애교를 예뻐한 스탭들이나 방송국 쪽 사람들은 대놓고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로.
“우리 귀염둥이 영롱이가 요새 왜 이리 얌전하지? 재미없게.”
“저 이제 성인 됐으니까 애교 말고, 섹시미 밀어붙이려고요~.”
“차영롱이 섹시미? 푸하하하하! 과연 될까?”
사람들의 비슷한 반응에도 영롱은 새침하게 미소만 짓고 넘길 뿐이었다. 물론 타고 난 애교는 사라지지 않았기에 뻔뻔하게 저런 농담을 날리는 거지만.
그 밖에도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영롱은 더는 태휘에게 엉겨 붙지 않았다. 작년 여름 숙소 각방 사건 이후까지도 영롱은 습관적으로 태휘에게 붙어 있었다. 태휘가 덥다고 잔소리하면 그제야 떨어지고. 하지만 언젠가부터 둘은 최소한의 스킨십만 하기 시작했다.
커플 팔찌 도로 뺏는다고 협박했나? 그게 아니라면 태휘가 더는 들러붙지 말라고 진지하게 설득했으려니, 멤버들끼리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싸운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전보다 묘한 거리감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둘의 사이가 심각하게 나쁜 건 또 아니었으니까. 영롱이 떼쓰는 일이 줄다 보니 둘 사이에 빈번했던 소소한 트러블은 오히려 사라진 편이었다.
여태껏 함께 보낸 시간만 자그마치 6년이다. 어쩌면 눈빛만으로 다 통해 대화와 스킨십이 자연스럽게 줄어든 걸지도 모른다. 다만 그사이 영롱과 다른 멤버들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졌을 뿐.
이 시기가 태휘와 영롱이 그간 쌓아 왔던 우정의 유지기 혹은 냉각기였다면, 나머지 멤버들과는 급진적인 발전기에 속했다. 그 최대 수혜자는 아마도 설민이었을 거고.
설민은 언제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좀처럼 그 기회가 오지 않아 거의 포기 단계였으나, 드디어 그들에게 냉각기가 온 것이다.
둘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자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늘 영롱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태휘가 조금씩 멀어지자 그 자리는 자연스레 설민의 차지가 됐다.
팀 내 수다쟁이 No·1과 No·2인 두 사람은 제일 쿵짝이 잘 맞기도 했고, 설민은 태휘와는 달리 대놓고 멤버들 중 영롱을 가장 편애했다. 설민 나름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과장된 표현과 가벼운 말장난 속에 남모르게 진심을 섞었다. 그래야 태휘와의 정면 돌파를 피할 수 있고, 그나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영롱이 도무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역효과가 있었지만. 모든 사람을 두루두루 챙기는 편인 설민이었기에,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했다. 그러던 중,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 터졌다.
본격적인 전국 투어에 돌입하기 전, 꽤 여유 있는 휴가가 생기자 한강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잠시 미국으로 갔다. 반면, 태휘와 영롱은 평소에도 본가에 거의 가지 않았기에, 휴가 때도 계속 숙소에 있었다. 가더라도 하루 이틀 정도 짧게만 다녀오곤 했다.
태휘는 휴가거나 말거나 늘 음악 작업에 빠져 회사 녹음실에서 살다시피 했고, 오히려 설민이 합숙 멤버처럼 숙소에 머물렀다. 자연스럽게 영롱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로 거실에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팬들의 편지도 읽고, 종종 음악과 춤 얘기도 했다. 태휘는 숙소에 오더라도 자기 방에서 잠만 자고 나갔다. 멤버들 여러 명이 있을 때보다 단둘이 대화할 시간이 많아지니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날은 집안 행사 때문에 며칠 친척 집에 다녀온 설민이 오랜만에 숙소를 찾은 날이었다. 당연히 숙소에 영롱이 있을 줄 알고 전화도 하지 않고 왔는데, 숙소는 조용했다. 어쩐지 숙소 앞에 팬들이 없더니만, 녀석이 나가서 다 돌아간 모양이었다.
영롱의 핸드폰으로도 전화해 보았지만 받질 않았다. 본가에 갔나? 미용실 가서 머리하나? 스케줄도 없는데?
거실 소파에 심심하게 앉아 있다가, 영롱의 방문이 조금 열려 있는 걸 보았다. 하여간 문단속이라는 걸 모르는 녀석. 어차피 우리끼리만 있는 공간이지만, 방 열쇠까지 갖고 다니며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는 한강과는 딴판이었다.
멤버들의 방은 종종 들어가긴 했지만 아무도 없을 때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숙소에 혼자였음에도 저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영롱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은 당연하게도 녀석의 체취로 가득했다. 순간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영롱이 즐겨 뿌리는 향수의 냄새 속에서 녀석 특유의 살 향이 느껴졌다.
조금 덥게 느껴져 창문을 열까 하다가, 그 체취가 조금이라도 빠져나가는 게 아까워 관뒀다. 방은 영롱의 취향대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구석구석 팬들이 준 선물로 채워져 있었고, 네 벽면 가득 영롱의 포스터와 그림 액자 등이 덕지덕지 걸려 있었다.
침대에도 자신이 누울 만한 공간을 제외하고 팬들이 준 솜인형과 쿠션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자다가 인형에 깔려 죽을라. 그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몸을 뉘어 보았다. 솜인형과 쿠션에는 영롱의 체취가 더 짙게 남아 있었고, 차오르는 충동을 점점 참기가 힘들었다.
어느 정도 목적이 있던 침입이긴 했지만, 이렇게 몸이 빨리 달아오를지는 미처 몰랐다. 설민은 영롱을 향한 마음이 우정과는 다르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였다. 다만 녀석의 곁에 태휘라는 큰 존재가 있기에 이 마음을 꺼낼 엄두가 안 났을 뿐이지.
매일 보던 얼굴을 며칠 동안 보지 못했으니 평소보다 그리움과 갈증이 더 커진 듯했다. 영롱의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있던 설민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푹 묻었다.
눈을 감아도 녀석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자, 한쪽 팔로 베개를 꽉 움켜쥐고 다른 손은 바지 사이로 집어넣었다. 집에서 가끔 영롱을 떠올리며 자위한 적은 있지만, 그 대상의 방에서 하니 효과가 상상 이상이었다.
“하, 씨발……. 영롱아.”
영롱을 향한 감정은 도무지 식지를 않는데, 녀석은 여전히 태휘를 좋아하는 것 같고. 태휘를 좋아하는 영롱이 행복해지길 바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복잡한 심경들이 충돌하며 설민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요즘 영롱은 말수도 적어지고 부쩍 성숙해져서 묘한 색기까지 흘렀다. 설민 자신의 욕구 불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위만이 유일하게 쾌감을 주는 행위였다. 상상 속의 영롱은 태휘가 아닌 자신만을 바라보며 더 세게, 더 빨리 안아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설민이 형, 조금만 더.’
영롱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하자, 허리가 움찔거리며 제멋대로 튕겨 올랐다. 설민은 신음하며 베개에 얼굴을 비벼 댔다. 더는 체취가 느껴지지 않자 손을 뻗어 아무 인형이나 닥치는 대로 잡아 얼굴을 묻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성기를 계속 자극하자 이내 사정감이 몰려왔다. 남아 있는 일말의 이성이 여기서 사정하면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이 공간을 가득 채운 녀석의 체취가 너무도 강했다. 자신을 조르는 영롱도 그걸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에다 해 줘, 형.’
“하아, 영롱…….”
마침내 그대로 사정해 버리고 말았다. 베개에 거친 신음을 토해 내고 호흡을 고르는 동안 점점 정신이 돌아오며 손바닥의 끈적임이 느껴졌다. 하, 씨발. 기어이 했네. 침대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손을 처리하기 위해 티슈를 찾는데 어딘가에서 갑자기 티슈가 나타났다.
어쩐지 아까보다 영롱의 향기도 짙어진 듯했다. 순간 고개를 들자 어느새 방에 들어온 영롱이 침대 옆에 앉아 설민을 향해 티슈를 내밀고 있었다. 어라, 아직 내 망상 속인가? 하지만 이내 현실임을 자각했다.
설민은 너무 놀라서 뇌까지 얼어붙어 오는 듯했다. 머릿속에 다른 어떤 생각도 안 나고,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동료이자 친한 동생의 방에서, 그의 베개를 끌어안은 채 딸치고 있는 모습을 들키다니.
분명 처음엔 현관에서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바로 멈춰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럴 정신도 없이 행위에만 몰두한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입을 뗄 수나 있을지. 머리가 안 돌아가는 상황에서 더럽혀진 손은 그대로 허공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영롱이 설민의 손목을 부드럽게 낚아챘다. 그러고는 티슈를 뽑아 손을 닦아 주자 차마 뿌리치지도 못하고 팔을 내준 채 얌전히 있었다. 영롱은 다 닦아 낸 티슈를 뭉쳐서 방구석 휴지통에 던져 넣은 후 설민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물었다.
“다 했어?”
‘죽고 싶다, 진짜.’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에 엎드려 있던 설민은 주뼛주뼛 몸을 일으켜 끝에 앉았다. 물론 최대한 멀리 떨어져 침대 머리맡 쪽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영롱이 불쑥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깜짝 놀란 설민은 반사적으로 아무 말이나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뱉었다.
“영롱아,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내가 미쳤었나 봐!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 그냥 한 번만 모른 척…….”
“형. 나 좋아해?”
“어. 그러니까 제발……, 응?”
설민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알아채고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혐오스럽다거나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영롱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재차 되물었다.
“정말?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거야?”
영롱은 ‘이런 식으로’라고 말할 때 설민의 중심부를 힐끗 내려 보았다. 조신하게 두 손을 모아 가렸음에도 팽팽하게 당겨진 트레이닝 바지는 아직 그 상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설민은 수치스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조금 전 그 장면을 다 봐 놓고 왜 되묻는 건지? 이 상황에서 부정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영롱은 진심으로 놀란 듯 소리 없이 ‘호오’ 하는 입 모양을 만들고는 ‘그렇구나’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민은 평소에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거로 믿는 녀석이, 왜 신기해하는지 궁금했다.
“누가 나를 이런 식으로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그저 만인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당연하게 여길 뿐, 구체적으로 성적인 탐닉 대상이 될 줄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한 생각이 딱 녀석답기는 하다.
“언제부터 내 생각하면서 자위했어?”
영롱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화살이 다시 자신에게로 향하자 설민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싹싹 비볐다.
“미안해! 진짜 다시는 안 할게!”
“좋아한다면서 어떻게 안 해? 나는 진짜 못 참겠던데.”
그 말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고개를 들고 영롱을 쳐다보니 어쩐지 조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민은 그새 자신의 처지는 잊고 물었다.
“넌 누구 생각하면서 하는데?”
“비밀이야.”
하긴, 말하지 않아도 뻔하지.
“태휘?”
이번에는 영롱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알았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떻게 내가 모를 수 있겠냐. 늘 태휘만을 바라보는 네 모습을 쭉 봐 온 게 바로 나고, 다름 아닌 그 모습에 반한 건데. 한편 영롱은 심통 난 표정으로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 인간 얘긴 하지 마. 열받으니까.”
그 말에 설민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상황에선 최대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게 영롱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돌연 표정이 바뀌더니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러더니 설민에게 더 바짝 다가왔다.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잖아.”
베개와 인형에서 느끼던 것보다 훨씬 선명한 체취가 코앞에 훅 다가오며 온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자위 말고 진짜로 하는 거 말이야.”
영롱이 반짝이는 눈빛과 함께 속삭이듯 말했다. 설민은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무, 무슨 소리야?”
“형 해 본 적 있어? 난 한 번도 안 해 봤거든.”
정지했던 뇌가 영롱의 말에 빨리 돌아가더니 심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머리와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어도, 옆에서 지켜본 태휘와 영롱의 관계는 꽤 특별했기에 이미 형‧동생 이상의 사이로 진행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롱의 얘기에 미루어 볼 때…… 그리고 태휘의 성격도 짐작해 볼 때, 태휘는 영롱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게 분명했다. 너무 오래 알고 지내서 그저 동생으로밖에 안 보이는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설민은 자신이 더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태휘는 영롱과 그 오랜 시간 붙어 다녔는데도, 심지어 1년 넘게 좁은 방에서 함께 지냈는데도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설민은 그 사실을 되뇌며, 뛰쳐나가려고 하는 이성을 겨우 붙들어 최대한 방어해 보기로 했다.
“너…… 태휘 좋아하잖아.”
“그 인간 얘긴 하지 말라니까.”
영롱은 앙칼지게 말하더니 얼굴을 더 가까이 붙여왔다. 그러곤 손을 뻗어 설민의 허벅지를 만지자, 겨우 진정시킨 욕정이 서서히 다시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형도 나 좋아한다며. 난 괜찮으니까…….”
뭐가 괜찮다는 거야! 내가 안 괜찮아, 이 자식아!
“태휘가 알면 날 죽일 텐데?”
“하, 진짜. 자꾸 원태휘 얘기할래?”
“차영롱, 너도 생각해 봐! 지가 아끼는 동생 건드리면 가만히 있겠어?”
“아끼기는, 씨발.”
영롱이 욕하는 건 처음 들었다. 확실히 태휘에게 단단히 삐친 게 있는 듯했다. 설민은 영롱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바로 직전까지 떠올리며 딸친 상대방에게 이런 말 하는 자신이 웃기기도 했지만.
“너도……. 나 좋아하지 않으면서 이런 짓 해도 후회 안 하겠어?”
내뱉은 문장에는 이미 동의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걸 말하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나, 형 좋아해. ‘이런 식으로’는 아니어도.”
영롱은 설민의 중심부를 내려다보며 그를 두 번 죽이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다면, 영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설민의 허벅지에 올려져 있던 영롱의 손이 위로 미끄러져 왔다. 말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육체적인 자극을 주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역시 그 효과는 직방이었다. 진정되는 듯하던 중심부가 영롱의 손길에 다시 벌떡 고개를 들었다. 말과는 따로 노는 솔직한 몸뚱이에 설민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손끝에서 단단함을 확인한 영롱은 혀로 아랫입술을 축이며 미소 지었다.
“형, 엄청 건강하구나.”
젠장. 그것도 그거지만 네가 너무 유혹적이라서 그렇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자신의 것을 문지르는 영롱의 손길을 느끼며, 바로 눈앞에서 오물거리는 빨갛고 탐스러운 입술을 보고만 있자니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왔다.
“나 야동 같은 거 보면서 너무 궁금했거든. 형이 가르쳐 줘.”
형이 가르쳐 줘. 그 한마디에 설민은 순식간에 탈주한 이성을 붙잡기 포기했다. 그대로 영롱의 촉촉이 젖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자신이 ‘꿩 대신 닭’에서 닭이라는 생각에 기분은 별로였으나, 녀석을 처음으로 가질 기회를 눈앞에서 마다할 순 없었다.
영롱은 입술을 벌리고 설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설민은 영롱의 어깨를 붙잡은 뒤 그대로 침대로 눕혀 농도 깊은 키스를 이어갔다. 학교 다닐 때 사귄 여자친구와 해 본 경험은 있지만, 남자와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이론으로는 아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숨이 모자라도록 격렬한 키스를 이어가다가 마침내 둘의 입술이 떨어지자 영롱은 감탄하듯 말했다.
“형 몸 엄청 좋다.”
어느새 옷 사이로 들어온 손이 설민의 근육 하나하나를 매만지고 있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춤을 추기도 했고, 정해진 안무를 익히는 게 전부인 멤버들과 달리 몸을 키우고 단련하기를 좋아했다. 다른 건 몰라도 멤버 중에서 몸매와 체력은 가장 자신이 있던 설민이었다.
영롱은 탄탄한 가슴과 복근을 어루만지고는 차오르는 기대감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빨리하고 싶어.”
“기다려 봐, 좀.”
불현듯 설민은 누군가가 갑자기 들어올까 봐 걱정돼 저도 모르게 시선이 방문에 머물렀다. 이 집은 STORY 멤버가 함께 쓰는 숙소였다. 오은은 설민처럼 숙소에 들이닥치는 타입이 아니었고, 한강 형은 미국에 있다고 치더라도, 가장 위험한 태휘가 남았다.
그 시선을 따라가던 영롱은 무슨 걱정인지 알아챘고, 짧게 한숨을 내쉬며 설민을 밀어냈다.
“그렇게 태휘 형이 무서워?”
“내가? 왜?”
그 말이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설민은 바로 정색했다. 달라진 표정을 보고는 영롱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형. 태휘 형한테 열등의식 있구나?”
“뭐?”
“본능보다 걱정부터 앞서잖아. 나 녹음실 갔다가 태휘 형 있는 거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어. 작업하느라 바쁘더라고. 적어도 두세 시간은 안 올걸. 이제 안심돼?”
그 말을 믿어도 될지, 설민은 또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영롱은 큰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됐어. 나도 열등감 덩어리랑 첫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순간적으로 욱한 설민은 거칠게 영롱의 손목을 잡아채 도로 침대에 눕혔다.
“열등감 느끼긴 누가?!”
설민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을 벗은 뒤 바로 영롱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티 아랫단을 말아 올려 머리 위로 벗겨 내자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영롱과 눈이 마주쳤다. 영롱은 스스로 속에 받쳐 입은 반소매 티까지 벗어 던지고는 팔을 뻗어 설민의 어깨를 안아 왔다.
그 손길에 눈을 감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그토록 탐내던 녀석의 체취를 흠뻑 들이마셨다. 어쩌면 평생 이 녀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영롱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보드라운 살을 깨물자 짧은 탄성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태휘고 뭐고 다 잊고, 당장이라도 녀석에게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바지까지 벗어 던져 버리려 할 때, 섹스를 위한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민의 머뭇거림을 알아챘는지, 영롱은 누운 채로 머리맡에 팔을 뻗더니, 인형과 쿠션들 밑으로 손을 뒤적였다. 그랬더니 곧 그의 손엔 콘돔 상자와 튜브 젤이 들려 나왔다. 설민은 어이없어하며 그것을 건네받았다.
“누구랑 하려고 준비해 둔 거야?”
“그 얘기 그만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말을 말아야지. 설민은 일단 튜브 뚜껑을 열어 손가락 사이에 젤을 충분히 묻혔다. 이게 녀석의 첫 경험이라는 생각에 흥분되면서도 긴장됐다. 자신도 남자랑은 처음이었기에, 영롱이가 아프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느끼면 어쩌지하며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이 와중에 태휘보단 먼저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태휘보다 못하다는 비교는 당하지 않을 테니. 아, 씨발. 또 태휘 생각해 버렸네.
그사이 영롱은 속옷까지 다 벗은 채 설민의 목을 끌어안아 매달려 왔다. 그 손길에 다시 이끌려 침 때문에 반짝이는 녀석의 입술을 단숨에 삼켰다. 열렬히 얽혀 오는 혀를 세게 빨자 목울대를 통해 신음이 진동하며 매달린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설민의 입술은 미끄러지듯 목과 쇄골을 지나 가슴에 이르렀다. 빳빳이 선 분홍빛 돌기를 혀끝으로 간질이다가 크게 핥아 올리고 깨물자 가녀린 허리가 튀어 올랐고, 입으로는 정신없이 신음을 흘렸다.
혀로 실컷 농락하던 설민은 고개를 들고는, 쾌락에 몸부림치는 영롱의 눈부신 나신을 잠시 감상했다.
연습생 시절 목욕탕이나 숙소에서 옷 갈아입을 때 보기만 했던 맨몸을 이렇게 물고 빨고 핥고 있다니 감개무량했다. 게다가 자신이 선사한 열락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라니. 영롱은 자극이 멈추자 못 견디겠는지 자기 손가락을 깨물며 흘기듯 올려보았다.
“왜 멈춰?”
설민은 이 벅찬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일순 머뭇거리다 말했다.
“네가 너무 예뻐서.”
영롱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더니 팔을 뻗어 설민의 중심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럼 빨리 예뻐해 줘.”
그 손길에 또 말문이 턱 막혔다. 녀석의 목소리와 눈빛과 미소와 손길은 과할 정도로 뜨겁고 자극적이었다. 영롱은 움켜쥔 손을 서서히 움직이며 말했다.
“이거 언제 넣어 줄 거야?”
이 녀석 진짜 동정 맞아? 구라 아냐? 하, 씨발. 이걸 태휘는 어떻게 참았대. 아, 또 원태휘 생각. 꺼져. 설민은 당장 영롱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처음이니 손가락부터 아래로 집어넣었다.
영롱은 설민의 성기를 만지고, 설민은 영롱의 내부를 쑤시고 있었다. 역시나 영롱의 안은 좁아도 너무 좁았다. 충분히 풀지 않으면 절대 못 넣겠는데. 자신을 방해하는 손길을 저지하고, 다시 몸 곳곳을 혀로 빨고 깨물며 애무했다.
젤의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움직이며 그 개수를 조금씩 늘려 좁은 내부를 벌릴 때마다 영롱은 괴로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전 여유롭게 도발하던 모습은 간데없이 애타게 흐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묘한 희열을 느낀 설민은 계속해서 더 괴롭히고 싶어졌다. 손가락으로 더 깊은 곳을 꾹꾹 누르자 영롱은 다리를 배배 꼬며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설민의 어깨를 꼬집듯이 붙들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됐겠다 싶어서 손가락을 빼고 성기에 콘돔을 씌웠다. 망설임 없이 단숨에 안으로 박아 넣자, 영롱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자지러졌다.
“아! 형……, 너무 커…….”
“적응해 봐.”
적응해야 하는 건 설민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크기의 존재를 처음 받아들였을 영롱의 내부는 좁고도 좁아 그 압박감이 엄청났다.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뭉근히 허리를 움직여 조금씩 안으로 침투했다.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영롱은 눈을 꽉 감은 채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나체가 된 와중에도 영롱의 손목엔 YR 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설민은 그것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민은 영롱의 상기된 볼을 쓰다듬고는 엄지를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벌려진 입에서 제멋대로 흘러나온 타액이 손가락을 적셨다.
“눈 떠.”
그 말에 영롱이 인상을 쓰며 눈꺼풀을 올리곤 엄지를 빨고 깨물었다. 욕망으로 일렁이는 뜨거운 시선을 마주하자 설민의 허리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졌다. 그에 따라 영롱의 몸도 흔들리며 점점 호흡이 빨라졌다.
설민은 영롱의 다리를 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감게 했다. 그러자 침대 시트를 쥐고 있던 영롱이 어깨를 와락 껴안아 왔다. 두 몸이 밀착하며 자세가 한결 편해지자 움직임은 점점 빠르고 격렬해졌다.
좁고도 뜨거운 내부는 설민의 음심에 불을 지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깊이 맛보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영롱의 깊은 어느 지점을 자극했는지, 손을 놓칠 정도로 크게 떨며 신음했다. 그걸 알아챈 설민은 그 부분만을 노려 반복해서 쳐올렸다.
“아흣, 아, 아!”
영롱은 입을 다물 새도 없이 비명을 질러 댔다. 처음부터 이렇게 느끼다니. 진짜 요망한 놈일세.
설민 역시 쾌감이 점점 차오르자, 흔들림에 빗나가지 않도록 녀석의 어깨를 붙들고는 더 강하게 박아 댔다.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박자, 영롱은 신음을 흘리며 두 다리로 엉덩이를 더 단단히 감아 왔다.
“영롱아, 좋아?”
“응, 으응.”
영롱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어 설민의 몸 곳곳을 쓰다듬다가 탄탄한 근육이 느껴지는 허리를 붙들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하체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더, 빨리.”
설민은 영롱의 요구대로 더 빠르게 허릿짓을 시작했다. 빠르지만 정확하게, 녀석이 느끼는 지점을 자극하자 영롱도 그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단단히 박혔던 것이 빠져나가면 아쉽다는 듯 구멍을 풀었다가 다시 들어오면 쫀쫀히 조여 왔다.
‘타고났네, 이 녀석.’
신음이 점점 커지는 걸 보니 절정에 이르렀는지, 녀석의 성기 또한 프리컴을 뚝뚝 흘린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허리에 있던 손을 옮겨 설민의 머리를 끌어안아 당기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아, 흐흣, 형. 영롱이 섹시해?”
“어. 존나 섹시해.”
“영롱이 맛있어?”
대체 무슨 야동을 본 거야? 어디서 이런 말은 배워 가지고. 아, 근데 솔직히.
“어. 존나 맛있어.”
영롱은 그 말에 화답하듯 설민의 귀를 핥아 올리며 거친 신음을 토해 냈다. 결국, 설민은 더 버티지 못하고 강하게 영롱 안 깊은 곳을 쳐올리고는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그에 맞춰서 영롱도 설민에게 매달리며 사정했다.
영롱은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희열이 다 사라질 때까지 몸을 덜덜 떨며 설민의 어깨를 깨물었다. 서로에게 밀착한 채 호흡을 고르던 두 사람은 한참 후에야 떨어졌다.
설민은 티슈를 몇 장 뽑아 자신과 영롱의 배에 뿌려진 정액을 닦아 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득 채운 콘돔을 묶어서 버리자 그 모습을 본 영롱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무릎으로 기어 다가왔다.
침대에 가득하던 인형과 쿠션은 두 사람의 옷들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터라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영롱은 설민 앞에 다가와 정액으로 범벅된 성기를 내려다보더니, 앞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영롱……, 흣.”
기대도 하지 않았던 행위에 당황할 새도 없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열락이 다시 소용돌이쳤다. 영롱은 자신의 혀로 설민의 것을 꼼꼼하게 핥아 주었다. 아직은 서툴렀지만, 설민의 것을 도로 꼿꼿이 세우기엔 충분했다.
영롱은 고개를 들고는 새 콘돔을 씌었다. 녀석의 동공은 평소보다 커져 눈동자가 까맣게 빛났고, 붉어진 입술은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너무도 자연스레 허벅지 위로 올라오자 설민은 영롱의 허리를 안으면서도 의심 어린 눈빛이었다.
“영롱아?”
“더 할 수 있지?”
단단하게 서 있는 성기는 주인의 대답도 필요 없어 보였다. 영롱은 그 위에 자신의 아래를 맞추고는 천천히 몸을 겹쳐 왔다.
“아아아…….”
영롱의 다급한 교성과 함께 두 사람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이미 한 발을 뺀 상태임에도 곧게 솟은 설민의 성기가 흥분감에 요동치며 부어오른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에 화합하듯 영롱은 허리를 흔들며 더 깊이 자신의 원하는 입맛대로 설민을 먹어 치웠다.
“응, 흐읏, 하앙.”
하, 이런 요물이 다 있나. 가르쳐 달라더니, 가르쳐 주긴 뭘 가르쳐 줘. 하산해라.
영롱은 설민의 머리를 품에 안고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설민은 영롱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하반신을 계속해서 올려 치며 신음을 이끌어 냈다. 녀석의 하이톤 음성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야한 자극제였다. 역시 노래할 때만 매력적인 게 아니었다.
“더, 세게, 더, 빨…아아, 태— 하아…….”
설민은 순간 위화감을 느꼈으나 영롱이 바로 입을 다물고 내부를 강하게 조이는 바람에 이어지는 생각을 놓치고 말았다. 곧이어 녀석이 맹렬히 입술을 부딪쳐 왔다.
혀뿌리가 얼얼할 정도로 깨물고 빨아 오는 끈적한 키스에 정신이 나갈 것 같던 설민은 영롱의 엉덩이를 감싸 쥐고는 세차게 박아 올렸다. 그 격렬함에 입술이 떨어지며 정신없이 교성이 흘러나오자 구멍을 왕복하는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이제 확실히 녀석이 느끼는 지점을 알았다.
“아! 아아아!”
자신의 몸 위에서 목이 쉴 정도로 소리 지르는 영롱의 모습을 감상하며 설민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수도 없이 상상했지만, 쾌락에 이성을 잃은 녀석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야했다.
모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영롱이 자기 때문에 미쳐 날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이 애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녀석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자신이 원태휘의 대용품일지라도 상관없었다.
내 위에서, 내 것을 물고, 내 것이 너무 좋다고 미쳐서 펄쩍펄쩍 뛰고 있는데 누굴 좋아하는 게 뭐가 중요하담.
설민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태휘 생각을 놓지 못했지만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품 안에 쓰러지는 영롱의 뜨거운 몸을 끌어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