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ape 2. (2부)-Track 1. Our Story Begins (02:08) (14/39)

황혼의 아이돌

The Best of S.T.O.R.Y.

Tape 2. (2부)

Track 1. Our Story Begins (02:08)

Track 2. Tear Down (04:38)

Track 3. Ever After (03:22)

Track 4. 다시 너에게 (04:15)

Track 5. 사랑 느낌 (03:39) <영롱 solo>

Track 6. 편지 (03:38)

Track 7. 원(願) (02:59)

Track 8. 불통 (04:21)

Track 9. Room (03:18)

Track 10. Highway (02:56)

Track 11. Harmony (02:49)

Track 12. 어떤 병 (04:34)

Track 13. The Age of Loss (05:09)

Track 1. Our Story Begins (02:08)

다림은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에 핸드폰으로 한 통의 사진을 받았다. 발신자는 SS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잠복하고 있던 조사원으로, 평소와 다른 낌새가 보이면 연락을 주기로 약속한 터였다. 일단 사진부터 확인한 다림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뭐예요, 이거?”

- 오늘 찍은 사진이요. 출입 차량 체크하다 보니까, 주로 원태휘가 타는 차여서요.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서너 명은 됐어요. STORY 멤버들 같더라고요.

다림은 깜짝 놀라며 방금 들은 말의 의미를 재차 확인했다.

“STORY 멤버들이 지금 SS엔터에 모였다는 말이네요?”

- 네. 그리고, 그 전에 처음 보는 차량도 한 대 들어왔어요. 입구에서 경비원이랑 한참 실랑이하다가 들어가기는 했는데, 누군지 모르겠네.

“사진은요?”

- 찍긴 찍었는데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해서…… 얼굴이 아예 안 보여요. 자차 끌고 온 SS 소속 가수일지도.

“그래도 보내 주세요. 수고했어요.”

설마, 아니겠지. 통화를 끊고 사진을 기다리는 동안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겸연쩍을 정도로, 전송된 사진만으로는 그 대상을 추측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도 놓을 순 없기에 사진을 확대하고, 밝기도 키워 보았다.

영롱과 체구는 비슷해 보였으나 염색한 머리에 선글라스, 마스크 등은 SS엔터에 드나드는 수없이 많은 가수나 연습생 중 한 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필 멤버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들어와 타이밍이 절묘했을 뿐인가?

하긴 그동안 소리 소문도 없이 잠적했는데, 생뚱맞게 지금 나타날 리 없지. 뭐, 그 인물이 영롱이든 아니든, 일단 멤버 4명이라도 SS엔터에 모였다는 건 꽤 큰 뉴스거리였다.

조만간 어떤 쪽으로든 회사 차원에서 입장 발표가 나올 거라는 걸 예고하는 거니까. 과연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연예부 기자로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다.

▶▶

한강, 태휘, 설민, 오은은 마치 유령이라도 만난 표정이었다. 놀란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영롱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신 대표와 멤버들을 번갈아 보았다.

“왜 다들 귀신이라도 본 표정일까요?”

“그럴 만도 해. 나도 그랬거든.”

“진짜 다들 내가 죽은 줄 알았나?”

“솔직히 그러고도 남았지. 자그마치 10년이야, 10년. 어떻게 그동안 연락을 안 해? 얘들한테는 못 했어도, 나한테는 했어야지!”

“죄송해요, 대표님. 그래도 이렇게 제일 먼저 찾아왔잖아요.”

살가운 엄마와 아들처럼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신 대표와 영롱을 바라보고만 있던 멤버들 중 ‘얼음’ 상태를 제일 먼저 깬 건 역시나 설민이었다. 비록 그마저도 쭈뼛쭈뼛 어색하게 손을 들며 묻긴 했지만.

“저기, 저기요? Excuse me? 누가 이 상황 설명해 줄래요?”

“왜 손을 들고 그래, 설민이 형.”

영롱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설민은 눈앞에 있는 존재가 차영롱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녀석의 목소리로 얼마 만에 불려 보는 자신의 이름인지. 설민은 도리질을 치며 눈을 여러 차례 끔뻑거렸다.

영롱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라면 고작 머리 스타일? 세월이 무색하게 살도 찌지 않았고 피부도 타거나 상하지 않아서, 2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나머지 멤버들도 관리를 잘해서 원래 자기 나이로 안 보이는 편이었는데, 영롱은 그냥 STORY 활동 당시에 멈춰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무슨 상황이긴? 영롱이가 돌아왔으니 이제 재결합 프로젝트가 가능해진 상황이지.”

신 대표가 답하자 영롱을 제외한 4명의 미간이 동시에 좁아졌다. 한강이 이의가 있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중간 과정을 뭔가 많이 점프한 것 같은데요, 대표님?”

“이제 설명해 주려고 하잖니. 다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좀 앉아 봐. 회의 시작하게.”

“이틀 연속 회의라니…….”

설민이 중얼거리며 자연스럽게 영롱의 옆자리에 앉았고 커다란 회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강, 태휘, 오은은 그 맞은편에 앉았다. 자리로 가 앉는 동안 태휘는 영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표정은 반가움이나 기쁨보다는 의아함에 가까웠다.

영롱이 스스로 자신들 앞에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얼굴이었다. 아직도 자기 앞에 있는 존재가 영롱이 아니라 영롱으로 둔갑한 요괴라도 된다는 듯이 의심쩍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한편 영롱은 태휘에겐 시선도 던지지 않은 채 설민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나 최고의 수다쟁이 둘 아니랄까 봐. 10년 동안의 공백이 무색하리만큼 만나자마자 뭔가를 계속 쫑알대고 있었다.

한강과 태휘는 그런 설민을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다. 죽을 때 저승사자가 데리러 와도 수다 떨 놈. 와중에 오은은 숙취 때문에 괴로운 건지, 갑작스러운 영롱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건지 사색이 되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때 신 대표가 책상을 두드리며 멤버들을 집중시켰다.

“그간 영롱이 안부는 차차 듣기로 하고. 너희들 생각은 어때? 재결합 프로젝트 말이야.”

그 말에 한강, 태휘, 설민, 오은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게…… 불과 10분 전까지는 다 안 하는 거로 결론 내렸지 말입니다.’

아무도 차마 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는 건 역시 리더 뿐인 듯했다. 태휘는 가라앉은 목을 풀기 위해 짧게 헛기침했다. 어젯밤 술에 취해 멤버들에게 소리치던 모습은 간데없이 다시 세상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표님이 어떤 목적으로 이 회의를 소집했는지는 몰라도, 저희 입장은 달라질 거 없어요. 해체 당시 그대로입니다. 재결합 안 하겠다는 약속 지킬 거예요.”

한강과 설민, 오은은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지난밤, 재결합할 수 없는 진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한 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들이었으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영롱조차도 그 얘기까지는 신 대표에게 하지 않은 눈치였다.

“역시. 리더로서 태휘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본인들 말에 책임지겠다는 뜻이지? 근데 알다시피 상황이 많이 달라졌잖아. 생각 바꿔 보는 건 어때?”

태휘가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카리스마였다면 신 대표는 갈대처럼 유연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다. 언제나 멤버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며 필요할 때는 연장자로서 멤버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관점을 넓혀 주는 식으로 설득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신 대표의 방식이 쉽게 통하지 않을 듯했다. 어젯밤에 대형 폭탄까지 투척하며 재결합은 절대 불가하다는 의지를 보였기에, 그 결심을 흔들기는 어려워 보였다. 물론 영롱이라는 큰 변수가 등장하긴 했지만.

“상황에 따라 바뀌는 건, 약속이 아니잖아요.”

태휘는 그렇게 말하고는 맞은편에 앉은 영롱을 또렷이 응시했다. 영롱은 턱을 괸 채 태휘의 시선을 마주하며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회의실에 들어와 처음으로 서로를 응시하는 순간이었다.

둘의 시선이 부딪히자 회의실 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듯했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어색함을 깨고 신 대표가 말했다.

“태휘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다른 모양으로 포장할 수는 있어. 재결합이라는 타이틀이 거창해서 부담스럽다면 방법은 많아. 일회성의 이벤트도 될 수 있고, 스페셜 무대라고 할 수도 있고.”

여전히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너희들의 명예나 소신 지키면서도 대중의 요구도 들어줄 수 있으니, 모든 가능성 열어 두면 어떠냐고.”

‘쓸데없는 고집 그만 쳐 부리고 내 말 좀 들어라.’를 최대한 고상하게 말하는 신 대표만의 화법이었다. 이 대화 방식은 실제로 태휘에게 효과가 좋은 편이었다.

똥고집 태휘의 의사를 존중해 주면서도 다른 방향을 제시해 주면 여러모로 판단해 보고 더 나은 해결점을 찾곤 했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의견 교환이 잘 이루어져 그 오랜 시간 동안 태휘가 SS엔터테인먼트에서 이사 겸 프로듀서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엔 태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자 나머지 멤버들도 따라서 침묵했고, 그 모습을 보고는 참다못한 영롱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들 왜 말을 잃었어? 모두 태휘 형이랑 생각 똑같은 거야? 아닐 것 같은데.”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외모만큼이나 재빠른 눈치 또한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흠칫 놀라는 멤버들의 표정을 잽싸게 스캔한 영롱은 신 대표에게 애교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

“다들 저 때문에 많이 놀랐나 봐요~.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 주시죠, 대표님? 이 자리에서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십여 년 전 활동 당시에도 회의 때 과열된 분위기를 환기하는 건 영롱의 몫이었다. 다소 뜬금없는 무맥락 애교로 흐름을 끊긴 했지만, 때론 그 타이밍이 회의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해 주었다. 신 대표는 그동안 나름의 마음고생이 있었는지 과장 섞인 푸념을 했다.

“영롱아, 너는 모른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압박받았는지……. 방송국 놈들은 빨리 멤버들 설득하라 그러고! 회사 인간들은 이 기회 놓치면 안 된다고 들볶고! 태휘 저 자식은 저렇게 뻗대고! 너는 없고…….”

“이제 영롱이 여기 있잖아요~.”

영롱이 손으로 얼굴 아래 꽃받침을 만들어 몸을 기울이자 신 대표는 이내 웃으며 귀엽다는 듯 볼을 꼬집었다. 숙취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그 타이밍에 오은은 순간 헛구역질을 했다. 나머지 멤버들도 놀라워했다. 아직도 저런 애교를 떨고 또 저 애교가 먹히다니.

이런 뒤숭숭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 대표와 영롱은 서로 끌어안고 토닥거리며 주접을 떨어 댔다. 영롱은 신 대표의 어깨를 쓰다듬고는 어르듯 말했다.

“급한 거 없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도 멤버들이랑 그간 쌓인 회포부터 푸는 게 먼저인 듯싶고요.”

“난 급해! 사업가이자 우리나라 대표 연예기획사의 수장으로서 이런 일은 빨리 결정 내려야 한다고! 그러니까 네가 애들 좀 잘 설득해 봐!”

“제가 뭐라고, 제 말을 듣겠어요?”

영롱은 그렇게 말하고는 멤버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STORY 멤버들은 앞으로의 상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직감했다.

▶▶

이후 다른 일정이 있는 신 대표 때문에 STORY 5명은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회의실을 나와야 했다. 물론 예정에 없던 회의였기에 뭔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지만.

신 대표로선 ‘상황이 급변했으니 지금부터 의견을 모아 봐라’ 이런 의미로 주재한 회의였다. 그러나 지금 멤버 4인은 의견이고 나발이고,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 같은 영롱의 등장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회의실 앞 복도에 선 한강, 설민, 오은은 어색하게 태휘와 영롱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영롱은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 같지 않게 태연해 보였고, 태휘는 세상 가장 심각해 보였다.

“우욱……!”

그때 오은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요란스레 달려갔다. 그 모습에 영롱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쟤 왜 저래?”

“숙취.”

설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하자 영롱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 다 같이 모여서 술 마신 거야? 나 빼고?”

설민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마치 계속 쭉 연락하며 지낸 것처럼 말한다, 너?”

“에이, 하루만 더 기다리지. 내가 이렇게 짠 나타났는데. 아니면 오늘 한잔할래?”

그 말을 듣자마자 한강은 자기 속까지 울렁거리는 듯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우리 여기서 더 못 마셔.”

“어쩌다 이리들 많이 마셨어? 다들 술 세지도 않으면서. 무슨 얘기 했길래?”

영롱이 쉴 새 없이 쫑알거리자 멤버들은 지난 시간 동안 자신들의 대화에 얼마나 공백이 많았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공백을 지금 영롱이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때문에 멤버들은 지금이 20세기인지 21세기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런 영롱에게 설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영롱아, 부탁인데 헷갈리니까 그만해 줄래? 너 10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 같지 않고 쭉 있던 사람 같으니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돼? 뭐 극적으로 ‘이 몸 등장!’ 이러면서 망토라도 휘둘러? 아니면 오랜만이니까 달라진 모습으로 수줍게 굴어? 특별할 것도 없고 달라진 것도 없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누구보다 극적인 걸 좋아하던 녀석이 어디 잠깐 여행 갔다 온 것처럼 슬그머니 일상으로 돌아오니까 그러지. 충분히 이상한 상황인데 자연스럽게 받아들기가 쉬우냐? 멤버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영롱을 노려보고만 있던 태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 시점에 돌아온 이유가 대체 뭐야?”

팔짱을 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영롱은 불쾌하단 듯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대답 대신에 위아래를 훑어보다가 태휘의 손목에서 언뜻 시선이 멈추더니 그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 팔찌 했네?”

영롱의 말에 옆에 있던 설민과 한강의 시선도 태휘의 팔짱 낀 손목으로 향했다. 그 손에는 예전에 영롱과 함께 맞춘 TH 펜던트 팔찌가 반짝이고 있었다.

분명히 밖에서 안 보이도록 옷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그 팔찌의 정체를 깨달은 설민이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태휘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 팔찌? 그걸 지금도 차고 다녀?”

“무슨 팔찐데?”

한강이 진심으로 궁금해하자 설민은 그것도 놀라웠다. 당시에 영롱이 사방팔방으로 자랑하고 다녀서 멤버들은 모를 수가 없는데. 이 형은 오래돼서 잊은 건지, 그때도 관심이 없던 건지. 설민은 잔뜩 흥분해서는 태휘와 영롱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옛날에 이 둘이서 맞춘 이니셜 팔찌 있잖아! 그때도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민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태휘는 곧바로 팔찌를 옷소매 안으로 숨겼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당황한 모습에 설민과 한강은 어이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격, 근엄, 진지하던 리더의 모습이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영롱은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부터 묻다니 실망이야, 태휘 형. 9년 만에 보는 건데. 그동안 별일은 없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그런 것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영롱이 따지듯 묻자 흥미진진하게 태휘의 반응을 살피던 설민이 이상한 걸 느끼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9년? 왜 9년이야?”

한강도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는 10년 만인데.”

멤버들의 반응에 영롱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태휘 형이 말 안 했나 보네?”

“무슨 말?”

말 안 한 게 또 있어? 설민과 한강, 그리고 화장실에서 막 돌아온 오은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태휘가 영롱의 팔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나랑 얘기 좀 해.”

그러곤 복도 옆에 있던 계단 통로로 끌고 갔다. 와중에 영롱은 멤버들을 향해 능청스럽게 손을 흔들었고, 둘의 모습이 문 너머로 사라지자 복도에는 세 멤버만 덩그러니 남았다.

“진짜 이게 뭔 상황이야?”

“몰라. 아직 술도 안 깼는데, 지금 머리 너무 과부하야.”

“일단 술부터 깨야겠어. 둘 문제부터 해결하고 오라 그래.”

셋은 1층 로비에 있는 카페나 갈 생각으로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

“형이라도 그 팔찌 잘하고 다니니 보기 좋네. 나는 잃어버렸거든.”

태휘에게 손목이 붙들린 채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또 흘러내린 팔찌를 보고 영롱이 말했다. 회의실 위층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로 가려던 태휘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뒤돌아 내려다보자 영롱이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어디 갔는지 영 못 찾겠더라고.”

“말 돌리지 말고. 아까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 왜 돌아온 거야?”

그제야 영롱은 잠자코 붙잡혀 있던 손을 뿌리치고는 뒤로 물러섰다.

“형부터 말해 봐. 멤버들한테 어디까지 얘기했어?”

영롱의 단호한 태도에 태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해체 이유까지.”

“아아, 그거.”

영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그럼 해체 이후의 얘기는 안 했다는 거네?”

여유로운 영롱에 비해 오히려 긴장한 건 태휘였다. 어젯밤 멤버들 앞에서 당당히 소리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의 치부는 끝까지 숨기고, 나 개새끼란 것만 밝혔구나.”

영롱이 이죽거리는 투로 말하자 태휘는 바로 반박했다.

“치부라고 생각 안 해.”

“근데 왜 말 못 해? 치부가 아니라면 그것까지 당당히 말했어야지.”

“우리 둘 사이의 일을 왜 멤버들에게 얘기해야 해?”

그 말에 영롱은 어이없어하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형은 왜 나랑 멤버들 사이의 일 때문에 해체했는데? 형의 원칙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야. 형이 얼마나 위선자인지 멤버들도 알아야 하는데.”

영롱은 어릴 때처럼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조곤조곤하면서 속도감 있게 할 말을 이어 갔다.

“다들 그것도 모르고 착해 빠져서, 그저 형의 말만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 멤버들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몰라도, 내가 왔으니 이제 형 말만 믿지 못할걸? 그러니 나만 이렇게 따로 데리고 온 거잖아.”

짧은 순식간에 한 무더기의 말을 와그르르 쏟아 내는 녀석의 입술을 쳐다보느라 이번엔 반박할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진짜로 돌아온 게 맞구나 싶어서.

“그게 아니라면, 그냥 나랑 단둘이 있고 싶었거나?”

“헛소리.”

태휘는 뒤늦게 정신이 들어 대꾸했다.

“이제 네가 대답할 차례야.”

“형 작업실 가려고 한 거 아니었어? 가서 얘기해. 오랜만에 보는데 이렇게 세워 둘 거야?”

영롱은 그렇게 말하곤 태휘를 스쳐 계단을 올라갔다. 작업실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앞장서는 뒷모습을 보며 태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나 찾던 뒷모습이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긴 시간 동안 잔뜩 엉켜 버린 실타래부터 푸느라 급급할 줄이야. 그동안 안부 궁금했다는 말도, 사실은 걱정했다는 말도, 사과도 하고 싶었는데, 꺼낼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오지. 왜 회사로 불쑥 찾아왔어?”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앞서 계단을 오르던 영롱은 또다시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했다.

“장난해? 형이 어디 있는지 알고 형한테 가? 연락처도, 주소도 다 바꿨으면서. 회사에 오면 당연히 형 있을 줄 알았지.”

나는 형 찾아온 거라고. 그 한마디에 태휘는 심장 한구석이 일렁이는 걸 느꼈다. 더는 어떤 것에도 감흥을 느끼지 않을 만큼 메마른 줄 알았는데. 9년 만에 돌아온 녀석의 한마디에 반응하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더는 그 바보 같은 짓거리를 반복할 수 없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