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33)

일어나보니 너무 푹 잤는지 오전 11시가 넘었다. 옆을 보니 녀석이 자고 있다. 

.........///////.................. 어제 녀석과 한 키스가 생각이 나서 얼굴을 붉혔다. 

살짝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어째 이런 일이? 휴-우 한숨이 나온다. 

밝은데서 녀석의 얼굴을 어떻게 보나싶어 망설이는데 '똑똑' 노크를 한다. 

"민하야. 거기 있어?" 

"응. 다 씻었어. 잠깐만" 

나는 얼른 수건에 물기를 닦고 문을 열고 나오자, 녀석이 머리를 쓰다듬고 들어간다. 

다행히 녀석이랑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강 아침 겸 점심을 떼우고 남은 공부를 했다. 

간간히 녀석의 입술에 눈이 가고 의식되어 두근거렸지만 태연한 녀석을 보고는 

다행함과 조금의 실망감을 느끼며 공부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럭저럭 내일 볼 기말시험 과목을 대충 총정리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조금 이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잠들기 전 녀석과 했던 키스를 떠올려보며 손을 들어 내 입술을 살짝 만져보았다. 

.........////////.........아직도 생생히 그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다. 

녀석은 단순히 남자끼리도 키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뿐이지만...... 

.............나....는...................나...는??..................!!!??!!!................. 

휴----우 긴 한 숨이 나온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시험을 치르는 기간동안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가게에 들렸다 녀석의 집으로 가서 함께 총정리를 하며 시험공부를 했고 

드디어 4일간에 걸쳐 본 지긋지긋한 시험이 오늘 끝났다. 

시험은 예상외로 쉬웠다. 끝나고 대강 답을 맞춰보니 이번에 전교등수가 

꽤 올라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아주 만족스럽다. 

성재는 어려워서 시험을 망쳤다며 울상을 지었지만 금새 놀 계획 짜기에 바쁘다. 

그 동안 못했던 수다를 풀며, 다른 녀석들과 합세해 오랜만에 웃고 떠들었다. 

살짝 녀석의 자리를 보니 비어있다. 얘기에 정신이 팔려있어 가는 것도 못봤다. 

시험을 마쳤다는 해방감과 함께 긴장감이 풀렸다. 

오늘은 집으로 곧장 가서 잠을 자야겠다. 

이렇게 집으로 곧장 오는게 정말 오랜만이다. 

낮에 아무도 없는 집으로 들어오니 낯설고 이상할 정도이다. 그 녀석과 시험공부 한답시고 

거의 2주를 오스피텔에서 보내고, 밤에 잠만 자러 집에 왔으니...... 

나는 씻는 것도 귀찮아 대강 옷만 벗고 누워서 밀린 잠에 빠졌다. 

오늘 아침은 시험이 끝나서인지 어느 때 보다 더 소란스러운 것 같다. 

나도 활달한 공기에 휩싸여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아이들은 등교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어제 치른 시험얘기보단 

오후에 놀 계획에 정신이 없다. 그럴만도한 게 2학년은 2교시 단축수업 후 시내에 있는 

극장에서 단체 영화관람을 하고 각자 하교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끝나고 뭘 해야하나? 엄마 가게 들렸다가 용돈 타서 CD나 살까? 

뒤에 앉아 창현이와 죽이 맞아서 신나게 떠들던 성재가 뒷통수를 친다. 

"민하야. 너도 영화 끝나고 할 일 없지?" 

"응" 

"우리 그럼 있다가 영화 끝나고 시내에서 놀다 들어가자. 오랜만에 함께 게임도 해야지." 

마침 할 것이 없었는데 잘 됐다 싶어 그러자고 했다. 

태호와 경덕이도 합세하기로 했다. 

수업 시작하고도 들뜬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지 앉자 선생님은 간단히 답안만 맞춰주고 

오락시간을 갖게 했다. 이름보다는 '헉스'로 불려지는 

분위기 메이커 재혁이가 나와 성대모사와 삼행시를 나열하자, 우리 교실은 뒤집어졌다. 

웃다가 승주의 표정이 궁금해 돌아보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폴더에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는 곧바로 PC방에 몰려가 굳었던 손가락 근육을 풀어 주고, 

늦은 점심을 롯데리아 2층에서 햄버거로 떼우고 있다. 

"쪽 팔려서 죽는 줄 알았네. 우리가 유치원생이냐 둘 씩 짝지어 일렬로 걷게." 

"그건 그렇다고 쳐. 영화는 또 그게 뭐야. 초딩이나 보는 영화를!! 

씨! 돈 낸 게 아깝다." 

이제 배가 부르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씹기 시작한다. 

2층 넓은 창에서 내려다 보이는 거리는 장마가 걷힌 뒤라 활기있어 보인다. 

경덕이가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소리친다. 

"야. 저기 우리학교 선배 '전갈' 아니야?" 

"어? 어디 어디?" 

우리는 풍문의 주인공 그 깡패선배 전갈의 얼굴을 확인하려 창가에 얼굴을 박았다. 

경덕이가 가리킨 곳에는 '나 조폭'이라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덩치 좋고 

살벌하게 생긴 남자가 길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작년 2월에 저 선배가 졸업하고, 

나는 3월에 입학했기에 실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 조직에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웬일이래?" 

"뭐 한 건 하러 온 거 아니야?" 

"혹시 후배들 영입 때문에 내려 온 거 아닐까?" 

태호의 말을 끝으로 전갈 옆에 택시가 와서 서고 낯익은 사람이 내린다. 

녀석이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길인지 사복차림이다. 

"어! 저 새끼. 권승주 아니야.?" 

"어디! 어디! 어 정말 승주놈이네." 

전갈과 승주는 서로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전갈이 녀석의 배를 가볍게 치며 

말을 걸었고, 곧이어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맞은 편 술집이 많은 골목으로 걸어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키 큰 둘을 슬금슬금 피하며 흘깃흘깃 돌아보는 것이 다 보인다. 

우리는 방금 전 눈으로 본 광경을 추리하기에 정신이 없다. 

"태호 말이 맞나 보다. 저 전갈이 승주를 데려가는 것 보면" 

"왜 승주새끼 전학와서 일진들과 붙고 다닐 때, 전갈이 몸소 전화를 했다잖아?" 

"맞어. '아. 끼. 는. 후. 배'라고.......그 소문 정말인가 보다." 

"나는 저 전갈얼굴 처음 보는데 너희는 어떻게 알어?" 

내가 의아해서 묻자, 성재도 의아한 듯 보다가 곧 알았다는 듯 말을 한다. 

"너는 '경문' 나왔지? 우리는 모두 서일중학교 다녔잖아?" 

"아! 그래서 잘 아는구나." 

"자식! 범생이 티네요. 다른 학교 다녔다해도 이 주변에서 전갈 모르면 간첩이야. 

저 선배 중학교 때부터 이름 날렸잖아? 그 때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 막갔어." 

"중학교 때부터?" 

그 말에 창현이가 자기 일처럼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 전갈말고도 싸움 잘하는 또 다른 두 명이 있었는데, 

'서일중학교 삼총사'로 유명했어. 

인근 논다는 고등학생들도 함부로 건들이질 못하고 설설 기었다잖아." 

"그 사람들도 우리 고등학교에 다녔어?" 

"아니 한 명은 중간에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뭐 잘못됐는지 전학 가버리고, 

다른 한 명은 졸업 후에 공고에 갔다는데 그 공고 평정하고 짱에 등극했다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어?" 

"자식! 어차피 좁은 동네에, 여기 토박이들인데 빤하지 뭐." 

우리는 그 뒤로 전갈의 무용담을 얘기하다가 지루해져 다른 화제를 찾았다. 

"성재야. 너 여친 얼굴 좀 보자. 전화해서 여기 나오라고 해." 

"야. 볼 수 있으면 왜 내가 지금 냄새나는 너희 놈들이랑 앉아 있겠냐? 

개네 학교 오늘부터 다음 주 목요일까지 장장 일주일 간 시험이다." 

"무슨 시험이 그렇게 길어? 우리는 4일 봤는데." 

"누가 아니래. 그것도 일요일을 중간에 끼워서...... 놀지 못하게 하려고 머리를 써요. 

아이 씨. 이러다 얼굴도 잊어버리겠다. 못 본지 오래됐는데......" 

"야. 성재야. 우리 친구 잘 둔 덕 좀 보자." 

뜬금 없는 태호 말에 우리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다음 주에 잘난 니 여친 얼굴도 보여줄 겸, 그 쪽 애들과 미팅 좀 주선해. 

그 쪽 학교도 시험 끝나니까 한가할 거 아니야? 힘 좀 써라. 응?" 

"새끼. 친구를 보면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너 나오면 

내 수준이 낮은 줄 알 거 아니야. 그리고 맨 입으로?" 

"이-게 씨. 내가 어디가 어때서.......... 내가 다음 주 용돈 타서 떡볶이 산다." 

"그럼. 나는 라면 살게." 

"나는 너 빌려달라던 게임CD 빌려 줄 게." 

모두 앞다투어 성재 환심을 살려고 공약을 한다. 

나도 해야 하나? 별로 생각 없는데.... 내가 조용히 있자 경덕이가 '너는?'하며 묻자, 

성재가 경덕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한다. 

"당근. 민하도 가야지!! 민하야. 너는 아무것도 안 사줘도 돼. 그 외모만 가지고 와라.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너는 제발 꼬옥 참석해라. 그래야 내 친구 중에 저런 애도 있구나 

싶어서 내 얼굴이 좀 서지. 나중에 잘되면 그 때 한 턱 쏘는 것만 잊지 마." 

우리는 다음 주 미팅계획을 세우며 한참을 떠들다가 헤어졌다. 

오늘 시내에서 본 전갈이라는 선배와 승주가 함께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마음잡고 공부하는 잘하고 있는 녀석에게 왜 접근하는 것일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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