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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8] (8/28)

하얀 거짓말 [8  ]

"어째 술 한 잔 고픈 얼굴이네"

지나가면서 슬쩍 농담을 던지는 강 진태를 바라보며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전화도 없이 오셨어요?"

"일 때문에 온 걸 뭐. 근데 얼굴이 왜 그래?"

이종사촌 누나의 남편인 강 진태가 우연하게 현수네 회사의 거래처라는 걸 작년 즈음에 알게 되었다. 기획 이벤트 회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진태의 

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수네 회사는 의류업이다. 볼일을 다 마치고 가는 길에 잠시 들린 진태는 하나뿐인 처남의 얼굴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말 뭔가 있는 얼굴인걸?"

"네!! 술 한 잔 사주세요. 네?"

물론 거절을 할 줄 알고 던진 부추김이었다. 하지만 진태가 그럴까 라고 중얼거리며 걸음을 멈추기에 현수가 오히려 놀라 자형을 바라보았다.

"에?? 오늘 누나 없나 봐요? 그럴까 라니?"

"없으니깐 그러지. 정말 한 잔 할래?"

플러스의 사장 강 진태는 애처가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집에 있다면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칼 퇴근 하는 게 당연시 되던 사람이 

웬일로 술자리라는 말에 구미가 당기는 듯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오늘 밤에 없는 모양이다.

"왜 저번에 봤던 친구들 알지?"

"아..그럼요. 준혁형이랑 민호형 태수형?"

"응. 그 친구들 와이프들이랑 같이 여행갔거든. 혼자 집에 들어가기 싫었는데 잘 되었네. 현수랑 술이나 한 잔 하고 들어가야겠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왜?"

"어쩐지 자형이 집에 안 들어가신다 했지요. 그럼 오늘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물론."

현수가 진태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재준이의 바인 블루였다. 블루는 룸 하나에 테이블은 겨우 일곱 개 정도 뿐인 작은 칵테일바였다. 

들어가 보니 아는 동생들은 없고 일전에 재준과 같이 왔을 때 보았던 웨이터만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아니, 현수형님 아니십니까!! 큰 형님과 함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재준의 밑에 있는 동생들이 형님이라고 하듯 올백을 한 웨이터도 현수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반겼다.

"어. 오늘은 다른 일행이 있어서. 일부러 재준이 매상 올려주려고 왔지. 나 신경 쓰지 말고 일 봐. 난 테이블에 있을 거니깐."

현수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한 말과는 달리 과일안주만 시켰을 뿐인데 저녁을 안 먹었다 생각을 했는지 끼니가 될만한 안주 서너 개를 더 내어오는 

웨이터에게 고맙다고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진태의 눈에는 그런 현수의 말과는 달리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듯 종종 

테이블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웨이터의 모습이 보였다.

"저치가 말하는 그 큰 형님이라는 사람이 재준이라는 친구?"

재준과 만난 적은 없지만 현수가 종종 말을 했기에 알고 있는 진태가 현수를 보며 물었다. 재준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준의 

아랫사람으로 저렇게 현수를 챙기는 것을 보면 재준이 얼마나 현수를 살피고 있는지 알만했다.

"아..네."

"그런데 오늘은 술친구보다 카운셀러가 필요한 얼굴인데?"

"돗자리 까셨어요??"

"후후.. 그럼 이거 오늘 공짜 술이겠지?"

"치사합니다. 사.장.님. 돈도 많으신 분이 그렇게 쪼잔하게 나오면 안되지요~"

단 한 번도 현수에게 술값이나 밥값을 떠넘긴 적이 없으면서 진태는 항상 현수에게 밥을 사달라는 둥 술을 사달라는 둥 공짜를 밝히는 사람처럼 

말하는 게 그의 습관이었다. 매번 얻어먹는 게 미안해서 한 번 살려고 하면 집에 있는 사람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는 사람이었다.

진태의 말을 빌자면 은수가 현수에게는 무조건 사주라고 지엄하신 엄명을 내렸다는 것이다. 

"즐겁게~ 행복하게~ 단순하게~ 라는 모토로 살아가는 사람이 무슨 고민이야?"

"아..음..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뭐랄까.. 애 같기도 하고."

술잔을 빙글 돌리며 현수가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태를 보며 궁금증을 풀어버렸다. 다른 친구에게 묻기도 그렇고 당사자인 재준에게 

묻기도 머쓱한 이야기였다.

"뭐가?"

"저기 자형은 저번에 봤던 그 친구분들과 제일 친하시죠?"

"그렇지. 그 외엔 만나는 친구들 거의 없는 편이야."

"그분들과 같이 술도 한 잔 하고 불쑥 집으로도 찾아가고 전화하고 하시죠?"

"친구들이면 다 그런 거 아닌가."

"친구들이면 다 그렇지요?"

"그럼. 왜 재준이라는 친구와는 그렇게 안 지내?"

"아..그게.."

"음?"

"재준이와도 그렇게 지내긴 한데..얼마 전에 동창회를 했거든요."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못할 말이겠지만 형제라고는 하나도 없는 현수에게 맏형처럼 다가온 진태기에 현수는 동창회에서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현수는 누군가 해결사처럼 나타나 자신의 잘못을 꼬집어 지적해주길 바랬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거구나, 

이건 아니구나 싶은 마음에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해결사로서 진태는 그에 딱 맞는 적임자였다.

"그러니깐 그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는 전화해서 술을 마시자고 하는데 처남한테는 안 그런다??"

"네. 그리고 요근래 들어서 자그마치 세 명의 여자한테서 이상한 말을 들어서.."

"어떤 말?"

"한 명은 제가 저번에 사귄다고 말했던 정희였고 두 여자는 재준을 좋아하는 여자였는데 그 세 명이 모두 저에게 충고를 한 적이 있는데 다 같은 

내용이었거든요."

"뭐라고 했는데?"

"제가 재준이한테 방해가 된다고요. 잘 나가는 재준이 한테 짐이 된다고. 저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하고 있는 거라면서 재준이 마음이 약해서 

저에게 끌려다니는 것이지 재준이 저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기가 막힌 것은 정희는 재준과 절교하지 않으면 헤어진다고 

해서 헤어진 경우였거든요. 전 재준이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은데 .. 동창회에서 느낀 건 정말 재준이 절 귀찮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라는 

것이었어요. 항상 술을 마시거나 만나서 저녁을 먹을 때 제가 먼저 전화를 한 경우였지 재준이 먼저 전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깐요."

며칠 전 동창회에서 술을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되어서 재준의 등에 업혀서 집까지 왔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그 기억이 나지 않았을 텐데 몇몇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현수를 괴롭게 했다. 재준에게서 나온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운 사랑의 고백이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다.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뚜렷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느끼었던 가슴의 울렁거림은 아직도 현수의 가슴을 진동시키고 

있는 듯 생각만 해도 가슴 한 켠이 찌릿했다.

그렇게 은영을 사랑하는 재준이건만 단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은영의 말대로 자신의 존재란 재준이 의지하는-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연인의 유무 정도는 말 할 수 있는- 친구는 못 된다는 것이다. 친구니 챙겨주기는 하지만 일방적인 기울임을 가진 우정이라고 밖에 말 못하는 

것이 속상한 현수였다. 예를 들자면 맏형과 막내와 같다고 할까. 현수는 재준과 자신의 관계가 좀 더 동등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이길 바랬다.

"하지만 술 많이 마신 날에는 처남집으로 와서 자고 아침에 해장국까지 끓여주는 친구라며?"

"그런 사람이 맨 정신으로 친구 집에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거 아닐까요? 자형도 알다시피 제가 술 마시는 거 좋아해서 

아무 날 재준이한테 전화하면 오기는 하는데 먼저 전화해서 오늘 술 마시자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몰랐었는데 동창회서 들어보니 가끔 

다른 친구와는 먼저 전화해 술을 마시자라고 말을 한다고 하니.. 차마 제 전화에 거절을 못 해서 어거지로 나와서 술 마셔주고 뒷 수발까지 들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음.."

"그리고 솔직히 기분도 나빴고요. 전 제가 제일 친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일 뒷자리였나 싶기도 하고..... 친구들한테 그런 기분 느껴본 

적 없습니까?"

생각만 했던 고민거리가 입으로 나오자 현수는 더 속이 상해 푸짐하게 한 상 차려진 안주에는 손도 안 대고 술잔만 비웠다. 

그 동등한 관계이길 바라면서도 또 그러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현수에게 있었다.

그것은 재준에게 일 번이 될 수 없는 자신의 가치였다. 은영과 형준에게 어쩐지 뒤로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한테 없는 줄 알았던 욕심꾸러기가 짜잔 하고 박 속에서 튀어나오 듯 갑작스럽게 나타나 황당하면서도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속이 상했다.

 형준과 어릴 때부터 친구인 줄 알지만 그래도 순번을 매기자면 자신이 일 번인줄 알았는데 어쩌면 친구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고 거추장스럽고 번잡은

 친구 일 순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비참했다. 그의 그 넉넉한 미소와 자근자근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그 진지한 깊은 눈매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떻게 해서든 빼앗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났다.

생각하지도 못한 욕심이 제 실체를 드러내자 현수는 그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있기는 하지. 하지만 경우가 좀 다른걸?"

"네? 어떤 경우요?"

자신의 감정이 그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픈 현수가 동지를 만난 듯 반갑게 반색을 하며 물었다.

"저번에 봤던 친구 중에 준혁이라고 기억나?"

"아..네. 그 술집 하신다던?"

"응. 그런데 준혁이는 엄연히 따지면 내 친구가 아니라 은수친구 거든. 그래서 우리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은수편을 먼저 들어. 

그럴 때나 두 사람만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가끔 욱하고 치밀어 오를 때가 있지. 물론 두 사람이 내가 의심할 만한 사이가 아닌 것을 잘 

알지만. 왜 그런 거 있잖아. 알면서도 감정이 컨트롤 안 되는 거."

"하지만...그런 경우는"

"그래. 처남과는 조금 다르지? 내가 느낀 건 준혁이에 대한 우정 때문에 속이 상한 게 아니라 은수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고 또 질투니깐."

그때 진태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마 누나인 듯 진태의 얼굴이 밝게 풀어졌다. 진태의 전화가 길어지는 것을 현수는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진태는 항상 그랬다. 웬만히 급한 일이 아니라면 아내의 전화를 바쁘다는 핑계로 짧게 끊는 법이 없었다. 회의중이라면 나가서 받고 일하는 중이라면 

일을 멈추고서라도 전화의 용무가 다 끝나고야 일을 재기했다.

그의 전화로 일을 하던 모든 인원이 손을 놓게 되더라도 말이다. 설사 아내가 건 전화의 내용이 콩나물을 백 원어치 깎았다는 내용일지라도 

진태에게는 자신의 일보다,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일전에 은수를 만났을 때 진태가 회사에 가서 일하는 게 

아니라 전화로 수다나 떨고 탱자탱자 노는 게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았었다.

그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꼼꼼하며 철두철미한 사람인지 현수네 회사에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아내와 관련이 된 일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냉정하고 깔끔하게 일을 하는 성격임을 다 알기에 웃으며 넘어가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은수가 전화를 끊는 것을 기다렸다가 자신의 핸드폰을 닫은 진태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현수에게 사과를 했다.

"이걸 어쩌지. 은수 여행이 취소되었다는데?"

"하하. 괜찮습니다. 천하의 박 은수씨가 등장했는데 어디 감히 제가 머리를 치켜들고 댓거리를 합니까?

 이렇게 술 한잔하면서 속을 푼걸로 되었습니다. 마음 쓰지 마세요."

"그래도 미안하게 되었는 걸. 마지막으로 카운셀링을 하고 가지."

"네넵. 귓구멍 열고 들죠."

"내가 은수 만나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 게 뭔지 아나?"

뭘까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현수를 보며 진태는 그의 술잔을 치는 것으로 마지막 건배를 청했다.

"포기하지 않았는 것. 그것이야. 은수 헤어졌다가 십 년 만에 다시 만났다고 했지. 다시 만나고 내가 은수 쫓아다니면서 결혼하자고 했을 때 은수 

반대했었어. 그 사람은 사랑이 두렵고 어려웠으니깐. 매번 거절되는 사랑에 지쳤다가도 은수가 없었던 십 년의 세월을 떠올리면서 참고 또 기다렸어. 

이 사람뿐인데,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인데 포기하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끝내 은수가 결혼을 허락해주었어. 

사랑했지만 용기가 없었고 나를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결같이 기다려준 내 끈기에 항복이라고 말해 주었었어. 사람이란 말이야 그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깊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 기나긴 인생에 있어 몇 없다고 생각해. 희소성이 있는 만남이라는 거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 그 친구, 처남한테는 분명 소중한 친구일 테지."

분명히 말할 수 있기에 현수의 고개는 맹렬히 끄덕여졌다. 진태는 그 모습을 보며 현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그가 용기를 갖기를 바랬다.

"그 친구가 싫은 일일지라도 묵묵히 할 성격인가?"

현수가 생각하기에 재준은 자신에게 다정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싫어해도 내색 않고 일을 할 사람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싫은 티 팍팍 내며 냉정한 얼굴을 하지는 않을 테다.

"아니면 말이 다른 사람인가?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는 다른 말을 하는"

그것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부정의 말이었다. 오히려 너무 융통성없이 하고픈 말을 다해서 탈인 사람이 도 재준이다.

"매일 밤 전화한다는 사람이 그 친구잖아."

회식을 해도 11시경이면 일어서는 이유가 차가 없기 때문도 있지만 재준과의 통화도 중요시하는 현수를 알기에 말하는 진태였다.

"그 솔직하고 싫은 일은 하지 않은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닌 이상 그 친구를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면 안 되지. 

그 친구의 성격이라면 처남이 이제 귀찮아졌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말을 할거야. 소중한 친구잖아. 다른 친구와는 다른 대접을 받고 싶을 만큼 제일 

아끼는 친구잖아. 그럼 아낌없이 좋아해 줘. 처남. 나이가 들면 들수록 소중한 친구 만들기 힘들어져.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소중한 거야. 

사람은 말이야 나이가 한 살씩 먹을 때마다 자를 하나씩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수많은 잣대로 만들어진 친구는 그 자가 필요 없어지면 

폐기처분하게 되지. 하지만 자를 가지지 않고 만든 친구는 오래가게 되는 거야. 고등학교때 만난 친구들처럼."

"네. 그렇군요. 헤.. 아..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별일 아닌 걸로 난리 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할까? 난 아까 말한 그 친구들과 처남 말대로 불쑥 집으로 찾아가 술을 한 잔 하기도 해. 은수에게 말을 하지 않은 회사일까지

 말을 하기도 해.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도 매일 전화 하지는 않아. 매일 전화하는 사람은 은수 뿐이야."

"자....자형.."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어떤 감정이든, 소중한 감정이라면 충실히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런 감정은 아낄 필요가 없는 

것이니깐."

고민을 덜려고 왔다가 오히려 더하게 되어 버렸는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현수의 등을 바라보며 진태는 바의 문을 나섰다. 

재준이라는 현수의 친구가 자신의 뒷조사까지 한 것을 알고 있는 진태였다. 아마 현수가 자주 만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 혹은 현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인지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오히려 진태가 자신이 조사당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를 테지만.

"처남.. 그 정체 모를 감정이 그 친구가 더한 건 사실이라고"

잠시 현수와 그의 친구를 생각하던 진태의 머릿속은 서서히 집으로 향하면서 자신을 기다릴 아내를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

모처럼 형준과 술을 한 잔 하면서 재준은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미 몸에 배여버린 습관은 온몸의 감각을 시계처럼 만들어놓았다. 

시계를 보지 않고서도 11시 30분 만 되면 자동으로 알게 되는 수준까지 다다른 것이다.

"뭐야, 벌써 11시 반이야?"

"너도 알아?"

"그럼 모르냐? 네가 시계를 보는 시간이 딱 11시 반인걸. 하여간 이 현수씨 일이라면 박사예요. 박사."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지 낮은 목소리로 웃음소리를 내는 재준을 보며 형준은 가볍게 혀를 찼다. 부드러운 웃음소리 가운데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재준의 핸드폰이 울었다. 발신자는 현수 몰래 숨겨둔 현수의 보디가드 상준이었다.

11시 반이면 샤워까지 마치고 침대에 앉아 책을 읽을 시간이다. 오늘 급조된 약속이 있었다면 샤워만 겨우 마쳤을 시간. 

상준이 전화할 일은 전혀 없는 시간임은 분명하다. 심장이 불길한 예감으로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사람의 심장을 놀래키고 있었다.

"형님. 큰일이 났습니다!!"

"......."

"현수형님이 사라지셨습니다!!!"

뭔가 심각한 일이 발생된 것을 눈치챈 형준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전화기만 꽉 쥐고 있는 재준의 손아귀에서 억지로 전화기를 빼앗아 받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 형준형님. 현수형님이 사라지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시간에 집에 있을 사람이 왜 없어. 너 지금 어디야!!"

"블루 앞인데요. 회사에서 같이 나온 분과 블루에 오셨는데 그 동료분이 먼저 가시고 한 시간이 지나도 안 나오시기에 들어가 봤더니 안 계셨습니다. 

병우 말로는 나가신지 삼 십 분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게 뒷문으로 나가셨다고 해서 현수형님 댁 근처에 있는 두식이한테 전화해봤더니 아직 안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화드리는 길입니다."

"병우는 뭐래? 현수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 많이 마신 거 아냐?"

"아뇨. 일행이 먼저 가서 얼마 안 마셨다고 했습니다. 멀쩡하게 걸어서 나가셨다고, 뒷 문이 큰 길과 가깝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제 실수입니다. 정문만 신경을 쓰고 있어서."

"됐어. 일단 거기서 대기해. 그리고 애들 풀어서 그 주변 샅샅이 뒤져. 오늘 내로 못 찾으면 다들 죽은 목숨인 줄 알아!!! "

이미 다 들었을 것이다. 형준은 경직된 채 양손을 꽉 쥐고 있는 재준의 어깨에 위로하듯 손을 얹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금방이라도 살인이라도 

저지를 듯 날카로운 눈빛뿐이었다.

"건드리지 마라."

"야, 어디가. 여기서 기다려. 애들 풀었으니깐."

"간다. 찾으면 전화해."

닫히는 문틈으로 차가운 밤바람이 들어와 실내를 얼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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