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rack 11. 실수 (03:46) (11/39)

Track 11. 실수 (03:46)

태휘와 설민이 담배 피우러 간 사이, 한강과 오은은 거실로 나와 술자리를 이어갔다. 태휘가 던지고 간 폭탄에 아직도 정신이 얼얼한 듯 두 사람은 연거푸 술잔만 비웠다. 한참 후에야 오은이 눈치를 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없을 때 우리끼리라도 얘기해 보자고, 형.”

“무슨 얘기?”

“영롱이랑 진지한 관계였다거나 그런 거 아니지?”

“당연하지!”

“그치? 한때의 불장난일 뿐이었는데,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아? 나 너무 오래돼서 걔랑 그랬던 것도 잊고 있었어! 지금에야 와서, 10년도 더 된 옛날 일 꺼내는 게 말이 돼?”

“그만큼 태휘 입장에선 큰일이었나 보지.”

한강이 태휘를 이해한다는 투로 말하자 오은은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뭔 소리야, 형! 그렇게 개인감정으로 팀 해체를 결정하는 게 말이 돼? 우리가 그 일로 팀 활동에 지장을 준 것도 아니고! 그럼 애초부터 ‘멤버와 떡치지 않기’ 규칙을 만들던가!”

“애초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했겠지…….”

본인이 말하면서도 놀라운지 한강은 곱게 빗어 넘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형, 생각해 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멤버 한 명이랑 잤을 뿐이잖아! 멤버 여러 명이랑 잔 건 차영롱 그 새끼고! 걔가 헤프게 하고 다닌 거에 대한 피해를 왜 우리가 보냐고!”

그 말에 한강도 일부분은 동의했다. 굳이 짚고 넘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오래전 일이고, 심각한 관계도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중에서도 가장 사소한 일로 그룹의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다니, 태휘답지 않았다.

오은은 유리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는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태휘 형, 지가 제일 먼저 영롱이 좋아했는데! 자기 빼고 다 잤다니까 빡쳐서 그런 거라니까? 존나 어이없어, 진짜!”

“태휘가 영롱이 좋아했어?”

“차영롱도! 그 새끼도 태휘 형이랑 잘 안 되고 빡치니 나머지랑 다 잔 거고! 그리고 태휘 형한테 다 불어서 파국 만들고! 이게 무슨 개삽질이야! 걔네의 대환장 연애사에 우리가, STORY라는 팀이 이용된 거라고!”

오은이 줄줄이 전후 사정을 늘어놓자 한강은 2차 충격을 받은 듯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넌 그걸 어떻게 다 알았어?”

“알긴 뭘 알아? 그냥 척 보면 척. 일이 이렇게 됐으니 뻔하잖아! 이 형 진짜……. 그런 눈치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지?”

한강은 정말로 오은이 내뱉은 모든 문장이 낯설었다. 바로 오늘까지도, 태휘와 영롱을 그저 친한 형‧동생 관계로만 생각했기에.

‘태휘 형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도 그저 ‘둘이 참 돈독하네.’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둘 사이에 이토록 복잡다단한 연애사가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그때, 영롱이 자신한테 왜 그랬던 건지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에야 그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오은은 계속해서 억울하다는 듯 큰소리로 토로했다.

“설민이 형이라면 또 몰라! 차영롱한테 마음 있었을 수도 있겠지. 근데 난 진짜 실수였다고!”

“너 그럼 딱 한 번이었어?”

한강이 묻자 오은은 머릿속으로 무슨 계산을 하는지 눈알을 굴리더니 바로 조용해졌다.

“……아니. 한 번은 아니고.”

그 말에 한강은 한숨을 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그렇지.

“일반적으로 여러 번은 실수라고 하지 않지.”

“그, 그럼 형은?”

오은이 물귀신 작전으로 자기까지 걸고넘어지려고 하자 한강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실수라는 말은 안 하잖아.”

◀◀◀

- 199□년 5월 -

199□년 봄, STORY는 전국 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5집 앨범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강은 개인적으로 최악의 성장통을 겪는 중이었다.

당시 한강이 진심으로 좋아하던 여자 친구와 몇 개월 연애 후 차이고 말았는데, 철저한 비밀 연애였던지라 그 힘든 시간을 온전히 홀로 극복해야만 했다.

차마 멤버들에겐 말도 못 하고 그렇다고 일에 지장을 줄 수도 없어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으나, 그래도 인간인지라 완전히 숨기기는 불가능했다.

눈에 띄게 컨디션이 나빠진 한강을 걱정하는 멤버들과 회사 스탭들에겐 집에 일이 있다며 대충 둘러댔다. 그들은 한강이 워낙 사적인 얘기를 잘 안 한다는 걸 알기에 배려하는 차원에서 더는 캐묻지 않았다.

다행히 이별한 시점이 전국 투어가 끝난 직후여서, 그룹 활동에 큰 지장은 없었다. 다만 갑작스레 잡힌 광고 촬영 때문에 멤버들 모두 동남아시아의 한 휴양지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그때 한강은 투어 이후 하루가 멀다고 술에 절어 지냈기 때문에 상태가 나쁠 수밖에 없었다. 멤버들과 매니저 형들 앞에서 티내진 않았으나 활동 당시 매일 붙어 있던 스타일리스트 누나들은 한눈에 알아챘다.

“리버야, 피부가 왜 이래? 살은 왜 이리 빠지고? 챙겨온 옷 사이즈 다 안 맞겠는데?”

결국 준비한 의상을 급히 옷핀으로 고정해서 치수 조절하고, 여벌의 예비 의상으로 수습하며 첫날에 진행한 단체 촬영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 있을 개인 컷 촬영이었다.

숙소로 잡은 호텔에서의 첫날 저녁. 휴양지의 아름다운 해변과 노을을 보고 있자니 한강은 또다시 깊은 우울감이 엄습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타지에 와 있으니 더 심해지는 듯했다.

첫날 촬영 후 매니저는 멤버들에게 자유 시간을 줬다. 얼마 전에 미국 본가를 다녀온 한강을 제외하곤, 나머지 멤버들은 해외 일정이어서 그런지 저마다 시간을 보내고픈 방식이 달랐다.

태휘는 호텔 주변을 산책하러 나가고, 설민은 투어 때 다친 허리 부상 때문에 방에서 쉰다고 하고, 오은은 관광을 하겠다며 나갔고, 영롱은 스타일리스트 누나들과 놀겠다며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한강도 쉬겠다고 하고 저녁 식사 마치자마자 방으로 들어왔지만,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으로 술의 유혹을 참지 못했다. 광고 촬영 일정 중에는 금주하기로 다짐한 결심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라운지 바에서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자니 사방에서 또 다른 유혹이 뻗어 왔다. 처음에는 영어로, 다음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말을 걸며 합석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한 명씩 나타난 것이다.

당시에는 아무리 인기 많은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알아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말을 걸어온 사람들은 한강이 누군지는 모르고, 오직 외모만 보고 접근하는 거였다.

여성, 남성 가리지 않고 한강에게 다가와 잘생겼다는 칭찬을 건네며 어디서 왔느냐, 모델이나 배우냐며 호감을 표했다. 조용히 술만 마시고 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급격히 피곤해지며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전부 거절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다가온 예쁘장한 남자가 집요하게 한강을 유혹했다. 그때쯤엔 한강도 잔뜩 취해 그가 좀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 애인과 닮은 긴 생머리만 봐도 그녀가 떠올랐기에, 당장은 여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 감정 없이 담백하게 대하기엔 차라리 남자가 괜찮을 듯했다. 급기야 술 때문에 뇌가 고장 났는지, ‘즐기면 좋지. 뭐 어때?’라는 단순한 결론이 도출됐다.

바텐더에게 팁까지 두둑이 지불하고는 다가온 남자의 손을 끌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찾아 문을 열려고 하는데, 남자가 뒤에서 안겨 왔다. 그 바람에 안 그래도 술 때문에 굼뜬 행동이 더 느려졌다. 남자는 계속해서 귀를 깨물고 목에 입을 맞췄다.

그는 영어로 ‘당신 정말 잘생겼다.’, ‘섹시하다.’ 등의 말을 쏟아 냈고, 애인에게 차인 뒤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한강은 그런 입에 발린 소리도 듣기 나쁘진 않았다. 들뜬 마음에 서둘러 주머니에서 꺼낸 카드키를 터치 패드에 댔지만, 이상하게도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길이 없어서 문고리를 잡아 흔들어 대고 쿵쿵 밀어붙이고 당겨도 봤지만, 여전히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에서 안으며 애무해 오는 남자 때문에 몸은 점점 달아오르는데 문은 열리지 않으니 마음만 급해져 거세게 문을 더 흔들어 댔다.

그러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하지만 한강의 힘으로 열린 게 아니라, 방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온 거였다.

“리버 형?”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한강은 술기운에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밝히기 위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한결 밝아진 시야에 들어온 건 가운 차림의 영롱이었다.

한강은 쥐고 있던 카드키에 새겨진 방 번호와 문 옆에 새겨진 번호를 확인해 보았다. 자신의 방은 건너편 방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동시에 뒤에 있는 남자의 존재 또한 깨달았고, 한강은 술이 번쩍 깨는 듯했다.

“둘이라는 말은 안 했잖아? 난 좋지만.”

남자의 말에 한강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를 복도 쪽으로 밀어 내고는 영롱의 손목을 잡아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문밖에서 남자가 욕을 하며 발길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기껏 흥분시켜 줬더니! 재미는 다른 놈이랑 보려고? 매너가 똥이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영롱도 당황한 듯 눈이 동그래져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구보다 놀란 건 한강 본인이었다. 영롱에게 설명해야 했지만, 그 전에 남자를 돌려보내는 게 우선이었다. 한강은 영롱의 손목을 꽉 잡은 채 남자가 순순히 가 주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밖의 소리는 이내 잠잠해졌고, 다음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강은 알코올에 절인 머리를 애써 굴리며 설명할 말을 찾고 있었다. 영롱은 지독한 술 냄새를 알아차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형, 술 얼마나 마신 거야? 내일 촬영이잖아.”

“미안해. 영롱아. 자는 데 방해했지? 나갈게.”

그 어떤 변명의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일단 자신의 방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때 영롱이 손을 붙잡았다.

“잠깐만. 나랑 얘기 좀 해.”

영롱은 한강을 데리고 와 침대 옆 의자에 앉히고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주었다. 목이 탔던 한강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얼굴에도 좀 뿌려 열기를 식혔다. 영롱은 옆에 앉아 바라보고만 있다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형, 무슨 일 있어? 요즘 너무 형답지 않아서. 걱정되니까 나한테만이라도 얘기해 줄래?”

조금 전 봤던 장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그 다정한 말에 일순 서럽던 감정이 차올랐고, 결국 그간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하듯 털어놓고 말았다.

누구와 사귀었는데, 어떻게 만났고, 왜 싸우고 헤어지게 됐는지. 평소라면 절대로 남들에게 말하지 않을 지극히 사적인 문제였다.

“그 배우 겸 가수? 그 누나랑 사귀었어? 짱이다, 형! 그걸 어떻게 몇 개월씩이나 숨겼어? 데이트는 어떻게 했는데? 응응? 더 얘기해 줘 봐.”

한강이 털어놓는 얘기에 영롱은 마치 자기 일처럼 감정 이입하며 반응했다. 근래 말수가 줄어서 수다쟁이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여전한 걸 보니 반갑기까지 했다.

그렇게 수다를 나누다 보니 신기하게도, 우울하고 무거웠던 가슴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사생활 따위 남에겐 아무 관심거리도 아니리라 여겼는데, 영롱은 진지하게 경청해 주었다.

이런 관심이 불쾌하기는커녕 어떤 벽이 허물어지며 누군가와 한층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심 없이 가족처럼 얘기를 들어준 영롱의 태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 누나가 진짜 너무 했네.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형을 사귀면서 다른 남자에 눈이 가냐?”

“근데 내가 바빠서 잘 못 챙겨 줬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 진짜! 형은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바람피운 사람이 나쁜 거지!”

본격적으로 여자 친구와 헤어진 사연을 토로하자 자기가 더 속상해하며 입이 댓 발 나왔다. 그 모습에 한강은 웃음이 피식 터졌다. 얼마 만에 웃어 보는 건지.

누군가에게 편하게 자기 얘기를 터놓음으로써 혼자 싸매고 있던 마음의 짐을 줄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실질적인 해결은 아니지만,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마음이라도 후련해질 수 있다고.

이런 방법도 있는 걸, 아무 도움 안 되는 술만 주야장천 마셔 댔다니. 뭉쳐 있던 응어리를 실컷 털어 낸 한강은 문득 다른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영롱아. 이 얘기, 비밀 지켜 줄 거지?”

“당연하지, 형. 나 생각보다 입 무거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은 한없이 해맑아 보였으나, 그렇다고 동료의 일을 함부로 떠벌리고 다닐 녀석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본 것도, 비밀 지킬게.”

한강은 그제야 자신의 치부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아 한강 본인도 잠시 잊고 있었던 —낯선 남자랑 원나잇 하려던 장면을 친한 동생에게 들킨—일.

섹스에 관해 개방적인 분위기의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자신과는 달리 한국에서 자라 온 영롱이기에 걱정이 됐다. 게다가 그 상대가 남자였으니. 한강은 그 생각에 얼굴이 다시 빨갛게 달아오르는 듯했다.

“영롱아, 그건…….”

“형, 정말 그 남자랑 자려고 했어? 처음 보는 남자랑? 그럴 정도로 힘들었어?”

영롱은 아무렇지 않게 아픈 곳을 콕콕 찔러 댔다. 그러게 말이다. 술에서 깨고 나서 자신이 했던 행동을 말로 들으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편안해졌던 마음이 다시 심란해 왔다.

“……나 이만 갈게, 영롱아. 오늘 고마웠어.”

그렇게 인사하고 방을 나가려는데, 영롱이 붙잡았다.

“아직 고맙다고 하기 이른데? 나랑 해, 형.”

한강은 자신이 들은 말을 의심했다. 내가 아직 술이 덜 깼나? 그때 영롱이 다가와 마주 보며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친히 증명해 주었다. 와중에 영롱이 고개를 숙이자 걸치고 있던 가운이 벌어지며 한강의 시야에 맨살이 훤히 드러났다.

가운의 허리끈을 만지작거리며 은근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과 조금 전까지 천진난만하게 자기와 수다 떨던 녀석이 동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뭐 하러 멀리서 찾아? 생판 모르는 사람이랑 하는 것보다는 나랑 하는 게 낫잖아?”

낫긴 대체 뭐가? 한강이 놀라서 할 말을 잊은 사이, 영롱은 검지를 세우더니 한강의 머리부터 어깨를 지나 가슴까지 느릿하게 훑어 내렸다.

“내가 형 위로해 줄게.”

손가락은 셔츠 단추 근처에서 뱅뱅 맴돌았다. 술기운과 호텔 방의 낮은 조도 때문인지 영롱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게 관능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한강에겐 여전히 귀여운 동생이었다.

아까 그 남자보다 영롱이 훨씬 예쁘장하긴 해도 성적인 대상으로 본 적이 없기에 이런 행동이 그저 당황스러웠다.

멤버 중에서도 둘은 가장 많은 나이 차이가 나는 3살 차이였다. 영롱과 동갑인 오은은 한강보다도 키가 커서 어려 보이지 않기라도 하지. 그저 막냇동생 같던 애가, 어느새 성인이 됐다고 이렇게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니.

전혀 상상도 못 한 상황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롱은 단념하지 않고 계속 졸라댔다.

“나도 요새 못 해서 욕구가 잔뜩 쌓였거든. 아, 그러게 왜 오버하다가 허리는 다쳐 가지고.”

앳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첫 문장도 이해가 안됐으나, 혼잣말 식으로 툴툴거린 두 번째 문장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 얘기하는 거지? 최근 허리 다친 사람 중 한강이 아는 사람은 설민뿐인데, 둘을 연결할 눈치는 없었다.

“형 아까 남자랑 있는 거 보고 놀라긴 했어. 이쪽 취향 아닐 거로 생각했는데.”

한강은 미국에서 살 땐 여자도 남자도 만나 보았다. 한국은 보수적인 사회였기에, 가수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턴 만약 데이트한다고 해도 이성만 만나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 결심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STORY 멤버들은 그저 순수한 동료 사이이자 친한 동생들일 뿐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 관계를 깨면 안 된다는 머릿속 경고음이 마구 울려 댔다. 한강은 자신의 몸을 쓰다듬고 있는 영롱의 손을 잡아 단호하게 밀어냈다.

“위로는 충분해. 고마워.”

그러곤 서둘러 방을 나섰다. 혹시나 마음이 흔들릴까 봐 자신의 방에 들어갈 때까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 번에 작동하는 카드키에 안도감을 느끼며 문을 닫은 뒤 잠시 동안 방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한참 뒤에야, 씻을 생각으로 욕실로 들어섰다.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이 머리부터 적셨다. 아까 술을 마셨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을 정도로 정신이 너무도 선명했다. 그리고 더는 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언제부터였는지 발기한 성기가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혼자서 처리하기 위해 손을 내리고, 머릿속으로 떠올린 상대는 전 여자 친구도 아닌, 아까 만난 그 예쁘장한 남자도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알고 지낸 3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상상해 본 적 없었는데,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욕망의 분출물을 욕실 바닥에 흘려보내며, 한강은 차가운 타일 벽면에 이마를 기댔다. 서늘한 촉감에 뜨거운 얼굴을 식히며 점점 또렷해지는 욕구를 마주할 수 있었다.

▶▶

호텔 방문 앞에서 작게 노크하자 여전히 가운 차림인 영롱이 문을 열고 한강을 맞이했다. 이번엔 술기운으로 방을 잘못 찾은 게 아니었다. 아까의 난리로 술은 완벽히 깨어 있었다. 없던 일로 할 수 있는데도 결국 제 발로 들어가다니.

도망치듯 이 방을 뛰쳐나갈 땐 언제고, 다시 돌아오고만 이유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호기심일 수도 있고 술로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구멍을 더 큰 자극으로 채우려는 탐심일 수도.

“영롱아, 그게 있잖아…….”

두 번째 방문을 정당화할 핑계를 대기도 전에, 부드러운 손길이 방 안으로 이끌었다. 영롱은 닫힌 문에 한강을 바로 밀어붙이곤 입을 맞춰 왔다.

단 한 번도 감촉을 상상해 본 적 없던 그 입술은 촉촉하고 뜨거웠다. 부딪힌 틈사이로 흡입하듯 자신의 입술을 삼켜 오자 목구멍을 통해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반사적으로 영롱의 허리를 감싸 쥐며 손바닥으로 더듬거리자 얇은 실크 가운 아래로 마른 골반이 만져졌다.

연습생 시절보다 살과 근육이 붙긴 했으나 여전히 마르고 가녀린 체형이었다. 옆에서 보기만 하던 몸을 취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만져 보리라 전혀 기대해 본 적 없던 육체만큼이나 영롱의 키스는 자극적이었고 순식간에 정신 못 차리게 만들었다.

녀석이 유혹적인 건지, 자신이 욕구불만인 건지는 구별 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혀끝을 빨아들이며 입 안을 농락하는 딥키스에 속절없이 무너질 뿐이었다.

두 손을 더듬거리며 내려가 엉덩이를 움켜쥐고는 끌어당기자, 하체끼리 부딪치며 발기한 성기가 느껴졌다. 녀석이 자신만큼이나 흥분한 걸 눈치챈 한강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졌다. 아까 화장실에서 빼긴 했지만, 영롱의 욕망을 마주한 순간부터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자 두 입술이 떨어졌고, 한강은 숨을 고르며 영롱을 내려다보았다. 같이 합숙까지 하면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데 녀석의 이런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눈에 영롱은 그와 한 살 터울인 태휘나 설민보다도 한참 어린 꼬맹이로만 보였는데, 언제 이렇게 커 버린 건지. 그러자 이내 아까 이 방을 뛰쳐나가게 만든 그 생각이 다시 슬그머니 자라났다.

동료이자 친한 동생이었던 관계가 이런 식으로 변해도 괜찮은 걸까? 팀의 제일 맏형으로서 이래도 되는 걸까? 한강의 몸짓에서 일말의 망설임을 감지했는지, 영롱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눈을 마주쳤다.

“생각 많이 하지 마. 아까 그 사람이랑 하려고 했던 거 나랑 하는 것뿐이야.”

“그건…….”

“나도 다른 사람이랑 하고 싶은 거, 형이랑 하는 것뿐이고.”

그 말에 한강은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졌다. 도대체 내가 누구 대신인 건데? 자신은 원나잇이 목적이었다고 쳐도, 녀석은 만나는 사람이 있는 건지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아니, 있다면 이런 일 벌이진 않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영롱의 말에 단숨에 끊어졌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형 절대 후회 안 해.”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한강은 기가 찼다. 쪼그만 게 무슨 놈의 자신감인지. 영롱은 한강의 손가락을 붙잡아 방 안쪽으로 향했다.

“그냥 멤버끼리 욕구 해소하는 거야. 낯선 타지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그러는 것보다 얼마나 안전해?”

“하지만, 태휘가 알면…….”

한강은 무심결에 태휘 핑계부터 튀어나왔다. 왜 태휘 생각부터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사실을 안다면 큰일 날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사이 둘은 침대 앞까지 다다랐고, 영롱은 헛웃음을 치며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대체 원태휘가 뭐라고. 다들 태휘, 태휘 거리는지…….”

다들? 누구 말하는 거지?

“그 인간은 알 리 없으니 걱정하지 마. 나랑 형만 입 다물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야?”

영롱은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벗긴 바지 주머니에서 콘돔을 발견하고는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한강 스스로 콘돔까지 꼼꼼히 챙겨 온 데다가 옷을 벗기는 동안 아무런 거부도 하지 않았기에, 말과 행동이 다른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콘돔 포장을 입에 문 채 가운을 벗어 바닥에 떨어뜨리는 영롱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 몸짓은 묘하게 색기가 흘러 저도 모르게 넋 놓고 바라보게 됐다.

영롱은 그 시선을 당연하듯 받아들이곤 한강의 턱을 잡아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중얼거렸다.

“그 누나 취향 참 희한하네……. 어떻게 이렇게 잘생긴 형을 두고 바람을 피울 수 있지?”

그러더니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기 시작하자, 더는 참기가 어려웠다. 마침 그때 영롱이 한강을 침대 위로 끌어당기며 누웠고, 계속해서 한강의 이마와 눈두덩이 위에 키스했다. 한없이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입맞춤에 한강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면 정말로 위로가 피로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영롱은 얼굴로 떨어지는 눈물을 그대로 맞으며 어깨를 감싸 안아 토닥여 주었다. 그러다가 이내 한강의 몸을 끌어당겨 침대에 눕힌 뒤 자신은 무릎을 꿇은 채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눈물 쏙 들어가게 해 줄게.”

영롱이 다부진 얼굴로 말하자 한강은 바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아, 안 돼. 울다가 웃으면 신체에 변화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영롱은 상체를 숙여 한강의 가슴과 배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자신의 중심부에 영롱의 촉촉한 혀와 뜨거운 숨결이 섞여서 다가오자 한강은 ‘헉’ 하고 밭은 신음을 뱉었다. 오싹하는 전율이 온몸을 관통하며 몸이 크게 떨려왔다. 고개를 들자 영롱 역시 눈을 들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상태로 혀를 할짝거리며 자신의 성기를 핥는 녀석의 모습은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영롱은 기둥을 한 번 크게 핥더니 입술로 이를 감싸고 그대로 머리 부분을 삼켰다. 그 감각에 한강은 발바닥을 오므리고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

이런저런 잡념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텅 비는 듯했다. 전 여자 친구, 팀, 동료, 형, 동생, 태휘……. 그런 건 아무래도 다 좋았다. 온통 새하얗게 비워진 머릿속에서 오직 지금 자신의 것을 빨고 있는 감각만이 또렷이 느껴졌다.

영롱의 뒤통수가 크게 움직이며 위아래로 오르내리자 그 머리를 붙들어 목구멍에 미친 듯이 박아 넣고 싶은 충동에 허리가 들썩거렸다. 그걸 알아챈 녀석은 뒤로 물러나더니 물기 어린 마찰음과 함께 입을 뗐다.

영롱의 혀로 입술을 훔친 뒤, 침대에 던져둔 콘돔을 집어 들어 요동치고 있는 한강의 성기에 씌웠다. 그러고는 바로 일어나 그 위에 올라탔다. 한강은 서서히 몰아칠 쾌감에 기대하는 와중에도 아무 준비 없이 삽입하려는 모습에 당황해서 다급히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차마 말을 못 잇자 영롱은 무슨 생각인지 이미 안다는 듯 새침하게 말했다.

“형 다시 올 줄 알고 미리 풀어 놨거든.”

한강은 놀라면서도 정말로 안심해도 되나 불안했지만, 그 생각보다 영롱의 움직임이 먼저였다.

“흐읏……!”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겹쳐 앉으며 한강의 것을 단숨에 삼켜 왔다. 예고도 없이 진행된 삽입에 한강도 엄청난 압박감을 느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한 쾌감에 익숙해질 때쯤 영롱을 보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영롱은 안을 가득 채운 한강의 존재를 느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너무 좋아, 형.”

나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할 수 있는 언어를 잊어버린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희열에 그저 짐승처럼 몸만 반응할 뿐이었다.

가슴에 닿은 영롱의 손바닥부터, 자신의 것을 조이고 있는 엉덩이까지, 접촉한 모든 부위가 너무도 뜨거워 절로 달떴다. 그래서 더 탐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와중에 영롱은 손끝에 닿은 한강의 빳빳이 선 유두를 건드리며 자극했다. 그러더니 조금씩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응, 흐흣, 어떡해, 나.”

영롱은 멋대로 움직이는 몸을 주체 못 하겠다는 듯이 점점 더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굳이 쳐올리지 않아도 녀석은 스스로 움직이며 알아서 느끼고 즐기고 있었다. 위로해 준다더니, 정작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그 모습을 즐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 영롱이 너무도 섹시해 녀석을 더 울리고 소리 지르게 만들고 싶어졌다.

영롱의 허벅지를 꽉 쥐고는 허리를 크게 움직여 쳐올리기 시작하자 가슴에 올려둔 손이 미끄러져 그대로 한강의 위로 쓰러졌다. 격렬한 몸짓에 영롱의 손목에 있던 팔찌 펜던트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한강의 목 언저리에 닿은 영롱의 입술은 쉼 없이 쇄골을 깨물며 빨아 댔다. 한강이 세게 쳐올릴수록 영롱의 가벼운 몸이 떠올랐다가 내려오며 더 깊이 삽입됐다.

영롱은 그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해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강의 목에 흥건히 영롱의 눈물과 침이 뒤섞여 타고 흘렀다.

“아앙, 형. 더 세게…….”

이번엔 자세를 바꿔 영롱의 엉덩이를 단단히 붙들고는 찍어 올리듯 자신의 것을 깊이 새겼다. 그에 따라 영롱도 다리를 한껏 벌려 더 깊이 받아들였다.

하나처럼 움직이던 두 사람의 하체는 몇 번을 더 깊이 차올리자 끈적한 액체로 범벅이 되었다. 영롱은 한강의 귀에 대고 어지러운 교성을 질렀고 한강 역시 신경질을 내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욕망을 분출했다.

한바탕 뜨거운 광풍이 쓸고 지나간 뒤, 영롱은 한강의 몸에 늘어지듯 달라붙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자 한강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엎드려.”

처음에는 녀석 혼자 즐기기에 바빴기에, 아직 놔줄 생각이 없었다. 그건 영롱도 기꺼웠는지, 순순히 일어나 콘돔까지 갈아주었다.

침대에 엎드려 무릎을 꿇은 채 알아서 뽀얀 엉덩이를 들자 한강도 무릎으로 기어서 다가왔다. 상체를 숙여 영롱의 등에 몸을 밀착하자 도드라진 목뼈가 시선에 닿았다.

촉촉한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는 척추 라인을 따라 손을 훑어 내리자 영롱이 기대감에 흠칫 떨며 입구를 움찔거렸다. 땀에 젖은 피부는 반짝이며 빛이 났다. 몸 구석구석 안 예쁜 곳이 없는데, 이걸 이제야 알다니.

“형, 빨리…….”

영롱의 몸을 보며 감탄하는 그 찰나도 못 참겠는지 녀석은 애달픈 목소리로 졸라 댔다. 그러고 보니 문득 아까 가졌던 궁금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그동안 어떤 남자를 만난 건지. 어쩌면 처음으로 궁금해진 멤버의 사적 영역이었다.

한강은 일 외적인 부분에서는 멤버들에겐 모든 관심을 차단했다. 그 때문에 숙소에서 살면서도 각자의 방에 들어가는 순간 문 너머의 일은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 영롱의 사생활이 궁금했다.

여태껏 누굴 만나고, 누구랑 사랑을 나눈 걸까? 한강은 지금은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깨닫고, 궁금증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손가락을 빤 다음, 흥분으로 움찔거리는 구멍에 팍 집어넣었다.

“아, 왜…… 으흑.”

자신이 기대했던 게 아니자 영롱은 순간 짜증을 내면서도 손가락이 주는 자극에 무너져 침대에 얼굴을 묻고 신음했다.

“너 이런 거 누구한테 배웠어? 누구랑 했어?”

“형, 원래 관심 없잖아. 왜 그런 걸 물어?”

영롱은 한강이 애태우듯 주는 자극에 밭은 숨을 내뱉으며 겨우 말을 이었다. 한강은 아까 녀석이 자지러지며 느꼈던 부분을 찾아 손가락을 더 깊숙이 찔러 댔다. 침대에 엎어진 영롱은 몸을 비틀고 두 발을 서로 비비며 괴로워했다.

“맏형으로서 알아야겠어. 네가 어쩌다 이렇게 밝히게 됐는지.”

“으흣……, 맏형 좋아하네……. 대체, 형이 언제부터…….”

“얘기 안 해 줄 거야, 영롱아?”

손가락으로 영롱의 뒤를 마구 쑤시며 말로 희롱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강 본인도 놀라웠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과 말이었다. 여태껏 활동하는 내내 자신이 맏형이라는 걸 내세워 동생들의 사생활에 간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숫기 없고 소심한 성격이라 위력을 사용해서 남을 괴롭혀본 적도 없다. 비록 침대 위에서라도. 원래 모습을 잊을 만큼 음심을 자극한 사람이 바로 영롱이라니.

스스로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은 그저 욕망에 모든 걸 맡기고 본능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어째서인지는 이 녀석에겐 그런 힘이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성? 모든 현실이나, 평소의 모습을 잊게 만들고 상대방을 무장 해제 시켜 버리는.

녀석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실컷 애태우던 손가락을 빼고는 성기 끝부분을 엉덩이골 사이에 대고 감질나게 문질렀다. 그러자 영롱은 시트를 움켜쥐며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한강이 피하며 뒤로 물러나자 녀석은 진심으로 화난 듯 소리를 질렀다.

“아! 제발, 좀!”

“얘기하면, 네가 원하는 걸 준다니까? 나도 너한테 다 얘기했잖아.”

“지금 그게 왜 중요해?! 형은 평소에도 그런 얘기 안 해 주면서, 왜 하필 섹스할 때 다른 사람 얘길 하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어서, 괜한 오기를 부렸나 싶어 마음이 좀 약해졌다.

“나 지금 형 생각밖에 안 나니까. 형으로만 가득 채워 줘.”

영롱이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애원했고, 그 모습에 한강은 꽤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상대가 어떤 말을 좋아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네. 아쉽지만 자신의 궁금증은 다음에 채우기로 하고, 지금은 녀석이 원하는 것부터 채워 주기로 했다.

영롱의 허리를 단단히 잡고는 세게 박아 넣자 강하게 조이며 신음했다. 한강 역시 궁금증이고 뭐고 육체가 선사하는 쾌락에 모든 걸 맡긴 채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호텔 방 안에는 퍽퍽 살 부딪히는 소리와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아, 아으응! 형, 혀엉……!”

“하아, 영롱아…….”

한 쌍의 짐승처럼 몸을 겹치고 절규하던 둘은 결국 침대 위로 무너지고 옆으로 누운 채 계속 격렬한 몸부림을 이어 갔다. 더 깊은 삽입을 위해 한강이 영롱의 발목을 쥐고 무릎을 굽혀 당기자 영롱은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깊이 받아들였다.

한강은 영롱의 몸이 접힐 정도로 꽉 끌어안은 뒤 마지막으로 깊이 쳐올렸고, 엉덩이 근육이 경직되며 절정을 알렸다. 거센 불길에 모든 게 다 타고 재만 남은 듯, 새하얘진 한강의 의식 속에 멀리서 영롱의 비명만이 뒤따라 들려왔다.

그렇게 두 번째 오르가즘이 지나가고, 둘은 늘어진 몸을 붙인 채 호흡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 영롱이 뒤돌아 한강을 마주 보고는 얼굴 곳곳에 버드키스 같은 짧은 입맞춤을 남발했다. 한강은 미소를 지으며 영롱을 꼭 끌어안다가 불현듯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 빨리 자야 해. 내일 개인 촬영이잖아.”

“내가 형보다 먼저인데.”

“순서 바꿔 줄까?”

“형이 더 무리했으면서.”

“일단 자자.”

확실히 무리하긴 했지만, 기분은 아까보단 훨씬 나아졌다. 더는 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자신의 품에 안긴 채 순식간에 곯아떨어진 영롱을 보며, 참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사랑은 아닌데, 왜 이리 탐나는 건지. 그렇다고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면서, 몰두하게 만드는 건지.

오랜 비행과 바로 이어진 화보 촬영, 게다가 격한 정사에 피곤했는지 영롱은 깊은 잠에 빠진 듯 쌕쌕 숨을 내쉬었다. 잠든 모습은 평소처럼 어리고 귀여운 동생의 모습이었다.

잠깐. 내가 얘랑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니. 먼저 날 유혹했잖아! 가만. 내가 빌미를 주긴 했는데? 자문자답하며 혼란스러워하던 한강은 문득 아까 영롱의 호언장담이 떠올랐다.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일이 몰고 올 후폭풍이 생각도 안 날 정도로 후회 없는 섹스였다. 모르겠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이런 녀석은 처음이었고, 이런 경험도 처음이었다. 어쨌든 잊을 수 없는 밤이란 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진짜? 그때? 우리 광고 찍으러 갔을 때? 차영롱이랑 촬영 순서 바꿔 준 그날? 대박.”

오은은 한강의 고해성사를 다 듣고는 놀라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야.”

“피차 마찬가지면서 이러지 말자.”

한강은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 당시 영롱은 누구와 잤는지 끝까지 얘기해 주지 않았다. 막연히 다른 연예인이어서 밝히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지, 그게 멤버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도 다른 사람이랑 하고 싶은 거, 형이랑 하는 것뿐이고.’

그때 말한 사람은 설민이었겠지. 아니, 어쩌면 태휘인가? 조금 전 오은의 주장에 따르면 진짜로 영롱이 원한 사람은 다름 아닌 태휘였을 테니. 한강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오은은 아직도 놀라운지 계속 되뇌며 혀를 쯧쯧 차고 있었다.

“형이 그 누나랑 사귀었다는 것도 충격인데, 그 누나한테 차이고 차영롱이랑 잤다는 게 더 충격이다.”

자신의 치부를 다 까발렸다는 사실에 한강은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선명한 기억에 비해 그때 느꼈던 죄의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불리한 감정은 지우고, 좋았던 것만 기억하는 걸까?

그리고 자신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의 짐도 덜었고. 이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을까? 태휘 빼고.

“아니 근데. 난 오은이 네가 더 이해 안 되는데? 민이 말대로 너는 영롱이랑 그러기는커녕 활동 기간 내내 싸움박질 안 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아니, 한 번 했나? 언제야, 그 5집 때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혼잣말로 기억을 더듬다가 얼핏 고개를 돌리자 오은이 갑자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는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시작했다. 한강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그때냐?”

“뭔 소리야! 나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는 얼굴이 아닌데, 너?”

오은은 그동안 배웠다는 명상법이고 뭐고 다 잊은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아, 차영롱. 씨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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