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13. The Age of Loss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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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년 4월 -
어느 주말의 늦은 저녁, 모처럼 신 대표를 만나고 돌아가려던 태휘는 회사를 나서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팬들 무리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STORY가 해체한 지도 1년, 이제 회사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후배 그룹 팬이라면 몰라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태휘는 당황했다. 자신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에게 한 명씩 사인을 해 주며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
“헐~. 오빠두, 참! 오늘 영롱 오빠 솔로 컴백 쇼케이스 했잖아요! 거기 갔다가 온 거예요!”
“오빠 축하 영상도 나왔는데! 오늘 하는 것도 몰랐어요?”
아, 그게 오늘이었나? 얼마 전 녀석의 부탁으로 축하 영상을 촬영하긴 했는데 날짜는 몰랐다. 요즘 만나기도 어려워서.
오늘 쇼케이스가 있었다면 팬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보통 현장에 다니는 팬들은 어떤 행사가 있으면 끝나고 바로 돌아가기 아쉬워 회사 앞이나 멤버들 집 앞에 가곤 했다. 운 좋으면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해체 이후 첫 솔로 활동이니, 그동안 행사와 현장에 목말랐던 팬들이 우르르 다 튀어나올 만도 했다. 다행히도 영롱의 집은 아직 알려지지 않아, 다들 회사 앞으로 온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영롱을 보고 온 데다가 태휘까지 봐서 잔뜩 신난 팬들은 흥분해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오빠, 오빤 회사 왜 왔어요? 허걱! 설마…… 오빠도 곧 솔로 나와요?”
“오빠도 빨리 나와요~. 영롱 오빠랑 같이 활동하면 좋잖아요~~!”
팬들에게도 두 달 후 유학 간다는 얘기하긴 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오늘 신 대표와 그 일에 대해 상의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조만간 회사 측에서 유학 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보도 자료가 나갈 거라, 이 자리에 있는 몇몇 팬들에게만 먼저 얘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태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말을 건넸다.
“오늘 쇼케이스 어땠어?”
태휘가 먼저 말 걸어 주자 팬들은 기뻐하며 오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네! 짱 좋았어요!”
“영롱 오빠 넘 예뻤어요! 신곡도 진짜 좋고!”
“오늘 오빠들 왜 안 왔어요? 깜짝 축하 게스트라고 해서 혹시 오빠들 아닐까 하고 기대했는데!”
“깜짝 게스트? 누가 왔는데?”
“권준원이요.”
사인을 해 주던 태휘는 저도 모르게 손이 미끄러져 글씨가 삐끗 엇나가고 말았다.
“헐~ 오빠! 이게 뭐예요~!”
“미안. 다시 해 줄게.”
태휘가 망친 사인이 있는 다이어리 종이를 뜯어내려고 하자 팬이 다급히 말렸다.
“오빠! 그거 그냥 두고 다음 장에 해 주세요! 망친 사인도 기념으로 간직하게.”
태휘는 팬의 말대로 했다. 와중에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물었다.
“권준원? 뮤직비디오에 나온 배우 말이지?”
“네. 엄청~ 이따~~~만한 장미 꽃다발 가져와서 영롱 오빠한테 줬어요!”
“영롱 오빠도 올 줄 몰랐는지 진짜 깜짝 놀라던데요?”
태휘는 아무 말 없이 사인을 마친 다이어리를 건네주었다. 다른 팬들에게 사인해 주는 사이, 팬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눴다.
“야, 근데 권준원이 잘 생겼냐? 난 잘 모르겠더라.”
“맞아. 대박 느끼한데.”
“영롱 오빠랑 진짜 안 어울려. 어쩌다 친해졌을까?”
그들의 대화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기울여졌다. 그러게 말이다. 어쩌다 친해졌지.
“권준원이 먼저 작업 걸었겠지! 딱 봐도 선수 같잖아.”
“태휘 오빠! 영롱 오빠 권준원이랑 친한 거 마음에 안 들어요!”
나도 마음에 안 들어. 태휘는 마음속으로 동의하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며 물었다.
“왜?”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이 안 좋아요! 오빠가 놀지 말라고 좀 해 봐요.”
팬들의 뜻밖의 투정에 태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자기 대신 성내 주니 속이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사인을 다 마친 뒤 팬들의 인사를 받으며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순간 멈칫하고는 돌아보았다.
“그래서, 영롱이 왔어?”
“아뇨. 아직 안 왔어요. 쇼케이스 끝나고 뒤풀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그걸 알면서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는 너희도 참 대단하다.
“너무 늦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찍 집에 들어가.”
“네~~~.”
“그럼 오빠가 영롱 오빠한테 빨리 들어오라고 연락 좀 해 주세요~.”
태휘는 팬들의 칭얼거림을 뒤로 하고 주차장에 있던 차에 올라탔다. 글쎄다. 걔가 내 말을 들어야 말이지.
▶▶
“형, 들어와~. 한 잔 더 하자~.”
“너 많이 취했어. 오늘 피곤했을 텐데 얼른 씻고 잠이나 자~.”
“영롱이 별루 안 취했눈데~? 내가 오늘 기분이 대박~ 좋아서~.”
현관 앞에서 영롱은 매니저와 한참을 실랑이했다. 매니저는 오늘 쇼케이스에서 받은 선물들을 집 안에 들여다 놔주고는 나오려 했고, 취한 영롱은 매니저를 못 가게 붙잡았다. 매니저는 영롱을 겨우 달래서 들여보내고 현관문을 닫아 버렸다.
영롱은 입을 삐죽 내민 채 닫힌 문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발을 벗어 던졌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깜깜한 거실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부엌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 물~ 시원한 무울~♪”
냉장고에서 새 생수병 하나를 꺼낸 영롱은 손이 계속 헛도는 바람에 뚜껑을 따지 못해 낑낑거렸다.
“기분 좋아 보이네.”
“어우, 씨! 깜짝이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영롱은 깜짝 놀라며 생수를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다행히 아직 뚜껑을 열지 못했기에 쏟아지진 않았다.
태휘는 바닥에 떨어진 생수병을 집어 들고는 뚜껑을 열어 내밀었다. 영롱은 실눈을 뜨고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리고는 안도한 듯 환하게 웃었다.
“울 태휘 형아구나~. 영롱이 깜짝 놀랐자너~.”
영롱이 목에 매달리듯 끌어안자 태휘는 순간 손에 있던 생수병을 놓칠 뻔했다. 놓치진 않았지만 세게 움켜쥐는 바람에 물이 왈칵 넘쳤다. 옷이 젖는데도 영롱은 신경도 안 쓰고 태휘의 얼굴에 자신의 볼을 비비적댔다.
영롱의 솔로 앨범 준비와 쇼케이스 준비 때문에 이렇게 얼굴 보는 것도 몇 주 만이었다.
“형아~ 넘 보구 싶오쏘~. 헤헤헤~.”
“술 얼마나 마신 거야?”
“쪼~끔~. 아주 쪼끔~.”
잔뜩 꼬부라진 혀를 보니 조금보다는 더 마신 것 같은데. 태휘보다는 영롱이 술이 세긴 했지만, 취하면 평소보다도 더 텐션이 올라가고 애교도 심해져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었다. 안 그래도 심한데 평소보다 더! 그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태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물부터 마셔.”
“시러.”
영롱은 취한 주제에 딱 잘라 말하고는 태휘의 목선을 따라 입술까지 입을 맞춰 오기 시작했다.
“형부터 마실래.”
영롱은 그렇게 말한 뒤 계속해서 쪽쪽 입을 맞춰 왔다. 태휘는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내뱉고는 들고 있던 물병을 입에 가져갔다.
“진짜 못 말린다, 너.”
태휘는 생수를 들이켜 입에 머금고는 칭얼거리는 입술에 맞댔다. 영롱이 태휘의 입술을 삼키자 목이 타들어 갈듯하던 갈증 또한 채워졌다. 태휘를 통해 전해진 물 덕분에 영롱은 취기로 들뜬 열이 가라앉아 한결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아…….”
입을 떼고 태휘를 바라보자 어둠 속에서 물기 어린 입술이 반짝이고 있었다. 방금 갈증을 해결했는데도 알 수 없는 갈급함에 몸이 점점 달았다.
시원해졌다고 생각한 몸은 금세 다시 뜨거워졌다. 영롱은 두 팔을 여전히 태휘의 목에 감은 채, 하체를 더욱 밀착하고는 더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더 줘.”
그걸 달라는 말이 아니었는데도,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 태휘는 다시 생수병에 입을 댔다. 참지 못한 영롱은 태휘의 옷깃을 움켜쥐고는 냉장고에 밀어붙였다. 그대로 생수병이 떨어졌고, 쏟아진 물이 부엌 바닥을 적셨다.
영롱이 격렬한 키스로 입술을 빨아 대는 데도 어째서인지 태휘는 꾹 다문 채 열지 않고 있었다. 영롱은 혀를 세워 굳게 닫힌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애썼다. 애가 탄 영롱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려 태휘의 바지 속으로 집어넣었다.
“흣…….”
불시에 자극당한 태휘는 그만 신음을 내뱉었고, 그 틈을 타 영롱의 혀가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한 손으로는 태휘의 성기를 집요하게 자극했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태휘는 입술을 열어 혀를 받아들이면서도 평소처럼 키스하지 않았다. 오랜만인데도 왜 이렇게 뻣뻣한 건지.
영롱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순식간에 달아오른 몸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이 남자를 먹어 치우고 싶었다. 취하기도 했지만 오늘 쇼케이스를 성공리에 마쳐 기분이 한껏 들뜬 상태였다. 지금 기분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휘는 안는 건지, 밀어내는 건지 알 수 없는 몸짓으로 더욱 애타게 했다. 연인이 원대로 움직여 주지 않자 영롱은 짜증이 치밀어 다시 그의 옷깃을 붙잡고 뒷걸음질 쳤다.
부엌 중앙에 있는 대리석으로 된 아일랜드 식탁이 등에 닿자 영롱은 까치발로 올라가 앉고는 스스로 바지와 속옷을 벗어 내렸다.
“형, 오늘 왜 그래? 영롱이 안 먹고 싶어?”
태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롱은 그런 태휘를 흘겨보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물어 질척하게 타액을 묻히더니 아래로 가져갔다.
“형이 안 해 주면 영롱이 혼자 할 거야.”
영롱은 손을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는 색스런 신음을 계속 흘렸다.
“흐응, 하앗…….”
두 다리를 배배 꼰 채 엉덩이를 들썩이며 팔을 움직이자 영롱의 몸도 함께 진동하듯 흔들렸다.
“으읏, 아아!”
눈앞에서 적나라한 원맨쇼가 펼쳐지는 데도 태휘는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었다. 평소라면 마구 성질을 냈겠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흥분한 영롱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다만 취한 상태에서 한 판단이었기에 그 방법은 적절치 않았다.
자기 혼자 가는 모습을 보여 줘서 유혹할 셈이었는데……. 평소 태휘의 거대한 물건으로 길들여진 구멍은 손가락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힝, 씨발.”
영롱이 울먹이며 욕을 내뱉자 그 모습에 태휘는 오늘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진짜, 미치겠다. 차영롱.”
영롱은 미처 다 벗지 못한 바지와 속옷을 발목 언저리에 걸친 채 태휘에게 발을 뻗었다.
“형, 빨리…….”
“빨리, 뭐?”
“정신없이 박아 줘. 안에 가득 싸 줘. 영롱이 오늘 아주 맛있어.”
영롱은 입고 있던 상의 셔츠 단추도 풀러 내렸다. 어둠 속에서도 빳빳이 선 선홍빛 유두가 선명하게 보였다.
“안 맛보면 후회한다?”
“너 오늘 왜 이렇게 흥분했어?”
“왜긴. 형 때문이지. 형이 갑자기 나타났잖아. 생각도 못 했는데.”
태휘는 영롱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몸을 붙여 왔다. 둘을 가로막고 있던 옷가지들을 벗겨 내고는 다리를 붙잡아 당기자 가랑이 사이에 태휘가 파고든 모양새가 됐다. 연인의 체온이 느껴지자 영롱은 그제야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식탁 위에 앉은 영롱은 태휘를 내려다보고는 두 다리로 허리를 옭아매듯 감았다. 태휘의 맨투맨 티를 벗겨 내자마자 그의 입술이 바로 부딪쳐 왔다. 리드미컬하게 입 안을 헤집어 대는 혀의 움직임에 영롱의 목 안 깊은 곳에서 절로 신음이 나왔다.
강렬하고도 짧은 키스가 아쉽게 끝나기 무섭게 태휘는 눈앞에 곧게 선 돌기를 공략해 왔다. 입에 넣고 혀끝으로 핥자 영롱은 감고 있던 다리를 반사적으로 세게 조였다.
태휘는 눈을 들어 영롱의 상태를 한 번 확인하더니 쪽 소리가 나도록 빨고 바로 이어 깨물었다. 영롱의 허리가 휘어지며 뒤로 넘어갔고, 태휘는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감싸 대리석 상판에 부딪히지 않도록 보호했다.
영롱이 식탁 위에 눕자 태휘는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던 영롱의 다리를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린 후 하체를 자신 쪽으로 더 당겼다.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내리자 잔뜩 성이 난 성기가 튀어나왔다. 이럴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었는데.
연인의 손길에 제멋대로 발기해 버린 몸뚱이가 야속했다. 지난번 설민의 지적처럼, 요새 한참 욕구불만이긴 했으니까. 제아무리 태휘라도 눈앞에 차려진 밥상을 마다할 방도가 없었다.
영롱은 식탁에 누운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려 태휘의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더 참지 못해 허리를 흔들며 보챘다. 태휘는 그 허리를 단단히 움켜쥔 채 영롱이 원하는 대로 해 줬다.
“형……, 흐읏!”
식탁 상판 위에 걸친 영롱의 엉덩이 사이로 서서히 밀고 들어가다가 뿌리 끝까지 단숨에 박아 넣자 좁은 내벽이 꽉 조여 댔다.
“흡……, 씨발…….”
실로 몇 주 만의 섹스라 그런지, 받아들이는 영롱도 그렇고 삽입하는 태휘도 쉽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콘돔도 없이.
태휘는 괴로운 듯 신음만 흘려대는 영롱의 얼굴을 살폈다. 녀석은 꽤나 버거운지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깨물어 댔다.
어느 정도 영롱의 안이 익숙해지자 태휘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절정을 느끼게 해 줘야 서로 편할 것 같았다. 불도 켜지 않아 깜깜한 부엌엔 철썩거리며 살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하으응! 아아!”
이어서 영롱의 교성 또한 울려 퍼졌다. 대리석 식탁은 어느새 영롱이 흘린 땀으로 흥건해서, 태휘의 허릿짓에 따라 영롱의 몸도 함께 미끄러지듯 흔들려 댔다.
쉬지 않고 밀려드는 자극과 흥분에 영롱은 감전된 듯 튀어 오르면서도 뭔가 붙들고 싶어 손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손끝에 닿는 건 미끄러운 대리석 상판뿐이었다. 그때 태휘가 상체를 숙여 왔고, 영롱은 그대로 손을 뻗어 목에 매달렸다.
그 상태로 태휘는 영롱을 안아 들었다. 땀으로 범벅된 식탁에 기댔던 등엔 서늘한 공기가 와 닿았다. 영롱은 순간 몸을 크게 떨었고, 그 와중에 태휘의 목에 매달려 허공에 들린 상태가 되자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리며 삽입은 더 깊어졌다.
“하읏! 너무 좋아! 혀엉! 아아아!”
태휘는 영롱의 엉덩이를 움켜쥔 채 정신없이 박아 댔다. 녀석의 경고 아닌 경고처럼, 오늘따라 영롱은 감도가 좋았다. 박아 댈 때마다 자지러지는 반응도 좋고, 뜨거운 내부가 쫙쫙 감기는 게…….
술기운 때문일까, 쇼케이스의 흥분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 때문에? 연인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롱은 그저 태휘의 어깨를 꽉 끌어안고 꼬집고 깨물며 온몸을 지배한 쾌락을 마구 분출했다.
“좀, 더…… 더 세게! 형……!”
영롱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엉엉 울며 애원했고, 태휘는 영롱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는 뒤돌게 했다. 그대로 식탁에 엎드리게 해서 뒷머리를 움켜쥐자 영롱의 내벽이 기대감에 움찔거렸다.
“거칠게 해 줘. 평소와 다른 사람처럼.”
영롱이 달뜬 호흡으로 말하자 태휘는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까지 태휘는 영롱과 섹스하면서, 심할 정도로 거칠게 대한 적이 없었다. 원체 성감이 예민한 영롱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좋아 죽었기 때문에. 왜 하필 오늘,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다른 사람을 원하는 거야?”
태휘가 아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심각하게 물었고, 달아오른 몸이 주체가 안 되는지 영롱은 낑낑거리는 신음을 흘렸다. 분명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혀엉~. 빨리…….”
결국 영롱은 스스로 허리를 뒤로 뺐다가 움직여 태휘의 것을 삼키고는 원하는 지점을 찾았다.
“앙, 아앙, 하앙!”
혼자 미친 듯이 흔들어 대는 영롱의 마른 등과 허리를 내려다보면서 태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거칠게 해 주지 않으면, 거칠게 해 줄 다른 남자를 찾을까? 권준원 같은?
태휘는 질투와 소유욕 때문에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 생각을 지울 방법은 지금 단 한 가지뿐이었다. 불시에 영롱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쥐고 허리를 쳐올렸다. 그러고는 바로 이어 비슷한 강도로 계속 박아 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세우자 영롱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식탁에 엎드린 채 바르작거렸다. 성기를 끊어 먹을 듯 조여 오는 내벽만으로 녀석의 흥분이 전해졌다. 영롱은 이미 절정에 올랐는지 사정액이 식탁 벽면을 따라 바닥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영롱의 힘없는 손이 자신의 허벅지에 닿았으나 밀어내는 건지 끌어당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태휘는 그 손길보다는 자신을 삼킬 듯 조여 대는 안에 집중했다. 그 감각만으로 태휘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본능만이 가득했다.
허리를 뭉근하게 돌리며 영롱이 원했던 대로 안에 가득 싸주자 까치발을 들고 서 있던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떠는 게 느껴졌다. 영롱의 안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친 정액이 그 다리를 타고 흘렀다. 태휘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채워 넣기 위해 허리를 계속 힘 있게 쳐올렸다.
“흣! 으읏…….”
태휘의 움직임을 따라 영롱도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한 차례 열락이 지나가자 영롱은 식탁에 얼굴을 기댄 채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엎드러져 있으니 태휘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뜨거웠던 피부가 떨어지자 엄습해 오는 한기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랫배 부분은 식탁 면에 부딪힌 탓에 시뻘겋게 부어올랐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형, 안아 줘.”
영롱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부르는데도 태휘는 다가오지 않았다. 등 뒤에서 티슈 뽑는 소리, 바지 지퍼 올리는 소리, 싱크대 물소리가 들려왔다.
영롱은 다리에 점점 힘이 풀려 식탁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팔에 힘을 주고 상체를 일으키려 할 때 태휘의 서늘한 손이 영롱을 잡아 일으키곤 공주님 안 듯 가볍게 안아 들었다.
“침대로 가.”
“욕실부터 가야지.”
태휘가 어르듯 말하자 영롱은 허리를 끌어안고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지랄 다 떨어 놓고 애교 부리면 귀여운 줄 아나, 이 색마가. 물론 귀엽지만.
오늘의 섹스는 질투와 의심으로 가득해 불안한 섹스였는데도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 그 불안 또한 눈 녹듯 사라진다는 게 문제였다. 태휘는 혀를 차며 애인의 분부대로 침실로 향했다.
현관 앞을 지나 침실로 가는 길에 매니저가 두고 간 선물들이 태휘의 발에 닿았다. 조심히 피해서 지나가려는데, 그중에 유난히 바스락거리는 뭔가가 발끝에 걸렸다. 내려다보니 커다란 장미 꽃다발이었다.
태휘는 한눈에 그 꽃다발을 알아봤다. 눈 녹듯 사라진 줄 알았던 그 감정이 다시 차갑게 얼어붙어 왔다.
욕실로 가려던 태휘는 영롱을 침대에 던지듯 내려놓고 옷걸이에 걸려 있던 가운을 던져 주었다. 침실의 불을 켜자 영문을 모르는 영롱은 눈부신지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 부엌에서의 격렬한 정사로 노곤하게 풀린 몸은 잔뜩 늘어져 일으킬 힘도 없었다.
“왜 그래, 형? 또 하자.”
“오늘 쇼케이스에 권준원 왔었다며?”
난데없는 그 말에 영롱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알았어? 아직 기사도 안 나갔을 텐데?”
“그 자식이랑 잤어?”
태휘가 다짜고짜 묻자 영롱은 인상을 찌푸리며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렇게 유치하게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지만 지금 영롱을 안고 보니……. 다른 놈한테 저렇게 다리를 벌리고 거칠게 박아 달라고 사정했을 녀석을 떠올리니, 화가 나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뭐?”
“촬영장도 찾아가지 않나, 오늘은 그 자식이 오지 않나. 꽃다발까지 들고.”
“내가 내 뮤직비디오 촬영장 찾아간 게 뭐 어때서? 그리고 오늘은, 나도 올 줄 몰랐어.”
“너랑 떡친 멤버들도 안 왔는데 그 새끼가 왜 왔냐고.”
순간 나른하게 풀려 있던 영롱의 눈빛이 변했다. 굳이 강한 표현을 고른 태휘의 말에서 심각함을 느꼈는지, 그제야 가운을 걸쳐 입고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그러니까. 그럼 형이 오지 그랬어?”
영롱이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태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누구보다 기다린 건 형이었는데.”
“미쳤어? 내가 거길 어떻게 가?”
“못 올 거 뭐 있어? 그럼 나 완전 감동해서 울었을 텐데.”
“네가 그렇게 반응할 거 아는데 어떻게 가냐고.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뭐가 수상해? 어렸을 때부터 각별한 사이고. 나 감정 표현 격한 거 팬들도 다 아는데 누가 의심해? 그리고, 의심 좀 하면 어때?”
얘가 또 속 편한 소리 하네. 그리고 결국 또 다 내 탓이래. 녀석을 생각해서 행동해 봤자 녀석은 그걸 알아주기는커녕 더 서운해한다.
애인으로서 걱정되고 불안한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 다른 남자하고 친하게 지내건 떡을 치건 신경도 안 써야 했나? 그 꼴 더는 못 보겠어서 애인된 건데. 태휘는 쏟아 내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지겨운 말싸움이 반복될 것 같았다.
“아무튼 그 새끼 앞으로 만나지 마. 너한테 흑심 있어 보이니까.”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침실 옆 욕실로 향했다. 내일 아침 배 아프다고 징징대면서 또 남 탓할 게 분명하니, 욕조에 따뜻한 물부터 받아 둬야지. 그때 등 뒤로 영롱의 앙칼진 목소리가 꽂혔다.
“준원이 형은 남들 시선 일절 의식하지 않고 와 줬어. 그리고 그런 사람 아니야.”
태휘는 그대로 몸이 굳어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나 멤버들이랑 다 잤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충격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때가 나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때는 태휘가 자기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기에 홧김에 멤버들이랑 잤다고, 마음 없이 육체관계만 가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와 달랐다. 지금 영롱은 단순히 육체관계가 아닌, 정서적으로 준원을 높여 세우고 있었다.
욕실로 향하던 태휘는 뒤를 돌아 영롱을 바라보았다. 영롱은 눈동자 주위가 붉게 충혈되어, 원망 가득한 눈빛을 한 채 노려보고 있었다. 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씨발, 내가 진짜 잤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아, 억울한 포인트는 그거였군.
“차라리 자지 그랬어.”
지금은 그게 화가 덜 날 것 같았다. 차영롱 몸 헤프게 굴리고 다니는 거 새로운 일도 아니고. 그렇지만 무엇보다 못 참겠는 건…….
“준원이 형이 우리들 같은 줄 알아? 훨씬 어른이고, 신사라고.”
내 앞에서 그 새끼 편드는 거.
“그러면서도 표현할 때는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표현해!”
‘권준원이 먼저 작업 걸었겠지! 딱 봐도 선수 같잖아.’
팬들도 다 아는 그 자식 속셈이, 너는 안 보여? 세상 눈치 빠른 애가 이럴 땐 한없이 순진해지니까 더 열 받아. 권준원을 향한 호감과 선망 때문에, 기민했던 눈치가 작동을 멈췄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그 새끼한테 설레었어?”
왜 그런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봐? 가둬 주길 원한다며. 책임져 달라고 했잖아. 영롱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짜 유치하다. 원태휘.”
그말을 들은 태휘는 침실로 성큼성큼 돌아와 침대 위에 영롱을 도로 눕혔다. 그러더니 뻣뻣하게 버티고 있는 녀석에게서 억지로 가운을 벗겨 냈다. 태휘가 옷을 벗는 동안 영롱은 잔뜩 빨개진 눈으로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어른스러운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제 태휘는 영롱의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빈정거리는 것도, 질투 때문에 유치하게 구는 것도 원래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다. 녀석 때문에 이렇게 변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는…… 이런 씹새끼를 어쩌다 사랑하게 돼 가지고. 정말 좆같았다.
침대 밖으로 옷을 벗어 던진 태휘는 바로 고개를 숙여 키스도 없이 영롱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와중에 영롱은 거부하지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로 질투하고…… 앗……!”
태휘의 손이 거칠게 영롱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자 영롱은 가늘게 교성을 질렀다. 손가락으로 마구 들쑤셔진 내벽에서 아까 싸놓은 정액이 흘러나왔다. 영롱이 느끼는 지점을 집요하게 자극하자 발기한 성기 끝에서 선액이 줄줄 흘렀다.
영롱은 태휘를 끌어안지 않고 양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쥔 채 버텼다. 결국 태휘의 손만으로 가 버린 영롱은 몸을 크게 떨며 사정했다. 손가락보다 더 큰 것의 삽입을 기대하던 영롱은 태휘의 힘에 이끌려 침대 끝에 앉혀졌다.
눈앞에 그렇게 기다리던 태휘의 것이 흉흉한 기세로 서 있었고, 뒤통수를 감싸 누르는 손길에 그대로 입을 벌렸다. 귀두 부분부터 핥아 기둥을 타고 올라가자 불거진 핏줄이 혀끝에 느껴질 정도로 부푼 상태였다.
영롱이 입술로 이를 숨긴 채 입 안 가득 물자 머리 위에서 태휘의 탄식 섞인 신음이 들려왔다. 태휘는 영롱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아플 정도로 움켜쥔 채 허리를 움직였다.
구역질이 나올 만큼 목구멍을 강하게 찔러 대는 데도 영롱은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태휘의 것을 빨아 댔다. 입꼬리에 침이 흐르고 눈가에 눈물만 조금 고일 뿐이었다.
오히려 손을 뻗어 음낭을 만지고 자극하자 태휘는 참지 못하고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영롱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태휘의 것을 마시고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그러고는 일어나 태휘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렸다.
태휘를 눕힌 상태에서 그 위에 올라타 엉덩이를 내려앉자 뜨거운 성기가 끝도 없이 파고들었다. 조금 전에 사정했음에도 사그라질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영롱은 고개를 젖히고는 앞뒤로 허리를 움직이며 최대한 깊이 태휘의 것을 받아들였다.
“하앙, 하아…….”
태휘는 두 손으로 영롱의 골반을 움켜쥐고는 세게 쳐올리기 시작했다. 영롱도 그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어 댔고, 뜨겁고 좁은 내벽은 태휘의 것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놓치기 싫다는 듯이 꼭꼭 물어 왔다. 그 때문에 태휘는 입에서 절로 욕이 새어 나왔다.
“씨발, 차영롱…….”
“너무, 너무 좋아! 하앙!”
“너 지금, 씨발, 누구 생각하고 있어?”
“몰라, 몰라. 흐앙!”
영롱은 엉엉 울며 미친 듯이 허리를 움직여 댔고 침실엔 철벅거리는 소리와 두 사람의 짐승 같은 신음만 가득했다.
“너 지금, 누구 좆 물고 있냐고.”
“흐읏, 원태휘, 원태휘…….”
영롱이 눈을 꼭 감은 채 부르짖을 때마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태휘의 배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이미 눈물뿐 아니라 다른 것도 질질 흘리고 있었지만.
“절대 잊지 마. 똑똑히 기억해.”
“아, 안 잊어, 못 잊어! 내 꺼야, 내 꺼……. 아아!”
그새 또 절정에 오른 영롱의 내벽이 경련하자 태휘도 그 안에서 사정했다. 태휘의 가슴을 누르고 있던 영롱의 곱은 손은 이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태휘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몸을 굴려 일어나 영롱을 자신의 아래에 엎드리게 했다. 오늘 두 번 다시 잊지 못하도록 가득 새겨 줄 셈이었다. 이 구멍을 만족시킬 수 있는, 딱 맞는 좆은 세상에 하나뿐이란 걸.
온몸에 힘이 풀린 영롱은 엉덩이만 태휘를 향해 들린 채 침대 시트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오늘 밤 몇 번째일지 모를 삽입을 당한 구멍은 여전히 벌름거리며 태휘의 것을 졸라 대고 있었다.
기대감을 채워 주기 위해 바로 삽입하려던 태휘는 입구에 성기 끝을 문질러 대며 감질나게 굴었다. 영롱은 괴로움에 마구 몸을 비틀며 시트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다.
“원태휘, 씨발, 개새끼야!”
“너 씨발, 형한테 개새끼라고?”
“고작 한 살 차이인데……. 형 노릇은 씨발.”
“권준원만큼 아저씨는 돼야 형 취급해 줄 거야?”
“준원이 형 여덟 살밖에 안 많은데 뭐가 아저씨야?”
얘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씨발 새끼가. 태휘는 딱딱한 자신의 물건을 영롱의 엉덩이 골 사이에 비벼 대며 말했다.
“그럼 이것도 준원이 형한테 달라고 해. 아, 워낙에 신사라 안 넘어 오신댔나?”
“비꼬지 마……, 씨발.”
영롱은 몸을 좌우로 틀며 엉덩이를 조금씩 뒤로 뺐다. 그럴수록 태휘도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영롱은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냈다.
“혀엉…… 제발…….”
간절한 애원에도 태휘는 손으로 엉덩이만 주무르며 잔뜩 약을 올렸다. 오늘 녀석이 자신의 마음을 마구 할퀴어 댄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했다. 태휘가 계속 희롱하자 영롱은 진심으로 짜증이 났는지 엎드린 상태에서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 자기는 씨발, 유학 가면서!!”
“뭐?”
“그럼 형도 유학 가지 마! 그렇게 비꼴 거면!”
“너 미쳤어? 여기서 유학이 왜 나와?”
또 내 탓이지. 죄다 내 탓이래. 이 새끼는 이게 아주 입버릇이 됐어. 하지만 영롱은 진심으로 억울한지 엉엉 오열하면서 말했다.
“내 앨범 프로듀서도 안 해 주고! 솔로 일정 미룬 대도 미쳤다고 그러고! 유학 가지 말래도 헛소리 취급하고! 쇼케이스도 거길 어떻게 가냐고 그러고!”
“야, 차영롱…….”
“난 형이랑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데, 왜 다 안 된다 그러는데? 형은 내가 원하는 거 하나도 안 들어주잖아! 그래도 난 형 말이니까, 다 따랐는데…….”
“…….”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다 안 된다고 할 거면, 씨발 좆이나 똑바로 박으라고!”
영롱이 쏟아 내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하니 있던 태휘는 순간 영롱이 뒤로 뻗은 팔을 피하지 못했다. 영롱이 허벅지를 붙잡고 자신의 엉덩이를 움직여 태휘의 것을 바로 삼키자 방심하고 있던 태휘는 일순 숨이 턱 막혀왔다.
“흐응, 아아……!”
영롱은 태휘의 것을 가득 물고는 원을 그리듯 허리를 돌리며 안쪽 구석구석을 자극했다. 태휘의 것이 찌르는 곳마다 전류가 흐르듯 전신으로 쾌감이 퍼져갔다.
그 쾌감을 조금이라도 붙들기 위해 두 주먹을 움켜쥐고 발가락을 오므리며 몸을 떨자 태휘에게도 그 감각이 그대로 전달됐다. 머릿속을 다 튀겨 버릴 듯한 쾌락에 잠식당한 의식은 점멸하며 사고하길 포기했다.
녀석이 잊지 못하도록 뿌리 끝까지 가득 자신을 새겨둘 심산이었는데, 그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무리 자신을 새겨 봤자 영롱의 외로움과 갈증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박아 대도 만족할 줄 모르는 녀석의 육체처럼, 그 마음도 마찬가지이니까.
결국 태휘는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허리를 흔들어 댔다. 절대 놓치지 않을 듯이 꽉꽉 물어오는 뜨거운 내부를 느끼며, 자지러지는 신음을 들으며, 태휘 역시 짐승처럼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잃을 때까지 쳐올리고 또 쳐올렸다.
▶
태휘가 SS엔터테인먼트의 회의실에 도착하니 황혜 CP와 영롱이 먼저 만나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태휘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신나게 대화하고 있었다.
“영롱이 넌 어쩜 그대로냐? 아니, 더 예뻐진 것 같은데!”
“감독님도 참~. 제가 믿을 게 얼굴밖에 더 있어요? 빡세게 관리했죠~.”
그제야 태휘가 들어온 걸 알아챈 영롱은 해맑게 손을 흔들었고, 태휘는 아무런 반응 없이 회의실 안으로 향했다. 둘은 지난번 골든호텔 라운지에서의 식사 후 처음 만났다.
그날 영롱은 자신이 돌아온 이유를 에둘러 밝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태휘에게 감정이 남아 있는 게 분명했고, 그 속내를 알아챈 태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급히 식사를 마치고 곧장 호텔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영롱의 건강 상태도 궁금했겠다, 녀석과 계속 한 공간에 있다가는 뭔 일을 칠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에.
“무슨 소리야? 네 노래도 믿고 듣는데! 요즘 말로 ‘믿듣롱’ 아니냐!”
“믿듣롱이요?”
“믿고 듣는 차영롱~! 요새 댓글로 난리잖아. 내가 너한테 이걸 설명해 줘야 해?”
“저 그런 거 잘 몰라요.”
“너 진짜 어디 산에서 있다가 내려왔어?”
자신 역시 궁금했던 점을 황 CP가 건들자 태휘는 자리에 앉으면서 영롱의 표정을 살폈다. 영롱은 아무 대답 없이 입가에 엷은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신 대표가 들어오고, 나머지 멤버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설민이 영롱의 옆자리에 앉고 그 옆엔 한강,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오은은 눈치를 보더니 어쩔 수 없이 태휘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난번 영롱의 호텔방에서 마주쳤던 일 때문인 듯했다.
담당 PD와 작가들까지 착석하자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제작진 측에서 준비한 기획안은 세 가지 정도였다. 다큐멘터리, 토크쇼, 미니 콘서트 등 다양한 포맷을 내놓았고 멤버들과 신 대표가 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그때 황 CP가 중요한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무슨 포맷이든 다 좋은데, 이건 확실하게 하고 가야지. 솔직히 너희 팀의 스토리텔링 중 제일 중요한 부분이 영롱이의 10년 만의 컴백, 이거 아니야? 이거 아무 임팩트 없이 넘어갈 거야?”
그 말에 STORY 멤버들은 서로 시선이 얽혔다. 최종적으로 모든 시선이 영롱에게로 모였으나, 정작 영롱은 맞은편에 앉은 태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나도 재결합에 있어서 형 말 잘 따를게.’
영롱의 눈빛을 읽은 태휘는 황 CP에게 되물었다.
“감독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일단 여러 포맷을 골고루 섞는 컨셉으로 가야지. 그리고 영롱이의 등장과 참여 여부는 일종의 추적극처럼 연출하는 거야. 시청자들이 끝까지 궁금해 하도록.”
그 말에 태휘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차영롱을 찾을 수 있을까?’, ‘차영롱은 재결합에 참여할까?’ 이런 식으로. 어차피 사람들은 지금 영롱이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역시 뼛속부터 방송쟁이인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현재 상황을 숨긴 채 뻥을 좀 치자는 말이었다. 물론 요즘 방송이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긴 했다.
극적인 긴장감이나 흥미 유발을 위한 ‘예고편 사기’나 ‘악마의 편집’ 등은 더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태휘가 어떻게 나올지 안 봐도 훤했다.
“전 반대예요.”
“왜? 이런 좋은 떡밥을 안 써먹겠다고?”
태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쥐고 있던 태블릿 펜을 돌리며 말했다.
“팬들은 너무 오래 기다리고, 걱정했어요. 그 시간을 여기서 더 늘릴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 마음을 이용하고 싶지도 않고요.”
태휘의 말에 이어 영롱이 곧바로 한마디 덧붙였다. 웬일로 둘의 의견이 평화롭게 일치하자 나머지 멤버들과 신 대표는 놀랍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방송국 쪽 사람들만이 그 말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황 CP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휘에게 물었다.
“그럼, 처음부터 다 오픈하고 가겠다?”
“당사자한테 물어보세요. 본인 의사가 제일 중요하니까.”
태휘의 말에 황 CP의 시선이 영롱에게로 옮겨갔다. 영롱은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든 프로그램이 똑같이 그런 거에 목맬 필요 없잖아요? 어차피 우리 인생이 반전의 반전인데. TV에서까지 너무 그러면 보기 피곤할 것 같고.”
영롱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자신들 입장에선 태휘와 영롱의 연애 스토리가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었는데.
그 어떤 쇼를 기획해도 두 사람의 대환장 연애사를 뛰어넘을 수는 없을걸. 멤버들은 최근 자신들이 알게 된 놀라운 비밀들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그 생각 역시 속으로만 삭였다.
한편, 딱딱한 태도의 태휘와는 달리 영롱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황 CP를 설득하고 있었다.
“반전이니 뭐니, 그런 거 없어도 끝까지 볼 사람은 끝까지 볼 거예요. 저 때문만이 아니라, STORY 재결합 자체가 원체 극적이니까. 안 그래?”
영롱이 멤버들을 돌아보며 물었고 설민, 한강, 오은의 고개가 파도타기처럼 움직이며 끄덕거렸다. 모처럼 멤버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영롱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진행할 생각이 있었지만 이렇게 된 판국에 굳이 상황을 연출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맞아요. 그리고 그동안 영롱이와 접촉한 게 어디 새어나가기라도 해서 까발려지면 어떻게 해요? 오히려 망신만 당할걸요? 어우, 끔찍해.”
“태휘와 영롱이 말이 맞아요. 그냥 정공법으로 가요.”
“요즘 시청자들 귀신이에요, 귀신. MSG 치면 단박에 알죠.”
멤버들이 연달아 말하자 황 CP는 도움을 청하는 듯한 눈빛으로 신 대표를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신 대표 역시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자신 역시 멤버들 편이고, 힘을 실어 주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와중에 영롱은 오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옆에 앉은 설민에게 MSG 치는 게 뭐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어쨌든 멤버들 모두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단호함을 보이자 황 CP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여러 포맷을 골고루 섞는 건 좋아요. 한 컨셉으로만 가면 너무 딱딱하니까.”
태휘는 하나를 지켰으니 하나는 양보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멤버들의 의견을 수긍한 황 CP가 제작진들에게 눈짓하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저마다 기획안에 메모하고 체크했다. 이후로 황 CP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담당 PD 및 작가들과 함께 더 구체적인 논의를 나눴다.
“제작 발표회는?”
“제작진 기자회견으로 진행하려고 해요.”
“방영 전까지 STORY는 최대한 드러나지 않는 게 좋으니까.”
“인터뷰 샷은 따로 따나요?”
“네. 개인 인터뷰랑 단체 인터뷰 일정은 회의 마치고 작가들과 잡으시면 돼요.”
“인터뷰 질문은 사전에 몇 가지 준비해서 보내드릴게요. 셀프캠 촬영도 준비해야 하니 컨셉이나 아이템 생각나는 거 있으시면 미리 알려 주시고요.”
“셀프캠도 찍어요?”
“재결합 프로젝트 중간 과정에 추가하려고요.”
“가능하면 다섯 분 모두 다 부탁드릴게요. 어차피 다 쓸 수는 없을 테니까.”
“타이틀이랑 중간 꼭지 내용 등이 포함된 구체적인 대본은 초안 나오면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그동안 저희는 뭐 하면 되죠?”
“뭐 하긴? 비주얼 관리해야지.”
“재결합의 피날레는 콘서트잖아요. 무대 준비해 주시면 돼요.”
“선곡이랑 무대 구성은? 저희가 정해요?”
“그거 정하는 것까지 따로 찍을 거긴 한데, 대충이라도 미리 정해 놓으시면 좋죠.”
“무대 규모는 얼마나 돼요? 어디서 공연해요?”
“일단 신청 인원이 파악된 다음에 확정할 수 있어요.”
“곡 수는 맥시멈 열 곡 정도. 두 곡 정도는 편집될 수도 있고요.”
“일단 연습부터 시작하고 계세요. 오랜만이니까, 5명이서 맞춰 볼 시간 필요하실 텐데.”
결국 방송에서 재결합을 진행하게 되면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구상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 주최하는 콘서트라면 달랐겠지만.
방송국을 믿고 그 외적인 부분만을 충분히 준비해서, 촬영에 임하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멤버들이 할 수 있는 건 역시 공연 연습이 다였다.
그런데 의외로, 회의가 진행될수록 영롱의 말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까의 해맑던 모습은 간데없고, 얼굴이 조금씩 백지장처럼 질려가는 게 어딘가 아픈 것처럼 보였다.
맞은편에 있던 태휘는 그런 영롱이 신경 쓰여 저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향했다. 회의를 중단할까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라 자연스레 마무리되었다.
“그럼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세부 일정이랑 대본 초안 나오면 연락드릴게요.”
“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신 대표의 박수를 끝으로 회의가 끝나고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휘는 바로 영롱에게 다가가고 싶었으나 그 옆에 있던 설민이 한발 빨랐다. 설민 역시 영롱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는지 영롱에게 바짝 붙어 말을 걸고 있었다.
“야, 너 괜찮아?”
“으, 응.”
영롱은 사색이 된 채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 얼굴로, 설민을 밀어내곤 비척비척 일어나더니 제일 먼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태휘는 당장 영롱을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작가들과 인터뷰 일정을 상의하고 담당 PD가 따로 부르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곧 설민이 쫓아 나갔기에 그나마 안심이 됐다.
“태휘 씨. 라이브 공연용 MR도 새로 작업하셔야 할 거예요.”
담당 PD의 말에 태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활동 당시 MR이 남아 있긴 했지만 백보컬(back vocal)이나 더블링(doubling)이 최소 13년 전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으니 지금 그걸로 공연할 수 없었다. 곡들도 정하고 녹음까지 다시 하려면 꽤 바쁘겠는걸.
용건이 끝났으면 바로 영롱에게 가 보려 했는데, 담당 PD는 어째서인지 태휘를 한 번 더 붙잡았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최대한 조심스레 물었다.
“태휘 씨. 혹시 신곡 작업 가능해요?”
“신곡이요?”
“재결합 기념으로 신곡 음원 발매하면 더 의미 있잖아요. 팬송이면 더 좋고요.”
12년 만에 STORY의 신곡이라? 태휘는 재결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해도 신곡 발매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터라, 그 말에 일순 영롱의 걱정도 잊었다.
“가능하시다면, 멤버들한테는 비밀로요. 나중에 서프라이즈로 알려야 촬영할 때 리액션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태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태휘가 프로듀싱 중인 작업도 꽤 있고, 재결합 공연과 신곡까지 준비하기엔 일정이 빠듯한 편이었다.
“한 번 고려해 주세요. 저희가 음원 사이트 협찬도 있어서. 그래도 방송인데, 이 정도 서프라이즈는 저희도 필요해요. 아까 CP님이 제안하신 영롱 씨 부분은 저희가 양보했으니…….”
하나를 지키고 하나를 양보했다고 생각한 건 태휘뿐만이 아닌 듯했다. 영롱의 얘기를 다시 꺼내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준비해 볼게요.”
“그리고 오늘 회식은…….”
“회식은 다음에 하죠! 먼저 실례할게요.”
태휘는 즉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영롱과 설민이 어디로 갔는지 찾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꺼내서 확인해 보니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형수님
통화 가능할 때 연락해요.
저번에 부탁한 일에 대한 답을 주시려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영롱이부터 봐야 했다.
▶▶
다림은 한 카페에서 영롱의 군대 동기를 만나고 있었다. 혼자서 심층 기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부터 SNS를 통해 STORY 멤버들과 과거 친분이 있었던 이들을 수소문해 보고 있었다.
사실 다른 멤버들은 연막이고, 영롱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시도해 본 건데 그동안은 건질만한 제보가 없었다.
국내에 없었던 건지, 10년 동안 차영롱과 조금이라도 가깝게 지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얼마 전, 그의 군대 동기였다는 이에게 연락이 왔다. 차영롱은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가 입대한 시기는 솔로 앨범 활동 이후 2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당시 기사 자료를 찾아보니, 차영롱의 솔로 데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만큼 당연히 바로 솔로 2집을 낼 것이라고 주변에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긴 공백기를 가지더니, 별안간 입대했다. STORY 중 한강에 이어 차영롱이 두 번째로 군 생활을 시작한 멤버가 된 것이다. 그렇게 차영롱 솔로 1집 앨범은 그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예상보다 빨랐던 입대도 의외지만, 의외인 점은 또 있었다. 다림은 남자가 가져온 군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테이블 위에 놓으며 물었다.
“차영롱이 연예 사병으로 안 간 게 의외에요. 이설민도, 계오은도 연예 사병으로 갔는데.”
“그때 저희도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뭐라고 했더라. 그냥 연예인들 없는 곳에서 복무해 보고 싶다던가? 다들 미쳤다고 했죠. 우리는 연예 사병 하고 싶어도 못 가는데.”
사진 속 군복 차림의 차영롱은 활동 당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동기들과 비교해 혼자만 말간 얼굴이어서 군인이 아니라 병영 체험하는 학생으로 보일 정도였다.
사진 속에서 영롱은 둘째 줄 오른쪽 맨 끝에 서 있었고, 지금 다림과 마주한 남자는 사진 속 맨 왼쪽에 있었다.
“군대에서, 차영롱 어땠어요?”
“TV 보다는 훨씬 차분해서 놀랐어요. 긴장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사회에선, 그러니까 가수 활동할 땐 엄청나게 밝은 캐릭터였잖아요? 근데 군대에서는 처음엔 우울한가 싶을 정도로 차분했어요. 적응하고 나중엔 차차 나아졌지만.”
“얼마나 친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랑은 별로 친하진 않았어요. 제가 워낙 무뚝뚝하고 숫기도 없어서. 차영롱은 선임들이 좀 예뻐라 했죠. 걘 자기 예뻐해 주는 사람하고만 친하게 지냈어요.”
“혹시 특별히 기억나는 일 없었어요? STORY 시절 얘기를 했다거나, 장기자랑 때 STORY 노래를 불렀다거나.”
“음……. 자기 얘기하기보단, 잘 들어주던데요? 동기들 연애 상담 같은 거요. 자기 얘기 안 하는 건 연예인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러고, 노래는…….”
남자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요?”
“그러고 보니 노래를 한 번도 안 했네?”
“차영롱이 노래를 안 했다고요?”
“아, 네. 물론 군가 같은 건 불렀지만…….”
다림은 자못 진지한 눈빛으로 남자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야 말로 진짜 의외인 일인데. 잠시 후 남자가 생각났다는 듯 테이블을 치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 어떤 선임이 노래시킨 적 있었어요. 가수니까. 그때 이 새끼가 노래 안 하겠다고 엉엉 우는 거예요. 그래서 선임이 빡쳐서 얼차려 한 번 주고. 근데 그래도 끝까지 안 하니까, 다음부턴 아무도 안 시켰어요.”
—Tape 3에서 계속—
황혼의 아이돌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